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떤 글에서 "한국의 역사는 교과서를 배워서 딱딱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던 반면, 일본의 역사는 각색되고 정제되고 미화된 만화를 통해 접해 흥미롭게 느껴졌다. 다 착각이었다."라고 언급했던 바 있습니다. 실제로 저러한 잘못된 인식은 일본 역사를 실제로 교과서를 통해 학습하면 단박에 깨지기도 합니다만, 한국의 역사를 만화를 통해 흥미롭게 접해도 깨질 수 있는 편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발목을 잡습니다.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수능에서 수리1등급 맞을래요, 아니면 근현대사 1등급 맞을래요? 이게 단적인 우리 사회에서의 역사 인식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의 역사에 대한 민감함은, 공적인 교육을 통한 토대 위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 불안정함에 대한 배설에 가깝다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 특별하게 여겨지는 표현입니다. 여기서의 '우리'란 단순히 대한민국 국민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수십, 수백,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공통의 정서를 함유하는 모든 이들-설사 각자의 정서가 심각하게 상충하는 이들을 포함하여-에게 해당하는 표현인 겁니다.


그렇기에 역사란 늘 특별한 의미로 여겨집니다. 결코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이라는 존재하고, 그 기준은 개개인에 따라 상이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역사가 자랑스럽건 자랑스럽지 않건 그것은 우리네 정서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네 일상에 강하게 영향을 미쳐 개개인이 가진 역사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이건 타인이 가진 역사에 대한 인식의 비루함을 견디질 못하게 만듭니다.


자, 이쯤에서 감을 잡으셨겠죠.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콘텐츠를 제작함에 있어 존재하는 몇 가지 허들은 창작자의 창작의 자유나,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의 자유만으로는 쉽사리 뛰어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후손'의 존재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며, 가장 골치아픈 문제기도 하죠.


덕수이씨 종친회에서 불멸의 이순신에 대해 방영금지 가처분한 것은 당시에도 크게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이순신에게 두고두고 골머리를 앓게 했던 원균을 이순신이 형님처럼 따르고 모셨다는 식의 묘사가 나와서 뒤집어 진 것이죠. 현대사회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혈연, 성씨에서 비롯된 정서는 우리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요? 역사적 위인 가운데서도 가장 인지도 높고, 가장 훌륭한 평가를 받는 이순신 장군. 대중은 그를 100원짜리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말하는 것조차 비하로 여기지만, 그의 생애 가장 큰 문젯거리였던 인물을 사극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순신이 문제였다', '반대파의 모함 때문이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기도 하죠.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러한 상황은 왜 벌어지게 되었을까요? 역사 의식 이상의 중요한 요소가 결부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혈연'이죠.


해당 인물의 후손들이 모인 종친회에서 사극의 방영금지 처분을 요청하고, 해당 인물에 대해 비판적으로 저술한 소설가나 역사 연구가에 대해 "당신들이 알면 얼마나 아냐",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주장해왔던 겁니다. 사실상 이순신의 업적을 부인하는 수준이므로, 100원짜리 이상의 비판이 가해져야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역사적 의식이 부재하는 것은 문제라고 여기지만 그릇되기 인식하는 것은 그만큼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도 있지만, 결국 혈연이나 자신들이 소속된 집단의 명예를 위해선 사실관계를 그릇되게 주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 허용된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암묵적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우리 법은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학술적인 목적 등에 대한 인용, 창작을 위한 일부의 차용과 재해석에 대해서도 그 여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혈연과 전통을 중시하는 분위기 역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사실상 역사속 인물에 대한 평가는 후손이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나 묘사에 대해 일부 후손들이 당사자로서 나서기 때문에 창작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때에 따라선 엇나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속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는- 그러니까 당시 실시간으로 KBS에서 방영되는 것을 본 세대의 입장에선 몇번이나 뒤바뀌었었습니다. 만화 속에선 그래도 상식적이며 책임감있는 인물로 묘사되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였지만, 이것이 역사왜곡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음악선생님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발언을 했으며 만화가 잘못되었다 비판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고 다가온 모든 위기를 타개해내진 못했지만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의연하게 대처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되며 다시 한 번 이미지가 뒤바뀌었습니다.


여하튼 여기에서 두번째 문제가 불거집니다. 바로 상이한 평가의 기준과 해석의 기준이라는 거죠. 여기엔 주류의 해석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해석하는 자의 입장에서 기한 차이도 존재합니다.


예컨데 사생활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공적인 영역에선 제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수행한 역사적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 갠과적으로 서술하더라도, 수용자가 무게를 어디에 두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왜곡, 미화, 폄하-을 받게 됩니다. 공과 사의 영역에서도 그러할진데, 서로의 이권으로 상충하던 분쟁에서는 또 어떨까요? 간단히 여말선초 역사의 격변기 시절의 인물들을 떠올려 봅시다. 정도전이 재평가받은 것이 90년대에 들어서라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개혁과 보수 사이에 선 역사적 인물들의 평가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악인이지만 그럴싸한 신분과 주변의 상황 때문에 창작물에선 고귀한 목적을 위해 굴욕적인 상황을 감내하고 스스로 개차반 짓을 한 인물로 재해석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와 달리 전후사정을 따져보면 엄연히 제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였음에도 후대에 덧붙여진 편견 등으로 인해 창작물에서 악인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죠.


이처럼 해석의 잣대를 달리하여 새로운 시선을 제기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남긴 업적을 실패로, 그가 겪은 실패를 업적으로 해석하는 수준의 '왜곡'에 대해선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대장금에서의 가스 버너. ...실제로는 고증상의 문제라기보단 방송사고에 가깝죠. 출연자들도 평상시엔 일상적으로 보는 것이다보니 카메라가 돌아간 순간에도 쉽사리 인지하지 못했던 걸로 보입니다.


마지막 문제는 고증상의 문제입니다. 언젠가 중국 한나라 때 의자가 없었음에도, 짝퉁 옥의자를 경매에서 골동품으로 산 사람이 있다는 이슈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금은 지극히 당연히 여기는 물품들이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문제는 비전문가의 경우 이것을 하나하나 판별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결국 전문가의 자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것 역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쉽게 시도하지 못합니다.


당장 한국에서 제작된 사극 가운데 고증이 잘 이루어졌다 평을 받는 작품들 태반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악이 가능합니다. 같은 의미에서 tvn에서 방영하는 역사예능 렛츠고 시간탐험대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조선시대가 배경인 것도요. 당연히 근자의 시간대기 때문에 관련된 소품들이 많이 제작되어 있고, 더 나아가 관련 사료도 많다보니 고증도 비교적 편합니다. 더나아가 앞서 제작되었던 소품이 계속해서 활용되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시대극은 조선시대에만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아예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새로 제작해야 하는 화승총 등을 제대로 묘사한 사극은 여전히 드문 수준이며, 상징과도 같은 환도는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등장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만드는 우릴도 틀린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으니 넘어가자"는 태도마저 읽히기도 합니다.


명성황후의 역사왜곡은 워낙 유명합니다. 황후의 비참한 최후에 더불어, 이 드라마가 끈 선풍적인 인기, 반일정서들이 결합하면서, 역사적인 사실관계마저 왜곡하여 인식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지고야 말았죠.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농담이 아니라 2년 전에도 이 드라마에서 묘사된 연출을 가지고 역사적인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경향을 생각해보자면,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에 대해 유달리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셈입니다. 평가와 해석,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에 대한 변질로 파악한다는 것이죠.


일부의 요소를 차용하거나, 역사적인 배경과 상관없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엄연히 가능한 일이며, 앞서도 몇번이나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민족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역사적 사실을 삽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무가치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드라마 명성황후의 경우, 실제로 미화물로써 비판받으며 조선의 패망에 일조한 이를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사에 관심없는 이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는 일을 낳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친다면야 좋겠지만 그들이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은 채 그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해, 매국노니 옆차기를 먹어야 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방하고 억압하려 들기도 했으니까요. 올바른 역사 의식을 심어주지는 못할 망정 아예 그릇된 역사 의식을 심어주고 있으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역사 콘텐츠의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생각해보면, 학습만화로만 국한하는 건 굉장히 아쉬운 일입니다. 맹꽁이 서당과 같은 작품도 학습만화의 가치와 역사 만화로서의 가치 양자를 놓고 저울질 하면 후자에 더 기울여 지지만, 그것이 작품성과 대중성의 문제는 아님을 알 수 있고요.


하지만 작품을 작품으로 보지못하는 이러한 관점은 결국 한계를 맞이하고야 말았습니다. 애초에 사실을 사실로서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은 학교 등에서의 학습이지, 즐거움을 위한 문화향유 과정은 아니니까요. 보고 즐기면서 배우면 좋겠지만, 보고 즐기는 선에서 그쳐도 무방한 것이 결국 문화니까요. 모든 것이 청소년 교육, 국민 교화의 도구로 쓰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실제로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역사만화는 학습만화의 하위 카테고리로 국한되는 상황이 벌어졌으며, 그 제작은 더욱 어려워져 진입장벽이 높아졌으며, 독자는 이러한 장르의 만화를 딱딱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련의 콘텐츠들은 역사를 바로 아는 계기가 되어야지, 교육 그 자체로 작용할 수는 없다는 걸 인식한 그제서야 비로소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 ...이것이 90년~2000년대 초중반 까지의 일입니다.


또한 대중의 요구도 역사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하지만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이진 않은 것들에 대한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상기의 편의성과도 맞닿는 일이었습니다.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인물이라면 종친회 등의 후손을 신경쓸 필요도 없고, 소품 고증상의 압박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더욱이 정사에서는 묘사되지 않은 애정관계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분량을 채울 수도 있고요.



물론 해외의 작품들도 역사적인 논란을 앓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마야인들을 야만인으로 묘사하고 그들이 점령당하는 것은 역사적인 필연이라 주장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던 아포칼립토가 대표적인 예죠. 하지만 그 압도적인 규모와 고증으로 관객들을 압도했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해적이란 소재와 당대 존재하는 사회상의 문제 예컨데 사략선 등을 역사적인 시선으로 다루어 내지 않았음에도 오락물로서 거슬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3편에선 또 평이 바뀌지만. 어쨌건.


이러한 변화에 극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해외의 '자유로운 해석'이 더해진 작품들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그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체감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하면서도 가상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전설의 고향 이나, 한국식 에로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협지, 대체역사물로서의 성격이 강한 판타지 소설 등이 이러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펼쳐지는 대체역사물 혹은 트렌디 시대물의 활성화를 위한 저변을 넓히며 자생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실제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역사적 요소를 차용하면서도 자유롭게 해석하여 전개되는 시대극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그냥 역사적 요소 가운데 일부만 입맛에 맞게 뽑아내 제 멋대로 풀이한 작품들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왜곡이니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화면속 묘사되는 장면들 모두가 사실일 거라 믿을 정도로 미성숙한 태도를 가진 이들의 눈을 키워주는 일이 먼저고, 영화는 영화, 만화는 만화, 사실은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비판적인 시선을 길러주면 되는 일이니까요.


80년대까지의 에로 영화들 가운데 사실 주목할 만한 작품들도 적잖았습니다. 심의가- 그러니까 성적인 측면에서의 심의가 완화되면서 온갖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품들이 나왔고, 그 가운데엔 양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이들이나, 억압된 성의 폭주같은 것을 다룬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심의완화 특유의 폭발력과 외부의 영향이 배제된 고립을 통한 숙성이 어우러지다보니 이후 세대에 들어선 상당히 한국적이면서도 독특한 인상을 주는 영화들이 적잖게 탄생했던 겁니다. 비단 이런 일이 낯선 것도 아닌게, 홍콩발 무협 영화들 가운데서도 섹슈얼리티한 연출로 화제가 된 작품들이 있었거든요.


아이들의 역사 교육이 부족한 게 학교 잘못이라면 학교 잘못이고, 어른들 잘못이라면 잘못인데, 그 모든 책임을 만화 등의 문화가 져야 하는 건 사실 굉장히 불합리한 일이니까요.


다음 시간엔 역사적인 요소들을 다루어낸 한국의 작품들에 대해 다루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궁, 바람의 파이터, 대장금, 다모, 바람의 나라, 신암행어사, 신 춘향전, 신 구미호, 쾌걸 춘향 등입니다. 보시다시피 시점은 2000년대 초중반, 그러니까 2003~5년 즈음이고요. 이후 시점에 방영 혹은 연재된 태왕사신기, 쾌도 홍길동, 야뇌 백동수, 추노 등도 같은 관점에서 다룰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만 시점이 2000년대 중후반에 달하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언급만 되고 말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드디어, 한국적인 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담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당연하지만, 이는 이전에 언급만 되었던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 보다 심화된 형태였던 한국형 라이트노벨 담론과도 일정부분 맞닿는 것이었습니다.







잔뜩 예정을 써놓은 걸 보면 아시겠지만. 언제 또 쓸지, 떠올린 소재는 또 언제 다시 작성할 지 몰라서 하는 겁니다. 소재를 써놓은 메모 파일이 외장하드에 있는데, 그 외장하드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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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