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2017.09.14 04:35


 2000년


제니퍼 로페즈가 주연한 영화 더 셀은 연쇄살인마의 심상을 시각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아래 출발한 작품입니다. 2010년대 들어 벌어지는 강력범죄들은 타인을 이해의 대상이 아닌 종속과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에 대한 콘텐츠가 다시 한 번 크게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른 바 싸이코패스들에 대한 다각도로의 접근이 이뤄졌는데, 더 셀은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할만합니다. '살인마의 심상에 대한 시각화'는 필연적으로 살인마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것을 일반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해서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찌보자면 가장 영화다우면서도 힘든 길을 선택한 야심만만한 작품인 것이죠.


이 작품에서 캐서린 역을 맡은 제니퍼 로페즈는 심리학자로서 타인의 정신에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거나, 그들이 가진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 앞에 희생자를 어딘가에 감춰두고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연쇄살인마 칼이 나타납니다. FBI는 그녀에게 칼이 감춘 피해자의 정보를 요청하고, 희생자의 마지막 모습을 본 캐서린은 그 부탁을 받아들이고,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살인마의 의식 속으로 뛰어듭니다.


살인마의 정신세계가 그 세계로 돌입한 심리학자에게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영화는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부분 역시 큰 실착인데, 내내 제니퍼 로페즈에게 무슨 일이 생길것처럼 하더니 그 부분을 통채로 들어낸 채 갑자기 변해버린 모습만 보여줘 버립니다. 뽀뽀하다 갑자기 화면이 물레로 돌아가버리는 걸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사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선 그리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어린 시절 발생한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현재 악의로 행해지는 의사에 대한 상징을 무찌르고, 내면의 연약함을 포용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극히 전형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 정형성은 이 영화의 과감한 기획과 비주얼을 깎아먹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살인마의 기괴한 정신세계'가 이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어린 시절 상처받은 영혼'으로 뒤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작중 왕으로 자칭하는 살인마의 상징은 대립과 회유의 대상에서 퇴치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립니다. 물리칠 수 있는 적이 뭔가를 빼내어 와야 하는 물리쳐서는 안되는 적보다 훨씬 무섭지 않은 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영화의 대체적인 평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의 가장 큰 영향은 바로 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 겁니다.



제니퍼 로페즈의 팬들은 이 영화를 꽤나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이의 의식속을 돌아다니고, 종래엔 자신의 정신세계에 다른 이를 받아들이기에 그녀의 화려한 그러면서도 상징적인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비주얼. 이 세 글자면 충분하겠네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적진 않습니다. 비주얼도 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구역질 나기까지하는 살인마의 변태적 성욕과 살인행위를 지켜보고, 이내 들어간 그의 정신세계의 기괴함과 혐오스러움은 이내 익숙해지고, 관객의 숨을 졸라대는 듯한 그 휘황찬란하기까지하던 대비는 곧 수그러들어 버립니다. 쉽게 말하자면 관객의 거부감과 흥미를 자아내는 첫번째 파도가 가장 크고, 이후로 점차 줄어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해도 살인마의 정신세계를 비주얼로 그러내겠다는 야심은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여 한 편의 뮤지컬을 본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살인마의 여러 정체성이 서로를 피하거나 쫓는 장면은 너무 진부했지만, 살인마가 가진 트라우마가 심상에 어떻게 반영되었고, 또 어떻게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종교와 관련한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은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감탄하면서 보았는데, 그것을 캐서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해소해 내는 것은 영화가 하나의 분명한 줄기 아래 펼쳐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분명히 감각적인 영상이고, 기획도, 또한 그에 수반되는 비주얼적인 구성도 나쁘지는 않는데, 이야기적인 구성이나 고저차가 그리 능숙하지 못해 그 신선함이 순식간에 진부함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차라리 처음의 수위가 끝까지 유지되었다면, 살인마가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면, 살인마가 제니퍼 로페즈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처음의 수위 정도로 묘사했다면, 경찰 캐릭터가 정신에 뛰어든다는 이야기적인 반칙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이 영화의 장르를 스릴러로 보건, 호러로 보건 훨씬 고평가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9.09 05:12


 처음


M. 나이트 샤말란이 감독한 영화 싸인을 보았을 때 받았던 생각은 다른 게 아니라, "이거 예전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각본을 썼던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오마주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자는 외계인, 후자는 뱀파이어를 소재로 삼아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소 황당한 발상이라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를 보고나면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세부적으로 닮은 부분이 적잖다는 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두 영화는 전개상의 과정과 특성, 이야기의 발단부, 그리고 특유의 취향이 상당히 맞닿게 만들어져 있거든요.


싸인은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묘하게 저평가 받아왔는데, 이건 아예 클리셰되다시피한 우주전쟁의 틀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일 겁니다. 아예 우주전쟁을 리메이크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도 그 비판을 받았는데 심지어 세균도 아닌 물과 나무가 약점이었다라니... 당장 "수증기는 어떻게 할 건데"라는 반론이 튀어나오게 되는 겁니다.


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앞서. 주의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겠죠.


첫째.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둘째. 이 글은 올 여름 초 7월달에 쓰겠다 마음먹고 제목만 작성해뒀다 방치된 채 지금까지 흘러왔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해치우겠다는 마음을 먹고 휘갈겨 쓰는 것이니 여러모로 중구난방 어지러울 겁니다. 그래서 최대한 간략하게 써보고자 합니다. 흐름도 부자연스러울 테고요.






두 영화는 각기 '잃어버린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싸인에서는 멜 깁슨이 연기한 신부가,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는 하비 카이텔이 신부 역할을 담당하고 있죠. 이들은 각기 배우자의 죽음을 계기로 신에 대한 믿음을 잃고 성직을 포기합니다만, 영화상의 시련을 계기로 그 믿음을 되살립니다. 전자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후자는 사이드 스토리로 전개됩니다만 양자가 전개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점은 배제할 수 없죠.


또한 그를 위해 가족을 주된 요소로 내세웠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부서져 버린 가족, 그것을 지키기 위한 가장, 하지만 외부에서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가해지는 부담까지. 그리고 이 가족은 잃어버린 믿음을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뭣보다 이 두 영화는 바로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행동은 앞서지만 뭔가 부족해보이는 동생과, 성숙하게 대처하는 듯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위기를 몰고오는 것 그리고 가장 크게 결핍되어 불안정한 것은 다름 아닌 형이라는 점이 닮았습니다. 영화는 이 형제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측면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예컨데 싸인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동생을 '아들의 의부'정도 되는 위치로 본다면 영화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전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기한 리차드 게코를 주의집중장애를 앓고 있는 변태성욕자가 아니라 형에 의해 그것이 익숙해진 인물이라면, 영화는 정 반대의 관점으로 읽히게 됩니다.


아이답지 않은 두 아이들이 영화 내에 실마리로 작용한다는 점도 같습니다. 이변을 일찌감치 알아차리는 클리셰 가운데서도 특기할 정도로 선지자적인 면이 강한 싸인에서의 아이들은 두 어른이 나아가야 할 바를 지정해주고, 도움을 요청하다 결국 세스 게코에게 감화되고 이윽고 그를 구원의 길 앞까지 이끌어내는 케이트는 지금까지 달려온 세스의 길을 관조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전개상의 특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두 영화는 각기 외계인, 흡혈귀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만, 정작 이 두 요소를 빼도 이야기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착각'이었다 말해도 범죄스릴러무비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고 있다 보이기도 하고요. 두 영화 모두 두 요소가 등장할 때 영화의 분위기가 급변하며 영화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구조적 방식을 취하는데, 이 부분도 꽤나 닮은 꼴입니다.


이외에도 창작자가 직접 영화에 모습을 드러낸다거나, 전혀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특유의 버릇을 들여 묘사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하지만 두 영화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결국 우리에게 일상적인 그 무엇인가가 다른 외부의 그 무엇인가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영화에서는 그것으로 나무와 물을 내세웠는데 말뚝과 성수는 비교적 뱀파이어물에서 자주 활용되어온 무기이기는 했지만, 아예 가구를 직접 뜯어 사용하거나 직접 축복하여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싸인이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가장 강한 의심이 든 것도, 과학적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 저 요소까지도 그대로 끌고 왔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입니다. 나무와 물을 무서워하는 외계의 침략자라니. 실제로 이 부분은 과학적으 말도되지 않고, 심지어 이야기적으로 현실성을 무너뜨리는 요소라고까지 비판받았던 바 있죠.


본 영화에서 게코 형제의 모습은 사실 꽤나 인상적입니다. 동생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늘 그런 동생에게 휘둘리는 형의 모습은 여러차례 창작물에서 활용되어 왔던 것이고, 영화 내에서의 마무리는 미처 이러한 형제의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tv시리즈에서 전개가 그렇게 되는 거겠죠.


물론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설사 제가 말한 것처럼 오마주한 것이라 하더라도 두 이야기가 가리키는 지향점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재미와 특성에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서로의 정체성을 해치지도 않고요. 하지만 저러한 유사점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창작자의 능력과 그것을 장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뭐. 요컨데 연습해야겠다 그거죠.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9.02 08:01


 장산범의


관객이 110만을 넘어섰습니다. 올해 기대작들이라 평가받았던 여러 작품들이 독점 논란을 앓으면서도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 장산범의 이러한 성과는 꽤나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물론 아직 소위 말하는 본전치기, 즉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데에는 다소 모자란 상황이기는하지만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장산범이라는 소재 자체가 이미 상당히 힘을 잃었음을 감안한다면 괄목할만 성과를 거두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장산범의 감독 허정은 지난 2013년 숨바꼭질을 만들어 자기만의 영역을 형성했습니다. 장산범은 그 영역을 보다 공고히 하는 영화라 할 수 있고요. 실제로 두 작품은 소재를 따오는 것과, 그것을 작중에 푸는 과정이 궤를 같이 합니다. 논란이 되는 괴담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그것에 자기만의 설정과 색을 가미하여 별개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죠.


호러 장르가 소재의 참신함과 관객의 직접 경험하는 듯한 몰입을 이끌어내는 데서 성패가 갈린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숨바꼭질은 이야기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것을 분명하게 해낸 작품에 해당했습니다. 지역을 불문하고 확인할 수 있었던 초인종 옆 낙서는 경찰과 시사프로그램까지 달려들었음에도 완벽히 설명해낼 수 없는 미스터리한 것이었고, 이것이 흉흉한 괴담의 신호가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시기적절하게 차용한 영화 숨바꼭질은 영화 그 자체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높여 일종의 사회현상까지 불러 일으켰죠.


문제는 장산범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장산범의 괴담으로서의 생명력은 수년 전 인터넷에서 회자되던 그 때 이미 사실상 다한 상태였고, 그 소재도 숨바꼭질의 낙서와 같은 관객의 극한의 몰입도를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것에 해당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선 영화와 무관히, 장산범이라는 소재 그 자체가 사실상 인터넷 유머에 가까운 소재로 전락해버린 상황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해당 콘텐츠에 대해 다각도로 살피는 감독 휘하의 창작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장산범은 이미 유행이 몇 년이나 지나버린 2017년 여름 대목에 개봉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그 답을 바로 어제-그러니까 글을 쓰는 기준으로-서야 알았습니다. (...사실 그간 별 관심이 없었죠.) 여러가지 사유로 개봉이 밀렸다는 것인데, 그 사유는 제대로 듣지 못했고 영화는 감상했다는 기준에서 추측컨데, 완성도 등으로 인한 재촬영이나 제작난항으로 인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 일종의 시즌 영화적 특성이 있는 장산범이기에 그냥 말 그대로 다른 영화의 개봉에 밀리고 밀리다 이제서야 개봉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최소한의 기준은 만족한 작품일 뿐더러, 차라리 장산범이 아니었다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아이디어를 소화하는 면을 보였거든요.


그러면서 감독의 입장에선 상당히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산범이 그래도 괴담으로서의 가치가 있던 시기였다면, 아니면 반대로 아예 장산범이라는 인터넷 소재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어느 정도 잊혀질 정도로 차라리 늦게 기획되고 개봉했다면 똑같이 나왔어도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영화이기 때문이죠. 시류성을 놓친 공포영화가 어떠한 취급을 받는지 생각한다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사람들의 인식의 어두운 면을 노릴 공포영화로서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너무나 잔인한 말이지만 영화의 개봉 시기에 따라 혹평이 호평으로, 박한 평가가 후한 평가로 뒤바뀌기도 하거든요.


그러한 상황에서 장산범은 이러한 불리한 상황을 타개해낼 만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이야기적인 당위성 측면에선 숨바꼭질보다 발전한 측면이 있으며, 무엇보다 중반까지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장산범을 도식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별개의 공포 영화로 훌륭히 각색해 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이 힘을 끝까지 유지했다면 오래도록 기억될 한국 공포 영화로 여겨질 정도로요.


더군다나 이 영화는 수년 만에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입니다. 2017년 기준, 공포영화로 아직까지 90년대의 여고괴담이 회자되는 정도니 한국의 공포영화를 기대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이 영화가 가져다주는 해갈이 반갑지 않을 수 없는 거죠. 당장 저부터 이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영화에 대한 리뷰로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었던 점을 생각해보세요. 한국 공포 영화 그 자체만으로 먹고 들어가는 면이 없진 않다는 겁니다.


장산범에 대해 어떤 영화 평론가가 그런 말을 했더군요. '현재 한국 영화의 공포영화의 최대치' 라고요. A는 못줘도 노력상은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소리일 겁니다.


물론 이 영화가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전작인 숨바꼭질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진행과 이야기적인 급변을 위해 다소 무리수를 둔 점, 청각적인 부분에서의 포인트가 묘하게 흐려지는 점, 이야기적인 구조는 좋은데 정작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도가 뭉개지는 점 등을 비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연 여전히 화제와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해외산 호러 영화와 나란히 비교했을 때 그만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특성이 얼마나 되느냐도 따져볼만한 문제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라는 감정은 결국 공감과 체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한국형 공포 장르'에 대한 기대와 그를 위한 지지는 계속해서 이어질 거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보다 깊이 몰입하고 관심있게 지켜볼 수 있다는 소리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것이 장르적 편중현상을 타개해낼 정도는 되지 못하지만, 그 완성도가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그래도 주목받을 정도의 성과는 거둘 수 있음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단 생각도 듭니다.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8.01 01:05


 자꾸


좁니다.


솔직히 지난 10년의 기간 동안 볼만한 공포영화를 꼽는 것보다, 지난 1년간 볼만한 스릴러 영화를 꼽는 것이 고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소개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추천받는 사람의 입자에서도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 정도로 양적인 그리고 질적인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자꾸 드러나 보이네요. 물론 기준이야 극장개봉작 한정되는 상황입니다만, 그 영역을 더 넓힌다하더라도 이 기준이 특별히 달라지지는 않을 듯 합니다. 스릴러는 유행을 타지 않으며 다른 장르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그 폭을 넓혀간다는 인상이라면, 호러 장르는 기존의 콘텐츠를 답습할 뿐 일신하지는 못하는 상황으로 여겨지네요.


그래도 본 만화나 영화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감상을 남기자며 시작한 블로그인데, 그리고 호러 장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애정이 있다 스스로 여기는데도 불구하고 영 집중을 못하겠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제가 본 영화 제목도 제대로 기억이 안날 지경이랄까요. (저주받은 땅에 지은 농장, 거기서 벌어진 사건, 모든 게 해결된 줄 알았더니 땅에서 솟아나온 악마가 여주인공을 잡아가는 영화였는데...)


스릴러와 호러 장르는 엄연히 별개의 장르입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관객의 의표를 찌르는 의외성, 그리고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압박감이라는 측면에서 일정한 공통점을 향유하기도 합니다. 이용하는 소재와 지향하는 재미의 방향, 그리고 장르 자체의 분위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종종 한 번에 묶이는 까닭이 바로 이겁니다.


자연스럽게, 두 장르는 그 장점을 표현하기 위해 비슷한 측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두 장르적 색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죠. 이들은 여타의 장르에 비해서도 특히 '신선한 소재'와 '색다른 연출'에 목을 맵니다. 소재 쪽은 유행에 가깝고, 색다른 연출은 연출자의 체화된 본능에 의한 감각에 해당하는데, 둘 다 따져보면 다른 장르와의 차별화를 위한 요소라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공포 영화의 공식이 경도되어 더 나오지 못하는 상황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릴러 장르에 비해 판에 박힌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감상이며, 무엇보다 한국의 스릴러 영화는 엄연히 세계 최고 레벨에서 뛰놀기에 그 다양성의 폭이 결코 좁지 않은 반면, 호러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을 고려해야 겠죠.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예. 공포영화를 일일히 리뷰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정도로.


예. 지루합니다.


 영화보다 졸면 다시 보기도 그렇고, 보다 만 걸 리뷰로 쓰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계속 넘어갑니다. 


긴장감을 쌓아가면서도 관객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그것을 폭발시켰을 때 온전히 수용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은 사실 경험만으로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긴장감을 쌓아가는 일은 어느 정도의 경험이 있으면 어떻게 소화해내지만, 그것을 터뜨리고 해소하는 것의 역량은 '재능'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시기적 적합성과 감독의 기민함, 관객의 포용성이 고루 갖추어져야 합니다. 이게 정말 뛰어난 감독도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는 면을 보이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죠.


이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호러장르입니다. 컬트적 재미로 수인가능한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결국 이것은 진부함과 지루함이 되니까요. 결국 색다른 소재와 뛰어난 연출은 창작물에 있어 가장 쉽게 차용되기에 그만큼 빠르게 물리는 요소가 된다는 소리인 겁니다.


아... 그냥 imdb 들어가서 2016년의 호러 무비 항목을 차용해서 그걸 소개하는 게 차라리 나은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7.27 13:04


 언젠가


다른 블로그에서 브렌든 프레이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에 톰 크루즈가 까딱 잘못했다면 브렌든 프레이저가 빠진 함정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배우의 이미지도, 능력도, 배우로서의 성장도 전혀 다르니까요.


하지만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은 젊고 잘생긴 배우가, 전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블록버스터 무비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완성되었고, 이후 각본이나 기획에 참여함과 동시에, 블록버스터 무비에 편중하여 출연하며 초기의 다양성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평가 자체엔 대체적으로 동의하실 겁니다.


브렌든 프레이저가 어드벤쳐 물에 출연할 때마다 미이라 시리즈의 리처드에 대한 자기복제라는 평을 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톰 크루즈는 어느 순간에서부터 장르불문하고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단을 자기복제하고 있다 이야기되고 있는 현실이 그를 잘 보여줍니다. 물론 제임스 본드를 넘어 스파이물의 또 다른 정형을 형성한 미션 임파서블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소재만 달리한 것이라 이야기된 미이라 시리즈의 차이, 그리고 미이라 출연 직후부터 자기복제 평을 앓았던 브렌든 프레이저와 수십년의 시간동안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한 결과로서 논해지는 톰 크루즈를 나란히 놓긴 힘든 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이 작품을 고르는 눈에는 차이가 있고, 자기관리의 측면에서도 변별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톰 크루즈가 영화 하나를 잘못 고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숙하여 익숙해진 배우에게 재기발랄함과 활기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의외성을 더해주어 색다름을 선사하죠. 톰 크루즈의 연기에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영화의 완성도가 기대이하라면? 더군다나 배우로서의 매력과 역량 자체는 무난하게 발휘했다면? 예. 두 사람이 쌓아온 것의 차이가 아주 크다는 점을 감안해도 브렌든 프레이저가 간 길을 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헐리우드 영화의 무덤이 이집트라는 농이 돌기도 했는데, 그게 과연 톰 크루즈에게도 적용될까요?


 사실 작중 브렌든 프레이저 주연의 미이라를 떠올리게 하는 소품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시대적으로도 두 작품은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등장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기도 하고요.


언젠가 유니버스 짓거리 지겹다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사실 이 평가는 조금 박한 것이 사실입니다. dc유니버스를 제하면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은 독자적인 영화로 만들었을 때의 완성도가 더 높아질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죠. 여지조차 없는 것과 아쉬움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요.기획 자체는 좋았고, 재료도 훌륭했지만, 연작이라는 한계로 인해 실패한 영화를 애초에 글러먹게 기획한 작품과 나란히 놓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톰 크루즈가 다크 유니버스에 매혹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한 편의 영화로는 몇 가지 아쉬움은 있지만,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그를 반전시킬 기회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기존 오락 영화가 보이는 면과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두고두고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블록버스터 무비라니. 1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상입니다.


실제로 1999년도작 미이라는 당대 오락영화로서의 요건을 만족한 수작 정도로 평가되었고, 이후 시리즈는 점차 그 평이 저하되었습니다. 1이 제일 빼어나고 이후 2, 이후로 3, 마지막으로 외전격인 스콜피온킹 순으로 꼽히곤 하죠. 저도 이러한 순서에 대략적으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리부트가 아니면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실제로 3편이 되면 이블린 역의 레이첼 와이즈가 출연을 하지 않는 상황일 정도였고요.


반대로 지금의 유니버스 시리즈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평가받는 아이언맨 정도를 제하면 그 평가가 정형적인 첫번째 영화가 최소치를 만족하고, 이후의 영화의 완성도에 따라 평이갈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첫 영화는 대개 그러려니하고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브렌든 프레이저 주연의 미이라는 일종의 형제격 영화이면서도 아버지격 영화라는 복합적인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제기에 달라야 하지만, 부자기에 닮아야 하는 묘한 관계라는 거죠. 그렇기에 미이라 시리즈에 대해 가해지는 재평가 분위기는 그리 달가운 것이 되지 못합니다. 결국 차별화에 실패했고, 장점은 계승하지 못했다는 소리니까요.


애초 브렌든 프레이저 주연의 90년대 판 미이라는 배경이 이집트일 뿐 정작 미이라 본연의 독자적인 콘셉트와 재미를 형성하지 못했다 비판받았던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사고방식으로 만들어진 자기식 소재의 블록버스터 무비라고요. 이야기 구성이라고 다른가요. 미이라 영화를 소개할 때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종합선물세트라는 말은 지금 시점에서 보았을 땐 다소 산만하고 진부하다는 표현을 둘러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 영화가 이거 보단 낫다"며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추억에 의한 미화가 아닙니다. 90년대 판 미이라가 갖고 있었던 단점이 전혀 보완되지 못했고, 장점은 둔화되어 버렸으며, 영화 그 자체의 독자적인 설정은 멀티 유니버스에 중화되어 무력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섭지 않고 불쌍해보이는 미이라, 뭔가 들쑥날쑥한 능력의 미이라, 뭘해도 혼자 다 성공하는 주인공, 헤로인이 미이라인지 옆의 박사인지도 헷갈리는 구도에, 이야기가 끝맺어진 것은 맞는지 어중간하게 내려진 결론이라는 구성까지...


흥행 자체는 무난히 달성하였고, 첫 영화라는 것이 더 이상 어드밴티지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제이자 자식이라는 묘한 관계에서 속편은 비교적 자유로운 모양새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영화는 부디 tv시리즈와 같은 형식이 아니라 영화로서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해주기를.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7.20 11:03


 누구에게나


그런 영화가 있습니다.


분명히 객관적으로 이 영화를 타인에게 추천하지도 못하고, 그 스스로도 해당 영화의 완성도가 일정한 기준을 만족하지도 못하며, 특정 배역을 연기한 배우의 역량이 기대 이하인 경우에 속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사람을 매혹시키고, 볼 때마다 즐기게 되는 그런 영화말입니다.


소위 말하는 길티 플레져라 할 수 있겠네요. 다른 거 다 별로인데 특정 배우의 비주얼을 즐기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경우 가성비로 따지자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지만, 사실 그렇게 괴상하게 여겨지는 일도 아닙니다. 저같은 경우는 독특한 소재를 골랐지만 그걸 소화시키지 못해 망가지는 영화들을 꽤나 흥미롭게 지켜보는 편이고요.


오늘 다룰 중화영웅은 여기에 참 가까운 영화입니다.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기엔 뭔가 하나 둘씩 빠져있고, 뭔가 온전히 즐기기엔 거슬리는 연기를 하는 이가 있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비웃기엔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무언가를 툭 하고 내놓는 그런 작품입니다.


화영웅, 괴복, 화검웅, 수라... 저 캐릭터가 다 제대로 기능했으면 정말 멋진,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작품이 나왔을 겁니다.


중화영웅은, 사실 언젠가 이야기했던 영화 풍운을 떼어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단순히 제작진이나 출연진이 일부 겹치는 선을 넘어, 사실상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도 별다른 변주가 가해지지 않았거든요. 사실상 동일한 캐릭터가 배경만 바뀌어서 활약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물론 결정적인 차이가 있고, 이것이 이 영화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바꾸어 줍니다. 풍운에서 운 역할을 수행했던 곽부성이 본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진심을 감춘 외강내유형 실력자 사형 캐릭터가 등장하긴 하지만, 풍운에서처럼 극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주지도 않을 뿐더러- 예. 곽부성이 연기한 것도 아니죠.


이전 풍운에 대한 글에서 영화의 주인공이 사실상 운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나오지 않으니, 엇비슷한 구조와 별다른 변주가 가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풍운과 구분되는 특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풍운은 더블 주인공 포맷이었지만 정이건이 연기한 풍의 역할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반면 중화영웅은 사실상 정이건이 연기한 화영웅이 단독 주인공으로 극에 적극적으로 작용합니다. 더군다나 주인공이 둘이지만 사실상 운만이 상징하는 캐릭터가 주제와 합치하는 성향을 보여 극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던 풍운과 달리, 화영웅의 삶과 독백은 영화의 주제와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사실상 구조와 전달방식만 따지자면, 풍운보다 중화영웅이 훨씬 더 완성도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만들어진 틀이 좋아서일까요. 캐릭터적인 매력을 화검웅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나란히 나올 때 분명 나름의 울림을 안겨 줍니다.


거기다 극중의 세계관도, 풍운이 나름대로 독자적인 무협세계를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중화영웅 쪽이 훨씬 흥미롭습니다. 풍운이 독특한 소재를 통해 흥미를 더했다면, 중화영웅은 소재보단 이야기의 전달방식과 소재와 주제 그리고 주인공의 캐릭터를 통해 그 재미를 이끌어냅니다.


제2차대선 시기(로 추정되는), 극복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 때문에 미국 전역을 떠돌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어지려 하는 사내의 이야기는 여러 한계와 드라마를 강하게 노출합니다. 언제나 소수일 수 밖에 없는 이방인의 삶은, 그가 가진 운명과 맞아떨어지며 특유의 매력과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이것을 전달하는 방식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영화는 십수년 전 떠나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쫓는 과정에서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아들의 이야기를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상당한 몰입감을 이끌어내어 굉장한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따로놓고보면 그리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떤 정이건과 사정봉이 나란히 섰을 때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로요.


그리고 극의 원톱이라 할 수 있는 정이건의 캐릭터 연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실 배우 정이건은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의 폭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지금와서 그가 출연한 배역을 보노라면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대동소이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하지만 배우라는 것이 반드시 넓은 폭의 연기를 할 필요도 없고, 자신에게 적절한 배역을 고르는 능력이 있어, 자신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 순간 관객을 매혹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입니다. 정이건이 연기한 화영웅은 여전히 튀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썩 훌륭하게 해 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중년이 넘어서며 흰 머리로 분장하는데도 묘한 중후함까지 안겨줄 정도로요.


사실 상당히 독특한 일입니다. 화영웅이라는 캐릭터는 마음 속에 끓는 불을 갖고 있지만 평소에는 차분하며, 정의로운 한 편 그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앞뒤 가리지 않지만 멀어지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알고 있기에 절대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충하는 면모를 갖고 있는 캐릭터는 잘 다루면 매혹적이고 입체적이지만, 잘못 다루면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캐릭터가 되어 버립니다. 이것을 표현하는 게 절대 쉽지 않은데, 묘하게 정이건과 맞아 떨어지며 특유의 설득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화영웅은 얼마 전 게임으로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국내 서비스는 하지 않지만. 사실 이 영화 또한 마영성 원작의 코믹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풍운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좋은 주인공, 좋은 이야기와 그 전달방식, 흥미로운 소재 등등이 어우러져 있고, 분명 인생의 한 폭이라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적인 즐거움을 쫓는 이들에게 과연 이 영화를 추천할 것이냐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이유는 결국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서 이어집니다.


이야기의 구조와 방식은 좋지만 그것이 완성도 있게 전달되지는 못합니다. 예컨데 영화에서 영웅의 딸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휘발되어 버립니다. 납치된 딸이 사실상 영웅이 미국에 남은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원톱 주연 화영웅의 목적도 이러할 진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역할의 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몰입의 대상이자 진행자의 역할을 수행하던 아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 역할을 아버지에게 넘겨주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한계로 인해 그 시기가 너무 빨라집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재료로 전락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드라마와 적절히 융화되지 않는 무협적 성향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사실 영화는 중국인들이 혼란한 국내 정세로 인해 여러 나라로 떠나 그곳에서 고생하고 정착하는 지극히 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작품과 차별화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무협적 소재인데, 이게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고 독특한 재미를 선사해야 할 때 드라마를 끊는 일을 만들어 버립니다. 마지막 씬의 액션은 꽤나 흥미롭지만, 정작 전개될 드라마를 툭툭 끊을 때는 차라리 액션장르가 무협 레벨이 아니었다면 훨씬 긍정적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원작도 그렇고 감독의 성향도 그렇지만, 사실 이 영화는 무협 영화라고 단순하게 분류하기엔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바가 많은 셈입니다.


차라리 액션 없이 순수하게 드라마로만 나갔다면 훨씬 긍정적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도 갖게될 정도로, 이 영화의 강점은 드라마에 집중되어 있고, 이 영화의 약점은 액션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즐기고 보기엔 차라리 풍운이 낫다는 거죠.


좋은 배우는 어딜 갖다 놓아도 빛이 난다는 말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드라마를 갖고 있습니다. 화영웅과 양공여가 연기한 재유와의 로맨스, 그리고 두 사람의 자식들이 화영웅을 쫓고 쫓기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은 화영웅과 서기가 연기한 수라와의 또 다른 로맨스가 그렇죠.


물론 부인격인 재유와의 로맨스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충실하게 묘사하는 한 편 비중이 필요이상으로 커져서는 안됐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 영화는 기승승결로 이어지는 식으로 배경을 중심까지 끌고오는 실수를 저질렀죠.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의 진행의 방향과 목적을 가리키고 있으니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만, 화영웅과 구분되는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거나와 결국 영화에 도구로서 사용되는 요소들이기 때문에 이 또한 부차적이 되어야 합니다. 애초에 더블 주인공도 아니잖아요.


결국 남는 것은, 절대로 이어져서는 안되기에 계속해서 미련을 갖게 되는 수라와의 로맨스입니다. 실제로 이것은 상당한 파괴력을 갖고 있어서, 서기의 출연분량이 얼마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반부 줄기차게 등장한 양공여를 제치고 사실상의 헤로인이 되어 버립니다. 이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실제 영화 포스터에서 양공여는 없어도 서기는 있는 상황이죠. 


이전 풍운에서 서기가 연기한 초초가 매력적으로 나온다면, 영화에선 그 정도를 넘어서서 사실상의 씬스틸러에 가까운 모습까지 보입니다. 그 정도로 서기가 매혹적으로 나옵니다.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7.16 19:05


 흔히


한국의 공포영화-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부의 영화들을 논할 때, 일본의 호러 영화에 대한 영향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연출의 방식이나 세부적인 묘사, 그리고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는 포인트까지 차용해온 경우가 많았거든요. 사실 당시 링 시리즈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호러 영화의 막대한 영향력은 전 세계에 많은 족적을 남기는 상황이었고, 한국 역시 자연스럽게 이에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컨데 기괴하게 꺾인 관절, 뒤집힌 눈, 시간감각을 일그러뜨리는 방식의 연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많은 호러 영화에서 사용되어 지극히 흔해진 것이지만, 당대엔 여러모로 쇼킹했죠.


당연하지만 그 오리지널에 가까운 영화 링은 한국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다른 공포영화는 물론 심지어 매체도 전달방식도 전혀 다른 개그콘서트라는 무대에서도 찾아볼 수있을 정도였습니다. 아예 한국에서 리메이크하여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런데 당시 나름대로 공포 영화 좀 찾아본다며 거들먹거리던 저와 제 친구들은 링 시리즈보다는 다른 영화에 더 열광했었습니다. 바로 태국산 공포영화 셔터였죠. 곰곰히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링 시리즈를 즐겼던 이유와 오늘 이야기할 영화 셔터를 즐겼던 사유는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원은을 이해할 수 없는 영혼의 기괴함과,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결국 어찌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 등등이 그러하죠. 


하지만 영화 셔터는 링보다 우리에게 더 익숙했습니다. 그리고 이 익숙함은 이 영화를 공포 영화로서 좀 더 고평가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영화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신에 대한 온갖 클리셰가 나옵니다. 그것들을 적절히 잘 뒤섞어 놓아서 무리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어지간한 영화였다면 진부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인데도요. 그만큼 연출이 좋은 영화입니다.


이율배반적인 표현입니다. 공포 영화는 다른 그 어떤 영화보다도 진부함에 취약한 장르입니다. 예측가능한 공포영화는 인간이 가진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자극하지 못하고, 극으로서의 완성도도 떨어뜨립니다. 링 시리즈가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콘텐츠가 된 데엔 특유의 연출방식도 연출방식이지만 공상과학적 요소가 삽입된 21세기 형 호러영화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복제된 테이프는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해지는 세대에겐 이전과 다른 색다른 공포를 안겨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비디오와 영화 속 비디오를 교묘하게 등치시켜 독특한 몰입감을 안겨주었죠.


그러한 측면에서 셔터와 비교하자면, 셔터는 철저하게 기존의 괴담을 뭉쳐 만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귀신이 찍히는 사진, 원한을 품은 처녀귀신, 어깨를 짓누르는 귀신,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는 동자승 등등 적어도 수십년, 많게는 수백년은 가뿐하게 넘어가는 소재들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셔터는 당대 국내에서도 방영한 토요미스테리극장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한국과 태국, tv와 극장이라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 영화의 포인트는 바로 이 낯설지 않음에 있었습니다. 기초적인 만듦새가 보장된 상태에서, 적절한 방식의 복선과 반전을 깔아두고, 납득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전달하는 영화가 친숙함을 안겨주었다면 결국 남는 것은 온전히 연출을 즐길 수 있는 여유거든요. 이 영화는 특유의 연출이 인간의 공포와 허탈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잘 짜여져 있으며, 시리즈로 전개되는 링과 달리 분명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상술한 토요미스테리극장과의 비교도 외국영화로서의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접하는 괴담의 주인공이 당장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소리였습니다.


이 영화의 지위는 태국의 여고괴담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당대에도 그리 신선한 것이 아니었고, 연출은 당대 특별한 인상을 주었지만 지금에 와선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것들입니다. 소름돋았던 특수효과 역시 상향평준화된 지금시점에선 그리 인상적이지 않고요. 그러나 호러 영화 흥행의 시발점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분명한 주제의식과 호러 영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특별히 하나 책잡기 힘들 정도로 전체적인 균형미, 특유의 낯익음을 통한 몰입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줍니다. 진부함이 공포영화와는 상극임에도 불구하고, 알고도 당해준다는 그런 생각을 갖게 해준달까요.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6.25 08:17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 유니버스 짓거리
에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노골적으로 유니버스를 자칭하는 것들 가운데 그나마 최소한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마지노선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그나마도 tv 시리즈 등은 제외하고!



가장 먼저 유니버스라는 표현에 대해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겠네요. 보통은 우주, 세계관 정도로 지칭하는 표현입니다만, 최근에는 별개의 이야기를 가진 독립된 작품들을 한 데 묶어 내놓는 크로스 오버 물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제가 오늘 할 이야기 역시 이에 대한 것이고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어쨌거나 거대해지는 규모와 복잡해지는 캐릭터 관계를 최소화하기위해 버릴 건 적절하게 버리고, 눙칠 건 적절하게 눙치면서도 '이미 본 사람들만을 타겟으로 하겠다'는 어찌보자면 황당하기까지한 계획을 세워 실현시킨 좋은 기획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철저한 계획하에 수행하겠다고 나섰고, 그를 실행해 냈으니까요. 이러한 마블의 위용은 최소한의 완성도를 만족하면서도 흥행은 꾸준히 거두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증명됩니다. 전작의 흥행세를 나름의 새로움을 계속해서 더해가면서도 지속시켜 더 큰 흥행을 이뤄내는, 어찌보자면 꿈의 기획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마블의 이러한 상업적이건 작품 내적인 완성도적 측면이건 기적적인 성공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지금의 유니버스 시리즈의 창궐의 원흉(?)이 되었죠. 일종의 롤모델이랄까요. 실제로 DC유니버스는 그들이 가진 훌륭한 자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노골적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쫓아가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고, 다크 유니버스니, 몬스터버스니 하는 것들이 속속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위의 마지노선이라는 말처럼 사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도 아슬아슬한 면모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최소한'의 완성도만 만족하며 나온 것들이 따지고 보면 적잖거든요. 이것이 아쉬운 것은 충분히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역량과 의욕이 있음에도, 결국 다른 영화와의 연계를 위해 풀어내지 못하는 한계점을 너무나 자주 노출한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한 편의 이야기로서의 완결성을 만족하지 못하고, 작품성은 자연스레 떨어지게 되죠.


물론 이전처럼 시네마틱 유니버스하면 오직 마블만이 떠오르는 상황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지 모릅니다. 거대 유니버스를 구축한 작품이 오직 이들 하나였다면 이목이 분산되는 일도 적었을 테고, 그 현실적인 한계에 대해서도 납득했을 겁니다. 배우들의 몸값은 시리즈가 지속될 수록 치솟지, 캐릭터는 점점 많아지지, 적은 아무리 세도 결국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지, 캐릭터는 물론 배경에 대한 설정도 점점 붕괴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거대 유니버스는 써내려가는 기획 하나하나가 새로운 기록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가 되다보니 호의적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완성도를 만족하는 선이라면.


하지만 온갖 유니버스가 쏟아졌고, 심지어 소재와 연출이 심각하게 겹치는 작품들마저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블이 철저히 선두주자였어도 이러한 범람현상으로 인한 파급을 피할 수 없는데- 따지고 보면 마블도 히어로 영화 그 자체에선 결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더군다나 이러한 시네마틱 유니버스 가운데 안일하게 작품을 내놓아 총체적인 기대치를 떨어뜨리는 일까지 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다 이젠 '이야기를 끝맺은' - 그러니까 최소한 하나의 캐릭터로는 이야기가 끝이난 로건같은 작품까지 나오게 되며 이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이전과 같이 무비 유니버스의 선두주자로서의 혜택을 누리기 쉽지 않아 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리즈 내내 시달려 온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라는 평가는 더욱 아프게 다가올 테죠. 이전 아이언맨2와 같은 작품은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호평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더 이상 십수낸 내로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대해 단순히 실망이라는 감상을 넘어 '질리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생겨났습니다. 단순히 최소한의 완성도를 만족하는 걸로는 이제 부족하는 소립니다.


애초 흔히 유니버스로 불리는 영화 시리즈 가운데 가장 긍정적으로, 그러니까 제가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X맨 시리즈도 따지고 보면 유니버스로 구분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의견이 많이 갈립니다. 제작 주체가 동일하고, 개개 캐릭터의 기원도 같습니다만, 정작 각 작품들마다 독자적인 설정이 있어 사실상 별개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많거든요. 평행세계라는 말장난을 제쳐놓고 보면 한 작품이 다른 작품에 끼치는 영향은 사실 매우 적고, 그것이 그리 어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크로스 오버는 오직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하나인 게 현실이니까요. (판타스틱 4를 넣니 마니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뭐 아시죠?)







제가 이토록 시니컬하게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대하고, 이전엔 영화를 보고 오면 꼬박꼬박 영화에 대해 작성하던 글도 포기한 것은 결국 이러한 연유 때문입니다. 날고 기는 사람들이 모인 헐리우드에서, 하나의 히트작이 나오고 그것과 경쟁하며 보다 다양한 결과물을 남기며 폭을 넓혀줄 거라 했떤 기대가 산산히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몇번의 확인과정까지 거치면서. '거기나 여기나 뭐 하나 뜨면 다 쫓아가기만 하는 건 똑같구만'이라는 말로 정리되어 버렸네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결정타는 원더우먼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정말로, 이게, 그렇게, 좋은, 평가를, 들을말한, 영화였나? 하면서 말이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사실상 배트맨v슈퍼맨이 수행해야 했던 역할을 했다는 것 외엔 별달리 평할 것이 없을 말 그대로의 평작이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수행해야 했던 역할을 생각해보면 그 이상이 되었어야 했고요.


하지만 정작 나오는 평은, 앞으로 지속될 유니버스에 대한 기대치가 듬뿍 반영되어 DC유니버스에 평이 반전됐느니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당혹스럽다못해 이제 불쾌한 수준에 다다를 정도였습니다.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헛웃음과 썩소를 이어갔던가, 이 영화의 절정부엔 몇 번이나 당해놓고 대체 내가 왜 이 영화들을 보면서 속으로 욕을 해야 하냐며 환멸했었는데. 언젠가 이야기했었죠. 언제까지 다음 다음 다음을 이야기해야 되냐고. 최소한 제게 DC유니버스는 극장가에 찾아가 볼 영화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미이라를 봤습니다.






예. 지쳤습니다. DC유니버스건 몬스터버스건 다크 유니버스건 기대 이하의 완성도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물론 몬스터버스는 최소한 장르영화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보여줬으니 이렇게 말하는 게 적절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영화의 흔적 정도만 남은, 기획 단계에서의 재료와 상징들이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결과물로서 평가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만을 가지고 평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영화라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에 뛰어난 역량이 요구되지만, 저것을 어느 정도만 살리는 선이어도 훨씬 좋아질 수 있는 영화들이 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것에 발목 잡혀 제대로 살려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최초 기획 단계에서는 적저히 기능하는 대비와 상징이 저렇게 매몰되어 버리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그렇다고 이들이 폭발할 정도의 창작력과 새로움으로 중무장 한 거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지쳤다는 표현이 슬슬 지겹다로 바뀌어 가는 느낌입니다.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5.11 07:33


 러시아 영화는


대학 시절 교양 강좌- 러시아의 이해를 위해 처음 접했습니다. ...정확하게는 러시아 영화라고 인지한 상태에서 영화를 봤던 것이 당시가 처음이었다는 거죠. 실제로 러시아 영화는 우리에게 그렇게 익숙한 영화는 아닙니다. 몇몇 유명한 영화도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어 다시 국내에 수입된 경우가 많고요.


당시 보았던 영화들은 소련이 붕괴한 이후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아 퇴폐적으로 변화한 사회상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인간의 가치가 자본에 의해 경시되고, 한때의 쾌락을 위해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들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었죠. ...뭐, 사회적으로는 이렇고 실제로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유지되던 영화계에, 헐리우드의 영향력이 다이렉트로 꽂히기 시작했다는 소리입니다.


결과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당시 강좌에서는 이 과도기적인 흐름을 우리의 삶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은 언제나 그렇듯 좋은 건 받아들이고, 소중한 것은 지키자는 지극히 뻔한 시간이었습니다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세계를 주도했던 소련이 자신들의 화법을 구축해 놓고서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연출이나 소재 측면에선 사실상 귀속되어 버리다시피한 것은 당시의 저에게 꽤나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독창성이 상업성에 저렇게 밀려 버릴 수도 있구나라면서 말이죠. ...물론 이 감상도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단편적인 것입니다만.


여하튼 러시아 영화의 한 흐름은 소련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며, 다른 한 흐름은 헐리우드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헐리우드의 흐름을 자기화하여 소화해낸 후 풀어낸다면야 좋은 이야기로 포장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인물만 바꾼 채 이식하다시피하면서 이야기적인 구성은 열화되어 버린 경우가 드물잖습니다. 무엇보다 그나마 따라한다는 영화가 철저히 도식화되고 흥미를 떨어뜨리는 양산형 헐리우드 킬링타임용 무비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더더욱 당혹스럽게 합니다. 영상기술은 상향평준화되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영화가 정말 택도 아닌 이야기를 보여줄 때의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오늘 이야기할 러시아 영화 가디언즈(Zashchitniki, Guardians, The Guardians (2017))이 바로 이러한 예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보통 영화를 소개할 때 다른 영화에 비교하곤 합니다만... 이 영화는... 뭐랄까요. 너무 흔한 부분이 많아서 초능력 팀업 무비 뭘 갖다 대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판타스틱4건, 가오갤이건, 엑스맨이건.


이 영화는 인체실험으로 인해 초능력을 가지게된 특수요원들이, 엇나가버린 과거의 동료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명백하게도 이 영화는 헐리우드의 히어로 영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야기한 줄거리도 엑스맨 시리즈나 판타스틱4 등에서 몇번이고 접했을 지극히 흔한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흔해서 이젠 저 소재와 저 주제, 저 전개는 차라리 아이디어가 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지경이죠.


결국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세 가지 입니다. 독창성, 오락성, 최소한의 이야기적인 완성도.


독창성 측면에서는... 뭐랄까요. 사실 특별히 좋은 점수를 주기가 힘듭니다. 독창성은 결국 소품의 디자인, 내용의 연출, 인물의 묘사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보아야 하는데- 이 영화는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의 묘한 분위기에 더해, 전반적으로 크게 흠잡기 힘든 소품을 내세워 최소한의 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문자 그대로 무난히 답습하기만합니다. 영화의 때깔이 생각 이상으로 좋고, 일부 소재는 흥미롭지만 그것을 전혀 새로운 것으로 포장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거죠. 그렇습니다. 최소한 번뜩이는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되는 영화라는 겁니다.


오락성.... 음... 이야기의 최소한의 완성도와 묶어서 이야기합시다. 예. 둘 다 좋은 점수를 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적을 노렸다가 함정에 빠지고, 도래한 내분이나 고민을 극복한 후 이윽고 적을 물리친다는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스토리를 저렇게 산만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이러한 성향의 영화가 그러하듯 결국 동료들을 모으면서 그들의 능력을 소개하는 씬이 가장 재미있습니다. 이야기의 최소한의 완성도는 이야기가 전개됨에 있어 최소한 걸리적거리거나 딴 생각이 들지는 않도록 해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조차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뻔한 캐릭터가 뻔한 이야기를 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도 정말 지극히 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나서 당혹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일부 보여지는 씬- 예컨데 둔중한 곰 액션씬과 그것과 대비되는 순간이동 능력자의 전투-은 상당히 괜찮습니다. 독창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헐리우드에 내놓아도 먹힐 정도로요. 하지만 그외의 씬들은 상당수가 너무 당혹스러울 정도로 진부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야기의 최소한의 완성도를 담보해주어야 할 스토리가 너무 부실했습니다. 겉보기만 멀쩡하고 내실은 부실한 콘텐츠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케이스였습니다. 제가 순수한 오락과, B급, 싼맛에 비교적 관대한 취향을 갖고 있음에도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였네요. 차라리 극단적으로 그래픽에 모든 걸 걸거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대놓고 소위 말하는 쌈마이 취향으로 갔으면 또 모르겠는데 나름대로 힘 줄 부분만 힘주고, 영화 분위기 자체는 진지하기 그지 없는 것인지라...


디자인과 전체적인 그래픽이 별로더라도 충분히 이야기와 캐릭터를 통해 재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의 반례가 되는 영화 가디언즈였습니다.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5.08 14:09


 사실


저는 괴수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예. 저는 거대로봇물을 좋아하고, 특촬물을 좋아하며, 히어로 콘텐츠 역시 좋아합니다. 괴수물은 이들과 어느 정도 긴밀한 연관성을 가집니다. 괴수는 이들 장르에서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이고, 실제로 해당 콘텐츠에서 촉발되어 독립된 작품으로 거듭난 것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정 부분 공유하는 공통의 소재나 연출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괴수물을 그렇게 즐겨온 편은 아닙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결국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체와 사건,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결에 대한 접근법의 차이 때문일 겁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괴수물은 보통 괴수의 보다 실감나고, 무서우며, 박력있는 파괴성을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괴수가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사실상 이야기의 발단이며, 주된 소재이자, 심지어 이야기의 진행자인 경우까지 있습니다. 괴수물은 괴수가 가진 힘과 능력이 주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겁니다. 비록 이야기적인 얼개나 완성도에 다소 흠이 있더라도 상기의 괴수의 면면을 충실하게 잘 보여주었다면 그것은 장르적으로 실패한 영화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반대로 앞서 제가 이야기했던 괴수를 물리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즉, 해당 장르에서 괴수는 일종의 성장을 위한 동력이자 발단이며,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성장이라는 것이죠. 자연의 웅장함과 그 앞에 미약한 인간을 보여주면서도 재난물이 붕괴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구조물은 그것에 맞서거나 극복하여 마침내 성장하고 목적을 이루어낸다는 것에 포인트를 준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칼로 자르듯 딱딱 나누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공통의 분모가 정해진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의 장르에 영향을 주고, 또한 새로움을 위해 이질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비슷한 모양새를 취하게 되는- 일종의 수렴진화적 면모를 보이기도 하거든요. 거대로봇물을 기치로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괴수물의 성격이 더 강했던 퍼시픽림과 같은 작품이 있었고, 로봇은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사실상 해당 장르의 일면을 떠올리게 하는 오늘 소개할 영화 신 고질라 같은 영화도 있는 겁니다.


어어? 저거 인형탈 아냐? 라는 생각이 드는 디자인을 의도적으로 취했습니다. 오랜 시간 고질라 팬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보여집니다만.


신 고질라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지 솔직히 말해 난감합니다. 그러니 두서 없이 그저 병렬하겠습니다.


첫째. 이 영화는 고질라 시리즈의 팬들을 위한 영화다.


솔직히 말해 고질라의 첫번째 형태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예. 정말로. CG티가 났다, 디자인이 구리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적잖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고질라의 첫번째 형태는 노골적으로 인형탈을 쓰던 그 시절의 그것을 새로이 구현하려 하였습니다. 이해는 했습니다. "저것은 의도적으로 20세기 고질라에 대해 바치는 헌사다. 앞으로 보다 세련된 형태로 변신할 것이다." 라고 예상했고,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 든 이질감을 영화 중반부- 광선을 등으로 쏠 때까지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고질라 시리즈의 전통적인 팬이 아니어서일까요? 저는 의도적으로 인형탈 느낌이 나는 디자인과 연출이 옳은 결정이었는지에 대해 확답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전체적인 고질라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염두에 둔 작품입니다. 고질라가 구축한 화법은 이미 세계화되어 드물지 않은 것이 되었고, 일부 연출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은 것들마저 있어 다소 당혹스러운 감상마저 갖게 합니다.


가장 크고 강하게 생긴 고질라입니다. 기실 인간에 대한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상당히 잘 빠지게 뽑아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둘째. 이 영화는 일종의 아나키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초중반 회의에 회의를 거듭합니다. 심지어 회의를 위한 사전회의가 나오는 장면은 당혹스러움까지 안겨줍니다. 관료제 국가인 일본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합니다만, 실제로 이것은 국가라는 시스템을 운영함에 있어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닙니다. 정부는 국가의 공인된 위력이며, 이것을 동원하는 것은 철저한 근거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긴급사태에 준하는 여러 조치들이 현장에서의 판단과 선조치 후보고적 성향을 나타내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국가로서의 일면이 거세된 일본의 현 세태와, 그것을 관료제로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상황이 일종의 블랙코미디처럼 그려집니다. 자연스레 영화는 괴수물답지 않은, 거대로봇물에서는 앞서 몇차례 시도되었던 관료화된 집단에서 가장 버거운 것은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폐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집니다. 결국 그만의 독특한 맛을 형성합니다만, 동시에 괴수물 하면 흔히 기대하는 압도적이고 풍부한 액션은 점점 뒤로 미뤄집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는 것은 결국 기존의 체제에 해당하는 어르신격 정치인들이 몰살당한 이후부터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기회를 빌어 기존의 일본 사회를 뿌리부터 바꾸어야 한다 이야기하죠. 극단적이지만, 개인에게 구축된 가치관이나 정서는 쉽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역사의 뒤로 사라질 때 비로소 사회는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민주주의는 결국 시간이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라 둘러 말하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재앙에 가까운 고질라는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공존의 대상으로 거듭나는 한편, 인간이 구축한 시스템은 결국 그에 의해 박살나고 재구성된다는 측면에서 영화는 현 일본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아나키즘적 세계관- 그 가운데서도 허례허식의 쓸데없는 덩치키운 집단없이 필요에 의한 집단만을 인정하자-으로 해석할 수 있게 보여줍니다.


고질라 시리즈는 한번도 보지 않아도 익숙한 그 구도와 그 장면. 실제로 저는 이 장면을 원작이 아니라 패러디한 닥터 슬럼프에서 먼저 보았었습니다.


셋째. 이 영화는 기술- 보다 세부적으로는 핵과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핵무기에 의해 공격을 받은 국가입니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로 공격을 해본 국가입니다. 이 기묘한 관계는 현재까지도 양국을 긴밀하게 협조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납니다. 물론 여기서는 핵이 아닌 고질라가 그 통로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고질라는 핵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여타의 괴수물이 자연의 재해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고질라는 특이하게도, 인간이 만들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 활용도 하지만 어느 순간 통제의 범위를 벗어나면 어지간한 자연재해도 뛰어넘는 위험성을 가진 핵을 상징합니다.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고질라를 탄생시킨 것은 인간의 업보이며, 그것이 결국 인간을 덮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나태함과 우유부단함 때문임을 주제로 전달합니다.


영화는 '핵무기'으로 '핵으로 치환된 또 다른 위협인 고질라'를 물리치는 것은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종래에 더 큰 위기를 낳을 수도 있다 경고하고 있죠. 단순한 계산이나 동정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인간은 이러한 핵(고질라)과 공존하며, 그 위험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질라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선 핵실험 등으로 인한 사건사고를 넘어 어느 새 자연과 같이 일상적이 되어 버린 핵 그 자체가 되고, 그 위협은 언젠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경고하죠.


"일본인이 핵에 맞았다고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치에 맞나"라는 불편함을 잠시 덜어놓고 보자면, 이 부분은 사실 한국의 관객에게도 상당히 와닿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한국도 미국과 (북한의) 핵과 관련하여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국가라는 점이 첫번째이며, 한국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뻔했고 이에 아연실색한 그 김일성조차 한반도에선 핵무기는 안된다 이야기했었던 전적이 있으며, 세번째로 고리원전 등으로 인한 핵발전소에 대한 공포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자면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탈핵에 관심이 많은 국가입니다. 과거 실제로 맞았었기에 그 공포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들과 달리 맞을 뻔 했고, 여전히 맞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갖고 있는 이들이 그리는 고질라의 모습이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곰곰히 따져볼 법 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에반게리온인데 다른 거 다 안나오고 네르프에 말단 직원들만 나오는 작품.... 정도로 말하면 될 듯 합니다. 아니 진짜로.


넷째. 이 영화는 인간 캐릭터엔 솔직히 별 관심없다.


거두절미하겠습니다. 본작에서 인간 캐릭터의 2/3를 날려도 무방합니다. 여러 관료들이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어 댑니다만 이들에게서 보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관료제일 뿐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깨놓고 자막 한 줄 없이 그냥 대사만 줄줄 늘어놓더라도 영화를 이해하거나 감상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주인공과 그 주인공 주변의 연구팀들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 온 패터슨도요.


흥미롭게도 몰개성화된 인간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은 반대로 이야기 그 자체에 몰입하는 장치가 됩니다. 고질라에 대처하는 인간의 사회를 지켜보는 것이 중점이라는 거죠. 산만한 구성이나 어중간한 비약을 감안해도 이야기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흔히 영화가 가져야 하는 캐릭터에 대한 미덕, 즉 그 캐릭터에 몰입하여 보다 이야기에 빠져드는 구성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애매합니다. 시종일관 무뚝뚝하다 마지막에 웃는 연구원이나 사연 있는 과거 묘한 연대감과 같은 일종의 '팔리는 캐릭터 도식'을 따르는 이들이 몇 있는 걸 보면 나름대로 파고들 건덕지는 던져준 거 같긴 한데...


다섯째. 에반게리온. 솔직히 이 부분은 좀 웃겼습니다. 감독이 안노 히데아키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에반게리온을 떠올리게 하는 연출도 있습니다. ost도 에반게리온의 그것이 쓰였는데-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동시에 "애니보다는 못하다..."라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네요. 궤멸적인 애니 원작의 영화들과 나란히 놓을 수는 없고, 실제로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작품도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다보니...


신 고질라와 2014년판 고질라를 나란히 놓고보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 영화 총평입니다.


이 영화는 괴수물을 기치로 걸고 있지만, 괴수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단 그 괴수를 맞이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결국 공존에 대한 선택과 함께 그러한 공존에 대한 선택조차 인지의 범위 밖으로 넘어서는 고질라는 변이變異겠죠. 비슷한 시기 개봉한 헐리우드판 괴수 영화 고질라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전달하고자 한 것은 전혀 다릅니다. 


영화의 구성은 '인간의 대응, 이러한 현실을 만든 기존 체제에 대한 불합리성과 우유부단함을 설명하는 것'을 감안해도, 다소 산만합니다. 이 부분을 지루하다고 이야기해도 저는 특별히 반박하지 못할 겁니다. 물론 고질라의 세세한 부분을 설명하는 부분에 몰입해서 볼 수 있다면 이 영역은 쉽게 넘어설 수 있겠지만- 역시 너무 지난합니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고질라 시리즈의 팬들이나, 일본 내의 일부가 가진 상황을 다루기 때문에 상황 전체를 넓게 공감하기 힘든 것도 작용하고요.


특별히 추천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괴수물이 흔히 가지는 허들에 비해 아주 낮은 진입장벽을 갖고 있어 무난하게 보기 좋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에반게리온 특유의 연출을 보고 색다른 재미를 느끼실 겁니다. 괴수물 답지 않은 면면을 가진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