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내용을 진행하기에 앞서, 쉽게 이야기해봅시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TV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보죠. TV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으니 보다 원활하게 체감되겠죠. 예능,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사고발 등등등의 근본적인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사실에 얼마만큼의 윤색을 가했느냐일 겁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가해진 윤색이 가장 적고, 그 다음은 다큐멘터리, 그 이후는 예능과 드라마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얼마나 시청자가 그것을 현실이라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와 동의어 이기도 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해당 프로그램이 지고 있는 법적인 책임의 크기가 얼마만큼이냐는 이야기기도 하죠.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TV프로그램은 결국 어느 정도의 윤색이 가해집니다. 결국 방영기획에 따른 제작의도가 있고, 편집방향이 존재하며, 필요에 의해 송출되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가진 의도가 시청자가 바라는 것- 혹은 올바른 것과 늘 합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적인 예, 간접광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방송사는 TV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있어 광고를 통해 제작비를 충당합니다. 하지만 세금을 통해 운영되는 방송사의 필요 이상의 영리활동은 공익적인 측면에서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광고주간의 커넥션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한을 가합니다. 무엇보다 일반 시청자는 광고에 거부감을 느끼죠. 그에 따라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다양한 꼼수를 부려왔습니다. 방송 중에 광고를 보여준다거나, 광고 자체에 재미를 느끼도록 한다거나, 아예 광고인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광고를 해버리거나. 후자로 갈수록 광고 효과가 커지기에, 방통위는 이에 대한 강한 제한을 겁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간접광고가 포함되어 있다느니 하는 메시지가 프로그램 서두에 박혀있는 것도 그러한 제한의 일환이고요.


이처럼 프로그램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제작자의 의도가 녹아 있습니다. 상기에선 영리목적의 광고 정도만을 예로 들었지만, 경우에 따라선 사회적인 이슈가 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선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것이 되기도 합니다. 공익목적이 아니라면- 아니, 일부의 공익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에 조차 가해지는 윤색은 대부분 '더 흥미로웠으면 좋겠다'는 정도에 그칩니다. 말은 좋아보이지만, 이것이 때론 악의에 기한 것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도를 파악하고 걸러볼 수 있는 시청자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것입니다.


자. 하고픈 말은 다 했습니다.


잘 보면 전현무의 허리춤에 행동을 지시하는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처럼 대본논란, 조작논란은 예능에서 심심찮게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 가운데 일부는 핀트가 완전히 엇나간 경우도 있습니다. 애초에 대본이 없는 프로그램이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당장 리얼버라이어티의 선봉을 자처했던 무한도전도 대본이 유출되면서 어느 순간 리얼버라이어티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죠. 예능만 이럴까요. 다큐, 시사고발 프로그램조차 전체적인 틀이 있고 방향성이 있습니다. 이게 이상한가요? 너무 당연한거죠. 중요한 건 시청자-독자로서 거리를 두고 파악할 수 있는 성숙된 태도를 기르는 겁니다.


위의 표현들을 역사, 교육, 만화 등으로 바꾸어 봅시다.


역사를 다양한 측면을 소재로 삼아 만들어지는 창작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의 사실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만들어지지만, 사실 다양한 윤색이 가해진 창작물입니다. 결국 만드는 이의 주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이 창작물에 녹아 있는 주관과 바람은 대부분 이 작품을 더 재밌게 보았으면 좋겠다 선에서 그치지만, 그 가운데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의도가 녹아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 그렇죠. 이러한 의도를 파악하고 걸러볼 수 있는 독자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것입니다.


자, 이제 역사의 일부 요소들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200년대 초중반의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겁니다. 이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교훈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왜곡이니 하는 비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 시간에서 창작물로서 허용되는 선은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 이야기했고, 중요한 것은 사실을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식견과, 대상을 비판할 수 있는 지식의 형성-즉, 역사 교육이라 오늘 이야기했습니다.


즉, 저는 역사를 소재로 했다면, 악의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기 위해 제작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일부의 요소만을 차용하여 제작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보고 있는 입장이라는 소리입니다. 역사의 사실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다한다 본다는 겁니다.


....이렇게 결말까지 이야기했으니, 이젠 정말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죠.




 현대화된 전통


대체역사물이라는 게 있습니다.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여 전개되는 이 작품은,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소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 요소는 정신적 자위의 선에서 그치곤 합니다만, 때론 놀라울 정도로 객관적인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뭐, 다른 걸 떠나 이러한 장르가 주는 그만의 재미가 존재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성 캐릭터의 전통복은 한복을 많이 활용했지만, 사실 남성의 전통복은 대개 대한제국 시기의 그것에만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선, 그게 아쉬웠죠.


박소희 작가의 궁은 대한민국이 영국 등처럼 입헌군주제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하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작품 자체는 '평범한 여고생'이 높은 신분의 왕자님- 문자 그대로네요-을 만나 색다른 경험을 한다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정형이지만, 이것을 현대에 한국화한 설정으로 녹여냈기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통통 튀는 발상이 낳은 수작이란 평가를 받으며, 현대의 계급화된 사회에 대한 색다른 조명이 되어 주었습니다. 동시에 과연 현 대한민국의 높으신 분들의 책임과 권한이라는 것이 하다못해 중세에 형성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미치기는 하는가, 그들이 형성한 정통성이라는 것은 국민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서 비롯될 수 있는가란 생각을 가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창작자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말이죠.


전통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한 편, 구닥다리처럼 취급하기도 했었습니다. 진짜 잘 나가고 많이 가진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 안쓴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했죠. 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소개되는 재벌들의 삶이라는 것이, 좋게 말해 한국적인 전통- 나쁘게 말하면 시대착오적인 면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게 알려지며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저러 전통을 흥미롭게 소개하며 현대에서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를 다루어 내기도 했는데, 뱃놀이나 한국식 다도, 현대화된 여성의 한복 등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설날엔 더 이상 한복도 입지 않는다는 세대에게 핸드폰과 한복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세련됨만이 한국적인 것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허영만의 식객이나 타짜처럼 토속적인 성향의 작품들, 전통이 우리네 현실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작품들 역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통에 현대적 요소가 가미


2000년대 초, 최영의의 일대기를 작품화한 바람의 파이터가 신문지상에 연재되며 큰 인기를 끕니다. 이것이 이후 양동근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역사가 주는 특유의 리얼함이 만화적 과장과 합쳐지며 생겨난 성과였습니다. 이 작품 자체는 70년대에 제작된 것을 리메이크 한 것이었는데, 역사 작품이 또 다른 역사를 쌓으며 색다른 시너지를 불러 일으켰던 겁니다.


이와 비슷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다모'죠.


사실 만화 다모에 비하면, 드라마 다모는 여성을 너무 희생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버렸습니다. 사극 특유의 애정관계가 극의 완성도에 너무 큰 영향을 준다는 비판에서, 이 작품 역시 자유롭지 못했죠.


흔히 일본의 닌자와 사무라이를 들며 한국에는 그만큼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없다며 불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반박이 존재합니다. 애초에 창작물에서의 닌자와 사무라이라는 건 대중문화에서의 닌자와 사무라이와 똑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매력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넘쳐납니다. 애초에 수천년을 이어져온 문화권에서 그런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기도 하고요.


다모는, 그리고 하단의 항목에서 다룰 신암행어사는 이러한 불평에 대한 적절한 반례가 되어 줄 만한 작품입니다.


조선시대 여형사에 대한 이야기에 적절한 각색을 가한 방학기의 이 작품은 바람의 파이터와 마찬가지로 70년대 연재되었던 작품을 2000년대 초 스포츠 신문에서 리메이크되어 연재되며 다시금 인기를 끌게 됩니다. 조선시대하면 가졌던 편견- 남성 위주의, 여성은 그저 남성에게 종속되기만한 존재라는 것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주체적인 여성상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이윽고 드라마로 제작되는 계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드라마는 90년대 후반 사극하면 떠올리는 딱딱함에서 벗어나 무협적인 요소가 적극 활용되었고, 허준 등에서 다루어 졌던 것과 달리 연애요소 외에도 작가의 독창성을 녹여내면서도 흥미롭게 전개할 수 있음을 새삼 입증하였습니다.


당시 김민준이 맡았던 장성백 역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헤어스타일이었습니다. 저 장발, 조선 시대같으면 망나니 머리라 불릴 법한 두발로 인기를 끈 겁니다. 이게 얼마나 주류가 되어 버렸는지 나중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의 백성현의 댕기머리가 어색하다고 말할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 SBS에서 방영하였던 드라마는 바로 그 야인시대 였습니다. 장군의 아들이라는 걸출한 작품이 아직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인시대는 승승장구를 거듭했습니다. 사실 야인시대는- 그리고 장군의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전의 MBC에서의 왕초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의 고증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창작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실존 인물의 특정한 요소를 차용해왔다는 사실이 몰입도를 높여주었고, 역사 콘텐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마찬가지로 새삼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이른 바 트렌디 사극, 퓨전 사극이라 불리며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강동원과 함께 하지원이 주연한 형사, 기찰비록, 야뇌 백동수. 뿌리깊은 나무 등등등 너무 많아서 세기가 곤란할 정도로요.




 특정 요소만 차용해 재해석


윤인완X양경일 그리고 전진석 등이 함께 한 작품 신 암행어사는 연재 당시부터 이런 저런 논의 거리를 몰고 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작품은 어느 나라의 만화이야는 것이었죠. 한국인 작가가 연재하지만, 일본의 잡지에서 연재되고, 한국에도 발매되지만 일본의 것을 수입하는 형태인 이 만화는 과연 한국 만화인가, 일본 만화인가.


당시 작가는 영국 리그에서 뛴다고 한국인이 한국 선수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이 만화의 한국성을 어필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이 만화는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일본 만화인 것이 맞았고, 그것이 굳이 문제될 이유 또한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연재되느냐가 아니라, 외국에서 연재하는 작품이 보여줄 수 있는 한국적인 면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느냐였죠.


실제로 이 작품은 역사물로서 고증을 따졌을 때 결코 좋은 점수를 받진 못합니다. 고려 시대에 실존하는지 입증되지도 않은 고려장이 한국의 풍습인양 소개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일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의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특정한 요소로 활용하여 만들어낸 작품이었다는 점입니다. 상기에서처럼 역사 속 요소를 차용한 모든 작품이 그 목적을 교육과 교화에 있을 필요도 없고, 단순한 편린의 활용이 무작정 비난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아예 틀린 사실을 마치 진실인양 전제되는 것은 문제지만, 단순한 차용까지 문제시삼을 수 없고, 때론 이것이 매력적일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이하생략


여하튼 당시 이 작품의 정체성, 그리고 역사 관련 논쟁은 더욱 격한 감이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특수성이 작용했기 때문이었죠. 실제로 당시 고려장은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일본에 의해 날조된 한국의 역사로 알려지던 참이었는데, 이 고려장이 진짜 한국의 역사인양 일본지상에 표현되었으니까요.


여하튼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페이트 시리즈의 아더왕을 실제 영국인이 보면 화가 날까 나지 않을까 등등의 농담이 나오기도 했고, 일본인 만화작가 집단인 클램프가 춘향전을 모티브 삼아 만든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어도 별 논란이 없었던 일들이 회자되며 위 논란들은 어느 정도 사그라 들게 됩니다. 만약 일본지상에 연재되는 것이 아니었다면 저러한 차용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죠. 여러 역사 콘텐츠 가운데 신암행어사를 굳이 특기할 만한 작품으로 분류하는 것도 이러한 유연함, 과감함이 이전의 작품들에선 비교적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학술적인 가치와 문화적인 가치가 동일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후자에 집중한 작품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바람의 나라와 같은 작품이 있었음을 빼놓으면 섭합니다. 실존하는 역사와 신화를 적절히 혼합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은 중국, 일본에서 접하던 여타의 콘텐츠와는 다른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선사해 주었습니다. 




 한국적인 것


이쯤이 되고보니, 사람들은 한국적인 것에 다시 한 번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이라고 해서 모두가 한국적일 수 없고, 전통이 없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이 아닐 수도 없다는 걸 여러 방식의 교류가 활발해진 시점에서 체감하게 되었거든요. 이것은 이전의 담론들- 김치, 비빔밥, 불고기, 지성박- 그러니까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와는 차이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물려받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활용하느냐였고, 우리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갈 수 있도록 하느냐였음을 알게 된 겁니다.


이전까지와 차별화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려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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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