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에서는


덴소드의 도움을 통해 헤포이는 배틀캐슬을 깨웁니다.





 천운? 무성의함?


한 프로 겜블러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이에게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게임을 잘 운영할 수 있죠? 역시 실력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게 아니면 배짱이 좋아서? 그것도 아니라면 상대방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는 건가요?" 그러자 그 게이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운이 좋으면 됩니다."


 우주에서 가장 운좋은 히어로 럭키맨은 기존 배틀만화의 체제를 뒤바꾸는 혁신적인 시도를 하였습니다. 우정, 노력, 승리 그 모든 걸 무위로 돌리는 행운을 통해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실제로 작중 최강자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그 자신의 힘이 어떻든 간에요.


어처구니없는 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행운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평소 크고 작은 행운을 경험해오고 있고, 참사에서도 상처하나 없이 살아남은 생존자의 이야기나 몇번의 경기만으로도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작은 축구팀의 이야기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행운 역시 여러 소식처를 통해 전해지고 있으니까요.


운이라는 요소가 실존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우연이 겹치는 이야기를 질낮은 것으로 폄하되기 쉽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작가의 역량이나 이야기의 탄탄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여건을 통해 이야기를 급격히 전개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정직한 감동을 전해주기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적당한 선에서의 행운은 독자에게 재미와 동시에 이야기의 특별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여러 신화는 이러한 우연과 기연을 이야기의 양념으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의 창작물 역시 이러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받는다거나, 문제를 봉착한 그 시점에서 주변의 도움을 얻는다거나 하는 일이 그리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는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있어 일정한 편이요소로 작용합니다. 멀리 돌아갈 필요없이 바로 그 시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 해결해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전의 단아로나 드래곤캐슬이 지극히 서양적인 외형이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였습니다. 자세도, 그리고 전투씬의 연출도 동양적인 면모가 잔뜩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덴소드는 이전의 캐슬들과 별다를 것 없는 서양식 성을 기초로 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편의성에 물들어 자칫 성의없어 보일 정도로 이야기를 단순하게 묘사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


아무리 전체관람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개연성과 설득력을 가지고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정해진 역할을 배분하는 것은 수용자가 그간 작품에 느끼고 있던 감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최소한 왜 그 캐릭터가 그렇게 행동하였는지에 대한 설정은 정립되어야 하는 것이죠.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황당하고 뻔한 함정에 빠지는 주인공 일행과, 주인공을 함정에 빠뜨리는지 은인을 만나게 하려는 건지 도통 파악이 안되는 악당의 존재는 이야기에 기운을 잃게하는 요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것이 그 어떤 계략도 무시할 만한 천운이었다면, 그것이 행운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내용 전달 역시 필요할 테고요.




 변조


정직하하고 단순한 음악은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효과가 있지만, 자칫 너무나 뻔한 탓에 쉽게 질려 버릴 수 있습니다. 익숙한 듯 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 평가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진부함 속에 새로움을 갖춰야 하는 것은 이젠 필연적인 미덕이 되었습니다.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전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 할 지라도 각 에피소드는 분명히 나아가는 한 발이 필요하고, 비슷한 듯 전개되면서도 변화하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이번 12화는 이제껏 전개되어온 이야기의 일종의 변조로 작용합니다.


 요쿠사루 시바타의 에어마스터는 이야기에 엄청난 변조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작중 단편에서 간간히 이야기의 고저차를 줄이기 위한 설정을 전달했는데,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애니메이션은 갑작스러운 상황변화로 시청자를 당황하게 됩니다.


배틀캐슬을 찾아가는 길은 드래곤캐슬과 킹캐슬을 찾아갈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적당한 단서를 찾은 후 동료들과 함께 난관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이죠. 이 기본적인 틀 자체는 결코 바꿀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깨워야 할 캐슬의 숫자는 많은 반면, 이러한 구조로는 수용자가 질리기 십상이라는 것이죠.


그에 따라 적을 바꾸거나, 전투법을 바꾸거나 하는 식으로 내용에 나르의 새로움을 불어넣기 마련이지만, 결코 이야기 자체에 신선함을느낄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동료를 깨워 적에 도전한다는 구도 자체가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필연적으로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더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변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배틀캐슬이 봉인되었다는 나사탑은 플랜트 캐슬을 떠올리게 하는 기계적 이미지에 해당합니다. 그에 따라 저는 이에 억압된 자연적 이미지의 캐슬을 떠올렸지만, 정작 모습을 드러낸 것은 플랜트캐슬 못지 않은 기계적 이미지의 캐슬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12화는 그간의 내용 전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배틀캐슬은 드라큐네스에 의해 갇혀 있으며, 헤포이는 대략적인 위치만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와 달리 어딘가로 향하는 과정에서의 고난보다는, 자기가 어디를 향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데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기연은 필연적으로 헤포이가 나아갈 바를 인도하고, 헤포이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여 배틀캐슬을 깨우게 됩니다. 크진 않지만 이러한 사소한 변조로 수용자는 이야기에 보다 새로움을 느끼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배틀의 다양성의 확립을 위한 준비


헤포이는 인간사이즈부터 거대로봇사이즈까지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하고, 이들간의 싸움이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어느 정도 제한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인간사이즈의 캐릭터는 그들끼리, 거대로봇은 거대로봇끼리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것을 나란히 늘어놓는 것도 나름 장관이라면 장관이지만, 거대 로봇과 인간사이즈의 캐릭터가 싸움을 벌이는 경우와 같은 다양성을 부여하지는 못하죠. 이러한 장면을 묘사하기엔 아직 헤포이 일행은 너무나 약하고, 적 역시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못합니다.



현재 이야기의 중점은 서로가 서로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헤포이는 일행을 모으고 마왕군은 그것을 방해하는데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그림 자체는 한정될 수밖에 없죠.


인간은 인간 사이즈의 캐릭터와 싸움을 벌입니다. 그리고 거대로봇은 거대로봇끼리 싸움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헤포이와 라이벌 관계인 류트와 과거의 단아로와 같은 매지컬 드로이드는 활약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지게 됩니다. 어디까지나 헤포이가 거대로봇을 부릴 수 있게 될 때까지만 활약할 수 있는 제한적인 캐릭터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이번 에피소드 역시 이전의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각 캐릭터의 역할을 강화하는 역할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분자에몽은 이야기의 트러블메이커로 작용하고, 미야는 적어도 배틀에 있어선 병풍을 자처합니다. 헤포이는 늘 그렇듯 최강자에 덤벼들고요.


그러나 이러한 크기 차로 인한 묘사의 제약은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또한 헤포이 일행이 힘을 기를 수록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현재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다양성을 예상하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셈이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에는 이러한 요소도 어느 정도 작용할 테죠.



 마무리


이번 에피소드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검사 덴소드는 아마 많은 분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캐릭터에 해당할 것입니다.



어느 것이 원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기에 해당하는 검 그 자체로 변하는 캐릭터는 간간히 존재해 왔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덴소드의 디자인과 변형 매커니즘은 용자 시리즈의 용자지령 다그온의 라이온과 비슷- 아니 사실상 동일한 수준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약 45cm정도의 로봇 장난감이 간신히 들 수 있는 한계 정도의 검 로봇은 아이들도 직접 휘두르며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캐릭터 산업적 노림수는 지금보아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물론 구조가 구조이니만큼 실제로 맞부딪히며 휘두를 수는 없지만 말이죠.



이외에도 시계로 변신하는 로봇같은 것도 있었드랬죠.


이제는 5단합체로봇이니, 7단변신로봇이니 하는 것들이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별에 별 것으로 변신하는 것을 실사화한 상황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심플한 이러한 만화적 변신이 와닿는 것은 단순히 제가 아날로그 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