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이야기2017.09.14 10:12


 제가


자주 인용하는 유희열의 코멘트가 있습니다.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친한 뮤지션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본인이 만들었던 곡 가운데 가장 아끼는 곡과, 가장 아쉬운 곡, 그리고 가장 실망스러운 곡을 꼽아야 했던 때였는데- 전자들에 대해선 순순히 답하던 그가 본인에게 별로인 곡을 뽑아야 했을 때는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아꼈습니다. 그 자신이 작곡자이자 작사가이기에 저런 태도는 상당히 의문스러웠는데 이후 이어지는 그의 말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곡을 좋아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공공연히 그렇게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정확히 저 표현은 아니었지만, 저런 뉘앙스의 표현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찌보자면 황희 정승의 검은 소, 누런 소 이야기와 같은 논지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뭐... 지금에 와서는 검은소 누런소 중에 누가 더 일을 잘하냐, 사실 황희가 제일 잘한다라는 농담이 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 자신도 엇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언젠가 MBC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박진영이 나와 2PM와 빅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을 계기로, 2PM와 빅뱅의 라이벌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빅뱅이 메가히트를 연달아 한 이후 휴식기를 가지던 시기였고, 그 사이 2PM이 예능과 노래 양자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새로운 아이돌의 정형을 제시했던 때였습니다. 지금이야 두 팀 다 장기공백이 예상되고, 이런저런 사건을 겪은데다, 부침 이후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정상에 올랐나 등등의 여러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때보다 훨씬 쉽게 우열을 논할 수 있겠습니다만, 당시만해도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뜨거운 감자라면 뜨거운 감자였죠.


하지만 저는 그러한 점을 감안해도 너무나 손쉽게 순서를 정했습니다. 두 팀이 나란히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격차가 있다 생각했고, 분명한 근거도 있었습니다. 이후 전개되는 여러 상황을 보면 저의 그런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었고요.


그런 이내 저는 크게 당혹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언급하지 않은 쪽의 팬이 굉장히 상처를 입었다는 게 내심 드러나더라고요. 언뜻 왜 이런 것에 상처를 받나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것이 상대에게는 굉장히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를 수습하기 위해 상당히 고생했던 기억입니다.


요는 이겁니다. 대중작품은 필연적으로 '대중에 공개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자연스레 다양한 성향의 개개인에게 각각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에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갈리게 되는데, 때로 작품에 대한 박한 평가가 그것을 즐겁게 즐긴 자신에 대한 평가로 여겨지는 상황이 닥치게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평론가들이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놓고 평한 것에 대해 관객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길게 흘러 따지고 보면 평론가의 말이 그리 틀린 것도 아닌 경우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죠.


그리 전문적이지도 않고, 그리고 그리 긴 시간도 아닙니다만 여러 콘텐츠에 대한 리뷰 등을 써오다보니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하나 나왔을 때 존재하는 무수한 평가와 그 평가만큼이나 무수한 팬들의 취향을 하나하나 다 고려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모난 부분은 모두 쳐낸채 그저 분량만 채우는 글이 될 위험성이 아주 커진다는 것을요. 팬들을 다 고려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팬의 입장에선 굉장히 중요하지만, 사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그만큼의 무게를 갖지 못하는 게 커플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누굴 택해도 다른 커플링을 지지하는 팬들에겐 안좋은 소리를 듣는거죠. 뭐. 조악한 비유였습니다.


이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면, 마찬가지로 모든 팬들을 다 고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같은 경우는 대중성을 지향하는 오락작품을 즐겨 예를 들곤 합니다. 개인적인 믿음이긴 합니다만 결국 흐름은 상업성과 오락성이 작품성과 결합했을 때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죠. 저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다른 작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개성이라고 판단하는데- 그 개성은 다름 아닌 고립에서 나옵니다.


문제는 이 고립에서 나온 특색이 모든 팬들에게 긍정적으로 평해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중작품으로서의 대중성과 창작자로서의 개성이 병존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창작자들이 씨름을 벌이고 있는 논제이며, 때론 이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실패해버린 작품들도 적잖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이 작품에 온전히 드러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창작자에게 있어 작품이란 수용자가 무리없이 받아들이는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시선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창작자는 작품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는 반면, 수용자는 작품의 일부에 자신을 대입하여 파악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괴리가 발생하게 되죠. 흔히 이야기적으로는 매끄럽지만, 일부 캐릭터에 생동감이 없다는 비판이 바로 여기에서 불거집니다. 애초 특정한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에 캐릭터성을 부여하게 된다면 이야기적으로 산만하게 되거든요. 이야기적인 구조로 작품을 파악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못할 비판일 겁니다. 특정한 캐릭터의 팬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달리 하라 요청하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하튼 팬들을 다 고려하는 건 쉬운 일도 아니고, 사실 딱히 옳은 일도 아닐지 모릅니다. 작품의 해석과 정의의 최전선에 서는 창작자의 독특한 지위를 고려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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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