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복잡하고 다변화되면서, 이제 더 이상 나이는 현명함의 상징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의 현명함이란 마치 인상비평과 같이 한 눈에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타개해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일이 닥칠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대안을 내세울 수 있을지 정도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명함은 당연하게도 전문성을 요하는 특정한 분야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사에 대한 관점, 보다 넓게는 사회의 질서에 대한 태도,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다하기 위한 노력, 인간이 아닌 것에게까지 미치는 정서에 기한 접근방식에까지 서로 괴리된 면모를 보이는 상황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세계대전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되다시피하였고, 일정 수준 이상의 풍요를 향유하게 되면서 물질적인 가치관에 대한 추구 역시 이전만 못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또 문화적 황금기를 거치며 다양성이 보장되고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으로 세상을 파악하게 된 영향이 큽니다. 세번째로는 발달한 기술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인식의 폭을 넓히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레 사회적으로 이전에 존재치 않았던 고도의 도덕성과 규칙을 요구하는 수순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세상의 변화에 꾸준히 발맞추지 않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문화적으로 도태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어리석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현명하다는 것에 대한 전제는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이것은 클리셰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과거 현명한 마을 장로라는 정형을 갖추었던 클리셰는, 어느 순간 그 역할은 유지한 채 주체를 완전히 달리 하게 됩니다. 되려 어린 아이가 현명하게 조언하고 본질을 깨우쳐주게 되었죠. 금일 다룰 어른보다 더 현명한 똑순이 캐릭터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사건 대한 조언부터 연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합니다. 왜 이런 클리셰가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을까요.


참고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비단 소녀 캐릭터만이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클로이 모레츠나 다코타 패닝, 김민정, 박시은 등처럼 소년 캐릭터에 비해 이러한 깍쟁이+똑순이가 결합된 소녀 캐릭터는 수십년째 널리 사랑받고 있고, 소년 캐릭터에 비해 보다 분명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른보다 더 현명한 꼬마 캐릭터라는 표현은 이후 다룰 클리셰- 누구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는 어린아이와 겹치는 면이 강하거든요.


500일의 썸머의 클로이 모레츠. 이러한 똑순이 캐릭터는 어른의 행동을 보이는 반면, 때론 지극히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이며 독특한 매력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 아역들은 이후 성인 연기자로도 훌륭하게 잘 적응해 내기도 합니다.


고민을 가진 청년이 집으로 돌아오자 나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그의 고민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청년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지만, 여동생은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며 그가 다다를 결과까지 파악하고 "그래. 너 하고싶은 대로 해라."라며 달관하거나 "그런 식으로 했다간 반드시 실패한다"라며 닦달하는 태도까지 보입니다. 다소 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닐 겁니다.


이러한 장면이,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가 클리셰가 여러 문화권에서 널리 이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효과는 어떤 것일까요.


세 가지 효과를 가집니다.


첫째. 어른을 초라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아이 앰 샘의 다코타 패닝은 순수를 강조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억압하는 어른들의 면모를 꼬집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아이도 아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는 어른이라는 캐릭터는 여러 면엔서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는 교과서에 배운 대로 세상을 살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이상과 원칙을 외면하죠. 이것이 잘못되고 결국 큰 문제를 낳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개인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회피합니다. 결국 아이들의 세상풍파에 찌들지 않은 조언은 우리가 원칙을 외면하는 것에 대한 잘못을 지적합과 동시에 정답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둘째. 상황의 본질은 결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어른의 닳고 닳은 관점이 되려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을 낳을 때 아이가 이것을 명백하게 타파해 줍니다. 도중의 복잡한 과정을 생각하며 행동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조언하는 똑순이 캐릭터는 당장 행동하기를, 그리고 때론 복잡한 계산보단 마음이 담긴 행동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연애의 박시은. 이러한 계열의 소녀 캐릭터들을 보노라면 쟤들이 나보다 연애를 잘 해도 몇 배는 잘 하겠구나 싶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캐릭터들은 작중 나름대로 잘 풀리는 연애생활을 하곤 하죠.


마지막. 귀엽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할 법한 조언을 가슴팍에도 미치지 않는 어린 소녀들이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하면, 그 자체로 참 절로 미소가 지어지거든요. 이 경우는 조언하는 아이가 정말로 특별할 정도로 똑 부러진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똑순이 캐릭터 상당수가 여기에 속할 겁니다. 당장 예시로 든 500일의 썸머에 클로이 모레츠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죠. 물론 이 하위 케이스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여동생이 되려 자신보다 여자친구를 더 잘 이해하더라라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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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