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장르에서


자주 이용되는 클리셰입니다.


언젠가 이야기했듯, 호러 영화 속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는 일정한 분류에 따라 구분이 가능합니다. 살인행위에서 유희를 찾는 쾌락형 살인마, 스릴러적 구성을 위해 다양한 시설로 일종의 두뇌게임으로 몰고가는 퍼즐형 살인마, 일정한 도덕적 법적 책임을 물으며 인과응보적 구성에 일조하는 심판자형 살인마 등등등...


오늘 이야기할 '단독으로 살인시설을 설치하는 살인마'는 퍼즐형 살인마에게 특히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클리셰입니다.


반전을 위해 곳곳에서 사용되면서도 시설이 어떻게 지었는지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시선을 집중시키지 않으려 했던 영화 하우스 오브 데스. 


살인행위, 특히 연쇄살인 행위는 철저한 비밀 하에 이뤄집니다. 사회의 기저에서부터 촘촘하게 연결된 구성망은 하나의 인격체가 또 다른 인격체를 반복해서 살인하는 일을 거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시스템이 사각 하나 없이 완전히 뻗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여러 불운과 사회적인 무관심 그리고 몰이해로 인해 연쇄살인행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연쇄살인마들의 범죄행각은 등불 밑이 어둡다는 식으로 일어나거나, 아직까지 과학수사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시기의 일이거나, 사회적인 모순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회와 수사의 발전으로 인해 얼마든지 과거엔 연쇄살인마로 변화될 수 있는 살인자가 지금에 와선 여러 사유로 인해 한 번의 범죄 행위로 붙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연쇄살인행위는 지금에 와선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눈도주지 않는 취약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고요.


쏘우 영화 중, 그래 저거 한 두 사람이 저거 다 만들었다고 치자라고 넘겼던 사람들조차, 24시간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공개된 지역에 시설이 설치되었던 것일 땐 황당해하더군요. 최소한의 현실성을 위한 당위성은 필요한 건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 시설을 이용해 연쇄살인행위를 저지르는 살인마라는 것은 점점 허황된 것이 되어 갔습니다. 최대한 증거를 남기지 않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사건과 자신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을 범인들조차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거대한 시설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고, 또 뒤처리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허황된 일로 여겨지게 되었죠.


더군다나 사람들이 인식하고 감탄하는 시설물의 기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거대해져 점점 말이 되지 않는 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전문화와 분업화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시설물을 짓는 것도 여러 사람들의 협업을 요합니다. 설득력 있는 시설이라면 저걸 짓는데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흘러 나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 되었고, 허술한 시설이라면 저런 걸로 사람들이 죽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여기는 상황이 되었죠.


그래서 창작물은 편의적으로 이러한 시설물을 짓는 과정을 생략하거나,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쏘우처럼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다는 식으로 굴기 시작하면 비웃음거리가 되어 버리는, 철저히 비현실적인 작품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H. H. 홈즈는 워낙 구별되는 특성을 많이 지닌 연쇄 살인마여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화로도 기획되고 제작 중이라 알고 있죠.


그렇다면, 이러한 클리셰가 자리잡게 된 이유는 뭘까요. 물론 푸른 수염류의 이야기나, 압도적인 계급을 이용하여 온갖 학대시설을 지어놓고 이용하는 정신나간 귀족에 대한 이야기가 적잖게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역사 속에서도 이와 관련한 살인마가 있었습니다. 100년도 전의 현실에서 거대한 시설물을 지어놓고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을 살인했던 연쇄살인마, H. H. 홈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그는 거대한 모텔을 이용해 사람들을 유혹했고, 모텔 내 시설물을 이용해 시체를 소각하거나 유독가스를 흘러넣는 등의 살인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수십 혹은 수백명을 살인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법적으로 인정된 것만해도 수십명에 대한 살인행위였습니다.


그는 상기의 문제점-허술하게 지으면 효용이 없고, 너무 거대하게 지으면 소문난다-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을 발주하면서도, 의도적으로 건설을 중지시키는 일을 반복하여 건설업자를 계속해서 교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체 건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게 하였고, 건설비까지도 줄일 수 있었죠. 물론 격동의 시기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이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말이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