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룰 클리셰는 이야기적인 편의성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클리셰라기 보단 연출에 가깝다는 생각도 드네요.


간단히 예를 들어볼게요.


평소부터 맞지 않았던 두 라이벌. 최근에는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하나하나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갈등이 폭발하여 서로 대립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둘의 공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공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두 라이벌 사이에서 불거졌던 갈등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립니다.


익숙하죠? 이 클리셰와 비슷한 클리셰로는 내부의 갈등이 외부의 사건으로 해소된다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정직하지 못하다는 남녀간의 갈등 문제가 스파이 사건으로 해소됩니다.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유의미하게 작용되고 종료된 케이스라 이후에 다룰 작품과는 다릅니다.


클리셰라 불러도 될 정도로 여러 장르에서 쓰입니다.


가족물에서도, 배틀물에서도, 스릴러물에서도 자주 쓰였죠. 서먹했던 부자가 여러 사건을 거치며 친해진다, 제3의 적과 맞서싸우던 전사들이 친해진다 등등 어떤 주체를 삽입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의 관계가 서로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운 놈은 뭘 해도 미워보이고, 고운 놈은 뭘 해도 예뻐 보이죠. 심리적 갈등이 물리적 사건을 겪으며, 서로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인해 이전의 심리적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어찌보자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리고 이것이 이야기적인 갈등을 해소시키는 것에 대한 장치로 활용하는 것도 스무스하게 이어지는 일이고요.


가장 헛웃음 지으면서 봤던 케이스입니다.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에서 가족, 친구, 연인 문제가 동시에 터졌는데 좀비 습격 한번에 모든 게 해결되었습니다. 고민을 깊이 다루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에 특별한 전환을 불러오는 것도 아니어서 뭐하냐 싶던 생각이 들었던 에피소드가 있었죠. 시즌3였나... 4였나...


문제는 이것을 무비판적인 차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적인 갈등을 해소하는데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방점은 이겁니다. 갈등이 해소된 이후, 이전의 갈등은 없던 것으로 취급됩니다. 사실 이건 일어나기가 아주 힘든 일이죠.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도 이전의 사유로 인해 헤어짐이 반복되듯, 인간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아주 근본적인 영역에 위치한 것들은 아무리 관계가 변화해도 계속해서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이 갈등이 이후로도 계속해서 불거질 정도로 이야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처럼 보였을 경우라면 말이죠.


이 클리셰의 가장 큰 비판점은, 갈등사항이 불거지기 이전과 같이 내용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그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갈등 그 이상의 가치만 있다면 그러한 갈등은 뭉개져도 늘상 무방한 것처럼.


그래서 저는 이 클리셰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변화하고 때론 그 질조차 변화시킵니다. 캐릭터의 관계의 급변은 자연스레 이야기의 질의 급변을 유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결과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상 없는 것보다도 좋지 못한 일이죠. 뒤흔었들지만 변화는 없으니 결과적으론 질이 떨어지는 일이 되는 거니까요. 애초 갈등으로 설정하는 것이 관객 혹은 독자가 이전의 마찰과는 차원이 다르다 생각할 정도로 몰입할 정도의 수위로 설정하곤 하니까요.


연재물, 장기 방영작의 문제와도 어느 정도 맞닿습니다. 어느 정도의 갈등으로는 더 이상 위기감을 조성하기가 힘들고, 그렇다고 이전에 비해 특히 구분되는 갈등을 설정했다간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힘들고. 그러다보니 갈피를 잃고 이야기의 질도 떨어지는 겁니다.


보통 이러한 클리셰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갈등은 대개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질을 변화시킬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호러 장르에서 뜬금없이 법률문제가 불거지거나, 판타지 장르에서 리더로서의 책임에 대한 지탄을 받는 등- 이전의 이야기 진행을 위한 갈등과는 근본적인 성질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도 이것이 심상치않은 위기이며, 그만큼 커다란 갈등이라 여기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은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변혁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상태에서 미시적인 영역만을 일신하여 지속시키는 것에 비해 손이나 정성이 몇배로 들어가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수용자 입장에선 사기당했다라는 생각도 종종 드는 클리셰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