사실은 어둠만은 아니었다


지난 시간 거창하게 한국 애니메이션의 어둠이니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건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한정한 이야기였습니다. 큰 기대를 받은 소수의 작품들이 그 작품성과 무관히 몽땅 흥행에서 참패하게 되었으니 어둠이라는 표현도 그리 부족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애니메이션 시장이라는 게 극장용 애니메이션만 이르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했던 누들누드 같은 작품도 있고, 파급력 측면에선 극장용 애니메이션 이상의 효과를 보이기도 하는 TV 애니메이션도 있고요.


 지금도 좋은 이미지로 회자되는 레스톨 특수구조대. 그리고 탱구와 울라숑.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어둠이라는 표현은 사실 TV 애니메이션에서의 선전을 놓고 보면 과한 표현인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 절대량이나 후속기획같은 종합적인 요소에서 부족함을 보인 게 사실이긴 하지만, 최소한 인기는 끌고 어느 정도의 영향을 남겨 그만의 성과를 거둔 것도 마찬가지로 사실이거든요.




 모두의 배를 부르게 하지는 못했지만


떠돌이 까치나 열네살 영심이, 날아라 슈퍼보드나 두치와 뿌꾸, 2020 원더키디처럼 사실 한국산 TV 애니메이션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성과를 거두어 왔습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과감한 투자와 시도들의 기반엔 바로 이 TV 애니메이션들의 성공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2000년대초반을 즈음하여 나온 한국 애니메이션들 역시 이러한 성공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요.


실제로 여러 의견이 오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담론이 오가는 상황이 되며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를 갖추면서도 그만의 재미를 잡은 작품들이라는 결과물이 하나둘씩 도출되었습니다. 이는 이전 꼬비꼬비의 오니 논란처럼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분명 특출나다할 만큼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러한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뽑고 싶은, 그러면서 상징적인 작품으로 레스톨 특수구조대와 탱구와 울라숑입니다.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취향이 듬뿍 가미된 결과지만 실제로 이들은 이채로운 구성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 사에 그만의 이정표를 남긴 작품들이기도 하거든요. 1999년, 2001년 서울무비에서 제작되어 방영된 이 두 작품들은 모두 로봇물이라는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그 지향점은 그간의 작품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헤로인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미아. 일본에서도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레스톨 특수구조대의 방점은 그 제목에서처럼 구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즉, 소재부터가 이전의 거대로봇물과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거대로봇물의 대다수는 로봇이 무기라는 요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는 로봇을 무력의 상징으로 내세운 후 그와의 일체화를 노려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쓰기 좋은 재료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갈등구조와 대립을 보다 긴장감있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로봇을 통한 싸움이라는 시작적인 수단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메카물의 포커스를 로봇으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불러왔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봇은 로봇일 뿐 중요한 것은 그 속의 사람이다"라는 요소를 강조하는 작품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리얼계가 그렇지요. 리얼계열의 작품 속에서 거대로봇은 병기일지언정 작품 그 자체가 되지는 않았고, 이는 슈퍼로봇물의 안티테제이자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결국 "싸움"이라는 틀에서 로봇이라는 소재를 소화할 수밖에 없었고, 보편타당한 주제를 강조하는데 분명하고도 명백한 모순과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압도적인 화력과 화려한 테크닉으로 적을 섬멸하면서 평화를 부르짖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은 사실 시청자에게 일종의 이율배반적인 감상을 가지게 만들었죠.


레스톨 특수구조대는 이 틀 자체를 바꾸어 버립니다. 동시에 소재와 주제를 합치시켜 버리죠. 본 작의 주인공 깡마루는 게임과 로봇 마니아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는 성장하며 중요한 것은 점수나 게임, 로봇따위가 아니라 그 속의 사람이 가진 정신,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훨씬 효과적으로 "로봇은 수단일 뿐,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 속의 인간이다"라는 리얼계 본연의 요소를 전달하게 하고요.


싸움이 아닌 구조를 선택한 레스톨 특수구조대는 거대로봇물 특유의 클리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로봇이라는 소재에 사로잡혀 이야기의 구조가 천편일률적이 되어가는 여타의 작품과 달리 그만의 방식으로 보다 흥미롭게 작품을 전개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찌보자면 리얼 로봇계의 보다 발전된 형태로의 승계라고도 볼 수 있죠.


이는 작품 외적인 영역과도 어느 정도 맞닿는 것이었습니다. 본작에서 로봇은 어디까지나 소재였으며, 중요한 것은 캐릭터와 이야기 그리고 주제였으니까요. 구조라는 틀 속에서 레스톨 특수구조대는 끊임없이 당연함과 차별되는 노력을 하였고, 나름의 신선한 충격을 시청자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하여 다소 심심한 인상마저 주는 로봇의 디자인이 용인되는 것도 레스톨 특수구조대가 지향하는 정신에 부합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용그리용그리용용"이었나요. 사실 돼지가 마스코트 캐릭터다보니 메카닉 본연의 개성을 어필하기보단 인형같은 경우로 더 사랑받았던 듯 합니다.


이미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사실 저는 패러디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적당한 이미지를 차용하여 보여주는 것을 긍정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패러디나 오마주에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한 측면에서 저는 탱구와 울라숑을 굉장히 아끼는 작품군으로 분류하곤 합니다. 패러디 측면에서 꽤나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거든요.


사실 탱구와 울라숑은 다소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직한 이야기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가온 세계의 위협과 용사의 도래, 여기에 왕국 소속의 기사단에 이들에 대한 예언까지. 더 이야기할 것도 없죠?


하지만 이 작품이 흥미를 더하는 것은 이 작품의 주인공과 주인공의 로봇이 전통적인 방식의 영웅인 것도, 그리고 이들에 대치되는 라이벌형 캐릭터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여러 작품 속에서 주연 캐릭터의 성격은 비교적 전형이 마련된 상황입니다. 이는 특정한 캐릭터에 보다 몰입하기 쉬운 시청자들의 성향이 반복되어 정제됨과 동시에 시청자들 또한 그것에 학습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탱구와 울라숑 방영 당시 약삭빠른 탱구보다는 바른 생활 천재 샤샤나 노력파인 그라켄에게 보다 몰입된다는 의견도 있었었죠.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탱구는 상당히 독특한 존재입니다.


본 작의 주인공 탱구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 구형 로봇을 타고 적과 싸우며, 때론 사람들을 기만하고 돈도 밝히는 속물적인 캐릭터입니다. 보통 로봇 만화의 주인공이 뛰어난 로봇, 고귀한 이상, 투쟁심 셋 가운데 하나라도 최소한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존 로봇물의 주인공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아예 반대됩니다. 그런 그였기에 기존에 마련된 정형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면서도 새로움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 자신부터가 기존 로봇물의 대표적인 주인공상과 반대되는 패러디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작품 자체도 패러디물로서 강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겁니다. 


패러디를 재료 삼아 장르라는 틀을 바꿔, 흥미와 캐릭터를 합치시킨 것이죠.


탱구와 울라숑의 엔딩 가운데 하나가 레스톨 특수구조대의 그것을 패러디한 것이라는 건 더 말할 필요 없이 유명한 사실입니다. 서울 무비 특유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점이기도 하고, 그만큼 거대로봇물에 대한 공식을 고민해왔다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탱구와 울라숑이라는 작품을 떠올리면 새로움과 재기발랄함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고요.





 작은 그러나 큰


한국 애니메이션을 논함에 있어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의견 가운데 하나가 "너무 많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따라 한다" 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품들을 본 포스트에서 몇번이나 다뤄왔었고요.


 실제로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불거지는 디자인 표절에서 이 두 작품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인데, 그건 이들의 디자인이 특출나게 개성있다기보단 레스톨 쪽은 보다 리얼한 기계적 이미지가, 울라숑족은 패러디라는 장르에 어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보편적인 디자인이어서, 그리고 아예 패러디여서 괜찮았다는 거죠.


하지만 장르적 유사성이라는 한계 내에서 그만의 새로움을 추구한 작품들이 전무했냐면 그건 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장 위에서 언급한 두 작품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죠. 이전까지 너무 당연하여 도외시되던 로봇과 탑승에 대한 근본적인 성질을 그만의 관점으로 살피고 해석한 작품들이니까요. 바꾼 건 작은 틀 하나에 불과했지만 로봇물이면서도 로봇물이 아닌 완전히 달라진 작품의 정체성과 개성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갖출 수 있었죠.


그리고 보다 좋은, 보다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고 그만의 결과물을 남긴건 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답습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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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