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인


KBS까지 사실상 버린 시간대인 4시 대에 만화를 배치하게 되면서, 애니메이션은 최소한의 안정된 방영조차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관련 자료에선 MBC가 4시 대에 애니메이션을 편성하면서 애니메이션의 평균시청률이 2%로 급락했다는 내용도 있죠. 당연히 한국산 애니메이션만이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전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포켓몬스터가 최소한의 시청률조차 담보하지 못해 방영이 종료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수입해서 방영하는 외국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한국산 애니메이션은 더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기에 이러한 방영시간대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최소한 국내방영+해외수출을 통해 수익을 얻은 외국산 애니메이션과 달리, 한국산 애니메이션은 국내방영에서 최소한의 성공은 해주어야 최소한 투자한 만큼의 이윤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결국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만화계, 애니메이션계, 한국콘텐츠진흥업계 등이 들고 일어나게 됩니다.


한국, 일본, 이탈리아에서 협력하여 만든 몬타나 존스. 수작이고 시대를 불문한 재미도 있기에 새벽시간대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이 적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 방영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죠.


그 주장은 크게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과 이것을 최소한 담보할 수 있는 방영권의 보장에 있었죠. 그리고 주된 논의는 다른 게 아닌 애니메이션 쿼터제였습니다.




 당시


새벽 시간 투니버스를 보다보면 한 번 쯤 그런 생각을 해 보셨을 겁니다. "대체 왜 이 작품이 이 시간에 방영하는 거지?" 라고요. 실제로 당시 새벽시간 대 방영했던 프로그램을 하나씩 읊어 보기로 하죠. 요랑아 요랑아, 영혼기병 라젠카, 몬타나 존스, 날아라 슈퍼보드, 두치와 뿌꾸 등 입니다. 비교적 낮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한국산 작품들이 방영되고 있었죠.


이건 동시간대 방영되었던 다른 영화 채널들과 비교해보면 아주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실입니다. Série rose나 옥보단같은 고전(?)에 가깝게 위치하여 성의 아름다움을 뽐낸 작품들이나 여러 좀비 호러물 등 낮시간대엔 방영되기 힘든 수위의 작품들, 내지는 다소 마니악한 영역의 작품들이 방영되었던 것과 달리 한 땐 국민만화로까지 칭해지던 작품들이 새벽 시간대에 방영되었던 겁니다.


실제로 방송법상 특정 관람가의 매체는 일정한 시간 이후 방영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심야시간대 성인물에 대한 수요가 있는 영화채널과는 다른 행보였죠. 아, 물론 누들누드 등의 작품을 방영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성인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심야 시간대를 채우고 있는 것은 보통 위와 같은 애니메이션들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대의 투니버스가 엄연히 "만화는 아이들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기치 아래 맹활약하던 때였다는 점입니다. 고르고13, 루팡3세, 공각기동대, 카우보이 비밥, 은장기공 오디안, 시티 헌터 등의 작품이 심야시간대에 방영되며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마니아들도 만족시켰던 투니버스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단순히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그러한 결정의 기저에는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도 인기 애니메이션들은 시청률을 20% 돌파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완전히 고꾸라지더니 2%를 기록하는 참담한 상황이 되어 버렸죠. 실제로 포켓몬스터는 99년 그 압도적인 붐과 달리 2000년대 후반쯤 되어 버리면 도중 방영이 종료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아직 게임이나 여러 매체의 영향력이 유의미하다 평가받고 있었음에도!


스크린 쿼터제와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쿼터제란 통합방송법의 시행과 함께 운영된 정책으로 애니메이션 방영에 있어 특정한 비율로 한국산 애니메이션을 방영토록 만든 제도로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방송사가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의 30~50%를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토록 한 것이었죠.


노렸던 효과는 그걸 겁니다. 그랑죠, 포켓몬스터, 디지몬, 미니카 붐을 통해 정립된 애니메이션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방송사들이 적극적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 투자하길 바라는. 문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것이 만화, 애니메이션 업계에 족쇄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들은 "그 놈의 만화 한 편과 자동차 드립좀 그만 쳐라"며 분개합니다. 만화 및 애니메이션의 산업성과 가능성은 분명히 이미 몇 번이고 입증된 사실이지만, 그만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꾸준한 투자와 기획의 숙달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데, 무슨 자판기마냥 얼마 들이면 바로 뽑아낼 수 있단 접근만 하니 문화적 성숙이 쉽지 않다는 말이었죠. 실제로 이는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바로 입증했는데 방송사는 애니메이션의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선택을 하기보단 전체 애니메이션의 방영 시간을 줄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당연히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도 줄면 줄었지 늘진 않았죠.


펫숍오브호러즈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듯한 흑장미 부인의 문방구. 오후 4시30분에 방영된 이 작품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엄청난 혹평을 받았었습니다. 실제로 그 비판가운데 일부는 팬심을 발휘해도 도저히 커버가 칠 수 없는 수준이었고요. 뱅크씬도 많은데 화면 연출은 너무 단순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성장중인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투자는 분명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본대중문화 개봉 이후 한국산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보단 일본산 애니메이션들을 수입하여 방영한 것도 기본적으로 그것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었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를 비율로 강제하다보니 전체 애니메이션의 방영시간을 감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투자가 아닌, 이미 방영한 작품을 재방영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이건 일반 대중의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저하, 방송사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투자를 막는 일로도 이어졌죠.


당장 위의 투니버스도 그러한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중파 채널은 전체 애니메이션의 방영분을 줄이면 국산 애니메이션의 투자를 아예 안해도 됐는데,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투니버스는 그게 불가능하니 과거 본인들이 투자하거나 한국과 다른 국가가 합작한 애니메이션, 혹은 순수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을 비교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심야시간대에 배치하여 이러한 방송법을 일종의 편법스러운 방식으로 지켰던 겁니다.




 또 다시 악순환


예. 또 다시 악순환입니다.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시행되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방송사는 전체 애니메이션의 방영시간과 함께 기존 작품을 재방영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일요일 12시에서 1시 KBS1TV에서 달려라 하니, 열네살 영심이, 2020원더키디, 날아라 슈퍼보드, 떠돌이 까치 등의 작품을 질리도록 방영했던 것도 이러한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단, 적확히 애니메이션 쿼터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이건 90년대도 그랬었고, 워낙 상징적인 작품들인데다가, 무엇보다 재방영 할 때마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당연히 시청률은 떨어지게 되었고, 방송사는 보다 낮은 단가의 시간대로 프로그램을 편성했습니다. 새로 제작되는 신규 작품은 홍보도 어렵고, 기존에 제작되어 방영비용이 압도적으로 낮은 작품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불안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고, 투자 또한 어려워져 작품의 질-작화든 더빙이든 연출이든-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종국적으로 보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 것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죠.


아기공룡 둘리가 좋은 작품임에 이견은 없지만, 이 작품이 하나의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전 세대가 공유하는 하나의 심볼이 된 데엔 오랜 시간 이어진 반복된 방영의 덕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물론 꾸준히 만들어지는 신작이 거기에 힘을 더해주었고요. 둘리 입장에선 잘 된건데- 신작 둘리가 아직도 80년판 둘리의 이미지에 갇힌 결과를 낳기도 했으니...


애초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면, 많은 이들이 국산 애니메이션을 찾았다면, 혹은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완성도 있는 작품을 보다 싼 값에 들여놓을 수 있고, 굳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도 별개의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있는 데다, 굳이 국산 애니메이션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제시되어 있다면 기업은 당연히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투자 강요가 아닌 다른 수단을 선택하게 되죠.


당장 최근의 투니버스가 애니메이션 투자와 별개로 어린이 드라마 제작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인기 애니메이션을 재방, 삼방을 넘어서도 방영하며 경쟁 채널과 동시간에 같은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모습을 보세요. 기회는 균등하게 부여되지 않고, 작품을 제작하는 건 더 어려워졌고, 홍보하거나 특정한 시간대에 방영되는 건 그 이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만화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은 전체 애니메이션 가운데 일정한 비율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아니라, 전체 방영분에서 일정한 비율로 국산 애니메이션을 방영토록 만드는 애니메이션 총량제와 신규 제작 애니메이션에 일정한 인센티브를 주는 보완책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반영된 건 최초 쿼터제 시행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이며, 케이블까지 확대된 건 2010년대의 일입니다.




 마무리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만화는 어떻게든 우리 주변에서 그만의 영향력과 인기를 발휘했습니다.


 문화충격 그 자체였던 올림포스 가디언.


바로 학습만화라는 형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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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