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이야기2013.09.26 07:00


 만화의 소재


오늘은 여러 만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인 사춘기, 그리고 그를 희화한 중2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그럼, 거두 절미하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 볼까요?




 인질이 되어 버린 청소년


흔히 저는 실효성없는 청소년 관리 정책이나 문화 규제 정책을 볼 때면 이런 말을 해 왔습니다. "본인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청소년을 인질로 내세우지 마라."라고.


실제 청소년에 대한 보호나 계도 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이상의 제한을 가하는 이들을 볼 때면 대체 그들이 진정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의문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그네들의 주장에 반대의견을 내려하면 이렇게 말하죠.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엄연히 청소년에 대한 보호와 성인에 대한 규제가 다른 상황에서 양자를 혼용시켜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이는 청소년 보호에 관심도 없는 사람인냥 몰아 버리는 겁니다.


 임재원의 만화 짱에서는 현상태와 그의 아버지가 술자리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른과 청소년이 시비가 붙은 경우 결국 어른이 먼저 물러난다는 것을 현상태의 아버지가 설명하는 것이었죠. 책임질 것이 많은 어른이기에 싸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 안 싸운다는 것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전달해 주는 것이었죠. 이는 일찌감치 학원만화의 현실과 한계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청소년은 결코 벼슬이 아닙니다. 인류 전체로 보았을 때 청소년의 비율은 결국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네들에 사회 전체가 맞춘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하지만 그네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그네들의 스트레스와, 이러한 상황에서 겪는 일들은 앞으로 그들의 일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커다란 사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들을 훌륭히 양육해 내는 것이 모든 사회의 숙제라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를 이루어 내기 위해 근본적인 영역의 접근을 하기엔, 우리 청소년들은 너무 힘든 길을 걷고 있습니다.


 러브히나는 수험생의 판타지라 불리는 작품에 해당합니다만, 그조차도 설정상 '공부를 하느라 눈이 나빠져 엄청나게 두꺼운 안경을 쓰게 되었다.' 내지는 '5년 동안 공부만했다.'는 설정이 붙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수능과 입시로 팍팍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성적만 좋다면 인성은 어찌되어도 좋다는 식의 태도를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와 선생이 보이기도 할 정도죠.


혹시 제가 처음에 꺼냈던 말 기억하십니까? 청소년을 인질로 내세우지 말라는? 이 말 속에는 청소년을 수단화한다는 의미 외에도 다른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청소년의 인권을 인정하고, 그네들의 권리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마치 방임주의자와 같은 모양새로 느껴지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시겠네요. 하지만 아직 저 말 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책임도 인정하라는 말을 빼놓을 수가 없죠. 앞 문장만 봤을 때는 청소년을 무작정 싸고 도는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제가 한 주장이 가장 가혹한 부류의 것입니다. 결국 청소년이 자기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장하고 있는 거니까요.




 중2병과 방황하는 청소년


흔히 인터넷 상에서 중2병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부터 부쩍 화제가 되어 사용되는 표현으로, 공중파 뉴스에까지 진출했죠.


나루토의 작가 키시모토 마사시를 흔히 중2병 작가라고 부르는데, 이는 나루토가 가지는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나루토는 개인의 성장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가 중요한 작품에 해당합니다. 그에 따라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게 되는데, 이것을 조금은 희화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작가 본인 역시 그 시기 자신이 만화가로 살 것을 결심한 것처럼 그 당시야말로 여러 감정이 혼재된 특별한 시기라 이야기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중2병은 과거 중2라면 누구나 앓는 열병이나 성장통 같은 것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자의식이 지나치게 과잉되어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을 총칭하는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실제 중2 시절 즈음에 보이는 특성을 희화한 표현이, 반대로 현재 청소년의 태도에 역으로 영향을 받아 변질되었다 보아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닐 겁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중2병과 사춘기는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소리겠죠. 동시에 단어의 끄트머리에 병(病)이라는 단어가 붙었다는 사실로 이것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재 인터넷에서 사용되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의 중2병 만화라는 식으로 나루토를 폄하하는 것은 그리 옳지 못한 일입니다. 이는 나루토라는 작품 속 개인의 의사가 작품의 방향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인데,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 개인의 노력과 성장을 다룬 작품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연출과 묘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의 나루토는 사춘기의 그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을 넘어 올바른 어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로 묘사하는 사춘기는 주변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당사자에게도 참 힘든 시기입니다. 점점 강화되어 가는 자의식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하는 주변의 태도는 어린 시절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에 그에서 비롯되는 괴리는 개인을 괴롭게 합니다. 필연적으로 자신이 어른이 되어 간다는 사실을 반항 등의 신호로 표현하게 되죠.


문제는 이러한 반항이 정도를 지나쳐 범죄의 영역에 닿을 정도가 되어 버린 경우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청소년의 지위는 법적으로도 애매한 영역에 해당합니다. 기본적으로 성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아도 아니죠. 정신적으로 과도기이기에 불안정하다는 취급을 받지만 신체적으로는 성인에 뒤지지 않습니다. 범죄능력은 있되, 책임능력은 없는 이만큼 골치아픈 것이 있을까요.


실제로 기본적인 법적 원리는 그렇다 하더라도, 법은 물론 그 주변사람들도 청소년들을 마냥 보호하려 들지는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관념 자체는 이미 유아기에 확립되었기 때문이죠.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옳은지를 몰라서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저지르는 잘못이 어떠한 책임으로 돌아올지 관계도를 명확히 하지 못하는 것 뿐. 실제로 이러한 청소년에 대해선 반성과 개심을 전제로 삼아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내리기 마련입니다.


청소년 범죄가 성인의 범죄보다도 훨씬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이러한 연유입니다. 끼치는 피해는 성인못지 않은데- 아니 경우에 따라선 성인보다도 심각한데 처벌은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이를 악용한 청소년 범죄가 생겨남에도 불구하고 제도 자체를 개선시킬 여지가 적다보니 상황 자체는 계속해서 악화됩니다.


 

 위와 같은 딜레마는 학원물에서도 비롯됩니다. 기본적으로 배틀을 전제로 한 학원물은 어떻게든 싸움이 나쁜 것이라 설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주된 소재이기에 결국 없던 냥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맙니다. 학생같지도 않은 악역을 내세우거나 하는 것도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든 무마하려는 시도에 해당하죠.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애초에 학원에서의 배틀이 부인 경우, 그리고 주인공과의 관계가 배틀보다도 더 중요한 경우. 사상최강의 제자 켄이치의 경우가 전자고, 엔젤전설이 후자입니다. 실제로 켄이치의 츠지는 "그러다가 인생 말아먹는다."라는 표현까지 들었고, 엔젤전설의 다케히사는 아예 깡패취급도 못받았으니까요. 체인지123의 히후미는 양자가 혼합된 사례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인이 일어나는 1차원인은 누가 뭐라해도 사춘기를 맞이하며 발생하는 자의식의 과잉에서 비롯됩니다. 행위와 인식의 불일치는 모든 것의 중심을 자기 자신으로 잡은 후, 자기 외의 다른 사람은 수단 정도가 되어 버려 균형있는 시각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는 성인이 되기 위해 당연히 거치는 과정에 해당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단순히 한때의 사고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러한 원인이 일어나는 2차원인은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키는 주변환경입니다. 실상 시험교육 외엔 사실상 방치하다시피된 환경으로 인해 청소년기의 아이들의 환경은 더욱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 버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균형을 상실한 이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죠. 이러한 방식의 집단사고는 필연적으로 왕따나 학원폭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원인을 파악하고서도 교육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방치해 버리는 것이죠.


이로 인해 더 큰 문제가 발생해 버립니다. 자의식이 발달되어 가는 과정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남을 수 있는 상처가 되기 때문이죠. 중2병이라는 표현이 일정 연령대를 지칭하는 것처럼 사춘기는 개인마다 일정한 차이가 있지만 얼추 비슷한 환경에서라면 대략 비슷하게 찾아오게 됩니다. 청소년이 저지르는 피해의 대상이 같은 청소년이 된다는 점은 이러한 원인을 최대한 빨리 개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당연하지만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가해자에 대한 교화와 처벌, 가해자가 그러한 짓을 저지른 원인에 대한 파악과 반성, 피해자의 상처에 대한 치유와 배상은 모두 균형있게 조화되어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그러하지 못한 게 현실이고요.




 송 포 유 논란


뭐, 이쯤되면 눈치채셨겠지만, 오늘 쓴 글은 얼마 전 방영되어 논란을 일으킨 송포유라는 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연하지만 그 친구들도 인권을 가진 사람이고, 방송을 통해 재미있는 추억을 남기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 친구들이 방송에 나와 즐거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과거의 상처가 들쑤셔지는 다른 친구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이는 굉장히 주의깊고 조심스럽게 이루어졌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죠.


 실제로 90년대 시스터액트2 등 문제아들을 갱생시켜 꿈을 이루게 한다는 다양한 창작물이 나와 인기를 끌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애석하게도 그 사이 청소년 범죄 문제는 전 사회가 나서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고, 막연한 사랑을 통한 계도는 팍팍한 현실 앞에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최소한의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가상의 영화나 드라마도 아닌 실제 문제아를 내세운 것은- 뭐랄까 너무 무신경했습니다.

 가상의 캐릭터와 달리 실제 피해 학생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해당 예능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피해자에 대한 인권, 특히 청소년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 대한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더.


무엇보다 PD와 작가의 대응방식이 문제를 키웠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네요.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이 친구들이 저지른 잘못에 비해 비교적 작은 책임을 진 것은 그 친구들의 청소년이라는 특수한 지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청소년이라는 지위가 잘났거나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친구들이 반성하고 교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램 역시 이를 전제로 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망각한 채 오직 만남의 시점부터 변화의 가능성에만 모든 포인트를 맞추니 대중으로부터 좋지 못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죠.


어떤 입장에서는 저러한 태도가 일련의 중2병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지나친 자의식 과잉으로 다른 이는 고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엇비슷하게 여겨지더군요. 본문에선 사춘기를 겪는 중이라도 중심있는 시각을 통해 책임과 권리의 균형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그들 주변의 어른들이 그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니- 중2병은 중2의 학생들만 앓는 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여담이지만 본랜 청소년의 책임과 현 사회분위기에 대해 논할 글이 아니었습니다. 청소년기 단체로 몰아놓다보니 집단사고로 인해 중2병을 더욱 심하게 앓게된다는 이야기였죠. 물론 이 쪽도 그리 밝은 글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혼자 다니면 별 일 없이 넘어갈 일을 우르르 몰려다니다보니 커다란 사고까지 치게 된다는 요지의 글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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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