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는


새를 쫓기 위해 사람 모양을 흉내내어 만든 후 밭에 세워두는 인형입니다. 그 목적부터가 대상을 모방함을 통해 상대를 놀라게 하고, 진입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나요. 본연의 모습 때문인가요, 그게 아니면 닮은 그 모습 때문인가요. 우리가 허수아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론은 달라질 겁니다. 이토 준지의 허수아비는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이 허수아비라는 것은 대충 인간을 흉내내 만드는 것 정도에 그치기에, 그것을 만들기 위해 굳이 따로 재료를 사는 수고를 들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입다 허름해진 옷이나 산발이 되어 버린 가발같은 걸 뒤집어 씌워 적당히 만드는 것이죠. 인간과 적당히 닮았기에, 원활하게 여러 이미지가 편의적으로 뒤집어 씌워지고,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비단 동양에서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허수아비를 대상으로 한 이런 저런 괴담이 존재하고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인간의 본질일까요, 피상적인 모방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모방코자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상대방에 대한 거절일까요?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인식?






허수아비의 줄거리는 이하와 같습니다.


연달아 사람들이 죽어나가 장례식이 끊이지 않는 마을. 외동딸 유키를 잃은 누마다는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도 슬픔을 떨치지 못하고 매일같이 딸이 묻힌 무덤을 향해 갑니다. 그곳에서 만난 딸의 전연인에게 죽음의 책임을 물으며 홧김에 밭에서 허수아비를 뽑아 무덤가에 꽂아버렸는데, 어느날부터 허수아비는 서서히 딸의 모습을 닮아 가기 시작합니다. 오직 무덤가에서만 생전의 무덤주인의 모습을 닮아가는 허수아비는, 사자를 보고싶어 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 숫자가 서서히 늘어납니다. 그 가운데엔 무표정한 다른 허수아비와 달리 한과 원망에 가득찬 허수아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유키의 전 남자친구 시게루는 꿈에서 자신을 찾는 유키의 꿈을 꾸고, 잠에서 일어나면 무덤가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案山子 かかし, Scarecrow


이 에피소드는 허수아비를 매개로, 사자의 한과 원망을 푼다는 구성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의도치 않게 찾아온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왜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살아생전의 일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거나 아끼던, 반대로 내가 원망하거나 혐오했던 것들은 내가 죽고 나서도 여전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러한 발상으로 인해 사람들은 죽고 나서도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고, 죽음을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 부르며 죽음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려 노력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겪은 이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일종의 위안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죽음과 탄생의 이미지는 병존하기 시작했고, 인식은 전환을 일으켰습니다.


허수아비를 시체나 죽음에 비유하는 경우도 드물잖습니다. 그 특유의 뻣뻣한 모습 때문일까요.


더 이상 죽음은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분리시키는 계기가 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죽음 역시 삶에 포함되는 개념이 되었기에, 되려 살아있는 사람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허수아비는 그래서 죽음과 닮아 있습니다. 본질이 아닌 허상일 뿐이지만, 무엇을 투영시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그 연결도 살아있는 사람이 가지는 감정에서 비롯되기에 되려 살아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됩니다. 작중 연인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해친 자에 대한 원망과 증오라는 감정이 허수아비로부터 비롯된 듯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경험한 일들은 허수아비를 매개로 그들 스스로가 일으킨 환상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미처 다 하지 못한 일들이 있다 스스로 여겼기 때문에 말이죠.






불쾌한 골짜기라 불리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과 적당히 닮았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면 거부감과 혐오감이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학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제는 서브컬쳐 전반에 널리 쓰이는 이야기가 되었죠.


실제로 적당한 데포르메는 자신이 가진 인식을 투영하여 대상을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일치도가 서서히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어중간하게 인간을 닮은 대상에 대해 이러한 투영이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동시에 닮은만큼 커진 이질감에 일종의 배척심을 갖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무엇인가를 쫓는다는 허수아비의 목적과도 합치되며 더욱 더 큰 시너지를 불러 일으킵니다.


허수아비는 인간과 닮은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간을 닮은 모습이라는 건 대상을 쫓는다는 것에 대한 부수적인 목적에 해당하죠. 자연스레 허수아비도 이러한 불쾌한 골짜기에 해당합니다. 그에 따라 허수아비는 오랜 시간 호러 클리셰로 자리잡아 왔죠.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말입니다.


예컨데 서양에서 인간과 정말 닮은 허수아비가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알고보니 사람 시체더라라는 괴담이 있고, 동양에선 요괴가 사람을 홀려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렸다는 식의 괴담이 있습니다. 인간과 어슬프게 닮았다는 점에서 거부감과 일종의 공포를 자아내고, 그에 수반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죠.


실제로 간간히 사람과 너무 닮아 화제나 논란이 되는 허수아비도 있곤 합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너무 놀라서 당국에서 교체하라 요구하라는 뉴스가 몇 년 전 있기도 했죠.


이것은 허수아비가 만들어진 모습이, 과거 인간이 받았던 형벌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사지를 포박당하고,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형벌을 받는 모습이 널리 보여야 했기에 일종의 십자가 형이 존재했고, 이러한 십자가에 다른 생명체를 매달아 일종의 장식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매달린 허수아비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이러한 학습의 효과도 있었던 겁니다.


또 다른 클리셰로는 복수하는 귀신, 연인에 대한 집착으로 끌고가는 귀신 등이 있습니다. 사자의 강한 원념이 결국 살아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으로, 너무 유서깊고 널리 사용되어서 이젠 되려 낡아보이는 클리셰이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처녀귀신이 조합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죠.






작중에서 허수아비는 생전의 한을 풀기 위해 되돌아왔다는 인상입니다.


생전에 자신을 살해했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맺어지지 못했던 사람과 죽음을 통해 맺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흔히 죽음이 갈라놓는다 표현하지만, 죽음은 계기일 뿐 결코 상황에 대한 정의는 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대상이 죽었을 때 그 모든 결말이 헤어짐으로 귀결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은 결국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도 닮아 있으며, 이 괴담이 단순히 사자의 귀환만이 아니라 생자의 죄책감이라는 방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줍니다.






이야기적으로는 참으로 무던한 에피소드입니다. 허수아비에 대한 여러 상징성이나, 초현실적 사건이 귀신 때문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의 죄책감이나 미련 때문이지 따질법한 요소는 있지만, 뭘로 봐도 사실 그렇게까지 특별한 에피소드는 아니니까요. 구성자체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뿌린대로 거둔다에 해당합니다.


지퍼스 크리퍼스, 쏘우, 슈퍼내추럴 등등등 허수아비에 초자연적 이미지를 덧씌운 작품은 수도 없이 많고, 그 가운데엔 신으로서 모시는 경우나 아니면 악마를 봉인한 뉘앙스의 작품도 있습니다.


저 개인에겐 분량채우기(물론 단편 모음집이니까 전혀 적합한 표현도 아니고, 사실관계에 맞는 일도 아닙니다.) 내지 손풀기 용으로 쓰였다는 인상입니다. 이야기에 핵이 되는 두 사건이 별다른 연결성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요. 사실 그리움과 원망이라는 서로 상이한 감정을 다루었으니 해석의 다양성과 이야기적 흥미를 더해주어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만, 딱히 구분되는 특이점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원망을 담은 경우엔 허수아비의 표정이 살벌해진다는 점 정도?


개인적으로는 시게루가 유키를 정말 죽음까지도 뛰어넘어 사랑하고 있었느냐가 잘 표현되지 않았다고 여겨져서 더 몰입이 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랬다면 그 정도로 사랑하는데 이상한 일은 겁난다 정도라고 판단하여 그 공포감에 더 주목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사건 자체를 달리볼 여지를 남기는 일이었는데 말이죠. 만약 그렇게 표현됐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물론 이 에피소드의 백미는 지극히 흔한 발상이고, 너무나 주변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것들로만 이뤄져 있기에(물론 요즘에 시골에 내려가 일일히 성묘하고 그런 게 드물긴 하죠.) 주변에 대입해서 볼 수 있는 공포라는 점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7.12 19:53


 들어가면서-


당연히 읽지않아도 되는 부분입니다. 블로그 이야기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영화 뱀파이어 해결사(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항목부터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접기 기능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여하튼 지금 쓰는 영화 이야기,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는 이전에 영화 블로그에 게재했었던 글을 다듬은 것입니다. 해당 영화 블로그의 글은 이 글을 등록한 순간 삭제했습니다.


이 글이 게재되었던 것은 2015년 7월 13일입니다. 무려 3년 전 작성했던 글이네요. 당시 계획했던 블로그 5개화 계획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5개는 커녕 본진격 블로그도 한 동안 운영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물론 다른 방식의 구분과 특화는 늘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미녀와 뱀파이어, 뱀파이어 해결사 등으로 국내에 알려진, 사라 미셸 겔러가 주연한 드라마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Buffy the Vampire Slayer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MBC 및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할 당시 큰 인기를 끌기도 했거니와 어벤져스로 상종가를 친 조스 웨든의 대표작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에서야 조스 웨던은 저스티스 리그의 실패+불륜 논란+거짓 페미니스트+어벤져스 시리즈의 강판+배트걸 강판 등등으로 욕을 정말 엄청나게 먹고 있습니다만- 여하튼, 서브컬쳐에 대한 애정과 그를 대중적으로 잘 엮어내는 것으로 유명했던 감독이기는 했으니까요.


글을 올리는 시점을 감안해도 버피 시리즈는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회자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당장 저부터가 에이전트 오브 쉴드와 버피 시리즈를 비교한 글을 남기기도 했었죠. 당시 비교글은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었습니다만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어느 한 점에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선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만든다 이야기했었던 개인위키에서도 버피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었네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TV시리즈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사라 미셸 갤러가 주연한 TV시리즈가 아니라, 크리스티 스완슨이 주연한 영화 버피에 대해선 사람들이 그리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죠.


마찬가지로 조스 웨든이 각본을 쓴 1992년작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는 해당 드라마의 열정적인 마니아들에게조차 다소 애매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일부 아이디어는 TV시리즈와 동일하고, 어느 정도 전작의 개념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기도 했었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였고, 영화의 이야기는 일종의 평행세계 비슷하게 취급되어 버렸거든요.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전해주었던 재미 포인트와 영화가 달랐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당장 저부터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가, 드라마의 원작격인 영화다, 라는 평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이유에서였다면 굳이 찾아봤을 영화일까요. 심지어 영화의 감상 포인트조차 어떠한 측면이 드라마와 달랐느냐였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 영화에서 받은 감상을 한 문장을 정의하면- 예. 제목과 같습니다.


드라마와 다르기는 합니다만, 최소한의 뿌리를 부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적잖은 공유점을 확인할 수 있고, 이후 발전하는 드라마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 정도는 되어 줍니다.


일부 팬들은 아예 이 작품을 드라마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실상 배제해야 하는 작품으로 여겼던 것을 기억합니다. 실제로 드라마 후반부와 영화를 비교하면 아예 세계관 자체와 스토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조차 다르니까요.


하지만 상기 에이전트 오브 쉴드와 버피 시리즈에 대한 비교처럼, 이 영화를 보다보면 드라마 버피와 엔젤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일부 에피소드들과 겹치는 장면들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볍게 지나간 일부 장면이나, 사소한 대립은 이후 드라마에서 보다 확장된 형태로 심화되어 등장하여, 최소한 과거 이야기로 이 영화를 인식해도 괜찮다는 제작진의 태도도 훗날 tv시리즈에 심겨져 있기도 합니다.


특히 버피 드라마와 엔젤에서 묘사된 과거회상씬의 분위기는 실제로 이 영화의 분위기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버피를 맡은 두 주연 배우들 역시 어느 정도의 공유점을 보여줍니다. 크리스티 스완슨과 사라 미셸 겔러는 전혀 다른 미인상입니다. 크리스티 스완슨은 큼직한 눈코입-그러니까 브룩 쉴즈로 대표되는 미인상이고, 사라 미셸 겔러는 다소 음울한 느낌이 있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지닌 가녀린 미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가끔 놀랄만큼 비슷한 연기를 보여주죠.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배우의 개성에 따라 그 표현의 방식은 다소의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양자의 캐릭터가 어느정도 차이가 있음에도 이러한 느낌을 주는 건, 사라 미셸 겔러가 크리스티 스완슨의 일부 연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봐야겠죠.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평범한 소녀가 갑자기 슬레이어가 되어 뱀파이어와 맞서 싸운다는 설정입니다. 반항기 넘치는 십대가 고전적인 괴물들과 맞서 싸우며,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진정한 관계(금발미녀 치어리더가 아니라 삶에 맞서 투쟁하는 슬레이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완전히 달라진 뱀파이어와 인간 등등)를 형성하고, 장르의 공식을 비틀어 새로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예. 말 그대로 버피 그 자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두 작품을 나란히 놓기도, 또한 드라마에서 서술한 과거가 영화와 정확히 부합한다 여기기도 어렵습니다. 일부 설정이 다른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일단- 예, 영화의 완성도가 좀 애매합니다.


기본적으로 장면과 장면 사이에 붕 뜨는 감이 있고, 일부 씬은 허무하게 소비되는 반면, 일부 씬은 필요 이상으로 중언부언합니다. 특정 캐릭터의 행동은 이상하리만치 작위적이어서 어설프다는 인상까지 줍니다. 이 영화가 신세대 뱀파이어 붐의 일각을 담당한 TV시리즈의 원작격인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딱히 좋은 인상을 주진 못합니다.


실제로 드라마 팬들은, 굳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이야기합니다. 보면 좋고, 안봐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엔 전혀 지장이 없고.




이제 설정 이야기를 해 봅시다.


기본적으로 주인공 버피의 설정이 다릅니다. 드라마 초반부 묘사대로 LA에 슬레이어로 각성한 것은 맞지만, 졸업반인 영화의 버피와 달리 드라마의 버피는 1학년이죠. 또한 영화에선 어쨌든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드라마에선 아버지의 존재가 사실상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대로 한 사람만이 존재할 수 있는 슬레이어의 설정도 드라마화되며 설정이 확장되어 영화와 다른 면이 강해졌고요.


핵심 줄기라 할 수 있는 뱀파이어도 다릅니다. 심장을 말뚝으로 꿰뚫리면 재가 되어 버리는 드라마의 버피와 달리 영화의 뱀파이어는 그저 쓰러질 뿐입니다. 보다 설득력있는 전개를 위해 '시체유기'를 배제하기 위한 드라마의 편의적 선택의 결과였죠. 분장도 다릅니다. 마스크를 씌우다시피한 드라마의 버피와 달리 이쪽은 허연 분칠과 귀, 뾰족니만으로 뱀파이어 티를 내거든요.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요소. 버피 특유의 여성주의적 메시지가 약합니다. 사실 버피가 오랜 시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은 대중문화에서 유흥거리로만 소비되던 여성 캐릭터 패턴에 상당한 변화를 주었다 평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여자가 나와 남자를 보호하며 액션씬을 보여준다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되려 논요깃거리로 전락했다는 평을 듣기도 하죠. 반대로 여자가 나와 도망만친다고 해서 페미니즘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건 작품 속 녹아 있는 메시지죠. 원더우먼이나 지나 더 워리어 역시 여성의 몸매를 흥미거리로 내세웠다는 식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은 역시 작품 속 녹아 있는 소수자를 위한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드라마 버피 역시 이에 속하는 작품군이었고요. 하지만 영화 버피는 '진정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는다'는 관점은 동일하지만 그 형식적인 측면에서- 예. 뭐 다르다고 표현합시다. 굳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좀 더 동화적이고, 흥미위주입니다.





이제 제목의 다른 듯 같은 듯, 같은 듯 다른 듯의 의미를 이해하시겠나요. 발상과 방향성은 같지만, 서술하는 방식과 결론은 다릅니다.


그래서 적잖은 이들이 드라마의 팬이 의무감에 보고프다 생각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 없다 말하는 겁니다. 동일한 소재를 다룬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니까요.


예. 저도 굳이 드라마의 팬들이 찾아볼 만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통해 보충할 영역은 없다시피 하니까요. 하지만 저처럼 못 본 척 할 수 없는 이들이 찾아보았을 때 실망할 정도의 영화냐, 그건 또 아닙니다. 최소한 평작은 되고, 다른 버전의 버피들의 모습을 찾아보는 정도의 재미는 주어지거든요.





남자 주인공격인 파이크는 드라마로 치면 잰더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주류에 끼고 싶어하지만, 사실 아웃사이더에 해당하는 인물이죠. 잘나가는 학급들(스포츠 선수나 치어리더들) 사이에선 루저라 불립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해야할 건 적당히 알아서 하고, 나서야 할 땐 나설 줄 아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냐, 그건 또 아닙니다. 겁먹고 도망치기도 하거든요.


예-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소수에 해당합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틀에 결국 소수일 수 밖에 없는 존재죠.


그런 그를 선택하는 게 바로 버피입니다. 그 버피가 치어리더 출신이면서 세계를 구원하는 존재인 슬레이어라는 건, 그녀- 그러니까 제작진이 이러한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인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드라마는 이러한 포지션의 잰더 대신 엔젤과 맺어지게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진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끼리의 이해가 주는 매력에 밀려 버린 것이죠. 이렇게 붕 떠버린 잰더지만, 그 역시 자신의 포지션을 갖고 활약을 합니다. 말미에 좋은 평가는 못받지만.




본편과 상관없는 사족입니다.


첫째. 드라마보다 6~7년 정도를 앞서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드라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촌스러움에서 자유롭습니다. 복고 열풍의 영향 때문 아닐까 생각했었네요. 물론 크리스티 스완슨이 워낙 해당 복장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둘째. 액션씬은 영화가 드라마보다도 훨씬 약합니다. 사실 투입되는 자본을 생각하면 규모가 다른 매체기 때문에 이러기도 쉽지 않습니다만, 진지하게 따지고 보자면 딱히 비슷한 장르에서 인상적인 액션씬의 진화도 이뤄지지도 않았으니까요.


셋째. 조연으로 반가운 얼굴인 힐러리 스웽크가 나옵니다. 버피의 수련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가라데 키드를 떠올리신 분들이 적잖을 겁니다. ...뭐, 8, 90년대 헐리우드의 오리엔탈리즘이란 게 다 그렇죠 뭐.


넷째. 12세 관람가격인 PG-13인데, 작중 등장인물 연령대 때문인지 드라마보다 더 끈적합니다. 노출 수위가 높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근데 좀 끈-적 하네요. 물론 영화의 장르 로맨틱 코메디의 틀을 벗어날 정도는 결코 아닙니다.




이 글은 다른 블로그에 3년 전 게재했던 글을 다듬은 것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7.11 07:49


 이번에


쓸 글도, 몇 년 전부터 쓴다고 쓴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정작 쓰지는 않았던 글로 분류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B급 문화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포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제시된 세가지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좀비오(리 애니메이터)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할 말도 많고, 그 감상을 풀어놓을 기회도 적잖았는데, 묘하게 차일피일 미루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제가 이 작품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은 그겁니다. "폭주하는 기괴함 속 허탈한 웃음." 정말 웃긴 평인데,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러한 생각이 절로 듭니다. 현재 세 편이 개봉되었고, 4편이 기획되었다는 이야기가 10년째 떠돌고 있는 이 작품은, 호러 장르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브라이언 유즈나와 스튜어트 고든이 협업하여 만든 작품으로, 호러 장르의 또 다른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배우 제프리 콤즈를 탄생시킨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이 영화는 제가 H.P. 러브크래프트에 입문하게 된 계기이며, 좀비오라는 제목은 리애니메이터라는 제목이 일본을 거쳐 들어오며 설정된, 일종의 중역의 결과물입니다.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 포지션에 가까운 웨스트도 무섭고, 적대자지만 희생자 포지션이기도 한 교수도 무서우며, 무엇보다 조력자에 가까운 인상의 학장이나 아내의 복수를 갚으려는 경찰조차 무섭다는 점입니다. 안심할 수 있는 캐릭터는 관찰자형 주인공인 댄과 그 연인 뿐인데 이들조차...


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으니, 정작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일단 이 작품을 어떠한 계기로 접하게 되었느냐에 대해서부터 설명해봅시다.


중학생이었나요, 고생학생 때였나요. 열대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던 새벽이었습니다. 새벽이래봤자 2시를 넘어서지 않는 시간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와 딱히 할 것도 없던 그 때, 주무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뒤에 두고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한 영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좀비오였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좀비오2였습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제 감상은 뭐랄까요, 황당과 당황 그 사이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어떤 장면인지도 기억합니다. 각 신체의 주인들을 줄줄 읊으며 광기에 찬 눈빛으로 시체를 되살려야 한다는 허버트 박사의 씬이었습니다.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나, 명백히 매드 사이언티스트로서 피조물을 만든다는 관점을 제시하여 프랑켄슈타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단숨에 깨닫게 하는 것을 통해, 여러 B급 영화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 영화가 B급이냐 아니냐는 제게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충격스러운 비주얼 이상으로 인간의 광기를 다루어내는 모습이 제겐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동시에, 온갖 기괴한 방식으로 인간의 신체를 다루는 모습을 보노라니 경악스럽기까지 했죠.


기술은 컴퓨터 그래픽이 상향평준화되다 못해 인식의 폭까지도 뚫고 넘어선 지금에 도저히 미치지 못합니다. 당장 30년이 넘은 영화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특유의 뻣뻣함과 답답함, 그리고 어설픔이 되려 작품에 대한 몰입감을 높여줍니다. 이건 굉장히 특이한 질감인데,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예전 B급 영화들이 사랑받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시 제게 있던 호러의 관점은 기실 13일의 금요일이나 사탄의 인형 등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크리쳐 묘사나 인체개조는... 완전히 인식의 범주 밖의 것이었죠. 좀비오는 만능약물로 모든 게 가능하게 만들었고, 제한이 없는 창작자의 상상력을 무차별적으로 구현화시키는 듯 했습니다. 해서는 안되는 것을 다루고, 또한 웃음거리로 만드는 데에서 상이한 감정이 들게 만들더군요.


바로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중반부부터 보았고, 본편이 아닌 속편이었음에도 영화는 제게 아주 강렬하게 각인되었습니다. 특히 온갖 신체를 짜맞춘 재생자의 신부의 모습은 기괴함을 넘어선 그 무언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소위 말하는 B급문화와 호러 장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죠. 이후 제가 호러와 코미디 장르가 결합되는 것에 상당히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바로 이 작품 때문일 수 있습니다. 커다란 공포는 때론 황당할 정도의 웃음을 자아내곤 하니까요.


영화는 일종의 희극과도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데, 그때문인지 뮤지컬로도 제작되었던 바 있습니다.


접한 배경이 그래서였을까요. 좀비오는 특이하게도 속편과 본편이 따로 인식되지 않는 영화입니다. 물론 속편은 어거지로 이어붙였다는 인상이 강하고, 좀비오 그 자체로서 오리지널리티를 확립했던 본편과 달리, 지나칠 정도로 프랑켄슈타인을 염두에 둔 속편으로 자체의 매력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듣곤 합니다. 이야기적 구조만 따지자면 그런 평을 듣는 것도 어쩔 수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가 전달하고자하는 포인트나 질감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제겐 쉽게 연작으로 인식되었고 평을 분리하는 것이 힘든 지경입니다.


이처럼 작품은 여러모로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죽음을 정복하고자하는 광기에 찬 과학자와, 그런 과학자의 실험물로 전락한 인간 혹은 그러한 인간의 일부. 그리고 그러한 피조물의 역습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는 세상.


본 작품은 대중작품에서 다뤄진 초창기의 좀비물로도 평가되기도 하지만, 역시나 방점은 인체개조와 시체훼손입니다. 되살아난 시체가 보여주는 면면은 좀비와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기괴함을 뽐냅니다.


리애니메이터와 리애니메이터2의 모습은 프랑켄슈타인과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의 흐름을 고스란히 따릅니다만, 영화 자체의 음울하고 기괴하며, 구역질나기까지하는 작품의 캐릭터 묘사는 두 작품의 지향점이 전혀 다름을 보여줍니다.


속편은 이야기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원작의 마무리를 재현하기도 했을 뿐더러, 기괴함과 무서움, 특유의 웃음은 여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기괴함과 당혹스러움 만으로 정의되는 영화냐, 결코 아닙니다.


매력적인 약혼녀, 위협적인 적, 몰입감 있는 주인공, 이해할 수 없고 기괴한 천재 등의 다양한 캐릭터가 제각각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어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어찌보자면 지극히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벗어나며 영화의 흥미를 더합니다.


그리고 각자 캐릭터에 걸맞는 연기를 하여 극에 설득력을 더해주는데, 이 부분이 백미입니다. 친구의 딸에 욕망을 품은 노 교수에서부터, 연구 성과를 위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파멸에 밀어넣지만 정작 함께 하기 시작한 동료에겐 묘하게 집착하는 세기의 애송이 천재 과학자, 그리고 이리저리 휘둘리지만 결국엔 광기에 몸을 맡겨 버리는 평범한 사람.


거기다 영화는 이러한 폭발을 정제시킬 기미도 없이 계속해서 확장시키다 마침내 우당탕쿵탕식으로 폭발시키고, 정리해버립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전혀 아쉬운 생각을 갖지 않게 합니다. 숙편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한편만으로 지향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다 보여주었다는 확신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입니다. 튀는 소재와 연출이라도 배우의 연기가 좋으면 얼마든지 몰입할 수 있으며, 때로 창작자는 똘끼를 발휘해 관객들이 허겁지겁 쫓아올 수 있게 만들줄 알아야 하며, 묘사의 극단에 가면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만들어 영화에 독특한 질감을 형성해 준다는 등 말입니다.


속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옴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마 창작자 당사자들도 당시의 질감을 지금 시점에 다시 되살리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배우나 감독, 각본가가 나이를 먹은 영향도 있겠고요. 제가 하고픈 말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겁니다.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영화는 특히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제가 이야기하는 상이한 감정이 동시에 드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 겁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점핑


이벤트를 통해 레이드에 진입하신 분들의 숫자가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안톤 레이드는 퀘스트 레전더리로, 루크 레이드는 에컨 아이템으로 입문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이니 85제 에픽 풀 세트인 캐릭터로는 소위 말하는 스펙이 차고도 넘치는 상황입니다. 본섭에 와서 적절히 칭호와 마법부여까지 한다면 바로 레이드 진입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듣겠습니만- 그냥 몸만 진입해도 클리어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수준입니다.


가장 많이 추천하고 받았던 두 직업이 뭘까요? 바람돌이와 팔라딘일 겁니다. 저 둘이 있는 게 우연은 아니라는 거죠.


다만 레이드는 그 구조적 특수성상 최소한의 공략을 알아야 하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직업별로 특화된 자기만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스펙이 차고 넘쳐도 자기가 해야 하는 영역에서 실수를 한다면, 다소 아쉬운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죠. 더군다나 던파는 이러한 초심자에게 그리 배려심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심적인 상처도 클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오늘은 던파에 어떤 직업에게 어떠한 능력이 요구받는지에 대해 간략히 다뤄보겠습니다. 기준은 일단 안톤 레이드를 전제로 하겠습니다.




 역할론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던파의 역할론입니다.


던파는 주로 4인 파티로 구성되며, 이 4인파티가 여럿 모여 레이트 파티가 됩니다. 실질적으로 4인 파티가 기준이라는 소리죠.


이 4인은 보통 파티의 딜링을 책임지는 딜러, 적의 무력화를 담당하는 홀딩, 파티의 종합적인 유틸성과 딜링을 높여주는 시너지, 파티의 생존성과 딜링을 대폭 높여주는 버퍼로 구성되곤 합니다. 이하에선 버퍼를 시너지에 포함시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모든 직업은 딜링이 가능하고, 또 일정 시간 적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있습니다. 또 파티의 종합적인 딜을 높이는 수단 역시 하나둘쯤은 존재하고요. 모든 게 칼 자르듯 뚝뚝 나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직업에 특화된 방식의 플레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파티원은 자기의 위치와 직업군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도를 요구받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해당 던전에 대한 이해도까지 겹쳐지면, 그 파티원은 파티에 적절히 기능하는 훌륭한 파티원이 되죠.


저 많은 캐릭터 숫자에 또 4를 곱해야 인게임내 직업군이 표현되니...


점핑 시스템은 유입 인구를 늘려주는 역할을 해냈고, 차고 넘치는 스펙을 마련하여 즉각적으로 높은 단계를 지향할 수 있도록 던파의 막힌 흐름을 뚫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던파라는 게임 전체가 흘러가는 방향성이나 게임 문화를 변화시키는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에 대해 파티원들이 가지는 종합적인 인식이나 기대를 파악하지 못한 파티원들이, 레이드 내에서 비난받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게임을 위해 어떤 장비가 더 유리한지에 대해 알고 게임을 접속한 이들도,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여 파티 전체가 꼬이는 일이 속출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보통은 선배격 플레이어가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플레이하는 걸 유도하곤 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죠. 차고 넘치는 스펙이 즐비하다는 건, 그냥 그 사람 빼놓고 플레이해도 무방하다는 소리기도 하기에...




 딜러


당연한 이야기지만, 85제 풀도 충분히 레이드에서 적절한 보조만 있다면 얼마든지 1인딜러로 활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대장들은 파티원이 방해를 해도 솔딜로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의 딜러를 찾곤 합니다. 그 정도로 스펙이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고, 동시에 레이드에서 별에 별 일이 다 벌어져 왔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실제로 솔딜은 점핑 캐릭터로 레이드 파티에 가입할 때 가장 힘든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90제 풀은 커녕 90제 업글픽과 경쟁해야 하는 수준이랄까요. 물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스펙은 차고 넘칠 뿐더러 이걸 알고 있는 사람도 적잖기 때문에 플레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었다 판단된다면 파티에 가입하는 것도 그렇게까진 어렵진 않을 겁니다.


퓨어 딜러는 가장 경쟁이 심하고, 또 딜 외적인 부분이 플레이 패턴에 크게 영향을 주기에 진입장벽이 높은 편입니다만은, 그만큼 매력적인 직업군이기도 합니다.


딜러의 역할은 당연히 딜링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레이드는 그 구조상 딜을 해야 할 때와 딜을 하지 말아야 할 때, 단순히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위치에서 특정한 조건을 만족해야 할 때, 내지 딜러가 먼저 때리면 안될 때 등등을 고루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대충 적이 무력화된듯하다 싶을 때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하면 됩니다.


당연하지만 딜러의 역할이 가장 큽니다. 스펙이 오버되면 오버될 수록 가장 부각되는 것도 딜러고요. 어느 정도냐면 적절히 버프를 받고 시너지를 받은 숙달된 딜러는 홀딩도 없이 그냥 한 방에 모든 몬스터를 펑펑 터뜨려댈 수 있습니다. 어찌보자면 파티의 주인공과 같은 모습이죠. 자연히 직업군도 많고, 경쟁도 심합니다.




 홀딩


던파의 모든 직업군 가운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 던전에 대한 이해도가 전제되어야 제 실력을 발휘하는 직업군입니다. 당연하지만 애초에 이런 직업군은 초심자에겐 추천되지 않는 것이 정상인데, 애석하게도 채용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초심자에게 자주 추천되는 직업군에 해당합니다.


홀딩 캐릭터는 파티에 안정성을 더해줍니다. 위협적인 몬스터를 무력화하고, 딜링 타임을 확보하며, 더 나아가 일정한 유틸성까지 더해줘 파티 플레이를 쾌적하게 합니다.


자연스럽게 플레이에 실패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게 바로 이 직업군입니다. 딜러의 딜링이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경우보다 홀딩의 무력화 시간이 짧거나 실패했다 지적받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물론 한 두번의 홀딩 실패만으로 모든 걸 재단할 수 없지만 검은 화산의 2번, 4번방 등처럼 선홀딩의 성패 여부에 따라 플레이 시간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케이스도 있어 부담이 매우 큽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저 같은 경우 결코 홀딩 캐릭터를 입문자에게 추천하지 않으며(물론 홀딩이 극단적으로 쉬운 직업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홀딩 캐릭터로 레이드에 입문한다면 그 어느 직업군보다도 해당 직업군과 스킬, 던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게임 바깥에서 가장 욕먹는 직업군이 프리스트류라면, 인게임에서 가장 욕먹는 직업군은 홀딩 직업군일 겁니다. 홀딩을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아예 플레이 패턴이 달라져 버리니... 또 홀딩캐릭터라고 뭉뚱그립니다만, 홀딩 난이도도 천차만별이라...


당연하지만 일정 이상의 스펙이 되면 몬스터를 무력화하면서 잡아버리기까지하는 직업군이 됩니다. 손맛이 넘치죠. 상단에서 파티의 주인공이 딜러라고 했는데, 살짝만 비틀어 보면 홀딩 캐릭터야 말로 몬스터를 갖고 놀며 공략하는 직업군입니다. 가장 위험부담이 크다는 건, 가장 보람이 크다는 소리기도 하니까요. 문제가 있다면 홀딩 직업군의 장르는 다른 직업군의 액션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이겠지만 말입니다. 거기다 상위 던전이 될 수록 제약도 함께 커진다는 문제점이....




 시너지(+버퍼)


시너지는 그 직업군이 특정 스킬을 사용하기만 하는 것을 통해 파티의 딜링을 높여주는 직업군입니다. 파티원 자체의 능력을 높여주는 케이스와 몬스터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케이스 등을 고루 포함하여 표현하도록 하겠습니다.


극단적으로 일부 직업군의 경우 파티원의 딜링을 높여주는 스킬을 사용한 직후, 구석에 박혀있고 나머지 파티원들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일도 있었던 직업군입니다. 자연스레 입문이 가장 쉬운 직업군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레이드에서의 활동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가장 수월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직업군이기도 합니다.


물론 당연하지만 스위칭 등의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하고, 파티 위주로 형성된 던전을 플레이하기는 매한가지인지라 이 또한 어느 정도의 이해도가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눈치를 보아가며 딜에 기여한다는 방식으로 플레이해도 딱히 비판받는 직업군은 아니라는 데에서 인식에서조차 자유로운 직업군에 해당합니다.


입문 허들이 낮고 효용성이 높은 만큼, 전체적인 스펙 상승은 어지간한 인기직업과도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직업군이 바로 이들입니다.


문제는 특정 조건 만족 후 없어도 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직업군의 경우, 플레이어들이 질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85제 에픽을 추천하면서 본인에게 맞는 직업군을 선택하라고 했지 가장 수월하게 레이드에 진입할 수 있는 직업군을 키우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었죠. 뭐든지 본인에게 잘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레이드가 어떤지 파악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체감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인생 캐릭터로 정하고 주욱 나가는데엔 고민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직업별 역할론


상단에서도 언급했지만, 홀딩 캐릭터라고 해서 딜링 못하는 것 아니고, 딜러 캐릭터라고 홀딩 못하는 것 아닙니다. 위 두 사례에 속하는 직업군이 시너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요. 현 던파의 메타는 대체적인 역할은 나누되, 그 역할을 보조해줄 수 있는 상이한 성질의 스킬들을 갖고 있어 파티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홀딩 직업군이 넋을 놓았다하더라도 다른 시너지 직업군과 딜러 캐릭터가 몬스터를 무력화시킬 수 있고, 딜러 캐릭터가 방만하게 플레이하더라도 다른 직업군이 플레이를 통해 몬스터를 물리칠 수도 있는 겁니다.


뭐,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본인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황을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되어 있다면 기본적으로 만사해결이라는 겁니다. 이게 잘 안되니까 초심자 유저들이 힘들어 하는 거지....


후술하겠지만, 직업별로 더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어 인게임 내에서 역할이 구분되곤 합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얼마나 능숙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이러한 구분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작정 남탓을 해서도 안된다는 거기도 하고요.


일단 직업군별 기대받는 역할은 이하와 같습니다.


...쓰고 보니 기네요.





I. 남자 귀검사

① 웨펀마스터 : 딜러형 홀딩

- 캐릭터의 콘셉트나 전반적인 스킬 구성을 살펴보면 "에엥? 검신이 홀딩 캐릭터라고?" 하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1각과 2각의 홀딩성능이 압도적이고, 일부 스킬이 보조적인 측면이 있어 홀딩 캐릭터로 실제로 레이드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홀딩과정이 다소 까다로워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② 소울브링어 : 시너지형 딜러

- 시너지 캐릭터로 분류됩니다만, 과거 디버퍼로서의 영향이 남아있고, 또 딜링 능력도 있습니다. 인식도 만능재주꾼으로 분류됩니다.

③ 버서커 : 딜러

④ 아수라 : 홀딩형 딜러

- 마찬가지로 스킬 구성을 살펴보면 "으잉?" 하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깔아둬서 편의성을 높여주는 스킬, 붙잡고 시간을 끄는 스킬 등이 고루 있어 홀딩으로 자주 인식됩니다. 검신에 비해 홀딩 난이도도 낮습니다.


II. 여자귀검사

① 소드마스터 : 딜러

- 딜러임에도 편의성이 높습니다.

② 다크템플러 : 홀딩

- 가장 홀딩이 쉬운 직업군으로 손꼽힙니다.

③ 데몬슬레이어 : 딜러

④ 베가본드 : 딜러


III. 남격투가

① 넨마스터 : 딜러

② 스트라이커 : 딜러

③ 스트리트 파이터 : 유틸형 딜러

- 적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의 딜러로, 과거 홀딩으로도 레이드를 찾기도 했었습니다.

④ 그래플러 : 홀딩

- 띄우고 날리는 걸 떠나, 애초에 홀딩 캐릭터라고 하기 뭣했었던 구조를 갖고 있던 시절에도 홀딩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IV. 여격투가

① 넨마스터 : 시너지

- 시대를 풍미했던 시너지 캐릭터입니다. 

② 스트라이커 : 딜러

③ 스트리트 파이터 : 디버퍼형 딜러

- 엄연히 상변딜을 하는 직업군인데 인식은 딜러라기보단 다른 직업군에 가깝습니다.

④ 그래플러 : 홀딩

- 홀딩 캐릭터의 대표격으로 꼽힙니다만, 초창기 캐릭터인만큼 생각보다 홀딩이 까다롭습니다. 반대로 홀딩한 이후에 다른 스킬로 이어가는 수월합니다만, 현 던파 메타상 그 정도로 길게 홀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단점이...


V, VI. 남&여 거너

- 모두 딜러 캐릭터로 인식됩니다.

① 레인저 : 딜러 ② 런처 : 딜러 ③ 메카닉 : 딜러 ④ 스핏파이어 : 딜러


VII. 남 마법사

① 엘레멘탈 바머 : 딜러 ② 빙결사 : 딜러

③ 블러드 메이지 : 홀딩

- 설치형 스킬을 통해 홀딩하는 물리형 캐릭터입니다. 홀딩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만, 몬스터를 이리저리 옮겨서 파티원들 가운데엔 호불호가 갈립니다.

④ 스위프트 마스터 : 시너지

- 던전 입장 후 버프만 사용하면 알아서 파티원들의 딜링이 높아지는 편의성을 제공해줍니다. 물리공격 파티에 주로 채용되곤 합니다.

⑤ 디멘션 워커 : 딜러

- 빙결사와 같이 만능형 캐릭터인데, 빙결사는 딜이 되는 만능형 캐릭터라면 이쪽은 딜이 안되는 만능형 캐릭터입니다. 그럼에도 던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어 딜러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구소울처럼 디버퍼 캐릭터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정도...


VIII. 여마법사

① 엘레멘탈 마스터 : 유틸형 딜러

② 소환사 : 시너지형 딜러

- 엄밀히 말하자면 시너지형 캐릭터인데, 그 구조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딜러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③ 배틀메이지 : 딜러

④ 마도학자 : 홀딩

- 설치형 스킬, 채널링 스킬이 많아 현 메타와 맞지 않습니다만, 여하튼 편의성을 높여주는 스킬들 덕에 홀딩 캐릭터로 레이드를 찾곤 합니다. 


IX. 남프리스트

① 크루세이더 : 버퍼

- 시너지의 틀을 넘어선 그 무언가. 유틸성이 한없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최우선 파티원으로 선호되곤 합니다.

② 인파이터 : 딜러

③ 퇴마사 : 시너지형 홀딩

- 검신과 비슷한 케이스로, "이게 홀딩 캐릭터라고?" 라는 생각을 갖게하고 저 자신도 퇴마사는 만능형 캐릭터지 딱히 홀딩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홀딩으로 레이드를 찾는 퇴마사를 종종 보곤 합니다. 핵심은 현무로, 퇴마사가 선홀하면, 현무로 본홀딩을 하는 구조입니다. 숙달해도 피곤하고, 숙달하지 않아도 피곤한 현무의 인공지능이 참...

④ 어벤져 : 딜러


X. 여프리스트

① 크루세이더 : 버퍼

- 버퍼 포지션만 부각되지만 유틸도 뛰어나 편의성을 대폭 높여줍니다.

② 이단심판관 : 시너지형 홀딩

- 홀딩인데 시너지까지 좋다 인식되는 직업군 1

③ 무너 : 시너지

④ 스핏파이어 : 시너지형 홀딩

- 홀딩인데 시너지까지 좋다 인식되는 직업군 2


XI. 도적

① 로그 : 딜러 ② 사령술사 : 딜러 ③ 쿠노이치 : 딜러

④ 섀도우 댄서 : 홀딩형 딜러

- 시너지형 홀딩 캐릭터라고 보는 게 더 맞을텐데 인식은 아직도 딜러 캐릭터로 되고 있습니다. 예전 레이드에서 볼 수 있었던 섀댄 직업군 상당수가 보여줬던 모습이 있어서...


XII. 나이트

① 엘븐나이트 : 딜러

- 여전히 시너지로 종종 인식되고 있습니다만, 팔라딘 아닌 애로 불리며 점차 그런 일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② 카오스 : 만능형 딜러

③ 팔라딘 : 시너지

- 흔히 물공 염제로 불립니다.

④ 드래곤 나이트 : 딜러


XIII. 마창사

① 뱅가드 : 딜러 ② 듀얼리스트 : 만능형 딜러 ③ 드래고니안 랜서 : 딜러

④ 다크랜서 : 시너지형 홀딩


XIV. 총검사

① 히트맨 : 시너지 ② 요원 : 딜러 ③ 트러블 슈터 : 홀딩

④ 스폐셜리스트 : 홀딩 시너지

- 개인적으로는 만능형 캐릭터로 분류하곤 합니다만, 레이드 진입을 홀딩으로 하는 이들이 많아서인지 홀딩 캐릭터로 종종 인식되곤 했습니다.


XV. 외전

① 다크나이트 : 딜러 ② 크리에이터 : 홀딩형 딜러

- 크리에이터의 경우 과거 무한 홀딩의 임팩트와, 그게 무력화된 이후의 임팩트 모두 고루 강해서 뭐라 인식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레이드에서 두 직업 다 본 적이....





...복잡하죠? 워낙 많은 직업군이 나왔고, 플레이 패턴에도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상단에서 홀딩형 딜러(딜러가 정체성이고 구조상 딜러가 맞는데 홀딩에 적합한 스킬이 있어 홀딩을 해야 하는 직업)건, 딜러형 홀딩(홀딩이 정체성이고 구조상 홀딩에 가까운데 어쩌다 딜러 포지션을 갖게 되어 버린 직업)이건, 시너지형 홀딩(홀딩이 정체성인데 시너지가 더 부각되는 직업)이건, 홀딩형 시너지(시너지가 정체성인데 홀딩이 당연한 책임으로 주어지는 직업)건 간에 일단 홀딩이 들어가는 직업군은 인게임 내에서 홀딩에 실패하면 상당한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시너지 직업군이라고 해서 스킬 하나만 쓰고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그런 것도 아니고요. (예컨데 팔라딘이 버프를 어떻게 줘야하는지 몰라 헤매는 경우도 있었죠.)


실제로 이러한 구분은 그리 적합한 것이 아닙니다. 상단에서 몇번이나 인식이라고 표현하며, 저러한 평가가 캐릭터의 정체성 그 자체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몇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캐릭터의 인식과 캐릭터의 성능이 괴리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게 현실이고요.


실제로 캐릭터 구조에 비해 보다 까다로운 역할을 수행받도록 요구되는 직업군 상당수가 초창기 직업군에 몰려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일례로 여크루를 내버려두고 남퇴마에게 인게임 내 모든 홀딩을 요구하는 게 맞는 일은 아니죠.




 마무리


일단 던파는 인게임 내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초심자를 배려하지도 않고(그렇다기보단 험악한 분위기에 가깝죠), 초심자 역시 자신이 초심자임을 그렇게 어필할만한 환경도 아닙니다. 결국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어느 정도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거죠.


동시에 보다 의견을 원활히 교환할 수 있는 뻔뻔함도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제 역할을 하겠거니 멍하니 있는 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상단에서처럼 그 역할론이 캐릭터의 패치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 현 정체성과 괴리된 케이스도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던파의 음성패치도 플레이어간의 원활한 의견교환을 위해서 마련된 걸 것입니다. 문제는 탓하기 문화를 지금까지 방치하다시피했던 제작진측이 이걸 내놓으면서 뭔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인데... 여하튼 결론은 채팅으로 빠르게 처음 레이드 가는 거라고 말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 물어보세요.


일단 점핑캐로 레이드에 진입하신 분들은 최소한 인게임 내에 들어온 이후에라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어필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스펙은 차고 넘치기 때문에 그 순간에 배워서 플레이하더라도 제 몫은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레이드가 효율을 중시하고 온갖 비매너 플레이가 넘쳐나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 어필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플레이어가 하나도 없는 수준은 또 아니니까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호러 장르에서


자주 이용되는 클리셰입니다.


언젠가 이야기했듯, 호러 영화 속 등장하는 연쇄 살인마는 일정한 분류에 따라 구분이 가능합니다. 살인행위에서 유희를 찾는 쾌락형 살인마, 스릴러적 구성을 위해 다양한 시설로 일종의 두뇌게임으로 몰고가는 퍼즐형 살인마, 일정한 도덕적 법적 책임을 물으며 인과응보적 구성에 일조하는 심판자형 살인마 등등등...


오늘 이야기할 '단독으로 살인시설을 설치하는 살인마'는 퍼즐형 살인마에게 특히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클리셰입니다.


반전을 위해 곳곳에서 사용되면서도 시설이 어떻게 지었는지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시선을 집중시키지 않으려 했던 영화 하우스 오브 데스. 


살인행위, 특히 연쇄살인 행위는 철저한 비밀 하에 이뤄집니다. 사회의 기저에서부터 촘촘하게 연결된 구성망은 하나의 인격체가 또 다른 인격체를 반복해서 살인하는 일을 거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시스템이 사각 하나 없이 완전히 뻗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고, 여러 불운과 사회적인 무관심 그리고 몰이해로 인해 연쇄살인행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연쇄살인마들의 범죄행각은 등불 밑이 어둡다는 식으로 일어나거나, 아직까지 과학수사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시기의 일이거나, 사회적인 모순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회와 수사의 발전으로 인해 얼마든지 과거엔 연쇄살인마로 변화될 수 있는 살인자가 지금에 와선 여러 사유로 인해 한 번의 범죄 행위로 붙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연쇄살인행위는 지금에 와선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눈도주지 않는 취약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고요.


쏘우 영화 중, 그래 저거 한 두 사람이 저거 다 만들었다고 치자라고 넘겼던 사람들조차, 24시간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공개된 지역에 시설이 설치되었던 것일 땐 황당해하더군요. 최소한의 현실성을 위한 당위성은 필요한 건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 시설을 이용해 연쇄살인행위를 저지르는 살인마라는 것은 점점 허황된 것이 되어 갔습니다. 최대한 증거를 남기지 않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사건과 자신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을 범인들조차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거대한 시설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고, 또 뒤처리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허황된 일로 여겨지게 되었죠.


더군다나 사람들이 인식하고 감탄하는 시설물의 기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거대해져 점점 말이 되지 않는 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전문화와 분업화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시설물을 짓는 것도 여러 사람들의 협업을 요합니다. 설득력 있는 시설이라면 저걸 짓는데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흘러 나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 되었고, 허술한 시설이라면 저런 걸로 사람들이 죽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여기는 상황이 되었죠.


그래서 창작물은 편의적으로 이러한 시설물을 짓는 과정을 생략하거나,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쏘우처럼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다는 식으로 굴기 시작하면 비웃음거리가 되어 버리는, 철저히 비현실적인 작품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H. H. 홈즈는 워낙 구별되는 특성을 많이 지닌 연쇄 살인마여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화로도 기획되고 제작 중이라 알고 있죠.


그렇다면, 이러한 클리셰가 자리잡게 된 이유는 뭘까요. 물론 푸른 수염류의 이야기나, 압도적인 계급을 이용하여 온갖 학대시설을 지어놓고 이용하는 정신나간 귀족에 대한 이야기가 적잖게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역사 속에서도 이와 관련한 살인마가 있었습니다. 100년도 전의 현실에서 거대한 시설물을 지어놓고 그것을 이용해 사람들을 살인했던 연쇄살인마, H. H. 홈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그는 거대한 모텔을 이용해 사람들을 유혹했고, 모텔 내 시설물을 이용해 시체를 소각하거나 유독가스를 흘러넣는 등의 살인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수십 혹은 수백명을 살인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법적으로 인정된 것만해도 수십명에 대한 살인행위였습니다.


그는 상기의 문제점-허술하게 지으면 효용이 없고, 너무 거대하게 지으면 소문난다-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을 발주하면서도, 의도적으로 건설을 중지시키는 일을 반복하여 건설업자를 계속해서 교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체 건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게 하였고, 건설비까지도 줄일 수 있었죠. 물론 격동의 시기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이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말이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7.09 18:00


 지금이야


조롱거리로 전락한 패러디 무비입니다만, 20세기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기대받고 이런저런 흥미를 자아내는 영리한 영화로 취급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 끄트머리에 나온 '무서운 영화'는 공포영화의 공식을 적절히 답습하여 비틀어낸 '신선한' 영화로 취급받았었죠.


당시 영화 소개프로그램에서 가장 사랑하는 영화가 바로 이 무서운 영화였고(영화 자체가 좋았다기보단, 영화 외적으로 이야기할 '꺼리'가 많아 방송 소재로 삼기가 좋았죠), 당대 한국 영화에도 이런저런 영향을 미쳐 '재밌는 영화'로 패러디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1편은 그래도 괜찮지 않았냐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고 안나 패리스가 나오지 않은 무서운 영화는 상징성을 떠나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초창기 시리즈가 구축한 성과와 재미는 인상적입니다. 그에 따라 오늘은 초창기 시리즈가 왜 사랑받았고, 이후 네 편의 속편의 영화가 개봉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디지털 풍화작용을 보아하니, 참으로 오래된 영화구나 싶죠? 자그마치 18년 전 패러디 영화의 범람을 알렸던 영화입니다. 그게 한 5년 정도는 그냥저냥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좀...


흔히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속편 징크스라고 하는데, 데뷔작이나 1편에 비해 작품의 질이나 인기가 심하게 떨어질 때 이런 이야기를 하죠.


무서운 영화의 첫번째 영화는 상당히 영리한 영화였습니다. 주축이 되는 영화로 선택했던 스크림 자체가 8090 호러영화의 해체와 재구성을 주창했던 것이었습니다. 이건 대상에 대한 이해와 풍자를 전제한 '패러디'와 아주 궁합이 잘 맞죠.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결과적으로 '공포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가 '공포 영화적 구조를 가진 이야기'에 화학적 결합을 일으키며 적절히 패러디를 받아들일 수 있는 틀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부분이 후속작들과 가진 가장 큰 차이일 겁니다.


실제로 무서운 영화는 시리즈가 지속되면서 점점 '공포 영화라는 틀'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블록버스터 패러디 무비에 공포라는 양념을 친 수준으로요. 기실 무서운 영화가 여타의 패러디 무비에 비해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공포 영화 자체가 그렇게까지 커다란 예산을 요구하지 않는 장르였던 점이 있었는데, 블록버스터 무비를 선택하면서 그 장점을 고스란히 날려 버린 것입니다. B급도 정도가 있고, 병맛도 한도가 있는데 말입니다.


결국 '선택의 폭'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초창기 작품들은 모델이 될 만한 영화들을 별다른 제한 없이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가 지속되면서 최소한 자기들 간엔 변별력을 가져야 했기에 이러한 선택지는 계속해서 줄어갔고, 공포 영화 장르 특성상 모티브가 될만한 굵직굵직한 영화들의 숫자는 더더욱 제한되어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연출의 신선함도 떨어졌지만, 소재와의 화학적 결합도 지지부진해졌다는 소리입니다.


재밌는 영화가 나왔던 것처럼 미국에서도 별에별 패러디 영화가 다 나왔었습니다. 디재스터 무비, 에픽 무비, 슈퍼 히어로 무비, 뱀파이어 무비 등등.... 이 영화들이 모티브를 따온 장르들이 달랐던 만큼 변별력이 있었다면 장르적 피로감이 덜어졌을 지 모르겠는데 심지어 패러디 방식까지도 닮아 있었으니...


이 모습은 공포영화의 몰락과도 닮아 있습니다.


시리즈 초창기엔 신선한 소재나 캐릭터, 연출로 호평받았지만 영화가 계속되면서 여러 제한이 가해져 호평은 반분되었고 혹평은 배가되었습니다. 관객의 피로도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80년대 메인 스트림에 있었던 패러디 무비가 2000년대 초 일신하여 다시금 화제가 되었고, 그것이 범람하여 십수년이 지난 지금 패러디라는 장르에 대한 몰락을 불러왔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있는 상황입니다. 호러 장르가 이후 여러 연출과 소재, 관점의 다양화를 통해 다시금 새로운 가능성을 인정받은 점을 생각해보면, 패러디 장르는 지나치게 안일했죠. 레슬리 닐슨의 출연이 모든 걸 보장해줄 순 없는 건데도 말이죠.


기실 패러디가 얄팍해졌다는 본질에 대한 부실함에 대한 이야기인 셈입니다. 한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 상이한 요소가 얼굴만 비추고, 이거 알지 하면서 넘어가 버리는 것. 극단적으로 SNL TV쇼와 영화가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그게 과연 영화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오늘


다룰 클리셰는 이야기적인 편의성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클리셰라기 보단 연출에 가깝다는 생각도 드네요.


간단히 예를 들어볼게요.


평소부터 맞지 않았던 두 라이벌. 최근에는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하나하나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갈등이 폭발하여 서로 대립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둘의 공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공적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두 라이벌 사이에서 불거졌던 갈등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립니다.


익숙하죠? 이 클리셰와 비슷한 클리셰로는 내부의 갈등이 외부의 사건으로 해소된다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정직하지 못하다는 남녀간의 갈등 문제가 스파이 사건으로 해소됩니다.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유의미하게 작용되고 종료된 케이스라 이후에 다룰 작품과는 다릅니다.


클리셰라 불러도 될 정도로 여러 장르에서 쓰입니다.


가족물에서도, 배틀물에서도, 스릴러물에서도 자주 쓰였죠. 서먹했던 부자가 여러 사건을 거치며 친해진다, 제3의 적과 맞서싸우던 전사들이 친해진다 등등 어떤 주체를 삽입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의 관계가 서로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운 놈은 뭘 해도 미워보이고, 고운 놈은 뭘 해도 예뻐 보이죠. 심리적 갈등이 물리적 사건을 겪으며, 서로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인해 이전의 심리적 갈등이 해소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어찌보자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리고 이것이 이야기적인 갈등을 해소시키는 것에 대한 장치로 활용하는 것도 스무스하게 이어지는 일이고요.


가장 헛웃음 지으면서 봤던 케이스입니다.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에서 가족, 친구, 연인 문제가 동시에 터졌는데 좀비 습격 한번에 모든 게 해결되었습니다. 고민을 깊이 다루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에 특별한 전환을 불러오는 것도 아니어서 뭐하냐 싶던 생각이 들었던 에피소드가 있었죠. 시즌3였나... 4였나...


문제는 이것을 무비판적인 차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적인 갈등을 해소하는데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방점은 이겁니다. 갈등이 해소된 이후, 이전의 갈등은 없던 것으로 취급됩니다. 사실 이건 일어나기가 아주 힘든 일이죠.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도 이전의 사유로 인해 헤어짐이 반복되듯, 인간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아주 근본적인 영역에 위치한 것들은 아무리 관계가 변화해도 계속해서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이 갈등이 이후로도 계속해서 불거질 정도로 이야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처럼 보였을 경우라면 말이죠.


이 클리셰의 가장 큰 비판점은, 갈등사항이 불거지기 이전과 같이 내용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애초에 그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처럼, 갈등 그 이상의 가치만 있다면 그러한 갈등은 뭉개져도 늘상 무방한 것처럼.


그래서 저는 이 클리셰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변화하고 때론 그 질조차 변화시킵니다. 캐릭터의 관계의 급변은 자연스레 이야기의 질의 급변을 유도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결과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상 없는 것보다도 좋지 못한 일이죠. 뒤흔었들지만 변화는 없으니 결과적으론 질이 떨어지는 일이 되는 거니까요. 애초 갈등으로 설정하는 것이 관객 혹은 독자가 이전의 마찰과는 차원이 다르다 생각할 정도로 몰입할 정도의 수위로 설정하곤 하니까요.


연재물, 장기 방영작의 문제와도 어느 정도 맞닿습니다. 어느 정도의 갈등으로는 더 이상 위기감을 조성하기가 힘들고, 그렇다고 이전에 비해 특히 구분되는 갈등을 설정했다간 이야기를 이어나가기가 힘들고. 그러다보니 갈피를 잃고 이야기의 질도 떨어지는 겁니다.


보통 이러한 클리셰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갈등은 대개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질을 변화시킬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호러 장르에서 뜬금없이 법률문제가 불거지거나, 판타지 장르에서 리더로서의 책임에 대한 지탄을 받는 등- 이전의 이야기 진행을 위한 갈등과는 근본적인 성질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도 이것이 심상치않은 위기이며, 그만큼 커다란 갈등이라 여기니까요.


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은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변혁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상태에서 미시적인 영역만을 일신하여 지속시키는 것에 비해 손이나 정성이 몇배로 들어가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수용자 입장에선 사기당했다라는 생각도 종종 드는 클리셰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7.06 18:10


 참 우습습니다.


예전에 운만 떼고 쓰지 않은 글이 엄청 많습니다.


동시에- 써야지 하고 등록은 해놓고 공개를 해놓지 않은 글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무슨 글을 써야 할 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비공개 글들만 주르륵 훑어도 몇달은 써야 할 글이 나올 정도로...


여하튼 오늘은 작년에 인상 깊게 보고, 쓰려다 미처 쓰지 못했던 영화 겟 아웃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1년 전 글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예전 개봉했던 한국 영화 더 게임이었습니다. 예, 기억하시나요? 신하균과 변희봉이 주연을 맡았던 그 영화말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이 부분부터가 사실상의 스포일러입니다.


더 게임이 노쇠와 젊음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겟 아웃은 여기에 더해 인종적인 요소까지 더해집니다. 다만 더 게임이 훌륭한 연기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들어낸 졸작으로 불리는 반면, 후자는 이질적 요소를 적절히 섞어 독특한 미장센을 통해 펼쳐진 수작으로 불린다는 차이는 있죠.


영화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동시에 대상이 자신보다 뛰어나다 '인정'한 듯한, 이전의 인종차별에 비해 발전한 것이 아니냐는 인상마저 줍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영화는 우리가 흔히 가지는 별 거 아닌 생각도 엄연히 차별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역설합니다.


기대가 정말 커서 다소 실망했던 영화였습니다. 워낙 극찬의 연속이어서 전 정말 세대를 앞서는 명작일 줄 알았거든요. 알고봤더니 현실 체험형 영화였습니다. 물론 나쁜 영화라거나 재밌게 보지 않았다는 소리 역시 결코 아닙니다.


한국은 흔히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로 분류되곤 하고, 실제로 인종의 비율로 따지자면 서서히 변화의 폭이 커진다고 해도 아직까지 '절대'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흔히 이야기하는 인종차별에 대해 몰이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이것이 과연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컨데 흑인, 백인, 황인이라는 표현은 한국 내에선 전혀 차별적인 뉘앙스가 담긴 것이 아닙니다만- 미국에선 색을 인종에 붙이는 걸 일종의 차별로 이야기하죠. 이건 자신의 피부가 노랗다는 것에 대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인 입장에선 선뜻 이해하기 힘든 차별의 방식입니다. 희거나 검거나 노란 걸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것은 다양한 인종이 공통된 목적을 위해 수없이 부대껴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 아닌 이들에겐 굉장히 기묘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흥미롭게도 그런 우리 사이에도 흑인에 대한 일종의 인종차별적 발상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소위 흑형으로 불리는 애칭, 성기 크기로 인한 섹스어필, 몸매에 대한 예찬이 그것이죠. 예? 뛰어난 부분을 뛰어나다고 이야기하는 게 어떻게 차별이 되냐고요? 이것이 바로 '흑인을 차별해서는 안된다' 이후 등장한 새로운 방식의 편견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종일관 관객들을 바라봅니다. 너희들은 자유로워? 라면서 말이죠. 이 감각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영화를 보다 덜 체감하는 방식으로 즐길 수밖에 없겠죠.


이전의 인종차별은 상대에 대한 열등함을 기반으로 이뤄졌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가난해서, 성격이 모나서 등등. 하지만 사회는 올바름을 지향하도록 구성원을 교육시켰고, 이러한 방식의 차별은 배제하고 훌륭한 것은 훌륭하다고 칭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비해 흑인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아졌지만, 그 좋아진 이미지는 특정한 영역에 국한 되었습니다. 상단의 육체적인 측면, 성적인 측면 등이 그것이죠. 엄연히 정신적인- 내지 자본적인 가치를 더 우위에 놓는 현대사회에서 육적인 면이 우선하는 인종이라 평하는 것은 분명 또 다른 이름의 차별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습니다.


정해진 이미지대로 그 인종 자체를 판단해버리도록 만들고 그 외의 것은 무시하게 만드는, 좀 더 교묘한 방식의 인종차별이 가해진다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실제로 작중에선 찬양을 빌어 실질적으로 흑인을 모욕하는 인물들이 무수하게 등장하죠.


무지와 편견은 그러한 측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개인을 개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동시에 양자는 거대한 담론의 차이를 보입니다. 이해없는 긍정적인 방식의 이미지는 새로운 것을 쌓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지만, 차별을 넘은 편견은 자칫 또 다른 방식의 차별을 낳을 수 있는 기저가 되어 준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뽑은 영화의 백미는 야밤에 질주하는 집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이질감과 압박감, 공포는 정말이지 말로는 표현이 어렵더라고요.


영화 속 백인 등장인물들은 내내 흑인의 육체적인 뛰어남과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그것을 얼마든지 다른 수단을 통해 손에 넣을 수 있는 재고품처럼 취급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노예제'를 떠올리게 하고, 최소한 육체만은 자신의 것으로 지킬 수 있었던 이전의 시대와 달리 지금의 차별은 자신의 몸마저도 뜻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는 현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직 흑인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두는 것이 과연 대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겉으로는 그들을 우대하는 듯 하지만, 함께 일상을 구성하면서도 달리 대우하는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방식의 차별이 되어 버립니다. 흑인의 육체적 뛰어남만을 찬양하는 것이 과연 또 다른 방식의 차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특정한 이미지를 개개인의 차이를 무시하며 무리하게 대입하는 것 역시 차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무지는 정견과도 닮아 있습니다.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특정한 이미지를 자의적으로 확대시키지 않습니다. 한국어 '네(니)가'라는 말을 들은 영어권 흑인이 그것을 자신의 경험(Nigar)에 등치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차별이나 비하의 표현이 되지 않는것처럼요. 다만 그러한 무지로 스스로를 이야기하기엔 한국은 너무 세계화된 국가고, 대중문화에선 특정한 인종을 특정한 쓰임새로 사용되어온 것에 적잖게 학습되어 버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차별을 당한다 생각하는 이들도 스스로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인해 확대시키는 것도 있지만- 이 부분은 패스합시다.


사실 겟아웃에 대해 글을 쓰는 걸 잊다 올해 다시 떠올렸던 계기가 바로 차일디쉬 감비노의 This Is America였습니다. 양자를 엮어서 글을 써볼까 했었는데(영화 OST에 그가 참여하기도 했죠), 문제는 이게 너무 핫해져서 "에이, 다음에 쓰자"하면서 또 미뤄버린 거였지만.


영화는 뇌이식 수술을 통해 흑인과 백인이 통합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흑인은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채 인식만 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오직 육체적인 면만 남습니다. 백인은 정신적인 가치를 지키고 여러 사회적인 수단을 발휘하여 흑인을 대체품으로 취급하며 교체를 반복합니다. 가장 본질적인 영역의 통합처럼 보여지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차별의 타파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대해 '인종차별을 다룬 스릴러물'이라는 정보 정도만을 알고 갔기에, 최면술이나 뇌 이식 등의 소재가 등장할 땐 뜨악했습니다. 이질적인 흑인들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고, 흑인들에게 가하는 차별적인 백인들의 모습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발상은 특별했지만, 그것들이 깊은 여운을 남기거나 하지는 못했던 이유기도 했습니다. 그 수단이나 기원이 너무 노골적으로 설명되어서 맥이 빠졌달까요.


또 특별하고 신선하다지만 이야기적으로는 사실 전형적인 구성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방식의 차별도 차별은 차별이다는 것을 영화로 표현해낸 것은 신선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 이와 관련한 담론에선 또 하나의 정론인 상황이었으니까요. 당장 우리딴엔 친숙함이나 특유의 멋에 대한 표현으로 써 온 흑형이라는 말을 당사자인 흑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사용하지 않는게 좋다는 말이 대체 몇 년 전부터 나왔던 것인가요. 영화가 이전처럼 담론을 이끄는 주제가 되지는 못하는 상황이 된 거겠네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섹시한


만화 캐릭터 이야기를 하며 와스프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100개의 캐릭터 가운데 와스프의 순위는 고작해야 94위. 섹스어필이라는 제한이 있긴 했지만, 어느 정도 인지도 싸움에 가까웠던 해당 설문에서 와스프의 순위는 끝에서 세는 게 더 빠른 것이었습니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더 말할 것도 없었죠.


물론 해당 조사 자체가 2011년 기준이었고, 해당 글을 올렸던 시점은 앤트맨 개봉은 커녕 울트론 개봉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코믹스가 원작이라 하더라도 성공한 영화 시리즈가 이후의 이미지를 선도하고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생각해본다면, 저 순위는 차후 조사할 경우 대폭 변경될 가능성이 높죠. 무엇보다 저 순위는 호프 반 다인이 아니라 재닛 반 다인에 해당하는 순위였으니까요. 물론 미셸 파이퍼가 연기한 1대 와스프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그려졌습니다만.


다음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라는 전제가 있다면, 이 영화는 썩 괜찮습니다. 하지만 전작 특유의 끊는맛이 좋았다면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질지도.


여하튼 그런 이야기를 하고도 앤트맨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지도 몇년이 흘렀습니다. 앤트맨 본편은 물론 어벤져스2와 3에, 심지어 와스프가 주인공인 앤트맨과 와스프까지 개봉했죠. 이쯤이면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꽤 이상한 일입니다. 쓴다고 해놓고 쓰지 않은 글이 아무리 부지기수라도 말이죠.


그에 따라 오늘은 앤트맨과 와스프를 본 후기를 간단히 남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겸사겸사 앤트맨의 액션에 대한 감상도 함께요.


사실 앤트맨을 처음 보았을 때 떠올린 것은 '디즈니식 화법에 따른 가족 영화'였습니다. 가장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것은 80년대 말에 개봉했던 애들이 줄었어요였고요. 일상의 사소한 요소들을 일정한 변화를 통해 환상적인 모험으로 변화시켰던 애들이 줄었어요는 오랜 시간 디즈니 랜드에서 테마파크로 운영되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죠.


앤트맨도 그러했습니다. 이미 존재했던 여러 요소들을 적절히 차용하여 하나의 가족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이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죠. 커지고 작아진다는 것은 어찌보자면 너무나도 단순한 일인데, 이걸 다채로운 액션-특히 시빌워-과 스토리로 엮어내며 가족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연대기를 만들어냈으니까요.


앤트맨과 와스프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습니다. 거대화 능력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발전한 측면을 보이는 와스프가 등장하고, 보다 확장된 개념의 가족을 논하며 영화에 다양성과 흥미를 더해주었습니다.


본작에서 마블 시리즈와는 다른 히어로 무비에서의 배우들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일련의 히어로 시리즈가 십수년 더 지속되면 히어로 무비에 출연한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로 나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앤트맨과 와스프의 한국 제목은 앤트맨2로 기획되었었습니다. 특정한 히어로들에 비해 극장가를 찾는 이들의 숫자가 적다곤 해도, 기대 이상의 성공과 평가를 거두었던 영화의 속편 제목에 2를 붙이는 건 흥행 측면에서도 그리 나쁜 결정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이 결정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아 역풍을 맞이했습니다.


영화는 앤트맨의 단순한 속편이 아니라, 여성 히어로 와스프의 데뷔작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주체성 여부를 떠나, 보다 원작에 가깝기를 바라는 관객의 바람이 작용하여 영화는 결국 앤트맨과 와스프로 개봉하게 됩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와스프는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진행자형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캡틴 마블에 앞서 그녀가 마블의 첫 여성 히어로로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요. 물론 앞서 블랙 위도우가 존재했고, 더 나아가 단독으로 시리즈를 대표하고 이끄는 캡틴 마블과 달리 팀업으로서 정체성이 구현된 와스프를 나란히 놓기는 애매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원작에서 어벤져스의 창설자이자 리더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녀가 영화화됨으로써 원작의 어벤져스 창설멤버가 모두 영화화되었다는 상징성을 떼어놓을 수는 없죠.


그 외에도 영화는 공공에 대한 위협과 괴리된 여성 빌런이라던가, 문제의 기원을 자기에게서 찾는다거나 하는 사색적 구도를 도입한 색다른 시도를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전체 영화 시리즈에서 튀지 않는다는 범주 내에서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말이죠.


캡틴 아메리카와 에이전트 카터처럼, 1대 히어로들의 활약기를 다룬 콘텐츠가 나와도 재밌을 겁니다. 세계관에 눌리지 않는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작에 가까웠다는 인상입니다. 딱히 실망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기대한 이상으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마블 특유의 '다음'을 적절히 활용한 영화였습니다.


사실 어벤져스1 이후 개봉했던 아이언맨3, 어벤져스2 이후 개봉했던 앤트맨-시빌워-스파이더맨의 임팩트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거대한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연작의 갈증을 풀어주었던 작품들과는 달랐죠. 다중차원이나 시간이동 등의 떡밥을 거창하게 풀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물론 인피니티 워의 속편인 어벤져스4, 그리고 마찬가지로 또 다른 실마리가 될 캡틴 마블의 개봉이 예정된 상황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겠죠.


이 점이 영화의 비판점입니다. 이전 퀵실버와 스칼렛위치가 등장할 때처럼 내용의 진행만 따지자면 본편보다 쿠키가 더 나아가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제작의 편의성은 높여주지만, 자칫하면 러닝타임이 몇백분이나 차이가 나는 쿠기영상이 본편의 질감과 인상을 바꿔버리는 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다음 영화에 대한 예고건,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가벼운 쿠키건, 기존의 영화 내용에 대한 수정이건, 반전이건 간에 말이죠. 영화 본편만 평가해야 하는가, 쿠키는 별개로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영화입니다. 상이한 분위기의 영화를 연결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빌런 캐릭터에 대한 고민은 곧 히어로 캐릭터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습니다. 영화 시리즈 전통이 이른 바 거울에 선 주인공형 악당이 첫 상대로 제시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 앤트맨, 앤트맨과 와스프는 그 다음을 떠올릴 차례가 되었습니다.


여하튼 전작에 호평받은 요소는 살리고, 혹평받은 요소는 신경쓴 속편이었습니다. 영리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동시에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처럼 연작과 속편으로서의 가능성을 넓힌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취향의 분화를 통해 마블시리즈에 입문하는 팬들을 늘리려는 전략의 결과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이미


상당히 많은 무비 팬들이 tv시리즈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벤져스3가 또 다시 전세계급 흥행을 기록한 상황 속에서, tv시리즈의 부진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완성도나 재미가 가장 떨어진다는 인휴먼스는 애초에 붙어있기나 했는지 의문이니 제쳐두고라도, 어두운 분위기와 특유의 느와르적 색체가 짙었던 넷플릭스의 디펜더스 시리즈는 절정부가 되어야할 크로스오버가 밍숭맹숭한 결과물이 되어 평이 급락했습니다. 틴컬쳐의 색이 짙어 기존 마블 시리즈와 접합성이 떨어진다 평을 듣는 런어웨이즈는 무비팬을 끌어오진 못하고 있고요. 개중 그나마 가장 인지도도 높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에이전트 오브 쉴드도 떨어지는 관심도와 평가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개개를 놓고보면 여전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춘 콘텐츠들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시리즈의 일각이라고 평가하기엔, 이들의 소위 말하는 '유통기한'이 임박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강렬할 충격요법으로 시작한 시즌5인데, 나름 영리한 결정을 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인피니티 워와 연관된 듯 하면서도, 시점을 따로 두어 드라마만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문제는 일종의 이러한 평행차원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는 겁니다.


특히 영화가 가장 접점이 많았으며, 동시에 가장 길게 방영된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다음 시즌에는 종영할 거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달고 다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자체적인 평가는 서서히 올랐고, 영화와의 연계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둔 시리즈라는 점이 돋보이는 콘텐츠로 평가는 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하지만 여러 한계를 마주했다는 인상을 매 시즌마다 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한계가 시리즈가 폭주하는 것을 적절히 억제하며 그나마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습니다.




 연결성의 부인


언젠가 스카이를 두고 캡틴 마블일 것이다 내지 인휴먼스의 주인공일 것이다라는 추측글이 전체 여론을 주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소수파로 맨티스를 밀었죠) 야심찬 tv시리즈와의 연계, 그리고 영화에서 어벤져들을 뭉치게한 콜슨이라는 캐릭터의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이후 어벤져스의 합류하는 그녀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죠.


결과는 퀘이크였고, 인휴먼스는 영화 기획이 취소되었으며, 심지어 X맨 판권까지 디즈니가 갖게되는 상황이 되면서 위 예측들은 모조리 빗나가게- 아니 빗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퀘이크는 원작에서 쉴드의 리더가 되기도 하는 캐릭터여서 영화와의 연결성은 계속해서 기대되어 왔고, 드라마의 스케일은 갈수록 커지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영화에서 회상씬이나 구조씬에서 얼굴 한 번 정도 비추는 것은 이뤄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대규모 사건이 tv시리즈에서 벌어졌고, 적잖은 사람들이 tv시리즈와 크로스오버가 된다면 바로 지금이다 외치는 때도 있었습니다.


드라마팀과 영화팀이 다르다보니 각자의 전략도 다소 차이가 있는데, 드라마팀은 우리는 영화와 관련이 있다는 척하는 것입니다. 영화에 나온 것들이 이리저리 되풀이되고 재활용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진짜 저게 영화에 나왔던 거하고 같은 건지 따져보면 다르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는 그런.


이것은 마냥 허황된 기대가 아니었습니다. 에이전트 오브 쉴드 tv시리즈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의 중대한 반전을 동일하게 활용하며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었고,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에이전트 카터도 이야기에 다양성을 더해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왠걸요. 사실상 중대한 연계는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울트론의 도래를 예견한다거나, 영화 출연진 중 일부가 tv시리즈에 출연한다던가 하는 일이 이후로 종종 있긴 했습니다만, 그 뿐이었습니다. tv시리즈는 영화에 영향을 주지도 않았고, tv시리즈는 영화의 중대한 사건에 구속될 뿐 경우에 따라선 동시간대로 추정되는 때 영화보다도 훨씬 중요한 사건을 해결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엄연히 영화 시리즈의 뒷이야기나 보완을 주창하고 나섰던 콘텐츠가 보일 모습은 아니었던 거죠.


결국 지금에 와선 "TV시리즈와 영화는 별개다"라는 복수의 영화 감독들의 코멘트와 함께, 드라마 출연진들이 좀 더 연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애매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깨놓고 영화를 보기 위해서 드라마를 굳이 볼 필요는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닥터스트레인지의 영화 데뷔가 예정되면서, tv시리즈에도 마법과 관련된 요소- 고스트 라이더가 등장했습니다. 이전 토르의 초과학이나 이후 등장한 초차원적인 닥터스트레인지의 그것과도 달랐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모든 떡밥이 해소된 것도 아니고....


본편이 영화이고, 그러한 영화의 홍보를 위해 출발했던 것이 에이전트 오브 쉴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드라마가 스케일을 확대하고, 그만의 독자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투입되는 자본의 단위수와 기대치, 완성도가 자릿수부터 달라지는 상황은 절대로 바뀔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만 봐도 괜찮은 상황이 펼쳐진 것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닙니다. 애초 영화 시리즈가 지속되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tv시리즈까지 모두 보라고요? 그건 제작자 입장에선 곤란한 일입니다.


TV시리즈의 기대치는 영화의 기대치와 어느 정도 호응하는 면이 있는데, 이게 부정되었고 앞으로도 기대가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자연스럽게 TV시리즈에 대한 흥미도 떨어지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지켜보고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같은 존재가 히어로로 거듭나 캡틴의 옆에서 함께 싸울지도 몰라'가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이것저것 깔짝깔짝


거두절미하고 하나의 예로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휴먼.


X맨의 저작권이 아직 FOX에 있던 시기 인휴먼스는 대놓고 X맨을 저격하러 나왔던 포지션이었습니다. 실제로 인간의 유전인자 중에 X인자가 있어 날 때부터 변이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뮤턴트나, 외계인의 실험으로 인해 특정인자가 발현되어 초능력을 발휘하는 인휴먼스는 사실 상당히 닮은 면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들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적 지향점도 비슷했고, 실제로 마블 tv시리즈 팀은 인휴먼을 x맨처럼 차별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활용했습니다. 실제로 인휴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사회로부터 박해받는 모습은 대놓고 X맨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장면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에이전트 오브 쉴드도 참고참고 본다는 지인이 이거 보고 나서 욕하면서 tv시리즈는 완전히 끊더군요.


이게 성공적인 시도였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다만 엑스맨 시리즈가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 새로운 전통을 써내려가고, 동시에 로건과 울버린으로 청불 영역과 고전 영역을 다지면서, 동시에 뉴뮤턴츠와 같은 엑스맨 시리즈 답지 않은 장르영화로서의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상황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사실 다소 진부해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미 그 다음을 이야기하는 엑스맨과 얼마나 차별화할 수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전지구적 규모의, 어벤져스가 출동하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고, 영화에선 쉴드의 역할을 스타크와 다른 국제기구가 수행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tv시리즈에선 다시금 쉴드가 등장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만 뭔가 중대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즉, 인휴먼스는 단적인 예일 뿐, 세세한 상황의 전개나 영화와의 연계는 커녕 흥미로운 요소만 건드린 채 소화는 시키지 않는 콘텐츠가 지금의 에오쉴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쉴드, 악당들의 팀업, 지구조차 부술 수 있는 막강한 능력자의 등장, 마법과 다른 차원, 하이드라의 기원, 생과 사에 위치한 초월적인 존재, 어벤져스에서도 특출난 능력자였던 퀵실버보다도 더 활약하는 또 다른 스피드스터 등등 영화에서 다뤄져도 이상하지 않을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운과 분위기만 형성할 뿐 불완전 연소된 채 다음-즉 곧 개봉할 영화의 클라이맥스-을 향해 나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다른 호흡


사실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지금 케빈 파이기에 가해지는 찬사와 그에 수반한 영화의 평가와 흥행은 그가 영화 시리즈를 철저하게 관리해온 덕입니다. 그런 그에게 tv시리즈와의 연계는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양자를 일일히 연계하기엔 두 매체는 제작 방식도, 제작 기간도, 발표방식도 방영과 개봉으로 너무나 상이합니다.


처음 에이전트 오브 쉴드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영화에서 채 다뤄지지 않은 뒷이야기나 앞으로 전개될 전조 정도를 다루는 첩보물이 될 거라 예상했던 것도, 드라마가 영화에 철저히 맞추지 않으면 연계가 너무나 힘들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tv시리즈에서 계속해서 하이드라가 등장하는 이유와도 이어집니다. 적당히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 집단으로 대립한다는 이미지도 줄 수 있고, 위협적인 적이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적으로 하이드라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매번 드라마가 영화에 맞춰 그러하 적을 설정하고 꽉 찬 첩보 스릴러로 내용을 전개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이는 상기의 깔짝깔짝과도 맞닿는 일입니다. 히어로 콘텐츠로서 깊이 들어가기엔 영화와 겹쳐지는 면도 피해야 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연출이나 제작환경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실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될 거란 이야기도 있었고, 실제로 마지막 시즌처럼 지난 시즌의 여러 요소들을 차용하기도 했는데- 정작 이야기 결말부에 어벤져스3와 병존이 가능할지 의심되는 방식의 사건이 또 터져서 참....


기실 지금의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히어로 물이라기보단, 첩보물이라기보단 사이파이 드라마라고 보는 게 더 편할 정도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히어로가 된다는 주제는 그냥 양념같은 게 되었고요.




 마무리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분명 그만의 재미를 갖춘 콘텐츠입니다.


다만, 어벤져스 시리즈를 이해하고 보다 즐겁게 즐기기 위한 콘텐츠라는 상징성이 많이 퇴색되어 이전만 못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야기적으로 반전을 중시하는 특유의 스타일에 더해 영화에서 사용되지 않는 콘텐츠를 끌어와 흥미를 더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작용하여, 피로도는 더해지는데 그걸 해소할 계기는 그렇게 많지 않지 않은 소위 말하는 취향타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시즌이 반복되는 동안 소진된 작품 자체의 매력입니다. 사실 작품 초창기 풋풋함은 캐릭터의 변화(성장이 아닌)로 인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죠. 당장 극단적인 충격요법의 하나인 평행세계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벌써 몇 번이나 나왔고, 이야기에 틀을 바꾸어 버리는 시간이동, 공간이동도 등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아예 대놓고 일종의 치팅으로까지 분류되는 육체도둑과 관련한 이야기까지 나왔죠.


볼 수록 한계가 느껴지는 콘텐츠라 이야기한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인휴면 요소가 과연 이 드라마에 득이 됐는지, 실이 됐는지에 대해선 평이 갈릴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실이 컸다고 봅니다. 액션이 단조로워졌고, 이야기의 흥미도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평행세계 내지 구조씬 등에 한컷씩만 나와도 바로 활기가 불러일으켜질 수 있기도 합니다. 물론 너무 강해진 일부 캐릭터들을 보면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정말 남은 타임 리미트는 실질적으로 내년의 어벤져스4까지로 예상되고 있지만 말이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