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본격적으로 촉발되어 가능성을 확인하고, 90년대 의욕적인 시도들이 펼쳐진 극장판 한국 애니메이션. 하지만 90년대 시도들 태반은 그리 긍정적인 결과들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 초를 넘어서게 되면서, 최소한 의의를 남긴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 작품들 또한 대중적인 성과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죠.


하지만 비교적 기획과 제작, 방영 기간이 짧은 TV애니메이션은 달랐습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빠른 시간 내에 잡아낼 수 있었고, 시청자층을 보다 분명하게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정적인 송출 수단 역시 갖추고 있었죠.


오늘 언급할 세 편의 2000년대 초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목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듯 하네요. 탑블레이드. 큐빅스. 그리고 올림포스 가디언말입니다. 이 작품들의 상업적인 성과와 가능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더군요. 아직도 제겐 이 작품들이 남긴 성과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말이죠.




 탑블레이드


탑블레이드는 원작이 일본작품이고 작중 일부 왜색이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작품으로만 기억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작의 첫 과정에서부터 한국의 매드하우스 등이 깊게 개입하였었던 '진짜 합작'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제작에 중심이 되는 영역은 몽땅 일본에 맡기고 하청업무만 담당하였던 이전의 작품과 달랐습니다. 스토리, 설정, 연출, 동화 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당대 한국 애니메이션 특유의 색체를 공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광고 효과를 '다시 한 번' 입증한 작품.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주)손오공의 공격적인 마케팅이었을 겁니다. 이미 대세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이 아닌 PC방으로 넘어갔다 이야기되던 그 때, 손오공측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팽이놀이'를 차용한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관련된 상품의 국내 제작 및 배급에 대한 권리를 따냅니다.


이전에도 미니카나, 로봇 등의 판매 상품을 통해 수익을 거두기도 했었습니다만, 이것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전히 쾌속 스피너나 스피드왕 번개 등 미니카에서 벗어난 요요나 롤러블레이드 등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기를 끌기도 했었습니다만, 이것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가 명백했습니다. 한일양국 모두 로봇 애니메이션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졌고, 반복해서 돌아왔던 미니카 붐의 간극은 점점 멀어졌거든요. (한국의 경우) 가장 큰 이유가 PC게임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실제로 손오공은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PC게임 시장에도 진출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신통치는 못했었죠. 블리자드가 발매되지도 않은, 아니 개발도 시작되지 않은 게임(스타2)으로 네고를 쳤고, 손오공은 거기에 낚였다라는 내용이 이후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 위기 상황을, 팽이놀이를 기반한 콘텐츠와 관련 상품의 판매를 통해 타개해낸 것입니다. 물론 탑블레이드의 경우 PC게임으로 제작되어 발매되기도 했었습니다.


어찌보자면 시대에 역행한다고까지 여겨졌던 탑블레이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둡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더 중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더해, 콜렉션 욕구, 오프라인 대회 개최 및 유지 등이 어우러진 결과였죠.




 큐빅스


많은 이들이 고민했습니다. 왜 한국 애니메이션은 외국에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만큼 재미있지 못한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소재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인가, 그조차 아니라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뭘 내놓아도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서 발전을 위해선 하나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애초에 외국에서 방영할 것을 상정한 작품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이후 국내에 방영된 특이한 케이스의 작품이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큐빅스죠. 씨네픽스가 제작한 이 작품은 미국의 워너브라더스의 키즈채널에서 방영하며 당시 전성기이던 포켓몬스터를 시청률에서 앞지르기도 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1기는 SBS에서, 2기는 KBS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는 둥글둥글한 로봇에서 기인합니다. 2000년대초는 이미 고전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다각도적 분석이 이뤄진 시점이었습니다. 건담이나 에반게리온 등의 고전 로봇에 대한 재해석 애니메이션의 붐도 이미 끝난 시점이었고요. 출발은 어린이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로봇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이 시점에 이르러선 소재건 디자인이건 '아이들'을 위한다라고 말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진 시점이었습니다. 당장 트랜스포머나, 용자물을 떠올려 보세요. 소재도, 연출도, 디자인도 소년이 아닌 비교적 어린 아이들에겐 적합치 않은 면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큐빅스는 파고든 겁니다. 선하며, 사람을 도우면서, 귀엽지만, 로봇이 가진 근본적인 매력- 창의적으로 조립하고 합체하며 변신하는 등의 것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다치지 않게 둥글둥글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 차원에서 총놀이나 칼싸움을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창작물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던 때였는데(기가 막힌 우연인지, 당시 MBC의 해외 드라마 아이들이 줄었어요에서 햄버거의 부록으로 온 장난감총을 아이에게서 뺏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큐빅스는 기존의 작품과는 그러한 폭력성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동시에 과거의 볼트론을 떠올릴 정도의 거대한 크기면서도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적합한 튼튼함과 조작성까지 갖고 있었으니.


로봇 특유의 강건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이 어우러 서로 돕고사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야기했던 스토리 역시 좋은 평을 받았었죠.


단순히 자극성을 통해 아이들을 열광케 하는 것을 넘어, 부모세대에게도 교육적으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작품과 캐릭터였던 겁니다. 실제로 큐빅스 역시 게임으로도 제작된 바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벤트 차원에서 뮤지컬로도 제작되기도 했었습니다.




 올림포스 가디언


한국, 정확하게 아시안의 교육열은 서양에서 참으로 유명한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잡았을 정도로요.


그러한 측면에서 따져보면, 만화의 불황기에서도 꾸준히 사랑받았던 학습만화가 애니메이션화되지 않은 것은 생각보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초롱이의 옛날 여행,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류의 작품들이 절대로 잃지 않는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주 시청자층인 아이들에게 일종의 지루함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순 없겠죠. 아무리 재밌어도 한 두 번이지, 책으로 본 내용을 재방에 삼방까지 반복하니.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일종의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어린 연령층에겐 상대적으로 생소한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소재는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세대에겐 학습만화가 가진 '교육적 성향'이 담보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점점 널리 활용되는 신화의 교양적 성향까지 어우러지니까요. 거기다 아이들을 위한 순화에, 책을 읽기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한 직관적인 연출까지 어우러졌으니.


이렇게 올림포스 가디언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god가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신화, 그리고 매력적인 신들은 이 작품이 일정한 완성도 이상을 담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거기다 작품 특유의 위트까지 녹아든 덕에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들도 재미있게 보았었죠.


그리고 화려한 작화와 색감, 안정감있는 성우들의 연기는 아이들을 매혹시키는 것을 넘어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간과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실패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이 시점이


되면, "한국 만화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몇 년 사이에 좋은 작품 한 두개가, 이젠 1년에 좋은 작품 몇 개로 바뀌어 버린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위 작품들이 가진 공통점 '비교적 어린 연령대의 아이들이 즐기고 부모들이 지지하는 상황'을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과연 이것을 온전한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동 애니메이션만 성공했다, 결국 이것은 일부의 성공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실제로 위 작품들의 흥행성공은 보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 제작자들이 집중하는 경향을 낳게 되었거든요. (실제로는 큐빅스를 제한 다른 두 작품은 초등학교 고학년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긴 했었습니다.)


아동연령대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쁘냐, 나쁘지 않느냐에 대해선 쉽게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일정한 연령대만 대상으로 작품이 제작되는 상황이 건강한 현상이라곤 말할 수 없습니다만, 90년대 청소년층을 넘어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하나를 빼곤 모조리 흥행참패한 현상을 생각해보면 무작정 주장하기도 꺼려집니다. 실제로 다소 애매하긴 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준 작품들조차 모조리 흥행에 실패한 건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TV애니메이션 쪽은 방영시간과 연령대가 시청률과 직결하는 요소잖아요.


무엇보다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나쁘냐, 그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이러한 현상에 국한되는 현실에 만족해선 안된다는 주장 자체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이후로도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은 상황을 만들려 하였죠. 아동 애니메이션 집중 현상은 비록 이전과 같이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보기 힘들어짐을 의미했지만, 최소한의 화제성과 시청률 측면에선 일정 수준 이상을 담보해주었습니다.


 사실상 뽀로로가 가진 저력이 드러났던 건 해외에 얼마에 수출되었다더라 하는 것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뽀로로를 보며 자라온 아이들이 가진 공감이 더 어린 친구들과 이어졌기 때문이었죠.


바로 그 뽀로로가 2003년 등장하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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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