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2017.02.15 12:11


 이 영화는


어떻게 보았느냐에 대해 이야기하며 운을 떼보죠. 블레어 위치의 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블레어 위치를 다시 한 번 재 감상 하였습니다. 이전만 못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마녀와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오텁시 오브 제인 도입니다. (...약간의 스포일러려나요?)


제목은 영제를 그대로 읽은 것입니다. 제인 도가 신원불명의 여성을 의미하는 말임을 생각해보면 오톱시 오브 제인 도(Autopsy of Jane Doe)라는 제목은 결국 신원불명자의 부검이라는 제목 정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좋은 제목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예. 뭐 패스하겠습니다.


제목처럼 이 영화는 부검을 주요한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부검 그 자체는 사실 공포영화에서 자주 소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음침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좋고, 인간이라는 친근한 형상을 범죄수단과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철저히 수단으로 전락시킨 연출이 주는 이질감이라는 것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부검 그 자체를 공포영화의 소재로 삼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결국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부검 그 자체가 전달할 수 있는 시각적 효과와 그로 인해 뻗어나가는 이야기가 제한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호러 영화의 세부 장르 가운데 슬래시 무비, B급 정서가 짙게 배어든 장기자랑류의 액션영화, 그 외의 인체개조물, 고문장르 등을 생각해보세요. 수위 그 자체도 부검을 주된 소재로 삼은 이 영화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반대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펼쳐나가는 측면에선 비할바 없는 편의성을 갖추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합니다. 장소, 시체, 그리고 너무나 분명한 목적. 장소는 부검실로 제한됩니다. 부검실은 철저한 관리의 대상이 되며, 시스템화되고 정형화되어 있기에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까다롭습니다. 그리고 시체가 소리지르고 도망치고 괴로워하지는 않잖아요? 리액션이 배제되어 있으니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쉽지 않죠. 마지막으로 범의와 범인의 입증이라는 부검의 분명한 목적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억누르는 효과를 가집니다. 부검이 주된 소재인 작품이 공포물 그 자체라기보단 스릴러적 인상을 짙게 가진 이유 또한 위와 같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부검을 공포의 소재로 삼아 충실하게 표현해 냅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죽은 자에 대한 거부감과 시신을 부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고루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부검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사회에 짙게 깔려 있습니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의사들에게조차 부검은 그리 맘편한 일이 아니라고 흔히 이야기할 뿐더러, 애초에 한국 사회에 부검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채 40년이 안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의문사한 희생자의 가족이 부검을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것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채 20년, 아니 10년도 안됩니다. 그토록 부검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이유는 결국 종교적 입장 혹은 유교적 관습에 따라 시신도 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족의 시신을 해부한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일 겁니다. 비단 가족과 같이 가까운 이들만이 아니라, 설사 죽음을 맞이했다 하더라도 시신은 한 때 살아숨쉬었던 인간이므로 그에 대해 칼을 대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 역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죠.


그럼에도 부검은 너무나 필요한 일입니다. 단순히 사인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 그가 겪었던 고통과 이유,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맞게 된 범인을 찾아내는 등의 주요한 근거가 되어 주기 때문이죠. 영화는 이러한 관점에서 충실히 부검을 묘사해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경험과 기록이 되어 후대에 계속해서 전해집니다. 이 영화가 B급 성향의 오락 영화와 달리 장기(臟器)자랑 영화로 격하되지 않은 것은 철저하게 부검의 이러한 성질을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흐름과 엮어 충실하게 잘 표현해 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미스테리 스릴러적 색체를 갖고 있는 것도 부검의 이러한 성질을 영화가 잘 소화해냈기 때문일 겁니다.


흔히 알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겠죠.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것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것을 다룹니다.


상단에서 '블레어 위치'를 보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두 영화가 그 표현의 방식에 차이가 있긴 합니다. 예컨데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존재가 불현듯 우리를 덮쳐올 때의 공포를 극한의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연출로 보여줄 것인지, 반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매개로 하여 전달할 것인지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지향하는 바는 비슷합니다.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일상. 그리고 그러한 일상을 살짝만 벗어나면 엄연히 존재하는 악의가 우리를 덮쳐온다는 식의 구성이죠. 이러한 악의는 인간의 이성과 시스템으로는 쉽게 재단할 수도 없으며, 처리할 수도 없어 결국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이 영화에 가해지는 변주는 흔히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아이디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의 도입부를 길게 늘여놓은 것과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물론 정당한 평가는 아니지만 실제로 이를 여러 오락영화에서 자주 사용한 소재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력하게 관습에 기대어 전개하는 주제에 "어때, 속았지?"라고 말하는 여느 영화들과 달리 영화 말미 실현이 되는 상상의 영역에 대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영화는 계속해서 근거를 쌓으며 이야기의 힘과 설득력을 더합니다. 이러한 충실한 이야기 밀도를 통해 여느 영화에선 도입부에 불과하다 비하한 내용이, 풍성하고 든든한 구성으로 다가오고요.


이 영화는 호러 영화가 가진 미덕이 결국은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그것을 충실히 되살리는 연출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하였습니다. 상기의 블레어 위치와 이 영화에 대한 비교를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대한 평을 남겨볼까 합니다. 블레어 위치보다 나았습니다. 한 발 뺄까요? 최소한 저한테는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