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JYJ와 동방신기로 흩어진 (구)동방신기지만, 2000년대 초중반의 인기는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발표 직후 실력파 아이돌로서 한국 내에서 손꼽히는 판매량을 자랑하는 아이돌 그룹이 되었고, 탄탄한 팬덤을 바탕으로 정상권 아이돌로 등극하며 이전 세대의 아이돌과는 다른 영역을 구축해 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SM은 이미 일본에서 보아를 히트시켰던 경험이 있었고, 동방신기에 대해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으니까요.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크고 작은 논란이 일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방신기의 전략은 해외 아티스트로서 일본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한류'라는 표현이 드라마라는 한정된 장르에서 통용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동방신기는 이전의 보아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부딪히는 입장이었고, 그들은 이른 바 '현지화' 전략을 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동방신기(東方神起)라는 고유명사의 음을 한국식으로 차용한 동방신기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토호신키라는 とうほうしんき/TOHOSHINKI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그룹명은 고유명사다. 일본에서 활동할 것이라는 이유로 한국 내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는 그룹이 일본식 음차로 활동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문화를 판매하기 위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창씨개명과도 같은 일이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방신기는 한국에선 초절정 인기였는데, 일본에선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동방신기의 일본 진출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도 많았죠. 굳이 일본에 진출하지 않아도 돈도, 인기도 많은데 일본의 인정을 받아야 하나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미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절정의 인기를 얻고, 한류가 크게 확장되었다 어느 정도 정체기를 맞이한 지금 기준에서 보자면 "일본식 음차랑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이랑 뭔 상관?"이라는 반응으로 대충 퉁쳐지는 분위기지만, 당시엔 이 논란이 꽤나 무게감 있게 논해 졌었습니다.


일본의 역사 분쟁, 교과서 왜곡이 심화되던 때였고, 무엇보다 독도와 관련된 영유권 분쟁에 의해 반일감정도 높아졌던 때였거든요. 당시 동방신기의 저러한 행보를 마치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인이 아닌 척 군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두 국가간에 복잡한 과거사와, 그로 인한 현대사, 양 정부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리면서 문제는 점점 심화되고 있었고, 그 여파가 문화에도 미쳤던 겁니다.




 피해의식과 낙인찍기 사이에


하지만 위 논란은 의외로 싱겁게 막을 내렸습니다.


"기껏해야 음차가 정체성을 팔아먹는 행위라면, 몇 년 전에 한국에 데뷔했던 초난강은 일본인 입장에선 매국노냐"는 반론이 나오면서 그 주장에 힘을 잃게 된 것이죠. 어쨌든 경제적인 규모에서는 한국을 압도하는 일본에서, 정상권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 한국에서 연예계에서 코믹한 콘셉트로 활동하며 수시로 무시당하는 형국이 벌어졌었는데, 그는 한국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며 몇 번이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 초난강에겐 별 다른 반응-거부감이나 호감조차 일으키지 않았던 한국의 대중들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하는 한국인에겐 엄격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죠. 똑같은 행위를 해도 일본인은 별다르지 않게 생각하는데, 한국인은 활동 자체에 클레임을 거는 것이 피해의식의 발로는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죠. 실제로 같은 한자권 문화인 중국에서는 외래어는 아예 중국식 한자로 뜯어고쳐도 별다른 문제로 삼지 않고, 미국 등에서도 발음이나 억양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고 개인의 의사가 우선한다는 사실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논란은 급격하게 사그라 들게 된 겁니다. ...사실 동방신기가 일본 데뷔 초창기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해 유의미한 논란으로 확장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말이죠.


여하튼 이와 함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대중들이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인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한 용례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개인이 대표할 자격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는데,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에까지 국위선양 혹은 국가망신이라는 틀을 뒤집어 씌우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담론까지 이뤄졌죠.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을 국가적인 성과로 간주한지, 국가에 닥친 경제적 위기를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박찬호에게서 달랬던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생겼던 흐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대엔 실패처럼 여겨졌던 쿠사나기 츠요시의 한국 진출. 하지만 일본 문화엔 관심도 없는 사람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까지도 그를 알고 있을 정도의 반향은 남겼습니다. 실패지만 사실은 성공이었다 이야기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하지만 문화 전반에 걸친, 특히 일본의 영향력이 강한 서브컬쳐에서는 이와 비슷한 논란을 계속해서 앓았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죠. '창씨개명'에 대해 안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생존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납득할 만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영향력은 지대하지만 그를 인정할 수는 없고, 그들과 앞으로 엮일 것은 뻔했습니다.


자연스레 우익사관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작품, 작가들도 이와 관련한 논란을 앓았습니다. 사실이 확인되었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석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인은 그럴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용납되었습니다. PC통신과 인터넷은 여기에 물과 기름을 번갈아가며 끼얹었습니다. 이전엔 '카더라'에 불과하던 소문이 반증되는 경우도 있었고, 말도 안되는 소문이 밑도 끝도 없이 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엔


우익 작가로, 우익 작품으로 찍힌 것들에 대해 다뤄볼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다뤄야 할 작품이 있습니다.


우주전함 야마토말입니다.


 당대도, 현대에도 이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밝힌 이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거 모두 우익! 배제!"라고 말하기엔 이미 문제없이 즐긴 작품도 많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에서 느낀 즐거움, 그에서 느낀 감동도 모조리 부인해야 하는데, 이건 자기 정체성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게 불가능하니, 아예 이 작품은 언급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죠.


이 작품은 근래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한 영화로도 리메이크된 바 있습니다. 새로 유입되는 팬덤은 정체기로 평가되고 있지만,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일본 내에서 클래식으로 평가되고 있는 작품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지만 영화의 일부 설정이 원작과 달라진 것처럼, 이 작품은 소재에서부터 '바람이 분다'처럼 논란을 안고 있습니다. 아니, 바람이 분다보다 더 심합니다. 똑같이 일제의 병기를 작품의 소재로 끌어왔지만 바람이 분다에서의 제로센은 주인공의 단죄로 활용되는 도구인 반면, 야마토는 일제의 패배를 뛰어넘어 부활과 승리의 상징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군국주의와 무관한 노선을 걸을 때 "당시 일본군은 저렇지 않았다. 미화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이 우려된다."라는 논란을 앓게 됩니다. 이 작품이 군국주의의 노선을 걸을 때 "군국주의의 부활이다. 일본의 반성의식이 부재된 역사관이 우려된다."는 논란을 앓게 됩니다. 뭐가 되었건 논란은 피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작품임을 고려해도 이 작품은 당대의 논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드래곤 퀘스트의 경우처럼 "음악을 담당한 사람이 우익 행사에 참가했다고? 그럼 드퀘도 우익 게임!"이라는 식의 연좌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당대의 논란에서 '우주전함 야마토'는 에반게리온, 신비의 바다 나디아, 캡틴 테일러,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마크로스 시리즈,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나데시코 시리즈, 은하철도 999, 심지어 스타크래프트에까지 발을 걸치고 있었으니까요. 고전부터 최신작에까지 야마토 시리즈에 대한 이런 저런 영향이 '묻어'있었기에 "그거 일일히 따질 거면 그냥 전부 다 안 보는 게 맞다"는 식으로 전개되어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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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