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봅시다.


한국적인 게 무엇입니까? 여러 답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대답은 대개 추상적이며, 애매하며, 오묘할 겁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만, 뭔가 아닌 것은 찝어 낼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는 답하기에는 참 애매한 개념이 바로 한국적인 것입니다.


한복만 입으면 뭘 하건 한국적인가? 그렇다면 활을 든 선비가 용 모양의 기를 쏘며 "물어라"라고 소리치면 그건 한국적인가? ...어때요, 어렵죠?


저는 이 한국적인 것을 명쾌하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세 가지 방향으로 답해보려 합니다. 첫번째는 금일 다룰 역사적인 문제에서, 두번째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세번째는 생활에서의 측면에서 한국적인 것을 쉽게 답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음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각 개념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사실 조금씩 관점만 달리할 뿐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적을


알고 싶으면 결국 역사를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다른 국가와 한국을 차별화하는 가장 명확한 요소이며, 한국인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주는 요소니까요. 실제로 역사를 다룬 콘텐츠들은 한국적인 콘텐츠로 자주 평가되며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역사는 민감하며, 또한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역사는 한국인에게 존재하는 역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군 성노예 사건, 동북공정, 독도 등등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인식과 결부되며 한순간 비등점까지 강렬하게 끓어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와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 정도로, 역사에 대해 입체적인 시각과 이에 대한 다양한 토의가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영향은 이후로도 잔존합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느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느니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도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낮은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단순히 남침을 남한이 침략당한 거 아니냐는 식의 말장난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김구, 신채호 등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아니라고 하죠.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의 교육이 과거의 실패를 통해 미래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실제로 역사가 중요하다면서 연예인의 말투에 꼬투리를 잡지만, 실제 역사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공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곡되었다고 알려진 드라마에는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지만, 정작 그를 다룬 역사서적은 금세 절판되어 버립니다. 대한민국의 정당의 흐름은 커녕, 몇 명 되지도 않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나열하지도 못하는 대학생의 숫자도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역사에 대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한국인들은 이러한 역사를 제대로 관조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이러한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국사 및 근현대사의 선택과목화입니다. 역사 교육이 고등학교 1학년때 끝이 나 버리고, 문과를 선택하여 근현대사를 공부하더라도 수능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박정희 시대 즈음해서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성인이나 노년측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때론 그들의 경험이 역사의 객관적인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로 작용하기도 했죠. 역사를 다각도로 살필 수 없던 시기 형성된 관점이, 이후 폭발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상과 괴리를 일으키며 고착화되어 버린 겁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배경과 사유


이렇게 된 이유는 이하와 같습니다.



몇십년, 아니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 다리 건너면 역사적인 비극적 사건의 당사자들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죠.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러한 비극적 현대사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바쁜 현대를 사는 것이 우선이지 먼 옛날의 일을 파헤치는 것을 권장하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글을 쓰는 2016년 시점에서는 이것이 극에 다다르다 못해 이래서는 안된다는 비판이 자정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도올 김용옥 등이, 이후로는 설민석 등이 새로이 역사붐의 상징처럼 나타났죠. 그럼에도 아직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적인 소재로는 여전히 쓰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결국 역사는 손쉽고 가볍게 다룰 수 있는 대화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역사는 압도적인 기록을 남긴 조선과, 일제강점기, 80년대 후반 이전까지에 커다란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결국 일제에 패망했고, 일제강점기는 상상도 하기 싫은 한민족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8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저항의 역사 그 자체였고요. 이러한 시기의 일들을 입에 쉽게 올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근현대사의 여러 비극을 직접 겪거나, 그런 이들의 자식과 손자가 사회구성원의 주축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된다는 거죠.


A: 이승만 때까지도 조선과 일본의 문화의 묘한 뒤섞임이 있었다더라.

B: 우리 할머니가 그 때 제주도에 살았어.... 그 때 할아버지가....

A: 아... 그랬군요...


'흥미본위로 다루기엔 오늘 날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역사가 너무나 슬프고 무거워 대화의 소재와 파고듦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 이것이 첫번째 이유입니다.


이념의 논쟁은 사실 합의를 통해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되는 경향을 보여야 합니다만 의도적으로 이념, 지역, 세대, 성별간에 분쟁을 야기하려는 이들이 계속해서 있어왔기에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영화 변호인을 둘러싼 이런저런 일


두 번째는 이념의 논쟁으로 인한 터부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두고 국가를 이끄는 양날개라고 비유하곤 합니다만, 그거야 정말 교과서 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2016년 대통령의 탄핵 이전을 대상으로 이야기해도 이는 그리 크게 변치 않습니다.


한쪽은 다른 한 쪽을 끊임없이 빨갱이로 몰았고, 다른 한 쪽은 그 한 쪽을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유산으로 여겼습니다. 일례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40년 전부터 주장했던 것을 두고 아직까지도 색깔론을 들먹이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며, 민주당 계열의 인사가 대통령이 되면 안보가 크게 위험해진다는- 아니 그걸 넘어서 북한에게 나라가 넘어간다는 선동을, 두 명의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이 나온 이후에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이념과 인식에 대한 괴리가 벌어진 상태이니 인물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공과 과를 동시에 따질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차라리 입을 다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념적인 대립은 역사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재세력과 그 독재세력에 맞서는 야당이라는 두 정당의 대립이야말로 대한민국사 그 자체니까요. 문제는 양자의 대결이 단순한 보전과 개혁을 정의내려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첫째로 안보라는 외적인 요인이 존재했으며, 둘째로 독재라는 내적인 요인이 존재했으며, 셋째로 특유의 공동체 의식-예컨데 지역, 성씨, 학연 등-이 얽혀 있었습니다. 논의가 더욱 복잡해진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요. 부부끼리도 정치관이 다르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데, 사회생활에서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한다고요?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A: 강진석은 김일성 외삼촌 아냐? 그런 사람한테 건국훈장 줘도 돼?

B: 아니, 어쨌건 강진석은 독립운동가고, 그 사람 죽고 나서 김일성이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켰잖아? 북한에 기여를 한 것도 아닌데...

A: 그럼 김일성 삼촌한테 훈장을 주자는 거야? 이 빨갱이! 그러고보니 넌 노동당 당원이었지! 노조나 만드는 놈!

B: ....


실제로 야당의 의원이 국가보훈처장에게 자신들이 당하던 색깔론을 제기하는 모습이 2016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죠. 이미 죽은, 거기에 현직에 영향을 끼칠만한 후손도 없는, 또한 출신지역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는 선정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저러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일상생활에서 역사적 이야기를 나누기가 얼마나 힘들지 대략적으로 체감이 가능할 겁니다. 


역사는 결국 당대의 사실에 후대의 해석이나 인식이 덧대여진 형식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이미지 밖의 사실에 놀라기도 합니다. 비단 이하의 역사적 사건들로 인한 단절들만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인식의 차이에서도 단절은 발생하여 당대엔 당연했던 사실이 이후 놀라운 것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영화 순수의 시대의 남자 캐릭터들은 귀걸이를 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 당대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역사적 단절로 인한 이해의 어려움입니다. 상단에서도 언급했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래로 촉발된 이념전쟁, 그리고 독재는 역사적인 단절을 낳았습니다. 개발과정에서 소실되어 버린 민간전통문화,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버려 유실된 문화재, 일제강점기로 인한 정체성의 손상은 시간의 흐름과 얽히며 심각한 역사적 단절을 낳았습니다. 스스로는 자신을 고조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반만년의 역사의 일인이라 여기지만, 정작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한국적인 것은 별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고 있습니다.


이 거리감은 한국적인 것에 대해 지나치게 큰 무게와 기대감을 부여하였고,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도외시하여 결과적으로 더 큰 단절을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에 대한 이해도는 결여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소속된 무언가에 대해 알아본다는 것과, 단순히 책에 서술되어 암기해야 하는 자신과 무관한 어떤 사건들의 나열은 그 몰입과 흥미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세번째는 자신을 역사의 당사자라 여기지 못하는 단절입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과도 상통합니다. 지역이건 이념이건 오랜 시간 활동해온 대표자 혹은 집단에게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되니까요.




 역사의식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의미했습니다.


그토록 한국적인 것을 찾아 헤매면서 정작 그 기준이 되어주어야 할 역사라는 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왜곡된 거리감을 갖게 된 것이죠.






...지금 반쯤 정신 나가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보통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슷한 시기의 작품들로 예를 들곤 합니다만 그럴 처지가 되지 못하여 생각나는대로 2000년대초중반을 넘어 2010년대의 작품들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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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