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탱구와 울라숑, 레스톨 특수구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TV애니메이션들은 극장가의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진과 달리 그만의 활약과 성과를 남겼다 이야기했던 바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어둠이니 하는 이야기들도 어찌보면 고정관념이고, 보다 이야기를 극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의견까지 나돌기도 했죠.


그 정도로 곰곰히 되짚어 보면 한국 애니메이션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들이 분명히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완성도건, 소재의 다양함이건, 상업적 성과건 간에 말이죠. 그에 따라 오늘은 지난 시간 다뤘던 탱구와 울라숑, 레스톨 특수구조대 외의 작품들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90년대 후반, 그리고 2000년대 초반


한국 애니메이션은 안돼, 라는 생각을 가졌던 때였습니다. 실제로 그 인식은 꽤나 오래 이어지기도 했고 말이죠. 제 마음에 드는 탱구와 울라숑이나 레스톨 특수구조대와 같은 한국 작품도 있었지만, 이외의 작품들은 제 마음에 그렇게까진 차진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엔 무시하고 보지 않았지만, 어느 시점에서 그 작품들을 살피며 제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작품들도 엄연히 남긴 결과가 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메인스트림을 거스르는 안티테제적 면모를 보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주인공이지만 그만큼의 활약을 하지 않는 이에서부터, 사실상 악당의 배후세력에 가까운 동료, 끊임없이 진의를 감추는 조력자 등... 가장 눈에 띄는 건 결코 매력적이게만 생긴 게 아닌 캐릭터들이겠죠.


SF, 사이버 월드, 거대 메카닉 액션, 호러, 스릴러, 미스터리, 귀신,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소재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그러한 작품을 알고 있습니다. 2001년 KBS에서 방영된 바스토프 레몬이 그 주인공이죠.


어찌보면 상충할 수도 있는 위 소재들은 흥미롭게도 맞아떨어지며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이버 세상에서 존재하는 귀신,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트러블은 현실세계에 재앙을 초래합니다.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일정 연령대 이하의 어린 게이머들 뿐.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반전은 기계와 정신이 결합된 이들로 인한 원죄들은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는데...


되짚어 보면 질리도록 활용된 소재들(멀리 갈 필요없이 공각기동대를 떠오르죠)이고, 어찌보면 뻔한 전개와 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결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 그 사이 흥미를 유발시키는 요소, 화려한 영상미,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메타포 등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러한 시도를 했던 바스토프 레몬은 당대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이질적인 질감을 보여주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소재들을 범대중적으로 버무려내지는 못하였고, 이는 결국 불안정한 방영시간과 일관성 없는 전개로 이어져 버렸습니다.


 같은 시기 KBS에서 씽씽캅을 방영했을 겁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죠. 비교적 호흡이 느린 이 작품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씽씽캅 이후 방영되었으니...


2000년작 마일로의 대모험은 재패니메이션이 아닌 카툰풍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실제로 이는 노리고 선택한 방식일 겁니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에 맞서 싸우는 용사, 흩어진 성검을 모아 적에게 맞설 힘을 키운다는 내용은 80년대 국내에 방영되기도 했던 원탁의 기사와 같은 중세 기사물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죠.


이 작품이 유달리 기억된다 말할 수 있는 것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애니메이션은 사실상 재패니메이션을 뜻하는 상황이었을 때 발매되었다는 점입니다. 핑크팬더나 펠릭스, 형사 가제트 등의 서구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TV에 방영되어 익숙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러한 카툰 류의 작품들은 점점 낯선 것이 되어 갔거든요. 마일로의 대모험은 그 가운데서 곤충이라는 소재를 비교적 친숙하게 소화해내며 이러한 흐름과 차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아마 이 작품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애니메이션 외에 게임이나 아이스크림 등의 캐릭터 상품도 기억날 겁니다. 그리고 제작과 함께 해외 수출이 약속된 작품이었다는 것도요. 시청률 또한 나쁘지 않아 한동안 KBS의 애니메이션 가운데 두번째 순위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저에겐 그리 재미있는 작품으로는 기억되고 있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구성은 나쁘지 않고, 캐릭터의 디자인이나 전개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리버리하지만 순수하고 정직한 주인공, 주체적이면서도 남성에게 지지 않는 여성 캐릭터, 철없고 질투심많지만 결국 성장하고 동료, 나이들고 현명한 노인, 마스코트 캐릭터까지 갖출 건 다 갖췄죠.


반대로 말하자면 이미 이와 비슷한 류의 작품을 많이 접한 이에겐 특기할 만한 작품은 아니었을 겁니다. 처음의 특별함과 함께라면 더없이 좋은 작품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다소 지루하거나 진부하게 여겨졌겠죠. 멋진 액션씬이나 캐릭터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은 또 아니다보니...


 컴미 역을 맡았던 전성초가 작년인지 재작년에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었죠.


처음 벡터맨이 방영될 때, 저는 단연코 망할거라 여겼습니다. 특촬물 자체가 한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것은 90년대 중반까지였고, 이후로는 컴퓨터 그래픽 등이 일상화되면서 그에 대한 인식은 흘러간 유행 즈음으로 생각되었거든요. 하지만 벡터맨은 성공했고, 시즌2의 제작이 결정되었으며, 극장판 및 캐릭터 산업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건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당시에도 마니아의 영역에서 엄연히 특촬물은 사랑받고 있었지만, 아직 덕이 깊지 않았던 저는 모든 콘텐츠를 저 자신에게 맞추고 있었고, 그 성패도 저의 호감 여부로 결정짓곤 했거든요. 하지만 벡터맨의 성공은 저의 인식의 폭을 넓혀 주었고, 저를 대상으로 하지 않은 작품도 엄연히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요정 컴미 역시 이러한 작품이었습니다. 어린이 드라마 자체가 청소년 드라마와 함께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유행에 뒤쳐진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고, 진부함과 지루함 사이의 감상만을 남기며 교육용으로나 쓰이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어린이 드라마가 순수한 흥미로 높은 시청률을 끌고 2년 정도 방영된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그리고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듯 이어 방영된 매직키드 마수리 역시 큰 인기를 끌며 2년동안 방영되었습니다.




 이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가 모두 실패했다는 것도, 그리고 다양한 시도가 없었다는 것도, 그만한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는 것도 다 제가 관심이 없었기에 가진 오해였습니다. 물론 시청자가 생산되는 모든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 애니메이션은 어떻다라고 단언하는 일은 될 수 있으면 지양하는 게 옳다는 걸 알게 되었죠.


실제로 제 마음에 드는 작품도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이후 2~3년간 제작되고 방영된 애니메이션들을 보면 오늘 날까지도 회자되며 좋은 인상을 남긴 것들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피드왕 번개, 트랙시티, 하얀마음 백구, 태권왕 강태풍, 요랑아 요랑아, 기파이터 태랑, 꼬비꼬비, 장금이의 꿈, 올림포스 가디언, 아이언 키드, 큐빅스, 레카, 검정고무신, 유니미니펫, 채채퐁 김치퐁, 카레이도 스타, 탑블레이드 등... (일단 뒤의 두 작품은 한일 합작의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예.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이스터즈 본 사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데, 저는 물론 제 주변의 사람들은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거 참...


분명히 큰 인기를 끌었다는데,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데,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게 십 수년이 지난 현재 시점이면 모르겠는데, 한창 방영이 되던 그 때에도 그랬으니 문제였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