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를


30개 정도 키우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30개쯤 키운 사람이기에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단언컨데 지금 던파 스토리는 추후 재전이, 역전이, 상전이가 일어나는 상황을 가정해도 엉망진창인 상황입니다.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의 고유적인 속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고, 던파 스토리 고유의 매력을 어설픈 양산형 설정들로 마모시켜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연출은 또 어떤가요. 솔직하게 말해 80, 90년대 중반의 게임들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고작 텍스트 몇 줄 수정하거나 하는 최소한의 정성도 기울이지 않은 행태를 보노라면 대체 왜 이 게임의 스토리와 설정을 파고드는지 회의가 일 정도입니다.


일단 던파는 메인스토리와 서브스토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스토리 북이나 아이템에 삽입된 일부 문구를 통해 대략적인 배경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지요.


'대전이' 이전 스토리에서는 과거의 전이에 이어 또 다른 전이의 전조로 인해 발생하는 위기와, 이에 따른 '사도의 습래'라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얽히면서 '마계와 아라드', '4인의 웨펀마스터', '시로코와 그림시커' 등등등이 자연스럽게 플레이어에게 전달되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스토리상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가 실제 플레이로는 너무 어려워 필요 이상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하여 실제 스토리와는 완전히 따로 노는 레벨 디자인으로 이야기의 순서가 꼬이기 시작했고, 너무 긴 거리를 자주 오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적당한 난이도의 던전은 한 군데로 뭉쳐버리며, 결과적으로 설정을 무시한 게임 디자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대전이와 시나리오 개편이 있었지만, 단순한 미봉책에 불과했습니다. 문제가 더욱 심화되어버린 것이죠. 기존 스토리에서 언급되었던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일부는 소실되었고, 또 다른 일부는 공중에 뜬 상태에서 부산물이 되어 이야기를 난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애초에 통일된 디자인따윈 생각지도 않은 듯 일부 던전은 전체와 따로 놀았고, 이야기에 새로운 중심이 되어야 할 메인 캐릭터들은 기존 설정과 상충하는 요소들로 이질감만을 낳았습니다. 다양한 패치는 이야기의 통일성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산산조각내었고, 결과적으로 '대전이'는 실패한 리부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파가 '스토리에 있어서' 최소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개편되지 않고 끈질기게 남은 일부 설정들이, 추가된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던파는 스스로 스토리가 자신들의 강점이자 장점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게 어쩌다가...


어린 시절 카잔 증후군으로 인해 부모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던 남귀검사, 천계에서 범죄조직의 요인을 암살한 이후 도주 과정에서 아라드로 떨어지게 된 남거너는 서로 상이한 배경과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통일된 이야기 진행과정에서도 별다른 이질감을 발생시키지 않았습니다. '전이의 전조'는 현실적인 문제였고, 카잔 증후군과 천계로 돌아가기 위한 바칼의 행적 쫓기는 일정 부분 맞닿는 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캐릭터들이 추가된 점을 감안해도 '검은 악몽'만으로 모든 걸 퉁치는 억지의 상황이 되어 버렸고, 캐릭터들은 제 개성을 소실하고 엉뚱한 상황에서 엉뚱한 반응만 내보이게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상 RPG로서는 실격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각 캐릭터에 맞는 방식으로 대사나 동선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녹스처럼 직업군에 따라 시작하는 지역이 다르고, 디아블로처럼 직업군에 따라 NPC들의 반응이 다른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애초 하츠와 관련한 문제가 터져나왔던 것도 편의주의에 함몰된 캐릭터의 개성과 당위성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정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대사창의 화자는 통일합시다. 대화 실컷하다 괄호 치고 누구가 뭐뭐를 했다라고 전달하는 거, 솔직히 말해 80년대 JRPG도 안하던 짓입니다. 애초에 플레이어가 몰입하는 대상과 괴리시키는 현상인 이것 자체를 지양하는 게 백 번 옳습니다만, 꼭 이렇게 하고 싶다면 최초의 스크립트부터 그렇게 구성하던지요.


그리고 허세 등으로 점철된 하츠 등의 캐릭터를 위한 당위성을 구축하십시오. 지금 스토리북의 교환일지, 아니 교육일기는 당위성을 위한 설정이 아닙니다. 억지설정이고 핑계죠. 아니 기사가 왜 교환일기를 씁니까. 기사가 왜 하나하나 검사하고 코멘트까지 남겨 줍니까. 학교입니까? 그에게 모험가의 조언자라는 스토리적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다면, 기존 던파의 방대한 스토리 속에 그의 역할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위치를 구축해 주십시오. 애초 제국이란 설정이 '악의 제국'의 스테레오 타입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묘사되는 주제에(이해가 안될 정도로 납득이 안가는 악당, 혹은 있어보는 캐릭터만 있지만 정작 주변에 해악을 끼치는 납득할 이유는 찾을 수가 없는) 지금 그가 이야기적 윤활유를 담당하고 있으니 문제는 더욱 심화되는 겁니다.


더 나아가 2차각성 등에서 배경상으로 언급되는 일부 소재들도 인게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다양화하십시오. 콘텐츠의 부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 70레벨 만렙 시절엔 다양한 아이템과 다양한 이야기가 최소한의 가닥을 잡을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젠 그조차도 없으니 별도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온라인 게임 특성상 스토리 진행이 어렵다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흠결 방치에 대해선 면책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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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