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2018.05.14 00:17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른들의 충고 하나를 머리 속에 담아 두어야 합니다.


"그거 하면 밥이 나와 쌀이 나와?"


자. 시작해 볼까요.


영화 그 자체만 놓고본다면 다소 개연성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였다면야 무난히 넘어갔겠습니다만, 그렇진 않았죠.


저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과장이나 비꼼이 아니라, 정말로 울었습니다. 이젠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거장의, 어떤 의미에선 정말 유치하기까지 한 발상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의 드라마를 떠올려보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영화는 이러한 과정 그 자체를 우화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습니다. (작중 로얄티 부서가 주인공 팀에게 현실적인 가장 큰 위기였다거나...)


영화는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자전적인 성질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 영화의 한꼭지를 차지하는 것은 단순히 스필버그와 큐브릭의 우정관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의 합작격 작품인 에이아이의 일면을 떠올리는 주제(몸이 가짜라도, 그가 가진 사랑이 진짜라면, 그 사람은 가짜인걸까?)와, 영화적으로 대척점에 있다 평가(대중영화의 대가vs완벽주의 작가주의 감독)받았으면서도 정작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다 평가(서로가 서로의 영화를 제일 먼저 보고 서로에게 이야기해줬던 사이)받았던 두 창작가의 구도가 영화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며 떠올린 영화1.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감독들은 특유의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는데"란 태도가 있습니다. 그 모순이, 작품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가감이 없어졌기에, 되려 거장이라 불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는 세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영화 감독.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시선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가 가진 대중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애정과 기대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게임메이커 할리데이 역시 스필버그를 상징하는 요소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할리데이의 아바타가 아노락이라면, 스필버그의 아바타는 할리데이인 셈입니다.


게임 제작자. 영화의 소심한 게임 제작자 할리데이는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고, 그것을 게임 내에 자유롭게 설치하고 풀어내길 원합니다. 그것은 영화에서 에그 찾기로 치환되며, 이것은 현실 게임에서 이스터에그를 설치한 게임 제작자들의 그것과도 같습니다. 목적만을 쫓기에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닫게 해주는 캐릭터이며, 이것은 대중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속해서 젊은 세대와 호흡을 맞춰온 스필버그의 일면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기도 합니다. 스필버그 또한 게임 마니아이자 제작자로 유명하죠.


그리고 게이머. 당연히 웨이드로 대표되는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사실상 영화의 진행자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시선을 따라 영화를 즐기며, 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통해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결국 목적을 달성한 게이머는 어떻게 이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게임을 즐겼느냐에 따라 나뉘게 됩니다. 이것은 영화의 이스터 에그 찾기와 묘하게 결부되며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기준점이 되어 줍니다.


이들을 달리 말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요. 당연하지만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도 훗날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제가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연스레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에 대해 잘 모르는 제3자들에게도 종종 이야기 하게 됐는데, 만화가 쓸모없는 것도 아니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밥도 나오고 쌀도 나온다"는 걸 어필하는 거였죠. 드래곤볼을 가장 자주 이야기했던 것도 완결된 지 오래된 작품이 계속해서 역대급 수익을 거두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신작이 나와서 마블 영화 쪽으로 바꾸었지만.


"밥이 나와 쌀이 나와"는 제게 사실 상당히 뼈아픈 말입니다. 너 이 블로그 하는 동안, 만화 관련된 일 하는 동안, 글 쓰는 동안 딴 거 했으면 지금 그러고 있겠냐는 식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나름대로 황금펜이니 베스트블로거니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저조차 저러한 말에 내성이 없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은 오죽할까요. 아니, 저 말은 사실 여러 창작자들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키는 말일 겁니다. 배고프던, 그리고 자기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 자책하는 시절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좀 더 뒤로 되돌아가 보면, 제가 영화나 만화를 볼 때도 저 말을 정말 질리도록 많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엔 책이라도 한 자 더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표현이었고요.


이처럼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즐기는 것은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일종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요. 여전히 사회는 유형적인 가치를 만드는 것이, 무형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우월하다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고요.


스필버그는 이러한 가치에 막혀 여러 사건을 겪었습니다. 단순히 영화를 제작하는 비용을 투자받는 것에서부터, 더 나아가 홍보하거나, 수익으로 영화를 평가받거나 하는 일들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만드는, 즐거움을 전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그러한 물질적인 가치였을까요? 그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즐겨왔던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고, 지금에 와선 존재 자체만으로 인정받는 거장이 되었습니다. "밥이 나와 쌀이 나와"라는 말에 "밥도 나오고, 쌀도 나온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죠.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선배 창작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도 단순한 방식을 통해 설명합니다. 이 영화의 발상은, 상단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어찌보자면 참으로 유치하고 단순합니다. 여러 문화적 아이콘을 출연시켜 공통의 목적을 이루도록 하게 하자는 것이니까요. 한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캐릭터의 판권료를 일일히 지불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경제적인 일일까요? 하지만 스필버그는 이것을 시도하고, 심지어 해내기까지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게 돈이나 배타적 권리의 행사는 아니라는 걸 그 스스로의 행동으로 입증해 보였습니다. 오직 그와 같은 무게감 있는 선배 창작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낸 겁니다. 어찌보자면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거친 콘텐츠 시장에서 유아적이기까지 한 꿈을 실현한 것으로까지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의 말이 "밥도 나오고, 쌀도 나오던데"라는 대꾸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며 후배들에게 힘을 주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에는 밥과 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그게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죠.


이스터에그나 영화의 사이드 스토리 없이도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데드풀이 온갖 이스터에그가 있으면서도 그 자체가 재미있는 액션 코미디이며, 이스터에그가 데드풀의 메타적 성격을 보다 강화해 주는 것처럼 말이죠. 대비되는 클로버필드10번지는 영화만으로는 영화상 소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기에 감상 이하의 평가를 하곤 했습니다. 그 자체로 영화의 방향성을 보다 확고하게 잡아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거죠. 애초 영화의 소품이라는 것은 모두가 감독의 의지하에 설치되는 것인데, 그 모든것에 방향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걸 나쁘게 볼 수는 없죠.


영화는 게임을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게임을 하였는가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단순히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이 과연 게임 제작자가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에게 바라는 유일한 가치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게임 제작자는 게임의 곳곳에 신경을 쓰며 그 나름의 규칙을 깔아둡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플레이어를 위해서죠. 게임 제작자에게 있어 플레이어는 이미 게임을 즐겨주는 시점에서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입니다. 제작자는 그들이 보다 게임을 다채롭고 흥미롭게 즐기길 기대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스터에그를 심어 두는 거죠.


이것은 당연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치환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치환됩니다. 조금 더 한정짓자면, 대중문화를 즐기는 이들에 대해 적용되는 이야기가 됩니다. 너희들이 밥도 안나오고 쌀도 안나오는 것에 열광한다 주변에서 비웃음 당하지만, 니들이 하는 행동은 세상을 보다 다채롭고 흥미롭고, 보다 살만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오직 효율적이고 이성적이고 물리적인것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라고 영화는 역설하죠.


제가 눈물을 터뜨렸던 시점은 아이오아이의 직원이 세번째 미션을 성공하고 기뻐하는 그 장면때였습니다. 그 직원은 이전부터 나는 이 게임을 잘 안다, 나는 자신있다는 태도였고, 실제로 게임을 클리어했죠. 비록 이 장면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지만, 적으로 설정된 이들에게도 대중문화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다 확실히 드러낸 장면이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별 거 아닌데, 직접 보면 다릅니다.

...참고로 이미지의 아이오아이랑은 별 상관이 없겠네요.


몇차례 영화 에이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이 구상하고,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AI는 기계 데이빗이 가진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육체가 무기질로 구성되어 졌다고 해서, 그가 처음엔 프로그래밍된 것으로 움직였다고 해서, 그가 이후 가진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영화는 어떠한 의미에서 이러한 AI의 궤를 잇습니다. 가상의 세계가 있고, 현실의 세계와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의 세계가 현실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현실을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면, 과연 가상의 세계를 가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샤이닝을 영화에 꼭지로 삼은 것이 단순한 우정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야기했던 이유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현실도 게임도 적당히 즐기자입니다. 가상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를 살아가는 힘이되고, 때론 목적이 되고, 더 나아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그것을 현실로 보지 않을 이유가 있겠냐 물으며, 그것을 뒤집어 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은 현실이기에 즐길 이유가 있다고요. 대중문화의 창작자로서 참 편의적인 결말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깊이가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이것에 강하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할리데이와 웨이드의 마지막 대화입니다. 아바타 상태의 웨이드와 어린 할리데이, 나이든 할리데이는 각기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를 의미합니다. 게임 속 할리데이는 스스로가 아바타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할리데이도 아니라고 이야기하죠. SF적으로는 디지털화된 할리데이의 또 다른 자아라고 보는 것이 사실 보편적입니다만, 영화적으로 보자면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즐겨온 콘텐츠를 만든 선배격인 존재입니다. 할리데이 개인만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메타적 측면에선 현실의 스필버그라고도 볼 수 있으며, 지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미래라고도 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어린 시절의 할리데이는 단순히 할리데이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그는 웨이드의 어린 모습일 수 있고, 게임을 즐긴 다른 이들의 어린 모습일 수 있습니다. 과거를 상징하는 그는 지극히 과묵합니다.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과거가 되어 버리니까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우고 또한 대상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웨이드는 단연 우리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웨이드의 마지막 궁금증, 그러니까 게임 속 할리데이는 누구냐는 물음에 대한 할리데이의 대답이 고맙다로 끝나는 것은 또 하나의 현실에 대한 완전한 긍정(현실과 가상을 반분하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임과 동시에, 작가가 작품에 드러나는 것을 쫓아 끝없이 탐구하려는 관객과도 닮아있죠.



웨이드나 할리데이 등의 캐릭터가 스필버그를 닮은 게 우연일까요? 지금은 거장으로 불리는 그지만, 90년대초까지만해도 스필버그는 블록버스터나 할 줄 아는 감독이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평은 쉰들러 리스트나 라이언일병 구하기 등으로 완전히 반전시켰지만,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꾸준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영화는 물론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그 넓어진 저변이, 스필버그가 지금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감각을 갖고 있는 사유라 보는 이들도 있을 정도죠. 레디 플레이어 원은, 블록버스터라는 시장을 개척하다시피한 그의 일면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영화에는 꽤나 심각한 설정들이 위치해있지만, 그것이 영화의 끝까지 가진 않습니다. 타락해버린 듯한 악당은 웨이드의 깨달음과 감동을 공감하며(결국 그 자신도 게이머 였기에) 개심해버립니다. 이것은 웨이드의 깨달음이 관객과 함께 할 때 그만의 힘과 의미를 가집니다. 결국 돈돈하는 이들조차 마음 한 구석엔 그들의 인생작으로 여기는 영화나 음악, 게임 하나쯤은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음을요.


거장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발상은 지극히 유치하고, 거장 특유의 우직함 때문에 인상깊은 변주도 없습니다. 들었다놨다하는 테크닉도 없고요. 2000년대 이후 줄기차게 이용되어온 소재(당장 비슷한 이야기를 만화 유레카 리뷰에서 몇번이고 했던 듯 합니다. 정말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해요)와, 그것과 대비되는 노장 감독 특유의 센스가 별다른 시너지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영화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있습니다. "야, 너는 락 음악 처음에 뭐 들었냐"라고 이야기할 때, 폼나게 "나? 딥퍼플 들었지, 너는?"이라고 반문하고 "나는 블랙사바스"라고 대답하곤 합니다만, 실제론 버즈나 본 조비같은 경우가 태반인 걸요. 영화는 그걸 온전히 드러냅니다. 거장이니까 폼 잡을 필요도 없다 이야기하며, 대중작품의 본질을, 어쩌면 누군가에겐 그리 상징적이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고, 삶을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죠.




급하게 써서 두서가 없습니다.


그냥 나오면서 읊조렸던 내용이 차라리 더 낫다는 생각도 드는데, 막상 쓰려니까 잘 안되네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