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프로그램2017.08.24 07:14


 역시


재밌네요. 오랜만에 봤는데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1999년 제작된 이 드라마는 총 2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5.16 쿠데타 이후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당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화제가 되는 '거지'가 메인인 작품이었습니다. 춘삼과 연지 두 사람의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고 이윽고 이어지는 관계는 당대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오늘은 이 드라마를 시청함에 있어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이야기하고,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천해 보려 합니다.


먼저 이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주의해야 하는 사안을 이야기해보죠, 왕초는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장군의 아들 시리즈의 아류(... 라고까지 말하면 다소 박하기는 합니다만), 그 갈래에서 뻗어져 나온 콘텐츠입니다. 실제로 장군의 아들-왕초-야인시대를 보다보면 단순히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정도를 넘어 공통의 정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언급한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소리입니다. 주요 인물 가운데 몇몇은 아예 창작된 캐릭터일뿐더러, 실제 현실의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도 괴리가 너무 심해 당대에도 화제와 논란이 되기도 했었으니까요. 특히 일부 캐릭터에 대한 미화가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예컨데 김춘삼의 경우 작중에선 우직한 거지로 도둑질도 거짓동냥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직한 성격입니다만, 실제 인물에 대해선 이런저런 법적인 도덕적인 문제가 많았다 이야기되고 있죠. 뭐. 이것까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춘삼은 작품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현실과 대비되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에서도 문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행적 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성격과 마지막의 모습까지도 알려진 정치깡패 이정재를 묘하게 의리있고 대중을 무섭게 여기는 식견있는 인물로 그린 점, 친일과 공산주의 정당에 소속되었다 결국 우파 쪽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결국 반란까지 일으키는 박정희를 이상적 성격의 왕초와 동일시하는 대사까지 나오니까요. 지금보면 아찔하죠.


(물론 드라마의 방영시기가 1999년이며, IMF 이후 소위 말하는 박정희 향수가 일어났던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이야 친일행적과 남로당 전력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집권 과정에서의 불법성, 대통령 집권 이후의 공만큼 과가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만, 그땐 그렇지 못했죠. 실제로 박정희 코스프레를 하는 정치인이 나타나는가하면, 아예 그의 딸이 정계에 진출할 정도였...)


또한 등장인물의 가치관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역사상 엄연히 존재했던 구악들과의 동거는 드라마에서도 다루어지는데, 주인공 일행이 이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금 말하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일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컨데 그 시절(일제강점기) 친일파 아니면 거지라는 말은 당사자인 거지가 진짜 친일파에게 하는 말이기에 작중에서는 이론의 여지없는 상당히 무게감 있는 말입니다만, 이것을 시대도 사회적인 위치도 다른 제 3자가 인용한다면 전혀 별개의 의미로 해석되어 버릴 수도 있죠.


유투브에서 왕초 검색하면 고화질로 전편 mbc클래식 채널에 올라와 있습니다. 에피소드가 뚝뚝 끊겨서 조금 귀찮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작품을 한 번쯤 추천해 보려 합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민초를 다뤘습니다. 상단의 친일파 아니면 거지라는 표현이나, 거지는 밥 굶고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거지같으면 거지다라는 말은 본 작품의 성질을 잘 설명해 줍니다. 결국 우리네 뿌리의 삶을 다루었기에, 그렇게도 어려웠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또 거지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로 고난의 과정에서 거지로 사는 장면을 삽입한 드라마는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만,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지가 메인 콘텐츠가 되어 진행되는 작품은 정말로 드물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본 작에서의 배우들의 모습과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차인표의 경우 특유의 껄렁거리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연기를 상당히 잘 해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의 인생캐릭터에 김춘삼을 꼽고 싶을 정도로요. 멸치가 별명일 정도로 비쩍 마른 사람치곤 상당히 몸이 좋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거야 뭐 창작의 허용이라고 보고 넘어갑시다.


홍경인은 과거 직공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동운동가를 연기했었는데, 본작에선 멋모르고 우익단체에 소속되어 빨갱이 때려잡겠다고 설치는 철부지를 역할도 소화했습니다. 물론 일부 에피소드기는 합니다만, 둘 다 무섭게 잘 어울릴 정도로 연기력이 탁월합니다. 이야기의 중심도 아닌 지점에서 단독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데 저 사람이 저렇게 연기를 잘했었지라면서 다시 떠올렸습니다.


송윤아도 훌륭합니다. 어찌보자면 정형이라 할 수 있는 순정파 캐릭터라는 점은 왕초도 마찬가지지만, 춘삼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이라는 비교적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윤아가 연기한 연지는 당대 시대상과 여성 캐릭터라는 한계가 고루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매력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여기엔 전적으로 그녀의 연기력이 작용하였습니다. 박보살의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 쌀쌀맞게 연기하는 장면에서 김자옥의 연기의 질을 따라가는데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까마귀 역을 연기한 이혜영은 사실상 유일한 여자 거지라 예쁜 옷을 입지 못해 속상했다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실제로 출산씬 이후 처음으로 여성 일상복을 입은 이후 드러나는 실루엣을 보면 왜 그렇게 속상해 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요. 하지만 그러한 점을 떠나보면, 그녀가 연기한 까마귀는 너무나도 본작에서 중요하게 기능했고, 또한 급변하는 시대상에 다양하게 맞춰 연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산 이후 사실상 캐릭터가 완성되어 종료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요.


허준호는 개인적으로 본작의 최고 캐릭터인 발가락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기했습니다. 어느 순간 악역인데 실질적인 위협은 더 이상 끼치지 못한다는 애매한 상황에 닥치는 데도 불구하고, 특유의 비주얼과 배우의 호연이 어울리며 매씬에서- 심지어 굴욕적으로 굴복하는 순간에조차 몰입하게 만듭니다.


맨발을 연기한 윤태영은 이 당시 이미지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혼을 실은 바보 연기로 사실상 극의 웃음을 주도했으며, 날파리역의 홍경인, 도끼 역의 윤용현 등이야 개그 캐릭터적 성향이 강하니 콤비가 잘 맞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전혀 의외인 캐릭터들과도 이렇게 저렇게 엮이는 걸 보면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앵무새 역의 김세준, 김두한 역을 맡은 이훈, 이정재 역을 연기한 정준호, 쌍칼 역의 박준규(예. 야인시대 전에 여기서도 쌍칼을 연기했었습니다) 등도 충분히 극을 긴장감있게 몰아가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포인트는 바로 김두한 입니다. 야인시대건 왕초건 결국 이 작품은 90년작 장군의 아들의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작품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두한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작품의 방향을 결정짓는 매우 중대한 요소였습니다. 김두한이 주인공이라면 장군의 아들과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는지가 중점이 될 것이고, 김두한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어떻게 김두한을 다루어야 독립된 주인공의 정체성도 지키면서 동시에 역사에도 기록된 김두한을 충실하게 묘사할 수 있느냐라는 고민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죠.


이 작품은 언터처블한 존재로 다루어진 김두한의 역사상 부정적인 면을 어느 정도 다루어 내는 것을 통해 그를 극복해 내려 했습니다. 예컨데 친일로 의심되는 단체에 몸을 담았다거나, 빨갱이 때려 잡는다면서 직공들을 괴롭힌다거나, 정치에 입문하면서 높으신 분들의 일종의 해결사 노릇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장면을 넣어놓습니다. 한낱 거지인 춘삼도 아닌 것 같다며 빠져나오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급박한 상황에서 춘삼의 조언을 듣기까지 하는 장면이 나오니 김두한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팬들은 이 왕초라는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김두한이 매력이 없다거나 하다는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악역으로 나오거나 그 이하의 비중으로 나오는 캐릭터들과 나란히 비교하기 곤란할 정도의 보정은 주어지죠. 단순하고 욱하는 면은 있어도 어쨌든 근본은 선한 존재로 그려질 뿐더러, 시라소니와의 대결에서 버거워한 면을 제외하면 사실상 1대1 싸움에서 최강자로 그려집니다. 이정재와 1대1로 싸워서 이긴 김춘삼이 나보다 주먹센 사람은 처음봤다며 김두한을 띄우기 까지 합니다. 아니, 애초에 김두한이 본작에서 1대1 싸움을 가장 많이 했을 겁니다. 야인시대처럼 싸움이 메인 콘텐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또한 그가 부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유도 제공해 줍니다.  첫번째는 잘 몰라서, 두 번째는 강요를 이겨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닥쳐서, 셋째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서.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춘삼의 친구로 남습니다. 그도 춘삼도 어쨌든 서로에게 화내고 서운하다고 말해도 함께 움막생활을 했던 시기를 잊지 않고 서로를 단순한 친구 그 이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작중 몇번이고 강조되는 대사에서도 나옵니다.





뭐, 이러한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한 번 추천해 봅니다. 야인시대나 장군의 아들을 재밌게 본 이들에겐 일종의 외전과 같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줄 겁니다. 김세준, 박준규, 최상학 등 왕초에서 등장했던 인물들 중 적잖은 수가 야인시대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걸 찾는 재미도 있겠죠.


본 작의 알파와 오메가는 결국 로맨스일 겁니다. 춘삼과 연지의 로맨스가 바탕이 되어, 이런 저런 로맨스가 추가될 듯 말듯 하는데- 연장방송으로 인한 혼란을 고려해도, 예. 역시 재밌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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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