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맨 오브 스틸이 개봉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그러했습니다. "비주얼과 액션씬 연출이라는 강점이 있지만, 설정과 서사적인 약점도 크다. 하지만 앞으로 슈퍼맨이 발전해갈 것이고, 결국 이 영화는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점이니 합격점은 받을 법하다." ...정도로 말입니다. 대략 정리하면, 앞으로 더 나아질테니 다음 영화를 기대해보자, 정도로 말할 수 있을 테죠.


....그리고, 배트맨V슈퍼맨이 개봉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그러했습니다. "야, 해도 너무한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이 예상한 그대로 내놓냐! 그것도 저런 허섭한 연출로!" ...정도로 말입니다. 그 잘난 액션씬도 과포화상태라며 비판받았고, 캐릭터들은 이야기에 제대로 융화되지 못했으며, 그나마 괜찮은 평가를 받은 원더우먼조차 "분량이 적어서 그나마 살아남은 것"이라는 비꼼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엄청난 이름값으로 인해 본전치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이해야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호연이나,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는 여러 속편들에 대한 여론 그리고 앞으로 지속될 프렌차이즈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을 때, 다음 영화를 기대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요?


답답하게도 또 그렇습니다. ...다음 영화를 기대해보자. ...지금 장난칩니까?


최악의 히어로인지도, 애초에 악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는 날 잡아서 무엇이 실망스러웠고,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다룰 생각이었습니다만 이젠 황당하다못해 우습기까지하여 그냥 날림으로 쓰겠습니다. 어찌나 황당했는지 자다 일어나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네요.


먼저 언급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 돈옵저 때, 잭 스나이더를 비판하기를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돈옵저의 문제점은 그간 잭 스나이더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고질적인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었고, 어떠한 몇몇 씬은 그것이 극대화되어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점에는 질리고, 약점은 점점 커진다. 이게 제가 그에게 가진 인상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 재능넘치고 역량있는 감독이, 어찌보자면 자신의 주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를 다루면서도 이러한 영화를 낳아 버렸으니까요. 이전의 제 관점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잭 스나이더 역시 이러한 압박때문에 영화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하고요. ...물론 이건 사실이 아니겠지만-다른 걸 떠나서, 이전의 영화와 대칭인 면이 너무 많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줄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치않습니다.


영화 개봉 시점에서 주요캐릭터라 할만한 캐릭터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외의 캐릭터들의 캐스팅에 엄청난 말이 오갔던 것도. 애초에 특정 캐릭터의 분량 문제는 사실 그 시점에서 이미 불거졌던 겁니다.


일단 문제점들을 짚어보겠습니다. 본래는 서두에 문제점 몇가지라고 짚습니다만, 이번엔 그냥 생각나는대로 풀어쓰기 때문에 그런 것도 없습니다.


첫번째. 산만합니다. 이야기가 제대로 집중되지 못하고 느슨하게 흩어집니다. 특히 캐릭터 소개가 넘어가는 시점이 되면 이 문제는 본격적이 됩니다. 처음에는 영화가 불친절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깨놓고 말해 그렇게 이해가 필요한 장르도 아니고, 내용도 전혀 그러하지 않아서 그저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두번째. 지난 시빌워의 역할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가지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요 히어로 캐릭터만 20명에 가까워지고, 주변인물들까지 포함하면 50명까지 늘어나는 마블 시네마틱 무비는 당연하게도 히어로라는 세력을 분화시켜 이야기에 메인이 되는 캐릭터들과 그렇지 않을 캐릭터를 나누었습니다. 이는 제한된 영화상영시간, 사람이 집중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몰입하며 인지하게 되는 영역을 분명하게 국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캐릭터가 너무 많았다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깨놓고 말해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력자격인 캐릭터 전부는 물론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일부 캐릭터- 예, 슬립낫이랑 카타나! -는 그냥 안나와도 무방할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커는. 그냥 안나오는 게 나았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세번째. 목표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장르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네요. 과연 이 영화에서의 목적이 '악당'이 아니면 수행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까? 애초에 전제로 설정되는 영역에서부터 '악당'이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들도 힘을 잃고, 의미없는 중언부언으로밖에 여겨지지 못하죠. 무엇보다 초능력을 가진 상대-심지어 슈퍼맨급의 능력까지 고려되는-에게 배트를 든 60kg이 되지도 않는 여자를 내세우는 게 상식적인지도 의문이고요. 이러한 현실감각적인 문제도 이 영화의 흠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악당들의 활극이라는 소재를, 진중한 분위기로 몰아가버리고, 다채로운 액션은 현실적한 한계로 작용하지 않으니 오락물로서의 기준을 고려해도 이야기가 합이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개그씬을 재촬영한다는 것이 맞았다면 영화는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네번째. 연출적인 문제. 본작에서의 어떤 연출은 중언부언하여 순간적으로 같은 장면을 돌려쓰나 싶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고, 또 어떤 장면은 찢어지고 더러워졌어야 정상인 상황에서 깔끔하게 다시 등장한다거나 하는 등 전 장면과 유연하게 이어지지도 못합니다. 또한 분명히 설정과 이야기의 흐름이 제대로 결부되지도 못합니다. 지난 번 '마사드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몇번의 대화로 평생의 전우가 되어 버립니다. 상기의 장르적인 이야기와도 맞닿는데, 캐릭터의 변화와 유기적인 연결성도 굉장히 어색합니다. 돈많이 들인다고 영화가 깔끔하게 뽑히는 건 아니라는 전형적인 예가 될 겁니다. 개그, 말장난도. 예. 기대 이하입니다. 오락물로서도 코미디로서도 기대 이하인데 후술할 문제까지 겹쳐지니....


다섯번째. 캐릭터성. ...장르적인 문제와 겹칩니다만, 악당이 악당이 아닙니다. 정말 안타까운 문제인데- 배우가 열심히 연기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그들이 가진 재능이 캐릭터에 어울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정작 캐릭터와 연출, 각본이 엉망이라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지 못하게 보입니다. 정말이지 치명적이죠. 벤 애플렉의 배트맨이 그러했듯, 이번의 영화 속 캐릭터들 대부분(사실상 데드샷을 제외한 전부, 그 데드샷도 몇몇 측면에선 애매하고...)이 이러한 문제를 앓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상 캐릭터 영화에 가까운 모양새임에도 불구하고-애초에 15세 관람가라는 한계 속에서 오락영화라는 장르를 고려했을 때, 악당 캐릭터로 진한 교훈을 안겨주거나 하기는 힘들죠- 영화를 단독으로 이끌어갈만한 매력있는 캐릭터는 할리퀸과 데드샷을 포함해도 애석하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작이 어떻고 영화가 저떻고를 떠나. 최소한 원작은 오랜 시간 연재되면서 '당위성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상황입니다. 원작의 요소와 상충하는 요소를 집어넣으려면, 당연히 전체적인 당위성 문제를 해결했어야죠.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정말 답답하네요. 모르는 이가 보면 마치 제가 마블영화만 추앙하고, DC영화는 무작정 까대는 걸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캐릭터는 마블, 이야기는 DC라고 말할 정도로 저는 두 회사의 정체성 모두를 존중하며 즐기는 입장이고, 어지간한 흠결은 '팬심'으로 메꾸어 줄 수 있는 입장입니다. 본 블로그에 등록되진 않았지만 마블 영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팬심으로 커버-이었고, DC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말을 말죠....


이제는 다음 영화인 원더우먼과 저스티스 리그는 괜찮을 것.... 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연 '다음'에 관대한 관객이 다음에는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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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