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에서는


단무지 도사로부터 갑옷구슬을 받은 헤포이는 플랜트 캐슬과 간간지를 쓰러뜨립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흔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전후사정을 제대로 따지지 못하고 과감하게 뛰어들었기에 이것저것 재기만하고 행동하지 못하던 이들이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루어내거나, 뻔한 일이 일어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질 않고 덤벼드는 바람에 큰 코 다친 경우 모두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들이 있죠.


한 방송인이 외국에서 만취한 채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가 총을 보여줬음에도 겁도없이 따귀를 올려붙인 경우나, 순찰을 돌던 경찰이 경고차원에서 한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난장을 피우는 경우가 바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일 이외에 긍정적인 일에 대해서도 위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결국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기도 하죠.


이러한 바보, 내지는 순진한 사람의 과감함은 여러 표현물에서도 자주 이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헤포이처럼 유아형에 가까운 열혈 주인공은 더 더욱 이러한 묘사를 자주 겪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헤포이는 순진한 어린이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주인공임과 동시에, 올바름을 지향하도록 배운 아이들이 가장 공감하는 캐릭터가 바로 헤포이죠. 때론 헤포이의 어리석음과 둔함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선택하는 것들이 올바르고 또한 좋은 결과들을 낳기에 아이들은 더욱 헤포이에 열광합니다.


헤포이는 아이들이 그의 행동과 의도를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입니다. 아주 얕은 잔꾀만으로 훨씬 편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매달립니다. 이는 같은 아군이지만 다른 성격의 류트, 그리고 적 캐릭터들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사안에 해당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또한 본질적인 올바름을 지향하고 있기에 아이들의 모범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이런 헤포이를 노골적으로 바보라고 할 것 까진 없지만, 이러한 헤포이기에 실상 여러 이야기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어온 바보가 가지는 상징성을 상당부분 공유합니다.



흔히 바보 온달의 이야기는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것으로 곡해하기 쉽지만, 이 또한 결국에는 착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보가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처럼 말이죠.


바보는 기본적으로 모자람을 상징하지만, 그것은 약삭빠름과 대치되는 우직함을 나타내는 또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 그리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포레스트 검프 양자의 주인공들은 결국 시대나 자본같은 외부적 요인에 대해 멍청하리만치 둔하고 우직하게 대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죠.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류의 이야기들은 "이러한 바보들도 부지런하고 착하게 굴면 성공할 수 있는데, 너처럼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성공하지 않을 수 있겠니?"란 주장과 같은 셈입니다. 부지런함과 성실함, 그리고 착하고 온순한 성품을 미덕으로 삼아왔던 이전 시대의 관념이 녹아있는 것이죠. 헤포이의 맹함은 결국 아이들에게 "헤포이보다는 똑똑한 너희들이니까 너희도 착하게 굴 수 있지?"라는 교육 아닌 교육이 녹아든 결과였던 겁니다.


물론 이것은 시대가 흐르면서 미디어에 의한 세뇌, 계급간의 투쟁, 자본 등의 요소와 결부되며 수용하기만해야 하는 요소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헤포이는 90년대 극초반에 만들어진 전체관람가의 작품이라는 걸. 고평가할 순 없지만, 이러한 요소로 비난하기엔 좀 애매하다는 거죠.




 적과의 동침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시점에서 헤포이가 갑옷구슬을 찾으러 단무지 도인에게 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당장 눈 앞에 맞서싸우지 않으면 상황이 어찌될지 모르는 적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적을 쫓는다고요? 말도 안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간간지 역시 굳이 이 시점에 갑옷구슬을 찾으러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헤포이가 없는 이때야 말로 배틀 캐슬을 쓰러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도 플랜트 캐슬의 공격에 방어만 하고 있는 배틀캐슬이건만 어째서 이 시기 뜬금없이 갑옷을 찾아 떠나는 거죠? 아니, 그 이전에 그에게 갑옷구슬이란 게 필요합니까? 간간지의 몸은 돌로 되어 있잖아요???


예. 결국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헤포이를 파워업 시켜주기 위한 이벤트와 이야기의 당위성을 맞바꾼 결과입니다. 실제로 주인공의 파워업 이벤트를 나중에 따로 다루면 아예 통채로 에피소드를 할애해야 하니까요. 분량조절 차원에서 적이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수용자는 어느 정도 납득하고 넘어가야 겠죠.



특이하게도 본편은 정통적인 악역과의 싸움에 가까웠던 자쿤과의 싸움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무엇보다 오랜기간 간간지와 엮이면서 다양한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이죠. 그 대부분은 간간지가 감춘 물건을 헤포이 일행이 찾아내거나 그가 설치한 함정을 그들이 돌파하는 것 정도였기는 합니다만, 여러 차례 간간지와 맞부딪히며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왔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그것은 이번 에피소드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위험에 빠진 간간지를 헤포이가 태연히 돕는 것입니다. 바로 5분후 혈투를 벌이는 두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 쪽은 도움을 요청하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받아들여 돕습니다. 이는 이들의 관계가 말그대로 적과 아군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류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이라 할만합니다만. 굳이 큰 신경을 써야 하는 요소는 결코 아닌 듯 합니다. 기본적으로 적이 순수한 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모양새기는 하지만 결국은 세뇌당한 상태이니 그 깊이가 떨어지고, 공통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헤포이의 착한 심성을 강조하려는 장치일 뿐이니까요.


다만 헤포이가 왜 적과 싸우는지를 은연중에 설명하는 것이기는 했습니다. 개인과 개인이나 세력과 세력의 다툼이 아닌, 말 그대로 용사와 평화를 해치는 악당과의 싸움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것이죠. 헤포리스와 다크 헤포리스의 대립은 포스와 다크사이드의 그 관계와 완벽히 부합한다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실제로 그 결과 또한 이전의 자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적과 싸워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적과 싸우지만 마음을 돌리는 것으로 바뀌었죠.




 마무리


간간지의 정체는 사실 행인을 지키는 신(道祖神)- 정확하게는 그 석상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에 다크 헤포리스가 깃들게 되며 헤포이들의 앞을 막아서게 된 것이죠. 악의 조직의 중간보스치고는 참 애매한 출신이구나 싶지만, 과거의 자쿤은 밥솥장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쪽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간간지는 그 태생이 태생이니만큼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봉제인형이나 골렘, 슬라임들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하며 돌아다니니 그리 이상한 적은 아니기는 합니다만 그 거대한 몸집이나 단단한 몸을 바탕으로 한 공격은 분명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자쿤이 변신을 하게 되며 전형적인 육체파 악역으로 거듭난 반면, 간간지는 계속해서 샌드백 역할만을 하다 종래에는 별다르지 않은 변신만을 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오래나오기는 했지만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악역이라는 인상은 주진 못했네요.



다만, 간간지는 보통 이러한 콘셉트의 적들이 공유하는 특성을 잘 보여준 악역에 해당합니다. 무엇보다 단단한 몸과 강한 힘,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분해해서 적을 공격하는 공격방식은 이전, 그리고 이후에도 자주 사용되는 것이거든요.


기실 클리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실상 거대한 돌도 박살내는 주인공들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작은 돌멩이에 더 큰 곤란을 겪는 것은 바위에 깔리는 것은 표현할 수 없고 공감도 쉽게 시키지 못하지만, 자갈 정도의 크기에 맞는 것은 표현도 수월코 수용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니까요.


여하튼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온 첫번째 글입니다. 다만 글 자체에는 이전처럼 힘을 주는 일이 없도록, 읽으시는 분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