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프로그램2018.04.17 23:29


 던파를


하다 문득, 이벤트에서 와이어트라는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와이어트 어프라는 실재하는 보안관의 영향으로, 서부극에서 와이어트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 되었는데, 해당 이벤트에서도 와이어트가 등장하더라고요.


흥미롭게도, 해당 이벤트에서 와이어트가 위협적인 무법자로 등장하는데,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 작품이 있습니다. 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웨스트 월드의 와이어트 말입니다.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로버트는 작가의 입장에서 몰입해볼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웨스트월드라는 드라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과정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웨스트월드 하면 tv시리즈를 먼저 떠올릴 거란 생각이 들지만, 사실 몇 해 전까지만해도 율브리너가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뽐내며 사람들을 죽이는 안드로이드로 나온 영화가 더 유명했습니다. 이 이미지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후대 여러 작품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었죠.


저도 사실 이 시리즈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여러 가상현실 콘텐츠나, 사이보그, 로봇의 반란이나 인간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에 대한 권리, 인간과 그렇지 않은 존재의 구분 등 상당히 많은 소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인식과 실재의 담론이라는 종교적, 철학적 관점을 온전히 녹이기 좋은 이 시리즈가 tv시리즈로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했던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이후 출연진들에 대한 소식을 듣다보니 기가 막히더군요. 이미 영화사적으로 어느 정도 평가가 끝이 난 두 배우, 에드 해리슨과 안소니 홉킨스가 각자 이야기의 축으로 작용한다 했을 때, 일종의 소름까지도 돋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실망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순간도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웨스트 월드가 정말로 기가 막힌 드라마라고 생각했던 것은, 작중 일정 비중 이상의 캐릭터 누굴 놓아도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비중분배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자가 나름의 미끼로 작용하며 훈련된 시청자를 현혹시키는데, 뻔히 양대축으로 내세운 저 둘이 반전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속아넘어갑니다.


여러 콘텐츠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앞으로 접할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훈련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지만, 동시에 늘 더 자극적이고 신선한 소재와 연출을 추구하는 수용자를 만들게 됩니다. 새로움이 작품을 추구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며, 창작물에서의 창작의 본질적인 성질에 대해 이야기되고 있는 오늘 날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훈련은 정형화된 취향을 낳을 우려를 발생시킵니다. 어딘가의 누군가는 늘 처음이라는 경험을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웨스트월드는 이러한 훈련된 수용자의 해석을 갖고 노는 능수능란함을 보입니다.


드라마를 처음 볼 때부터 "당연히 이 tv시리즈는 몇가지 서술 트릭을 마련했을 것이다. 인간과 외형으로는 구분되지 않는 호스트를 이용하여 인간처럼 이야기되던 누군가가 사실은 안드로이드일 것이다." 라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출을 몇몇 캐릭터에게 흩뿌려 보였지만, 그것은 반전의 일부일 뿐, 이야기의 본질적인 부분에 까지 닿는 또 다른 구조적 변혁을 보여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와이어트에 대한 추적일 겁니다. 단순히 와이어트가 누구인지에 대한 추구처럼 보였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것은 모든 이야기의 귀결점이었습니다. 하나의 세상과 각 주민을 만들어낸 창조주의 고민의 결과였고, 이것은 결국 그 자신도 하나의 이야기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과정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예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비로 폭발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이며 그들이 남기는 역사란 또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심화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죠. 그 모든 답이, 이 와이어트의 추격기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가장 인상적으로 보는 것은, 이처럼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메타적 시선이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넘어서보겠다는 능숙함으로 이끈다는 인상이랄까요. 너무 숙달되어서 오싹오싹하기까지 합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