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보통 본문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짓습니다만, 이번에는 그냥 무던하게 직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기괴한 호러"라고 말이죠.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만 확실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기괴한 호러라는 그 말 대로 상당히 정형적인 측면을 보인다는 겁니다. 연출? 나쁘지 않습니다. 이야기적인 구성?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토 준지하면 흔히 떠올리는 기괴함과 공포라는 감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흔한 이야기라고 격하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는 여러 콘텐츠에서, 심지어 10대들이 즐겨보는 공포모험물에서도 다룬 바 있는 소재입니다.


그럼에도 이토 준지 특유의 미에 대한 집착과, 기괴한 그림들은 확실히 왜 이 작가가 호러 작가로서 이름을 떨쳤는지를 떠올리게 해 줍니다.




머리없는 조각상의 줄거리는 이하와 같습니다.


미술부원 루미는 동급생인 시마다와 미술 선생님인 오카베를 미술실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튿 날 루미는 오카베 선생님이 목이 잘린 채 살해되었으며, 오카베는 이상스러우리만치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낍니다. 오카베는 자신에게 비밀이 있다며 루미에게 털어놓겠다 미술실로 그녀를 끌어들입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오카베 선생님이 만든 목없는 조각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머리없는 조각상(首のない彫刻)





본 이야기에서 쓰이 클리셰는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혼이 깃든 인형입니다. 일본의 민속신앙이라고 해야 할까요. 모든 것에 신이 깃든다는 그들의 믿음은 자연스레 인간과 닮은 인형에게도 향했습니다. 어떤 신사에선 인형을 모시기도 하고, 또 어떤 신사에선 인간의 머리카락을 심은 인형의 머리카락이 계속해서 자라나 공포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혼이 깃든 인형은 인간에 비해 수동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의지를 가져나 그 악의가 인간을 향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신체의 결손을 채우기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균형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이 본능은 때론 받아들여야만하는 현실조차 떨쳐 때론 비극조차 자아내기도 합니다. 사고로 잃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 체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신체를 잘라 갖다 붙이려 한다는 식의 도시괴담은 그렇게 드문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는 육체 도둑입니다. 클리셰의 구성상 상단의 두 클리셰와 자주 엮이기도 합니다. 인생사의 허망함을 강조할 때도 자신의 몸만큼은 언제나 포함됩니다. 타고난 몸이 재산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언제나 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때론 인간의 정신이 자신의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을 부속화하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인간의 신체는 하나의 부품으로 전락하기까지하여 이러한 육체의 강탈을 두려워하는 클리셰가 구축되었습니다.


슬리피 할로우의 한 장면


네 번째는 신체절단입니다. 당연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원형을 유지하고, 또한 유지하기를 기대하도록 본능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상에서는 이것이 늘 지켜질 수 없죠. 어느 정도 체제가 정립된 과거사회에선 이러한 신체절단을 극형에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목이 잘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던 방식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죽음에 이르는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양면성은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이어집니다. 범죄의 은닉의 수단을 위해 사람의 신체을 잘라내는 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시체의 손괴에 대해 따로 법규를 마련해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작품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목없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알아봄에 있어 가장 우선해서 인식하는 것은 얼굴입니다. 이러한 얼굴, 머리가 없는 존재는 아무리 다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인간에게 편안한 감정을 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이 어디에서 불거지는 지에 대해서는 철학적인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과학적으로는 '뇌'를 빼놓고서는 논할 수가 없죠.


마지막은 역시 하루 아침에 바뀌어 버린 사람입니다. 늘 함께 하던 소꿉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데면데면 대하는 모습은 견디기 힘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면? 그것만큼의 공포도 없을 겁니다. 실제로 이 클리셰 또한 널리 이용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귀신 역을 배우 이광기씨가 소화했죠


예. 전설에 고향에도 나왔던 "내 다리 내 놔"와 결을 같이하는 작품이라는 겁니다.





최상단에서 '정형화', '흔한'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예. 그렇습니다.


공포학교, 그리고 학교괴담, 지옥선생 누베 등의 작품에서 '인형이 사람의 몸을 노린다'는 이야기대로 해당 에피소드를 전개했던 바 있습니다. 학교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형태인 사물은 크게 셋인데 보건실의 해부인형, 미술실의 아그리빠 등의 인형, 마지막은 운동장의 공부하는 소년상 등인데- 상기의 세 작품들 중 전자의 둘이 미술실의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과장 좀 보태서 등장인물만 달라진 동일한 에피소드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기는 합니다. 장소만 달리하여 고스트 스위퍼에서도 백화점의 마네킹과 엇비슷한 이야기를 (신체절단이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하기도 했죠.


학교괴담


그렇기 때문에 색다른 재미를 느낍니다. 각 작품마다 지향하는 분위기에 차이가 있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연출하는 것은 동일한 소재라도 차이를 발생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역량이 개입되고, 표절작과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구분됩니다. 그리고 저는 호러 작품으로서의 정통적인 재미는 이토 준지의 이 작품에서 즐길 수 있다 표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70, 80년대 고어 호러 무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기묘한 성적인 매력과, 괴기한 디자인,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까지.


그러니까


좀비오2


이런 느낌?


...그래서 제가 이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