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이야기2013.10.04 07:00


 습관을 통한 훈련


음식을 빨리, 그리고 많이 먹어야 하는 대회가 있습니다. 외국까지 나갈 것도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지방의 특산물 행사에서 이러한 대회를 종종 발견할 수 있죠. 하지만 상금의 규모나 유명세 등으로 유명한 해외의 대회와 비할바는 아닙니다. 이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푸드파이터들이 참가하여 기준선을 아득히 높여 버리기 때문이죠.


 예전 무한도전에서 엄청난 속도로 많은 음식을 정준하가 먹어치운 바 있습니다. 먹는 음식의 종류를 포함한 식사량 등은 철저히 개인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게 되죠. 하루 세번씩 먹는 음식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졌다시피 푸드파이터들은 체구가 큰 사람보다는 마른 사람이 많습니다. 근육과 지방이 위를 압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보다 많은 양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죠. 또 흔히 푸드파이터 대회에 앞서선 쫄쫄 굶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위를 적당히 늘여야 하기 때문에 일정량 이상의 식사를 하고 나온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있어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은 본능적인 식욕의 발로라기보다는 일종의 훈련을 통한 결과물에 가깝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죠.


비단 푸드파이터와 같은 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엔 먹성이 아주 좋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훈련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먹성이라는 것은 개인의 성향 이상으로 습관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기 때문이죠. 믿기 힘든 이야기 가운데 위 절제술을 받은 사람이 과식을 하는 바람에 위가 늘어나 결국은 정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 이 먹성이라는 것이 독자의 구독욕(購讀慾), 작품의 감상욕(鑑賞慾)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완전히 달라진 기준


얼마 전 썰전이라는 방송에서 평론가 허지웅이 이윤석에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이윤석 씨가 평생 봐 온 것들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본 것이 훨씬 많을 걸요?"


얼마 전이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벌써 몇 달 전에 본 것인데다, 이 이야기가 무슨 주제에서 나온 것인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으니 사실 인용하기 조금 무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 문장 자체는 제가 요즘 느끼고 있던 것들을 보다 확실하게 꿰뚫는 말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얼마 후 점프스타즈가 플스3와 PS비타로 출시된다고 하는데, 이 즈음이면 예전 패미컴용점프 영웅외전이 떠오릅니다. 이런 캐릭터게임을 수십년간 낸다는 것도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죠.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게임은 그간 계속해서 출간되어온 다른 작품의 캐릭터까지 포함되며 늘 비슷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작품이 되어 버립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듯 제가 어린 시절 부모님은 꽤 규모가 큰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했었습니다. 그랬었기에 저는 또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날 수 있었죠. 이러한 습관은 이후로도 이어져 성장한 이후에도 다양한 만화와 영화를 접해왔고, 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 정도는 되었습니다. 간신히 마니아라고 자청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달까요?


하지만 그런 제 눈으로 보기에 80년대 습관이 형성된 마니아와 2000년대 습관이 형성된 마니아는 양자를 동일선상에 놓기 힘들 정도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무엇보다 작품을 소화하는 속도가 격이 다를 정도죠. 같은 기간동안 영화 한 편 만화 몇권을 제가 보는 사이 그 친구들은 아예 영화 한 시리즈와 만화책 몇 개 시즌을 봐버립니다. 이는 단순히 영화나 만화를 빨리 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화의 내용을 제가 곱씹는 사이 그 친구들은 아예 다른 작품에 손을 뻗힌다는 것이죠. 이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번에 많이 소화할 수 있는 것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죠.

요즘 친구들이 보다 많은 것을 소화할 수 있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콘텐츠를 접하는 수단 자체가 이전과 비할 바 없이 간편해 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예전 영화 잡지를 보다보면 신인 영화감독의 인터뷰에서 수 천편의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영화를 깊게 보는 것만큼 영화를 체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가운데 하나가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이니, 영화 감독이 영화를 많이 봤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의 영화 수천편은 감히 도전하기도 겁나는 타이틀이라는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영화비디오를 대여하거나 극장가를 찾는 것 정도 외엔 별다른 수단이 없었던 때니까요. 영화에 미치다시피한 소수의 이들이 외국의 영화를 그만의 경로로 구해보거나 하는 경우만이 위의 수천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인물에 해당했죠. 하지만 최근의 영화마니아들의 경우 수천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국내에 수입되는 콘텐츠들의 숫자도 숫자거니와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라는 아주 간편한 수단이 있기 때문이죠.


 비틀즈의 노래는 언제나 신곡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발매된 지 오래된 작품도 접하는 시기에 따라 새로움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이후의 세대일수록 새로운 작품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며 이후의 세대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매체를 접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둘째, 콘텐츠에 대하는 데이터 베이스와 그를 선별하는 수단 역시 이전과 비할 바 없이 수월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각종 사이트와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인해 수용자들은 보다 자기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작가, 감독, 영화사, 배우 등의 자료를 통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선택했지만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정보를 선별할 수 있게 되었고, 수많은 감상글과 평가문을 통해 해당 영화에 대한 내용 역시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위의 매체를 접하기 쉬워진 환경까지 더해져 보다 많은 것들을 쉽게 볼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셋째, 애초에 생산되는 콘텐츠의 숫자 역시 이전가 비할 바 없이 많아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전의 과격한 작품들이 재판되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는 점차 널리 보장되고 있는 환경이며, 경제상황의 발전으로 인해 문화 산업에 대한 호의 역시 이전보다 커졌습니다. 이전의 콘텐츠의 수용자는 새로운 콘텐츠의 생산자가 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낳게 되었고, 저작권이 강화되는 한 편 패러디와 오마주에 대해 어느 정도 관용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목적을 사회가 인정하는 상황이 되었죠. 결과적으로 생산되는 모든 작품이 오리지널리티와 작품성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각각의 역할에 충실한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웹툰처럼 아예 이전에는 없던 형식의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기도 했죠. 


 당시 10대와 오늘날 10대는 절대적인 양으로 비교해 봤을 때 아마 단위수부터 감상의 숫자가 차이가 날 겁니다.


실제로 저같은 경우는 최신작을 제대로 챙겨 보지 못하지만, 최근 만화에 빠진 마니아들은 어지간한 구작은 물론 최신작까지 꼼꼼히 챙겨보는 이들이 있을 정도니까요. 특히 제가 고생고생하며 구해본 예전 만화를 제자리에 앉아 태연히 구해보는데에서 일종의 경탄과 질투였습니다.




 많이 보는 것과 깊이 보는 것


솔직히 인정해야 겠습니다.


저는 결코 요즘 친구들이 보는 숫자를 따라가지 못할 듯 합니다. 이 친구들은 쏟아지는 콘텐츠에 너무도 익숙하며 그것들을 골라보고 빠르게 소화시키는 것까지 습관이 되어 있으니까요. 제가 큰 맘 먹고 하는 행동들이 이 친구들에게는 일상입니다. 습관을 통한 익숙함을 후천적인 훈련으로 따라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오아시스의 짤방 중에 그런 게 있죠. "씨X,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라는. 문득 그게 생각이 나더군요.


하지만 이 말이 제가 그들보다 만화나 영화를 덜 사랑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그들보다 적게 볼 뿐이라는 이야기죠. 처음의 음식을 통한 비유라면 대식가가 되기보다는 미식가가 되겠다는 의미가 될 듯 합니다. 만화를 많이 읽을 수 없다고 해서 만화를 덜 사랑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들보다 깊게 보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니까요.


다독이 작품에 익숙해지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에는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려워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질보다 양이라고 했던가요? 물론 다독이 책 하나를 깊이보는 것보다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현 상황에선 다독보다는 심독이(深讀) 제게는 더 적합할 듯 합니다.


어쩐지 제 구독욕이 한창 젊은 때인 그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데서 묘하게 세월이 끼쳐둔 노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전 계속해서 만화와 더불어 살아갈 거라는 생각 자체는 변한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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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