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유령사무소 출동개시'입니다. 10년에 달할 정도로 길게 연재되며 단행본 39권 분량으로 마무리된 작품의 첫 발자국이라 할 수 있죠.


언젠가 나루토 리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만화의 액기스는 결국 이야기의 발단과 배경설명이라 할 수 있는 1권과, 이야기의 마무리와 주제를 확고히 하는 마지막권, 그리고 이야기의 절정부라 할 수 있는 가운데 권입니다. 이 세 권으로 작품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고, 그 고저가 균질하며, 어디를 짚어도 일관성 있는 재미의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다면,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인 거죠. 고스트 스위퍼는 그러한 작품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크게 세 가지의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앞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이해를 위한 기초적인 배경의 전달을, 두번째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은 해당 작품이 지속되어 연재할 수 있는 재미의 포인트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를 충실히 해냈을 때, 그 작품은 이목을 잡아끌 수 있는 거죠.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은 첫문장만으로 작품을 볼지 보지 않을지 결정하는 냉정한 존재니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고스트 스위퍼는 상당히 정석적인 출발을 행했습니다.


이 작품의 여러 재미 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패러디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간단한 컷 안에 별에 별 패러디가 녹아있곤 하거든요. 예컨데 저 별이 마빡에 그려진 용모양 수도꼭지 말입니다. 의심할 바 없는 당대 판타지 성인 아니메에 나왔던 그걸 개그식으로 그려낸 겁니다. 그 성인 아니메도 드래곤 퀘스트 같은 작품들에 나왔던 걸 패러디한 거였고요.


이 작품은 80중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유행했던 퇴마물이라는 소재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간에 기력을 겨루는 소년만화적인 느낌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불거지 공포를 재료로 삼는 호러만화도 아닙니다. 오히려 퇴마물이라는 장르를 풍자하고 우스개로 삼는 명랑만화에 가까운 인상마저 주죠. 정통퇴마물을 바람의 검심이라 비유한다면, 제가 말하는 명랑만화는 은혼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옙. 저는 이런 장르에 약합니다. 그래서 이 만화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는 거고요.


여하간에 이 작품은 퇴마물이라는 장르를 선택했지만 공식화된 배경을 답습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부터 퇴마물 장르가 흔히 선택하는 클리셰 세 가지를 부정하고 시작하거든요.


첫째. 비밀주의. 이 작품은 노골적으로 귀신퇴치를 돈받고 파는 '무당'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보통의 작품들은 독자들의 몰입감을 위해 귀신에 의해 고통을 겪는 이들만이 귀신을 볼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합니다. 이 일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네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반대로 귀신이 존재하는 세상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지옥문도 서푼 닷냥이면 통과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실현시켜 버린 겁니다. 해충퇴치를 위해 세스코를 부르듯, 악령이 나타나면 고스트 스위퍼가 등장하는 세계를 전달했죠.


둘째. 헌신적인 주인공. 퇴마물의 대표격으로 평가되는 공작왕 등의 작품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헌신적인 수련승의 모습을 그렸던 것과 철저히 대비됩니다. 이는 비밀주의 노선과 배치되는 구조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흔히 귀신은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고, 이들을 보고 또한 퇴치할 수 있는 이들은 특별한 존재이곤 합니다. 이러한 특별한 능력엔 그에 부합하는 책임이 있어야 드라마가 완성되죠. 하지만 본작에서는 귀신을 볼 수 있는 것이 보통이고, 귀신을 퇴치하는 것은 일종의 기술자에게 주어진 역할입니다. 본작의 주요인물인 루나는- 예, 블랙잭과 같은 수전노 계열의 캐릭터인데, 그 속엔 일말의 '진심'도 존재치 않습니다. 장호동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셋째. 무서운 귀신. 돈이 없어 성불하지 못하거나, 혹은 산에 미쳐 날뛰는 귀신의 모습은 흔히 퇴마물에 등장하는 귀신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인간적이라고 표현할까요? 곤란을 겪는다는 여관주인조차 인체나 건물에는 무해하지만 기분이 나쁜 벌레를 퇴치하듯 그들을 대합니다. 되려 미쳐 날뛰는 장호동에 귀신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로 인해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퇴마장르라기엔 일상물적인 성향이 강하고, 일상물이라기엔 캐릭터의 개성이 강합니다. 배틀물이라기엔 전통적인 화법을 아예 반대로 따르고 있죠. 처음엔 취향이 갈릴 수 있겠지만, 익숙해지면 이만큼이나 매력적인 작품도 또 없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화산분화, 온천, 일본 전통복을 입은 여자귀신까지. 이후 정발된 작품들도 왜색으로 골머리를 앓았었는데 잘도 연재되었네요.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원한을 가진 귀신이 자기 대신 그 자리를 지켜줄 사람을 죽이려 든다는 것과 미련을 가진 귀신이 자신의 한을 풀어줄 사람을 찾는다는 지극히 전통적인 설화의 전개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세한 부분은 상기의 요소들로 인해 완전히 반대로 작용합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본 작의 황금 트리오라 할 수 있는 루나와 장호동, 낭낭의 관계도가 확립됩니다. 돈을 위해선 자기 빼고는 다 팔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루나와, 그런 루나의 육체에 홀려 자기 목숨까지 내놓으며 혹사당하는 장호동, 그리고 어리버리하게 아무나 잘 믿으며 자기가 뭘 해야하는지까지도 상대에게 완전히 맡겨 버리는 낭낭까지. 각자가 트러블 메이커로 얼마든지 작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활용성이 높고, 개개의 매력도 겹치지 않으며, 무엇보다 왁자지껄 시끄럽게 진행되어도 매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죠. 전통적인 소년만화의 열혈한, 냉혈한, 미련함을 적절히 재구성했달까요.


특이한 것은 본작의 이야기의 화자와 진행자는 장호동이지만, 이야기의 주체는 루나에 한없이 가깝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그 해결의 주체가 여성이며 그 여성에 미쳐 날뛰는 것이 주인공격인 캐릭터라는 점도 특이하고요. 본 작에서의 루나라는 여성 캐릭터는 남성 작가가 그리는 독자가 주로 남성인 작품과 달리 여성을 객체화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객체화하는 것은 바로 장호동입니다. 루나는 때때로 눈요깃거리가 되긴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팬 서비스에 그칠 뿐 캐릭터성을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루나라는 캐릭터는 이야기의 부도 아니며, 몰입의 대상도 아닙니다. 장호동은 이러한 거리감을 대놓고 무시하며 "너희도 사실은 이렇잖아"라면서 독자에게 덤벼들기까지 하죠. 이 특이한 구도 역시 본 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매력포인트입니다. 마찬가지로 직관적으로 진행자와 몰입의 대상을 일체화시킨 보통의 작품에 비해 약간의 허들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말이죠.


자. 이렇게 첫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리뷰를 시작했습니다. 구조에 대한 이야기만 줄창 늘어놓았지 정작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단 생각도 듭니다만, 앞으로 갈 길이 머니까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할 수 있겠죠. 개별 에피소드가 많은 만화니까요.


오랜만의 만화 리뷰네요.


덧1. 본 작에서 낭낭이 산신령이 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에피소드는 훗날 장편 에피소드로 다시 되돌아 옵니다.


덧2. 등산부 유령이 음험하게 장호동을 쳐다보는 장면은 정발에선 그냥저냥 눙치고 넘어갔지만, 실제로는 산에서 얼어죽기 싫으면 벌거벗고 서로 껴안고 있어야 체온이 유지된다는 것에 장호동이 학을 떼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역한 거 같지는 않고, 검열의 대상이라고 보기엔 참 의문스럽긴 한데- 뭐 어쩌겠나요, 90년대 중후반에 국내에 정발되었던 만화 절대다수가 그랬었으니까요.


덧3. 본 리뷰에서의 인칭 등에 대해서는 90년대 중후반에 챔프 코믹스를 통해 정발된 명칭을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제 입장에선 그게 더 익숙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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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