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2017.09.14 04:35


 2000년


제니퍼 로페즈가 주연한 영화 더 셀은 연쇄살인마의 심상을 시각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아래 출발한 작품입니다. 2010년대 들어 벌어지는 강력범죄들은 타인을 이해의 대상이 아닌 종속과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에 대한 콘텐츠가 다시 한 번 크게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른 바 싸이코패스들에 대한 다각도로의 접근이 이뤄졌는데, 더 셀은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할만합니다. '살인마의 심상에 대한 시각화'는 필연적으로 살인마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것을 일반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해서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찌보자면 가장 영화다우면서도 힘든 길을 선택한 야심만만한 작품인 것이죠.


이 작품에서 캐서린 역을 맡은 제니퍼 로페즈는 심리학자로서 타인의 정신에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거나, 그들이 가진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 앞에 희생자를 어딘가에 감춰두고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연쇄살인마 칼이 나타납니다. FBI는 그녀에게 칼이 감춘 피해자의 정보를 요청하고, 희생자의 마지막 모습을 본 캐서린은 그 부탁을 받아들이고,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살인마의 의식 속으로 뛰어듭니다.


살인마의 정신세계가 그 세계로 돌입한 심리학자에게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영화는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부분 역시 큰 실착인데, 내내 제니퍼 로페즈에게 무슨 일이 생길것처럼 하더니 그 부분을 통채로 들어낸 채 갑자기 변해버린 모습만 보여줘 버립니다. 뽀뽀하다 갑자기 화면이 물레로 돌아가버리는 걸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사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선 그리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어린 시절 발생한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현재 악의로 행해지는 의사에 대한 상징을 무찌르고, 내면의 연약함을 포용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극히 전형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 정형성은 이 영화의 과감한 기획과 비주얼을 깎아먹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살인마의 기괴한 정신세계'가 이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어린 시절 상처받은 영혼'으로 뒤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작중 왕으로 자칭하는 살인마의 상징은 대립과 회유의 대상에서 퇴치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립니다. 물리칠 수 있는 적이 뭔가를 빼내어 와야 하는 물리쳐서는 안되는 적보다 훨씬 무섭지 않은 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영화의 대체적인 평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의 가장 큰 영향은 바로 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 겁니다.



제니퍼 로페즈의 팬들은 이 영화를 꽤나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이의 의식속을 돌아다니고, 종래엔 자신의 정신세계에 다른 이를 받아들이기에 그녀의 화려한 그러면서도 상징적인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비주얼. 이 세 글자면 충분하겠네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적진 않습니다. 비주얼도 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구역질 나기까지하는 살인마의 변태적 성욕과 살인행위를 지켜보고, 이내 들어간 그의 정신세계의 기괴함과 혐오스러움은 이내 익숙해지고, 관객의 숨을 졸라대는 듯한 그 휘황찬란하기까지하던 대비는 곧 수그러들어 버립니다. 쉽게 말하자면 관객의 거부감과 흥미를 자아내는 첫번째 파도가 가장 크고, 이후로 점차 줄어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해도 살인마의 정신세계를 비주얼로 그러내겠다는 야심은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여 한 편의 뮤지컬을 본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살인마의 여러 정체성이 서로를 피하거나 쫓는 장면은 너무 진부했지만, 살인마가 가진 트라우마가 심상에 어떻게 반영되었고, 또 어떻게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종교와 관련한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은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감탄하면서 보았는데, 그것을 캐서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해소해 내는 것은 영화가 하나의 분명한 줄기 아래 펼쳐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분명히 감각적인 영상이고, 기획도, 또한 그에 수반되는 비주얼적인 구성도 나쁘지는 않는데, 이야기적인 구성이나 고저차가 그리 능숙하지 못해 그 신선함이 순식간에 진부함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차라리 처음의 수위가 끝까지 유지되었다면, 살인마가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면, 살인마가 제니퍼 로페즈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처음의 수위 정도로 묘사했다면, 경찰 캐릭터가 정신에 뛰어든다는 이야기적인 반칙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이 영화의 장르를 스릴러로 보건, 호러로 보건 훨씬 고평가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