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언급하였던 사례들이 문제된 건, 독재시절의 표현의 자유의 침해를 떠올리게 하는 정도의 어처구니 없는 사유로 제한이 가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여타의 영역에선 이미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던 요소들을 들먹이며 제한을 가하거나, 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피상적인 특정 분야의 문화들만 압박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찍이 영화가, 그리고 만화가, 이후로 게임이 뒤집어 쓰게 되는 부당한 책임이란 굴레를 또 다시 묵과하기엔, 대중들의 성숙도는 상당히 달라진 상태였습니다.


실제로 교육계에서 불거진 비리들에 대한 해결책은 잡지 못한 채 '결석하겠다'라는 가사를 문제 삼는 경우라던가, 영화나 드라마에선 전혀 거부감없이 사용되는 연출이 뮤비에선 제한당하거나, 도덕적으로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살인 등의 요소를 12세 드라마에서 활용함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콘텐츠에선 일괄적으로 15세 이상으로 높여버리거나 하는 등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바가 바로 술과 담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술과 담배가 묘사되는 콘텐츠는 일괄적으로 청소년이용불가로 날려버리는 조치에 대해 "길거리만 나가도, 버스만 타도, 심지어 학교의 선생님들도 학교내에서 담배를 피는 판국에 일상을 연출해야 하는 TV에서 담배만 잘라내는 게 합리적인가?"라는 물음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었죠. 실제로 이러한 논의는 담배를 공공장소에서 필 수 없도록 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규제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수그러든 상황입니다. 술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이건 사탕이다. 연기가 나는 건 맹렬하게 말고 있어서지.


당연하지만 이미 문화를 선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들에게 있어 위 규제들은 말도 되지 않은 옛 시대의 억지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당대 현직 만화가들조차 후배들의 만화를 보면서 "와, 이렇게 그려도 되나?"할 정도로 표현의 수위는 자유로워져 있었고(거짓말 등이 히트치고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영화곈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등지에서 소년지, 청년지는 물론 성인지까지도 정식으로 수입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거기다 인터넷을 통해 해외의 여러 작품들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되면서, 일부 한 장면만 가지고 "음행이 방종하여..." 라는 식의 주장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힘이 떨어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국내에 '문화충격'에 가까운 방식의 표현의 폭을 높인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결국 제가 당시 접한 작품들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들이 전해주었던 충격의 크기는 그만큼이나 컸습니다.


 다음 단행본은 언제 살 수 있을지.


가장 먼저 언급할 작품은 바로 베르세르크입니다. 미우라 켄타로의 이 작품은 일본의 판타지 계열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꼽아도 될 정도이며, 현재까지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90년대 중반 해적판으로 먼저 독자를 찾아왔던 이 작품은 이미 당대에도 살벌한 수정과 먹칠이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위의 폭력성과 선정성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소재만 해도 전쟁, 암투, 근친, 신체절단, 강간, 동성애 등이었기에 이 작품이 국내에 정발된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로 여겨졌죠. 하지만 대원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여 발매할 것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뒤집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해적판이 정발판보다 더 심한 수정을 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어째서 불법으로 발매되는 해적판이 정발판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따르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식 루트로 작품을 들여놓는 작품들은 자연스레 심의를 거치며 정해진 규제의 한계선을 따라 책임과 규제가 일체가 됩니다. 하지만 해적판은 불법적인 루트로 발매되기에 이후 문제가 불거질 경우 책임과 규제가 별개여서 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이후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기 위해 작품의 질을 해치는 한이 있더라도 살벌한 수정을 가하곤 했던 거죠. 아직까지 일본 출판사가 한국에 저작권주장을 하지 않던 때였기에 불법간행물 발행에 비해 음화 발행등으로 더 큰 처벌을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베르세르크 역시 이러한 경우 였습니다. 정식 발매판으로 발매되면서 어느 정도의 수정이 가해지긴 했지만, 이전의 해적판에 비해선 보다 원본에 가까운 형식으로 발매가 되었던 겁니다.


(다만, 베르세르크의 해적판 판본은 제가 기억하는 것만도 셋이 넘었습니다. 그 가운데 전혀 수정하지 않고 번역만하여 발매한 해적출판사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작품성, 거대한 규모, 무거운 주제의식, 점점 활기를 띄어가던 판타지 장르가 맞물리며 베르세르크는 한국에서도 주목해야하는 작품으로 자리잡았고, 여러 매체에 이런 저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자연스레 그 표현의 수위 역시 어느 정도 올려놓는데 일조하였고요.


 파격을 넘은 충격. 불편함을 넘은 역겨움.


취향의 차이는 존중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정말 용납하기 어려운 취향이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장기자랑과 케쳡범벅을 자랑하는 고어 장르에서부터, 인간 본연의 혐오감과 공포를 자극하는 슬래셔 장르는 물론 도덕적으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극단적인 피가학성애나 시체성애, 아동성애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소재들이 단순히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일부 연출에 활용되는 경우는 점차 넓어졌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전개되는 콘텐츠들은 지금도 논란의 대상(그리고 범죄)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 개봉한 '도쿄아포칼립스: 최후의 결전'을 통해 뜨거운 논의를 몰고온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고로시야 이치는 국내에선 원작인 만화보다 영화가 먼저 유명했던 작품입니다. 국내엔 개봉도 하지 못했고, 실제로 여러 국가에서 개봉금지 조치를 받은 영화기도 하고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작품이며, 동시에 2010년대 한 영화 관련 사이트에서의 투표로 가장 불편한 영화 순위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구체적인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이 곤란할 정도의 수위였던 이 작품의 장르 한 귀퉁이엔 당당히 코미디가 위치해 있고 실제로 경악스러운 묘사에 비해 그러한 인상을 주는 묘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고어 장르 등은 실제보다도 과장된 표현을 통한 영화적 연출을 활용하는 장르인데, 이전까지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의 이러한 장르의 작품들의 일부 연출이 다양한 연출에 활용되면서 대중화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일본과 엽기가 일종의 등치관계가 형성되었던 것도 70, 80년대부터 꾸준히 누적되어온 일본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과 자극적이고 높은 수위의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두 작품은 끊임없는 2차창작의 소재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배틀로얄과 간츠 역시 그리 설명이 필요한 작품은 아닐 겁니다. 일단 간츠는 완결된 지 얼마되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고, 배틀로얄은 기본적으로 워낙 강한 족적을 남기기도 했거니와 비슷한 소재의 헝거게임의 개봉과 함께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 두 작품의 높은 수위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고로시야 이치가 세배쯤 세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 두 작품은 소재의 자유로운 선정, 그리고 자유로운 차용의 힘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에 똑똑히 알려준 작품이었습니다.


국가라는 이름의 조직이 학생들을 서로 죽이게 하는 '이벤트'를 시행한다는 소재의 파격성도 파격이었지만, 무엇보다 경쟁사회에서의 이면과 소비품이 되어 버리는 인간의 비극을 오락물로 버무려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과연 창작에 있어 성역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란 의문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죠.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채 게임, 영화, 소설 등을 광범위하게 차용하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독립된 세계관에 녹여낸 간츠 역시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장르에 국한되어 정형화되어 함몰되는 작품들을 보아오던 저에게 있어 이것은 '과연 그래도 되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우물안 개구리'의 심정을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간츠의 이야기에 감탄한 것도 아니고, 수위에 놀라지도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자유분방함에서 압도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인식의 폭을 넓히는 작품들이 정식으로 발매 혹은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지는 판국에, 저러한 규제를 취했다고 하니 황당하게만 여겨졌던 겁니다. 그렇다고 연령대별 합리적인 제한이 가해진 것도 아니었고요. 실제로 이전까지 규제는 통제와 등치의 의미였습니다. 변화를 억제하였고, 관리의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사회상 앞에서 규제는 적절히 변화하지 않으면 사문화되는 상황이 되었고, 인터넷 등이 널리 보급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게 되면서 그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골기질은 전혀 의외의 방향에서 뿜어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인지, 팬팩 문화가 자리잡는데 일조한 것이죠.


(사족입니다만, 마무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보니 분명 이후에 다뤄야할 소재들이 이렇게 저렇게 섞이고 있네요. 반대로 이전에 다룬 듯 한데 묘하게 다시 다루고 있는 영역도 있고. 생각보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진 않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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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