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蜂の巣)


벌집 모으기가 취미인 다카노. 잠시 벌집 모으기를 쉬고 있는 그에게 그의 여자친구는 어느 순간 부터 남자아이 귀신에 대한 소문이 떠돈다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다카노는 그 소년의 행방을 알고 있었죠. 어쩐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소년이 모은 벌집에 넋이 팔린 다카노는 그의 벌집을 빼돌리려다 충동적으로 그 소년을 죽이고 말았었으니까요. 이름도 연고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소년이었기에 그렇게 묻히나 싶었던 그 때.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생각해보면 벌집이라는 건 참으로 기괴합니다. 디자인이건, 생태건, 뭐건. 너무 효율적이기 때문일까요.



 사용된 클리셰


벌집에 쓰인 호러 클리셰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호러 클리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던 X파일. Darkness Falls에피소드에서 이러한 자연의 역습+벌레의 공포를 잘 보여줍니다.


첫번째는 역시 자연의 역습- 그 가운데서도 세분화된 살인곤충입니다. 지구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은 호랑이나 사자같은 맹수가 아닌 '모기'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벌레를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에게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곤충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죠. 벌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직관적인 존재입니다. 추석 즈음만 되면 벌초를 하러 갔다 벌에게 습격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신기한 일도 아닙니다. 벌은 독도 독이지만, 고통을 안겨주는 벌침이 주는 공포감 역시 대단합니다. 거기다 특유의 집요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인해 한 마리만 나타나도 건물 한 층 전체가 뒤집힐 정도의 파급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벌집제거는 "119에 신고를 해서 제거를 요청해도 허용되는 대표적인 민원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개미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이라는 완벽한 틀 아래 개체가 아닌 종으로서 존재하는 곤충이 주는 공포란, 개체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인간이 더욱 큰 느낌을 받게 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호러 장르에서, 이러한 살인곤충은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하며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됩니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환경을 일종의 공격행위로 받아들이고, 결국 인간에게 반격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실제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도심지로 들어온 말벌이 일으키는 피해 역시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제어하고, 자연은 하찮아 인간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오만한 생각에 대한 대표적인 반례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두번째는 이야기적 구조 클리셰, 인과응보입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결국 종교도, 도덕도, 법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관점 하에서 뻗어나온 셈이니까요. 호러 장르 역시 이러한 인과응보의 이야기적 구조를 자주 애용해왔습니다.


베르세르크, 아일랜드, 터미네이터, 강철의 연급술사 등등등 인과율에 주목한 작품들의 숫자는 셀 수가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인과율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심리라고밖에는 답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본편에서는 두가지 인과응보를 설치합니다. 상기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침해→인간에 대한 자연의 반격이라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아이를 살해한 다카노가 결국 자신이 탐욕을 부렸던 대상과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대상에게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세번째는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입니다. 은혜갚은 까치류의 클리셰와도 긴밀하게 연결되니 함께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대조적으로 제시되는 소재가 크게 두 가지인데, 지극히 자연법칙에 부합되게 행동함에도 이성과 도덕을 가진 인간보다 낫게 행동하는 짐승, 그런 짐승과 놀랍도록 유사한 혹은 짐승과 구분이 투미한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양자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인간과 대비되는 방식으로 이야기 내에서 작용하며 과연 지금 사람들의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조명합니다.


개가 없어지고 사람들도 불안해 했는데, 정작 잡은 개가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사람을, 동물 관련 프로그램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죠.


실제로 이 클리셰는 비단 호러 장르만이 아니라 여러 장르에서 사랑받는 것입니다. 당장 어린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서도 우화의 형식을 빌어 이를 풀어내기도 했고, 전설이나 설화에서도 널리 전해지는 것입니다. 상기의 은혜갚은 까치나 신데렐라의 호박마차를 끈 쥐들도 이와 같은 관점을 공유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리뷰에 싣기엔 참 어색한 일입니다만 우리네 삶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 만화 커뮤니티에 남겼던 글이기도 합니다) 4차선 도로였습니다. 제 갈길 가고 있는 제 눈 앞에 왠 개 두마리가 횡단보도 앞에서 녹색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것 참 신통하다 싶어 지켜보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빨간불임에도 무단행단을 하고 개는 그것을 멍하니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그 개들은 녹색불이 들어오자 종종 길을 건넜습니다. 비단 이런 소소한 일만이 아니라 인면수심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온갖 일들이 오늘도 뉴스를 달구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알고 봤더니 사람의 신체더라" 라는 것입니다. 해변에서 수박깨기를 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게 사람의 머리 였더라라는 괴담은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적잖게 유명한 괴담입니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존중이라는 것이 배제된다면, 인간의 신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할 수 있는지를 꼬집는 클리셰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사람을 '맨손으로' 때려죽일 수 있는 완력은 중학생만 되어도 갖게 된다는 것은 곰곰히 생각해보면 꽤나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것에 대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질감을 때론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 범주와 정의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겁니다만 과거 인간이었던 것에 대해 느끼는 것만큼 복합적이진 못할 겁니다.


실제로 하천에 처박힌 기괴한 형상이 마네킹인줄 알고 건지러 갔더니 사람이더라 사실이 뉴스를 타기도 했고, 학교 하수도 공사를 위해 주변을 헤집다 이상한 뼈가 나와서 이리저리 살펴봤더니 알고보니 사람의 뼈더라라는 식의 일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죠.


물론 이것은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었기 때문에 구축된 클리셰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사람이 사람의 삶을 사는 곳에서 기괴한 형체를 보더라도 그것이 사람의 시체일 것이라고는 도저히 연결시키지 못할 때 힘을 가지는 클리셰니까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취향


제 친구 중에 버스 노선, 철도 경로 등을 꿰고 시간 날 때마다 그걸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시엔 저도 쏘다니는 걸 좋아해서 가끔 함께 하긴 했지만, 목적지를 두고 그곳을 향했던 저와 달리, 그 친구는 말 그대로 열차나 버스를 타는 것 자체에 목적을 가졌었습니다. 이 열차는 저 열차랑 뭐가 다르고, 저 열차는 뭐가 언제 수입되서 설치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것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타인의 취향이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제가 수년간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대체 저게 무슨 시간 낭비냐며 바라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당연합니다. 다른 사람의 취향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해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존중해라'라고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터넷 유행어와 동명의 소설. 널리 표현되다 못해 관용어처럼 자리잡은 상황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타인의 취향은 어지간해선 이해하지 못한다는 소리기도 하죠.


하지만 '시체성애' 등의 도저히 사회 통념상 용납할 수 없는 취향을 배제하고서라도, 비교적 정상적으로 취급되는 취향조차 점점 고독화되고 숙성되다보면 '존중'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 역시 존재하죠. 후자의 예로 새치기를 하여 한정품을 손에 넣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고, 전자의 사례로는 특정한 물품을 수집하다 가족들의 공간마저도 침해한 가장의 사례를 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더욱 극단적인 사례-예, 범죄 말입니다-를 들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마고치를 얻기 위해 성매매를 했던 여중생이나, 더 좋은 샘플을 얻기 위해 타인의 치아나 장기 혹은 가죽을 뜯어내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벌집 수집 역시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취향입니다. 수집과정 자체가 위험하기도 할 뿐더러(물론 벌이 떠난 집을 얻는 것도 있겠습니다만), 그 무늬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관리하는 것도 마냥 쉽지 않은 일일테니까요.


이러한 마니악한 취미일 수록, 그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 오프라인 서점을 돌아다닌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 겁니다. 위처럼 목적과 수단이 변질되어 버리는 것도, 그것을 달성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제3자가 느끼는 감각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에 가까울 겁니다.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결정짓는 '취향'이라는 요소, 거기에 더해 점점 정도를 벗어나는 수단과 목적까지 어우러지며 해당 대상 자체가 두려워지게 되는 것이죠.




 마무리


이 에피소드는 마니악한 벌집수집이라는 설정을 내세웠고, 더 나아가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지 않기까지 함에도 어쩐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 분위기를 결정짓는 가장 대표적인 요소가 바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이겠죠. 그는 사람에게서 벌을 보호하기 위해 벌집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벌에 쏘이지도 않고, 벌로부터 호위받으며, 심지어 다카노에게 공격당한 이후 벌로부터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보호받기까지 합니다.


쉽게 보자면 그는 벌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연의 의사'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며 고의든 아니든 그를 계속해서 공격하고 죽이는 다카노는 '인간'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다카노의 최후는 다시 환경의 고리를 완성을 상징하죠. 흙을 어떻게 이용해먹건 사람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인간 역시 이러한 자연에서 벗어난 존재가 아님을 말벌의 생태를 통해 보여줍니다.


이러한 관점대로 바라보자면 아이는 목이 잘렸음에도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처럼 이 에피소드는 인간보다 말벌에 더 몰입하게 됩니다. 그들이 해온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일종의 확신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거죠.


진짜 오랜만의 리뷰네요. ...기분 탓인가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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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