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2017.09.09 05:12


 처음


M. 나이트 샤말란이 감독한 영화 싸인을 보았을 때 받았던 생각은 다른 게 아니라, "이거 예전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각본을 썼던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오마주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자는 외계인, 후자는 뱀파이어를 소재로 삼아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소 황당한 발상이라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를 보고나면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세부적으로 닮은 부분이 적잖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두 영화는 전개상의 과정과 특성, 이야기의 발단부, 그리고 특유의 취향이 상당히 맞닿게 만들어져 있거든요.


싸인은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묘하게 저평가 받아왔는데, 이건 아예 클리셰되다시피한 우주전쟁의 틀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일 겁니다. 아예 우주전쟁을 리메이크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도 그 비판을 받았는데 심지어 세균도 아닌 물과 나무가 약점이었다라니... 당장 "수증기는 어떻게 할 건데"라는 반론이 튀어나오게 되는 겁니다.


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앞서. 주의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겠죠.


첫째.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 이 글은 올 여름 초 7월달에 쓰겠다 마음먹고 제목만 작성해뒀다 방치된 채 지금까지 흘러왔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해치우겠다는 마음을 먹고 휘갈겨 쓰는 것이니 여러모로 중구난방 어지러울 겁니다. 그래서 최대한 간략하게 써보고자 합니다. 흐름도 부자연스러울 테고요.






두 영화는 각기 '잃어버린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싸인에서는 멜 깁슨이 연기한 신부가,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는 하비 카이텔이 신부 역할을 담당하고 있죠. 이들은 각기 배우자의 죽음을 계기로 신에 대한 믿음을 잃고 성직을 포기합니다만, 영화상의 시련을 계기로 그 믿음을 되살립니다. 전자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후자는 사이드 스토리로 전개됩니다만 양자가 전개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점은 배제할 수 없죠.


또한 그를 위해 가족을 주된 요소로 내세웠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부서져 버린 가족, 그것을 지키기 위한 가장, 하지만 외부에서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가해지는 부담까지. 그리고 이 가족은 잃어버린 믿음을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뭣보다 이 두 영화는 바로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행동은 앞서지만 뭔가 부족해보이는 동생과, 성숙하게 대처하는 듯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위기를 몰고오는 것 그리고 가장 크게 결핍되어 불안정한 것은 다름 아닌 형이라는 점이 닮았습니다. 영화는 이 형제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측면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예컨데 싸인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동생을 '아들의 의부'정도 되는 위치로 본다면 영화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전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기한 리차드 게코를 주의집중장애를 앓고 있는 변태성욕자가 아니라 형에 의해 그것이 익숙해진 인물이라면, 영화는 정 반대의 관점으로 읽히게 됩니다.


아이답지 않은 두 아이들이 영화 내에 실마리로 작용한다는 점도 같습니다. 이변을 일찌감치 알아차리는 클리셰 가운데서도 특기할 정도로 선지자적인 면이 강한 싸인에서의 아이들은 두 어른이 나아가야 할 바를 지정해주고, 도움을 요청하다 결국 세스 게코에게 감화되고 이윽고 그를 구원의 길 앞까지 이끌어내는 케이트는 지금까지 달려온 세스의 길을 관조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전개상의 특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두 영화는 각기 외계인, 흡혈귀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만, 정작 이 두 요소를 빼도 이야기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착각'이었다 말해도 범죄스릴러무비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고 있다 보이기도 하고요. 두 영화 모두 두 요소가 등장할 때 영화의 분위기가 급변하며 영화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구조적 방식을 취하는데, 이 부분도 꽤나 닮은 꼴입니다.


이외에도 창작자가 직접 영화에 모습을 드러낸다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특유의 버릇을 들여 묘사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하지만 두 영화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결국 우리에게 일상적인 그 무엇인가가 다른 외부의 그 무엇인가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영화에서는 그것으로 나무와 물을 내세웠는데 말뚝과 성수는 비교적 뱀파이어물에서 자주 활용되어온 무기이기는 했지만, 아예 가구를 직접 뜯어 사용하거나 직접 축복하여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싸인이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가장 강한 의심이 든 것도, 과학적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저 요소까지도 그대로 끌고 왔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입니다. 나무와 물을 무서워하는 외계의 침략자라니. 실제로 이 부분은 과학적으 말도되지 않고, 심지어 이야기적으로 현실성을 무너뜨리는 요소라고까지 비판받았던 바 있죠.


본 영화에서 게코 형제의 모습은 사실 꽤나 인상적입니다. 동생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늘 그런 동생에게 휘둘리는 형의 모습은 여러차례 창작물에서 활용되어 왔던 것이고, 영화 내에서의 마무리는 미처 이러한 형제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tv시리즈에서 전개가 그렇게 되는 거겠죠.


물론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설사 제가 말한 것처럼 오마주한 것이라 하더라도 두 이야기가 가리키는 지향점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재미와 특성에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의 정체성을 해치지도 않고요. 하지만 저러한 유사점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창작자의 능력과 그것을 장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뭐. 요컨데 연습해야겠다 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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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