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방영된 mbc 드라마 왕초는 당대 특정 인물에 대한 미화와 특정인물에 대한 비하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바 있습니다. 작품이 방영되기에 앞서 픽션이다라는 메시지가 나왔지만, 어디 특정 인물을 전면으로 내세운 드라마가 그러한 논란에서 자유롭기가 쉽나요.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해도, 왕초는 사실 꽤나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얼마 전(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2년 전이군요) 방영되었던 리멤버 왕초라는 특집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비록 정규편성에는 실패했지만, 한대 열광했고, 추억이 되었고, 인상에 확실하게 남은 추억의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실제로 저도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고, 최근 mbc 유투브 채널에 올라온 전편을 천천히 감상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왜 그렇게 재밌었을까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거지라는 신선한 소재에 더해 일제강점기, 해방기, 6.25전란, 전후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사내의 뜨거운 이야기라는 점을 들 겁니다. 결코 이어지지 않을 듯 하면서도 결국은 이어지는 운명적인 사랑도 빼놓을 수 없고요. 작중에는 언급되지만 역사의 한페이지를 수놓은 인물들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하고, 김두한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단연 매력있는 악역을 들 수 있습니다.


차인표가 본 작에서 꽤 괜찮은 연기를 보입니다. 허준호와의 캐미가 상당히 괜찮죠.


본작에서 악역이라 부를 만한 인물은 대충 대여섯 정도 됩니다.


정치깡패로 유명한 이정재, 일본 순사에서 비리경찰까지 거치는 아베, 고문기술자인 센세이, 춘삼의 오랜 친구이면서도 마지막까지 친구의 이름으로 배신했던 형도, 그리고 춘삼의 라이벌격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발가락이 그러하죠.


이들 가운데 몇몇은 최후에 개심하고 반성하지만, 또 몇몇은 끝까지 악역의 포지션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발가락은 후자에 가깝지만, 단순하게 그렇게 잘라버리기엔 그가 본 작의 주인공인 김춘삼과 맺는 관계가 너무도 독특합니다.


그는 춘삼을 싫어한다 공공연히 밝히고, 실제로 몇번이고 마찰을 일으킵니다. 춘삼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염천교 식구들을 괴롭히기도 하죠. 어린 시절 왕초 자리를 두고 겨루는 과정에서 그에게 자신의 한쪽 눈을 잃어 그에 대해 원한을 품고, 춘삼은 물론 그의 가족들까지 가만히 두지 않겠다 이야기하기까지 합니다.


동시에 그는 변화한 시대상을 맞을 때마다 춘삼에게 몇 번이나 일종의 화해요청을 '먼저' 하곤 했습니다. 그 화해의 이면에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심리와 함께 서로가 부딪히면 힘들 거라는 일종의 위협이 엿보입니다만, 동시에 한 때 같은 움막에서 먹고 살았던 사이지 않냐는 일종의 동료의식이 일정부분 베어 있습니다. 춘삼이 당대에도 올드하지 않냐는 평가를 받던 이해심 넘치는 선역의 포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화해 요청을 먼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굉장히 독특한 일입니다. 주인공에게 자신의 행동의 변화의 주체성을 넘기고 화해를 요청하는 악당이라니. 물론 춘삼은 이러한 발가락의 요청을 너무나 간단히 거절해버리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주인공과 악당의 그것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지독한 악역의 포지션처럼 보이는 발가락이지만 그는 춘삼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동시에 춘삼도 발가락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춘삼은 거지패의 왕초로, 발가락은 이정재의 최측근으로서 살아가기에 이전과 같이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일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동시에 최소한 서로가 처한 입장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춘삼이 가장 오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 서로에 대한 일종의 동질감마저 표현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다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발가락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 홀로 세상에 맞서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해내는 춘삼을 달리보고 있습니다. 춘삼은 발가락을 상종도 못할 인간처럼 이야기하지만 위급할 때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죠. 결국은 그가 자신과 함께 대구의 움막촌에서 출발을 같이하는 인물이니까요.


발가락의 포지션은 여타의 작품에서라면 최후의 최후까지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반대로 너무나 간단하게 잡졸로 전락하곤 합니다. 성장한 시점에서 발가락이 처음 등장할 때 가장 무서운 악역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가장 위협적인 악역도, 가장 짜증나는 악역도, 가장 미운 악역도, 그렇다고 웃긴 악역도 아닌 상태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이야기의 끝까지 나아가죠.


쉽게 말하자면  그는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입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선 다루기도 까다롭고, 활용하기도 곤란할 정도로요. 위협을 줘야 하는 악역은 익숙해져선 곤란함에도 그는 이 애매한 포지션을 끝까지 유지하여 작품에 색다른 재미를 불어넣습니다. 그리고 종래엔 결국 그도 시대의 한 사람이구나라고 여겨지며 춘삼과 겹쳐지는 일면을 보이죠.


이는 결국 김두한, 이정재라는 실존 역사 인물의 행적을 작중에 묘사하면서도 그들이 보인 행보에 너무 커다란 창작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제한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김춘삼과 발가락은 본작에서 사실상 창작 캐릭터에 해당하는데, 이들이 실존 역사 인물을 제치고 여기저기서 맹활약하고 역사의 흐름을 건드려버리면 이야기의 흥미도 떨어지고 실존감도 낮아지는 문제를 낳을거라고 본 거죠. (...이때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이실존인물의 주변에 위치한 창작캐릭터라는 독특한 포지션이 결국 독특한 캐릭터성으로 이어진 겁니다.


아마 제작자들에게 이러한 캐릭터를 다시 만들어보라면 다시 만들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배우 허준호의 호연도 호연이지만, 차인표가 맡은 김춘삼과의 관계에서 불거지는 독특한 분위기, 뭐 하나 딱 짚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는 시대상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지며 생겨난 균형미에서 불거진 캐릭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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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사실


상당히 피곤한 일입니다. 수십년이나 지속되어 온 콘텐츠를 파악하려 하는 것 말이죠.


가장 쉬운 게 영화를 보는 것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비교적 제한된 시간 내에 캐릭터의 기원과 대체적인 설정을 설명해주거든요. 하지만 이러한 영상화된 매체는 원작에 일정 수준 이상의 각색이 되어져 있고, 구현되는 소재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원작의 원래 색체 그대로를 파악할 수 있는 매체로 삼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최소한의 방향성, 등장하는 매체의 여러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이어져온 대략적인 관계도를 파악한다는 것이, 사실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 발매되는 작품들은 이미 최초의 방향성과 어느 정도 달라져 버린 경우가 많고, 여러 시리즈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전체를 파악하기에도 그리 적합치 않습니다.


그 가운데 비교적 적은 시간을 들여서 매체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원작에 충실한 매체들이 하나 둘씩 존재하는데, 스파이더맨의 경우엔 94년 제작되었던 스파이더맨 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이걸 보면 과장 하나 안보태고 "전부 다는 몰라도 대충은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는 거죠.


유달리 자주 추천되는 것도, 개인이라는 포지션 하에서, 마블의 넓은 세계관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판타스틱4+엑스맨+어벤져스+블랙캣+리자드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니.


실제로 다음 달 개봉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세번째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스파이더맨은, 이미 영화상에서 두번이나 다루어진 탄생기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기존의 영화들과 달리 10대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졌기 때문에 보다 원작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여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 마블 사이트에서 94년판 애니메이션을 무료로 전편 공개한 전적이 있기도 하니, 기회가 되신다면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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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94년


제작된 스파이더맨 TV시리즈에서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피터의 몸속에 있는 거미 인자가 활성화되자, 팔의 갯수가 늘어나는 등 외견상의 변화로 인해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하게 되어 버립니다. 결국 피터는 X맨의 조언을 얻기 위해 프로페서 X와 만나게 되는데, 피터의 고백에 대해 한 한 엑스맨이 그런 말을 합니다.


"별 문제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 그냥 살아라." 라고요. 그러자 피터는


"내가 날 때부터 괴물인 너희와 똑같은 줄 아느냐. 우리는 다르다."라고 답했죠.


이는 당시의 제게 굉장히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직 유전인자에 돌연변이 인자가 있어 자연스럽게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뮤턴트나, 방사능에 오염된 거미나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혈청 등으로 인해 슈퍼 파워를 얻은 이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니.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비단 저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주장을 다른 사람도 아닌 주인공이 했으니 말이죠. 그랬기에 이 장면은 차별이라는 것이 가지는 위험성과 무논리성을 너무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뮤턴트임을 자랑스러워하라 교육받은 엑스맨에게, 괴물이 되기 싫다며 엑스맨을 부정한 피터의 모습은 여러모로 복잡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들에게 선택의 기회는 제시되지 않았었거든요. 그리고 그 선천성과 선택의 기회는 영화 엑스맨과 tas엑스맨의 중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퀵실버와 스칼렛 위치가 이미 어벤져스에 합류했고, 엑스맨과 긴밀한 관계인 스파이더맨 역시 시빌워에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거 "뮤턴트"라는 표현을 영화 내에서 쓰지 못하도록 협의한 사실이 다시금 재조명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이러한 능력자들에 대한 설정을 원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축할 필요성이 생겨났는데, 그게 바로 인휴먼스 개념의 확대였습니다. 뮤턴트 등을 인휴먼스에 합산시키고, 후천적인 능력자들과 그들을 구분하여 차별받는 능력자라는 틀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실상 뮤턴트를 대체한 것이죠.


이번엔 엑스맨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봅시다. 사실 인휴먼이나 개조인간이나 뮤턴트 각자의 개념이 전혀 다르지만, 사실 드러난 단면만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는 게 사실입니다. 자연스레 엑스맨 시리즈는 이러한 능력자의 각성을 2차성징으로 인한 변화와 결부시키며, 소수자로 나타냈습니다. 전자에 비해선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엑스맨 본연의 정서와는 훨씬 부합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이 작품에서 이전까진 평범했지만 어느 순간 각성하게 된 능력자들이 적지 않고, 아예 특정한 사고로 뮤턴트가 되는 경우 역시 존재했습니다. 선천적이냐, 아니냐는 엑스맨 세계에 있어서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본인의 선택일 뿐.


영화는 영화, 원작은 원작이라는 입장이지만 데드풀의 콜라보는 정말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번에 개봉한 영화 데드풀은 캡틴 아메리카나 판타스틱4류의 강화인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콜로서스 등이 나선 걸 생각해보면 뮤턴트인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인체개조가 아니라 뮤턴트 인자가 발휘하기 쉬운 조치였다고 치고 넘어가도 그리 무리는 없을 겁니다. 사실 원작에서도 데드풀은 뮤턴트는 아니었죠. ...곰곰히 생각해보면 엑스맨 시리즈에서도 뮤턴트라 확신할만한 요소가 적기도 했습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뿐이었죠.


하지만 이게 중요한가 싶습니다. 세계관을 압도적으로 넓혀가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달리, 본작은. 그리고 엑스맨 시리즈는 이미 뮤턴트만으로 하나의 세계관을 충실하게 구축해놓은 상태잖아요? 여기에 판타스틱4를 끼얹니 마니 하고 있지만, 이미 몇 편의 엑스맨 영화는 고전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전개하는 사건 하나하나마다의 기원이 다른 MCU와 달리, 이쪽은 여유가 있다는 거죠.


실제로 중요한 건 어떻게 태어났느냐, 어떻게 능력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느냐라는 것을 본 작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그만의 방식으로 한 데드풀의 행동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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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여러


차례의 논란을 앓으면서 그 화제성과 인기를 서서히 잃어가고, 이젠 출연하는 아이돌의 팬들만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 결혼했어요'지만, 이 프로그램은 방영 시작 이후 커다란 화제를 일으키며 인기 프로그램으로 등극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의 위기를 타개해내며 방영 9년차에 접어든 장수 프로그램입니다.


사실상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차용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케이블에서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고, 본 프로그램 출신의 방송인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하기도 하는 등의 면을 생각해보면, 사실 마냥 무시받을 만한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습니다. 지금은 따로 연인을 만나고 있고,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 조권과 가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죠.


지지부진해진다는 위기의 우결을 구해내고, 사실상 이후 우결의 방향성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아담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브아걸의 멤버인 제아가 이 프로그램을 애청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결은 시즌1이 사실상의 완성형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렉스-신애로 대표되는 판타지 부부와 정형돈-사오리로 대변되는 현실 부부, 신세대 부부의 상징이기도 했던 크라운제이와 서인영, 동네 오빠 평범 노선의 앤디와 솔비는 '결혼생활'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며 흥미를 일으켰습니다. 알렉스와 서인영 등은 아직까지도 당시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요. 심지어 정형돈-사오리 커플은 이후로도 다시 없을 '이혼'이라는 전력을 달며 프로그램의 '리얼한 듯한 측면'을 부각시켰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출연진들을 통해 화제성과 재미를 담보하려 했죠.


문제는 프로그램 외적인 측면에서 불거졌습니다. 우결 출연당시 따로 사귀는 상대가 있다거나 하는 일들이 드러난 것도 타격이 컸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은 출연을 종료한 출연진들의 외적 발언이었습니다. '사실 우결에서 함께 했던 이는 내 타입이 아니다(신애. 이미 결혼할 배우자가 있었죠)'나 '드라마에 촬영하려 우결에서 하차한 상대배우에게 당신 커플을 지지했던 이들이 불만을 토로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정신차려라. 현실로 돌아와라'라고 말하는 출연진까지 있었습니다.(황보. 실제로 두 사람을 지지하는 이들이 넷상에서 상당히 많이 난장을 피우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실재상에 발생하는 피해를 고려해도 진행자가 당황해서 수습할 정도로 이 발언들은 '가상현실 부부생활'이라는 콘셉트에 치명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가짜인 거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짜겠지."라는 최소한의 전제조차 부숴버리는 것들이었거든요. 


 두 사람이 함께 부른 곡으로 활동하기도 했었죠.


이러한 현실성의 붕괴에 제작진은 초강수를 두게 됩니다. 김용준-황정음이라는 실제 연인관계의 커플을 투입한 것이죠. 이는 우결에 안정을 불러왔지만, '오래된 커플 특유의 진부함'과 '현실과 차이가 나는 연출된 상황'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분량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조권과 가인이라는 커플이 투입되게 됩니다.


사실 아담커플은 결코 우결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혁명적인 조합은 아닙니다. 크라운제이와 서인영-황보와 김현중의 계보를 잇는 센 여자와 소년의 엉뚱한 매력을 지닌 남자의 만남이거든요.


하지만 조권 가인 커플은 상기의 커플과 다른 차별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바로 '풋풋함'이었죠. "왜 내 첫키스를 물어봐! 너는 뽀뽀 안했냐!" "나는 뽀뽀 안 했어!" "자랑이다!"라는 말다툼은 이전의 커플에게선 쉽게 보기 힘든 지극히 유치한 것이었지만, '현실'에 찌들지 않은 초짜 연인들의 모습을 충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초창기 우결의 그것과 합치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얘들 진짜 사귈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시청자들이 갖게 하여 프로그램에 보다 몰입해 볼 수 있게 만든 것이었죠.


이 커플은 단순히 프로그램 내에서만 쓰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외적인 프로젝트나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그 인지도나 파급력을 폭발적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아이유와 임슬옹이 부른 잔소리가 사실 이 두사람이 부를 예정이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죠.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출연하였으면서도 이 커플은 계속해서 '다음'이 기대되는 커플이었습니다. 사실상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다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예. 그렇습니다. 우리'결혼'했어요가 아니라 우리 '연애'했어요라는 낮은 한계가 (아담 커플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선) '현실'이라는 틀에 결국 발목이 잡혀 버린 셈이죠.


 당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이젠 연인까지 공개한 사람이 있는데도 여전히 아담커플로 불립니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의 조합과 같은 파급력을 지닌 우결 출신 커플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당장 이들과 동시기에 출연했던 닉쿤-빅토리아, 서현-정용화 커플은 아담 커플과의 관계도를 강하게 형성하기 위해 섭외한 인상이 강했죠.


실제로 아담 커플 이전이나 이후 이들보다 더욱 인기가 있었던 출연진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라는 포맷하에서 이들 이상으로 활약한 존재들은 없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물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는 관계라는 걸 입증한 것이죠. 이 관계는 말처럼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입체적인 캐릭터 사이에서 비롯되는 미묘한 긴장감을 통해 확장되거든요.


실제로 이후의 아이돌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재편한 것으로 평가받는 아담 커플이지만 이 두 사람은 정형의 아이돌과는 차별화되는 면이 강했습니다. 깝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비호감으로 전락하지 않을 정도로 예의있고 수줍음을 갖고 있었던 조권. 그는 그룹의 리더이자 8년이라는 연습생 생활을 거친 존재였습니다. 어리버리하고 툴툴대고 난리를 피우면서도 특정한 측면에선 책임감을 보여주며 입체적인 성격을 형성하였습니다. 가인은 실력파 그룹의 막내이자 밀어주는 멤버였지만 다른 그룹에선 비슷한 연령대였고 브아걸만의 센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귀여우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고, 세속적이면서도 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연상녀의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양자의 입체적인 캐릭터의 조합은- 솔직히 이후 우결의 행보를 보자면 소 뒷걸음치다 쥐잡은 격처럼 느껴지지만, 여하튼 특출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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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최근


크크섬의 비밀을 복습하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위상이 하늘과 땅처럼 벌어져 버려, 제작진이 미쳐 후속시즌을 만들고 싶어졌다 하더라도 불가능해져 버린 작품이지만 말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미완으로 끝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방영 중에도 적잖게 설정구멍들이 제기되었었고, 아무리 시트콤이라도 최소한의 기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며 비판받았던 작품군이기도 하거든요.


크크섬의 이러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가 바로 캐릭터 '시후'였습니다. 배우 김시후가 연기한 이 캐릭터가 문제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①너무 편의주의적이고, ②작위적이고, ③수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저 곰은 뭐죠?


이 캐릭터는 설정부터 '미스터리계열의 미소년'으로 잡혀있는 캐릭터입니다. 시작에서부터 다른 캐릭터들의 관계를 한 눈에 파악하고, 정의 내리며, 시청자들에게 작중의 포인트를 전달합니다. 예. 전형적인 진행자형 캐릭터죠.


이러한 진행자형 캐릭터는 전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 중심을 가지며, 시청자가 몰입해볼 수 있는 캐릭터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진행자 캐릭터의 정형이 '시끄러운 수다장이지만 본인의 이야기는 많이 가지지 못하는 계열'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후는 전혀 그러한 성향의 캐릭터가 아니죠. 그는 초반 극을 이끄는 미스터리의 중심이었으며, 각 캐릭터에 대해 이런 저런 딴죽을 걸어댔습니다. 그게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아니었죠. 결과적으로 캐릭터에 몰입하는 과정에 하나하나마다 개입하며 방해요소로 작용하였죠. 애초에 진행자 역할을 하지 않았거나, 미스터리의 중심이 되지 않았다면 훨씬 나았겠습니다만.


거기다 배우의 문제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배우로 활동하는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쉽진 않지만 그리 몰입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다른 영화 일부에선 괜찮은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으니, 애초 캐릭터 자체에 문제가 있고 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봐야 하는 게 더 정확한 평이겠죠. 만약 배우의 캐릭터 해석이 탁월해 저런 문제가 있는 캐릭터도 설득력있게 전달했다면 좀 더 나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는 못했죠.


캐릭터 전개과정에서의 문제도 있습니다. 이 캐릭터는 '만악의 근원'까지는 아니어도 '방관자형 악역형' 캐릭터에는 가까운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최초 문제의 해답을 쥐고 있었을 뿐더러 이후의 침묵과 방관으로 상황을 끊임없이 악화시켜 더욱 큰 갈등을 초래하였죠. 사실상 몰매를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캐릭터가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런 저런 상황에 끼어들고, 남탓을 하는 건 아무리 가볍게 지켜보는 시트콤 포맷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죠. 이야기에 몰입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 2013. 이말년 서유기. 이말년. 네이버 웹툰 all rights reserved. 링크


캐릭터의 구성 자체도 문제입니다. 이 캐릭터 대체 못하는 게 뭐죠? 못만드는 게 없고, 못하는 것도 없으며, 알아채지 못하는 것도 없습니다. 사실상 이야기 전개를 위한 작가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그런 주제에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억지를 수시로 부리며 부정을 위한 부정을 행합니다. 채민영도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이쪽은 최소한의 캐릭터의 기초에 관한 일관성이라도 갖추고 있지, 시후는 그조차 존재하지 않아 당혹스러움을 넘어 황당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건 캐릭터의 완성도를 떠나 최소한의 설득력에 대한 문제잖아요.


본래 존재하는 극의 문제점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여기서 시후라는 캐릭터까지 얽히며 심화되어 버린 겁니다. 애초 이 캐릭터가 존재치 않고 개개 캐릭터의 구성과 연출로 승부를 봤다면 훨씬 완성도 높은 극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어차피 시즌2도 안나오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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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캐릭터의


구성에 있어 입체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에 해당합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판에 박은 듯한 스테레오 타입으로의 묘사가 비판받는 것도,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그리 현실적이지도, 설득력 있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일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면이 있는 반면, 나쁜 면도 있습니다. 매체가 그에게 주어진 상징도 있지만, 그런 상징이나 기능과 별개로 해당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에는 분명한 입체성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오늘 다룰 캐릭터는 전형적인 캐릭터에서 시작하여, 그만의 분명한 입체성을 형성한 캐릭터에 해당합니다. 바로 검빵맨의 주인공 추무달 말이죠.


 검빵맨 오리지널과 신장판 1권 표지


최미르가 90년대 말 연재했던 만화 검빵맨은 오늘 날 흔히 이야기하는 차원이동물입니다. 중원이라는 이름의 무협세계에 살던 이들이 각기 서부시대, 중세 판타지 시대, 근대 2차세계대전에 떨어지며 펼쳐지는 요절복통 코미디죠. ...참 정겨운 표현이네요. 펼쳐지는 요절복통 코미디.


여하튼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기반에 깔고 있으면서도 이 작품은 동시에 다양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무협이라는 상황을 형성하여 액션 만화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는 수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추무달은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와 성향에 더없이 어울리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죠.


사실 검빵맨의 주인공 추무달은 80년대 중후반에서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전형적인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최강의 실력을 갖췄지만 경박하고, 끝없이 가볍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진중한 무언가가 들어찬 인물이죠. 당장 그 비슷한 시기에 연재되었던 열혈강호의 한비광과 추무달을 비교해보세요. 뭔가 상통하는 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그 때 그 주인공의 경향의 대표주자가 바로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입니다.


하지만 당대 그렇게도 많은 캐릭터 가운데 추무달이 유독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시대라는 이름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어떻게든 버티려 한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서부, 중세 판타지 시대에서 추무달은 단련한 자신의 신체와 내공으로 적과 싸워 이겨냅니다. 이에 대해 독자는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을 무공으로 무찌르는 주인공을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과도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죠. 하지만 역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불리는 2차세계대전 시점에 와버린 추무달 일행은 무차별로 가해지는 과학이라는 폭격 앞에서 경악하고, 절망에 가까운 감정에 빠지고 맙니다. 동시에 독자 역시 명백한 한계에 할 말을 잃게 되죠.


이제까지 까불며 천하제일 유아독존임을 자처하던 추무달도 그 시점에 되어 약간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바로 직전 에피소드까지 소중하게 여기던 물건도 내팽개치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삭이는 기색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라는 측면에 맞추면 중세편이 가장 흥미로웠지만, 작품성이나 캐릭터의 매력이라는 측면에서는 2차대전편이 더 인상깊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단순한 한계의 자각과 굴복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시대에 맞서며 그 무게에 꺾이지 않고 버티기 위해 준비를 했던 것이죠. 이러한 추무달의 태도에 대해 한 등장인물은 "전 무림이 나서서 잡으려 했던 악동이 자존심이 상했다"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건 아주 인상깊은 구도였습니다. 시대와 개인, 역사와 인간을 묶으면서도 대립시키는 기가 막히는 연출이었죠. 동시에 추무달은 단순히 경박하면서도 진중한 캐릭터를 넘어, 시대의 무게에 힘겨워하면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캐릭터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새삼스레 검빵맨의 신장판을 구매하지 못한 게 안타까운 건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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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지난 주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이승환이 첫번째 게스트로 출연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 주 라디오 스타에도 출연하였죠. 예. 그렇습니다. 11집 앨범 'Fall to Fly 前'이 지난 달 28일 발매되었기 때문이죠. 10집 발매 이후 더 이상 음반을 발매하지 않겠다 이야기했던 이승환이기에 이번의 앨범발매는 더욱 반갑습니다. 특히 오랜만에 음원 줄세우기를 성공하였으니 본인에게도 굉장히 특별한 것으로 기억될 테죠.


그런데 오랜 만에 모습을 보인 이승환이 라디오 스타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우~ 난 어린 왕자 싫어."


 방년 50세가 된 이승환은 스스로 실버보험 대상자라며 웃음을 주곤 합니다. 가수 스스로 앨범을 만든 최초의 뮤지션이라는 의미에서 불리기 시작했던, 젊은 뮤지션에 대한 별명 어린왕자는 이제 그의 동안을 칭송하는 의미에서 불리기도 합니다.


사실 어린왕자라는 별명은 이승환에게 오랜기간 이어져온 것에 해당했습니다. 데뷔한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들어왔으니까 벌써 25년동안이나 불린 별명이네요. 하지만 이승환은 이 별명으로 불릴 때부터 그를 싫어했다 꾸준히 이야기해왔습니다.


바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속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실제로 이승환은 그 자신의 음악적 기저를 록으로 생각하고 일정 시점 이후 록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만, 대중은 언제나 그를 천일 동안을 부른 어린왕자 이승환으로 기억했습니다. 그의 음악적 성취에 대해 일정한 시기를 기점으로 평이 갈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꾸준히 록음악을 자신의 공연에 접목시키는 등의 노력을 선보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만의 색체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며 준수한 퀄리티의 곡들을 만들어낸 점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아쉬운 상황이죠.


 스틸 하트의 쉬즈곤이야 하나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곡입니다만, 사실 정작 처음 앨범을 발표할 때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 국가에서 히트친 이래로 그들의 대표곡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죠. 혹은 북미의 메탈 밴드의 서정적인 곡 하나가 국내에서 히트하여 발라드 밴드로 인지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가 하고픈 음악에 매달렸던 이승환이기에, 대중의 기호에 따라 자신이 하고픈 음악의 장르를 제한받고 싶지 않아 했던 겁니다. 대중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든지 간에 자신의 음악생활을 이어나가가는 것과는 무관하다 생각했다면, 이에 대해 일종의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겠죠.


이처럼 결국 아티스트의 정체성이라는 것은 창작자가 남긴 작품 전체로 기억되는 것만은 아닌 셈입니다. 여기에는 아티스트가 남긴 작품, 그리고 그가 그 작품에 이르기 까지 시도하였던 것들에 대한 모든 것들은 물론, 대중이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도 포함되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는 작가 스스로 생각하는 대표작이, 대중이 가장 사랑한 그의 작품과 합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음악적 역량이 계속해서 무르익으며 어느 순간 절정부에 달한 이승환이 결국 "나는 천일동안 이후 내리막만 탔다" 라고 말한 것 처럼요.


 이승환이나 신해철처럼 자기만의 분명한 음악세계를 형성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뮤지션에게 있어 일정한 시기별로 팬층이 갈리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저는 크게 분류하면 그대가 그대이나 변해가는 그대로 대표되는 발라드 시절의 팬이라 볼 수 있지만, 그의 록편곡도 꽤나 좋아하는 편입니다.


캐릭터는 정체성을 한 마디로 규정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거듭하고 자기만의 색체를 가지고픈 뮤지션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될 수 있죠. 하물며 자신이 하고픈 보여주고픈 이미지와 다른 캐릭터가 형성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굴레를 짊어 졌다는 소리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중이 그에게 보다 분명한 인식을 갖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를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보고 있다는 소리기도 하겠죠. 창작자에게 있어 자기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 평생의 과정임을 생각해보면, 어쨌든 하나의 성을 구축한 것만은 분명하니까요.


실제로 이승환은 이러한 간극에 대해 조금은 줄여보겠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과연 어린왕자이기를 거부한 뮤지션 이승환은 최후의 최후 대중에게 어떻게 기억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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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얼마 전


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져가 개봉하게 되면서, 케이블 영화채널들이 이와 관련된 영화 시리즈들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당장 어제만해도 에릭 바나가 주연한 헐크가 방영되고 있더군요.


이미 몇번이고 본 영화였기에, 그냥 틀어놓고 제 할일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요즘 돈 쓸 데가 많아서 윈터솔져는 극장에서 못보겠군."


...이 아니라, "헐크는 참으로 독특한 캐릭터구나!" 라는 것을요.


 사실 본래 헐크는 회색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쇄상의 실수로 초록색이 되었고, 그것이 인기를 얻자 초록색으로 굳어졌다고 하죠. 실제로 초록색이 주는 형광적 이미지가 방사능을 떠올리게 해서인지, 이젠 초록색 아닌 헐크를 떠올리기도 힘들어 졌습니다. ...뭐 빨간 헐크나 뭐나 이것저것 있긴 합니다만.


60년대 잭커비와 스탠리에 의해 탄생한 캐릭터로 알려진 헐크는, 슈퍼맨으로 대표되는 골든 에이지를 넘어 실버 에이지를 대표하는 마블의 핵심 캐릭터 가운데 하나입니다. 골든 에이지가 전시상황이던 당시 현대의 울분을 풀어주는 역할이 강했다면, 이쪽은 오리지널 히어로 콘텐츠로서의 재미를 강조하던 성향이 강해지던 시절이었죠.


그로인해 기존의 히어로 캐릭터들과 차별화되는 특성으로 무장한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다양한 상징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은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존재들로 거듭났습니다. 헐크와 스파이더맨, X맨과 판타스틱4 등이 대표적이죠.


헐크는 이성과 본능의 대립을 철저하게 이미지화한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가 이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의 상징으로 십분 활용되는데엔 이성과 본능의 대립만큼 흥미로운 대립도 또 없기 때문일 겁니다.


 언제나 대비를 좋아하는 우리지만, 그 무엇보다도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성과 본능의 대립일 것입니다. 누구나 매일같이 고민하면서 한 쪽이 때론 이기고, 다른 한 족은 패배하는 경험을 반복하기 때문이죠.


뛰어난 과학자이며 동시에 감마선에 있어선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권위를 가진 브루스 배너와, 단순 육체능력이라면 모든 히어로 가운데서도 최강으로 분류되는 헐크는 이러한 대립을 한층 심화시킵니다. 브루스의 사색적인 성격이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헐크가 가진 본능의 폭발력이 더욱 강해진달까요? 화가 나면 날 수록 한계가 없이 강해진다는 헐크의 설정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고자 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반작용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알기 쉬운 캐릭터성 때문인지, 헐크는 비교적 자주 영상화된 작품군에 해당합니다. 한계가 없이 강해진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헐크가 가진 능력은 육체적인 것에 국한되어 묘사하기 수월하기도 하고요. 21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등의 작품이 CG의 힘을 빌어 탄생된 것에 비하면 헐크는 이미 70년대에도 실사 영상으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끈 바 있습니다.


 원더우먼과 함께 국내에 방영되어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대표적인 영상물이 드라마 인크레더블 헐크임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코미디언 심형래가 이걸 가지고 90년대 중후반까지 관련 개그를 쳤었으니... 레슬링 선수 헐크 호건의 이름이 헐크에서 따온 것도 유명하고, 그의 적으로 활약했던 더락이 오바마를 패러디한 코너에서 헐크의 묘사를 차용-빈약한 사람이 열받으면 다혈질 근육인이 된다든지 하는-하여 연기했던 것도 유명하죠.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통해 이성을 강조한 이래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성적이며 정제된 사회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인간사의 발전에 있어 이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이성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산업을 통해 이윽고 세계는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발전하는 이성 이상의 본능의 반발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성이 인간사에 미친 영향이 다대하다면, 본능 역시 인간사에 끼친 영향이 다대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마블은 인간의 이성을 일종의 시스템으로, 본능을 생명이나 자연이 가진 불확정성으로 비유하곤 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다양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며 활약하는 히어로 단체에 있어 헐크의 존재는 특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으며, 복종하지 않고, 자기가 마음에 안드는 적을 때려부수는 헐크는 누구보다 강력한 힘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요소이기도 했던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가운데 하나인 리드 리처드, 그리고 가장 강력한 마법사이기도 한 닥터 스트레인지를 한 번에 물리치는 헐크. 물론 월드워헐크는 전체 마블 이야기의 흐름을 포용할 정도의 작품으로 평가되지는 못합니다. "이게 왠 헐크 원맨쇼야?"하는 감상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고요.


실제로 월드워헐크는 헐크에 대한 이러한 히어로들의 위험의식을 작품화한 대표적인 매체에 해당합니다. 헐크를 고립시키고, 결국 그와 싸워야 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헐크는 어벤져스 트레일러에서 브루스 배너 역을 맡았던 마크 러팔로의 대사대로, 일종의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누구보다 강하지만, 그 힘이 어디를 향할 지 확신할 수 없는 그런.


이는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영웅을 그리던 이전의 히어로와 달리, 늘 고민하고 망설이며 성장하는 스파이더맨과 같이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만의 매력을 뽐내는 존재로 헐크가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영웅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웅으로는 보기 힘든 헐크의 오리지널 영화가 다시 한 번 나온다면 어떠한 내용일지 궁금해지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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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처음


포켓몬스터를 닌텐도로 플레이할 당시 참으로 재밌게 즐긴 게임이 있었습니다. 바로 포켓몬스터 레드였죠. 아직 국내에 포켓몬스터가 정식으로 방영되기 이전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알려져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신기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지역에 따라선 포켓몬보다 디지몬이 더 강세인 곳도 있었고요. 개인적으로 저도 디지몬파였습니다만.


여하튼 포켓몬스터를 재밌게 즐기던 저에게 한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포켓몬스터의 주인공 레드는 플레이어와의 일체화를 위해 어떠한 대사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라이벌로 등장한 그린은 여러모로 밉살맞은 말을 톡톡 던지며 그만의 존재감을 뽐냈습니다.


...물론 그 대사를 이해한 것은 한참 후의 이야기였지만 말이죠.


 시리즈 전통의 주인공이 레드라면, 시리즈 전통의 라이벌은 그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드니 그린이니 하는 이름이 정착된 것은 오리지널 버전의 이후 버전이 등장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의 디폴트네임을 버전과 맞아떨어지게 설정한 덕에 정식명칭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물론 한국의 경우는 정발된 애니메이션판 이름인 지우와 바람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포켓몬스터라는 게임 자체는 스토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임입니다. 주인공이 포켓몬을 받고 라이벌과 함께 모험을 떠난 후, 포켓몬을 이용해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단체를 물리치고, 이윽고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는 이야기로만 진행되기 때문이죠. 비교적 스토리에 많은 변주를 주었다 이야기되었던 5세대 이르러서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린은 이러한 정형에 최초로 위치한 캐릭터입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포켓몬스터들이 나왔습니다만, 아직도 1세대 포켓몬스터들이 가진 위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1세대 포켓몬을 갖추지 못한 그린의 입지가 불안하다는 것도 결코 허튼 소리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린은 최초의 라이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다소 밉살스러운 성격이었지만, 그에 수반한 능력을 보여주었죠. 당시 그린이 가졌던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 덕에 라이벌이 주인공의 포켓몬에 대해 유리한 속성의 포켓몬을 고르는 야비한 전통이 시작된 거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죠. ...반대로 그러한 행동을 해야 했기에 그러한 성격으로 설정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린은 여타의 포켓몬 시리즈 속 라이벌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집니다. 그는 주인공의 라이벌이라는 포지션에서 시작해서, 종래엔 주인공의 목표로 그 역할을 바꾸었기 때문이죠. 바로 세계관 최강자인 챔피언으로 등극하여 주인공의 도전을 받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죠.


나름대로 충격적인 등장이라면 등장입니다. 실제로 당시의 게임에 등장했던 챔피언 캐릭터들이 세계관 최강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기도 하였기에, 그린의 입지는 더욱 올라갔습니다.


 그린은 최강의 트레이너 가운데 한 사람인 목호를 이겨 챔피언이 되었고, 여타의 트레이너와 대접을 달리하는 레드의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특별한 포지션에 위치해 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정체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모호해 지게 되었습니다. 분명 중요한 존재이며 게임 내에서도 레드에 준할 정도로 특별한 대우를 받지만, 초창기 시리즈의 라이벌이라는 한계 때문에 가해지는 변화나 개성도 대동소이한 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레드의 포지션에 대항하여 성립된 지위였기에, 정작 레드의 포지션이 확립된 이후엔 중복되던 부분은 모두 몰수당하다시피하였습니다.


1세대 트레이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스타팅 포켓몬을 모두 몰수당하는 상황에 닥쳐버린 것이죠. 레드가 전설의 트레이너로 등극하게 되면서, 그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그린의 입지 역시 간접적으로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던 오리지널 포켓몬스터의 요소가 오직 레드라는 하나의 캐릭터에 종속되다 시피하면서 그린은 그 남은 부위만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날 포켓몬스터 스폐셜 등에도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아트웍입니다.


결과적으로 1세대 트레이너라는 상징성이 대폭 감소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겁니다.


이는 여타의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인 일입니다. 시간이 반복되면서 주인공과 그 라이벌의 포지션은 점진적으로 상승하기 마련입니다만, 결국 주가 될 수 없는 라이벌 캐릭터는 주인공과의 대비 과정을 이루던 핵심적인 요소가 대개 주인공에 흡수당하게 되며 별개의 정체성을 형성해야만 하는 상황에 닥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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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다양한


판권이 얽히고 설킨 슈퍼로봇대전은 거대로봇팬들에게 있어 일종의 성전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고 있습니다. 엄연히 원작과 별개의 제작사가 만든 별개의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로봇팬들 사이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이러한 슈퍼로봇대전이기에 재밌는 일들도 많습니다. 다양한 작품을 믹스하여 새로운 스토리로 재구성하기에 때론 원작의 일부 요소가 뒤바뀌기도 하는데 원작에선 죽었던 캐릭터의 미래 모습을 등장시키는가하면, 때론 설정상에나 존재하는 로봇의 강화형을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재밌는 것을 꼽으라면, 저는 단연 판권과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가 있을 겁니다. 오늘 소개할 마사키 안도라는 캐릭터 역시, 이러한 슈퍼로봇대전의 복잡한 판권관계가 낳은 존재에 해당하니까요.


 마사키 안도와 그가 탑승하는 바람의 마장기신 사이바스타.


슈퍼로봇대전이란 게임 자체는 제각각의 설정을 가진 다양한 거대로봇들 가운데 누가 더 셀까하는 생각에서 촉발된 시리즈입니다. 마징가Z가 거대로봇물의 공식을 분명하게 확립한 이래로, 건담과 에반게리온 등으로 트렌드는 바뀌어 갔습니다만 그가 확립한 공식은 클리셰화되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면서 그들의 기저엔 공통적으로 향유하는 설정들이 존재하고 있죠. 결과적으로 거대로봇물이라는 장르가 형성되었고, 비슷한 소재를 활용하는 작품들도 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너무도 당연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공통점을 가지는 작품들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특히 나올 만한 메카닉 디자인은 다 나오지 않았나 하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관련 캐릭터 산업은 거대해질대로 거대해진 현재에 이르러선 더욱 민감한 사안이 되었고요.


 좌측은 기동전함 나데시코의 에스테바리스, 우측은 우주의기사테카맨 블레이드에 등장하는 솔테카맨. 제작년도도 기획의도도 다른 작품이지만 공통된 디자인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인간형, 그러면서 현대적 감각을 살린 방식으로 디자인하게 되면 종국에는 결국 동일한 미적감각으로 인해 비슷한 결과물로 귀결되기 마련이거든요. 물론 양자가 제작되고 관리되는 판권사가 반다이로 동일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이질적인 포지션을 가지는 것이 슈퍼로봇대전이라는 게임입니다. 엄연히 원작과 별개의 콘텐츠에 해당하지만, 슈퍼로봇대전은 기본적으로 원작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재구성하는 작품에 해당합니다. 자연스레 스토리와 소재 측면에서 표절과 관련된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심지어는 해당 요소를 게임 전체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차용할지라도 말이죠.


이는 슈퍼로봇대전이 가진 특수성에서 기인합니다. 앞서도 설명드렸듯 슈퍼로봇대전은 일종의 2차 창작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여러 로봇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반대로 게임을 통해 원작을 홍보할 수 있는 장으로 거듭났습니다. 게임은 다양한 로봇들을 모셔올 수 있어서 좋고,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원작을 홍보해서 좋은 일종의 윈윈이었죠.


문제는 매 작품마다 끼워넣는 게임 제작사 반프레스토의 오리지널 요소에 가해진 짙은 영향력을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입니다.


 건담으로 유명한 토미노 요시유키의 성전사 단바인은 건담과는 또 다른 그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의 널리 알려진 별명이 왜 붙여진지도...


1983년 제작되고 방영된 성전사 단바인은 오늘날 판타지 메카닉 물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세계로 날려온 평범한 소년 쇼우 자마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 로봇 파일럿이 되어 적과 싸운다는 내용으로 간략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세계 바이스톤웰에서 쇼우를 선택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가 높은 오라 파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바이스톤웰 태생의 사람들은 지상의 사람들에 비하 오라가 약하기 때문이죠. 그의 전투를 도와주는 참 하우는 일종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1991년 제작되고 발매된 2차슈퍼로봇대전의 반프레스토 최초의 오리지널 주인공 마사키 안도는 판타지 메카닉 물의 전형적인 주인공으로서 활약합니다. 라기아스로 소환된 그는 바람의 마장기신을 통해 세계의 위기를 헤쳐나가며 자신을 단련합니다. 라기아스의 사람들과는 달리 감정의 기복이 큰 지상인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죠. 그를 도와주는 고양이 쿠로와 시로는 마장기신 시리즈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역할입니다.


...예. 같죠. 단순히 클리셰의 뭉침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합니다. 세부적인 사항이 비슷하다 못해 동일하거든요. 하이퍼화나 정령빙의라던가 하는 파워업 설정에 지하세계로 묘사되는 이세계의 풍경과 분위기, 심지어는 주인공의 성격까지도 엇비슷하니까요.


 실제로 이러한 공통점을 노리고, 슈퍼로봇대전 알파 등에선 마사키가 단바인 관련 캐릭터와 함께 수련하여 비슷한 방식의 파워업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사실 성전사 단바인을 기저로 게임 스토리를 제작했다, 그 출연계약이 불발되자 그에 상응하는 오리지널 설정의 캐릭터들을 산입한 것으로 봐도 될 정도입니다. 슈퍼로봇대전의 최초의 오리지널 주인공의 등장의 이면에는 이러한 상황이 녹아있었던 거죠.


실제로 이후 슈퍼로봇대전은 여러 거대로봇물의 주역 기체들로부터 모티브를 따와 자사의 오리지널 로봇들로 재구성하여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차곡히 쌓이고 쌓여 결국 2002년 슈퍼로봇대전 OG라는 오리지널 제네레이션 시리즈의 재료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슈퍼로봇대전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세를 넓혀가면 넓혀갈 수록 심기가 불편해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해당 콘텐츠의 원형이 된 원작측이 그렇죠. 엄연히 표절과 오마주 그 사이에 있어 문제시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이전까지는 원작의 홍보도 되는 특정 게임 내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던 아류격 존재들이었기에 크게 문제시 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캐릭터를 자기들의 오리지널이라 주장하며 원작의 파이를 나누려 하고 있으니까요.


여러 작품을 짜집기 하여 만들어진 슈퍼로봇대전은 원작의 콘텐츠들이 가진 요소들을 상당수 가지고 있었고, 이는 곧 원작이 대체가능한 상품들로 전락해 버렸음을 의미했습니다.


 좌측은 슈퍼로봇대전의 로봇 계통 중에 하나인 휴케바인, 우측은 건담 크로스본 2입니다. 보시다시피 기본적인 디자인에서부터 색배색까지 굉장히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애초에 휴케바인은 애초에 건담 계열로 상정되어 디자인된 로봇으로 알려져 있죠. 결과적으로 너무나 닮은 생김새로 인해 휴케바인은 그 사용이 제한되어 버렸습니다.


흥미롭게도 위 건담의 사례와는 대조적으로 마사키 안도와 마장기신은 독립된 게임까지 나올 정도로 별다른 논란에 휩싸이지 않고 있습니다. 건담과 성전사 단바인이 같은 계열사에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처우가 이토록 다른 것은 결국 지금까지 문제시되는 것들이 소재나 설정이 아닌 로봇의 디자인 그 자체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소리겠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장기신과 마사키 안도의 태생은 특기할 만한 사항입니다. 사실상 표절- 정확하게는 자기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 속이려 하지는 않으니 도용-과 오마주 그 사이에서 비롯된 묘한 출생의 비밀을 가진 존재니까요. 원리와 원칙만으로 맺고 끊는 저작권만을 긍정하는 게 아니라, 탄탄한 틀 속에 유연하게 조율하여 확립하는 저작권의 새로운 일면을 보았달까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엄연히 현역인 건담 시리즈와 달리, 은퇴하다시피한 단바인 시리즈라 그런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점점 이야기와 함께 디자인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하는 건담 시리즈이니만큼 여백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에 비해, 단바인 시리즈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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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