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열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아,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양권 국가들의 교육열이지만 말이죠. 여하튼 한국의 교육열이 커다란 성장의 동력이 되어 준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커다란 성장의 이면에 그 이상으로 어두운 사회적 병폐가 쌓여왔고요.

삶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맞춰 학군을 옮기려 집을 팔아 전월세로 들어가거나, 사채를 써 아이들의 사교육에 '투자'하거나, 회사에서 퇴근한 가장이 추가수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거나,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과외건물로 과외에서 스터디클럽으로 아이들을 바래다주며 입시설명회까지 돌아다니는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더 이상 새롭지도 못합니다.


그런 아이들의 관심을 공부로 돌리고픈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이들이 공부를 재미있게 했으면 하는 부모님들의 바람이 낳은 문화가 만화와 결합되며 이른 바 학습만화라는 장르가 생겨나게 됩니다.


실제로 그 시기 유년기를 보냈던 이들은 위와 같은 학습만화가 분명히 한 두권은 어딘가에 박혀 있을 겁니다.


사실 거창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학습만화가 새로웠다 말하는 데엔 어느 정도 어폐가 있습니다.


학습만화는 그리 새로운 게 아닙니다. 이미 70년대에서부터 일본의 학습만화를 수정하여 발매한 책들이 즐비했고, 이러한 책들은 학교 도서관에도 심심찮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신동우 화백이나, 고우영 화백들의 작품들이 역사 학습만화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하고,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세계명작극장이나 일불 합작 애니메이션 인체의 신비 등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어 일상화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90년대. 먼 나라 이웃나라를 필두로 한 다양한 소재들을 다룬 다수의 한국산 학습만화가 본격적으로 발매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인기


2000년대에 접어들며 대여점, 스캔본, 기대작들의 부진, 불합리한 규제 등으로 인해 출판만화 시장은 급격히 쇠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기존 출판 만화 작가들의 웹툰 투신입니다. 마이러브와 까꿍으로 100만부 판매고를 기록했던 이충호, 용비불패를 통해 새로이 무협만화의 시대를 열었다고까지 평가받았던 문정후,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던 바이오캅 윙고의 작가 양선모 등의 작가들이 기존 출판만화 시장을 떠나 학습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충호 작가의 학습만화. 한때 백만부 이상 판매했던 까꿍이 소재로 된 학습만화가 등장하는데서, 저는 약간 복잡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나오라는 2부는 안나오고... 그 정도로 어렵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기존 출판만화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던 선배 작가들이 학습만화 시장에 뛰어들어 활동한다는 것은- 기존 출판만화 시장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것과 별개로- 학습만화 시장이 명백히 이전과 달리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과도 같았거든요.


90년대 크게 부흥했던 학습만화 시장은 출판만화계의 쇠퇴기에도 계속해서 몸집을 불려왔습니다. 이전까지 출판만화 그 자체에는 미치지 못하는 오락성과 작화, 학술서에 부족한 전문성과 신뢰 등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던 학습만화는 범대중적인 소재와, 기존 출판 만화 시장의 능력자들을 기용하여 위 평가를 타개해내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만화는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천만부를 돌파하는 작품들이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했고, 이 작품들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까지 큰 인기를 끄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학습만화는 이야기로서 가치가 낮아 시리즈, 장기화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편견조차 부숴버리며 십수년을 장수하는 시리즈로 자리잡은 작품들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21세기 학습만화의 전설인 두 작품. 그리고 학습만화 시장이 양적으로만 성장했지 질적으로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작가에게 인세를 적게 지급하기 위해 판매량을 속이거나, 저작자의 권한을 구두계약을 통해 위임받았다는 식으로 우기는 경우도 있었고, 결국 작가가 갈리며 작품의 정체성이 엷어지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죠.


실제로 학습만화에서 활동한 작가들은 당시의 출판 만화계에 비해 보다 안정된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출판 만화에 비해 학습만화는 학습이라는 목적 아래 부모에게도 어필하여 보다 커다란 파이(많은 만화 잡지들이 고꾸라질 때, 학습만화출판사는 50~60개까지 늘어났습니다 링크)를 구축한 상태였고, 출판만화 작가들은 자신의 이력과 실력을 통해 나쁘지 않은-그러니까 출판만화에 비해-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학습만화는 건 단위로 계약이 되었던데다, 단가도 높았던 만큼(당시 잡지출판만화의 단행본가가 3000원~3500원. 출판만화는 싼 게 5000원 정도였고, 12000원까지 가는 것도 있었습니다) 인세도 더 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화의 높은 접근성과 대중성, 그리고 공부로는 꺼리는 소재들을 흥미롭게 풀어내며 학습만화는 입문서로서의 가치를 높여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를 구축한 학습만화 시장은 2010년대에 이르러 전체 만화 시장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들이 자연스레 작가로서의 활약의 장과 등용문이 되어 준 건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비판. 그리고 한계.


하지만 이러한 학습만화의 성장에는 명백한 몇 가지 한계가 작용했습니다. 학습만화가 만화로서의 존재가치가 과연 기존의 출판만화를 대체하여 대표자가 되었다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의문에 유의미한 답을 남겼다 말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목적과 합치되지 않는 이야기가 첫 번째 이유입니다. 학습만화의 목표는 자명합니다. 바로 학습이죠. 학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식을 쌓게 하고, 교양을 기르게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따지고 봤을 때 기존의 작품들과 크게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존의 작품들도 그만의 주제를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곤 하니까요. 실제로 영화 명량이나 인터스텔라처럼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성공하는 작품들도 나오곤 합니다.


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컨데 드래곤볼은 우정과 경쟁과 화합을, 영화 다크나이트와 아이언맨3는 영웅이 아닌 인간 본연의 책임을, 그리고 열혈강호는 운명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의지와 책임을 가지기를 이야기하죠. 그런데 학습만화는 이들과 전후관계에서 차이를 가집니다.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전통적인 방식의 서사를 채택하고 있는 이들과 달리, 학습만화는 '학습해야 하는 사실을 전달해 놓고, 이야기를 통해 보완하거나 별개의 재미를 더한다'는 목적과 유리된 이야기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제를 위해 때로 소재를 정하기도 하는 이러한 작품들에 비해 학습만화는 독자의 해석이 배제되어 작품의 감상이 획일화되는 경향을 낳게 되어 이야기로서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실제로 서바이벌 시리즈는 창작물 본연의 대리경험적 성향이 강해 학습만화의 정체성을 떠나서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넘쳐나고, 이를 이용한 게임북도 외국에선 많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는 향유하는 연령대의 제한입니다. 사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학습만화는 대개 교양서, 입문서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다루는 내용 역시도 그것을 통해 학습이 필요한 저연령대에 최적화되어 있는 편이고요. 연령대에 따라 주효한 연출이나 소재등이 갈리는 점을 생각해보면, 학습만화는 결국 매체 만화 그 자체라 표현할 수는 없게 됩니다.


세 번째는 전문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학습만화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학술서에 준하는 권위를 얻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대부분의 학습만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인데 이는 많은 수의 작품들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소재들에 대해 전문가의 감수 등을 제대로 받지 않거나, 학습이 목적이면서도 이야기적 전개를 위해 무리한 설정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죠. 최초 목적이 학습에 있는 학습만화에 있어 이것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현직 변호사가 그린 만화도 있었는데, 실제의 사례를 변호사의 입장에서 전달한 것이니만큼 전문성에 있어선 흠잡을 데가 없지만, 정작 만화로서는 재미가 떨어지는- '만화'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은 학습만화의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학습만화의 목표는 어찌되었건 학습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의 향유가 대부분 그러하듯 문화를 즐기는 것 자체에 우리는 거창한 이유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만화를 보는 것에 목적이 필요했죠? 만화를 보는데 이유가 어딨어요, 그냥 재밌으니까 보는 거지. 학습만화는 배워야 하니까, 익혀야 하니까, 길러야 하니까 라는 목적 아래 읽게 됩니다. 그래서 재미를 잡아놓고서도 학습이라는 틀에 갇혀 만화 본연의 가치를 망각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학습만화가 등장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학습만화가 과연 온전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인상을 갖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디스이즈게임에 연재했던 원사운드의 만화 한 장면

http://www.thisisgame.com/webzine/series/nboard/213/?series=42&n=46723


실제로 기존 출판만화에서 학습만화로, 학습만화에서 웹툰으로, 그리고 이후 전문가와 함께 협업하여 삼국지 만화를 그리고 있는 이충호는 학습만화에 대한 한계를 이야기했던 바 있죠. 그 가운데엔 작품 자체로 대우받았던 이전과 달리, 유통과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학습만화 시장에 대한 병폐에 대한 내용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학습만화는 기존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여 몸집을 불릴 수 있을 지는 몰라도, 다른 모든 장르를 제치고 대표성을 얻을 정도의 범대중적 작품이 되기는 아주 어렵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결국은 하나의 장르


학습만화를 증오하시는 이들을 많이 본 기억이 납니다. 만화 본연의 재미는 추구하지 않으면서, 만화쪽 인재들을 빼가고, 이야기는 학습과 합치되지도 않는 주제에 습자지처럼 얇은 전문성의 어중간한 것들만 양산된다고요.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며 만화라는 매체 그 자체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반은 동감합니다만, 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적핑크의 실질객관동화의 한 장면. 어딘가에선 학습만화의 클리셰를 비웃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 에피소드는 학습만화라면 앞뒤 따지지도 않고 비웃고 우습게 보는 이들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기도 합니다. 링크


학습만화는 그만의 존재 의미가 있는 하나의 장르입니다. 부족한 전문성 등은 분명 개선해야 하는 문제지만, 최소한 비교적 친숙하게 다양한 사실을 익히게 하기 위한 시도에는 그만의 의미가 있죠.


또한 애초 전문성의 보충, 이야기와 소재의 합치 등을 위해 노력하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일부 작품의 문제점을 들고 학습만화 전체를 매도하기엔 기존 작품들의 작법, 그리고 학습만화들의 매력적인 부분들 모두가 아쉽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학습과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포지션을 취한 기존 만화들도 얼마든지 있는 상황에서, 학습만화라는 장르 그 자체를 비난하는 건 온당하지 않죠.




이야기와 소재, 그리고 학습이라는 요소들이 훌륭히 결합된 공상과학대전은 포맷만 따지자면 학습만화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적 완성도도 담보하고 있죠.


다양성의 결핍은 지적되어야 하는 문제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잘 나가는 장르에게만 물어야 하는 책임은 아닙니다. 소비자에게 선택의 장이 마련될 수 있게 하는 유통 구조의 개선,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으로의 창작자들이 시대에 도태되지 않는 노력을 한 이후 따라야 하는 지적입니다. 결국 학습 만화와 만화의 하나니까요.


한마디로 정의하기엔 만화는 여전히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학습 만화는 그 가능성 가운데 하나니까요.


특정 위키 등에는 먼나라 이웃나라를 무슨 존재해서도 안되는 금서인양 취급해놨고, 실제로 이 책들에 어느 정도 틀린 내용들이 적힌 것도 사실입니다만, 과합니다. 입문서로서, 또한 대중적인 만화의 인식을 바꾼 작품입니다.


자, 마무리입니다.


언젠가 추천할 만한 학습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한 적이 있었을 겁니다. 벌써 몇년은 된 것 같은데 그 글을 쓴 기억이 없네요.


하나는 바로 망가 사이언스입니다.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흥미로운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화로도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현재 국내 정식 출판본이 판매되지는 않는 듯 합니다만 해적판으로, 정식판으로 판매되어 나름의 마니아를 형성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좌측은 국내 만화 사이언스로 소개되었던 まんがサイエンス. 우측은 인체의 신비 등으로 소개되었던 Il était une fois...


Once upon a time 시리즈는 일본과 프랑스가 합작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전세계에 판매되어 큰 인기를 끌며 다양한 시리즈로 제작되었고, 한국에서도 EBS에서 방영되었던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은 특정 캐릭터가 특정한 성향의 캐릭터로 활용되어 일종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갖춘다는 사실인데,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미래라는 보편적인 흐름을 쓸쓸하게 잘 전달하여 이야기적으로도 매력을 갖춘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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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