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만화가


만화의 이미지를 "도움이 되는 만화도 있다" 내지 "아이들이 봐도 괜찮은 만화" 정도로 바꾸었다면, 오늘 소개할 2000년대 초반 널리 교양서로 알려진 만화들은 "그래도 이 정도 책은 봐 줘야지" 라는 수준의, 더 이상 만화에 국한되지 않는 정도로 개선을 이뤄낸 작품들이었습니다.


식객, 미스터 초밥왕, 신의 물방울 등의 전문직 만화들이 그 대상이었죠. 시기상으로 신의 물방울은 조금 이후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교양서로 자리잡은 만화'를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니, 이 기회에 당겨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이 만화들이 교양서에 자리잡게 된 데엔 몇 가지 요소들이 결부되었었습니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역시 재미죠. 단순히 전문 정보만을 늘어놓는 수준이었다면 이 작품들이 그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겁니다. 만화 자체의 재미나 실질적인 정보를 떠나, 극적인 경쟁과 승부를 통해 그만의 드라마를 형성해냈습니다. 일찍이 90년대 서극의 금옥만당이나 요리왕 비룡 류의 승부만화를 보다 담백한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보다 넓은 연령층에 인기를 끌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특유의 진심은 이 만화들이 교양서로 자리잡기 이전부터 90년대, 2000년대 초반부터 만화 마니아들 사이에선 그만의 인기를 끌게 만든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역시 쉽게 전달되는 정보였습니다. 경제위기를 넘어서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가 교류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많이' 이상으로 '질 좋은'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의 웰빙 열풍이나 먹거리 탐방도 이나 2000년대를 넘어가면서 촉발된 움직임이었지요. 자연스레 일본의 장인문화와 건강식으로 유명했던 초밥,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한국의 음식들을 조명하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위 작품들은 그러한 갈증을 입문서의 역할을 하며 해소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은 취재의 힘이겠죠. 이것이 널리 알려지는 데엔 만화 작가 허영만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80년대까지 이현세에 비해 대중적인 파워가 약한 작가로 꼽히긴 했지만, 허영만은 비교적 어린 연령인 80, 90년대생까지 이르는 저명성을 가진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소년만화에서 실패를 거듭한 허영만의 침체기는 발로 직접 뛰어 모은 정보를 통해 만든 여러 작품을 통해 벗어나던 상황이었고, 어느 새 '화백'이라 불러도 거부감이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업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고, 그가 만든 작품들 속 녹아 있는 생생함은 '만화가 만화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허영만 그 자신도 만화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역사만화, 사전조사, 현장에서의 취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좌) 학습서적으로 분류되는 좋은 만화들을 제하고, 교양서적 이상의 입지를 쌓은 만화를 꼽으라면 단연 식객이 꼽힐 겁니다.

(중) 비슷한 시기 성공시대의 한 호텔 조리장이 미스터 초밥왕을 애독하며 이에 나온 요리를 만들어보기도 했다는 내용이 방영된 바 있었습니다.

(우) 시기는 좀 차이가 있지만, 신의 물방울은 교양서적을 넘어 대중적으로도 큰 반향을 이끌어 냈습니다. 출간 중 와이드 판형이 발매되어 병존 판매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죠.


실제로 동네 서점의 베스트 셀러란에 만화가 걸리는 광경은, 그리고 서점 입구에 여타의 베스트 셀러와 함께 해리 포터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과 함께 포스터가 걸린 광경은 쉽게 잊지 못할 겁니다. (참고로 해리 포터야 매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리던 인기작인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베르나르베르베르는 지금과 그 때의 위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제 인생, 그렇게 길진 않았지만 학습 만화 외에 그런 식으로 크게 걸린 것은 처음 봤습니다. 한 구석 작게 열혈강호 등이 걸린 걸 보긴 했었지만 말이죠.


여하튼 만화 자체의 입지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물론 한계는 있었습니다. 저 만화들은 '교양서'로서의 입지를 어필했지, '만화'로서의 입지를 어필한 건 아니었거든요. 일부 만화는 여전히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었고, 여전히 어린 아이들 위주로 굴러가는 매체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모든 만화가 아이들에게 악영향만 끼치는 매체다' 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이어져온 만화가들의 투쟁, 그리고 만화 자체의 사회적인 입지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죠.


물론 이 시기, 출판 만화계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전날의 고급화 과정, 이번의 탈만화화 이미지 구축도 결국 출판만화 시장의 생존을 위한 방책을 마련한 결과였거든요. 실제로 2000년대 초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대여점 책임론 등이 강하게 힘을 얻고 있던 때였고, 이 때를 기점으로 출판 만화 잡지들이 하나 둘 고꾸라지는 현상이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의외의 매체에서 만화의 활로가 보이게 됩니다. 의외일 수밖에 없는 게, 당대 만화가들이나 만화 구매자들도 성공보단 실패 가능성이 높다 점쳤던 매체였거든요.

 

예. 바로 웹툰말입니다.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