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미디어 믹스는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80년대 외인구단이나, 90년대 미스터큐나 아스팔트 사나이 등의 영화와 드라마가 거두었던 성공을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이 시기 만화의 영상화가 거둔 성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상화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사실이 바로 각색이나 연출이, 현재의 그것들보단 무게의 추가 원작의 팬들보단 일반 대중에 훨씬 쏠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아니 당연한 일입니다. 만화와 영상은 기반으로 하는 매체에 차이가 있고, 상대해야 하는 대상도 차이가 있다보니 각색은 필연이죠. 실제로 만화의 팬층은 상대적으로 가벼울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였고요.


하지만 팀 버튼의 배트맨이 국내에서 흥행실패를 하여 영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그 사유를 분석하던 때와 달리, 이 시기부터는 '원작의 팬'이 중요한 흥행의 열쇠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영미권의 만화를 접하는 게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고, 관련한 애니메이션을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겠죠. 이 시기가 되면서 원작이 아직 연재중인 경우, 혹은 완결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개봉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이 바로 일드, 즉 일본 드라마였습니다.


 고쿠센은 최소한 한국내에선 드라마가 만화보다 훨씬 인기를 끌었던 케이스입니다. 만화 팬을 자청하는 사람도 드라마를 봐야한다 이야기했고, 드라마팬은 굳이 만화를 볼 필요없다고 이야기했던 게 아직까지 기억나네요.


일본이 콘텐츠들은 2000년대 초 오로지 엽기로만 유명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80년대 대중적인 황금기를 보낸 일본산 콘텐츠들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다양한 장르를 구축하였고, 자연스레 만화를 기초로 한 여러 영상물을 제작하기에 이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엽기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일본의 여러 콘텐츠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애니메이션이었음을 부정할 순 없지만, 만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엔 물론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도 적지 않았죠.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일본의 영상매체의 화법은 기존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영상물에 비해, 특유의 과장되어 보이는 연기와 연출 등의 화법이 훨씬 만화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설정도 이전의 것들에 비하면 허무맹랑하다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요.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젠 이러한 차이점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배포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작지만 큰 변화였죠. '유치해서', '허무맹랑'해서, '난해해서', '왜색이 짙어서' 검열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작품들이 폭넓게 사랑받게 되면서, 만화의 영상화와 그에 대한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들이었거든요.


 마츠모토 준은 이후 만화 원작 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눈도장을 찍기도 했죠. 빼놓을 수 없는 건 단연 꽃보다 남자일 겁니다.


이 시기 흥미로운 사실은, 일드의 관심이 원작인 만화로 옮겨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겁니다. 사실 이것은 순서가 뒤집힌 상황이었죠.


원작인 만화가 유명세를 얻고, 그 유명세를 기반으로 관련 콘텐츠가 제작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입니다. 원작인 콘텐츠가 발매되기도 전에 파생작이 태어나는 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 해당되는 일이죠. 그럼에도 한국에서 일드가 원작보다 먼저 유명해지는 일이 생긴 것은 결국 인터넷의 발달 덕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의 불법 스캔본 문제는 국내에 정발한 만화를 위주로 불거져 있었고, 영상물에 대한 단속은 시행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자연스레 관심은 방영 다음날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신작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당시의 일드 열풍은 이 작품을 정식으로 수입하는 선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미 볼 사람 다 봤는데 성공할 수 있나?"라는 의문을 시원하게 물리치며, 인터넷 생태계와 케이블TV의 생태계는 또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만의 생태계를 보다 확장하여 구축하였습니다.


출판사들 역시 이것을 홍보요소로 활용하였습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제작 확정 소식도 무게있게 다뤘습니다. '국내 정식 방영', '제작 확정' 등의 문구가 띠지에 새겨져 홍보되었고, 비교적 관심이 식은 구작들이 다시 한 번 조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원작 만화의 연계가 제한되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젠 최소한 드라마 방영중 "원작은 어떨까?" 하고 살펴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당시를 거창하게 이야기하고픈 생각은 없지만. 한류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라는 말은 빼놓을 수가 없네요.문화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발언이 성립할 수 있는지, 그리고 라디오에서 계속 일본어로 된 노래를 금지해야 하나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되던 때였습니다. 참고로 사진은 2003년 후카다 쿄코와 원빈이 주연을 맡았던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


이러한 움직임을 보다 활발하게 한 것은 헐리우드발 히어로 무비였습니다.





사족. 고쿠센은 국내 방영시 허무맹랑한 설정과 조직폭력배(그러니까 야쿠자)의 자식이 주인공이라는데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당대는 한국식 조폭무비의 전성기였죠.


너는 펫은 사람을 애완동물에 비유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 너무 자극적이다라는 식으로 논란이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동명의 개그 코너가 생겨나고, '나는펫'이라는 소재를 차용한 별개의 프로그램이 5년이 넘게 방영될 정도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작품은 보지도 않고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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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