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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한국적을 우리가 쉽사리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역사적인 특수성과 이러한 역사에서 비롯된 사회적인 분위기가 작용하여 그 결론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만이 우리가 한국적을 정의내리는 것에 대한 유일한 장해일까요? 지난 시간 저는 그렇지 않다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이유 가운데 또 하나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자. 이제 지난 시간에서 이야기한 관념에서 자유로워져 봅시다. 성씨나 지역, 그리고 지지하는 정당이나 이념을 떠올리지도 말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이야기해봅시다.


늦잠을 자 식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급하게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 그러다 그 날 전학온 학생과 부딪혀 빵을 떨어뜨립니다.


에반게리온의 식빵 역시 이러한 클리셰를 활용한 대표적인 작품군이죠. 흥미로운 것은 팬층에서 만든 2차창작물에서 보여주었던 연출이 이후 본편에 삽입된 케이스라는 겁니다. 


익숙하시죠? 하나의 클리셰가 된 연출로, 원산지격인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당장 식빵과 지각으로 검색해보세요. 온갖 작품의 온갖 캐릭터들이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식빵을 물고 달려 가고 있습니다.


자. 이제 묻겠습니다. 저 장면은 한국적입니까? 일본적입니까? 아니면 그 외의 나라의 성향이 강한 장면입니까? 당연히 일본에서 비롯된 연출이니만큼 일본적인 장면 아니냐고요?


그럼 질문을 다시 바꾸어 볼까요. 빵이 일본적인 것입니까? 교복을 입는 나라는 오직 일본 뿐인가요? 학생이 학교에 늦는 것은 또 어떤가요? 누군가와 부딪히는 장면은? 지각하여 빵을 우물거리며 학교에 가는 장면은 잠을 줄여가면서도 학업을 쫓는 고등학생에겐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저 일련의 과정이 일본에선 일상적인가요? 자. 다시 물어볼게요. 저 장면은 한국적입니까, 일본적입니까?


어떻습니까. 뭔가 혼란스러워지죠?


오늘 제가 하고픈 이야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흔히 한국 작품과 일본 작품의 연출을 비교할 때, 일본 작품은 타인이 자신 모르게 하는 이야기에 대해 재채기를 하는 방식으로 연출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귀가 간지럽다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양자는 그 표현방식의 차이일 뿐,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이 표현의 방식만이 한국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가 될까요?


문화적인 측면에서 한국적인 것과 한국적이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란, 문화의 성질 세 가지에 의해 이토록이나 어렵다는 겁니다. 이 문화의 성질은 크게 파급성, 가변성, 보편성 정도로 정의내릴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 세 기준은 다만 관점을 달리 할 뿐 어찌보자면 동어반복이라고도 여겨질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내용은 다른 내용을 설명하고, 어떤 내용은 다른 내용의 결과를 설명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만화만이 아니라 문화의 보편적인 특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언젠가의 교양시간에서 들었던 내용과 비슷하기도 하네요.




 문화의 확장, 기준의 공존.


흔히 문화는 물과 같아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제국주의 시절 미국과 유럽 등의 문화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것이 피지배국가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당장 한국만 해도 독일과 일본에서 건너온 헌법에, 미국에서 건너온 선거방식을 채택하고 있죠. 이 법들이 한국인들의 의식과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거창하게 헌법을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겁니다. 당장 TV를 켜 보세요. 당장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에 접속해보세요. 당장 가장 즐겨하는 게임을 살펴보세요. 헐리우드의 영화와 드라마를 24시간 방영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사실상 리얼타임으로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컴퓨터의 제조사나 관련 프로그램들은 또 어떤가요. 크롬이건 익스플로어, 폭스건 외국에서 만든 브라우저이긴 다르지 않습니다. 게임은요? 블리자드와 라이엇 게임즈에서 만든 게임들이 PC방에서 과반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콘솔 게임은 미국과 일본에서 만든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고요.


창작물에는 자연스레 작성자의 정서와 관념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매체에는 필연적으로 제작자와 이용자가 공유하는 직관성을 최대화하기 위한 정제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있고요. 자연스럽게 이것을 이용하는 국내의 이용자들은 위와 같은 정서와 직관성을 체득하게 됩니다. 문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문화가 퍼지기 쉬워진 상태이고, 한국은 이러한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보니 한국적을 쉽사리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 이라고 우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렇게 잘라 말할 수 있을까요? 이보다 조금 더 복잡한 것이 현실입니다.


아주 조악한 예지만, 젓가락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전방위로 외국의 문화가 한국에 흘러나오는 상황인데 어째서 한국은 젓가락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을까요? 음식문화가 크게 바뀐 이 현실속에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괴리가 커서라고 말하기에도 곤란합니다. 일본과 중국의 문화도 계속해서 한국에 유입되고 있는데 이들의 젓가락 문화가 특별히 한국의 젓가락 문화를 바꾸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이 장면은 한국적인가요? 미국적인가요? 중국적인가요? 그 기준에 따라 제각각인 답변이 나올 겁니다. 만화라는 장르에 얼마나 익숙하느냐에 따라 일본 작품 속의 한 장면에 대해서도 제각각인 답변이 나올거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여기엔 마찬가지로 크게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의 변화- 상기에서의 법과 같이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는 것이라 하더라도-가 문화의 세세한 변화까지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애초에 모든 사람들에겐 새로운 것을 쫓는 반면,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자 하는 면이 공존하니까요. 세번째는 문화의 흐름이라는 것이 늘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찾아가는 흐름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이 가진 인식이나 미적인 감각 등은 결국 제한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술적, 시기적으로는 뒤로 거스르는 일일지언정 과거로 지향하는 일이 문화에서는 발생하기도 합니다. 복고가 유행인 것이 대표적인 예죠.


이 세가지 이야기는 결국 하나를 가르킵니다. 문화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은 전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애초에 문화엔 높낮이란 존재치 않으며,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주류가 되고, 때론 비주류가 되며, 그 관계가 시간에 따라 뒤집히기도 합니다. 문화는 여러 요인에 따라 변화하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란 존재치 않습니다. 상호영향을 주는 과정에서, 새로운 쪽이 기존의 문화와 결합하고 변화하여 사실상 별개의 문화가 되죠. 그렇다면 한국적의 기준은 어디가 되어야 하나요? 외부의 요인이 들어오기 전? 외부의 요인이 들어와 변화하는 과정 중의? 그렇지 않다면 완전히 결합하여 자리잡은 상황을? 단언하기 힘듭니다.


강의에 나가면서 청바지를 입고 교통카드를 긁으며 애플사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합니다. 한국 특유의 교통 시스템을 이용하는 모습이지만 동시에 청바지와 스마트폰이라는 외국에서 유래한 소재가 등장하죠. 이것을 한국적인 광경이라 볼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위 장면이 한국의 어디선가에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화는 여러 측면에 영향을 받고, 한 사람이 가진 관념 속에서도 제각각인 기준을 갖게됩니다. 의복에서는 서구식이지만, 식생활에서는 한국식인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복합성으로 인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단언하기가 힘든 겁니다. 문화는 끊임없이 흐르니까요.




 문화의 변화. 경계의 흐려짐


자. 이제 문화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시다.


상단의 문항에서는 문화의 지리에 따른 차이와 그로 인한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문화의 변화의 요인에는 지리적인 차이 외에도 여러 요소들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살펴봐도 시간의 흐름과 입장의 변화, 기술의 발전 등의 사유가 작용하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예로는 특정한 예절을 수행함에 있어 존재하는 간결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연단위로 수행해야 했던 장례절차나 아침저녁으로 반복해야 하는 문안인사 등은 이제 더 이상 지켜지는 문화현상이 아닙니다. 세대와 입장의 변화로 인한 예는 지역별 거주 인구와 사회구성원의 연령대비 비율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령층 인구가 많아질 수록 그들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는 정책적인 차이에서 변화하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관련된 문화에 반영됩니다.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인 것은 역시 기술의 변화입니다. 이른 바 지구촌 사회의 개막을 통해 공통의 잣대가 인류 전반에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은 곧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보편적인 권리가 세계를 운영하는 원리에 영향을 끼치게 됨을 의미했죠.


이러한 변화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선택지는 효율성일 겁니다. 이러한 효율성은 필연적으로 제한된 형태로 귀결되기에 이르죠. 과거 중국에서 의복을 비단으로 만들고, 중세유럽에서 리넨으로 의복을 만드는 등의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합성섬유로 의복을 만드는 것이 주류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에 더해 취향, 콘셉트 등이 어우러지며, 중국에서 만든 서양식 복식, 영국에서 만든 중국식 복식까지 나타나기에 이릅니다.


즉, 한국적이냐 한국적이지 않느냐와 같은 국적성의 기준은 시간이 갈수록 그 구분의 기준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상단의 빵을 먹으며 등교하는 것도, 스마트폰을 쓰면서 걸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특별히 국적이나 성격을 부여하기 곤란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흔히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만, 그 미국이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불림을 생각해보면 결국 그 경계라는 것은 단어 하나로 정의내릴 수 있을 만큼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짜장면은 한국적입니까, 중국적입니까? 한국인은 이것을 중국음식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그 조리법은 중국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는 해당 음식이 존재치 않고, 중국인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맛이라며 꺼리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기준은 이렇게 흐려져 버립니다.


이러한 복합적이고 불분명한 경계의 문화속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한국적이라는 기준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 버립니다. 당장 그 스스로가 느끼는 고유의 한국적이라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확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문화의 대체적인 흐름이 반영되는 창작물 이 한국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거죠. 작품의 소재를 역사의 그것으로 한정하더라도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이 현대인이라는 입장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이러한 관념 자체는 작품에 깃들고, 이것이 결국 작품의 한국적 논란을 이어지게 하는 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문화의 보편성. 공통점과 차이점


자. 근본적인 영역으로 돌아와봅시다. 어떤 문화는 어떤 문화보다 빨리 퍼지고, 또 어떤 문화는 기존의 문화를 대체하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변화되어 새로운 것으로 정착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상단에서는 '효율성'이 기준이 되어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설명했습니다만 사실 그 뿐만은 아닙니다. 과거로 역행하는 문화의 흐름처럼 때론 문화의 변화라는 것은 효율성만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거죠. 결국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좋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넓게 분류하면 대략적으로 합치하는 면이 존재하는 반면, 그 세세한 차이에서 불거지는 이질감이 서로를 구분짓는 경계선을 형성한다는 거죠. 예컨데 미국식 개인주의와 한국의 공동체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어른에 대한 공경을 이야기하곤 합니다만, 사실 나이든 이들에 대한 존중의 태도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다만 세세한 차이가 있어 그 차이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 뿐이죠. 이 세세한 차이가 바로 '한국적'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됩니다.


UFO마니아이자 오컬트 신봉자 남자와 그런 것들에 학을 떼지만 정작 영감이 있어 귀신 등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빨간머리 여자는 한국적입니까 일본적입니까? 저는 여기에 일본적 미국적 한국적이라고 모두 답할 수 있습니다. X파일의 멀더와 스컬리, 케로로 하사의 히나타 남매가 공유하는 성질은 결국, 문화의 향유자가 공유하는 보편성을 노린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문화가 가지는 보편성 덕분에 문화가 퍼져나가는 것이며, 이러한 보편성에 포함되지 않는 하위의 영역이 때론 문화가 더욱 빨리 전파되거나 혹은 바뀌거나, 혹은 전파되지 않는 방식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상기의 식빵을 먹으며 등교하는 장면은 한국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일본적이기도 합니다. 양국은 문화적으로 많은 면-치열한 교육환경, 서구화되어 가는 동양식 식습관, 교복 등-을 공유하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비슷한 장면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교복이 존재치 않는 국가에는 이국적인 광경이 될 것이고, 통신교육이 활성화된 국가나 어지간해서는 돌아다니며 음식을 먹지 않는 문화권의 이들에게도 생경한 모습이 될 겁니다.


결국 한국적이냐 아니느냐는 작품 자체가 퍼져나가는 것이 극도로 쉬워진 이 시점에서, 결국 각론간의 다툼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본질적인 차이가 아닌 익숙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그런. 결국 이것은 첫번째와 두번째 항목과 이어집니다. 어디나 사람이 사는 곳이고, 문화는 서로 퍼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합치되는 면을 나타내보인다는 것이죠.




 결국


문화 자체가 여러 요인으로 계속해서 혼재되고, 비교적 분명한 관점을 잡아내더라도 그 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민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에 대해 순수성만을 찾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과 괴리될 수밖에 없고요. 대중문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작품에 있어 한국적인 것을 꾸준히 찾는 과정에서 독창성 형성에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 생활과 지나치게 멀어지는 것은- 예. 곤란하다는 겁니다. 대중작품이잖아요.


대표적으로 사극의 경우. 고증은 중요한 평가요소지만 결코 유일한 평가요소는 아닙니다. 여러모로 협상의 대상이 되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100% 과거와 동일하게 할 수도 없거니와, 이 과정에서 대중성과 괴리되면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배우에게 과거 인물들의 말투와 행동까지 그대로 행하도록 하면 자연스레 전달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한국적을 판단할 제3자에게 한국적이라고 평가되는 요소로 될 것이냐도 의문이며, 그것을 떠나 작품성을 높이는 요소가 되지도 않고요.


그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결국 고민과 공부입니다. 무엇이 문화의 보편성에서 멀어지지 않으면

서도 독창성을 담을 수 있을 만큼의 차별적인 요인을 어떻게 나타내어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자. 이렇게 아흔번째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91번째 내 인생과 만화는 생활에서 한국적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고민과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문화계에 바라는 한국적이라는 것과 생활상에서의 한국적인 것이라는 것이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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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들어가봅시다.


한국적인 게 무엇입니까? 여러 답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대답은 대개 추상적이며, 애매하며, 오묘할 겁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만, 뭔가 아닌 것은 찝어 낼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는 답하기에는 참 애매한 개념이 바로 한국적인 것입니다.


한복만 입으면 뭘 하건 한국적인가? 그렇다면 활을 든 선비가 용 모양의 기를 쏘며 "물어라"라고 소리치면 그건 한국적인가? ...어때요, 어렵죠?


저는 이 한국적인 것을 명쾌하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세 가지 방향으로 답해보려 합니다. 첫번째는 금일 다룰 역사적인 문제에서, 두번째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세번째는 생활에서의 측면에서 한국적인 것을 쉽게 답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음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각 개념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사실 조금씩 관점만 달리할 뿐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적을


알고 싶으면 결국 역사를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다른 국가와 한국을 차별화하는 가장 명확한 요소이며, 한국인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주는 요소니까요. 실제로 역사를 다룬 콘텐츠들은 한국적인 콘텐츠로 자주 평가되며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역사는 민감하며, 또한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역사는 한국인에게 존재하는 역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군 성노예 사건, 동북공정, 독도 등등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인식과 결부되며 한순간 비등점까지 강렬하게 끓어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와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 정도로, 역사에 대해 입체적인 시각과 이에 대한 다양한 토의가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영향은 이후로도 잔존합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느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느니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도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낮은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단순히 남침을 남한이 침략당한 거 아니냐는 식의 말장난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김구, 신채호 등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아니라고 하죠.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의 교육이 과거의 실패를 통해 미래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실제로 역사가 중요하다면서 연예인의 말투에 꼬투리를 잡지만, 실제 역사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공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곡되었다고 알려진 드라마에는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지만, 정작 그를 다룬 역사서적은 금세 절판되어 버립니다. 대한민국의 정당의 흐름은 커녕, 몇 명 되지도 않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나열하지도 못하는 대학생의 숫자도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역사에 대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한국인들은 이러한 역사를 제대로 관조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이러한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국사 및 근현대사의 선택과목화입니다. 역사 교육이 고등학교 1학년때 끝이 나 버리고, 문과를 선택하여 근현대사를 공부하더라도 수능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박정희 시대 즈음해서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성인이나 노년측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때론 그들의 경험이 역사의 객관적인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로 작용하기도 했죠. 역사를 다각도로 살필 수 없던 시기 형성된 관점이, 이후 폭발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상과 괴리를 일으키며 고착화되어 버린 겁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배경과 사유


이렇게 된 이유는 이하와 같습니다.



몇십년, 아니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 다리 건너면 역사적인 비극적 사건의 당사자들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죠.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러한 비극적 현대사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바쁜 현대를 사는 것이 우선이지 먼 옛날의 일을 파헤치는 것을 권장하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글을 쓰는 2016년 시점에서는 이것이 극에 다다르다 못해 이래서는 안된다는 비판이 자정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도올 김용옥 등이, 이후로는 설민석 등이 새로이 역사붐의 상징처럼 나타났죠. 그럼에도 아직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적인 소재로는 여전히 쓰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결국 역사는 손쉽고 가볍게 다룰 수 있는 대화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역사는 압도적인 기록을 남긴 조선과, 일제강점기, 80년대 후반 이전까지에 커다란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결국 일제에 패망했고, 일제강점기는 상상도 하기 싫은 한민족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8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저항의 역사 그 자체였고요. 이러한 시기의 일들을 입에 쉽게 올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근현대사의 여러 비극을 직접 겪거나, 그런 이들의 자식과 손자가 사회구성원의 주축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된다는 거죠.


A: 이승만 때까지도 조선과 일본의 문화의 묘한 뒤섞임이 있었다더라.

B: 우리 할머니가 그 때 제주도에 살았어.... 그 때 할아버지가....

A: 아... 그랬군요...


'흥미본위로 다루기엔 오늘 날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역사가 너무나 슬프고 무거워 대화의 소재와 파고듦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 이것이 첫번째 이유입니다.


이념의 논쟁은 사실 합의를 통해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되는 경향을 보여야 합니다만 의도적으로 이념, 지역, 세대, 성별간에 분쟁을 야기하려는 이들이 계속해서 있어왔기에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영화 변호인을 둘러싼 이런저런 일


두 번째는 이념의 논쟁으로 인한 터부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두고 국가를 이끄는 양날개라고 비유하곤 합니다만, 그거야 정말 교과서 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2016년 대통령의 탄핵 이전을 대상으로 이야기해도 이는 그리 크게 변치 않습니다.


한쪽은 다른 한 쪽을 끊임없이 빨갱이로 몰았고, 다른 한 쪽은 그 한 쪽을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유산으로 여겼습니다. 일례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40년 전부터 주장했던 것을 두고 아직까지도 색깔론을 들먹이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며, 민주당 계열의 인사가 대통령이 되면 안보가 크게 위험해진다는- 아니 그걸 넘어서 북한에게 나라가 넘어간다는 선동을, 두 명의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이 나온 이후에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이념과 인식에 대한 괴리가 벌어진 상태이니 인물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공과 과를 동시에 따질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차라리 입을 다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념적인 대립은 역사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재세력과 그 독재세력에 맞서는 야당이라는 두 정당의 대립이야말로 대한민국사 그 자체니까요. 문제는 양자의 대결이 단순한 보전과 개혁을 정의내려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첫째로 안보라는 외적인 요인이 존재했으며, 둘째로 독재라는 내적인 요인이 존재했으며, 셋째로 특유의 공동체 의식-예컨데 지역, 성씨, 학연 등-이 얽혀 있었습니다. 논의가 더욱 복잡해진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요. 부부끼리도 정치관이 다르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데, 사회생활에서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한다고요?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A: 강진석은 김일성 외삼촌 아냐? 그런 사람한테 건국훈장 줘도 돼?

B: 아니, 어쨌건 강진석은 독립운동가고, 그 사람 죽고 나서 김일성이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켰잖아? 북한에 기여를 한 것도 아닌데...

A: 그럼 김일성 삼촌한테 훈장을 주자는 거야? 이 빨갱이! 그러고보니 넌 노동당 당원이었지! 노조나 만드는 놈!

B: ....


실제로 야당의 의원이 국가보훈처장에게 자신들이 당하던 색깔론을 제기하는 모습이 2016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죠. 이미 죽은, 거기에 현직에 영향을 끼칠만한 후손도 없는, 또한 출신지역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는 선정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저러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일상생활에서 역사적 이야기를 나누기가 얼마나 힘들지 대략적으로 체감이 가능할 겁니다. 


역사는 결국 당대의 사실에 후대의 해석이나 인식이 덧대여진 형식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이미지 밖의 사실에 놀라기도 합니다. 비단 이하의 역사적 사건들로 인한 단절들만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인식의 차이에서도 단절은 발생하여 당대엔 당연했던 사실이 이후 놀라운 것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영화 순수의 시대의 남자 캐릭터들은 귀걸이를 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 당대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역사적 단절로 인한 이해의 어려움입니다. 상단에서도 언급했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래로 촉발된 이념전쟁, 그리고 독재는 역사적인 단절을 낳았습니다. 개발과정에서 소실되어 버린 민간전통문화,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버려 유실된 문화재, 일제강점기로 인한 정체성의 손상은 시간의 흐름과 얽히며 심각한 역사적 단절을 낳았습니다. 스스로는 자신을 고조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반만년의 역사의 일인이라 여기지만, 정작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한국적인 것은 별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고 있습니다.


이 거리감은 한국적인 것에 대해 지나치게 큰 무게와 기대감을 부여하였고,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도외시하여 결과적으로 더 큰 단절을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에 대한 이해도는 결여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소속된 무언가에 대해 알아본다는 것과, 단순히 책에 서술되어 암기해야 하는 자신과 무관한 어떤 사건들의 나열은 그 몰입과 흥미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세번째는 자신을 역사의 당사자라 여기지 못하는 단절입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과도 상통합니다. 지역이건 이념이건 오랜 시간 활동해온 대표자 혹은 집단에게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되니까요.




 역사의식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의미했습니다.


그토록 한국적인 것을 찾아 헤매면서 정작 그 기준이 되어주어야 할 역사라는 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왜곡된 거리감을 갖게 된 것이죠.






...지금 반쯤 정신 나가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보통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슷한 시기의 작품들로 예를 들곤 합니다만 그럴 처지가 되지 못하여 생각나는대로 2000년대초중반을 넘어 2010년대의 작품들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본


서두는 글을 대략적으로 짜둔 후 작성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과 만화 '한국적인 것'은 세번의 포스트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첫번째는 왜 한국적인 것에 추구하게 되었으며 왜 그것이 허상이었는지,

두번째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한국적인 것과 실제한국적인 것 사이의 괴리를 다루며,

그리고 세번째로 그 논의 과정의 결과가 흐지부지되었음을 다룰 것입니다.


본래는 한 포스트 내에서 모두 다룰 생각이었습니다만, 생각보다 분량이 길어졌습니다. 워낙 본 포스트를 오랜만에 진행하는지라 과거에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도 혼란스러워서... 그리고 좀 더 나중의 일로, 한국적 라이트노벨에 대한 담론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이야기하며, 한국적 판타지, 한국적 만화의 이야기로 마무리짓겠습니다.





아이러니한 사실 하나.


원어민인 미국인보다 한국인들의 토익 테스트의 점수가 더욱 높아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영어를 정말 잘 하는 줄 안다는 농담이 나돌기도 했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시험을 위해 훈련된 테크닉과 언문학적으로 체계화된 교육 덕에 점수 자체는 높게 따지만, 그것이 결코 영어라는 언어를 원어민보다 더 잘한다는 지표는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토록 잘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게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점수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조차 현실을 나타내는데에 분명한 한계점을 가진다는 겁니다.


 사실 낯선 일이 아닙니다. 90년대에도, 그리고 2010년대에도 비슷한 논쟁이 터져나왔으니까요. 예컨데 90년대의 한국적 판타지 논쟁, 2010년대의 한국적 라이트노벨 논쟁이 사실상 이러한 궤를 같이합니다.


 이러한 논쟁이 불거지게 된 것은 이전의 포스트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타인(외국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 더불어, 한국인 스스로가 한국을 대표할만한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필요이상으로 엄격하게 대하는 태도가 문제되기도 했고, 한국인 스스로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단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펼쳐진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한국인들이 설명하는 한국적인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뭔가 이질적인 것은 구분해 낼 정도의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습니다. 민족주의적 교육을 통해 이러한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일상생활에서의 편의성을 뛰어넘는 수준은 아닙니다. 거기다 한국의 전통 문화임에도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이야기할 정도로 혼재된 현대사회를 살고 있기에 그 구분은 갈 수록 투미해지면서도 그에 대한 태도는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반만년이라고 하면서도, 사회 일부는 한국이 신생국가에 가깝다 여기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역사의 중요성은 강조하는데 정작 역사교육은 점점 뒤안길로 밀려납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지역적인 분단과 역사적인 단절과 맞물리고, 또한 해외 문화의 여러 영향을 크게 받게 되면서-


한국인 스스로도 무엇이 한국적인지, 왜 그것이 한국적인 것인지 제대로 설명해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문화에 대한 요구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뭐가 한국적인가,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가. 애초에 왜 우리는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가... 등등 말입니다.





이전 시대의 음악가들에게 있어 중요했던 것은 해외의 장르를 한국으로 이식하고 그것을 한국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식은 당시에 여러 이견을 낳았습니다. 모티브가 되는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구현하는가가 음악성의 척도가 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한국식은 당시 세련되지 못하고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해외의 음악을 직접 체감하고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는 뮤지션들도 적잖고, 애초에 해외의 교민이 직접 해당 음악을 수입해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소녀시대에 완전히 밀리다시피한 원더걸스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달랐습니다. 호기롭게 미국진출을 외칠 수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그 원더걸스의 미국진출기에서 '한국적'은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여러 현상 속에서 부정되는 것을 대중들도 인식했기에 특별한 논쟁이 불거지지 않았습니다. 이전같으면 해외진출하는 한국 뮤지션에 국가주의적인 색체를 뒤집어씌우기도 했지만, 이미 그 시기는 완전히 지나버렸죠.


 한국식 기준에 맞추는 것도, 그렇다고 미국식 기준에 무조건적으로 맞추는 것도 문화의 우열식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는 거죠.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좋은) 것'이라는 관념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결국 90년대의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이 재평가의 붐을 타고 신중현, 조용필, 산울림 등이 새롭게 음악적으로 조명되었었죠.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적인 것'의 요구가 강해지게 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민족주의적인 교육을 통해 단일민족이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한국인만을 상징하는 것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결국 한국적인 것의 '승화'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죠.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한국식 이식을 통해 보다 나아졌다는 발상을 하게 된 겁니다. 실제로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중반 록과 댄스, 힙합 장르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음악을 녹여내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엔 그 가운데 넥스트 등처럼 유의미한 성과를 남겼다며 평가받는 이들도 생겨났죠. 특히 넥스트와 같은 경우엔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이런 매커니즘이죠. "미국에서 록음악이 한국으로 들여져 왔다→한국에서 미국식 록 음악을 한국식으로 재해석한다→한국식 록음악이 미국으로 진출한다→미국에서 접하기 힘든 음악은 새롭고 대중적으로 히트한다→그러므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것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의 태반은 당대의 유행이나 시도 그 자체에 의의가 있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한국식으로 승화된 음악을, 다시 음악의 태생지 그것도 주류 음악계에 진출시켜 큰 성공을 거둔다는 이야기는 희망사항이라기보단 망상에 가까운,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을 일처럼 여겨졌죠.


2000년대 중반 박진영이 원더걸스를 이끌고 미국에 진출하겠다 선언하기 전까지는.






당시 박진영의 입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네요. 지금이야 여러 구설수와 원더걸스 등의 미국 진출의 실패 등으로 인해 이전만 못하게 평가되고 있지만, 이 당시의 박진영은 달랐습니다. 국내에서 가수로서, 프로듀서로서, 기획사 사장으로서 거둘 수 있는 성공은 다 거둔 상태였던 그의 행보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는 국내 원톱의 위치라고 평가받으며 더 올라갈 곳이 없다 이야기되던 원더걸스를 첨병으로 내세워 미국진출까지 선언했죠. 그 평가는 더더욱 높아졌음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실제로 이미 윌 스미스 등에게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주어 음반에 실리게 하기까지 했죠.


그의 행보가 특히 더 주목받았던 것이 R&B의 본토에 한국인이 한국에서 만든 R&B를 들고가는 것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과연 한국의 문화가 미국에 먹힐 것인가, 그리고 문화의 상하관계가 역전될 것인가 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의 행보는 앞서의 그것과 같았고, 그것은 분명히 저를 포함하여 적잖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냈습니다. 우리가 팝송을 듣는 이유는 그것이 이국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좋고 나쁨의 메커니즘을 거친 결과였고, 문화 그 자체엔 그 상대성으로 인하여 특별한 상하관계가 존재치도 않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개개인의 취향에서 존재하는 세계화된 기준을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공감치 못한다는 것은 아집과 독선에 잠긴 선민의식과도 닮아 있음을요.


놀러와였나요... 무릎팍도사였나요. 게스트로 나온 박진영이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정확하게 워딩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뉘앙스가 그러했다고 참고해 주세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R&B에 민요도 삽입해보고 꽹과리도 넣어보기도 하고... 근데 아니다. 어울리지 않았다. 대중문화가 대중에게 외면받으면 말짱 꽝이다. 결국 원조의 스타일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라고요.즉,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것이라는 발언 자체를 부정한 것입니다. 실제로 민주정권이 들어서며 해외와의 교류가 본격화되었고, 팝송이 가요시장에 완전히 자리를 내어주는 등의 일이 벌어졌기에, 위와 같은 발언은 이미 현상으로 부정되었다 보아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복합적인 입지를 가진 박진영의 말은 결국 일종의 확인사살과 같은 개념이었던 거죠. 결국 우리는 정답처럼 이야기되던 '한국적'에 대한 태도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한국적인 것이 무엇일까. 과연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전제가 맞는 것일까. 그 한국적인 것을 정작 우리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리고 세계화된 기준과 한국인의 기준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괴리되어 있는 것일까... 라면서 말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히 한국적인 소재를 우겨넣는 것을 '한국적'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되려 구체성 없이 끊임없이 한국적을 읊조리는 것에 대해 반발하게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정도로요.


결과적으로 박진영은 실패했지만, 한국적인 것은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전제를 부수는 데 이런 저런 영향을 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접하는 해외의 이국적인 것들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에서 외국의 여러 콘텐츠를 즐기고 열광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접하는 해외의 영화, 만화, 음악 등이 단순히 새로워서 우리가 좋아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사회는 이미 상당히 서구화되어 글로벌리즘이 중요한 사회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해외의 콘텐츠를 영화나 비디오 등으로 꾸준히 접해올 수 있었고,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단순히 새롭기 때문에 열광한다고 표현하기엔 한국은 너무나 많은 부분이 세계화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한복이 아닌 청바지를 입는 것은 단순히 편리하기 때문이지 그것이 이국적이기 때문이 아님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두번째는 흔히 이야기하는 이국적 콘텐츠들이 일정한 정제과정을 거친 이후의 작품들이라는 겁니다. 단순히 이국적인 것들이라고 일반화하기엔 쏟아지는 콘텐츠의 양이 엄청나게 많을 뿐더러, 작품성 내지 수익성을 담보로 해외에 수출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이국적이라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론은 결국 하나입니다. 상대방-그러니까 한국의 문화를 수입해서 즐겨야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인류가 가진 보편적인 가치와 취향의 문제이지 한국적인지 아닌지 는 아니라고요. 잘만들고 재밌어서이지 한국적이어서는 아니라는 답이 자연스럽게 내려지는 겁니다.


그러한 구분은 일괄적일 수도 없고, 한국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정말 한국적인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가부가 작품성 그 자체를 가를 수도 없고요. 물론 크고 작은 지역색은 여전히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이조차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개성에 머무르는 수준이 되었죠.





결국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 자체는 산산히 깨어졌습니다. 소재만으로 모든 걸 차별화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시장이라는 것이 얄팍하지도 않았고요. 즉 현상으로 깨어진 이론이라는 겁니다.


외국에선 김치가 건강식이고, 한국식 건축물이 세계에서 사랑받고, 전통복이 찬사를 받고, 한글이 인정받고...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이 현상으로 깨어진 겁니다. 면전에서 좋은 거라고 내놓은 것을 매몰차게 차버릴 수가 없는데, 그걸 가지고 침소봉대하는 것에 본격적인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소리기도 하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과연 오늘 쓰는 글이 과거에 썼던 글과 소재가 겹치지 않나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이렇게 타자를 두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시기가 다소 왔다갔다 하고, 또한 이런저런 사실관계가 틀리기도 했겠지만, 저라는 블로거가 어떠한 방식으로 만화라는 문화를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따르는 길이라 감안하시기를 바라며, 이렇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언젠가 애장판과 신장판이 발매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을 넘어서게 되면서 출판만화시장은 급격한 위기를 겪게 되고, 만화를 즐겼던 세대들은 나이를 먹어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추게 되면서 이들이 즐겼던 만화를 보다 고급화된 사양으로 재출간하여 판매한다는 일종의 윈윈전략이라고 소개했었죠. 물론 여기서 재출간이라는 이름으로 말하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기본적인 질을 갖추기 못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애장판이라는 이름을 붙인 채 발매되었음에도 완결까지 발매되지 않는 황당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었습니다.


복간(復刊) 절판등이 되어 더 이상 발매되지 않는 책을 다시 발매하는 것을 말하고, 복각(復刻)은 다시 책을 출간할 때 원본을 재발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실 혹은 손상 등의 사유로 원본을 모방하여 다시 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데 일곱개의 숟가락 등은 기존의 판본을 다시 펴낸 것으로 복간이라 할 수 있고, 광고컷 혹은 검열 등으로 칸이 비워진 부분을 독자적으로 채워 발매한 일지매 등은 복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복간작'들 역시 넓게 보자면 이러한 범주에 포함됩니다. 다만 변화한 만화의 위상, 그리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함께 결부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복간인가?


애장판 신장판 열풍을 넘어 복간작이 출간되는 이유는 상기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필터링을 넘어 남겨진 보석같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찌보자면 '낡은 외형'에 '진부한 소재'들을 가진 이 작품들이 당시 만화를 보며 자라온 세대 외에 다른 이들에게도 반향을 일으켰던 것을 설명하기엔 모자라다는 것이죠.


저는 이 과정을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다른 나라도 그러합니다만, 한국의 경우 근현대사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적잖은 요소들이 많이 손실되었고, 외세에서의 영향이 잔존하여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일히 분류하고 되살리고 기록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되었고, 이 불편함과 피로함으로 인해 긍부정적인 것 모두를 살피는 대신 오직 긍정적인 과거만을 기록하고 미래만을 추구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이 유력 정치인에게서 나오기까지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혼란은 당연히 민족적인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단일민족 혹은 그러한 단일민족에 준하는 방식으로 역사 교육을 받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이러한 부재는 견디기 힘든 일이니까요. 더욱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이름의 민족주의적 성향까지 2000년대 시점에서조차 먹혔던 게 사실이니까요.


자연스레 이러한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을 문화계에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예컨데 록음악에 국악을 결부시키기도 하고, 뮤지컬에 한국역사를 배경토록 하고, 힙합에 판소리를 가미시키기도 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있고, 나쁜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이 한국적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느냐라는 것조차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죠. 


만화의 경우도 이러한 한국적인 것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만화는- 예,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방학기작 바람의 파이터는 남고 도서관의 최고의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인기작은 시대를 불문한다는 거죠.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여기에 세 가지 사유를 꼽고 싶습니다.


첫 번째. 한국적인 것에 대한 불분명한 기준. 일본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만화 강국이 한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고, 여러 역사적인 얽히고 설키는 것을 통해 문화적인 영향도 적잖게 받았습니다. 90년대 한국 만화에서의 일본식 그림체를 비판하는 신문기사를 찾는 일도, 김수정 작가에게 원로 만화가가 "넌 어느 일본 만화를 베꼈느냐?"라고 물었던 일은 더 이상 유명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장르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해 쉽사리 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되지 않습니다.


두번째. 역사적인 분단과 단절.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조선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역사에 대해 배우지만, 정작 한국 사람들은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에 가지 못합니다. 재평가되는 정도전에 대한 콘텐츠가 사랑받음에도 선죽교에 가지 못합니다. 또한 여러 전쟁과 침탈, 독재로 인해 주요한 역사적인 기록, 문화재, 증인들이 존재치 않게 되어 제대로 된 역사적 구심점으로 작용치 못하게 된 현실적 한계의 영향도 존재합니다.


세번째. 엄숙주의. 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트렌디 사극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였습니다. 만화 역시 이러한 시도와 성공작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상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지 못해 일정 수준 이상의 고증이 이루어 지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함께 결부되며 그 높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컨데 그리스로마 신화로는 인기 좋은 작품을 그려도 한국 신화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거죠. 이처럼 특유의 엄숙주의는 역사를 포함하여 '한국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창작의 자유를 최소한도 보장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묘사함에도 후손들의 종친회가 방영금지 처분을 요청하는 일은 결코 낯설지 않죠. 더군다나 당시 만화는 저급한 문화로 치부되어 엄숙주의적 잣대는 더욱 강해지고, 지지자들의 세는 약해져 결과적으로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는 것에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우영의 삼국지처럼 단순히 배경이 서양이나, 중국이냐는 한국적인 것과 직결하는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말로 단순히 배경이 동양이냐 한국이냐는 한국적인 것과 직결하는 요소가 아니었다는 거죠. 당시 작품들에 대해 가지는 독자들의 한국적인 것에 대한 요구의 딜레만 여기서 기인하는 겁니다.


독자들은 성숙하여 한국적인 것을 요구하는데, 정작 현 세대의 창작자들은 독자들과 별다르지 않은 관념을 가지고 있고, 더욱이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제대로 된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거기다 기껏 내놓은 작품에 대해서도 아주 높은 잣대를 적용시켜 시도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죠.


결과적으로 독자의 이러한 수요는 과거의 작품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필터링을 거친 정수이자, 어째서 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를, 동시에 현세대의 독자와 다른 잣대와 관념을 가지고 만들어진 과거의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야사에서 역사로, 만화에서 문화로


당연하지만, 야사는 정사에 비해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가치로서의 능력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야사가 정사에 비해 역사적인 가치가 적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합니다. 야사는 야사 나름대로 당시의 정황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고, 당시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줍니다. 누구 말마따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려청자도 유물은 유물이라는 겁니다.


만화 역시 그러했습니다. 당시로는 그저 흥밋거리에 불과하던 작품들이 시간이란 이름의 덧칠을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님들이 즐기던 작품을 함께 즐긴다는 것은 묘한 연대를 선사하였고, 이 무형의 선이야 말로 한국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공감대가 만화라는 하나의 매체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올라서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먹대장과 007 우주에서 온 소년 이 두 작품- 아니 비단 이 작품들만이 아니라 적잖은 복간작들은 대전의 만화 박물관에서 비치된 것 정도만을 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2000년대 출간되어 서재에 꽂아 넣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쬬. 물론 금세 절판되는 일이 생기기는 했습니다만....


동시에 이 작품들은 당대의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왜 당대엔 이런 내용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수정되어야 했는지, 왜 등장인물이 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저러한 행동을 하는지 당대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 이 작품들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역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상기의 역사적인 가치, 두번째는 원본을 비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비교적 저렴한 값에 복간판을 비치할 수 있다는 것, 세번째는 작품 그 자체로서의 가치 때문에 말입니다.


이러한 복간만화는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만화의 지위를 상승시켰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그동안 상승한 만화의 지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별다른 이견을 듣지 않았으며, 실제로 만화가 문화라 불리는 현상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면이 적잖았습니다.


예컨데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는 고우영의 삼국지 복간판은 꾸준히 사랑받았습니다만,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우영 화백 정도의 입지를 가진 작가조차 이러할 진데, 다른 이들은 어땠을까요.


어렵게 구판본을 구하고 복간작업까지 거친, 의욕적으로 내놓은 작품들이었지만, 판매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출간 그 자체에도 의의가 있지만, 긴 시간만에 다시 볼 수 있게 된 작품을 이렇게 빠르게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 이 작품들을 즐겼던 세대들이야 별다른 정보 없이도 이들을 구매하는데 나설 수 있었지만, 쏟아지는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이 작품들을 선택할만한 젊은- 혹은 어린 독자들에겐 어필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던 거죠.


실제로 복간작업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원본이 소실된 경우가 적잖을 뿐더러(이 부분은 2000년대 기준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만화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도 이런 일이 2000년대에 발생했을 정도죠. 60~70년대 그것도 당대 한국이 기준이라면 절대다수라고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의 의사에 반하는 형태로 이미지에 변형이 가해지는 것이 비일비재한 검열의 시대였기 때문에 원본이 의도한 이미지를 복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심지어  작가가 복간작업에 협조해 준다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달라진 그림체등이 이질감을 남길 뿐더러, 기초가 되는 출간본을 구하기도 어려운- 즉, 보관하는 이들 자체가 적다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사전작업을 했음에도, 아니 그랬었기에 일찌감치 절판시켜 버렸다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책장을 다채롭게 하고픈 마니아의 입장에서 한 말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마니아의 발언은 일반 구매자의 그것으로 일반화할 수 없고, 객관적인 지표가 되기도 힘듭니다. 실제로 당장 이렇게 말한 저부터가 화려하고 다채로운 요사이의 작품들 사이에 이러한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으니까요.


2000년대 들어 여러 만화 기관에서도 복간 만화를 펴냈습니다. 라이파이 등이 그러하죠. ...문제는 판매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하기가 힘들었다는 거죠.(진짜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영리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도 힘들고...


하지만 이 작품들도 한국적인 것에 대한 완벽한 답이 되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고, 동시에 이러한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소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이것이 곧 한국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는 될 수 없었습니다. 관념은 변화하기 마련이고, 과거의 정답이 미래의 정답이 될 거라곤 누구도 생각치 않았습니다. 그저 참고의 대상일 뿐.


과거와 현재를 뒤져가며 찾으려 했던 '한국적인 것'에 대해 이제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터져나오게 되었습니다. 추상적인 표현은 제쳐두고, 이젠 정말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마저 갖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논의의 기간이 짧다고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좋은 자질을 가진 작가들을 두고도,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간동안 독자들이 납득할만큼의 최소한의 답도 내놓지 못했다니요.


이젠 정말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본격적으로


내용을 진행하기에 앞서, 쉽게 이야기해봅시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TV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보죠. TV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으니 보다 원활하게 체감되겠죠. 예능, 다큐멘터리, 드라마, 시사고발 등등등의 근본적인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사실에 얼마만큼의 윤색을 가했느냐일 겁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가해진 윤색이 가장 적고, 그 다음은 다큐멘터리, 그 이후는 예능과 드라마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얼마나 시청자가 그것을 현실이라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와 동의어 이기도 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해당 프로그램이 지고 있는 법적인 책임의 크기가 얼마만큼이냐는 이야기기도 하죠.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TV프로그램은 결국 어느 정도의 윤색이 가해집니다. 결국 방영기획에 따른 제작의도가 있고, 편집방향이 존재하며, 필요에 의해 송출되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가진 의도가 시청자가 바라는 것- 혹은 올바른 것과 늘 합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단적인 예, 간접광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방송사는 TV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있어 광고를 통해 제작비를 충당합니다. 하지만 세금을 통해 운영되는 방송사의 필요 이상의 영리활동은 공익적인 측면에서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광고주간의 커넥션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한을 가합니다. 무엇보다 일반 시청자는 광고에 거부감을 느끼죠. 그에 따라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다양한 꼼수를 부려왔습니다. 방송 중에 광고를 보여준다거나, 광고 자체에 재미를 느끼도록 한다거나, 아예 광고인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광고를 해버리거나. 후자로 갈수록 광고 효과가 커지기에, 방통위는 이에 대한 강한 제한을 겁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간접광고가 포함되어 있다느니 하는 메시지가 프로그램 서두에 박혀있는 것도 그러한 제한의 일환이고요.


이처럼 프로그램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제작자의 의도가 녹아 있습니다. 상기에선 영리목적의 광고 정도만을 예로 들었지만, 경우에 따라선 사회적인 이슈가 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선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것이 되기도 합니다. 공익목적이 아니라면- 아니, 일부의 공익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에 조차 가해지는 윤색은 대부분 '더 흥미로웠으면 좋겠다'는 정도에 그칩니다. 말은 좋아보이지만, 이것이 때론 악의에 기한 것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의도를 파악하고 걸러볼 수 있는 시청자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것입니다.


자. 하고픈 말은 다 했습니다.


잘 보면 전현무의 허리춤에 행동을 지시하는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처럼 대본논란, 조작논란은 예능에서 심심찮게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 가운데 일부는 핀트가 완전히 엇나간 경우도 있습니다. 애초에 대본이 없는 프로그램이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당장 리얼버라이어티의 선봉을 자처했던 무한도전도 대본이 유출되면서 어느 순간 리얼버라이어티라는 말을 쓰고 있지 않죠. 예능만 이럴까요. 다큐, 시사고발 프로그램조차 전체적인 틀이 있고 방향성이 있습니다. 이게 이상한가요? 너무 당연한거죠. 중요한 건 시청자-독자로서 거리를 두고 파악할 수 있는 성숙된 태도를 기르는 겁니다.


위의 표현들을 역사, 교육, 만화 등으로 바꾸어 봅시다.


역사를 다양한 측면을 소재로 삼아 만들어지는 창작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역사의 사실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만들어지지만, 사실 다양한 윤색이 가해진 창작물입니다. 결국 만드는 이의 주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이 창작물에 녹아 있는 주관과 바람은 대부분 이 작품을 더 재밌게 보았으면 좋겠다 선에서 그치지만, 그 가운데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의도가 녹아 있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 그렇죠. 이러한 의도를 파악하고 걸러볼 수 있는 독자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것입니다.


자, 이제 역사의 일부 요소들을 차용하여 만들어진 200년대 초중반의 여러 작품들을 소개할 겁니다. 이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교훈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만, 이 가운데 일부는 왜곡이니 하는 비판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 시간에서 창작물로서 허용되는 선은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 이야기했고, 중요한 것은 사실을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식견과, 대상을 비판할 수 있는 지식의 형성-즉, 역사 교육이라 오늘 이야기했습니다.


즉, 저는 역사를 소재로 했다면, 악의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기 위해 제작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일부의 요소만을 차용하여 제작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보고 있는 입장이라는 소리입니다. 역사의 사실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다한다 본다는 겁니다.


....이렇게 결말까지 이야기했으니, 이젠 정말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죠.




 현대화된 전통


대체역사물이라는 게 있습니다.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여 전개되는 이 작품은,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소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 요소는 정신적 자위의 선에서 그치곤 합니다만, 때론 놀라울 정도로 객관적인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뭐, 다른 걸 떠나 이러한 장르가 주는 그만의 재미가 존재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성 캐릭터의 전통복은 한복을 많이 활용했지만, 사실 남성의 전통복은 대개 대한제국 시기의 그것에만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선, 그게 아쉬웠죠.


박소희 작가의 궁은 대한민국이 영국 등처럼 입헌군주제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하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작품 자체는 '평범한 여고생'이 높은 신분의 왕자님- 문자 그대로네요-을 만나 색다른 경험을 한다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정형이지만, 이것을 현대에 한국화한 설정으로 녹여냈기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통통 튀는 발상이 낳은 수작이란 평가를 받으며, 현대의 계급화된 사회에 대한 색다른 조명이 되어 주었습니다. 동시에 과연 현 대한민국의 높으신 분들의 책임과 권한이라는 것이 하다못해 중세에 형성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미치기는 하는가, 그들이 형성한 정통성이라는 것은 국민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서 비롯될 수 있는가란 생각을 가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창작자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말이죠.


전통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한 편, 구닥다리처럼 취급하기도 했었습니다. 진짜 잘 나가고 많이 가진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 안쓴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했죠. 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소개되는 재벌들의 삶이라는 것이, 좋게 말해 한국적인 전통- 나쁘게 말하면 시대착오적인 면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게 알려지며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저러 전통을 흥미롭게 소개하며 현대에서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를 다루어 내기도 했는데, 뱃놀이나 한국식 다도, 현대화된 여성의 한복 등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설날엔 더 이상 한복도 입지 않는다는 세대에게 핸드폰과 한복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세련됨만이 한국적인 것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허영만의 식객이나 타짜처럼 토속적인 성향의 작품들, 전통이 우리네 현실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작품들 역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통에 현대적 요소가 가미


2000년대 초, 최영의의 일대기를 작품화한 바람의 파이터가 신문지상에 연재되며 큰 인기를 끕니다. 이것이 이후 양동근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역사가 주는 특유의 리얼함이 만화적 과장과 합쳐지며 생겨난 성과였습니다. 이 작품 자체는 70년대에 제작된 것을 리메이크 한 것이었는데, 역사 작품이 또 다른 역사를 쌓으며 색다른 시너지를 불러 일으켰던 겁니다.


이와 비슷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다모'죠.


사실 만화 다모에 비하면, 드라마 다모는 여성을 너무 희생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버렸습니다. 사극 특유의 애정관계가 극의 완성도에 너무 큰 영향을 준다는 비판에서, 이 작품 역시 자유롭지 못했죠.


흔히 일본의 닌자와 사무라이를 들며 한국에는 그만큼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없다며 불평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반박이 존재합니다. 애초에 창작물에서의 닌자와 사무라이라는 건 대중문화에서의 닌자와 사무라이와 똑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는 우리 역사 속에서도 매력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넘쳐납니다. 애초에 수천년을 이어져온 문화권에서 그런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기도 하고요.


다모는, 그리고 하단의 항목에서 다룰 신암행어사는 이러한 불평에 대한 적절한 반례가 되어 줄 만한 작품입니다.


조선시대 여형사에 대한 이야기에 적절한 각색을 가한 방학기의 이 작품은 바람의 파이터와 마찬가지로 70년대 연재되었던 작품을 2000년대 초 스포츠 신문에서 리메이크되어 연재되며 다시금 인기를 끌게 됩니다. 조선시대하면 가졌던 편견- 남성 위주의, 여성은 그저 남성에게 종속되기만한 존재라는 것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주체적인 여성상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이윽고 드라마로 제작되는 계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드라마는 90년대 후반 사극하면 떠올리는 딱딱함에서 벗어나 무협적인 요소가 적극 활용되었고, 허준 등에서 다루어 졌던 것과 달리 연애요소 외에도 작가의 독창성을 녹여내면서도 흥미롭게 전개할 수 있음을 새삼 입증하였습니다.


당시 김민준이 맡았던 장성백 역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헤어스타일이었습니다. 저 장발, 조선 시대같으면 망나니 머리라 불릴 법한 두발로 인기를 끈 겁니다. 이게 얼마나 주류가 되어 버렸는지 나중엔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의 백성현의 댕기머리가 어색하다고 말할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 SBS에서 방영하였던 드라마는 바로 그 야인시대 였습니다. 장군의 아들이라는 걸출한 작품이 아직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야인시대는 승승장구를 거듭했습니다. 사실 야인시대는- 그리고 장군의 아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전의 MBC에서의 왕초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의 고증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창작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실존 인물의 특정한 요소를 차용해왔다는 사실이 몰입도를 높여주었고, 역사 콘텐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마찬가지로 새삼 보여주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이른 바 트렌디 사극, 퓨전 사극이라 불리며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강동원과 함께 하지원이 주연한 형사, 기찰비록, 야뇌 백동수. 뿌리깊은 나무 등등등 너무 많아서 세기가 곤란할 정도로요.




 특정 요소만 차용해 재해석


윤인완X양경일 그리고 전진석 등이 함께 한 작품 신 암행어사는 연재 당시부터 이런 저런 논의 거리를 몰고 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작품은 어느 나라의 만화이야는 것이었죠. 한국인 작가가 연재하지만, 일본의 잡지에서 연재되고, 한국에도 발매되지만 일본의 것을 수입하는 형태인 이 만화는 과연 한국 만화인가, 일본 만화인가.


당시 작가는 영국 리그에서 뛴다고 한국인이 한국 선수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이 만화의 한국성을 어필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이 만화는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일본 만화인 것이 맞았고, 그것이 굳이 문제될 이유 또한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연재되느냐가 아니라, 외국에서 연재하는 작품이 보여줄 수 있는 한국적인 면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느냐였죠.


실제로 이 작품은 역사물로서 고증을 따졌을 때 결코 좋은 점수를 받진 못합니다. 고려 시대에 실존하는지 입증되지도 않은 고려장이 한국의 풍습인양 소개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일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의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특정한 요소로 활용하여 만들어낸 작품이었다는 점입니다. 상기에서처럼 역사 속 요소를 차용한 모든 작품이 그 목적을 교육과 교화에 있을 필요도 없고, 단순한 편린의 활용이 무작정 비난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아예 틀린 사실을 마치 진실인양 전제되는 것은 문제지만, 단순한 차용까지 문제시삼을 수 없고, 때론 이것이 매력적일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이하생략


여하튼 당시 이 작품의 정체성, 그리고 역사 관련 논쟁은 더욱 격한 감이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특수성이 작용했기 때문이었죠. 실제로 당시 고려장은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일본에 의해 날조된 한국의 역사로 알려지던 참이었는데, 이 고려장이 진짜 한국의 역사인양 일본지상에 표현되었으니까요.


여하튼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페이트 시리즈의 아더왕을 실제 영국인이 보면 화가 날까 나지 않을까 등등의 농담이 나오기도 했고, 일본인 만화작가 집단인 클램프가 춘향전을 모티브 삼아 만든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어도 별 논란이 없었던 일들이 회자되며 위 논란들은 어느 정도 사그라 들게 됩니다. 만약 일본지상에 연재되는 것이 아니었다면 저러한 차용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죠. 여러 역사 콘텐츠 가운데 신암행어사를 굳이 특기할 만한 작품으로 분류하는 것도 이러한 유연함, 과감함이 이전의 작품들에선 비교적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학술적인 가치와 문화적인 가치가 동일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후자에 집중한 작품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바람의 나라와 같은 작품이 있었음을 빼놓으면 섭합니다. 실존하는 역사와 신화를 적절히 혼합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은 중국, 일본에서 접하던 여타의 콘텐츠와는 다른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선사해 주었습니다. 




 한국적인 것


이쯤이 되고보니, 사람들은 한국적인 것에 다시 한 번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이라고 해서 모두가 한국적일 수 없고, 전통이 없다고 해서 한국적인 것이 아닐 수도 없다는 걸 여러 방식의 교류가 활발해진 시점에서 체감하게 되었거든요. 이것은 이전의 담론들- 김치, 비빔밥, 불고기, 지성박- 그러니까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와는 차이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물려받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활용하느냐였고, 우리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갈 수 있도록 하느냐였음을 알게 된 겁니다.


이전까지와 차별화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려 한 것이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언젠가


어떤 글에서 "한국의 역사는 교과서를 배워서 딱딱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던 반면, 일본의 역사는 각색되고 정제되고 미화된 만화를 통해 접해 흥미롭게 느껴졌다. 다 착각이었다."라고 언급했던 바 있습니다. 실제로 저러한 잘못된 인식은 일본 역사를 실제로 교과서를 통해 학습하면 단박에 깨지기도 합니다만, 한국의 역사를 만화를 통해 흥미롭게 접해도 깨질 수 있는 편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발목을 잡습니다.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수능에서 수리1등급 맞을래요, 아니면 근현대사 1등급 맞을래요? 이게 단적인 우리 사회에서의 역사 인식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에서의 역사에 대한 민감함은, 공적인 교육을 통한 토대 위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 불안정함에 대한 배설에 가깝다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 특별하게 여겨지는 표현입니다. 여기서의 '우리'란 단순히 대한민국 국민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수십, 수백,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공통의 정서를 함유하는 모든 이들-설사 각자의 정서가 심각하게 상충하는 이들을 포함하여-에게 해당하는 표현인 겁니다.


그렇기에 역사란 늘 특별한 의미로 여겨집니다. 결코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이라는 존재하고, 그 기준은 개개인에 따라 상이한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역사가 자랑스럽건 자랑스럽지 않건 그것은 우리네 정서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네 일상에 강하게 영향을 미쳐 개개인이 가진 역사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이건 타인이 가진 역사에 대한 인식의 비루함을 견디질 못하게 만듭니다.


자, 이쯤에서 감을 잡으셨겠죠.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콘텐츠를 제작함에 있어 존재하는 몇 가지 허들은 창작자의 창작의 자유나,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의 자유만으로는 쉽사리 뛰어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 가운데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후손'의 존재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며, 가장 골치아픈 문제기도 하죠.


덕수이씨 종친회에서 불멸의 이순신에 대해 방영금지 가처분한 것은 당시에도 크게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이순신에게 두고두고 골머리를 앓게 했던 원균을 이순신이 형님처럼 따르고 모셨다는 식의 묘사가 나와서 뒤집어 진 것이죠. 현대사회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혈연, 성씨에서 비롯된 정서는 우리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요? 역사적 위인 가운데서도 가장 인지도 높고, 가장 훌륭한 평가를 받는 이순신 장군. 대중은 그를 100원짜리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말하는 것조차 비하로 여기지만, 그의 생애 가장 큰 문젯거리였던 인물을 사극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순신이 문제였다', '반대파의 모함 때문이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기도 하죠.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러한 상황은 왜 벌어지게 되었을까요? 역사 의식 이상의 중요한 요소가 결부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혈연'이죠.


해당 인물의 후손들이 모인 종친회에서 사극의 방영금지 처분을 요청하고, 해당 인물에 대해 비판적으로 저술한 소설가나 역사 연구가에 대해 "당신들이 알면 얼마나 아냐", "당신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주장해왔던 겁니다. 사실상 이순신의 업적을 부인하는 수준이므로, 100원짜리 이상의 비판이 가해져야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역사적 의식이 부재하는 것은 문제라고 여기지만 그릇되기 인식하는 것은 그만큼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도 있지만, 결국 혈연이나 자신들이 소속된 집단의 명예를 위해선 사실관계를 그릇되게 주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 허용된다는 사회적인 합의가 암묵적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우리 법은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학술적인 목적 등에 대한 인용, 창작을 위한 일부의 차용과 재해석에 대해서도 그 여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혈연과 전통을 중시하는 분위기 역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사실상 역사속 인물에 대한 평가는 후손이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나 묘사에 대해 일부 후손들이 당사자로서 나서기 때문에 창작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때에 따라선 엇나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속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는- 그러니까 당시 실시간으로 KBS에서 방영되는 것을 본 세대의 입장에선 몇번이나 뒤바뀌었었습니다. 만화 속에선 그래도 상식적이며 책임감있는 인물로 묘사되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였지만, 이것이 역사왜곡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음악선생님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발언을 했으며 만화가 잘못되었다 비판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고 다가온 모든 위기를 타개해내진 못했지만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의연하게 대처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되며 다시 한 번 이미지가 뒤바뀌었습니다.


여하튼 여기에서 두번째 문제가 불거집니다. 바로 상이한 평가의 기준과 해석의 기준이라는 거죠. 여기엔 주류의 해석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해석하는 자의 입장에서 기한 차이도 존재합니다.


예컨데 사생활에서는 문제가 있지만, 공적인 영역에선 제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수행한 역사적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해 갠과적으로 서술하더라도, 수용자가 무게를 어디에 두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왜곡, 미화, 폄하-을 받게 됩니다. 공과 사의 영역에서도 그러할진데, 서로의 이권으로 상충하던 분쟁에서는 또 어떨까요? 간단히 여말선초 역사의 격변기 시절의 인물들을 떠올려 봅시다. 정도전이 재평가받은 것이 90년대에 들어서라는 점을 생각해보자면, 개혁과 보수 사이에 선 역사적 인물들의 평가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악인이지만 그럴싸한 신분과 주변의 상황 때문에 창작물에선 고귀한 목적을 위해 굴욕적인 상황을 감내하고 스스로 개차반 짓을 한 인물로 재해석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와 달리 전후사정을 따져보면 엄연히 제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였음에도 후대에 덧붙여진 편견 등으로 인해 창작물에서 악인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죠.


이처럼 해석의 잣대를 달리하여 새로운 시선을 제기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남긴 업적을 실패로, 그가 겪은 실패를 업적으로 해석하는 수준의 '왜곡'에 대해선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대장금에서의 가스 버너. ...실제로는 고증상의 문제라기보단 방송사고에 가깝죠. 출연자들도 평상시엔 일상적으로 보는 것이다보니 카메라가 돌아간 순간에도 쉽사리 인지하지 못했던 걸로 보입니다.


마지막 문제는 고증상의 문제입니다. 언젠가 중국 한나라 때 의자가 없었음에도, 짝퉁 옥의자를 경매에서 골동품으로 산 사람이 있다는 이슈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금은 지극히 당연히 여기는 물품들이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문제는 비전문가의 경우 이것을 하나하나 판별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결국 전문가의 자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것 역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쉽게 시도하지 못합니다.


당장 한국에서 제작된 사극 가운데 고증이 잘 이루어졌다 평을 받는 작품들 태반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악이 가능합니다. 같은 의미에서 tvn에서 방영하는 역사예능 렛츠고 시간탐험대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조선시대가 배경인 것도요. 당연히 근자의 시간대기 때문에 관련된 소품들이 많이 제작되어 있고, 더 나아가 관련 사료도 많다보니 고증도 비교적 편합니다. 더나아가 앞서 제작되었던 소품이 계속해서 활용되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시대극은 조선시대에만 편중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아예 하나부터 열까지 완전히 새로 제작해야 하는 화승총 등을 제대로 묘사한 사극은 여전히 드문 수준이며, 상징과도 같은 환도는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등장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만드는 우릴도 틀린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으니 넘어가자"는 태도마저 읽히기도 합니다.


명성황후의 역사왜곡은 워낙 유명합니다. 황후의 비참한 최후에 더불어, 이 드라마가 끈 선풍적인 인기, 반일정서들이 결합하면서, 역사적인 사실관계마저 왜곡하여 인식하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지고야 말았죠.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농담이 아니라 2년 전에도 이 드라마에서 묘사된 연출을 가지고 역사적인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경향을 생각해보자면,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에 대해 유달리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셈입니다. 평가와 해석,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에 대한 변질로 파악한다는 것이죠.


일부의 요소를 차용하거나, 역사적인 배경과 상관없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엄연히 가능한 일이며, 앞서도 몇번이나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민족성을 고취시키기 위한 역사적 사실을 삽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이 무가치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드라마 명성황후의 경우, 실제로 미화물로써 비판받으며 조선의 패망에 일조한 이를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역사에 관심없는 이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는 일을 낳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친다면야 좋겠지만 그들이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은 채 그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해, 매국노니 옆차기를 먹어야 한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방하고 억압하려 들기도 했으니까요. 올바른 역사 의식을 심어주지는 못할 망정 아예 그릇된 역사 의식을 심어주고 있으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역사 콘텐츠의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생각해보면, 학습만화로만 국한하는 건 굉장히 아쉬운 일입니다. 맹꽁이 서당과 같은 작품도 학습만화의 가치와 역사 만화로서의 가치 양자를 놓고 저울질 하면 후자에 더 기울여 지지만, 그것이 작품성과 대중성의 문제는 아님을 알 수 있고요.


하지만 작품을 작품으로 보지못하는 이러한 관점은 결국 한계를 맞이하고야 말았습니다. 애초에 사실을 사실로서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은 학교 등에서의 학습이지, 즐거움을 위한 문화향유 과정은 아니니까요. 보고 즐기면서 배우면 좋겠지만, 보고 즐기는 선에서 그쳐도 무방한 것이 결국 문화니까요. 모든 것이 청소년 교육, 국민 교화의 도구로 쓰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실제로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역사만화는 학습만화의 하위 카테고리로 국한되는 상황이 벌어졌으며, 그 제작은 더욱 어려워져 진입장벽이 높아졌으며, 독자는 이러한 장르의 만화를 딱딱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련의 콘텐츠들은 역사를 바로 아는 계기가 되어야지, 교육 그 자체로 작용할 수는 없다는 걸 인식한 그제서야 비로소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 ...이것이 90년~2000년대 초중반 까지의 일입니다.


또한 대중의 요구도 역사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하지만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이진 않은 것들에 대한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상기의 편의성과도 맞닿는 일이었습니다.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인물이라면 종친회 등의 후손을 신경쓸 필요도 없고, 소품 고증상의 압박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더욱이 정사에서는 묘사되지 않은 애정관계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분량을 채울 수도 있고요.



물론 해외의 작품들도 역사적인 논란을 앓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마야인들을 야만인으로 묘사하고 그들이 점령당하는 것은 역사적인 필연이라 주장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던 아포칼립토가 대표적인 예죠. 하지만 그 압도적인 규모와 고증으로 관객들을 압도했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해적이란 소재와 당대 존재하는 사회상의 문제 예컨데 사략선 등을 역사적인 시선으로 다루어 내지 않았음에도 오락물로서 거슬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3편에선 또 평이 바뀌지만. 어쨌건.


이러한 변화에 극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해외의 '자유로운 해석'이 더해진 작품들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그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 체감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하면서도 가상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던 전설의 고향 이나, 한국식 에로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협지, 대체역사물로서의 성격이 강한 판타지 소설 등이 이러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펼쳐지는 대체역사물 혹은 트렌디 시대물의 활성화를 위한 저변을 넓히며 자생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실제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역사적 요소를 차용하면서도 자유롭게 해석하여 전개되는 시대극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그냥 역사적 요소 가운데 일부만 입맛에 맞게 뽑아내 제 멋대로 풀이한 작품들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왜곡이니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화면속 묘사되는 장면들 모두가 사실일 거라 믿을 정도로 미성숙한 태도를 가진 이들의 눈을 키워주는 일이 먼저고, 영화는 영화, 만화는 만화, 사실은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비판적인 시선을 길러주면 되는 일이니까요.


80년대까지의 에로 영화들 가운데 사실 주목할 만한 작품들도 적잖았습니다. 심의가- 그러니까 성적인 측면에서의 심의가 완화되면서 온갖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작품들이 나왔고, 그 가운데엔 양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이들이나, 억압된 성의 폭주같은 것을 다룬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심의완화 특유의 폭발력과 외부의 영향이 배제된 고립을 통한 숙성이 어우러지다보니 이후 세대에 들어선 상당히 한국적이면서도 독특한 인상을 주는 영화들이 적잖게 탄생했던 겁니다. 비단 이런 일이 낯선 것도 아닌게, 홍콩발 무협 영화들 가운데서도 섹슈얼리티한 연출로 화제가 된 작품들이 있었거든요.


아이들의 역사 교육이 부족한 게 학교 잘못이라면 학교 잘못이고, 어른들 잘못이라면 잘못인데, 그 모든 책임을 만화 등의 문화가 져야 하는 건 사실 굉장히 불합리한 일이니까요.


다음 시간엔 역사적인 요소들을 다루어낸 한국의 작품들에 대해 다루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궁, 바람의 파이터, 대장금, 다모, 바람의 나라, 신암행어사, 신 춘향전, 신 구미호, 쾌걸 춘향 등입니다. 보시다시피 시점은 2000년대 초중반, 그러니까 2003~5년 즈음이고요. 이후 시점에 방영 혹은 연재된 태왕사신기, 쾌도 홍길동, 야뇌 백동수, 추노 등도 같은 관점에서 다룰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만 시점이 2000년대 중후반에 달하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언급만 되고 말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드디어, 한국적인 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담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당연하지만, 이는 이전에 언급만 되었던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 보다 심화된 형태였던 한국형 라이트노벨 담론과도 일정부분 맞닿는 것이었습니다.







잔뜩 예정을 써놓은 걸 보면 아시겠지만. 언제 또 쓸지, 떠올린 소재는 또 언제 다시 작성할 지 몰라서 하는 겁니다. 소재를 써놓은 메모 파일이 외장하드에 있는데, 그 외장하드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가 않네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2016년


기준으로, 여전히 어떤 일본만화가 우익인지 아닌지에 대해 알아보려는 이들이 제 블로그를 자주 찾고 있습니다. 그걸 보다보면... 뭐랄까요. 참 복잡한 심경입니다. 저도 그랬던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계속해서 이야기해왔지만,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만화는 일본 만화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양국의 대중문화가 개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사이 여러 요소가 결부되어 적잖은 영향을 받아왔죠. 문제는 공론화되었다면 으레 걸러졌을 요소들을 간직한 작품들이 알게 모르게 한국에 영향을 끼쳐왔고, 또한 수입되어져 왔습니다. 캐릭터의 이름이나 배경도 몽땅 한국으로 치환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본인의 관점'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었고, 일본 입장에서의 우익이라는 게 또 생각해보면 한국에도 익숙한 민족주의적 성향과도 맞닿았었기 때문에 그리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거죠. 그 왜 은혼의 한 장면으로 비유해보자면,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흑선과 그로 인한 강제개항의 거부감'은, '한국의 일제에 대한 강화도 조약의 거부감'으로도 자연스럽게 치환시킬 수 있는 일이었죠.


또 주관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의 억압에 억눌리지 않고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자는 말이 일본의 작품에서 나왔다면 "반성없는 일본"이라는 비판의 근거가 되었을 것이고, 반대로 한국에서 나왔다면 "근현대사의 고난을 뛰어넘어 독립된 주권국으로서 선진국에 돌입하고자 하는 의기의 표명"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전자가 하면 죽일 짓이고, 후자가 하면 자랑스러운 행동이 되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인에게 일본인스럽다 말하는 것도 욕설처럼 취급할 정도로 반일감정이 거세던  때였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한국의 만화인 줄 알았던 만화가 일본만화였다' 내지는 '그런 일본 만화를 베낀 것이었다'는 식의 문화충격은 물론, '내가 재밌게 즐겼던 작품들이 사실 일본인들이 과거의 반성의식이 부재한 채 즐기기 위한 작품이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마징가Z 주제가를 한일전에서 부른다거나 축구왕 슛돌이 주제가를 불러 일본 응원단들이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일이 전자의 사례라면, 후자는 드래곤 퀘스트의 음악 감독 스기야마 코이치의 우익 활동이라거나 침묵의 함대 등에서 나온 야마토가 일본 제국의 병기였다는 식을 들 수 있겠네요.


 일본식 상투나 기모노조차 검열의 대상이었던 시대를 살아온 저를 포함한 이들에게 있어 일본군 복식을 차려입은 개구리의 모습을 보는 건 묘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실제로 군국주의 논란을 앓기도 했죠. 하지만 이후 투니버스에서 큰 문제없이 방영된 것처럼 이 작품은 원작에서 우익인사를 노골적으로 희화하거나, 언터처블한 존재인 천황을 무시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서 '그냥 풍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독자들, 특히 기존의 만화를 즐겨왔던 독자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엄격하게, 모든 만화를 위와 같은 잣대로 파악하려 하는움직임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2016년 기준으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람의 검심, 개구리 하사 케로로 등등등 사실상 일본의 역사 속 일부 요소라도 차용하거나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 전부가 이러한 논란을 앓았다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사람이 문제냐 작품이 문제냐


복잡한 문제입니다.


음. 버니 샌더스와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로 잠시 새 볼까요? 극과 극이라 이야기되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돌이켜 보면 이들이 하는 이야기의 근거는 동일합니다. 현 정치 세태에 문제가 있고, 그것을 자기와 같은 아웃사이더가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그를 위한 수단과 입장은 전혀 다르고, 서로가 서로를 또라이 혹은 진지하게 논할 가치 없는 자로 여기고 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입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표현의 결과물은 개인의 인성 혹은 능력 혹은 수단과 때론 적확하게 부합하지 않기도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잘못된 발상으로 그릇된 의도를 가지고 틀려먹은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었음에도 멀쩡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옳은 아이디어와 바른 생각으로 적절한 수단으로 작품을 만들었더라도 때론 잘못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문제는 이것이 아주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데 작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우익 인사가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우익 작품이 되었습니다. 혹은 작품이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군국주의를 표현하기 위한 요소가 담겼다면 그 또한 우익 작품이 되었고, 그 사람은 우익인사가 되었습니다. 작품이 군국주의를 다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또한 우익의 낙인이 찍혔습니다. 심지어는 우익과 관련한 요소도 없고, 그런 해석도 할 수 없는데 작가가 그런 행사에 참가했다고 하더라라는 것만으로 우익으로 결정되어 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게, 다카하시 루미코 역시 우익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대체 란마나 시끌별 녀석들, 혹은 이누야사의 어떤 면이 군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네요. 빨간색을 많이 써서 그런가? 근데 그건 다카하시 루미코가 다양한 색상을 안쓰기 때문 아닌가요?


물론 위와 같은 일이 진지하게 결정되어진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상대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 작품의 해석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달린 일이니 "네가 안본다고 해서 함부로 남을 못보게 하지 마라. 네가 보지 않는 것은 너의 자유지만, 남이 보고싶은 것을 침해하려는 것은 너의 권한이 아니다"로 퉁쳐지는 분위기가 되었던 것이죠. 애초 일본 역시 민주주의 국가이고, 개인이 지향하는 자유와 권한,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 큰 차이를 가질 수가 없으니 논란이 될만한 크고 작은 요소가 있을 진 몰라도 대놓고 엇나가는 작품은 존재할 수가, 그리고 국내에 수입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이 과정에서 부차적으로 터져나온 것이 바로 욱일기 논쟁이었습니다. 사실 가운데로 집중시키는 연출 자체는 동서고금 자주 활용되는 것이었는데, 직접적인 욱일기 외에도 그와 비슷해 보이는 연출까지 묶여 '우익만화'라는 식으로 이야기되는 경우도 있었던 겁니다. 란마1/2이나 근육맨, 닥터슬럼프 등이 이러한 논란을 앓았었는데, 이 가운데엔 원작엔 없었지만 애니메이션엔 욱일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활용된 연출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선 '사람은 문제고, 작품은 작품으로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 합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욱일기 사용여부로 우익여부를 가르고, 거기에 연좌제 식으로 낙인을 찍어버리면 한국인들도 일본 군국주의에 찬성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어 버리거든요. "영국의 밴드 오아시스가 욱일기 모양 티셔츠를 입었다→우익→배철수가 오아시스의 음악을 틀면서 칭찬했다→우익→배철수는 MBC라디오에 출연하고 있다→MBC는 우익방송국→MBC에 출연하는 사람들 모두 우익사관에 찬성하고 있다→MBC는 국영방송국이다→한국은 일본 우익사관에 찬성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판하고 토론하는 자유


실제로 게임 드래곤 퀘스트의 우익논쟁의 결말은 위 결말에 상당히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게임 내용은 용사의 세계구하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것이었고, 해석하자면 반전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기에 되려 반대로 볼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게임의 다양한 요소 가운데 오직 음악을 담당한 한 사람의 우익행사 출석 여부만으로 모든 걸 우익이라 뭉뚱그리는 것은 그리 설득력 있는 행동은 아니라 여겨졌던 겁니다. 실제로 "설사 그런 게임이 아니라도 내가 그 게임을 돈 주고 사면, 그 수익이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 그것이 다시 우익기금으로 쓰이게 될 것이므로, 그 게임을 해선 안된다"라는 논지가 펼쳐지기도 했었습니다만 수많은 이들의 노동이 집약된 결과물에 대해 일부만으로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론 역시 적잖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드퀘의 인기 자체는 국내에서 그리 큰 타격을 입지 않았고, 지금 시점에선 정식 발매는 물론 한글화까지도 되어 출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만화는 이보다 더 심한 논쟁을 앓아야 했습니다. 게임은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합작물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만화는 그렇지 않기도 했고, 상기의 민감한 논쟁을 반복해서 앓아왔었으니까요. 실제로 이소라의 음악도시 출연 당시 한창완은 침묵의 함대를 추천만화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내주에 그 만화는 일본 우익 만화라는 독자의 항의를 받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작품"이라는 입장을 밝혔던 적이 있었죠. 실제로 우익논란에 당황한 그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모든 것을 그렇게 바라보면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 작품들은 없다는 어조 역시 강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실제로 침묵의 함대는, 우주전함 야마토 이상으로 문제 소지가 많은 작품이었지만, 어느 순간 이전에 이야기하던 주제의식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습니다. 냉전 시기 무서울 것 없었던 일본은 냉전의 종료와 함께 침체된 경기로 인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침묵의 함대도 국가나 민족이 아닌, 개인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습니다. 상기에서처럼 결코 모든 사람에게 우익만화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다르게 볼수는 있는 상황이었단 것이죠. 실제로 침묵의 함대는 한국에 완결까지 발매되었습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그 진의와 무관히 쉽게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작품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멍청하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틀린 것은 비판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거라는 거죠. 시대가 변하고, 아이들은 보다 많은 걸 접하는데 태도가 아닌 하나하나를 차단할 생각이라면. 예. 그야말로 틀려 먹은 거죠. ...물론 성인은 온전한 자기결정권이 있으니, 여기에 침해하겠다 다는 쪽이 이상한 거고요.


이것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일본'하면 무조건 배척하는 이전과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납득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잘못했다 우기고 보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이 달라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세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죠.


동시에 모든 작품에 대한 일괄적인 해석의 거부감 역시 작용하였습니다. 상기에서처럼 군국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작품에 나온 우익기조차 한국 언론이 나서 "문제가 있다"며 언급하는 경우는 솔직히 말해 그렇게 설득력이 없는 것이거든요. 구체적인 지적없이 그 문제를 타개해내기 힘든 것처럼, 노골적인 우익사관에 대한 주장보다 비판 속 일부의 지지부진함에 더욱 엄격한 국내의 태도 역시 문제가 있다 여기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결론은 한가지로 귀결되었습니다. "일부가 우익사관이 녹아있다 주장하는 만화 본다고 애들이 친일파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영화 본다고 한국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시각과 균형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이다"로요.


애초 창작물로서의 가치와, 그것에 대한 역사적인 가치는 등치할 수 없는 거니까요. 허씨부인처럼 창작물은 실제로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 역할도 겸하고 있으니, 오해의 소지를 낳을 수 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돋구기 위한 몇몇 요소로 전체를 파악하지 않도록 하자는 입장 역시 강해졌습니다. 결국 창작의 자유와 역사의 해석은 각 작품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하나 나오게 됩니다. 한국적인 소재를 일본식으로 활용하고, 한국인 작가가 일본의 출판에서 발매한 작품 '신암행어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지금은


JYJ와 동방신기로 흩어진 (구)동방신기지만, 2000년대 초중반의 인기는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발표 직후 실력파 아이돌로서 한국 내에서 손꼽히는 판매량을 자랑하는 아이돌 그룹이 되었고, 탄탄한 팬덤을 바탕으로 정상권 아이돌로 등극하며 이전 세대의 아이돌과는 다른 영역을 구축해 냈습니다. 그런 그들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SM은 이미 일본에서 보아를 히트시켰던 경험이 있었고, 동방신기에 대해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으니까요.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크고 작은 논란이 일게 되었습니다. 당시 동방신기의 전략은 해외 아티스트로서 일본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한류'라는 표현이 드라마라는 한정된 장르에서 통용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동방신기는 이전의 보아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부딪히는 입장이었고, 그들은 이른 바 '현지화' 전략을 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동방신기(東方神起)라는 고유명사의 음을 한국식으로 차용한 동방신기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토호신키라는 とうほうしんき/TOHOSHINKI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함께 "그룹명은 고유명사다. 일본에서 활동할 것이라는 이유로 한국 내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는 그룹이 일본식 음차로 활동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문화를 판매하기 위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창씨개명과도 같은 일이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방신기는 한국에선 초절정 인기였는데, 일본에선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동방신기의 일본 진출에 대해 회의적인 이들도 많았죠. 굳이 일본에 진출하지 않아도 돈도, 인기도 많은데 일본의 인정을 받아야 하나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미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절정의 인기를 얻고, 한류가 크게 확장되었다 어느 정도 정체기를 맞이한 지금 기준에서 보자면 "일본식 음차랑 일제강점기의 창씨개명이랑 뭔 상관?"이라는 반응으로 대충 퉁쳐지는 분위기지만, 당시엔 이 논란이 꽤나 무게감 있게 논해 졌었습니다.


일본의 역사 분쟁, 교과서 왜곡이 심화되던 때였고, 무엇보다 독도와 관련된 영유권 분쟁에 의해 반일감정도 높아졌던 때였거든요. 당시 동방신기의 저러한 행보를 마치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인이 아닌 척 군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두 국가간에 복잡한 과거사와, 그로 인한 현대사, 양 정부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리면서 문제는 점점 심화되고 있었고, 그 여파가 문화에도 미쳤던 겁니다.




 피해의식과 낙인찍기 사이에


하지만 위 논란은 의외로 싱겁게 막을 내렸습니다.


"기껏해야 음차가 정체성을 팔아먹는 행위라면, 몇 년 전에 한국에 데뷔했던 초난강은 일본인 입장에선 매국노냐"는 반론이 나오면서 그 주장에 힘을 잃게 된 것이죠. 어쨌든 경제적인 규모에서는 한국을 압도하는 일본에서, 정상권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 한국에서 연예계에서 코믹한 콘셉트로 활동하며 수시로 무시당하는 형국이 벌어졌었는데, 그는 한국인에게 사랑받고 싶다며 몇 번이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 초난강에겐 별 다른 반응-거부감이나 호감조차 일으키지 않았던 한국의 대중들이, 그와 같은 행위를 하는 한국인에겐 엄격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죠. 똑같은 행위를 해도 일본인은 별다르지 않게 생각하는데, 한국인은 활동 자체에 클레임을 거는 것이 피해의식의 발로는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죠. 실제로 같은 한자권 문화인 중국에서는 외래어는 아예 중국식 한자로 뜯어고쳐도 별다른 문제로 삼지 않고, 미국 등에서도 발음이나 억양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고 개인의 의사가 우선한다는 사실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논란은 급격하게 사그라 들게 된 겁니다. ...사실 동방신기가 일본 데뷔 초창기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해 유의미한 논란으로 확장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말이죠.


여하튼 이와 함께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대중들이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인이라는 표현의 광범위한 용례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개인이 대표할 자격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는데,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에까지 국위선양 혹은 국가망신이라는 틀을 뒤집어 씌우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한 담론까지 이뤄졌죠.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을 국가적인 성과로 간주한지, 국가에 닥친 경제적 위기를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박찬호에게서 달랬던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생겼던 흐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대엔 실패처럼 여겨졌던 쿠사나기 츠요시의 한국 진출. 하지만 일본 문화엔 관심도 없는 사람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까지도 그를 알고 있을 정도의 반향은 남겼습니다. 실패지만 사실은 성공이었다 이야기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하지만 문화 전반에 걸친, 특히 일본의 영향력이 강한 서브컬쳐에서는 이와 비슷한 논란을 계속해서 앓았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죠. '창씨개명'에 대해 안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생존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납득할 만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영향력은 지대하지만 그를 인정할 수는 없고, 그들과 앞으로 엮일 것은 뻔했습니다.


자연스레 우익사관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작품, 작가들도 이와 관련한 논란을 앓았습니다. 사실이 확인되었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석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인은 그럴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용납되었습니다. PC통신과 인터넷은 여기에 물과 기름을 번갈아가며 끼얹었습니다. 이전엔 '카더라'에 불과하던 소문이 반증되는 경우도 있었고, 말도 안되는 소문이 밑도 끝도 없이 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엔


우익 작가로, 우익 작품으로 찍힌 것들에 대해 다뤄볼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다뤄야 할 작품이 있습니다.


우주전함 야마토말입니다.


 당대도, 현대에도 이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밝힌 이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거 모두 우익! 배제!"라고 말하기엔 이미 문제없이 즐긴 작품도 많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에서 느낀 즐거움, 그에서 느낀 감동도 모조리 부인해야 하는데, 이건 자기 정체성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게 불가능하니, 아예 이 작품은 언급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죠.


이 작품은 근래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한 영화로도 리메이크된 바 있습니다. 새로 유입되는 팬덤은 정체기로 평가되고 있지만,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일본 내에서 클래식으로 평가되고 있는 작품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지만 영화의 일부 설정이 원작과 달라진 것처럼, 이 작품은 소재에서부터 '바람이 분다'처럼 논란을 안고 있습니다. 아니, 바람이 분다보다 더 심합니다. 똑같이 일제의 병기를 작품의 소재로 끌어왔지만 바람이 분다에서의 제로센은 주인공의 단죄로 활용되는 도구인 반면, 야마토는 일제의 패배를 뛰어넘어 부활과 승리의 상징으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이 군국주의와 무관한 노선을 걸을 때 "당시 일본군은 저렇지 않았다. 미화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이 우려된다."라는 논란을 앓게 됩니다. 이 작품이 군국주의의 노선을 걸을 때 "군국주의의 부활이다. 일본의 반성의식이 부재된 역사관이 우려된다."는 논란을 앓게 됩니다. 뭐가 되었건 논란은 피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작품임을 고려해도 이 작품은 당대의 논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드래곤 퀘스트의 경우처럼 "음악을 담당한 사람이 우익 행사에 참가했다고? 그럼 드퀘도 우익 게임!"이라는 식의 연좌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당대의 논란에서 '우주전함 야마토'는 에반게리온, 신비의 바다 나디아, 캡틴 테일러,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마크로스 시리즈,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나데시코 시리즈, 은하철도 999, 심지어 스타크래프트에까지 발을 걸치고 있었으니까요. 고전부터 최신작에까지 야마토 시리즈에 대한 이런 저런 영향이 '묻어'있었기에 "그거 일일히 따질 거면 그냥 전부 다 안 보는 게 맞다"는 식으로 전개되어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80년대


본격적으로 촉발되어 가능성을 확인하고, 90년대 의욕적인 시도들이 펼쳐진 극장판 한국 애니메이션. 하지만 90년대 시도들 태반은 그리 긍정적인 결과들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 초를 넘어서게 되면서, 최소한 의의를 남긴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 작품들 또한 대중적인 성과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죠.


하지만 비교적 기획과 제작, 방영 기간이 짧은 TV애니메이션은 달랐습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빠른 시간 내에 잡아낼 수 있었고, 시청자층을 보다 분명하게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정적인 송출 수단 역시 갖추고 있었죠.


오늘 언급할 세 편의 2000년대 초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목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듯 하네요. 탑블레이드. 큐빅스. 그리고 올림포스 가디언말입니다. 이 작품들의 상업적인 성과와 가능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더군요. 아직도 제겐 이 작품들이 남긴 성과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말이죠.




 탑블레이드


탑블레이드는 원작이 일본작품이고 작중 일부 왜색이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작품으로만 기억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작의 첫 과정에서부터 한국의 매드하우스 등이 깊게 개입하였었던 '진짜 합작'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제작에 중심이 되는 영역은 몽땅 일본에 맡기고 하청업무만 담당하였던 이전의 작품과 달랐습니다. 스토리, 설정, 연출, 동화 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당대 한국 애니메이션 특유의 색체를 공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광고 효과를 '다시 한 번' 입증한 작품.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주)손오공의 공격적인 마케팅이었을 겁니다. 이미 대세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이 아닌 PC방으로 넘어갔다 이야기되던 그 때, 손오공측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팽이놀이'를 차용한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관련된 상품의 국내 제작 및 배급에 대한 권리를 따냅니다.


이전에도 미니카나, 로봇 등의 판매 상품을 통해 수익을 거두기도 했었습니다만, 이것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전히 쾌속 스피너나 스피드왕 번개 등 미니카에서 벗어난 요요나 롤러블레이드 등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기를 끌기도 했었습니다만, 이것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가 명백했습니다. 한일양국 모두 로봇 애니메이션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졌고, 반복해서 돌아왔던 미니카 붐의 간극은 점점 멀어졌거든요. (한국의 경우) 가장 큰 이유가 PC게임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실제로 손오공은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PC게임 시장에도 진출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신통치는 못했었죠. 블리자드가 발매되지도 않은, 아니 개발도 시작되지 않은 게임(스타2)으로 네고를 쳤고, 손오공은 거기에 낚였다라는 내용이 이후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 위기 상황을, 팽이놀이를 기반한 콘텐츠와 관련 상품의 판매를 통해 타개해낸 것입니다. 물론 탑블레이드의 경우 PC게임으로 제작되어 발매되기도 했었습니다.


어찌보자면 시대에 역행한다고까지 여겨졌던 탑블레이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둡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더 중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더해, 콜렉션 욕구, 오프라인 대회 개최 및 유지 등이 어우러진 결과였죠.




 큐빅스


많은 이들이 고민했습니다. 왜 한국 애니메이션은 외국에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만큼 재미있지 못한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소재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인가, 그조차 아니라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뭘 내놓아도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서 발전을 위해선 하나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애초에 외국에서 방영할 것을 상정한 작품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이후 국내에 방영된 특이한 케이스의 작품이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큐빅스죠. 씨네픽스가 제작한 이 작품은 미국의 워너브라더스의 키즈채널에서 방영하며 당시 전성기이던 포켓몬스터를 시청률에서 앞지르기도 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1기는 SBS에서, 2기는 KBS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는 둥글둥글한 로봇에서 기인합니다. 2000년대초는 이미 고전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다각도적 분석이 이뤄진 시점이었습니다. 건담이나 에반게리온 등의 고전 로봇에 대한 재해석 애니메이션의 붐도 이미 끝난 시점이었고요. 출발은 어린이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로봇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이 시점에 이르러선 소재건 디자인이건 '아이들'을 위한다라고 말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진 시점이었습니다. 당장 트랜스포머나, 용자물을 떠올려 보세요. 소재도, 연출도, 디자인도 소년이 아닌 비교적 어린 아이들에겐 적합치 않은 면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큐빅스는 파고든 겁니다. 선하며, 사람을 도우면서, 귀엽지만, 로봇이 가진 근본적인 매력- 창의적으로 조립하고 합체하며 변신하는 등의 것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다치지 않게 둥글둥글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 차원에서 총놀이나 칼싸움을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창작물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던 때였는데(기가 막힌 우연인지, 당시 MBC의 해외 드라마 아이들이 줄었어요에서 햄버거의 부록으로 온 장난감총을 아이에게서 뺏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큐빅스는 기존의 작품과는 그러한 폭력성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동시에 과거의 볼트론을 떠올릴 정도의 거대한 크기면서도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적합한 튼튼함과 조작성까지 갖고 있었으니.


로봇 특유의 강건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이 어우러 서로 돕고사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야기했던 스토리 역시 좋은 평을 받았었죠.


단순히 자극성을 통해 아이들을 열광케 하는 것을 넘어, 부모세대에게도 교육적으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작품과 캐릭터였던 겁니다. 실제로 큐빅스 역시 게임으로도 제작된 바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벤트 차원에서 뮤지컬로도 제작되기도 했었습니다.




 올림포스 가디언


한국, 정확하게 아시안의 교육열은 서양에서 참으로 유명한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잡았을 정도로요.


그러한 측면에서 따져보면, 만화의 불황기에서도 꾸준히 사랑받았던 학습만화가 애니메이션화되지 않은 것은 생각보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초롱이의 옛날 여행,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류의 작품들이 절대로 잃지 않는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주 시청자층인 아이들에게 일종의 지루함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순 없겠죠. 아무리 재밌어도 한 두 번이지, 책으로 본 내용을 재방에 삼방까지 반복하니.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일종의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어린 연령층에겐 상대적으로 생소한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소재는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세대에겐 학습만화가 가진 '교육적 성향'이 담보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점점 널리 활용되는 신화의 교양적 성향까지 어우러지니까요. 거기다 아이들을 위한 순화에, 책을 읽기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한 직관적인 연출까지 어우러졌으니.


이렇게 올림포스 가디언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god가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신화, 그리고 매력적인 신들은 이 작품이 일정한 완성도 이상을 담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거기다 작품 특유의 위트까지 녹아든 덕에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들도 재미있게 보았었죠.


그리고 화려한 작화와 색감, 안정감있는 성우들의 연기는 아이들을 매혹시키는 것을 넘어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간과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실패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이 시점이


되면, "한국 만화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몇 년 사이에 좋은 작품 한 두개가, 이젠 1년에 좋은 작품 몇 개로 바뀌어 버린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위 작품들이 가진 공통점 '비교적 어린 연령대의 아이들이 즐기고 부모들이 지지하는 상황'을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과연 이것을 온전한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동 애니메이션만 성공했다, 결국 이것은 일부의 성공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실제로 위 작품들의 흥행성공은 보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 제작자들이 집중하는 경향을 낳게 되었거든요. (실제로는 큐빅스를 제한 다른 두 작품은 초등학교 고학년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긴 했었습니다.)


아동연령대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쁘냐, 나쁘지 않느냐에 대해선 쉽게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일정한 연령대만 대상으로 작품이 제작되는 상황이 건강한 현상이라곤 말할 수 없습니다만, 90년대 청소년층을 넘어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하나를 빼곤 모조리 흥행참패한 현상을 생각해보면 무작정 주장하기도 꺼려집니다. 실제로 다소 애매하긴 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준 작품들조차 모조리 흥행에 실패한 건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TV애니메이션 쪽은 방영시간과 연령대가 시청률과 직결하는 요소잖아요.


무엇보다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나쁘냐, 그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이러한 현상에 국한되는 현실에 만족해선 안된다는 주장 자체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이후로도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은 상황을 만들려 하였죠. 아동 애니메이션 집중 현상은 비록 이전과 같이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보기 힘들어짐을 의미했지만, 최소한의 화제성과 시청률 측면에선 일정 수준 이상을 담보해주었습니다.


 사실상 뽀로로가 가진 저력이 드러났던 건 해외에 얼마에 수출되었다더라 하는 것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뽀로로를 보며 자라온 아이들이 가진 공감이 더 어린 친구들과 이어졌기 때문이었죠.


바로 그 뽀로로가 2003년 등장하게 되고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스탠 리는


오늘 날 코믹스 히어로들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에 비견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작품 속 히어로들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그만의 여행을 떠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정한 교훈을 남기기도 하거든요. 그 가운데엔 "신성에 도전하지 마라"는 것과 같은 통용되지 않는 교훈도 있습니다만, 사랑이나 신뢰 등 만고불변한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대의 신화 속 영웅과 지금의 만화 속 히어로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존재입니다. 즉, 그들의 대표성과 정체성에 대한 이의제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은 신들의 자손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반신적인 존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진리나 질서에 도전하는 그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였고, 태반이 신성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었습니다. 즉, 그들에게 있어 비교의 대상은 신이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은 인간의 대표자로서의 자격을 잃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오늘 날 코믹스 속의 히어로들의 대교대상은 대중 혹은 국민에 국한됩니다. 해당 작품 속에서 신과 같은 존재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 태반은 맞수 등으로 등장하곤 하죠. 결과적으로 코믹스의 히어로는 일반인보다 우월하기만한 존재로 그려지며, 그들이 가진 선천적 후천적 요소들과 맞물리며 인간을 대표하지만, 정작 대표할 자격이 없는 이들로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슈퍼히어로에게 우리들을 보호해달라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대표성, 히어로만의 성질에 대한 논의가 비로소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보다 범 대중적인 미디어믹스화되는 것은 80년대부터였고, 그것을 온전히 기술력으로 영상화할 수 있는 것은 2000년대 들어서 였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히어로 콘텐츠는 개별의 장르들을 각각 녹여낼 수 있는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영웅. 소수. 차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한 데 어우러진 작품이 있습니다. 예. 두 말할 것 없이 엑스맨입니다. 동성연애와 장애를 독특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로 치환시켜 표현한 이 작품은 히어로 장르에 '다양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는지를 입증하였고, 결과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엑스맨을 원작으로 한 브라이언 싱어의 2000년 개봉작 엑스맨은 소수자에 대한 은유를 품으며,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울버린과, 주변에 상처를 입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로그 사이에 교감은 "세상을 구하여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의 최소단위가 "전지구적 단위로 치고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였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엑스맨은 '히어로물'이라기보단 '능력자물'에 더 가까운 인상을 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돌연변이끼리의 대결'을 넘어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결'로 귀결된 속편에서 더욱 분명하게 부각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은 전통적인 엑스맨과 차이가 있는 별개의 콘텐츠로 그만의 완성도를 통해 자리잡았다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98년 블레이드를 감상한 이들은, 특유의 세기말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 B급 정서를 기반으로 제작된 호러 액션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습니다. 일찍이 스파이더맨 TAS를 통해 국내에서도 모습을 들어내기도 했던, 반半뱀파이어이자 반反뱀파이어기도 한 블레이드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2002년. 블레이드의 속편을 맡은 길예르모 델 토로는 이 영화를 이전의 뱀파이어 헌터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화로 변모시켰습니다. 체제에 의한 두 희생자의 대립은 선택과 외면으로 인해 뒤집힌 존재들에 대한 변주곡으로 완성되었고,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는 때론 신화적이기까지한 이야기와도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관객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이러한 무게감은 블레이드2를 가장 인상적인 흡혈귀 영화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만들어 주었죠.


블레이드2는 블레이드의 액션성이 강조되며,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에선 고뇌를 다뤘던 블레이드1과는 다른 지점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노막과 니사는 블레이드조차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존재들로, 악당들의 이상향이면서도 그들을 거부한 블레이드의 입체적인 성격에 대한 부각과 함께, 어째서 히어로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씩의 답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스파이더맨이 개봉하여 '고전이 아닌' 새로운 슈퍼 히어로의 정석을 구축하고, 스파이더맨2가 그러한 슈퍼히어로 콘텐츠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면, 블레이드 시리즈와 X맨은 슈퍼 히어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별개의 매력을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그리고 이안의 헐크는 비록 상업적인 면에서 실패했을지언정 히어로 콘텐츠가 가질 수 있는 신화적 예술성을 증명했죠.


이 시기 여전히 엘렉트라나 캣우먼, 고스트라이더, 데어데블 등 상대적으로 편의적 클리셰에 기댄 채 휘발적 오락성에 치중한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제작되고 개봉하였습니다만 히어로 콘텐츠의 가능성은 이처럼 점점 넓고 깊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이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첫걸음인 배트맨 비긴즈, 신화가 되어 버린 고전의 완벽한 복각이라 할 수 있는 슈퍼맨 리턴즈가 개봉하게 되죠.


...언제나 처럼 1, 2년 왔다갔다 합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