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2018.01.18 03:39


 결론부터 이야기합니다.


별점은 별 5개 만점에 ★★입니다. 무난한 평작.


배우를 보는 맛이 있고, 다양한 요소를 녹여내려는 시도가 인상적이며, 다소 튀는 면이 있긴 합니다만 이야기 전체 얼개가 나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예. 감독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이런 평은 좀 많이 부족하죠.


부족한 점 꼽아보겠습니다. 배우가 캐릭터에 완벽히 합치하진 못하고, 많은 요소를 녹여냈지만 그 어느 것도 하나 신선한 게 없었습니다. 이야기적으로 다양한 사건과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다보니 특별히 주목할만한 부분도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 이 영화가 중국에서 투자를 많이 받았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드는 정도? 차라리 tv시리즈로 보는 게 낫겠다 싶었을 정도랄까요. 그리고 뭣보다 올드하다는 인상을 '많이' 줍니다.


예. 그래서 평작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앞선 거장들의 작품이나, 도발적일 정도로 과감한 시도를 하며 지평을 넓힌 작품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하다못해 이 영화만을 주목해야 하는 특별한 요소나 기술적인 효과를 체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무난한 구성이고, 이런저런 요소들이 적당히 어우러져서 무리없이 즐길 수 있는 평작이라 여겨졌습니다. 즐기려면 못즐길 것도 없는 작품이라는 거죠. 하지만 과연 뤽 베송이나 데인 드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나름의 마니아를 형성한 장르 하의 작품이 거둘만한 성과였을까요.


그렇다면 저는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게 기대치가 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성향의 영화는 평가와 재평가를 계속해서 거듭하기 때문에, 극장개봉때보다 2차시장에서의 성과에 좀 더 주목하기도 합니다. 발레리안은 그걸 감안해도 더 대중적으로 접근하려 한 티가 많이 나기에 더 아쉽다는 소리를 들은 거겠죠.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게 바로 "아. 흥행하긴 힘들겠네."였습니다. 사실 저는 이쪽으로는 별로 감이 없는 편이라 저런 예상은 거의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이 영화는 "존 카터 바슘전쟁의 시작"과 너무 많이 닮아 있었거든요.


분명히 구성적인 측면에선 딱히 흠잡을 부분이 없고,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는 제작진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다, 기본적인 재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적으로건 캐릭터건 아이디어건 여러 매체에서 일신하여 재구성한 것들의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여 상당히 낡은 인상을 주는데다, 이 영화와 비교되는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너무 많이 개봉하였기에, 해당 장르나 콘텐츠에 대해 애정이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굳이 볼 마음을 갖지 못하게 했다는 건 큰 문제입니다. SF 장르가 그렇다고 여타 장르 이상으로 크게 사랑받는 그런 건 또 아니잖아요. 굳이 이 영화를 봐야하는 생각을 갖게 한 걸겁니다.


예컨데 반지의 제왕처럼 "그래도 판타지 좋아하면 이 정도는 봐야 하는 거 아냐?" 정도의 무게감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처럼 "수십년이 쌓인 콘텐츠인데 믿고 볼 수 있는 거 아냐?"라는 정도의 인식이나 믿음도 주지 못했고, 아바타처럼 경이로운 시각효과 내지 차원이 다른 기술이라는 홍보 포인트도 잡지 못했습니다.


상기의 저 콘텐츠들은 엄연히 성공한 케이스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치명적인 비판을 들어야 했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경우 "원작을 그대로 옮길 거면 굳이 영화화할 필요가 있나"는 비판을 받았었고,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은 자기만의 정형에 갇혀있다고 평가받다 다른 시도를 하면 원작을 무시한다거나 기대를 배신했다는 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바타요? 테마파크와 영화의 차이가 뭐냐는, 근본적으로 영화라고 할 수 없다는 뉘앙스의 이야기까지 나왔었습니다.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70년대 유행했던 캐릭터의 정형에 가깝습니다. 영화의 발레리안과 007 시리즈의 숀 코네리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 다이탄3의 하란 반조를 나란히 놓으면 그 변화의 흐름이 대략적으로 체감되실 겁니다. "나도 대의를 따르지. 법이라는 대의 말이야."라는 대사라니. ...으악. 2010년대 후반으로 꺾이는 지금 이 시점에서 보자면 좀 당혹스럽죠. 그리고 원주민형 우주인도 나름대로 인종차별적 요소를 피하려고 한 티가 나는데, 그게 더 부각되어 보이는- 좀 흘러간 유행의 정형을 따릅니다. 


실제로 원작이 있는지도 몰랐음에도 "뭔 70년대에 유행했던 게 나와" 이랬다 진짜 70년대에 연재됐던 코믹스가 원작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관객에게 접근성 좋게 끊임없이 리뉴얼한 시리즈들도 저러할 진데, 발레리안 그리고 존 카터는 더 말할 것도 없었겠죠. 더군다나 이 작품은 계속해서 제5원소와 비교되고 있는데, 인상이라는 측면에선 제5원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 객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조금 더 아쉬운 건지도 모릅니다. 절대적인 평가로 분류하자면 사실 발레리안은 (존 카터도 그렇지만) 평작 이상으로 평가받아야 할 영화입니다. 아마 먼 미래엔 지금보다 훨씬 좋은 평을 들을 거라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결국은 타이밍의 문제가 되어 버리네요. 당대 평균적인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가정 하에, 2000년대 초에 개봉했더라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아바타보다는 먼저 개봉했어야....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1.13 02:30


 콘텐츠의


홍수입니다.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난 애니메이션은 물론 원작이 만화인 영화도 전부 영화관에서 봐."라고 뻐기곤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극장에 걸리는 영화가 꽤 제한적이기도 했고, 뭣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영화가 개봉하는 경우도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원작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인 콘텐츠는 이라는 말은, 그래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이라는 말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엔 한국 만화가 원작인 영화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무리하면 볼 수 있는 수준이기는 합니다만, 이전에 비하면 걸리는 영화의 숫자나 분량도 크게 늘어 이제 물리적으로 벅찬 상황이 되었습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도 이젠 어느 정도의 선별과 선택이 필수가 되었는데, 모든 장르로 확장한 영화가 대상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말 끄트머리, 큰 마음 먹고 만화나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이들이 바라는 것들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데, 그들 앞에 펼쳐진 콘텐츠 미디어의 세계는 너무나도 넓습니다.


그리하여 저같은 경우는 어떠한 방식으로 콘텐츠들을 골라서 보나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과거 여러 작품들을 통해 상업적으로, 아이디어적으로 이미 한 번씩 방점을 찍었다고 평가되었음에도 계속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런 창작자의 작품은 골라볼 만한 가치가 있죠.


첫번째는 단연, 감독이나 작가를 기준으로 작품을 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봉준호 감독 등은 티켓 파워가 있는 감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영화보다도 더욱 작가 개인의 역량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만화는 더 말할 것도 없는 최우선의 고려대상입니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창작자는 작품에 자신을 투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자기색을 입히는 것에 능숙합니다. 이 자기의 색이 바로 작품이 가진 고유의 개성이 되고, 이것이 바로 작품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사유가 됩니다. 물론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꾸준히 갖추는 것도 고려대상입니다만, 때론 이 완성도보다도 개성이 우선하는 경우도 존재하니까요.


이러한 창작자의 여러 작품을 보노라면, 응축된 재능의 폭발과 더 높은 경지를 향한 탐욕이 드러나는 향상심이 담긴 데뷔작만을 남긴 감독들과는 확실히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창작자들의 작품에는 창작자의 심상은 물론, 창작자와 수용자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 지에 대해서도 체감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단점이 있습니다. 모든 창작자는 이른 바 절정부가 있습니다. 꾸준히 일정한 수준의 작품을 만드는 감독들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전의 기질을 잃고 무난해져 버린 거장들, '또라이 기운'을 소실하여 버린 작품들을 볼 땐 작품 그 자체를 떠나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더욱이 그 작가의 작품 세계에 공감하지 못한다거나, 그 세계 자체에 질려 버리는 경우도 물론 생길 수 있습니다. 지루함과 반복과의 싸움은 창작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송강호 연기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 있느냐고 하는데, 사실 정말 주목할 만한 점은 자신의 그런 연기력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입니다. 즉, 배우의 출연 여부를 따지는 것이 연기만으로 영화를 고르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소리죠.


두번째 기준은 배우 내지 캐릭터입니다. 사실 영화의 배우와 만화의 캐릭터는 등치하는 요소가 아닙니다만, 일단 이렇게 묶고 지나갑시다.


영화에서 감독의 역할은 절대적이지만, 결코 유일하지는 않습니다. 배우와 감독의 화학적 결합은 때론 감독의 예상 이상의 시너지를 불러 일으킵니다. 때론 배우는 감독에 반발하고, 때론 감독보다 깊이 보고, 때론 감독보다 멀리 봅니다. 그는 직접 캐릭터를 연기하고 몰입하는 존재기 때문이죠. 배우의 이러한 캐릭터 해석은 영화 그 자체의 이야기 이상으로 때론 깊은 감동을 줍니다. 또한 배우 본인이 작품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그 배우가 출연한 영화라면 믿고 볼 수 있단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송강호 배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만화에서의 캐릭터는 작가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되는 존재이긴 합니다만, 창작의 과정은 결코 갖춰진 틀 속에 짜맞추는 퍼즐이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 때론 작가의 능력 그 이상의 이야기를 만드는 기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잘 만든 캐릭터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만, 그 스스로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촉발제이자 촉매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러 콘텐츠간에 경계가 흐려지면서, 캐릭터는 이제 더 이상 장르나 매체에 국한되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잘만들어진 캐릭터가 있다 평가되는 작품이라면, 그 또한 즐겨봄직한 작품이라 볼 수 있는 겁니다.


사실 지금 연작하면 어벤져스 시리즈와 같은 영화를 떠올립니다만, 사실 가장 흔한 건 b급 호러무비일 겁니다. 이 연작이 너무 반복되고 물리고 수정되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공포의 아이콘이었던 영화 캐릭터들이 우스개 거리가 되는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리부트 바람이 불고 있긴 하지만.


세번째 기준은 연작을 골라 보는 겁니다. 한편,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다수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물은, 당연히 오랜 시간 연재 혹은 여러 작품이 반복하여 개봉할 정도로 매력적인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만화의 경우는 연작인 경우 외에 연재 권수가 많은 경우도 포함된다 할 수 있습니다. 어지간히 인기가 있지 않고선 사실 10권을 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물론 너무도 당연하지만 권수와 재미가 비례하는 것이 아니며, 둘째로 오랜 시간 시리즈가 연재 혹은 개봉하며 피로감이 더해지는 경우, 최초의 매력 포인트를 소실하여 국물만 우려내는 작품들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sf장르의 경우, 열정적인 팬덤이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만, 문제는 본격적으로 만들려면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고 이건 마니아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지라 일종의 딜레마를 겪습니다. 결국 조합이 제한되고, 장르적 다양성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명백히 발전한 구졸르 갖추었음에도 이야기적으로는 일종의 질적 저하 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네번째는 물론 장르를 골라 보는 겁니다.


영화같은 경우는 연출이나 그래픽 기술이 상당히 상향평준화되었기 때문에, 장르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취향이 있다면 작품을 고르는 데 있어 망설임은 없을 겁니다. 특히 상단의 감독(작가) 혹은 배우(캐릭터)와도 조합하여, 그 감독이 잘하는 장르 내지 그 배우가 잘하는 장르와도 묶을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게 다 고만고만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비교적 뛰어난 아이디어나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하는 작품들을 주욱 보노라면, 발전한 건 그래픽 뿐 근본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갈망은 더욱 심해지며, 조합의 조잡함에 먼저 눈이 가는 상황에 닥치게 된다는 점입니다.


상당수의 평론가나 권위있는 영화 매거진 등이 가장 위대한 영화로 꼽는 시민 케인. 그러나 정작 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하죠. 평론과의 거리는 대충 이런 겁니다. 작품을 보는 목적은 제각각인데, 그 기준에 시민 케인이 절대적으로 부합하느냐라면, 그건 아니니까요.


마지막 기준은 평론가나 블로거의 추천작품을 골라 보는 겁니다.


평론이라는 측면에선 사실 지금의 영화만큼 활성화된 콘텐츠도 없을 겁니다. 평론 그 자체가 완전히 또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잡았으니까요. 이동진이나 박평식 등처럼 사실상 아이콘화된 평론가들도 있고, 평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대 영화 정보 사이트에서 마련한 추천영화 리스트나, 죽기전에 봐야할 영화, 가장 위대한 영화 등등으로 정리된 리스트도 여기저기서 구할 수 있고요.


만화는 영화에 비하면 그 평론의 폭이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만, 평론가와는 달리 '함께 작품을 즐기는 독자의 입장'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작품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특히 만화는 한 번 사기 시작한 작품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골라주는 평론가와 태도 자체가 다르다는 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평론가 입에서 "갖다 버려라, 태워라"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쉽지 않잖아요? 추천하지 않으면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지.


물론 평론가의 평론도 결국 평론가의 취향이 가미된 것이다보니 절대적일 수도 없고, 또 평론가의 평론은 영화사 전체가 대상이기 때문에 찾고자 하는 영화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블로거의 만화 평도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동일한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1.08 22:17


 쉽게


정리하자면 이하와 같습니다.


돈 내고 작품을 선택해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과, 여러 작품을 소개하고 그를 통해 수익을 얻는 평론가는 근본적으로 작품을 대하는 데 있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즉, 평론가는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그 영화를 특정해서 볼 가치가 있느냐를 논하는 존재이며, 관객은 그 작품 그 자체가 재미있느냐 없느냐를 논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자연스레 평론가와 관객은 주목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차이가 드러납니다.


예컨데 팬도럼, 이벤트 호라이즌, 헬레이저 등의 작품은 평론가의 평으로서는 박합니다만 별개 작품 하나로만 보자면 관객을 만족시킬 요소가 많은 상찬을 받을만하다고 볼 법 합니다.


예컨데 평론가는 아이디어, 연출의 특이함, 기존의 관습을 벗어난 호흡법 등에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곤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것이 재미와 직결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쏟아지는 작품들을 지금까지 감상해왔으며, 앞으로도 감상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관객들의 체감상의 범작이나 평작은 때론 졸작보다도 박하게 평가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완성도 그 자체보다는 희소성에 주목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당연히 관객들에겐 그리 체감되는 잣대가 아닙니다. 관객들이 그 흐름을 꿰뚫을 정도로 많은 영화를 보았느냐하면, 그렇지는 않거든요. 관객에게 있어 재미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일 뿐입니다.


또 평론가는 1/3에서 절반쯤은 창작자의 마인드로 작품을 논합니다. 이게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어찌보자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창작자는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자신의 작품을 차별화하여 거기에 자신의 정서를 담길 원합니다. 평론가는 이 독자적인 정서와 그 차별성에 주목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자연스레 어느 정도 작품을 대하는 마인드가 닮게 되죠. 자연스레 만들기 어려운 작품에 대해서도 본연의 작품성 그 이상의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관객에겐 적극적으로 어필되는 요소가 아닙니다. 관객에게 있어 영화는 영화 한 편 그대로 와닿을 뿐 감독의 정서나 개성을 학습할 필요가 없거든요.


언젠가 라스트제다이를 3부작의 두번째 작품으로 보느냐, 9부작의 8번째 영화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평할 수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전체 영화와 스타워즈 프렌차이즈라는 모집단의 차이도 이렇게 작용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평론가는 개별 영화를 영화사적으로 이해하고 그 발전상에 주목하지만, 관객은 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자연스레 똑같은 재미와 만듦새를 갖고 있는 영화라 하더라도 후대에 오직 기술적으로만 발전한 작품에 대해서는 평론가의 평은 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동일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 앞서 존재했으니까요. 그 반면 관객에겐 언제나 첫경험이라는 보정이 주어집니다. 이전에 동일한 가치를 지향했던 작품이 있건 없건 모두다 과거의 영화 중 하나라면 굳이 변별할 필요가 없는 거죠. 재미있게도 이 영화사적 흐름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언제나 늘 그렇듯 관객입니다. 평론가가 아무리 박하게 평가하더라도 대중의 이러한 선택은 때론 영화사적으로 특기할 만한 것이 되어 평론가의 평을 수정해야 하는 일을 일으키고는 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중과 괴리된 평론가가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이며, 평론가는 오직 자신의 취향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만듦새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신의 취향까지 가미시켜 평하는 존재여야한다는 것입니다.


영화 이야기란 틀을 달긴 했습니다만, 사실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8.01.06 18:42


 며칠 전


우연히 저스티스 리그가 iptv로 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제야 알아보니 개봉 직후 채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나름대로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습니다. 그간엔 극장흥행은 불만족스러워도 나름대로 롱런할 수 있는 콘텐츠이며, 2차 시장을 통해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보였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명백히 엄청난 손실을 최대한 빠르게 메꾸려는 태도였으니까요.


예.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다. 저스티스 리그는 이제까지 작품성에 대한 비판에 대한 면책이 되어주던 최소한의 흥행마저도 실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또' 책임소재 추궁이 이어졌고, 그 와중에 후에 메가폰을 잡았던 조스 웨던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었다 생각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에 대한 쉴드 아닌 쉴드를 치기도 했죠. 실제로 이전부터 '다음'만을 기약하다가는 프렌차이즈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던 제 입장에선, 이미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상당히 뒤늦었다는 인상을 준 것이죠.


이러한 와중에 직전 개봉했던 토르 라그나로크가 역대급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사실상 DC프렌차이즈 자체의 미래가 상당히 암울해졌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벤져스라는 프렌차이즈는 이제 세대교체와 리벤져스라는 또 다른 팀의 등장까지 멋지게 성사시키며 절정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저스티스 리그는 첫 절정부가 시작보다도 못하다며 기본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으니까요.


슈퍼맨이 들어간 포스터도 있었군요. 분명 나쁘지 않은 포스터인데 참....


저스티스 리그의 실패는 앞으로 어떤 미래를 불러올까요.


긍정적으로 보자면, 더 이상 볼거리만 있는 캐릭터쇼만으로는 의미가 없으니 드디어 개연성과 스토리, 그만의 개성을 갖춘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슈퍼맨도 배트맨도, 하다못해 원더우먼도 슈퍼히어로의 일각을 이루는 아이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이젠 정말로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수십년간 슈퍼히어로 무비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를 다시 한 번 제작진들이 되짚어봐야 한다는 겁니다.


가장 좋고, 또 현실성 있는 조치는 개별 영화를 유니버스에 대한 부담은 떨친 채 만들며 프렌차이즈 그 자체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금 높여가는 것입니다. 지금껏 해당 유니버스 무비 가운데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 맨 오브 스틸이나 원더우먼이었던 걸 잊지 말아야 하는 거죠. 크로스오버를 통해 아무리 빅 이벤트가 찾아오더라도, 그리고 그 크로스오버가 아무리 큰 성공을 불러올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최소한의 기본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쉽게 말하자면 쓸 데 없는 데 기운 쏟지 말고 중심이 되는 다섯 캐릭터부터 제대로 살리라는 겁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캐릭터들의 방향성 자체는 분명 사람들이 매혹을 느낄만하다는 점입니다.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특유의 결벽성과 미숙함 때문에 사고를 치는 누구보다도 인간다운 슈퍼맨, 백전노장이지만 서서히 약해지고 있으며 스스로의 정의에 매몰되다 슈퍼맨을 통해 자신의 구원과 새로운 각성을 이루어내려하고 있는 배트맨, 가장 오래된 존재이면서도 가장 순수하여 힘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원더우먼(근데 이게 가능할까요? 그 기나긴 코믹스 역사에서도 결국 못하고 지금의 강경무투파 캐릭터가 되었는데 말이죠. 바꾸어 말하자면 이거 성공하면 여지껏 없었던 새로운 히어로의 지평을 여는 겁니다.), 최신(?) 캐릭터답게 온갖 코드가 잔뜩 입력된 사이보그(흑인+정체성 고민+온오프 만능 등), 나왔다 하면 이야기와 액션에 활기를 불어넣는 트릭스터 계열의 캐릭터인 플래시, 야만성 뒤에 감춰진 순수함과 특출난 수중 액션을 보여줄 수 있는 아쿠아맨까지.


히어로 콘텐츠의 유행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분명히 흥행성적등을 보면 최선두를 달리고 있는 코드이며, DC의 아이콘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겁니다.


마블과 디씨의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이야기나 캐릭터가 아니라, 사실상 기획으로 승패가 갈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분명히 마블 쪽에서도 여러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얼기설기 엮인 부분이 눈에 띔에도 불구하고 그 비교군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과 함께 놓고 보면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쓴 부분이 눈에 띄거든요.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기획된 영화들 이후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적잖아 보입니다.


일례로 배트맨의 경우, 배트맨의 등장, 배트맨의 각성, 로빈의 죽음, 펭귄 등 초능력을 지니지 않은 악당들과의 대결, 조커와의 대결, 배트맨의 변심, 배트맨의 은퇴, 배트맨의 복귀 등등등을 이미 소진한 상태입니다.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다크나이트 삼부작과 이미 범람하고 있는 히어로 콘텐츠를 생각해보면 차별화를 위해 늙고 노쇠한 배트맨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까지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만, 철저히 다크사이드와의 대결을 위해 초점을 맞춘 채 내용이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배트맨으로 뭘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은 점점 줄어가고 있습니다. 즉, 배트맨 단독 영화에서 뭘 다룰 수 있느냐, 그것이 우리가 배트맨에 기대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느냐 등등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암울해 집니다.


슈퍼맨은 다른가요. 로이스 레인은 이미 슈퍼맨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지미 올슨과 클락 켄트는 죽었고, 슈퍼맨도 죽었고, 그리고 슈퍼맨은 살아났고,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들과 힘겨루기도 했습니다. 그와 육체적으로 겨룰수 있는 주요한 악당 둘도 이미 완전히 퇴장된 상황이고요. 원더우먼요? 각성 이후 100년동안 뭘 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 못해서 이상한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차라리 신캐릭터 보정 잔뜩 받아 못하는 게 없는 사이보그나, 능력을 살리면 이야기가 너무 단조로워지는 플래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주변상황을 묘사해야할지 머리 빠개지도록 고민하지 않으면 제작비가 제곱으로 늘어나는 아쿠아맨쪽이 이야기를 다루기가 쉬워보일 지경입니다.


이전까지 악당 캐릭터를 너무 소진하는 거 아니냐는 코믹스 팬들의 비판이 히어로 무비에 종종 있어 왔는데, DC는 차원이 다릅니다. 영화 몇 편은 찍을 소재를 메인 소스도 아닌 부재료로 몽땅 써버렸습니다. 물론 길고 긴 코믹스 역사상 많은 이야기가 있기에 앞으로도 적잖은 이야기거리가 있을 것입니다만, 캐릭터의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사건들이 메인 캐릭터들에게 너무 많이 벌어진 것, 그리고 그것이 아예 영화상에 묘사되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들 수 있는 캡틴 아메리카의 경우는 저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캡틴아메리카는 2차대전 중의 전쟁영웅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음에도, 레드스컬과의 대결을 제하면 어벤져스의 참전을 위해 그 외의 활약상은 영화상 컷 몇번으로 아예 날려버렸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의 발전과정상을 생각해보면 당혹스러울만치 단호한 조치였죠. 실제로 2차대전중의 초인 히어로는 상당히 매력적인 배경과 설정으로, 실제로 원더우먼에서도 무리없이 활용되었던 바 있었습니다. 이 단호함이 너무 과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 실험 이후 초인이 된 시점과 대량살상을 막기 위한 자기희생 사이의 텀이 짧다고 보는 관객들도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실제로는 몇 년간 전공을 세웠다는 설정임에도.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몽땅 날려버린 덕에, 제작진은 여러 수습책을 마련합니다.


첫번째는 개별드라마에서 그의 뒷이야기 등을 다루어내는 것. 두번째는 이런 지나간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앞으로의 시점에 더욱 주목토록 하는 것. 예컨데 퍼스트 어벤져 직후 어벤져스가 개봉한 것처럼 말이죠. 세번째는 결국 좋은 작품을 내는 것입니다. 보다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러한 측면에서 제 솔직한 심경은 차라리 리부트가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았던 원더우먼조차 남자친구의 죽음 이후 수십년동안 은거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감이 없으니.... 이럴 바엔 뻔하지만 정석대로 히어로의 탄생, 각성, 희생 등등을 보다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하나하나 쌓아가는 게 나아 보입니다.


실제로 플래시 포인트를 통해 아예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세계를 그리려 한다거나, 배트맨이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별개의 배우를 통해 그리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이건 지금의 문제를 제작진이나 경영진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마치 엑스맨 영화처럼 개별 영화의 연결성은 약하게 하면서 핵심적인 줄기만 따라가겠다는 소리인데... 글쎄요. 잘 될까요. 긍정적인 기대이건, 부정적인 예상이건 중요한 것은 경영진이나 제작진이 아예 접근법을 달리해야 할 정도로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거란 점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12.22 20:27


 슈퍼로봇대전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제각각의 설정을 가진 콘텐츠들을 크로스오버 시켜 스토리를 짜내는 일종의 캐릭터 게임입니다. 저도 즐겁게 즐긴 시리즈이기도 하고, 이후 로봇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바꾼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점도 인정하지만, 이 시리즈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 게임이 마니아만의 콘텐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결국 슈퍼로봇대전은 그 많은 시리즈를 진행하면서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콘텐츠들을 한 곳에 묶는 설득력있는 기준을 오직 평행세계와 다중우주로만 설명해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각각의 슈퍼로봇대전은 평행세계를 잘 녹여냈고, 또 작품은 평행세계를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했다는 차이만을 가질 뿐, 동일한 게임성과 동일한 지향성, 동일한 플레이 포인트를 가진 무수한 양산품의 양립으로 이어지게 되어 버립니다. 실제로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가운데 차원이동 등의 설정을 제하면 몇몇이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할까요. 평행세계, 다중차원, 시간이동등의 요소는요? 이들은 엄밀하게 서로 다른 성질의 소재지만 실질적으로 창작물에서는 혼용되어 사용될 정도로 널리 이용되어왔습니다. 


애초 거대로봇물이라는 공통의 장르를 바탕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각기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마징가vs건담류로 대표되는 설정도 그러하죠. 그랬었기에 슈퍼로봇대전이 평행세계 등의 설정에 주목했던 겁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중차원 설정은 독이 든 성배같은 것입니다. 섞일 수 없는 것들을 섞어주는 촉매는 되어주지만, 너무 많이 이용되어 별개의 설정인 요소들도 대중들 사이엔 적당히 눙쳐지는 수준으로 익숙해졌죠. 일정 질을 담보하는 대중 작품에 있어 결국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이디어의 신선함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면, 이미 평행세계라는 설정은 상당한 한계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슈퍼로봇대전 시리즈를 평가하자면 "그래픽과 출연작만 일신하는 콘텐츠의 미래는 과연 카달로그와 어떠한 구분점을 가지는가"라는 식으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중차원 그 자체는 여전히 애용받는 설정입니다. 애초 이 다중차원 자체가 고전적인 색체의 시간이동을 나름대로 일신한 설정으로, 관련 소재 자체는 수십년 전부터 있었지만 만화나 영화, tv시리즈, 소설 등 창작물 전반에서 본격적으로 널리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니까요. 많이 이용되어 질리는 감은 있을지언정 여전히 신선한 편에 속하는 소재라고 말할 수는 있는 겁니다.


더군다나 핑계도 존재합니다. 창작물에서의 쓰임과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과학적인 방식의 이론까지 뒷받침되고 있습으니까요.


창작물에서 평행세계 설정 등은 여전히 애용받을 겁니다.


프로젝트 크로스 존은 세가X남코X캡콤의 대표 캐릭터들의 크로스오버 게임인데.... 스토리가 영 별로라 상당히 박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캐릭터 게임 자체로는 그렇게까지나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왜 이렇게 평행세계 설정을 많이 애용하는 걸까요.


가장 먼저 꼽고 싶은 점은 이야기를 만듦에 있어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편의성을 제공해준다는 점입니다. 어떤 상충하는 요소가 발생해도, 어떤 논리적인 모순이 발생해도, 심지어 이전에 했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를 해도 해결이 됩니다. 비슷하지만, 사실 일정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평행세계였다는 식으로 말이죠. 크로스 오버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쪽은 기계인간, 이쪽은 식물인간이지만 평행세계 설정을 도입하는 것을 통해 섞일리 없는 두 소재를 섞어 냅니다.


창작자는 섞이기 힘든 요소들을 섞는데 커다란 유혹을 느낍니다. 보다 새롭게, 보다 재밌게, 보다 인상적이게 만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창작물에서 거리가 멀어보이는 소재를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니까요.


더군다나 특정한 팬덤을 유지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길게 유지된 콘텐츠에서는 필연적으로 선호하는 작품이 갈릴 수밖에 없는데 특정한 작품군을 다른 작품군으로 대체하기보단 차라리 평행세계라며 상이한 설정의 두 작품을 팬덤에겐 계속해서 현역으로 유지시킬 수가 있는 겁니다.


슈퍼로봇대전 역시 위 한계를 인식하여, 아예 개개 게임 시리즈가 각각의 평행우주일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모든 게임 시리즈 전체로의 평행세계 확대라는 모험을 해냈습니다. 지겹고, 질린다면, 아예 역을 찔러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설정을 확대시켜 반대로 이용자들을 압도해 버리는 겁니다. 거대한 스케일로 짓누르고, 그 개개의 틈은 플레이어와 다른 작가들로 메꾸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거죠. 물론 결론 내는 것 없이 떡밥만 푼다며 진입장벽을 한 없이 높인다는 또 다른 한계에 직면했지만, 어쨌든 이 전략은 유효했습니다.


즉, 이야기적인 설득력과, 일정 수준 이상의 스케일을 가진다면, 다중우주-다중차원-멀티 유니버스-평행세계는 여전히 매혹적인 설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어벤져스 이후 이제 더 이상 회사가 달라서, 규모가 너무 커져서, 이야기적인 구성이 어려워서 등등의 이야기는 핑계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처음 어벤져스가 나올 때와 달리 엑스맨과의 크로스오버는 훨씬 심도깊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 판권이 디즈니에 들어온 것과는 별개로요.


예.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아시겠죠?


엑스맨 시리즈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저 편한 평행우주, 다중차원 설정을 쓰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더욱이 두 작품은 기원을 마블코믹스에 두고 있어 분명히 공통의 이야기적인 지향점이 있고, 히어로물이라는 장르적인 공통점과 능력자물이라는 소재까지도 그 틀을 공유합니다. 앞선 슈퍼로봇대전이 고대문명산 거대인형로봇과 외골격외계인 강화인간을 같은 작품에 출연시키는 정도에 비하면야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로스오버 난이도는 낮습니다.


단지 지금까지의 제작주체가 다르며, 줄기와 가지가 명확히 구분되는 상황이 된 데다, 무엇보다 지금껏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비용이 사용되었던 콘텐츠라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12.16 22:21


 예정대로


디즈니는 폭스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그와 관련된 작업들이 진행되어 마무리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언급드렸듯, 엑스맨은 20세기 등장하여 히어로 콘텐츠 무비 붐을 본격적으로 띄우기 시작한 콘텐츠이고, 어벤져스는 이러한 화려한 히어로 붐의 정점에 올라 첨단을 달리며 그 압도적인 규모를 과시하는 콘텐츠입니다. 양자는 그 나름의 매력과 색깔을 가진 형태로 발전하였고, 각각 엑스맨 유니버스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대표되는 프렌차이즈를 구축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콘텐츠가 근본적으로는 마블 코믹스에서 뻗어나온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원작에서도 독자적인 시리즈이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크로스오버는 꾸준히 있어왔고, 이와 관련한 영상화도 어느 정도 있어왔습니다. 거대한 유니버스간의 결합은 또 다른 흥미와 기대를 부러내기에, 팬들이 두 세계가 영화에서도 함께 하기를 기대했던 것은 어찌보자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뭐 겸사겸사 판타스틱4도 있고요.


심슨에는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된 컷이 나옵니다. 웃기긴 한데 지금보면 좀 씁쓸하기도 하죠.


그러나.


엑스맨 시리즈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름의 고저차는 있을지언정 그만의 색깔을 가진 고전의 풍모를 갖춘 현역인 콘텐츠이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이제껏 없었던 극한의 세계관 확장을 최첨병에서 다루어내는 무게를 이겨내던 중이었습니다. 양자의 결합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죠.


더군다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영화 시리즈만이 아니라 tv시리즈 등도 함께 병행하여 진행중인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원작의 인지도가 높고 기대치가 높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어벤져스 시리즈에 삽입하는 것은 아주 커다란 부담이 있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캐릭터 자체야 등장시킬 수 있겠지만, 이미 자신들의 품 밖에서 자기만의 이미지를 형성한 작품을 무리 없이 삽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결국 긴 텀을 들여야 하는 일이라 인식했을 겁니다. 기존 엑스맨 시리즈의 이미지가 지워질 정도로 긴. 그리고 얼굴 싹 씻고 처음 벌어지는 일인양 다시금 데뷔하는 그런 일이 벌어져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시간을.


고저차는 있다해도 나름대로 성공을 거둬온 엑스맨 시리즈기에 이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기존 엑스맨 콘텐츠를 원작의 다른 소재를 통해 영상화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인휴먼스죠.


이리저리 휘청거렸던 에이전트 오브 쉴드지만 사람들이 기대를 버리지 않았던 것은 작품 속 인휴먼스가 공식적으로 등장하면서, 추후 영화 인휴먼스의 전조로 이어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콜슨을 되살려서는 안됐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제작진으로부터 나올 정도로 두 시리즈 간에 이질감이 심해지고, 정작 본편격이 되어야 하는 인휴먼스가 실패해버린 상황이 되었습니다. 거기다 엑스맨이 돌아와 버렸으니 인휴먼스는 붕뜬 상황이 되어 버렸죠.


사실 엑스맨과 인휴먼스는 초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그 기원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입니다.


예컨데 두 종족 모두 영화에도 등장한 셀레스티얼을 통해 초능력 인자가 잠재하게 되었지만, 엑스맨은 특정 유전자를 가진 일종의 진화체이고, 인휴먼스는 특정한 외계인의 실험으로 인해 인자가 각인되어 그것이 발휘되는 케이스입니다. 이들은 인류 자체의 실험이나 사고를 통해 초능력을 가지는(예컨데 캡틴 아메리카나 스파이더맨과 같은) 사례와는 엄연히 구분되는 존재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구분점이 약간의 윤색만으로도 충분히 흐려질 정도로 흐리다는 점입니다. 스파이더맨 tas에서 피터 파커가 자신이 거미가 되어가는 것을 막아달라 엑스맨에게 요청하는 장면은 너무나 상징적이지만, 이러한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의 숫자와 종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엑스맨 시리즈 본연의 차별과 그에 대한 이해와 극복이라는 힘은 서서히 소실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작에선 인간의 종이 인간-엑스맨유전자를 가진 인간-해저인간-크리족의 실험으로 인한 인자를 가진 인간-실험은 받지 않았지만 외부적 요인으로 초인으로 각성할 수 있는 인간 등으로 나뉘니까요.)


실제로 마블은 이러한 엑스맨의 포지션에 자신들이 가진 인휴먼을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에 끼워넣었습니다. 엑스맨의 대표적인 테마 '차별받는 소수'에 인휴먼을 끼워넣어 그들의 고통과 고독, 인내와 극복을 그려내려 한 것이죠.


애초 영화시리즈 자체가 가진 부하를 생각해보면, 드라마가 보완하는 식으로 뒤를 쫓는 식으로 구성되었어야 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예상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만드는 것은 여러모로 제한이 되기에 그렇게 만들면서도 재미있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는데- 에이전트 오브 쉴드는 그걸 못해서 아예 스케일을 미친듯이 키워 버렸고, tv시리즈 인휴먼스는....


그러나, 문제가 발생합니다.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의 인휴먼스 스토리는 처음의 기대치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다 비판받았습니다. 가장 큰 타격은 tv시리즈가 영화 시리즈 이상으로 스케일을 끝없이 확장시켜 완전히 따로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사실상 연계를 끊은 거 아니냐는 소리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거죠. 에이전트 오브 쉴드라는 제목에서처럼 본 콘텐츠의 정체성은 엄연히 영화 시리즈와의 연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더군다나 더욱 큰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영화로 기획되었던 인휴먼스가 또 다른 tv시리즈로 그 모습을 드러냈고, 심지어 회자되지도 못할 정도로 크게 실패했습니다. 이미 에오쉴에서 인휴먼스 관련 소재를 엑스맨으로 치환하여 써먹었음에도 별다른 반향도 없고, 인휴먼스의 본진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또 다른 별개의 tv시리즈로 방영했는데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인휴먼스 시리즈는 아예 없는 양 취급해도 무방한 상황이 되었죠.


그리고 엑스맨 시리즈와 뮤턴트가 마블로 복귀하게 됩니다.


디즈니의 폭스 인수에 대한 엑스맨의 출연진들의 반응도 흥미롭습니다. 아이콘이었던 휴잭맨이야 흥미롭지만 배는 이미 떠났다는 입장이고, 레이놀즈는 SNS에서 온갖 개드립을 치면서 번역가가 저건 어떤 의미라는 걸 해석해주는 상황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휴먼스의 실패는 세계관 통합 측면에선 도움이 되면 되었지, 거슬리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인휴먼스 자체가 엑스맨을 대체하려 했었던 것인데 그것이 상단에서처럼 회자되지도 못할 정도로 실패했기에- 되려 엑스맨이 인휴먼과의 마찰 없이 복귀할 수 있게 되어 버린 겁니다.


낮아진 tv시리즈의 영향력, 부정되어지는 영화와 tv시리즈와의 연계, X맨을 대체하겠다며 나왔던 콘텐츠의 유례없는 실패. 거기다 엑스맨은 지금 세대교체 도중인 상황입니다. 휴 잭맨이 어벤져스에 출연을 거절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변화하는 엑스맨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엑스맨 프렌차이즈 자체의 색이 그 어느 때보다 완성되고 정리되었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이때만큼의 적시도 없다는 것이죠.


더군다나.


어벤져스에서 창작물의 가장 편의적인 도구 중 하나인 멀티 유니버스에 은근슬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까지 솔솔 들려오고 있습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12.16 22:21


 음....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충격적? 당혹스러움? 감탄? 흥분? 경악? ...역시 어렵네요.


폭스의 인수소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th폭스라는 이름때문인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전만 못해졌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았거든요. 실제로 근 몇년의 일만 살펴봐도 그러합니다. 몇 편의 기대작(대표적으로 판타스틱4)들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고, 미국내 입지도 워너브라더스 등에게 밀렸으니까요. 자연스레 관련한 인수합병 소식도 꾸준히 들려왔습니다. 인수할 것이라 이야기되던 기업들 가운데 디즈니가 있기도 했고요.


일단 이틀 전의 뉴스에선 양자의 협상은 마무리되었고, 사안 발표는 다음주에 한다는 것인데-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물론 fox가 인수된다고 해서 관련된 콘텐츠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고, fox채널 등은 계속해서 유지되겠지만 일종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관련 뉴스에서는 tv와 영화에서 제작된 콘텐츠들의 권리가 디즈니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 가장 먼제 눈에 띄네요. 뉴스나 스포츠 등은 계속해서 유지되지만- 일부 콘텐츠-그러니까 디즈니나 마블 픽사 등의 로고가 더 어필할 수 있는-에서는 더 이상 fox로고나 20th fox 시그널 등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말은 fox로고나 간판이 흥행에 더 도움이 된다면 계속해서 일부 콘텐츠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는 소리기도 하죠.


fox채널에서 방영되었던 X-files의 주인공 폭스 멀더. 지금 디즈니와 폭스의 거래는, 폭스의 방송사나 제작시스템 등은 유지한 상태에서 관련 저작권자산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예전 심슨에서처럼, 마블 영화에서 FBI 요원이 필요할 때 X파일의 멀더가 와버리더라... 이런 일도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디즈니가 발휘하는 저작권 파워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했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부터 스타워즈, 픽사와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내놓는 작품들의 전 세계적 히트를 보노라면 감탄을 넘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사실상 이해의 범주 밖의 그런 회사인데- 여기에 폭스의 콘텐츠까지 포함될 수 있다라... 20세기 폭스도 엑스맨 시리즈와 킹스맨, 에일리언 시리즈와 심슨 등의 여러 아이콘과 문화파워를 지니고 있는 만만찮은 기업이란 이미지가 있는데도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요. 디즈니를 흔히 거대 매머드, 메가톤급 괴수에 자주 비유하며 사실상 초지구적 기업이라고까지 이야기했었습니다만 정말..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 이해의 범주 밖의 일이 벌어지네요.


일단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히어로 관련 콘텐츠일 겁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와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장르의 두 주자니까요.


현재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가장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입니다. 하지만 엑스맨 시리즈는 현역 가운데 가장 오래된 히어로 무비 시리즈 콘텐츠이고 마블이 앞으로 해내야할 세대교체와 화려한 퇴장, 심지어 성인을 대상으로 한 히어로무비까지 성공시킨 전력이 있습니다. 이 두 시리즈는 같은 마블이라는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서로 다른 영화사에서 그만의 성과를 남겼습니다. 가장 익숙한 히어로 무비 콘텐츠들이니만큼 가장 뜨거운 크로스오버의 대상으로 기대되어 왔죠.


그만큼 두 영화는 그 지향점과 평가의 측면이 어느 정도 다른 상황이고, 히어로 무비의 장르를 다양화하는데 시너지를 일으켜왔습니다. 영화의 평균적인 질과 흥행력은 전자가 앞선다 평가되곤 합니다만, 일종의 고전으로서의 아우라까지 풍기기 시작한 엑스맨의 일부 시리즈만의 매력은 분명 마블은 갖추지 못한 독특함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엑스맨 시리즈는 기존 캐릭터에 새로운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신세대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99년 엑스맨들의 장중한 은퇴까지 실현해낸- 실질적인 세대교체의 완성단계에 이르른 상태입니다. 즉 그 나름의 금자탑을 쌓아왔다는 거죠.


이러한 와중에- 예. 엑스맨의 판권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그것과 함께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니 뭔가 복잡한 기분이 드네요. 먼저 나와서 그만의 개성을 형성하여 차별을 넘어선 주체적인 평등이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발휘해온 콘텐츠가, 이후의 개개의 상징과 크로스오버를 통한 이벤트식의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편입될 수도 있다는 것은 뭔가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커져가는 기대감만큼, 걱정도 커지는 거죠. 함께 하기엔 두 콘텐츠는 꽤나 먼 길을 걸어왔으니까요. 확장하는 세계관은 매력적이지만, 전체가 몰개성해지는 콘텐츠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12.16 13:12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영화와 비슷한 것은 다름아닌 터미네이터3였다는 겁니다.


터미네이터 3는 저 개인적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 가운데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는 영화입니다. 물론 완성도는 4가 더 떨어지고, 제니시스가 가장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3는 기존 2부작이 남긴 유산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고, 기존의 이야기적인 지향점과 담론을 모조리 뭉개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의미에선 기존 콘텐츠를 즐겨온 관객에 대한 모독이나 공격처럼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터미네이터3는 실패한 프렌차이즈로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실제로 이후 곧장 리부트되었습니다. 이후 나온 4 역시 또 다른 리부트의 시발점이 되긴 했지만, 최소한 4는 올드 팬들이 인정하는 나름의 방향성을 보여주긴 했다 평가되었거든요.


이를 통해 저는 프렌차이즈는 앞으로 얼마나 영화를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영화를 자리잡도록 재정리를 하느냐, 그 이상으로 기존 콘텐츠를 얼마나 잘 아우르며 존중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보자면 이 두 요소는 그 영화 단독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져 있는 것과 어느 정도 분리되는 요소죠.


저는 사실 스타워즈를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주인공인 프리퀄3부작으로 먼저 접했습니다. 기존 클래식 시리즈는 영화는 보지 않고, 내용만 아는 상황이었죠.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알아야하지만 즐기지는 않는 성향의 관객이 되었고, 그 기대치도 그렇게까지 높게 가지진 않았습니다. 대충 팬들이 왜 열광하는지는 알지만 저 자신은 그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갖고 있는 그런 관객이었죠.


저를 이러한 자리에서 멀어지게 만든 것은 재생공장장이라고 불리던 J. J. 에이브람스 감독의 작품 깨어난 포스였습니다. 나름대로 새로운 감각과 고전의 영향력을 조화시켜 만든 이 영화는 새로운 스타워즈 팬층을 크게 끌어들였고, 기존 스타워즈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준공식급으로 인정된 요소들도 일신하여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죠. 그럼에도 아직은 약간 모자란 측면이 있었고, 이번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했었습니다. 실제로 관련된 전문가의 평점은 상당히 호의적이었고요.


호평하는 쪽은 팬들에게 엿을 먹였는데 그 엿이 신선한 엿이고, 혹평하는 쪽은 아무리 만들기 부담있는 시리즈라 하더라도 너무 청개구리처럼 굴다 전체적인 완성도마저 떨어뜨렸다 이야기합니다. 3부작의 두번째 영화로 받아들인다면야 전자의 평이 더 옳아 보입니다만, 9부작의 8번째 영화로 본다면 아무래도 후자쪽이 더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죠.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의 제 감상은 저 개인적으로는 호감에 가까운 인상임에도 불구하고... 예. 결국 터미네이터3와의 비교로 이어지게 됩니다.


개별 영화로는 흥미로운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고, 또 기존 스타워즈 콘텐츠가 긴 시간 활용되면서 이용되어온 여러 클리셰들을 배격하는 과정에서 기존 영화가 남긴 성과나 방향성을 반박했습니다. 이를 위해 나름의 정통성을 위한 클래식 시리즈의 출연진들을 나름의 예우를 갖추어 초빙했지만, 그러한 그들의 캐릭터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출연진을 부각시킬 수는 없기에 필연적으로 완성된 캐릭터의 붕괴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터미네이터 3처럼 전문가 평 자체는 나름대로 호의적이지만, 관객의 평은 크게 호불호가 갈려버리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스타워즈의 본질은 결국 오락물이기 때문에 전문가평이 관객의 평보다 높은 것은 사실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죠. 올해는 결국 토르 라그나로크,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트레일러 공개, 그리고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콤보로 디즈니의 승리로 마무리되겠다는 이야기가 설레발처럼 여겨질 정도로 불안한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터미네이터3 당시 느꼈던 당혹감이나 불쾌함에는 미치지 못할 뿐더러 새로운 이야기의 지향점은 분명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특히 기존 스타워즈 콘텐츠를 끝도없이 우려내었던 관련 콘텐츠들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이러한 성질은 미리 예견되어 있었던 것일 지도 모르고요. 


문제는 이 시리즈가 사랑받아온 시간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비교해도, 길어도 너무 길다는 겁니다. 팬들에게 정말 열렬히 사랑받고 재창작되어 왔던 콘텐츠 스타워즈가 가진 정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인상도 달라질 겁니다.


관객에 대한 기대의 배신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관객의 예상 그 이상의 어떤 무언가를 보여주거나, 관객이 가진 작품에 대한 이미지를 망가뜨리거나. 깨어난 포스는 저 둘 사이를 정말 교활하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제대로 줄타기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여러 논란이 담론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흥행으로 귀결되었던 것이죠. 반면 이번작은 좀 더 후자쪽에 가깝다는 인상입니다. 물론 삼부작이니만큼 최종적인 평가는 결국 마지막 영화가 개봉한 이후가 되어서야 이루어지겠지만, 사실상 쓸 수 있는 '총알'을 모두 날려버린 이후의 프렌차이즈가 얼마만큼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소 고개가 갸우뚱 해집니다. 과연 기존의 총알보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 새로 만든 총알이 더 쓸만하다고 보는 총잡이가 얼마나 될까요. 승패는 여기서 갈릴 겁니다.


터미네이터는 시간이동을, 스타워즈는 여러 시리즈의 영화가 있어 다양한 2차창작물이 있어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기 편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독이든 성배로, 뭘 해도 본편에 삽입되기 쉽지만 반대로 뭘해도 본편으로서의 무게감을 갖기 어렵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또 평론가는 이 영화를 처음 호평했는가. 그리고 저는 왜 이 영화를 불호보다는 호에 더 가깝게 받아들였느냐. 결국 저는 이 프렌차이즈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재창작되어 왔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 가운데엔 아마추어 수준의 2차창작인 것도 있었지만, 또 어떤 것은 본편에 삽입되어도 무방한- 아니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수작도 있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프렌차이즈의 입장에선 전자건 후자건 상당히 거슬리는 게 사실이죠. 본편으로서의 정통성을 가져야 하는 콘텐츠가 결국 2차창작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죠. 또한 기존 콘텐츠가 구축한 이미지를 벗어버리는 것도, 사실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결국 평론가는 이러한 난이도를 창작자의 입장에 대입하여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저작권자라도,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낸 창작자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 대중작품이고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공유한다면, 불특정의 대중이 만든 이미지와 창작물과 크게 구분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반대로 모든 것을 반대로 선택하는 것으로 종종 이어지곤 합니다만, 모든 것을 답습하는 것이 때론 모든 것을 반대하는 것과 크게 변별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번 스타워즈를 너무 쉽게 가려했다는 비판이 따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넘기보단 눈속임했다는 것이죠. 


구조나 발상을 전환시켜 이야기를 일신시키는 것은 때론 대중의 인식과 유리되어 별개의 콘텐츠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프렌차이즈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이것은 흥행- 그리고 팬층의 반응으로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이번 영화가 긍정적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러기를 희망합니다만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음의 3부작은 이론의 여지없는 화려한 역전타를 기대해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11.16 03:54


 물론 


제가 스티븐 킹의 모든 소설을 본 것도 아니고, 하물며 영상화된 모든 콘텐츠를 본 것도 아닙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샤이닝에 견주어도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강점을 가집니다. 하나는 스티븐 킹 특유의 기괴한 세계관과 그에서 비롯되는 공포, 그리고 그 너머 본질적인 성장을 너무나도 매끄럽게 잘 각색하여 전달해 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국내에 널리 알려진 스티븐 킹의 영상물 상당수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70~80년대 세계관을 잘 표현해 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은 역시 그리고 결국 각 캐릭터의 매력을 잘 표현해 냈다는 점입니다. 일부 소모적으로 사용된 친구 캐릭터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그 숫자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속편에서의 비중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웃고 넘길 수 있을 정도라 여겨집니다.


사실 별 기대가 없었고, 그래서 극장에도 안갔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은 영화여서 놀랐습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그간 엄청난 숫자가 영상화되어 왔었습니다만, 그 가운데 고평가 받는 작품군은 그 숫자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이나 각색이라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소리기도 하지만, 대중적이면서도 충격적인 스티븐킹의 세계관을 영상화하기가 그만큼이나 까다롭다는 소리겠죠. 실제로 세계관의 설정과, 그 세계관에 변화를 주는 공포 등을 위한 소설의 초현실적이기까지한 묘사는 영상에는 그리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킹 본인이 영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컨데 tv시리즈 샤이닝의 초현실적 장면들은 때론 공포보다는 황당함과 우스움을 안겨줬죠. 스티븐 킹의 원작 특유의 색을 살리면서도, 그 충격적인 특유의 삐죽삐죽함(?)을 지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영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평을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것은 가히 최고의 스티븐 킹 유니버스의 영상화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하게 해냈습니다. 절제와 정제를 통해 수십년의 시간이 흘러 우습게 보일 수 있는 요소는 적절하게 덜어내면서도 당시 시대상에 어울리도록 적당히 변주해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에 밀접하게 결부된 연출들은 호러장르라기엔 다소 부족하다는 인상을 남길지언정 전체 주제를 향해가는 발걸음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그간 영상물이 이러한 연출로 인해 공들여 쌓아온 인물의 묘사를 망가뜨렸던 점을 생각하면 호평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샤이닝 tv시리즈 가운데 한 장면... 흐흐흐...


창작물 속에서 묘사되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묘사는 미국의 70~80년대의 경우 한국의 80~90년대 정도로 치환되곤 합니다. 물론 정확히 일대일로 대응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로 인해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것을 쫓아가지 못하는 인식과 의식, 그리고 특유의 꼬질꼬질하지만 청량한 느낌을 공통분모로 들 수는 있을 겁니다.


기존 스티븐 킹의 영상물을 보아왔던 이들에겐 사실 그리 낯선 시대적 배경이 아닙니다. 여러 b급 호러 영화가 배경으로 했던 시기도 바로 이때이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당대 미국에서 살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간접적인 방식으로 영화의 시대에 몰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단순히 이러한 시대를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영화의 주제와 결합시키며 과거의 세계관으로 명백히 규정하였습니다. 영화의 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는 단순히 캐릭터들의 성장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와 그 속에서 계속해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무언가'라는 점을 너무나 성실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저만한 숫자의 주요 캐릭터다보니 한두번 정도는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확 떨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인터미션이 있어서 잠깐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영화보단 tv시리즈가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어린 시절 가지는 혹은 가해지는 특유의 잔인함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거세되고 마모된 어른들의 추억 속 아이들의 모습보단, 부대끼고 비린내나고 모래가 씹히는 어린 시절의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모습들이 비추어지죠. 그렇기에 이 영화는 특정한 측면에서 불편하지만, 그렇기에 보다 집중하고 몰입하여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고통과 고난, 그리고 성장을 효과적으로 잘 표현한 덕에 우리의 성장이 가지는 의미를 조명해줍니다.


이는 기존 스티븐 킹의 세계관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특정한 소재만을 차용해 아예 별개의 콘텐츠를 만들어버린 작품이나, 아예 건조함만을 강조하여 그 소재만을 강조하는 경우와는 궤가 다릅니다. 콘텐츠 그 자체를 넘어 창작자에게 닿을 수 있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작품을 스티븐 킹 영상물 가운데 최고의 정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의 창작세계를 관통하는 인상과 주제를 영화는 너무나도 잘 표현해내고 있거든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영화2017.09.14 04:35


 2000년


제니퍼 로페즈가 주연한 영화 더 셀은 연쇄살인마의 심상을 시각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아래 출발한 작품입니다. 2010년대 들어 벌어지는 강력범죄들은 타인을 이해의 대상이 아닌 종속과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에 대한 콘텐츠가 다시 한 번 크게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른 바 싸이코패스들에 대한 다각도로의 접근이 이뤄졌는데, 더 셀은 그러한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할만합니다. '살인마의 심상에 대한 시각화'는 필연적으로 살인마에 대한 이해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것을 일반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해서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찌보자면 가장 영화다우면서도 힘든 길을 선택한 야심만만한 작품인 것이죠.


이 작품에서 캐서린 역을 맡은 제니퍼 로페즈는 심리학자로서 타인의 정신에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거나, 그들이 가진 심리적 문제를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 앞에 희생자를 어딘가에 감춰두고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연쇄살인마 칼이 나타납니다. FBI는 그녀에게 칼이 감춘 피해자의 정보를 요청하고, 희생자의 마지막 모습을 본 캐서린은 그 부탁을 받아들이고,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살인마의 의식 속으로 뛰어듭니다.


살인마의 정신세계가 그 세계로 돌입한 심리학자에게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영화는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부분 역시 큰 실착인데, 내내 제니퍼 로페즈에게 무슨 일이 생길것처럼 하더니 그 부분을 통채로 들어낸 채 갑자기 변해버린 모습만 보여줘 버립니다. 뽀뽀하다 갑자기 화면이 물레로 돌아가버리는 걸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사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선 그리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어린 시절 발생한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현재 악의로 행해지는 의사에 대한 상징을 무찌르고, 내면의 연약함을 포용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극히 전형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 정형성은 이 영화의 과감한 기획과 비주얼을 깎아먹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살인마의 기괴한 정신세계'가 이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어린 시절 상처받은 영혼'으로 뒤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작중 왕으로 자칭하는 살인마의 상징은 대립과 회유의 대상에서 퇴치와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립니다. 물리칠 수 있는 적이 뭔가를 빼내어 와야 하는 물리쳐서는 안되는 적보다 훨씬 무섭지 않은 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영화의 대체적인 평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의 가장 큰 영향은 바로 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일 겁니다.



제니퍼 로페즈의 팬들은 이 영화를 꽤나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이의 의식속을 돌아다니고, 종래엔 자신의 정신세계에 다른 이를 받아들이기에 그녀의 화려한 그러면서도 상징적인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비주얼. 이 세 글자면 충분하겠네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적진 않습니다. 비주얼도 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구역질 나기까지하는 살인마의 변태적 성욕과 살인행위를 지켜보고, 이내 들어간 그의 정신세계의 기괴함과 혐오스러움은 이내 익숙해지고, 관객의 숨을 졸라대는 듯한 그 휘황찬란하기까지하던 대비는 곧 수그러들어 버립니다. 쉽게 말하자면 관객의 거부감과 흥미를 자아내는 첫번째 파도가 가장 크고, 이후로 점차 줄어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해도 살인마의 정신세계를 비주얼로 그러내겠다는 야심은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여 한 편의 뮤지컬을 본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살인마의 여러 정체성이 서로를 피하거나 쫓는 장면은 너무 진부했지만, 살인마가 가진 트라우마가 심상에 어떻게 반영되었고, 또 어떻게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종교와 관련한 트라우마에 대한 부분은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감탄하면서 보았는데, 그것을 캐서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해소해 내는 것은 영화가 하나의 분명한 줄기 아래 펼쳐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분명히 감각적인 영상이고, 기획도, 또한 그에 수반되는 비주얼적인 구성도 나쁘지는 않는데, 이야기적인 구성이나 고저차가 그리 능숙하지 못해 그 신선함이 순식간에 진부함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차라리 처음의 수위가 끝까지 유지되었다면, 살인마가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면, 살인마가 제니퍼 로페즈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처음의 수위 정도로 묘사했다면, 경찰 캐릭터가 정신에 뛰어든다는 이야기적인 반칙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이 영화의 장르를 스릴러로 보건, 호러로 보건 훨씬 고평가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