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는


새를 쫓기 위해 사람 모양을 흉내내어 만든 후 밭에 세워두는 인형입니다. 그 목적부터가 대상을 모방함을 통해 상대를 놀라게 하고, 진입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나요. 본연의 모습 때문인가요, 그게 아니면 닮은 그 모습 때문인가요. 우리가 허수아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론은 달라질 겁니다. 이토 준지의 허수아비는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이 허수아비라는 것은 대충 인간을 흉내내 만드는 것 정도에 그치기에, 그것을 만들기 위해 굳이 따로 재료를 사는 수고를 들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입다 허름해진 옷이나 산발이 되어 버린 가발같은 걸 뒤집어 씌워 적당히 만드는 것이죠. 인간과 적당히 닮았기에, 원활하게 여러 이미지가 편의적으로 뒤집어 씌워지고,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비단 동양에서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허수아비를 대상으로 한 이런 저런 괴담이 존재하고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인간의 본질일까요, 피상적인 모방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모방코자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상대방에 대한 거절일까요?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인식?






허수아비의 줄거리는 이하와 같습니다.


연달아 사람들이 죽어나가 장례식이 끊이지 않는 마을. 외동딸 유키를 잃은 누마다는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도 슬픔을 떨치지 못하고 매일같이 딸이 묻힌 무덤을 향해 갑니다. 그곳에서 만난 딸의 전연인에게 죽음의 책임을 물으며 홧김에 밭에서 허수아비를 뽑아 무덤가에 꽂아버렸는데, 어느날부터 허수아비는 서서히 딸의 모습을 닮아 가기 시작합니다. 오직 무덤가에서만 생전의 무덤주인의 모습을 닮아가는 허수아비는, 사자를 보고싶어 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 숫자가 서서히 늘어납니다. 그 가운데엔 무표정한 다른 허수아비와 달리 한과 원망에 가득찬 허수아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유키의 전 남자친구 시게루는 꿈에서 자신을 찾는 유키의 꿈을 꾸고, 잠에서 일어나면 무덤가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案山子 かかし, Scarecrow


이 에피소드는 허수아비를 매개로, 사자의 한과 원망을 푼다는 구성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의도치 않게 찾아온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왜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살아생전의 일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거나 아끼던, 반대로 내가 원망하거나 혐오했던 것들은 내가 죽고 나서도 여전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러한 발상으로 인해 사람들은 죽고 나서도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고, 죽음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 부르며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려 노력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겪은 이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일종의 위안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죽음과 탄생의 이미지는 병존하기 시작했고, 인식은 전환을 일으켰습니다.


허수아비를 시체나 죽음에 비유하는 경우도 드물잖습니다. 그 특유의 뻣뻣한 모습 때문일까요.


더 이상 죽음은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분리시키는 계기가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죽음 역시 삶에 포함되는 개념이 되었기에, 되려 살아있는 사람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허수아비는 그래서 죽음과 닮아 있습니다. 본질이 아닌 허상일 뿐이지만, 무엇을 투영시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그 연결도 살아있는 사람이 가지는 감정에서 비롯되기에 되려 살아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됩니다. 작중 연인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해친 자에 대한 원망과 증오라는 감정이 허수아비로부터 비롯된 듯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경험한 일들은 허수아비를 매개로 그들 스스로가 일으킨 환상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일들이 있다 스스로 여겼기 때문에 말이죠.






불쾌한 골짜기라 불리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과 적당히 닮았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면 거부감과 혐오감이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학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제는 서브컬쳐 전반에 널리 쓰이는 이야기가 되었죠.


실제로 적당한 데포르메는 자신이 가진 인식을 투영하여 대상을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일치도가 서서히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어중간하게 인간을 닮은 대상에 대해 이러한 투영이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동시에 닮은만큼 커진 이질감에 일종의 배척심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무엇인가를 쫓는다는 허수아비의 목적과도 합치되며 더욱 더 큰 시너지를 불러 일으킵니다.


허수아비는 인간과 닮은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간을 닮은 모습이라는 건 대상을 쫓는다는 것에 대한 부수적인 목적에 해당하죠. 자연스레 허수아비도 이러한 불쾌한 골짜기에 해당합니다. 그에 따라 허수아비는 오랜 시간 호러 클리셰로 자리잡아 왔죠.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말입니다.


예컨데 서양에서 인간과 정말 닮은 허수아비가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알고보니 사람 시체더라라는 괴담이 있고, 동양에선 요괴가 사람을 홀려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렸다는 식의 괴담이 있습니다. 인간과 어슬프게 닮았다는 점에서 거부감과 일종의 공포를 자아내고, 그에 수반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죠.


실제로 간간히 사람과 너무 닮아 화제나 논란이 되는 허수아비도 있곤 합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너무 놀라서 당국에서 교체하라 요구하라는 뉴스가 몇 년 전 있기도 했죠.


이것은 허수아비가 만들어진 모습이, 과거 인간이 받았던 형벌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사지를 포박당하고,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형벌을 받는 모습이 널리 보여야 했기에 일종의 십자가 형이 존재했고, 이러한 십자가에 다른 생명체를 매달아 일종의 장식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매달린 허수아비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이러한 학습의 효과도 있었던 겁니다.


또 다른 클리셰로는 복수하는 귀신, 연인에 대한 집착으로 끌고가는 귀신 등이 있습니다. 사자의 강한 원념이 결국 살아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으로, 너무 유서깊고 널리 사용되어서 이젠 되려 낡아보이는 클리셰이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처녀귀신이 조합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죠.






작중에서 허수아비는 생전의 한을 풀기 위해 되돌아왔다는 인상입니다.


생전에 자신을 살해했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맺어지지 못했던 사람과 죽음을 통해 맺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흔히 죽음이 갈라놓는다 표현하지만, 죽음은 계기일 뿐 결코 상황에 대한 정의는 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대상이 죽었을 때 그 모든 결말이 헤어짐으로 귀결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결국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도 닮아 있으며, 이 괴담이 단순히 사자의 귀환만이 아니라 생자의 죄책감이라는 방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줍니다.






이야기적으로는 참으로 무던한 에피소드입니다. 허수아비에 대한 여러 상징성이나, 초현실적 사건이 귀신 때문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의 죄책감이나 미련 때문이지 따질법한 요소는 있지만, 뭘로 봐도 사실 그렇게까지 특별한 에피소드는 아니니까요. 구성자체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뿌린대로 거둔다에 해당합니다.


지퍼스 크리퍼스, 쏘우, 슈퍼내추럴 등등등 허수아비에 초자연적 이미지를 덧씌운 작품은 수도 없이 많고, 그 가운데엔 신으로서 모시는 경우나 아니면 악마를 봉인한 뉘앙스의 작품도 있습니다.


저 개인에겐 분량채우기(물론 단편 모음집이니까 전혀 적합한 표현도 아니고, 사실관계에 맞는 일도 아닙니다.) 내지 손풀기 용으로 쓰였다는 인상입니다. 이야기에 핵이 되는 두 사건이 별다른 연결성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요. 사실 그리움과 원망이라는 서로 상이한 감정을 다루었으니 해석의 다양성과 이야기적 흥미를 더해주어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만, 딱히 구분되는 특이점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원망을 담은 경우엔 허수아비의 표정이 살벌해진다는 점 정도?


개인적으로는 시게루가 유키를 정말 죽음까지도 뛰어넘어 사랑하고 있었느냐가 잘 표현되지 않았다고 여겨져서 더 몰입이 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랬다면 그 정도로 사랑하는데 이상한 일은 겁난다 정도라고 판단하여 그 공포감에 더 주목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사건 자체를 달리볼 여지를 남기는 일이었는데 말이죠. 만약 그렇게 표현됐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물론 이 에피소드의 백미는 지극히 흔한 발상이고, 너무나 주변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것들로만 이뤄져 있기에(물론 요즘에 시골에 내려가 일일히 성묘하고 그런 게 드물긴 하죠.) 주변에 대입해서 볼 수 있는 공포라는 점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