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이야기2017.07.15 20:27


 얼마 전


비슷한 일이 두 번 있었습니다.


웹툰 아일랜드를 보던 중 한 캐릭터가 나오는 순간 바로 스크로를 내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아일랜드를 보지 않고 있는 중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던 중이었습니다. 여름을 노린 호러 영화였는데, 그 소재를 확인하곤 바로 채널을 돌려 버렸습니다.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장산범. 숨바꼭질 역시 그 해에 논란이 되었던 현관문 낙서 괴담을 영화화한 것이었죠.


이미 제목에서도 작성했지만- 예. 장산범 이야기입니다. 비단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장산범이라는 소재가 '지금 시점에' 메인 스트림에서 회자되는 것이 당혹스럽고, 황당하기까지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 말이죠.


언젠가 아일랜드의 슈퍼 스트링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헤이든 크리스텐슨을 옛 트릴로지의 아나킨 스카이워커 이미지에 덧씌워 버려 기존 팬들이 반발하고 들고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심경이라고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좋았던 작품에 사족을 덧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요. (...이 블로그가 아니라 딴 데서 했나...?)


아일랜드에서 장산범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의 감상의 배가 넘는 정도의 당혹감과 회의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차라리 창작 요괴였다면, 차라리 너무 흔해 빠져 더 이상 이용되지 않는 요괴였다면, 차라리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달라 반발을 불러낼 정도의 요괴였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의 범주 내의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같은 의미에서 올해 개봉되는 영화 장산범 역시 이러한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의 글은 만화 아일랜드나 영화 장산범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장산범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한계에 대해 다루는 글이며, 아무리 진부한 소재여도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얼마든지 존재하듯, 장산범을 다루었다고 해서 결코 좋지 못한 콘텐츠가 될 거라는 이야기 역시 결코 아닙니다. ...애초에 장산범은 현 시점에선 개봉도 안했죠.


여하튼 그렇다 하더라도 소재 하나에 이렇게 회의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언뜻 이상해보입니다. 제가 어째서 이런 스탠스를 취하게 된 걸까요.


십수년만에 복귀한 멀더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초자연현상 신봉자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음모론과 초자연현상의 전도사같았던 엑스파일이 근 20여년을 논리적으로 논박당하고, 그러한 엑스파일을 반박하는 콘텐츠가 주류가 되고 또 그것을 일신되는 등 환경 자체가 뒤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당대 좋은 콘텐츠로 평가되었더라도 결국 시대적인 상황에 보다 와닿는 소재는 따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첫째. 장산범은 괴담으로서의 효력을 이미 상실한 콘텐츠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유행이 지났다는 겁니다. 이 유행은 복합적인 표현입니다. 먼저 인터넷 유행이 지났다는 것에 대해 언급해야겠네요. 장산범은 대표적으로 '만들어진 괴담'에 해당합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법한 소재들이 불특정 다수의 재미를 위해 뭉쳐져 만들어진 인터넷 시대의 유행이죠. 이것 자체를 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인터넷의 유행은 정말로 빠르게 흘러가고,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겐 너무나 허무맹랑한 이야기기에 어느 대상층에게도 무게감을 갖지 못합니다. 실시간으로 장산범 콘텐츠를 즐겼던 이들에겐 "저걸 왜 지금하고 있어"라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고, 애초에 전통적인 괴담에 익숙한 세대들에겐 "하다하다 저런 것도 나오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인터넷에 워낙 화제가 되어 공중파에서도 한 두 차례 다루려 했지만, 실제 전문가들이 잘라서 "그런 게 있을 리도 없고, 그런 괴담이 있을 리도 없다."라며 말해 이야기적인 생명력이 아예 끝나버리기도 했고요.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장산범이 속해있는 크리쳐류의 괴담의 수명 자체가, 사실상 20세기 말미 그 수명의 끝을 고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21세기 들어서도 여러 괴생명체에 대한 콘텐츠는 여전히 생산되고 있습니다. 접근법과 작품 내 소화방식을 보다 현대화하여 풀어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전과 같은 파급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네스 호의 네시나 백두산 천지의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과학을 통해 세상의 기원을 바라보며, 심연 너머로 향하는 현대인에게 있어 이러한 괴물은 그다지 피부에 체감되는 괴담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한반도 최강의 맹수가 멧돼지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크리쳐물 특유의 소재의 허황됨을 반박하는 자료와 창작물까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몇몇 미세한 변주가 가해진 정도로는 장산범이라는 소재를 특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장산범은 이미 이미지 소비가 너무 많이 되었다는 겁니다. 인터넷 괴담-그 괴담을 빌린 웹툰 등의 콘텐츠-그것을 비틀어 희화한 또 다른 콘텐츠 등등등....

<ⓒ 조석, 마음의 소리, 2006> 767 전설의 고향 2013 중에서


둘째. 민담으로서의 가치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즉, 새삼스레 변주될 만한 소재의 작품이 아니라는 겁니다.


장산범은 목소리로 다른 사람을 꾀어 잡아먹는, 이른 바 '호환' 내지 '구미호가 홀린다' 류의 괴담의 아류에 해당하는 괴담입니다. 문제는 그 원전 격인 호랑이와 구미호의 이야기적 생명력 자체가 이미 현대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호랑이는 멸종상태이고, 구미호는 커녕 일반 여우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니 괴담 자체가 성립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공백을 가상의 괴물인 장산범이 채울 거란 기대는 너무 시대착오적이죠. 현재 한반도 최상위 맹수가 멧돼지로 불리는 상황이니까요.


괴담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세계와 가치관이 반영되어 힘을 가집니다. 옛 유럽에서 목없는 기사에 대한 괴담은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것이었다면, 현대 사회에서 목없는 폭주족은 난폭운전에 대한 경고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엇비슷해보여도 지향하는 가치나 교훈에 차이가 있고, 지향하는 가치나 교훈이 동일하더라도 나타나는 표상이 달라지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장산범은 지금 시점에서, 딱히 그만의 차별적인 민담으로서의 가치도 교훈도, 의미도 없는 소재입니다. 차라리 한반도에 멸종되지 않았을 호랑이를 찾는 게 더 나을 정도로요. 이미 시대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공존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소재는 핵과, 인간의 무지함과, 오만함과, 안일함 등입니다. 자연-그것도 특정한 숲이나 계곡으로 한정되는-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장산범이라는 소재가 그나마 효력을 가지려면 현대사회가 배경이 아니라, 조선시대가 배경인 것이 좋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바엔 구미호나 호랑이의 괴담을 더 탄탄하게 구성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이야기인 것은 매 한가지이니까요. 원전이 가진 무게감을 따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상황이니 장산범을 다룬 콘텐츠는 어지간히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갖추지 않는 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곳아 가능하다는 것은 소재에 국한되는 작품이 아니라는 소리기 때문에, 반대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행도 지났고 이야기적인 의미도 없는 장산범을 굳이 끌어올 필요가 없는 거죠.


세번째는 단순합니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 사용한 유행어가 결국 시간이 흘러 보았을 때 작품 내적으로 별다른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넘어, 되려 한 때의 유행이었기에 몰이브이 대상에서 꺼려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드래곤볼의 물로 보지마 등으로 대표되는 당대 시류를 대표하지만 정작 작품과는 합치되지 않는 방식의 유행의 도입이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데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언젠가 언급하기도 했었습니다만, 창작 위키 계열의 하나인 SCP재단의 경우, 기존의 괴담을 수집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괴담을 창작하기도 합니다. 예. 인터넷 괴담 장산범과 완전히 같은 관점에서 만들어진 콘텐츠입니다.


길게 이야기했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인터넷 시대 의도를 갖고 만들어진 괴담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 자신도 적잖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도 결코 나쁜 일은 아니죠.


다만 만들어진 괴담에 대한 재해석 없이 단순하게 차용한 흔적이 너무나 역력하기에 맥이 탁 풀려 버리는 겁니다. 최소한 오래된 괴담은 그 시대에 걸맞는 배경이나 소재,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최소한의 당위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산범은 그렇지 못해 참으로 얄팍하잖아요. 결국 유행에 의해 유명해졌다 그 정도 수준인데- 과연 이것만으로 의도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결국 오늘 이야기가 기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단순히 소재에 국한되는 작품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넓혀 이미 흘러간 옛 유행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기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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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