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준으로, 여전히 어떤 일본만화가 우익인지 아닌지에 대해 알아보려는 이들이 제 블로그를 자주 찾고 있습니다. 그걸 보다보면... 뭐랄까요. 참 복잡한 심경입니다. 저도 그랬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계속해서 이야기해왔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만화는 일본 만화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양국의 대중문화가 개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사이 여러 요소가 결부되어 적잖은 영향을 받아왔죠. 문제는 공론화되었다면 으레 걸러졌을 요소들을 간직한 작품들이 알게 모르게 한국에 영향을 끼쳐왔고, 또한 수입되어져 왔습니다. 캐릭터의 이름이나 배경도 몽땅 한국으로 치환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본인의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었고, 일본 입장에서의 우익이라는 게 또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익숙한 민족주의적 성향과도 맞닿았었기 때문에 그리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거죠. 그 왜 은혼의 한 장면으로 비유해보자면,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흑선과 그로 인한 강제개항의 거부감'은, '한국의 일제에 대한 강화도 조약의 거부감'으로도 자연스럽게 치환시킬 수 있는 일이었죠.


또 주관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의 억압에 억눌리지 않고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자는 말이 일본의 작품에서 나왔다면 "반성없는 일본"이라는 비판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고, 반대로 한국에서 나왔다면 "근현대사의 고난을 뛰어넘어 독립된 주권국으로서 선진국에 돌입하고자 하는 의기의 표명"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전자가 하면 죽일 짓이고, 후자가 하면 자랑스러운 행동이 되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인에게 일본인스럽다 말하는 것도 욕설처럼 취급할 정도로 반일감정이 거세던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한국의 만화인 줄 알았던 만화가 일본만화였다' 내지는 '그런 일본 만화를 베낀 것이었다'는 식의 문화충격은 물론, '내가 재밌게 즐겼던 작품들이 사실 일본인들이 과거의 반성의식이 부재한 채 즐기기 위한 작품이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마징가Z 주제가를 한일전에서 부른다거나 축구왕 슛돌이 주제가를 불러 일본 응원단들이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일이 전자의 사례라면, 후자는 드래곤 퀘스트의 음악 감독 스기야마 코이치의 우익 활동이라거나 침묵의 함대 등에서 나온 야마토가 일본 제국의 병기였다는 식을 들 수 있겠네요.


 일본식 상투나 기모노조차 검열의 대상이었던 시대를 살아온 저를 포함한 이들에게 있어 일본군 복식을 차려입은 개구리의 모습을 보는 건 묘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실제로 군국주의 논란을 앓기도 했죠. 하지만 이후 투니버스에서 큰 문제없이 방영된 것처럼 이 작품은 원작에서 우익인사를 노골적으로 희화하거나, 언터처블한 존재인 천황을 무시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그냥 풍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독자들, 특히 기존의 만화를 즐겨왔던 독자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엄격하게, 모든 만화를 위와 같은 잣대로 파악하려 하는움직임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2016년 기준으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람의 검심, 개구리 하사 케로로 등등등 사실상 일본의 역사 속 일부 요소라도 차용하거나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 전부가 이러한 논란을 앓았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람이 문제냐 작품이 문제냐


복잡한 문제입니다.


음. 버니 샌더스와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로 잠시 새 볼까요? 극과 극이라 이야기되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돌이켜 보면 이들이 하는 이야기의 근거는 동일합니다. 현 정치 세태에 문제가 있고, 그것을 자기와 같은 아웃사이더가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그를 위한 수단과 입장은 전혀 다르고, 서로가 서로를 또라이 혹은 진지하게 논할 가치 없는 자로 여기고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입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표현의 결과물은 개인의 인성 혹은 능력 혹은 수단과 때론 적확하게 부합하지 않기도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잘못된 발상으로 그릇된 의도를 가지고 틀려먹은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음에도 멀쩡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옳은 아이디어와 바른 생각으로 적절한 수단으로 작품을 만들었더라도 때론 잘못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문제는 이것이 아주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데 작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우익 인사가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우익 작품이 되었습니다. 혹은 작품이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군국주의를 표현하기 위한 요소가 담겼다면 그 또한 우익 작품이 되었고, 그 사람은 우익인사가 되었습니다. 작품이 군국주의를 다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또한 우익의 낙인이 찍혔습니다. 심지어는 우익과 관련한 요소도 없고, 그런 해석도 할 수 없는데 작가가 그런 행사에 참가했다고 하더라라는 것만으로 우익으로 결정되어 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게, 다카하시 루미코 역시 우익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대체 란마나 시끌별 녀석들, 혹은 이누야사의 어떤 면이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네요. 빨간색을 많이 써서 그런가? 근데 그건 다카하시 루미코가 다양한 색상을 안쓰기 때문 아닌가요?


물론 위와 같은 일이 진지하게 결정되어진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상대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 작품의 해석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달린 일이니 "네가 안본다고 해서 함부로 남을 못보게 하지 마라. 네가 보지 않는 것은 너의 자유지만, 남이 보고싶은 것을 침해하려는 것은 너의 권한이 아니다"로 퉁쳐지는 분위기가 되었던 것이죠. 애초 일본 역시 민주주의 국가이고, 개인이 지향하는 자유와 권한,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 큰 차이를 가질 수가 없으니 논란이 될만한 크고 작은 요소가 있을 진 몰라도 대놓고 엇나가는 작품은 존재할 수가, 그리고 국내에 수입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이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터져나온 것이 바로 욱일기 논쟁이었습니다. 사실 가운데로 집중시키는 연출 자체는 동서고금 자주 활용되는 것이었는데, 직접적인 욱일기 외에도 그와 비슷해 보이는 연출까지 묶여 '우익만화'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는 경우도 있었던 겁니다. 란마1/2이나 근육맨, 닥터슬럼프 등이 이러한 논란을 앓았었는데, 이 가운데엔 원작엔 없었지만 애니메이션엔 욱일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활용된 연출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선 '사람은 문제고, 작품은 작품으로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 합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욱일기 사용여부로 우익여부를 가르고, 거기에 연좌제 식으로 낙인을 찍어버리면 한국인들도 일본 군국주의에 찬성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어 버리거든요. "영국의 밴드 오아시스가 욱일기 모양 티셔츠를 입었다→우익→배철수가 오아시스의 음악을 틀면서 칭찬했다→우익→배철수는 MBC라디오에 출연하고 있다→MBC는 우익방송국→MBC에 출연하는 사람들 모두 우익사관에 찬성하고 있다→MBC는 국영방송국이다→한국은 일본 우익사관에 찬성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판하고 토론하는 자유


실제로 게임 드래곤 퀘스트의 우익논쟁의 결말은 위 결말에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게임 내용은 용사의 세계구하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것이었고, 해석하자면 반전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기에 되려 반대로 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게임의 다양한 요소 가운데 오직 음악을 담당한 한 사람의 우익행사 출석 여부만으로 모든 걸 우익이라 뭉뚱그리는 것은 그리 설득력 있는 행동은 아니라 여겨졌던 겁니다. 실제로 "설사 그런 게임이 아니라도 내가 그 게임을 돈 주고 사면, 그 수익이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 그것이 다시 우익기금으로 쓰이게 될 것이므로, 그 게임을 해선 안된다"라는 논지가 펼쳐지기도 했었습니다만 수많은 이들의 노동이 집약된 결과물에 대해 일부만으로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론 역시 적잖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드퀘의 인기 자체는 국내에서 그리 큰 타격을 입지 않았고, 지금 시점에선 정식 발매는 물론 한글화까지도 되어 출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만화는 이보다 더 심한 논쟁을 앓아야 했습니다. 게임은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합작물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만화는 그렇지 않기도 했고, 상기의 민감한 논쟁을 반복해서 앓아왔었으니까요. 실제로 이소라의 음악도시 출연 당시 한창완은 침묵의 함대를 추천만화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내주에 그 만화는 일본 우익 만화라는 독자의 항의를 받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작품"이라는 입장을 밝혔던 적이 있었죠. 실제로 우익논란에 당황한 그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모든 것을 그렇게 바라보면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 작품들은 없다는 어조 역시 강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실제로 침묵의 함대는, 우주전함 야마토 이상으로 문제 소지가 많은 작품이었지만, 어느 순간 이전에 이야기하던 주제의식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습니다. 냉전 시기 무서울 것 없었던 일본은 냉전의 종료와 함께 침체된 경기로 인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침묵의 함대도 국가나 민족이 아닌, 개인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습니다. 상기에서처럼 결코 모든 사람에게 우익만화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다르게 볼수는 있는 상황이었단 것이죠. 실제로 침묵의 함대는 한국에 완결까지 발매되었습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그 진의와 무관히 쉽게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작품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멍청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틀린 것은 비판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거라는 거죠. 시대가 변하고, 아이들은 보다 많은 걸 접하는데 태도가 아닌 하나하나를 차단할 생각이라면. 예. 그야말로 틀려 먹은 거죠. ...물론 성인은 온전한 자기결정권이 있으니, 여기에 침해하겠다 다는 쪽이 이상한 거고요.


이것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일본'하면 무조건 배척하는 이전과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납득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잘못했다 우기고 보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이 달라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세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죠.


동시에 모든 작품에 대한 일괄적인 해석의 거부감 역시 작용하였습니다. 상기에서처럼 군국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작품에 나온 우익기조차 한국 언론이 나서 "문제가 있다"며 언급하는 경우는 솔직히 말해 그렇게 설득력이 없는 것이거든요. 구체적인 지적없이 그 문제를 타개해내기 힘든 것처럼, 노골적인 우익사관에 대한 주장보다 비판 속 일부의 지지부진함에 더욱 엄격한 국내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결론은 한가지로 귀결되었습니다. "일부가 우익사관이 녹아있다 주장하는 만화 본다고 애들이 친일파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영화 본다고 한국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각과 균형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다"로요.


애초 창작물로서의 가치와, 그것에 대한 역사적인 가치는 등치할 수 없는 거니까요. 허씨부인처럼 창작물은 실제로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 역할도 겸하고 있으니,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돋구기 위한 몇몇 요소로 전체를 파악하지 않도록 하자는 입장 역시 강해졌습니다. 결국 창작의 자유와 역사의 해석은 각 작품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하나 나오게 됩니다. 한국적인 소재를 일본식으로 활용하고, 한국인 작가가 일본의 출판에서 발매한 작품 '신암행어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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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