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과연 오늘 쓰는 글이 과거에 썼던 글과 소재가 겹치지 않나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이렇게 타자를 두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시기가 다소 왔다갔다 하고, 또한 이런저런 사실관계가 틀리기도 했겠지만, 저라는 블로거가 어떠한 방식으로 만화라는 문화를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따르는 길이라 감안하시기를 바라며, 이렇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언젠가 애장판과 신장판이 발매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을 넘어서게 되면서 출판만화시장은 급격한 위기를 겪게 되고, 만화를 즐겼던 세대들은 나이를 먹어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추게 되면서 이들이 즐겼던 만화를 보다 고급화된 사양으로 재출간하여 판매한다는 일종의 윈윈전략이라고 소개했었죠. 물론 여기서 재출간이라는 이름으로 말하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기본적인 질을 갖추기 못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애장판이라는 이름을 붙인 채 발매되었음에도 완결까지 발매되지 않는 황당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었습니다.


복간(復刊) 절판등이 되어 더 이상 발매되지 않는 책을 다시 발매하는 것을 말하고, 복각(復刻)은 다시 책을 출간할 때 원본을 재발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실 혹은 손상 등의 사유로 원본을 모방하여 다시 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데 일곱개의 숟가락 등은 기존의 판본을 다시 펴낸 것으로 복간이라 할 수 있고, 광고컷 혹은 검열 등으로 칸이 비워진 부분을 독자적으로 채워 발매한 일지매 등은 복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복간작'들 역시 넓게 보자면 이러한 범주에 포함됩니다. 다만 변화한 만화의 위상, 그리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함께 결부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복간인가?


애장판 신장판 열풍을 넘어 복간작이 출간되는 이유는 상기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필터링을 넘어 남겨진 보석같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찌보자면 '낡은 외형'에 '진부한 소재'들을 가진 이 작품들이 당시 만화를 보며 자라온 세대 외에 다른 이들에게도 반향을 일으켰던 것을 설명하기엔 모자라다는 것이죠.


저는 이 과정을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다른 나라도 그러합니다만, 한국의 경우 근현대사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적잖은 요소들이 많이 손실되었고, 외세에서의 영향이 잔존하여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일히 분류하고 되살리고 기록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되었고, 이 불편함과 피로함으로 인해 긍부정적인 것 모두를 살피는 대신 오직 긍정적인 과거만을 기록하고 미래만을 추구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이 유력 정치인에게서 나오기까지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혼란은 당연히 민족적인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단일민족 혹은 그러한 단일민족에 준하는 방식으로 역사 교육을 받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이러한 부재는 견디기 힘든 일이니까요. 더욱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이름의 민족주의적 성향까지 2000년대 시점에서조차 먹혔던 게 사실이니까요.


자연스레 이러한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을 문화계에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예컨데 록음악에 국악을 결부시키기도 하고, 뮤지컬에 한국역사를 배경토록 하고, 힙합에 판소리를 가미시키기도 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있고, 나쁜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이 한국적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느냐라는 것조차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죠. 


만화의 경우도 이러한 한국적인 것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만화는- 예,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방학기작 바람의 파이터는 남고 도서관의 최고의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인기작은 시대를 불문한다는 거죠.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여기에 세 가지 사유를 꼽고 싶습니다.


첫 번째. 한국적인 것에 대한 불분명한 기준. 일본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만화 강국이 한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고, 여러 역사적인 얽히고 설키는 것을 통해 문화적인 영향도 적잖게 받았습니다. 90년대 한국 만화에서의 일본식 그림체를 비판하는 신문기사를 찾는 일도, 김수정 작가에게 원로 만화가가 "넌 어느 일본 만화를 베꼈느냐?"라고 물었던 일은 더 이상 유명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장르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해 쉽사리 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되지 않습니다.


두번째. 역사적인 분단과 단절.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조선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역사에 대해 배우지만, 정작 한국 사람들은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에 가지 못합니다. 재평가되는 정도전에 대한 콘텐츠가 사랑받음에도 선죽교에 가지 못합니다. 또한 여러 전쟁과 침탈, 독재로 인해 주요한 역사적인 기록, 문화재, 증인들이 존재치 않게 되어 제대로 된 역사적 구심점으로 작용치 못하게 된 현실적 한계의 영향도 존재합니다.


세번째. 엄숙주의. 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트렌디 사극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였습니다. 만화 역시 이러한 시도와 성공작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상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지 못해 일정 수준 이상의 고증이 이루어 지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함께 결부되며 그 높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컨데 그리스로마 신화로는 인기 좋은 작품을 그려도 한국 신화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거죠. 이처럼 특유의 엄숙주의는 역사를 포함하여 '한국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창작의 자유를 최소한도 보장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묘사함에도 후손들의 종친회가 방영금지 처분을 요청하는 일은 결코 낯설지 않죠. 더군다나 당시 만화는 저급한 문화로 치부되어 엄숙주의적 잣대는 더욱 강해지고, 지지자들의 세는 약해져 결과적으로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는 것에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우영의 삼국지처럼 단순히 배경이 서양이나, 중국이냐는 한국적인 것과 직결하는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말로 단순히 배경이 동양이냐 한국이냐는 한국적인 것과 직결하는 요소가 아니었다는 거죠. 당시 작품들에 대해 가지는 독자들의 한국적인 것에 대한 요구의 딜레만 여기서 기인하는 겁니다.


독자들은 성숙하여 한국적인 것을 요구하는데, 정작 현 세대의 창작자들은 독자들과 별다르지 않은 관념을 가지고 있고, 더욱이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제대로 된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거기다 기껏 내놓은 작품에 대해서도 아주 높은 잣대를 적용시켜 시도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죠.


결과적으로 독자의 이러한 수요는 과거의 작품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필터링을 거친 정수이자, 어째서 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를, 동시에 현세대의 독자와 다른 잣대와 관념을 가지고 만들어진 과거의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야사에서 역사로, 만화에서 문화로


당연하지만, 야사는 정사에 비해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가치로서의 능력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야사가 정사에 비해 역사적인 가치가 적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합니다. 야사는 야사 나름대로 당시의 정황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고, 당시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줍니다. 누구 말마따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려청자도 유물은 유물이라는 겁니다.


만화 역시 그러했습니다. 당시로는 그저 흥밋거리에 불과하던 작품들이 시간이란 이름의 덧칠을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님들이 즐기던 작품을 함께 즐긴다는 것은 묘한 연대를 선사하였고, 이 무형의 선이야 말로 한국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공감대가 만화라는 하나의 매체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올라서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먹대장과 007 우주에서 온 소년 이 두 작품- 아니 비단 이 작품들만이 아니라 적잖은 복간작들은 대전의 만화 박물관에서 비치된 것 정도만을 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2000년대 출간되어 서재에 꽂아 넣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쬬. 물론 금세 절판되는 일이 생기기는 했습니다만....


동시에 이 작품들은 당대의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왜 당대엔 이런 내용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수정되어야 했는지, 왜 등장인물이 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저러한 행동을 하는지 당대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 이 작품들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역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상기의 역사적인 가치, 두번째는 원본을 비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비교적 저렴한 값에 복간판을 비치할 수 있다는 것, 세번째는 작품 그 자체로서의 가치 때문에 말입니다.


이러한 복간만화는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만화의 지위를 상승시켰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그동안 상승한 만화의 지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별다른 이견을 듣지 않았으며, 실제로 만화가 문화라 불리는 현상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면이 적잖았습니다.


예컨데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는 고우영의 삼국지 복간판은 꾸준히 사랑받았습니다만,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우영 화백 정도의 입지를 가진 작가조차 이러할 진데, 다른 이들은 어땠을까요.


어렵게 구판본을 구하고 복간작업까지 거친, 의욕적으로 내놓은 작품들이었지만, 판매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출간 그 자체에도 의의가 있지만, 긴 시간만에 다시 볼 수 있게 된 작품을 이렇게 빠르게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 이 작품들을 즐겼던 세대들이야 별다른 정보 없이도 이들을 구매하는데 나설 수 있었지만, 쏟아지는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이 작품들을 선택할만한 젊은- 혹은 어린 독자들에겐 어필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던 거죠.


실제로 복간작업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원본이 소실된 경우가 적잖을 뿐더러(이 부분은 2000년대 기준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만화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도 이런 일이 2000년대에 발생했을 정도죠. 60~70년대 그것도 당대 한국이 기준이라면 절대다수라고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의 의사에 반하는 형태로 이미지에 변형이 가해지는 것이 비일비재한 검열의 시대였기 때문에 원본이 의도한 이미지를 복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심지어  작가가 복간작업에 협조해 준다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달라진 그림체등이 이질감을 남길 뿐더러, 기초가 되는 출간본을 구하기도 어려운- 즉, 보관하는 이들 자체가 적다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사전작업을 했음에도, 아니 그랬었기에 일찌감치 절판시켜 버렸다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책장을 다채롭게 하고픈 마니아의 입장에서 한 말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마니아의 발언은 일반 구매자의 그것으로 일반화할 수 없고, 객관적인 지표가 되기도 힘듭니다. 실제로 당장 이렇게 말한 저부터가 화려하고 다채로운 요사이의 작품들 사이에 이러한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으니까요.


2000년대 들어 여러 만화 기관에서도 복간 만화를 펴냈습니다. 라이파이 등이 그러하죠. ...문제는 판매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하기가 힘들었다는 거죠.(진짜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영리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도 힘들고...


하지만 이 작품들도 한국적인 것에 대한 완벽한 답이 되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고, 동시에 이러한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소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이것이 곧 한국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는 될 수 없었습니다. 관념은 변화하기 마련이고, 과거의 정답이 미래의 정답이 될 거라곤 누구도 생각치 않았습니다. 그저 참고의 대상일 뿐.


과거와 현재를 뒤져가며 찾으려 했던 '한국적인 것'에 대해 이제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터져나오게 되었습니다. 추상적인 표현은 제쳐두고, 이젠 정말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마저 갖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논의의 기간이 짧다고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좋은 자질을 가진 작가들을 두고도,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간동안 독자들이 납득할만큼의 최소한의 답도 내놓지 못했다니요.


이젠 정말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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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