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2018.05.14 00:17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른들의 충고 하나를 머리 속에 담아 두어야 합니다.


"그거 하면 밥이 나와 쌀이 나와?"


자. 시작해 볼까요.


영화 그 자체만 놓고본다면 다소 개연성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였다면야 무난히 넘어갔겠습니다만, 그렇진 않았죠.


저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과장이나 비꼼이 아니라, 정말로 울었습니다. 이젠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거장의, 어떤 의미에선 정말 유치하기까지 한 발상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의 드라마를 떠올려보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영화는 이러한 과정 그 자체를 우화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었습니다. (작중 로얄티 부서가 주인공 팀에게 현실적인 가장 큰 위기였다거나...)


영화는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자전적인 성질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 영화의 한꼭지를 차지하는 것은 단순히 스필버그와 큐브릭의 우정관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의 합작격 작품인 에이아이의 일면을 떠올리는 주제(몸이 가짜라도, 그가 가진 사랑이 진짜라면, 그 사람은 가짜인걸까?)와, 영화적으로 대척점에 있다 평가(대중영화의 대가vs완벽주의 작가주의 감독)받았으면서도 정작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다 평가(서로가 서로의 영화를 제일 먼저 보고 서로에게 이야기해줬던 사이)받았던 두 창작가의 구도가 영화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며 떠올린 영화1.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감독들은 특유의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는데"란 태도가 있습니다. 그 모순이, 작품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가감이 없어졌기에, 되려 거장이라 불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는 세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영화 감독.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시선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가 가진 대중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애정과 기대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게임메이커 할리데이 역시 스필버그를 상징하는 요소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할리데이의 아바타가 아노락이라면, 스필버그의 아바타는 할리데이인 셈입니다.


게임 제작자. 영화의 소심한 게임 제작자 할리데이는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고, 그것을 게임 내에 자유롭게 설치하고 풀어내길 원합니다. 그것은 영화에서 에그 찾기로 치환되며, 이것은 현실 게임에서 이스터에그를 설치한 게임 제작자들의 그것과도 같습니다. 목적만을 쫓기에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닫게 해주는 캐릭터이며, 이것은 대중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속해서 젊은 세대와 호흡을 맞춰온 스필버그의 일면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기도 합니다. 스필버그 또한 게임 마니아이자 제작자로 유명하죠.


그리고 게이머. 당연히 웨이드로 대표되는 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사실상 영화의 진행자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시선을 따라 영화를 즐기며, 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통해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결국 목적을 달성한 게이머는 어떻게 이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게임을 즐겼느냐에 따라 나뉘게 됩니다. 이것은 영화의 이스터 에그 찾기와 묘하게 결부되며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기준점이 되어 줍니다.


이들을 달리 말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요. 당연하지만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도 훗날 이야기를 만들 수 있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제가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연스레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에 대해 잘 모르는 제3자들에게도 종종 이야기 하게 됐는데, 만화가 쓸모없는 것도 아니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밥도 나오고 쌀도 나온다"는 걸 어필하는 거였죠. 드래곤볼을 가장 자주 이야기했던 것도 완결된 지 오래된 작품이 계속해서 역대급 수익을 거두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신작이 나와서 마블 영화 쪽으로 바꾸었지만.


"밥이 나와 쌀이 나와"는 제게 사실 상당히 뼈아픈 말입니다. 너 이 블로그 하는 동안, 만화 관련된 일 하는 동안, 글 쓰는 동안 딴 거 했으면 지금 그러고 있겠냐는 식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나름대로 황금펜이니 베스트블로거니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저조차 저러한 말에 내성이 없는데, 그렇지 않은 이들은 오죽할까요. 아니, 저 말은 사실 여러 창작자들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키는 말일 겁니다. 배고프던, 그리고 자기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 자책하는 시절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좀 더 뒤로 되돌아가 보면, 제가 영화나 만화를 볼 때도 저 말을 정말 질리도록 많이 들었습니다. 학창시절엔 책이라도 한 자 더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표현이었고요.


이처럼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즐기는 것은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일종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요. 여전히 사회는 유형적인 가치를 만드는 것이, 무형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우월하다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고요.


스필버그는 이러한 가치에 막혀 여러 사건을 겪었습니다. 단순히 영화를 제작하는 비용을 투자받는 것에서부터, 더 나아가 홍보하거나, 수익으로 영화를 평가받거나 하는 일들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를 만드는, 즐거움을 전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그러한 물질적인 가치였을까요? 그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즐겨왔던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고, 지금에 와선 존재 자체만으로 인정받는 거장이 되었습니다. "밥이 나와 쌀이 나와"라는 말에 "밥도 나오고, 쌀도 나온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죠.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선배 창작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도 단순한 방식을 통해 설명합니다. 이 영화의 발상은, 상단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어찌보자면 참으로 유치하고 단순합니다. 여러 문화적 아이콘을 출연시켜 공통의 목적을 이루도록 하게 하자는 것이니까요. 한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캐릭터의 판권료를 일일히 지불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경제적인 일일까요? 하지만 스필버그는 이것을 시도하고, 심지어 해내기까지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게 돈이나 배타적 권리의 행사는 아니라는 걸 그 스스로의 행동으로 입증해 보였습니다. 오직 그와 같은 무게감 있는 선배 창작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낸 겁니다. 어찌보자면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거친 콘텐츠 시장에서 유아적이기까지 한 꿈을 실현한 것으로까지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의 말이 "밥도 나오고, 쌀도 나오던데"라는 대꾸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며 후배들에게 힘을 주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에는 밥과 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그게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죠.


이스터에그나 영화의 사이드 스토리 없이도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데드풀이 온갖 이스터에그가 있으면서도 그 자체가 재미있는 액션 코미디이며, 이스터에그가 데드풀의 메타적 성격을 보다 강화해 주는 것처럼 말이죠. 대비되는 클로버필드10번지는 영화만으로는 영화상 소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기에 감상 이하의 평가를 하곤 했습니다. 그 자체로 영화의 방향성을 보다 확고하게 잡아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거죠. 애초 영화의 소품이라는 것은 모두가 감독의 의지하에 설치되는 것인데, 그 모든것에 방향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걸 나쁘게 볼 수는 없죠.


영화는 게임을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게임을 하였는가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단순히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이 과연 게임 제작자가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에게 바라는 유일한 가치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게임 제작자는 게임의 곳곳에 신경을 쓰며 그 나름의 규칙을 깔아둡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플레이어를 위해서죠. 게임 제작자에게 있어 플레이어는 이미 게임을 즐겨주는 시점에서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입니다. 제작자는 그들이 보다 게임을 다채롭고 흥미롭게 즐기길 기대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스터에그를 심어 두는 거죠.


이것은 당연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치환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치환됩니다. 조금 더 한정짓자면, 대중문화를 즐기는 이들에 대해 적용되는 이야기가 됩니다. 너희들이 밥도 안나오고 쌀도 안나오는 것에 열광한다 주변에서 비웃음 당하지만, 니들이 하는 행동은 세상을 보다 다채롭고 흥미롭고, 보다 살만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오직 효율적이고 이성적이고 물리적인것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라고 영화는 역설하죠.


제가 눈물을 터뜨렸던 시점은 아이오아이의 직원이 세번째 미션을 성공하고 기뻐하는 그 장면때였습니다. 그 직원은 이전부터 나는 이 게임을 잘 안다, 나는 자신있다는 태도였고, 실제로 게임을 클리어했죠. 비록 이 장면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지만, 적으로 설정된 이들에게도 대중문화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다 확실히 드러낸 장면이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별 거 아닌데, 직접 보면 다릅니다.

...참고로 이미지의 아이오아이랑은 별 상관이 없겠네요.


몇차례 영화 에이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이 구상하고,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AI는 기계 데이빗이 가진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육체가 무기질로 구성되어 졌다고 해서, 그가 처음엔 프로그래밍된 것으로 움직였다고 해서, 그가 이후 가진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영화는 어떠한 의미에서 이러한 AI의 궤를 잇습니다. 가상의 세계가 있고, 현실의 세계와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의 세계가 현실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현실을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면, 과연 가상의 세계를 가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샤이닝을 영화에 꼭지로 삼은 것이 단순한 우정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야기했던 이유입니다.


영화의 결말은 현실도 게임도 적당히 즐기자입니다. 가상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를 살아가는 힘이되고, 때론 목적이 되고, 더 나아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그것을 현실로 보지 않을 이유가 있겠냐 물으며, 그것을 뒤집어 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은 현실이기에 즐길 이유가 있다고요. 대중문화의 창작자로서 참 편의적인 결말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깊이가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이것에 강하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할리데이와 웨이드의 마지막 대화입니다. 아바타 상태의 웨이드와 어린 할리데이, 나이든 할리데이는 각기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를 의미합니다. 게임 속 할리데이는 스스로가 아바타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할리데이도 아니라고 이야기하죠. SF적으로는 디지털화된 할리데이의 또 다른 자아라고 보는 것이 사실 보편적입니다만, 영화적으로 보자면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즐겨온 콘텐츠를 만든 선배격인 존재입니다. 할리데이 개인만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메타적 측면에선 현실의 스필버그라고도 볼 수 있으며, 지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미래라고도 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어린 시절의 할리데이는 단순히 할리데이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그는 웨이드의 어린 모습일 수 있고, 게임을 즐긴 다른 이들의 어린 모습일 수 있습니다. 과거를 상징하는 그는 지극히 과묵합니다.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과거가 되어 버리니까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우고 또한 대상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웨이드는 단연 우리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웨이드의 마지막 궁금증, 그러니까 게임 속 할리데이는 누구냐는 물음에 대한 할리데이의 대답이 고맙다로 끝나는 것은 또 하나의 현실에 대한 완전한 긍정(현실과 가상을 반분하지 않는다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임과 동시에, 작가가 작품에 드러나는 것을 쫓아 끝없이 탐구하려는 관객과도 닮아있죠.



웨이드나 할리데이 등의 캐릭터가 스필버그를 닮은 게 우연일까요? 지금은 거장으로 불리는 그지만, 90년대초까지만해도 스필버그는 블록버스터나 할 줄 아는 감독이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평은 쉰들러 리스트나 라이언일병 구하기 등으로 완전히 반전시켰지만,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꾸준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영화는 물론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그 넓어진 저변이, 스필버그가 지금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감각을 갖고 있는 사유라 보는 이들도 있을 정도죠. 레디 플레이어 원은, 블록버스터라는 시장을 개척하다시피한 그의 일면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영화에는 꽤나 심각한 설정들이 위치해있지만, 그것이 영화의 끝까지 가진 않습니다. 타락해버린 듯한 악당은 웨이드의 깨달음과 감동을 공감하며(결국 그 자신도 게이머 였기에) 개심해버립니다. 이것은 웨이드의 깨달음이 관객과 함께 할 때 그만의 힘과 의미를 가집니다. 결국 돈돈하는 이들조차 마음 한 구석엔 그들의 인생작으로 여기는 영화나 음악, 게임 하나쯤은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음을요.


거장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발상은 지극히 유치하고, 거장 특유의 우직함 때문에 인상깊은 변주도 없습니다. 들었다놨다하는 테크닉도 없고요. 2000년대 이후 줄기차게 이용되어온 소재(당장 비슷한 이야기를 만화 유레카 리뷰에서 몇번이고 했던 듯 합니다. 정말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해요)와, 그것과 대비되는 노장 감독 특유의 센스가 별다른 시너지를 불러일으키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영화 그 자체가 가진 힘이 있습니다. "야, 너는 락 음악 처음에 뭐 들었냐"라고 이야기할 때, 폼나게 "나? 딥퍼플 들었지, 너는?"이라고 반문하고 "나는 블랙사바스"라고 대답하곤 합니다만, 실제론 버즈나 본 조비같은 경우가 태반인 걸요. 영화는 그걸 온전히 드러냅니다. 거장이니까 폼 잡을 필요도 없다 이야기하며, 대중작품의 본질을, 어쩌면 누군가에겐 그리 상징적이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고, 삶을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죠.




급하게 써서 두서가 없습니다.


그냥 나오면서 읊조렸던 내용이 차라리 더 낫다는 생각도 드는데, 막상 쓰려니까 잘 안되네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4.29 15:14


 먼저 


이야기해야 겠죠.


노골적인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즉,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이들은 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번역에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다소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대한 관객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대중영화기 때문에, 이러한 스포일러가 자칫 관람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전의 포스트는 그래도 몇번 생각하면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떠오르는 정도였다면, 오늘 다룰 글은 이 캐릭터의 상징성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라는 정도로 노골적으로 다룰 예정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기획의 승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데, 헐리우드에서조차 어벤져스의 성공이 놀라인 일로 취급되는 걸 보면, 어벤져스의 부족한 점에 대해 지적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집니다. 선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니까요. 코믹스와의 정체성 논란도 그러한 의미에서 그만의 상징성을 갖고 있고요.


그러므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조심스레 닫기 버튼을 눌러주시고, 영화가 어떻게 전개되고 결말지어진 것인지에 대해 다소 혼란스러운 분들이 이렇게 보고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며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스포일러 경고는 여기까지 입니다.




 2부작의 첫번째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는 것은 어벤져스가 아직 완전히 뭉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토니는 토르와 캡틴을 위해 각기 마법벨트와 새로운 방패를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다뤄졌었지만, 이들과 접점이 없었기에 이것이 전해지지 못했죠. 우주에서 타노스와 맞섰던 아이언맨팀, 지구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지키려 했던 캡틴 팀, 타노스에게 복수를 위해 무기를 만들던 토르 팀으로 나뉘어 집니다.


이는 수십에 달하는 히어로 캐릭터들의 비중을 적절히 분배함과 동시에, 이야기를 보다 원활하게 구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연스레 각 팀의 리더격인 캐릭터를 제외하면 다소 묻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노스와 직접적으로 맞서야 했던 아이언맨팀은 이 부분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만, 특별한 능력도 없고 그나마도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구속된 지구팀에겐 다소 치명적으로 작용합니다. 팀 내 최강자가 아니냔 이야기를 들었던 캐릭터들(비전이나 스칼렛위치나 헐크)이 영화 최후반까지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했죠. 반대로 토르팀은 초반부 타노스와 접점을 만든 후 막판의 역전을 위한 카드를 들고 등장하기 때문에 굉장한 무게감을 갖고 있습니다. 적절한 유머까지 휘둘러 대고요.


어벤져스를 뭉치게 하는 것이 페이즈1에서 쉴드였다면, 인피니티 워에선 타노스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즉, 이 영화는 어벤져스가 다시금 어벤져스로 뭉치기 위한 과정의 영화라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모이기는 했지만 화학적인 결합은 이뤄내지 못했던, 어벤져스1의 로키 침입 이전의 어벤져스라고도 볼 수 있죠.


그러한 측면에서 원년멤버들을 제외한 캐릭터들 상당수가 소거 처리되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면서도 납득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넘어, 결자해지식의 보다 완성도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적극적인 의사를 보인 것이니까요. 더욱이 죽었다 살아나는 캐릭터, 인과를 뒤집는 능력까지 보여주며 "어차피 살아날 거 아냐, 뭘 그리 심각하게 굴어."라는 시니컬한 태도조차 이야기적 구조와 2부작의 첫번째 영화라는 점을 통해 반박해 버립니다. "어쨌든 여기선 죽었어." 라면서 말이죠.


그렇기에 영화의 진행자 역할은 타노스가 담당합니다. 이 영화는 여러 장해를 넘어 타노스가 우주의 보물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영화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실제로 영화는 타노스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 이야기하며 끝이납니다.




 주인공은 타노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타노스라고.


이것은 타노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뒤섞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첫째로 타노스가 관객들이 기대하던 절망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아니라는 점, 둘째로 흔히 서브컬쳐에서 흔히 이야기하던 주인공 보정을 여러차례 받는다는 점, 셋째로 악당 캐릭터하면 흔히 떠올리는 악랄함과 비겁함 등으로 대변되는 악당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 고루 작용한 결과일 겁니다.


즉, 아예 차원을 달리할 거라 생각되었던 타노스 일파의 물리적인 위협은 생각보다 약합니다. 타노스의 자식격인 블랙오더는 물론 인피니티 스톤을 하나씩 모아가는 타노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고편에서 "어? 타노스한테 저렇게 맞으면 바로 죽을 텐데..." 라는 식으로 연출되었던 장면들조차 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여러 장면의 하나일 뿐이라는 겁니다. 타노스의 공격에 버티던 캡틴 아메리카의 인상적인 장면도 사실 별 의미 없는 것이었고요.


그러나 그렇기에 타노스는 히어로 영화의 악당 캐릭터가 갖추어야 하는 미덕, 대비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가 십년째 계속되면서, 각 캐릭터들은 그만의 주제와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타노스는 히어로 캐릭터들의 성질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경우는 자신이 저질렀던 혹은 방치했던 일에 대한 속죄, 그리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자신의 공학자적 능력을 통한 히어로로서의 각성과 활동입니다. 그에게 나타나는 적은 모두 과거에 자신(혹은 아버지)이 저질렀던 일들의 역풍과도 비슷한 것이었죠.


캡틴 아메리카는 결코 계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절대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건 때론 표현의 자유일 수 있고, 때론 생명의 소중함일 수 있으며, 때론 국가로부터의 권리의 보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천부인권적인 자연권을 상징하는 이 캐릭터는 자신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상하면 정말 고지식할 정도로 아무런 타협없이 맞서 싸웁니다. 과거 2차세계대전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 누구와도.


토르는 세계의 수호자라는 책임과 그를 위한 의지와 능력을 강변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어떠한 역경에 닥쳐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포기하는 일 없이 세계에 닥친 피해를 복수하는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가장 처절하고, 그 누구보다도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스타로드는 단연 가족애를 상징합니다. 이 가족애는 단순히 혈연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사랑이 배제된 것도 아닙니다. 함께 하기에 그래서 더욱 함께하고 싶고 서로를 지키고 싶은, 그래서 때론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타노스는 이들 각자와 대비됩니다.


그는 자신이 내건 '해결책'이 당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그것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똑똑하기만했을 뿐 결국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해결하지는 못했던 토니 스타크와 닮아 있습니다. 그가 토니에게 표현하는 경의나 알은 척은 자신이 토니와 닮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시그널과도 같았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여러 시도를 하지만 온전히 성공하지만은 않았던 자신과 토니가 겹쳐보였던 것이죠.


동시에 그는 캡틴아메리카와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하나의 생명을 버림을 통해 다른 절대다수를 살리는 일을 거부하고, 그의 의지를 이은 비전 역시 그와 비슷한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타노스가 행하는 절반을 소멸하는 것을 통해 다른 절반을 구원하겠다는 타노스의 철학과 완전히 대치됩니다. 캡틴과 타노스는 공존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캡틴은 그나마 타노스에게 저항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바로 털렸지만.


본작에서 토르는 두 말할 것 없이 가장 강력하며, 가장 처절하며, 가장 어벤져에 어울리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세계를 파멸하는 것을 통해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타노스는, 세계를 수호하고 관리하는 것을 통해 세계를 온존시켜왔던 아스가르드의 행보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입니다. 그간 토르 시리즈는 영화에서 가장 겉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체적인 평가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는데, 구조를 따져보면 이 영화는 토르의 실패기라도 봐도 될 정도로 주인공의 포지션에 근접해 있습니다. 타노스와 이 정도로 강렬한 서사를 보여주는 캐릭터도 따지고 보면 얼마 없죠.


가모라가 매개가 되어 펼쳐지는 퀼과 타노스의 드라마는 가족애와 희생이 그간 히어로 캐릭터와 악당 캐릭터에게 어떻게 작용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계기가 되어 줍니다. 딸의 남자친구를 대하는 성인남성의 복잡한 태도가 녹아있는 타노스의 태도가 색다른 것도 있지만, 사랑과 애정이 일을 어떻게든 좋게 풀리게 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이전작과 달리, 영화는 끊을 건 끊고 버릴 건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퀼이 단장의 마음으로 가모라에게 총를 쏘았을 때, 타노스의 입에서 마음에 든다는 말이 나온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거죠. 동시에 타노스는 진심으로 사랑한 딸을 자신의 손으로 버리는 것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그 자신은 그러한 과정이 필요한지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건 패러디 포스터입니다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보다보면 왜 저 배우를 저런 역할에???라는 물음표를 띄우게 했다 차후 수습하는 경우가 적잖았죠. 언제든 서브 시나리오를 만들었을 때 그걸 소화할 수 있는 배우를 뽑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20세기 이래로 대중작품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지역차별,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등 이미 학술적으로는 반박과 정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특정한 이념이나 이론들을 작중 녹이곤 합니다. 진행중이거나 논란중인 사안들에 대한 담론을 대중작품에서 다룬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어벤져스3 인피니티워 역시 지극히 안전한 선택을 통해 악역의 이념을 형성하였습니다.


학문의 영역을 넘어 피부로 체감되는 현상으로 작용하는 현실이 닥쳤기에, 그것은 과거 어떠한 작품에서 다뤄졌는지 이미 학술적으로 도태된 이론인지 등등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진 않습니다. 보다 극적인 이야기로 작용케 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과학적 내지 학술적인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의 왜곡이 가해지는 것도 사실 그렇게 낯선 일도 아니고요. 모든 창작물은 우화적 성격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타노스의 이념은 과거 제한된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생산량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제한될 수밖에 없으므로, 인구가 늘어나다 생활의 질이 악화되며 급감하고, 그로 인해 위 상황이 반복된다는 맬서스 트랩과도 같습니다. 물론 어벤져스 세계관은 무한에너지 이야기가 대놓고 나오는 맬서스의 덫은 이미 반박될 대로 반박된 근미래적 sf세계관이고, 이 맬서스 트랩은 30년도 전부터 대중문화에서 적잖게 활용되었던 이론입니다. 물론 단순해서 더 무서운 악당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할 뿐더러, 그것이 엔트로피의 증가로 치환되는 개념이냐면 어떻겠느냐는 답도 내놓을 순 있겠습니다만, 일단 타노스가 일종의 정형을 갖춘 악당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신이 구원자라 여기는 악당 캐릭터는 사실 더 공존의 여지가 없는 이로 여겨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쨌든 타노스는 자신의 구원의 순례를 마치고, 고난을 넘어 목적을 달성합니다. 설사 그 자신의 곁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그 자신의 희생을 통해 보다 고귀한 목적을 달성한 거니까요. 그의 관점에선, 세계는 구원받은 것이고, 보다 평화로워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2부작 중 첫번째. 그리고 닥터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단계라는 말이 그의 발목을 잡을 거란 확신을 갖게 하네요. 더군다나 가장 강력한 복수자들을 만든 그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내년 어벤져스4가 개봉하기까지 두 편의 영화가 남았습니다.


앤트맨과 와스프. 그리고 예. 캡틴 마블이죠.


앤트맨이 처음 개봉할 때부터 뭔가 심상찮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었습니다. 세계관을 확장하는 전통적인 소재를 여기저기서 끌어왔거든요. 그리고 차후 디즈니가 fox를 인수하면서 다른 히어로 시리즈까지 합칠 수 있는 큰 그림 아니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중입니다.


저 둘은 각자 영화의 대체적인 방향성을 떠올리게 만들어 줍니다. 양자역학을 통한 다중세계관을 다루며 새로운 세계관의 기원이 될 것이라 밝혔던 앤트맨과 와스프. 그리고 단연 가장 강력한 히어로로서 등장할 것이라 이야기되던 캡틴 마블의 등장이 예견되어 있기 때문이죠.


앤트맨과 와스프는 이미 한 차례 닥터 스트레인지와의 연계가 이야기되었을 정도로 과학과 마법의 상이한 이미지를 강하게 결부시키려는 시도가 예견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설사 모든 인피니티 스톤이 타노스에게 빼앗겼다 하더라도, 세계의 존재법칙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제기하여 예측할 수 없는 한 방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거죠. 닥터가 살펴보았던 수십만 가지의 경우의 수 가운데 토니 스타크의 슈트를 '따위'로 지칭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 베재되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하겠네요.


두 단어로만 표현하겠습니다. '시간여행', 그리고 '경우의 수'. 아마 팬서비스 차원에서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제한적으로 얼굴을 비추거나, 이미 죽은 캐릭터들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방식으로 등장할 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그만의 개성을 인정받고 또 어느 정도의 흥행을 기록한 앤트맨을 이 정도로 꼭꼭 감추는 건 분명 중요한 한 방이 예견되어 있다는 소리겠죠. 무엇보다 리얼타임에 맞춰 영화를 개봉하던 흐름이 최근 영화에선 크게 뒤바뀌어 영화 본편과 쿠키 영상의 시차가 크게 나는 경우도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피니티워와 어벤져스4를 충실하게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공식 이미지는 아닙니다. 여하튼 캡틴 마블은 어벤져스 개봉을 즈음해서부터 계속해서 화두에 올랐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여성히어로이자- 이름부터가 마블이니까요. 그래서 캡틴 마블을 맡는 것이 누가 될 지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tv시리즈의 스카이가 캡틴 마블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죠.


캡틴 마블은 사실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타노스가 생각보다 약하게 나왔다고는 하지만,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은 타노스의 진정한 힘은 아직까지도 채 모두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타노스와 나름대로의 싸움이 가능한 것은 현 시점에서 토르정도밖에 없는 상황에서 캡틴 마블과 같은 존재의 등장은 필연입니다. 그래도 치고 받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건데, 캡틴 마블은 포지션상 DCFU의 슈퍼맨입니다.


더군다나 캡틴 마블은 여성입니다. 맬서스 트랩이 생산 기술의 혁신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존재인 여성을 과연 타노스가 예상했었을 까요? 생명의 신비가 여성에 대한 신성으로 치환된 문화권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여성의 성질을 이용하여 이야기화한 에일리언 등의 여러 작품들도 존재합니다. 우연일까요? 우주에서 온 캡틴 마블이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또 다른 구원자 역할을 한다는 게?


저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기대를 하는 것이, 소소한 가족애(앤트맨과 와스프)와 성장하는 여성(캡틴 마블)의 이야기는 디즈니가 판에 박힌 듯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꾸준히 발전시켜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흔히 이야기하는 PC적 요소가 다소 폭주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블랙 팬서에서 보여준 절제미를 생각해보면.... 역시 앞으로 개봉할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사그라들지를 않네요.


동시에 이번 영화에서 모든 히어로가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활약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헐크처럼 의외성을 갖추기 위해 아예 배제하다시피한 캐릭터도 있고, 의도적으로 비슷한 액션이 가능한 캐릭터들 위주로 생존된 경향성도 보이기 때문에, 액션의 규모나 합도 보다 다채로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작이 개성의 분배라면, 다음 작품은 능력의 분배에 가깝다는 거죠.




 이별연습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의 거대한 줄기를 잡고 있는 올드 캐릭터 몇몇이 죽을 거라 예상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죠. 새로운 흥행 기록을 써내린 블랙팬서는 물론, 얘만큼은 특별하다며 계속해서 부각되었던 스파이더맨, 그리고 이야기에 반전을 잡아줄 수 있을 거라 기대되었던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신규'에 포함될 수 있는 캐릭터 상당수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이들이 영화에서 하차했다고 여기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상술했듯 이미 죽었다 다시 살아난 캐릭터도 있고, 무엇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가장 강력한 인과뒤집기 능력이 전작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었기 때문이죠. 이별 연습이라 이야기한 것도, 신규캐릭터와의 잠깐의 이별이 종래엔 올드 캐릭터들과의 완전한 이별의 전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도 간간히 까메오로는 얼굴을 비추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후 영화 시리즈에서 올드 캐릭터들이 신규 캐릭터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나 지대하다는 점으로인해 영화의 종합적인 완성도와 신규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나는 영역이 줄어든다는 점이 작용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타노스 이후 과연 어벤져스의 새로운 적은 누가 될까요. 그리고 그때의 주축 멤버는 또 누가 될까요. 이번의 세대교체는 앞으로의 미래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흐름의 선례가 되어 줄 겁니다.


이야기적으로는 원년 멤버들을 통해 일종의 결자해지를 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가지치기를 통해 원년멤버의 퇴장 무대를 마련한 것이죠. 지금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유지해왔고, 또 인기를 끌었던 그들에게 걸맞는 최고의 무대를 헌사하기 위해서 앞으로를 펼쳐나갈 캐릭터들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후반부에 배치하는 결정을 한 것이죠.


구체적으로 어떠한 멤버들이 하차하느냐에 대해서는 드러나진 않았습니다. 과연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이 아니거나 토니 스타크가 없는 어벤져스 세계관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토르가 없는 아홉세계를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다뤄야 우주적 규모의 진중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캡틴 아메리카가 없는 상황 속에서 쉴드와 같이 다른 존재들을 묶어둘 수 있는 상징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참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4.28 15:19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어벤져스의 대성공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목받아온 초기대작입니다. 그런만큼 부담도 엄청났고, 사람들의 예상과 기대를 얼마만큼 뛰어넘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은? 역시나였습니다. 사람들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은 요소들이 곳곳에 담겨 있어 감탄을 자아냈죠.


그래서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스포일러와의 전쟁을 앓게 되었습니다. 파격적인 전개와 흐름으로 인해 스포일러가 영화의 재미를 크게 해칠 수 있다 우려를 가졌던 것이죠. 실제로 주연배우들조차 촬영 중 자신의 각본 외엔 다른 인물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야기하기도 했고, 개봉 즈음엔 스포일러는 안된다는 별도의 영상을 찍기까지 했으니까요.


실제로 영화 개봉 이후 곳곳에서 스포일러가 터져나왔습니다. 저같은 경우도 sns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막연하게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게임 채팅창에서 스포일러를 하는 이까지 대비하지는 못했거든요. 그리고 유머글이랍시고 곳곳에 스포일러를 올려두는데... 참 당혹스러웠습니다. 개중엔 가짜 스포일러 글도 있었지만, 진짜인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있었네요. 


여하튼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 다룰 어벤져스 인피니티워에 대한 해석과 차후 전망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의 주된 줄기를 추측할 수 있는 정보들을 담고 있을 겁니다. 노골적으로 스포일러를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한 번만 생각해봐도 얘가 뭔 이야기를 하는구나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는요. 그러므로 영화를 아직 감상하지 않은 분들은 이 글을 읽는 걸 피해주시면 좋겠네요.


세대교체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오는 상황 속에서, 마블의 선택지는 무엇이 되었을지, 그리고 그 선택을 관객은 얼마나 긍정하게 될 지. 흥미로운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언급하는 것이 세가지 있습니다.


첫째. 이 영화는 2부작의 첫번째 영화다.


둘째. 스포일러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셋째.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타노스다.


영화를 보기 전엔 이게 대체 무슨 뻔한 이야기냐 싶긴 할 겁니다. 당연히 어벤져스4가 내년 개봉하는 데다, 그 사이 개봉하는 캡틴 마블과 앤트맨과 와스프라는 영화가 있어 당연히 2부작의 하나일테고. 10년을 길게 이어져온 시리즈고 신규 캐릭터는 계속해서 등장하니 당연히 어느 정도의 가지치기는 있을 게 뻔한 상황이라 스포일러 피하기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십수명의 히어로 캐릭터와 대립해야 하는 타노스에 커다란 비중을 줄 거라는 건 너무 뻔한 이야기니까요.


문제는 이 뻔함을 유지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에서 관객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며, 그 나름의 비중의 분배와 완성도를 높이는 시도를 했다는 점입니다. 그걸 빌런인 타노스를 중심으로 해서요.


이게 지금 인피니티 워가 호평받는 절대적인 요인이라 봅니다. 지금부터 세세하게 하나씩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이렇게 보니 정말 많네요. 실제론 여기에 적 캐릭터까지 다뤄야 하니...


첫째. 이 영화는 2부작의 첫번째 영화다.


마블 시네마틱 무비는 그간 반복해서 정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히어로의 각성과 성장, 그리고 완성에 일정한 패턴이 있어 캐릭터만 바뀌고 엇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거죠. 예컨데 아이언맨의 첫번째 영화와 블랙팬서는 대립하는 이념과, 선대에 대한 반성,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대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윽고 영웅으로써 거듭나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요.


이것은 기나긴 유니버스에 속하는 히어로 무비가 가질수밖에 없는 한계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인피니티 워는 2부작이라는 새로운 토양이 제공되며, 그 나름의 방식으로 색다른 방향성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편으로 독립된 영화 한편과 유니버스로서의 이야기적 완결성을 동시에 보여줘야 했던 영화라면, 지금과 같은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즉, 이 영화는 기존의 그 어떠한 마블 영화보다도 후속작을 더욱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촬영을 인피티니워와 4가 동시에 하기도 했거니와, 기획 자체의 출발도 같은 지점에 있다 나중에 분화된 케이스니 이러한 인상을 갖게 만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인피니티 워의 강점은 이러한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면서도, 돌이켜보면 기존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의 정수나, 기대했던 거대한 액션도 꽉꽉 눌러담긴 성찬이었다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기대했던 다양한 캐릭터의 조합, 그들이 보여주는 휘황찬란한 액션, 그리고 진중한 마무리까지.


과정이 부각되는 영화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벤져스의 초창기 팀원 전원이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마주하지 않았다는 점이겠죠.


애초 배경이 우주기 때문에 타노스와 가장 많이 엮일 것이라 예상되었던 우주팀. 실제로 타노스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타노스와 직접적으로 은원이 얽히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죠.


둘째. 이 영화는 반드시 스포일러를 피해야 하는 영화다.


스포일러라는 말 자체가 망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영화가 스포일러를 권장하냐는 생각이 드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하고요. 다만 어떤 영화는 다양한 정보를 알고 갔을 때 그 감동이 배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데 당장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안에서도 이러한 영화는 존재합니다. 마틴 루터와 말콤 엑스의 관계도를 재현한 블랙팬서가 그렇죠. 결말부에서 흑표당에 대한 이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트찰라의 모습은 미국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비로소 감동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다행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그러한 영화에 포함되진 않습니다. 이전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산하 영화를 본 정도라면, 충분히 무리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수준입니다. 페스티벌로 흔히 비유하는 게 대표적인 예겠네요. 축제가 누군가에게만 개방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가 충격적인 전개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은 사실 불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영화의 감독인 루소 형제가 영화 시작 5분만에 타노스가 왜 강대한 악당인지를 관객들이 알게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이러한 전개로 펼쳐질 것이라는 것에 힘을 실어주었고요. 실제로 영화 시작 얼마만에 인기 캐릭터와 중대한 떡밥을 쥐고 있다 평가된 캐릭터가 연이어 사망하고, 최강의 힘을 갖고 있다 이야기되는 캐릭터들이 연달아 타노스에게 패배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앞으로 보여줄 분위기를 대략적으로 짐작하게 만들어 줍니다.


특히 '가지치기'가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과감하고, 또 설마 결자해지식으로 어벤져스 원년멤버들이 중심으로 이후 이야기가 전개될 방식으로 이뤄질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당장 저만해도 가장 죽을 확률이 높은 캐릭터는 상징성 있는 캡틴이나 토니,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기 위해선 끈질긴 면모를 보여주었던 로키가 비극적으로 위기감을 높여줄 것... 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었는데 말입니다. 특히 엄청난 흥행과 캐릭터적 완성도, 이야기적인 재미를 보여주었던 이들이 그렇게 깔끔하게 물러나게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세대교체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오는 와중에, 올드 캐릭터들의 비중을 자연스레 그들에게 넘겨주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예상을 전부 빗나가게 만들면서도, 그것이 팬들의 기대와 인식에 빗나가지 않게 충분히 무게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감히 말하건데, 주인공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셋째. 이 영화의 주인공은 타노스다.


벌써 십년 전의 기억이네요. 퍼스트 어벤져가 개봉할 당시 세바스찬 스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가 맡은 캐릭터가 원작에선 캡틴 아메리카 사망 후 캡틴 역할했었다. 그가 캡틴 아메리카가 될 지도?" 라는 내용의 인터넷 기사를 보곤 "영화랑 만화랑 다른 데 그게 무슨 상관. 그게 만약 이뤄져도 대체 몇 년 후가 될 지 모르는 이야긴데 설레발은." 이라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 때가 왔습니다. 정말 마블의 거대한 그림에 압도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 마블이 거대한 그림의 끝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타노스라는 악당입니다. 과연 이후 계속되는 마블 영화에서 타노스 이상의 악당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이 될 정도로 강대하고 위협적인 적이 등장한 것입니다.


동시에 타노스는 지금까지 등장했던 히어로 캐릭터들과 그만의 접점을 만들며 자기의 개성을 인정받아야 하며, 동시에 그들 각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보여야 하는 높은 난이도를 지닌 캐릭터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타노스는 동분서주하며, 사실상 이야기의 진행자와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며, 여러 지역에 있는 히어로들과 맞서 싸웁니다. 이건 사실 빌런보다는 탐구적 성격을 갖고 있는 주인공 캐릭터가 흔히 보이는 모습이죠.


실제로 영화상 타노스의 행보는, 창작자의 행보와 닮아 있습니다. 영화의 비중과 분배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기능합니다. 이 과정에서 디테일한 부분에 일종의 설정구멍과 같은 모습을 남기기도 합니다만, 그걸 뛰어넘는 연기와 압도적인 연출로 묻고 지나가게 만듭니다. 타노스의 존재 자체가 작품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히어로 유니버스를 메타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되어 주기까지 합니다. 타노스의 행보는 지난 십년의 세월동안 쌓아온 금자탑을, 어떠한 방식으로 화려하게 즐기고 또 물러서는 지에 대한 은유로도 기능합니다.


영화적 완성도와 캐릭터의 기능에 대해 상당히 고민한 흔적이 녹아 있었고, 이러한 발상을 히어로 캐릭터가 아니라 빌런 캐릭터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는 건 솔직히...예. 감탄했습니다.


타노스는 영화에서 그간 캐릭터들의 개성과 매력에 대치되는 방식으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행보를 그대로 따릅니다. 예컨데 캡틴 아메리카는 생명의 절대성을 이야기하며 비교의 불가분성을 이야기하며 타노스의 철학과 철저히 반대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토니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자가 가지는 책임과 그로 인한 도덕성으로 인한 고통을 타노스와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고요. 얻는 것과 잃는 것의 고통을 통해 행동에 나선 토르의 모습은 잃은 것을 통해 얻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타노스와도 대비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히어로 캐릭터들은 결국 종래에 멸망의 위기를 초래하고, 그러한 사랑을 인정하면서도 가차없이 쳐내는 모습의 타노스는 되려 희생을 알고 있기에 마치 이전의 히어로와 같이 위기를 극복해냅니다. 히어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요소들이 이젠 빌런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지구의 인피니티 스톤을 지키는 지구팀. 이야기의 고저차를 줄여주고, 몰입의 기준점을 마련해줍니다.


영화는 개봉과함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기대작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국에선 앞으로의 전개를 반대로 해석하는 번역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합니다. 예컨데 닥터의 대사는 포기가 아닌 또 다른 계획을, 타노스는 자신의 실패에서 비롯된 존재가 아니었음을, 이후 등장할 히든카드가 닉퓨리의 엄마가 아니라는 점 등....


물론 단점도 있는 영화입니다.


일단 SF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간의 격돌을 상당히 편의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외계인과 과학자, 마법사가 협력하는 세계에서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가장 이질적이었던 존재가 적으로써 등장한 것과 나란히 놓을 수는 없는 거죠. 오락물로서의 가치를 우선시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묘사를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이건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기는 좀 힘든 면이 없잖아 있겠네요. 바꾸어 말하자면 그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된다는 소리입니다.


파워밸런스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사실 다양한 개성의 다양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니만큼, 이 작품은 파워밸런스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위해 존재하는 작품이니만큼 파워밸런스에 그만큼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비슷한 상황은 최대한 지양하고, 나란히 비교되는 상황 역시 반분하려한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나쁘게 보는 요소는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야기를 보다 탄탄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줄인 영화라는 것입니다. 예컨데 왜 외계인이 영어 써라는 질문에 대해 체내에 설치되는 자동번역기가 사실은 있었다더라라는 식으로 어지간한 sf장르의 콘텐츠가 다뤄왔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굳이 "이제까지 로키나 토르, 그리고 아더나 타노스가 영어 쓰는 거 다 봤으니까 그런 거 안다뤄도 되죠?"라면서 넘어간다는 거죠. 그 정도로 인물이 이 정도로 많은 영화를 다루기는 까다롭다는 겁니다.


호크아이나 앤트맨 등 예고편에 나오지 않은 캐릭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영화 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왔죠.


개인적으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중상 정도에 위치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가 막히게 독창적이거나, 끝내주게 캐릭터의 매력이 흘러 넘친다거나, 당혹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편의적으로 팀을 나눈 것은 사실 있을 법한 일이지만, 그것조차 뛰어넘는 연출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는데... 역시 쉽지는 않았네 보네요. 물론 어벤져스4에서 기대할법한 장면이긴 합니다. 여전히.


여하튼 지금까지 편의적으로 묘사되어온 지극히 강대한 적에 대한 그 나름의 접근방식은 흥미로웠고, 더욱이 비장의 카드를 숨긴 상태에서 다음 영화에서 결말을 짓는다는 한계가 작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들기 까다로운 작품인 건 분명하다는 거죠. 영화는 높은 지향점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도전합니다. 하지만 그 도전의 과정은 철저히 안전하게 그간의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하고 있죠. 이 부분은 영화를 심심하게 만드는 요소지만, 불가능할 것같았던 기획을 현실화시키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 영화는 앞으로 돈 오브 저스티스와 저스티스 리그와 많이 비교가 될 겁니다. 비슷한 인식을 했고, 엇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타개하고 긴장감을 조성하려 했으며, 마찬가지로 널리 알려진 방식으로 정석적인 마무리를 할 준비를 했죠. 하지만 힘을 줘야 하는 부분과 빼야하는 부분을 완숙하게 조절하여 최대한 많은 관객들이 가장 크게 만족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서야 어벤져스4가 바로 내년에 개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촬영이고, 애초에 기획은 한편으로 개봉하는 것이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만, 이 정도로 짜임새있게 스케줄을 관리하는 걸 보니 감탄스럽다는 말 밖에는 안나옵니다.


다음 글에선 영화 해석과 차후 전망 예상에 대해 다루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족이지만, 왜 뜬금없이 캡틴마블이 인기검색어 1위에 올랐는지 알 수 있었네요. 아직까지 구체적인 능력이나 모습도 공개되지 않은 완전한 신규캐릭터에 대해 이렇게까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정말 엄청난 능력입니다. 다른 능력도 뛰어나지만, 현 시점의 마블이 가장 놀라운 능력은 사람들이 뭘 기대하는지에 대해 적확히 짚어내는 능력일 거고요. (예고편 낚시로 쓰인 장면이 실제로 영화에서 쓰였다면 영화적으로는 더 좋은 평가를 받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4.28 01:45


 본격적인 


분석 내지 해석글은 나중에 쓰기로 하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지 않은 대략적인 감상평을 남기자면.


잘 쌓아놓았기에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건지, 몇 달 전 어쩌다 보게된 글이 영화의 정말 시덥잖은 부분을 정확하게 맞춰서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그 글은 각본을 봤네 어쩌네 였는데... 실제로 영화 제작사에서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 형식으로 의도적으로 흘리는 경우도 있다곤 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숫자가 엄청나고, 근 10년을 꾸려온 시리즈의 클라이맥스기 때문에 치밀한 이야기적 인과나, 세련되고 섬세한 방식의 행동 묘사, 그리고 다양한 관계도의 형성은 이뤄지지 못합니다.


사실 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아직도 어벤져스의 첫번째 영화의 미덕을 절묘한 균형의 분배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인피니티워는 그 어벤져스의 주요 캐릭터의 숫자의 두 배가 가볍게 넘어갈 뿐더러, 제작 난이도나 연출방식은 제곱이라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tv시리즈도 아니고 그걸 일일히 묘사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러한 측면에서 인피니티 워는 딱 예상한 만큼의 만족도를 보여준 영화입니다.


사실 이러한 평가도 상당히 후하다고 볼 수 있죠.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니까요. 역사에 남을 기록적인 흥행을 보여준 전대미문의 오락 영화 시리즈의 피날레를 기대하지 말라는 게 사실 더 이상한 일인 거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흥미를 느낀 사실은, 피날레를 위해 아낄 건 아끼면서도 관객들이 즐길 수 있을 만한 요소는 꽉꽉 눌러담은, 정말 기억할만한 오락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수십년간 사람들이 보아왔던 익숙한 전개를, 과연 어떻게 비틀어야 할지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녹아있었고, 무엇보다 그것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게 하기위한 세심함이 엿보였습니다. 대중작품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 하나를 잘 보여준 것이죠. 이것이 시리즈물이라는 한계가 있는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건 시리즈를 지속할 수 있다는 마블측의 자신감이기도 했고, 또 이것을 이렇게 소화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자랑이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기대작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예상글과 (자칭) 유출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몇몇은 맞는 것도 있었고, 또 몇몇은 틀리기도 했죠. 하지만 이러한 예상이 영화의 재미를 즐기는 데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정도로 예측하기가 힘든 영화인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스포일러를 피하라 외쳤던 겁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4.18 21:36


 이 글은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개봉한 이후 작성했던 글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블로그에서 썼던 글을 삭제한 후 이곳으로 옮긴 것입니다. 지금 시점에 맞게 어느 정도 시점도 조절하고, 나름대로 서술도 덧붙여 보려 합니다.






그날은 아침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5월답지 않게 살짝 더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보러 갔었습니다. 솔직히 마음 한 켠엔 이 영화가 별로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죠.


지금 와서 생각해도, 굳이 아침 시간대에 방문하여 볼 만한 영화였다고도 생각이 들지 않고, 세부적인 사안에 대한 담론을 나눌 의욕도 생기지 않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의 감상이, 2편 이후 개봉한 다른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대동소이했거든요. "의욕은 인정하지만, 오리지널과 2편에는 못미친다."는 것 말입니다.


사실 별로 할 말도 없습니다. 터미네이터가 영감을 준 무수한 작품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터미네이터 본가 특유의 묵직함이 적다는 거죠.


이 영화에 대해 호평하시는 분들은 최소한 4편보다는 낫다는 평을 하십니다. 여기에 대해 저는 절반 정도 공감합니다.


분명 편집점과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약간의 군더더기를 제하면 사실 깔끔한 편입니다. 캐스팅도 화제가 될 만했죠. 영원한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월츠제네거는 물론, 주가가 상승치인 에밀리아 클락, 닥터 후로 유명한 멧 스미스, 심지어느 이병헌까지 나왔으니까요. 상향치를 뚫고 또 뚫은 그래픽 테크닉과 두 번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거라 기대하는 팬들에게, 이만큼의 기대작도 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솔직하게 말해 너무 '애매'했습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리부트이기 때문에 전장을 부정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설정의 부정이 될 수도 있고, 터미네이터(기계)의 정통성의 부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주제의 부정이 될 수도 있고요.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터미네이터는 당시 기준으로도 30년이 넘은, 정말로 오래된 시리즈니까요. 문제는 이것이 시리즈의 연속적인 재미를 부정하는 수순으로 이어져서는 안됐다는 것입니다. 이것마저 부정한다면, 터미네이터라는 이름은 족쇄가 될 뿐이니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는 2편을 중심으로 뒤를 이으려는 시도와 함께, 올드팬들이 만족할만한 팬서비스적 요소를 가미하며, 앞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새로운 터미네이터를 제시했습니다. 동시에 2편이 찾아갔던 주제를 다시 한 번 되살리려는 시도를 하였죠. 문제는 이것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거 다 터미네이터 4편이 시도했던 거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터미네이터 영화 시리즈로는 3편을 꼽는 편입니다. 영화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전작에 대한 부정만 하는 건 시리즈물로서는 낙제 아닌가요? 4편에 대한 평가를 상대적으로 높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깨놓고 말해 이야기적으로 잘 구성해놓지 못했다는 점은 4편의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팬들이 그토록 기대했던 존 코너와 카일 리스의 만남을 그토록 맥없이 연출할 거라곤 아무도 생각못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영화의 흥미도는 영화가 개봉한 시기 등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차라리 4편이 제일 낫습니다. 영화의 톤과 분위기, 소재와 설정은 당시 대중이 요구하던 방향을 잘 따랐던 작품이라는 거죠.


흥미롭게도 미래전쟁의 시작과 제니시스는 공유하고 있는 한계점도 엇비슷합니다.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으로 구성하였으니 전개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어 이전 영화들의 완결성에 흠결만 가했고, 비장한 척 시작했지만 기존 시리즈가 구축한 전통과 클리셰에 함몰되어 새로움은 부족하다가 바로 그것이죠.


그럼에도 제가 4를 5보다 낫다고 보는 이유는 전작이 저지른 '잘못 아닌 잘못'을 수습하려는 입장의 차이 때문입니다. 최소한 4는 3의 설정을 어떻게든 포용하려고는 했잖아요? 편의적으로 2까지의 설정만 끌어와 리부트 아닌 리부트를 한 5보다는 훨씬 힘든 입장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또 선택한 제니시스는 참 실망스러운 작품이 아닐 수 없는 거죠.


사실 터미네이터3의 가장 큰 단점은, 오락적인 요소로만 한정해도,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2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액체금속이 주었던 충격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데, 목각인형형 터미네이터라니....


결과적으로 3와 4는 묻혀버리는 분위기고, 5편은 평론가들로부터는 '또 한 번' 최악에 가까운 평을 받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또 한 번 영화가 엎어지는 일을 맞이하게 되었고요. 독이든 성배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 개봉으로 손해를 메꾸었니 마니 하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결국 이렇게 되는 거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는 이 시리즈를 정말로 재밌게 즐겼던 관객입니다. 상하편으로 나누어진 녹색 스티커로 타이틀이 붙여진 터미네이터 비디오를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전처럼 이 시리즈에 별다른 의욕과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몇 년을 주기로 분명 괜찮은 부분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엎어져 버리는 터미네이터라는 시리즈에 지쳐버렸다는 소리이기도 할 겁니다.


이번에 개봉되는 영화는 린다 해밀턴부터 시작해서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까지 다시 복귀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번엔 오랜 팬들의 실망을 거둘만한 작품이 될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네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4.11 14:08


 언젠가


호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되기에 그만큼 감독의 재기나 역량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르라고 이야기했던 바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장르에 비해 아이디어와 소재, 그리고 연출이 뛰어나야 변별력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죠.


저같은 경우,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마니아... 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불특정다수로 모이면 그 가운데엔 제일 많이 본 편으로 종종 꼽힐 정도로요. 실례로, 아직 영화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루자... 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리뷰는 꼭 남기려고 했었잖아요? 예. 제가 그렇습니다.


그런 저이지만, 공포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 땐 기대치를 최소로 낮추고 갑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이만큼이나 잘 적용되는 장르의 영화를 본 적이 없거든요. 앞서 말씀드렸듯, 감독의 역량이나 배우의 연기와 몰입도가 이만큼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르도 몇 없거든요. 자연스레 관객을- 그것도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몇편이나 본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엇비슷한 공식, 엇비슷한 캐릭터, 그 조합법조차 수십년간 우려먹어 클리셰화된 이 시점에선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정말 마치 복권처럼 역량과 똘기를 갖춘 창작자가 등장하고, 그것이 온전히 작품에 반영된데다(내지 불편한 부분은 덜어지고, 대중적인 부분이 더해져), 기록적인 히트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장르의 위기를 이야기를 꾸준히 들으면서도 호러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들은 계속해서 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러던 중 곤지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두근두근 하더라고요. "드디어 몇년만에 나왔구나." 라면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인터넷 괴담인지도 몰랐고, 실제 흉가로 유명한 곳이다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래서 제가 영화를 보다 덜 즐겁게 즐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블레어위치도 실제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과 모큐멘터리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요.


정말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갔습니다. 공포 영화가 지금 이 시점에 개봉하여 역대 최대 관객수의 한국 공포영화 기록을 갈아치울 지도 모른다는 신드롬적인 영화라는 이야기와 함께, 대개 이런 장르에 대해 박하게 평가하는 평론가들도 준수한 영화라 평하는 정도만 듣고 갔습니다. 영화의 소재도, 평론가들의 구체적인 평론도, 촬영기법도, 배우도, 하다못해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갔습니다. 곤지암하길래 오세암처럼 암자 이름인가... 하면서 갔을 정도로요.


기대했던 대로 사람들이 많았고, 저는 커지는 기대를 살포시 눌러주며 영화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고... 이 영화가 파운드 푸티지라는 알게 되었습니다. 당혹스럽더라고요. "에엥? 지금 시점에 파운드 푸티지가 이 정도 인기를 끈다고?"라면서요. 언젠가 월하의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파운드 푸티지 장르는 경제적이기는 하지만 연출이나 촬영기법, 소재만 따지자면 사실상 바닥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형화되고 많이 소화되었기 때문에 평가의 상한선이 대폭 낮아진 장르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익숙한 장르기 때문에 무난하게 공포를 터뜨리는 부분까지 기다렸습니다. 간간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녹이려는 소재를 받아들였고, "이것이 평론가들이 영화를 고평가하는 요소로 작용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 편에 잘 모셔두고 이후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적으로 조합시킬지에 대해 기대했죠.


캐릭터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순수함, 멍청함, 부주의함, 냉정함 등 상당히 정석적이었죠. 단지 너무 판에 박히거나, 저게 유튜버의 그것이 맞긴 하나라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솔직히 말하면 당혹스러웠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똘기와 재기가 넘치고 연출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외국작품의 이식이자 오마주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너무 뻔한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노골적으로 한국적에 방점을 찍는다면 차라리 월하(사실 이것도 그렇게까지 좋게 평했던 영화로는 평하지 않았었는데)보다도 못했습니다. 자연스러움이라는 측면에서도... 글쎄요. 좋은 평가를 받을만 했나요.


공포영화가 15세 관람가라는 것은 여러 상징적인 신호 중에 하나입니다. 장화홍련같은 은유와 해석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해피데스데이와 같이 인터넷 유행의 요소가 섞인 유희적 긴박감일 수도 있고요. 아예 전설의 고향처럼 고전적인 이야기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곤지암은 어떠한 영화일까요?


솔직히 말해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투미한 영화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박정희 정권과 박근혜를 떠올리는 요소가 담겨 있어, 그 억압되고 가학적인 시대에 대한 공포를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해석하게 만든 작품이었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공포라는 포인트에 초점을 맞추고 해석이나 드라마에 대해선 신경쓰지 않고 나아갑니다. 옴니버스 영화에서 소재만 던지고, 전체의 해석이나 갈피는 메인 시놉시스가 잡는 것과 차라리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났음에도 그것이 이야기적인 끝인지 아닌지 인식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쿠키 영상이 기다리고 있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엇비슷한 영화로는 클로버필드와 클로버필드 10번지 사이의 '이야기'(두 영화가 아니라 두 영화 사이의 영화 외적인 설정에 대한 이야기...), 곡성을 들 수 있습니다만. 두 영화만큼의 긴장감이나 충격을 주지도 못합니다. 공백을 통해 해석의 공포를 자아내려는 의도는 읽히지만, 의도적으로 비워두면서도 해석을 통해 쫓아가도록 만든 전자나, 아예 인식의 붕괴를 영화와 함께 겪도록 의도한 곡성과는 나란히 비교하기가 곤란합니다. 이건 차라리 관습에 기댄 게으름에 한 없이 가깝습니다. 이 영화의 성질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난감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운으로 관객을 홀리는 것도, 긴박감으로 관객을 깔아누르는 것도, 자극적으로 꾸며 쇼크로 놀라게 하는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공포영화의 공식이라 불리며 조롱거리가 되는 것도 바꾸어 말하자면 그만큼 효율적이라는 소리인데- 영화는 절정부에 이 부분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곤지암은 여러 선행한 영화의 마일드한 버전이었다 여겨집니다. 하지만 호러 마니아의 입장에선 비교적 낮은 허들을 고려해도 그보다도 훨씬 허들이 낮았습니다. 앞서 표현했던 '당혹'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할 정도로요.


물론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말씀드렸듯 제가 알지 못했던 요소가 영화에서 공포를 느낄 법한 외적인 요소기도 했고, 반대로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선배 영화의 좋은 부분과 비교되어 버렸던 상황이니까요.


입문자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까지 나쁜 영화는 아니라 생각이 듭니다. 공포영화의 잠재 시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하는 입장에선, 이러한 영화의 존재도 분명히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공포영화의 기존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괜찮은 영화일 듯 하네요.


사족이라면 사족입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곤지암은 종종 느꼈던 콘텐츠의 해석방식에 대한 세대차이를 느낀 계기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 인터넷 방송이나 유튜브 방송을 보는데도 이 흐름을 못 쫓아가는 건가...? 하면서 말이죠. 신드롬에 가깝다는 평까지 들었었는데.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4.08 21:20


 영화 블로그의


글을 하나씩 옮기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텍스트가 있어 어쩐지 웃기기도 하고, 저걸 지울까 수정할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부분까지 옮겨 적되,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추후 덧붙이는 방식으로 수정하려 합니다.


절대로 그 부분을 일일히 수정하는 것이 귀찮아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여하튼, 시작해보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할 결심을 했지만, 정작 어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지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별달리 중요한 일도 아닌데, 괜시리 첫 발자국을 떼는 데에만 시간을 잡아먹었죠.


결국 눈에 들어오는 것 그 어떤 것에 대해서라도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TV에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당 방송분에선 걸그룹 씨스타의 다솜이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디 아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뭘 망설입니까. 바로 그걸 골랐죠.


 - 이쯤이면 눈치채셨겠지만, 2015년에 썼던 글입니다. 한참 마리텔이 인기있던 시절의 글이죠. 지금은 마리텔이 종영했음은 물론, 씨스타조차 해체한 상황입니다. 다만, 당시에도 디 아더스는 최신작으로 통하는 영화는 아니었고, 그 사이 해당 영화에 대한 이미지나 평가가 크게 뒤바뀐 것은 아니니 이야기를 지속하는데 무리는 없겠죠?


바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2001년작, <디 아더스The Others>입니다.


...먼저, 스포일러 주의를 해야겠죠? 영화에 반전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라 말하는 이 시대, 디 아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도 반전이 있다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여러 미인상이 있는데 니콜 키드먼이라는 상 하나가 잡힐 정도로 참 정제된 인상을 줍니다.


새턴 어워즈에서 최우수 호러, 스릴러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사실 지금 시점에선 사실 다소 평가를 박하게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대만해도 니콜 키드먼의 호연과 꽉 짜인 각본, 그리고 충격의 반전 때문에 하나의 심볼이 될 거란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같은 방식의 이야기 구조를 갖춘 작품이 이후 몇차례 나오면서 이미지가 흐려졌습니다. 애초에 식스센스가 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르죠.


스타일이나 미장센 측면에서도 이후 개봉한 장화홍련 등의 영화에 다소 묻히는 감이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대중문화에서의 오리지널-그러니까 그걸로 제일 유명한 거-과 감각적인 연출 사이에 끼인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이 디 아더스 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공포영화치고는 다소 수수한 느낌을 풍깁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외부와 고립된 저택. 그 속에서 아이들을 강하게 훈육하는 어머니에게 찾아온 세 사람의 하인들. 이들은 알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리고 이내 그들앞에 찾아오는 충격과 공포의 진실은?"이라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우리가 흔히 공포영화하면 떠올리는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을 크게 배제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최후반부에 이를 때까지 대놓고 '등장인물'들을 놀라게 하는 존재가 등장치 않습니다. 은은하게 나타나고, 그것을 은은하게 발견한 후, 또 은은하게 리액션합니다. 충격이 아닌 분위기로 압박하는 영화죠.


어떤 의미에선 호러라기보단 스릴러 영화에 더 가까운 인상입니다.


다소 고전적인 색체를 감할 경우, 파라노말 액티비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고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혈흔이 낭자하고 비명이 넘쳐나는 공포영화를 기대하시는 분이라면, 그다지 추천할 수는 없는 영화가 되겠네요.


실제로 이 영화는 국내 전체관람가로 개봉한 공포영화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니콜 키드먼은 신경질적이면서도, 성경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훈육하고자 하는 여성으로 그려집니다. 남편의 부재를 메꾸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외부의 요소들과 격리시켜 지키려 하죠. 하지만 그녀의 교육법은 아이들의 반발을 부르고, 그녀 자신과 일상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실에 의해 서서히 붕괴되어 갑니다.


이 영화는 놓치고 지나가도 별 상관이 없는 사소한 의문을 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커다란 미스터리를 전달하여 관객의 공포를 극대화합니다. 주인공 가족 외 다른 사람들을 진행자 삼아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이윽고 그들을 통해 주인공이 일종의 깨달음을 얻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죠. 이 과정이 다소 작위적인- 그러니까 옛 냄새 풍기는 방식의 인용과 차용으로 이뤄져 있습니다만, 이것은 주제를 강조-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됩니다.




이 영화의 제목 The Others는 언뜻 생과 사를 통해 갈라지는 존재들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의 주인이 의도하고,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두고 갇혀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기도 합니다. 평생을 앓아온 편두통, 햇빛 알레르기로 인해 문조차 자유롭게 열고닫을 수 없게 되어 버린 저택, 살면서 믿음이 정해지고 또한 강요하게 되어 버린 종교, 전쟁으로 인해 점령되어 벗어날 수 없는 섬, 전쟁에 나가 버려 소식이 끊어져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남편, 섬, 그리고 죽음. 폐쇄에 폐쇄를 거듭하는 이 영화는 종래에 경계라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인지를 질문합니다. 니콜 키드먼에게 있어 타인은 그 집에 살고 있는 빅터네 가족들 외에, 그녀의 남편, 그녀의 자식까지도 포함되는 개념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들과의 소통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합니다.


더 이상 햇빛을 두려워않는 아이들과 자신과 자녀들의 운명을 인식하고 받아들인 그녀의 깨달음-그녀에게 더 이상 편두통약은 필요가 없죠-은 "중요한 건 경계나 경계를 둔 이들 간의 대립과 공포가 아니라, 그들이 그들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영화는 이 부분을 상당히 흥미롭게 풀어내는데, 주제적인 측면을 강화하면서도 공포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제하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대사도 어느 순간 섬칫하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 사람과 귀신이 섞여 살기도 한다."는 대사는 이러한 모호함과, 경계 이상으로 중요한 서로간의 인식과 연대를 보여줍니다. 그녀가 인용하는 성경의 우화는 결국 진실이나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기보단 "보이는 만큼, 느끼는 만큼 받아들인다"는 인식에 대한 것이었다 보는 게 적합하겠죠. 통념의 밖, 그녀가 바라던 새로운 세계가 과연 존재했는가에 대해서는 결국 이 영화는 끝까지 답해주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인식한 그녀조차 다시 남편을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답하지 못했고, 그녀는 결국 집을 벗어난다는 선택을 하진 않았으니까요.


구도의 반전을 통해 우리가 이야기하는 또 다른 세상이나, 그 세상에 속한 타자가 사실은 우리 자신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이런 반전 영화가 그러하듯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볼 때, 결말을 알고 있을 때와 모를 때의 감상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어둠을 통해 안락함을 얻는 그들이, 빛을 통해 공포에 떨게된다는 설정은 이러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요소입니다.


계속해서 주변을 어둡게 하는 니콜 키드먼의 태도는 반전 공개 이전엔 "햇빛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반전 공개 이후엔 인간을 무섭게 하는 으스스한 귀신의 분위기잡기가 되어 버립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귀신하면 흔하게 생각하는 "통념"을 '그들이 일일히 직접 따르는 것'을 통해 그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식의 서술을 하여 다면적인 효과를 노립니다.


아이가 하는 사소한 말이 사실은 중요한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클리셰는 여기에서도 작용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일종의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앤은  동생 니콜라스에게 "유령이 어떻게 생겼냐고? 흰 천을 뒤집어 쓰고, 발엔 쇠사슬을 매달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흔한 귀신에 대한 '통념'을 이야기합니다. 이후 니콜 키드먼이 창고에서 하얀 천을 뒤집어쓴 '성모상', '일상용품', '거울에 비친 니콜 키드먼 그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고요. 또한 앤 역시 영성체를 위해 하얀 의복을 뒤집어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들은 집이라는 장소에 묶인 일종의 지박령으로 그려지죠.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가 귀신이라 생각했던 게 사람이었고,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이 귀신이라는 식의 구도 반전에 강한 힘을 부여해줍니다. 그리고 영화를 재관람하는 데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죠.


어느 한 영화 평론가가 디 아더스와 마찬가지로 반전이 중요한 영화 식스 센스를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식스센스는 반전이 중요한 영화다. 그러나 그 반전이 드러났다 해도 식스센스는 여전히 좋은 영화다"라고요. 마찬가지로 디 아더스 역시 반전이 중요한 영화지만, 그 반전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좋은 영화가 될 가치가 충분한 영화임을 확신합니다.





사족1. 엄마가 결국 공포의 원인이자 주체이며 모성의 충족을 통한 결말을 짓는다는 측면에서 2013년작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의 마마가 떠올랐습니다.


사족2. 니콜 키드먼의 남편역을 맡은 배우는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으로, 우리에겐 영드 닥터의 9대 닥터로 유명한 사람이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4.07 21:14


 본 블로그에서


캐릭터 이야기를 하고 있고, 여기서 차용하여 영화 전문 블로그에서 영화 배우 이야기를 했던 바 있습니다. 물론 그리 길게 지속되진 못했지만, 그냥 날리기엔 여러모로 아쉬워서 그 글 여기 재활용 해 봅니다. 


지금부터 이하의 글은, 과거 썼던 글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그래서 시점이 묘하게 뒤얽혀 있기도 하고, 이후 행적과 상충하는 부분도 있으니, 나름대로 감안해 주세요.


자. 재활용 글 시작해 봅시다.


3~4년 전에 쓰여진 글이라, 지금 드라마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에 대한 글과는 사실 좀 어울리지 않긴 하죠.


어떤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망설이다, 최근 다시 재개된 다크 유니버스의 시범작인 미이라의 형제이자 전작격 위치에 있는 미이라의 주연 배우- 브랜든 프레이저(Brendan Fraser)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이 기억하고 계신 브랜든 프레이저의 캐릭터는 어떤 건가요. 겉은 냉철하지만 속은 인간미가 넘치는 군인 출신의 모험가? 얼빠졌지만 사람만은 좋은 대학생? 한 마디 한 마디 말 하나하나가 촌철살인이지만 그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행동하는 원시인?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미이라의 탐험가였던 리처드일 겁니다. 상기의 이미지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긴 하지만 이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니 크게 차이는 없을 겁니다. 지금에 와선 그냥 그런 배우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브랜든 프레이저이지만, 사실 당대 그는 정말로 뜨꺼운 스타였습니다.


최근의 배우와 비교하자면 어떤 느낌일까요. 토르를 히트시키며 유망주로 거듭난 크리스 햄스워스와 살포시 비슷한 느낌이려나요. 물론 그보다 연기폭은 더 넓었고, 더욱 일찌감치 유망주로 기대받았었던 것이 바로 브랜든 프레이저입니다. 실제로 그가 출연한 영화 몇몇을 보노라면 지금 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그의 이름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와 캐릭터는 '얼빠졌지만 몸은 좋은 백인 금발 남자' 정도로 정리되는 분위기지만, 이 배우는 90년대 중후반까지만해도 코미디부터 멜로,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캐릭터를 소화하여 관객들과 교감했던, 재능 넘치는 유망주 중의 유망주 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미이라로 전세계를 뒤흔드는 히트까지 기록했죠. 그런 그의 앞날엔 창창한 미래가 펼쳐져 있는 듯 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영화 선택에 있어 지지부진한 모습을 반복해서 보이게 됩니다.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얼빠진 모험가 캐릭터'를 자기복제한 수준의 영화들이 이후 그의 커리어에 중심이 되었는데- 문제는 어드벤쳐 장르에서 해리슨 포드의 인디아나 존스가 고전으로 떡하고 버티고 있는 상황 속에서 별다른 변별력을 가지진 못했다는 겁니다. 반복된 가족영화 출연은 그의 이미지를 급격히 소모시키는 일로 이어졌죠. 가족 영화에서 모험가 캐릭터에게 요구하는 역할이라는 게 아무래도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고, 그 영화들조차 그가 이전에 출연했던 90년초중반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에 미치지 못했거든요.


미이라 3에서의 브랜든 프레이저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만, 과연 이전의 영화보다 더 나아졌느냐에 대해서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부진과 함께 영화의 부진은 함께 찾아왔고, 당시 유행이었던 세대교체에 실패한 영화의 하나로 기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예. 하락세를 '계속해서' 타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잉크하트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같은 영화에 출연하여 예상 밖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내리막을 걷는 그의 커리어는 좀체 올라서질 못했습니다. 미이라3의 어중간함은 사실상 쐐기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비단 브랜든 프레이저만이 아니라, 배우들 가운데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분명히 그 이상의 재능과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때론 영화복이 없어서, 때론 시기를 놓쳐서, 때론 본인의 고집 때문에 기대 이하에서 '끝나 버리고 마는(예. 압니다. 험한 표현이죠?)' 이들 말이죠. 배우로서의 딜레마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정된 이미지는 안정적인 캐스팅 수단이 되어주지만, 그것에 구속되는 순간 배우로서의 매력과 수명은 크게 감소해 버립니다. 배우들이 이미지 변신에 집착하는 것도, 연기력 논란을 겪는 배우들이 계속해서 같은 이미지의 배역을 담당하는 것도 다 그만의 이유는 있다는 거죠.


배우에 대해 다루는 첫번째 글이,  첫번째 글이, 재능있고 상업적인 흥행력까지 보증했지만, 결국 그것들을 완전히 펼쳐내지 못한 이에 대한 것이라는 게 뭔가 서글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계'는 이것에 그렇게 큰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하죠. 젊고 재능있고, 열정있는 배우는 언제나 계속해서 등장하니까요.


배우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영화 외적인 영역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들여다보는 건, 순수하게 영화를즐긴다는 것과는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화는 막대한 자본에 수많은 인력과 재능이 투입된 고도의 집약적 작업입니다. 그 실패의 후폭풍이 큰 만큼 제작사는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지나치게 둔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죠. 배우를 살펴보는 건 이러한 변화를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당장 위의 브랜든 프레이저만 봐도 틴무비의 몰락과 패밀리 무비의 트렌드를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니까요. 앞으로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함께, 배우들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보는 시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tv시리즈 콘도르의 한 씬. 사실 실제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튀는 모습은 아닙니다만, 십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이런 저런 맘고생을 하며 급격히 외모가 망가지는 일 때문에 이런저런 외적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재기하여 열심히 활동 중이라네요.


뭐, 그래봤자 지금처럼 지극히 가볍게 다루는 글일테지만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3.04 15:17


 1995년작


존 카펜터의 저주받은 도시는 영화 그 자체보다는 슈퍼맨 역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리브와, 스타워즈에서 루크 스카이워커 역을 맡았던 마크 해밀이 출연한 영화로 더 유명합니다. 호러와 SF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드라마와 가족적 교훈을 더 중시하는 가족영화에 더 걸맞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죠.


결과만을 이야기하자면 독특한 비주얼과 반가운 배우들의 얼굴을 보는 것에서 주로 의의를 찾는 작품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영화적 자체적으로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엔 동 장르에서 인식의 폭을 넓힌 작품이 비슷한 시기 너무 많이 나왔고, 마을에 국한되어 일어나는 해괴한 사건들 역시 60~70년대 영화에서 상당히 많은 변주가 이뤄졌었기에 특기할 만한 부분이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독특한 분위기와, 여러 방면으로 활용되었음에도 여전히 섬뜩한 아이들이 주는 공포는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로 작용하였습니다.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재미와, 결말부 특유의 여운이 좋은 인상을 남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가 가진 독특한 색체의 대비는 60년대 원작격인 영화의 짙은 영향을 받은 흔적입니다. 실제로 호러영화라는 측면에서만 따지자면 60년대 영화가 좀 더 긴박감 있는 편입니다.


영화는 열린 결말을 취하고 있고, 그에 따라 자연히 사람에 따라 서로 상반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호러 팬이라면, 반대로 가족적인 드라마를 중시하는 이라면, SF 장르의 팬이라면 그 결말을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호러 영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영화는 배드엔딩입니다. 박사의 희생을 통해 위험이 되는 아이들 상당수를 물리칠 수 있었고, 인간성을 가졌다 생각했던 데이빗은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데이빗과 다른 아이들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근본적인 연유가 상실에서 오는 고독이라 인식했습니다. 문제는 영화에서 그의 '짝'의 행방에 대해 의도적으로 외면하며 무언가 더 있다는 운을 뗐다는 것입니다. 속편을 생각한 구조와 동일하죠. 결국 다른 사람을 구조하지 않았던 데이빗이 가진 인간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발현될지에 대해서도 영화는 불길한 암시를 품고 있습니다.


가족드라마적인 가치로 보자면, 해피엔딩에 가깝습니다. 데이빗은 어찌되었던 계속해서 변화했고, 마침내 자신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분신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온전히 스스로 세상을 마주하게 된 그는 좀 더 많은 교류와 더 많은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불길한 데이빗의 클로즈 업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SF영화적 관점으로 보자면, 데이빗의 승리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데이빗은 그룹 내에서 짝이 없는 반쪽짜리에 불과했으며, 처분을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에는 그는 너무 다른 존재였죠. 결과적으로 데이빗은 어른들과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속하는 선택을 할 수도, 개인으로는 무력하지만 다른 관계를 통해 보다 거대한 세계를 형성한 어른들에게 속한다는 선택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런 데이빗에게 최고의 선택은 자신을 해치려는 아이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개성을 감춰 어른들의 세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강변했던 인간성과 교류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그런 데이빗이 과연 의사와 그의 어머니의 의도대로 삶을 이어갈까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죠.


개인적으로는 호러+SF 관점을 고루 적용하는 편입니다. 예. 저는 배드엔딩으로 봅니다. 데이빗은 결국 마지막으로 살아남았고, 그의 짝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며 결국 그를 찾아나설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2.20 17:18


 언젠가


부모님이 비디오 대여점을 해서 영화나 만화를 어릴 때부터 쉽게 접할 수 있는 '축복 받은' 환경에서 살았다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매드맥스 시리즈를 상당히 어린 나이 때부터 접했었는데, 이게 어느 정도냐면 제가 처음으로 본 매드맥스가 몇 편인지, 매드맥스를 언제 처음 본 지도 솔직히 말하면 헷갈립니다. 가장 친숙하게 느끼는 게 3편이고, 1편은 지금도 낯설다는 인상이니 대충 3, 2, 1의 순으로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해봅니다만 확신할 순 없죠.


그런고로. 제게 있어 매드맥스 시리즈는 평단의 평과 완전히 분리된 시리즈 였습니다. 평가라는 것은 결국 비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장르가 범람하고, 온갖 경로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에서 내리는 평가와, 장르의 효시격인 작품을 일상의 하나로 받아들이며 거진 처음으로 보다시피한 영화에 대한 평가와, 해당 작품의 영화사적인 상징과 이후 영화계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모두 아는 상태에서 내리는 평가들이 같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는 이 시리즈를 극찬하진 않습니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제하면 저는 딱히 이 영화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진 않은 거죠. 말했잖아요. 워낙 어릴 때 그리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많이 봤다고. 그리고 이 영화의 재미는 당시 저의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와는 다소 괴리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저는 결코 이 시리즈를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당시 제 취향과 다소 괴리되어 있다고는 해도 분명히 재밌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 작품이니까요. 그 인상만으로도 B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요. 결국 매드맥스 시리즈는 저한테는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어릴 때부터 봐서 지극히 무던하게 느껴진다는 소리입니다. 좀 폼나게 이야기하자면 매드맥스는 제 인식의 기초에 자리잡은 기준의 하나라는 소리죠.


실질적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퓨리오사입니다. 맥스는 관찰자, 조력자 포지션이죠. 


그래서 매드맥스의 새로운 시리즈, 매드맥스 분도의 도로가 수십년만에 나온다고 했을 때, 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게 매드맥스 시리즈는 이미 인상이 완성된 시리즈였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영화나 만화들이 충실히 계승하고 발전시킨 덕에 굳이 다시 되짚어볼 의미도 없고, 설정적인 측면에서도 당시 영화 내에서 그린 시대상을 이미 뛰어넘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새삼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있을까, 하는 게 제 솔직한 심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개봉이 연기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 이 때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뭐 연기되는 구나. 언젠가 블로그에서 크로우의 리부트가 난항이라는 소식을 전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 취향은 어느 사이엔가 매드맥스 시리즈와는 상당히 멀어져 있었고, 이러한 고전의 속편이나 리부트는 이젠 더 이상 주목을 끌지 못할 정도로 지극히 흔해져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추가촬영 소식이 들렸을 때도 잘 안되는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말했듯 진짜 그냥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영화가 개봉했고, 극찬을 받았습니다. 웃기게도 이 때까지도 저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뭐. 잘 만들었구나." 하고 말았죠. 영화를 보러갈 생각도 없었습니다. 자극은 학습됩니다. 어릴 때부터 받았던 매드맥스 시리즈로부터의 자극은, 어지간한 매드맥스로는 더 이상 자극받지 못하는 그런 취향을 가지게 만들어 버렸죠. 어린 시절 감각이 더욱 예민하고 강렬하게 기억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지간히 잘 만들어져 있어도 매드맥스 시리즈로부터 더 이상 강한 인상을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리고 결국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보지 못하면 후회한다는 말을 듣고는 말이죠. 새벽까지 영화관에 앉아 있다 극장을 나서며 생각했습니다.


"이 할배(조지 밀러 감독)가 일을 내긴 냈구나."


이 영화는 이제 완전히 부정되다시피한 2편의 세계관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전달하느냐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애초 영화들 각자가 연결성이 약한 영화인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이미 아이콘화되다시피 했으니까요.


톰 하디가 연기한 맥스가 처음 탈출하려는 씬을 보고 나서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하면서요. 그리고 니콜라스 홀트가 연기한 눅스의 이모탄 조에 대한 광기에 찬 찬양씬을 보고 나선 "진짜 끝까지 가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퓨리오사와 맥스 눅스가 뒤얽힌 액션씬을 보고 나선 연륜과 흐름조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퓨리오사를 통해 이야기를 정제하는 걸 보고 나선 새로움을 추구했을 거라는 제 예상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매드 맥스 시리즈의 새로운 영화기는 하지만, 멜 깁슨이 아닌 톰 하디가 맥스 역을 맡았으며, 맥스의 캐릭터도 이전과 다소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진행자와 중심이 되는 캐릭터를 맥스와 별개로 두는 면을 보였습니다. 특유의 수동성은 맥스의 특징이긴 했지만, 이 영화의 맥스는 능동적이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며, 동시에 더 중요한 것을 위해 행동을 보여줍니다. 이야기적인 구조에선 매드맥스 시리즈의 최신작인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기존의 매드맥스 시리즈를 총집편한다는 인상입니다. 이 영화가 매드맥스 시리즈인 것은 기존의 매드맥스의 시리즈들의 각 요소들을 뽑아 2010년도에 맞는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줍니다. 보통 이런 성향의 작품은 재탕이나 우려먹기라고 비판받곤 하는데, 분노의 도로는 전혀 아닙니다.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오직 기본에 충실하였음에도, 되려 일신하여 강하게 뿌려댑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래서 더 새롭게 받아들여 집니다.


이전과 비교가 안되는 압도적인 스케일로 거칠고 강렬한 액션을 계속해서 관객에게 강속구로 날려댄다는 거죠. 개별 액션만을 떼어 놓고 본다면 이전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선에 그칩니다만, 이것이 계속해서 연달아 찾아오면서 인상을 완전히 다르게 뒤바꾸어 버립니다. 액션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거죠. 이 순도가 어찌나 높은지 이해와 납득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당혹스러웠습니다. 맥스의 첫 탈출씬이 주는 절정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닌데 그 이상의 피치를 계속해서 올려댑니다. 쉬어가는 시간도 있지만, 그 순간조차 묘한 박력을 안겨줍니다. 가히 놀라운 일이죠.


모래와 강철, 기름으로 찐득한 이 영화는 액션 영화의 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했지만- 이런 영화는 앞으로 보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가장 깊은 인상은 감독이 이 시리즈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티가 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액션장르, 그것도 근미래의 세계관의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두 번째 영화만큼의 무게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활용이나 상징은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액션의 걸출함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으로 치부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배치하고 활용하고 또 재구성하는 것은 온전히 감독의 역량인데- 젊은이 특유의 똘끼나 폭주는 없지만, 경륜있는 감독 특유의 절제미와 집요함은 감동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에 있어 단순한 시간의 누적이 작품성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데, 정말 온전히 그간의 경험과 인상을 작품에 녹여내려 했구나라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아이디어는 단순히 묵혀놓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끊임없이 개선하고 다듬고 정제해야 한다는 것을요. 언젠가 프로메테우스가 개봉한 이후에 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이 정도로 몰아넣고 신화적으로 구현된 이야기 이후 나오는 속편은 어쩌면 사족일 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그 정도로 강한 한 방을 우리에게 안겨줬습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