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프로그램2018.05.05 23:13


 최근


관심있게 지켜보는 콘텐츠가 몇 있습니다. 트위치발 인터넷 방송 몇몇과, 유튜브 채널 몇몇, 김어준이 진행하는 SBS의 블랙하우스, 영화 곤지암(은 영화 자체보다는 그 외부적인 홍보 과정), 그리고 일부 팟캐스트 방송입니다.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각자 영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그들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호흡이 엄청나게 빠르다는 점입니다.


여기서의 호흡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보여주고자하는 메인콘텐츠를 전면으로 끌어내기까지의 고저차를 이야기합니다. 요소가 일례로 유재석의 경우, 개그를 터뜨리고, 이후 다시 개그를 터뜨리는데 일종의 기승전결을 갖추죠. 자신이 운을 떼고, 김종국 등의 멤버를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이광수 등의 멤버를 통해 터뜨립니다. 그리고 약간의 텀을 두고, 이것을 반복하죠. 이것을 얼마나 능숙하고 재빠르게 하면서, 이전에 했던 것과 얼마나 차별화할 수 있느냐에 따라 MC의 역량이 갈리는 것인데- 유재석은 나이가 50을 바라보는 시점에서도 이것이 매우 기민하게 유지합니다. 그래서 그를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MC로 손꼽았고요. 당장 무한도전도 2010년대 이전까지 당대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굉장히 호흡이 빠른 콘텐츠였습니다.


당연하지만, 비교적 젊은 세대일 수록 이러한 가쁜 호흡에 익숙합니다. 저도 당연히 나이를 먹기 때문에 이런 빠른 호흡을 점점 버겁게 느낄테고요. 그러나 근자의 여러 콘텐츠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호흡의 빨라짐은 단순히 세대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차라리 환경의 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이전이 기승전결이라면 이젠 기-결, 이라는 느낌입니다. 트위치방송을 예로 들자면, 시청자가 보내온 핵심 영상으로 운을 떼고, 스트리머의 핵심 리액션으로 마무리됩니다. 채 1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저는 공중파가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흔히 짤로 대표되는 인터넷 문화가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친 거죠. 실제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이 백미라 할 수 있는 부분을 2~5분 내외로 잘라 게재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낯선 것도 아닙니다.


기억해보면, 예전 신해철이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당대 이것과 비슷한 반응을 받았었습니다. 오프닝 멘트나 시그널 없이 바로 본론으로 진입해서 결말까지 이끌어내죠. 한 시간 정도의 짧은 방송분량의 영향도 있었겠습니다만, 되짚어 보면 이 프로그램은 지금의 인터넷 방송, 팟캐스트 방송의 선조격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김어준이 진행하는 SBS의 블랙하우스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전의 나꼼수나 파파이스의 궤를 잇는, 인터넷 방송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케이스입니다. 인터넷 문화가 이제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주류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 되었다 볼 수 있겠네요.


사실 나름대로 이것저것 평론을 했던 사람의 입장에선- 이러한 호흡에 익숙해져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지금의 감각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꽤나 고민이 많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빨라진 호흡은 모든 콘텐츠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정도로 빨라진 호흡이 윗 세대에 어디까지 적용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요.


다만 이러한 빨라진 호흡이 해당 작품이 얼마나 흥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객, 독자로서의 감을 잃게 하고 있어 고민입니다. 물론 작품이 얼마나 흥행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관련 종사자들도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때문에 굳이 알 필요는 없단 생각도 들지만, 때론 작품의 흥행이 작품성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예. 역시 고민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8.04.17 23:29


 던파를


하다 문득, 이벤트에서 와이어트라는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와이어트 어프라는 실재하는 보안관의 영향으로, 서부극에서 와이어트라는 이름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 되었는데, 해당 이벤트에서도 와이어트가 등장하더라고요.


흥미롭게도, 해당 이벤트에서 와이어트가 위협적인 무법자로 등장하는데,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 작품이 있습니다. 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웨스트 월드의 와이어트 말입니다.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로버트는 작가의 입장에서 몰입해볼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웨스트월드라는 드라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과정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웨스트월드 하면 tv시리즈를 먼저 떠올릴 거란 생각이 들지만, 사실 몇 해 전까지만해도 율브리너가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뽐내며 사람들을 죽이는 안드로이드로 나온 영화가 더 유명했습니다. 이 이미지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후대 여러 작품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었죠.


저도 사실 이 시리즈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여러 가상현실 콘텐츠나, 사이보그, 로봇의 반란이나 인간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에 대한 권리, 인간과 그렇지 않은 존재의 구분 등 상당히 많은 소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인식과 실재의 담론이라는 종교적, 철학적 관점을 온전히 녹이기 좋은 이 시리즈가 tv시리즈로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했던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더군다나 이후 출연진들에 대한 소식을 듣다보니 기가 막히더군요. 이미 영화사적으로 어느 정도 평가가 끝이 난 두 배우, 에드 해리슨과 안소니 홉킨스가 각자 이야기의 축으로 작용한다 했을 때, 일종의 소름까지도 돋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은 실망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순간도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웨스트 월드가 정말로 기가 막힌 드라마라고 생각했던 것은, 작중 일정 비중 이상의 캐릭터 누굴 놓아도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비중분배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자가 나름의 미끼로 작용하며 훈련된 시청자를 현혹시키는데, 뻔히 양대축으로 내세운 저 둘이 반전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속아넘어갑니다.


여러 콘텐츠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앞으로 접할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훈련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지만, 동시에 늘 더 자극적이고 신선한 소재와 연출을 추구하는 수용자를 만들게 됩니다. 새로움이 작품을 추구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며, 창작물에서의 창작의 본질적인 성질에 대해 이야기되고 있는 오늘 날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훈련은 정형화된 취향을 낳을 우려를 발생시킵니다. 어딘가의 누군가는 늘 처음이라는 경험을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웨스트월드는 이러한 훈련된 수용자의 해석을 갖고 노는 능수능란함을 보입니다.


드라마를 처음 볼 때부터 "당연히 이 tv시리즈는 몇가지 서술 트릭을 마련했을 것이다. 인간과 외형으로는 구분되지 않는 호스트를 이용하여 인간처럼 이야기되던 누군가가 사실은 안드로이드일 것이다." 라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출을 몇몇 캐릭터에게 흩뿌려 보였지만, 그것은 반전의 일부일 뿐, 이야기의 본질적인 부분에 까지 닿는 또 다른 구조적 변혁을 보여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와이어트에 대한 추적일 겁니다. 단순히 와이어트가 누구인지에 대한 추구처럼 보였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것은 모든 이야기의 귀결점이었습니다. 하나의 세상과 각 주민을 만들어낸 창조주의 고민의 결과였고, 이것은 결국 그 자신도 하나의 이야기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과정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예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비로 폭발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이며 그들이 남기는 역사란 또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심화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죠. 그 모든 답이, 이 와이어트의 추격기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이 드라마를 가장 인상적으로 보는 것은, 이처럼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메타적 시선이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넘어서보겠다는 능숙함으로 이끈다는 인상이랄까요. 너무 숙달되어서 오싹오싹하기까지 합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8.04.12 16:12


 아이돌 시장이


레드오션이라 불리며 공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이야기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몇 년도 되지 않은 일이고, 사실 지금도 종종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정도로 경쟁이 심화되었기에, 한국의 아이돌 시장이 국제화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일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일단 한국 아이돌 시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면, 그 그룹은 세계시장에서 이른 바 한류의 한축을 담당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추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야기되는 거죠.


바꾸어 말하자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그룹이라 하더라도, 일단 국내에서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최소한을 유지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한국에서의 성과가 기반이 되었을 때, 해외에서의 성과도 최대로 높일 수 있는 공식이 세워진 겁니다.


그렇기에, 아이돌은 꾸준히 tv프로그램과 예능에 얼굴을 비추며 스스로를 부각시키려 합니다.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냐의 여부 이상으로, 특정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느냐의 여부가 아이돌의 성장을 판단하는 주요한 잣대가 되곤 하는 거죠. 오늘 이야기할 주간아이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오죽하면 주간아에 출연해느냐의 여부에 따라 행사비의 앞자리 숫자가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요.


주간아이돌은 '국내 유일 아이돌전문 프로그램'이라는 호칭을 종종 스스로에게 쓰기도 했는데, 실제로 거진 고유 명사화되다시피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간아이돌은 여러모로 상징성이 큰 프로그램입니다. 최근 종영 이후 시즌2가 방송하기 시작하긴 했지만, 정형돈-데프콘 진행 체제는 아이돌 사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 평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프로그램입니다. 진행자가 아이돌에 대해 몰라도 아이돌이 진행자와 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오는 것이 시청자도 쉽게 납득할 정도로요.


꽃다발의 후신격이라 할 수 있는 주간아이돌은 아이돌의 레드오션 여론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런칭되었습니다. 아이돌을 주축으로 출연시켜 인기를 끌겠다는 발상의 프로그램은 kbs의 청춘불패나 sbs의 영웅호걸 등 여럿 있었지만, 이들은 특정 아이돌 붐이 사그라들거나 프로그램 내적인 재미가 부족하다는 평가 함께 서서히 인기가 식어갔습니다. 반대로 주간아이돌은 정형돈과 데프콘 두 사람의 화학적 결합하에 아이돌이라는 조미료를 가미시켜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아이돌이라는 화려함과 대비되는 특유의 마이너 감성과 두 멤버의 '아재스러움'이 적절히 조합되며 아이돌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났죠.


이 주간아에 대한 저 자신의 평가는 이러합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레드 오션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이돌이 있었다." 라고요. 물론 주간아에 출연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오직 주간아의 힘만으로 소위 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가벼운 콘셉트와 얼렁뚱땅 진행을 줄기로 삼는다고 한들, 주간아는 엄연히 공중파 방송사 계열의 케이블 프로그램이고, 두 진행자가 공중파에서도 메인mc로 활약할 정도의 덩치를 자랑했던 프로그램이니까요. 하지만 오직 아이돌에, 아이돌에 의한, 아이돌을 위한 프로그램 가운데 이 정도로 호평받으며 장수한 프로그램은 없었고,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뇌리에 박힌 아이돌의 숫자도 늘어갔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자그마치 8년을 진행한 프로그램이기에 그만의 역사도 있습니다. 트와이스처럼 출연을 거듭하며 예능감이 무르익는 출연자가 생기는가하면, 출연 2회만에 온갖 타박을 받는 블랙핑크와 같은 그룹도 생겼고, 언제 얼굴을 보여도 환영과 비난을 동시에 받는 윤보미나 정일훈같은 멤버도 있죠. 그야말로 전통있는 프로그램이었기에, 이 프로그램의 종영 소식이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아이돌은 계속해서 데뷔하고 있고, 주간아이돌의 진행이나 재미가 비교적 최근 이전만 못해졌다는 평을 듣긴 했지만, 사실 한 두 번 들었던 소리도 아니고요.


물론 프로그램의 편성은 단순한 프로그램의 재미나 역사만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기때문에,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저 "아. 이제 어느 정도 이상 덩치가 되지 않는 아이돌은 이전처럼 라디오 중심으로 활동을 할 가능성도 있겠구나. 아니면 다른 계열사에서 예전 비밀병기 그녀처럼 또 다른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을 런칭하나?" 라는 예상 정도만 했고요.


물론 아이돌 팬의 입장에선 메인으로 출연할 수 있는, 그거다 아이돌 팬 외의 다른 대중에게 그들을 알릴 수 있는 창구 하나가 사라지기 때문에 상당한 아쉬움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던 중, 시즌2가 찾아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때가 되고 보니 "응? 정형돈과 데프콘이 하차를 하는데 시즌2를 한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jtbc에서 진행자 두 사람에 더불어 과거 주간아이돌 시즌1을 제작했던 제작진까지 뭉쳐 '아이돌룸'이라는, 뉴스룸을 패러디한 제목의 또 다른 아이돌 중심 프로그램을 런칭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이쯤이 되고 보니, 당혹스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일훈과 윤보미가 고정출연하던 그 때는 시청률은 몰라도 구성적인 측면에선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입니다. 뒤에 출연하는 아이돌은 안 봐도 이들의 퀴즈쇼는 봤을 정도로요.


일단 에브리원과 jtbc 모두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을 유지하거나 런칭하는 것으로 비추어보면, 방송국 입장에선 아이돌 시장과 아이돌 관련 시청자는 여전히 매력있는 요소로 판단한 듯 합니다. 그리고 주간아이돌 제작진과 정형돈과 데프콘 모두가 유사한 테마의 프로그램에 계속해서 참여하는 걸 보면 이들이 해당 콘셉트에 대해 애정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듯 하고요.


그렇다면 다음은 프로그램의 성과과 변화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간아이돌이 명실공히 대한민국 대표 아이돌 프로그램인 건 틀림없지만, 여전히 전성기는 윤보미와 정일훈이 고정출연하던 그 시절로 꼽히고 있고, 프로그램 재미도 그 때가 가장 나았따 평가되고 있습니다. 주간아이돌 자체적으로 나름의 개편을 하기도 했지만, 다른 서브코너는 늘 알랑가몰라 둘 중 하나와 비교당했고, 결국 좋지 않은 마무리를 맞이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론 시청률이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지 않고 침체되는 경향이 갈 수록 강해지며, 어지간한 출연자가 나와도 쉽사리 반등하지 못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한국 전체를 들었다놨다 할 수 있는 출연자가 나오면 1%, 심지어는 2%까지 찍는 일도 있었지만, 그런 출연자가 흔하지도 않고, 주간 아이돌에 쉽게 출연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여전히 케이블 프로그램 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평이 나왔지만 나쁘지 않다는 것이 좋거나 훌륭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니- 결과적으로 폐지논의가 이어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프로그램 막판에 엄정화부터 셀럽파이브까지 여러 실험적인 캐스팅을 했던 것도, 결과적으로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형돈이 건강문제로 하차한 당시, 데프콘과 여러 아이돌이 호흡을 맞추며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습니다. 정형돈을 사랑하는 아이돌-돈사돌이라는 이름으로요. 그 정도로 프로그램에서 정형돈과 데프콘의 색체가 강하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전통과 역사를 지닌 주간아이돌 프로그램 자체를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두 진행자의 프로그램 장악력이 원체 강하다보니 결국 진행자 교체라는 수를 던진 것으로 보이네요. 사실 예능프로그램에서 일종의 정체기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일부 코너 개편이고, 그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진행자를 교체하는 것, 그래도 안되면 시즌 2라는 이름으로 아예 콘셉트 자체를 달리하거나, 아예 메인 진행자를 내려버리는 것인데- 이 케이스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주간아이돌의 역사는 정형돈과 데프콘의 역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며, 주간아이돌의 재미는 정형돈과 데프콘이 아이돌을 어떻게 대하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요. 사실상 세트도 별 것 없던 두 프로그램을 채우던 것은 두 진행자의 존재감이었는데, 이걸 통채로 교체해버리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 걸까요?


예컨데 2000년대 후반 우후죽순 생겨났던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 중 지금까지도 나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프로그램은 주간아이돌이고, 이러한 주간아이돌을 모티브 삼아 여러 또 다른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이 생겨났지만, 그들도 그만큼의 흔적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주간아이돌의 존속에 정형돈, 데프콘 두 사람의 역량이 뒷받침 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들조차도 단독으로는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을 주간아만큼 히트시키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정형돈과 데프콘 두 사람이 함께했던 히트제조기라는 외전격 프로그램으로도 상당한 내외적 성과를 거두어 냈지만, 반대로 정형돈 단독으로 반대로 데프콘 단독으로 진행했던 아이돌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큰 재미를 보지 못했었죠.


주간아이돌과 무한도전에 연이어 출연하며 주가를 올렸던 데프콘은 물론, 애초에 케이블에서 유재석이라 불리며 영향력을 확장했던 정형돈의 역량이 그대로 프로그램에 반영되었던 것이 바로 주간아이돌입니다. 이 두사람 없는 주간아이돌이 주간아이돌일 수 있느냐는 사실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관련된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며, 실제로 정형돈이 건강문제로 하차했을 당시, 다른 프로그램이 몇달의 간격을 두며 진행자 자체를 교체해버렸던 것과 달리 끝까지 정형돈의 자리를 비워뒀던 프로그램이 바로 주간아이돌인 것이 이러한 현실을 반증합니다.


정형돈과 데프콘 양자 모두가 함께 했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정형돈 단독으로, 데프콘 단독으로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같은 채널 내임에도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었죠. 물론 포맷과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에 나란히 놓을 수는 없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편성측과 제작진측, 출연자측이 나름의 공통적인 분모를 찾아냅니다. 프로그램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리하여 위와 같은 결과가 생긴 겁니다. 프로그램은 새 시즌에 돌입하며 진행자를 교체하는 것을 통해 새로움을 불어넣고, 제작진측은 포멧을 변경하여 새로운 아이돌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출연자측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를 찾는 그런.


이 셋은 각자 나름대로 주간아이돌 시즌1의 정통성을 쥐고 있습니다. 어찌보자면 프로그램의 주인격(표현은 시청자가 주인이라고 하겠지만)인 편성측,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제작하고 방영했던 제작진측, 그리고 프로그램을 대표하며 자신의 역량으로 게스트를 이끌었던 출연자측으로 말이죠.


이들이 가진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은 진짜였으며, 그 결과가 지금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시즌2 체제 돌입, 제작진과 출연진이 뭉쳐 타 방송사에서 동일한 소재를 달리 다루는 프로그램 런칭으로 말이죠. 누가 잘했느냐, 못했느냐, 도덕적으로 올바르느냐 그르느냐에 대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듯 합니다.


일례로 예능에서 이러한 일은 부지기수로 벌어집니다. 다른 프로그램의 주된 콘셉트를 차용하여 별개 프로그램으로 독립시킨 예는 mbc의 복면가왕이나 kbs의 불후의 명곡 등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고(kbs는 이걸로 욕 좀 많이 먹긴 했지만, 사실 서로가 서로에 영향을 짙게 주고 받죠.), 인기부족으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자가 해당 콘셉트에 대해 미련을 가져 타 방송사에서 어느 정도의 일신후 다시 반복한 케이스도 있으며(유재석의 무한도전이나 이경규의 만물트럭, 정준하의 식신로드 등이 이 케이스죠.), 프로그램의 특정 콘셉트만 차용해 출연자까지 동일하게 하여 런칭시킨 예(무한도전의 추격전과 런닝맨의 레이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타 방송사의 출연자의 콘셉트를 차용하여 자 방송사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강화시키는 케이스도 많고요. (지니어스 시리즈의 은지원과 노홍철.)


이게 더 노골적이게 되면, 아예 이전 프로그램 내지 방송사를 비판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예전 90년대 심형래가 그랬듯, 2000년대 이경규가 그랬듯.(물론 이경규는 아주 순화시키고 돌려 말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리고 결국 mbc 대표 프로그램에서 서러움을 털어놓기까지 했죠.)


주간아이돌의 스핀오프격 프로그램인 형준이와 대준이의 히트제조기. 실제로 빅병 편은 에피소드 자체의 재미도 상당해서 적잖은 마니아를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기까지도 방영되었고, 3기에 대한 요청도 적잖았는데- 지금와선 아무래도 보기 힘든 일이 되어 버렸죠.


결국 원조논쟁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새롭게 하여 시청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로선 주간아이돌 시즌2의 모습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주간아 시즌2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정형돈과 데프콘의 대표성은 주간아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차별화하면서도 어떻게 아이돌을 다뤄야 할지에 대해 시즌2 제작진의 고민이 부족해 보입니다.


예컨데 유세윤은 2010년대 한 때 트렌드를 이끌며 뼈그맨 소리까지 들었으며, 라디오스타와 무릎팍도사 등에서 여러 성향의 게스트를 대하며 웃기고 울렸습니다만, 진행에서는 명백히 한계를 보이는 인물입니다. 편히 대하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이 너무 극명하게 갈립니다. 더군다나 그 자신이 일종의 아이콘이었지, 절대로 트렌드를 이해하거나 이끌어내는 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돌과도 솔직히 말해 궁합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아이돌에 대한 이해도도 솔직히 그렇게 뛰어난 진행자도 아니고요.


서브 mc로서 웃기는 쪽에 집중하라는 요구처럼 보이지만- 나이 40된 선배 개그맨이 앞에서 그러는 게 과연 이제 10대를 벗어난 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근 10년동안 그랬던 40대 아재였기에 삼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유세윤이 그렇게까지 편한 이미지는 또 아니지 않나요. 차라리 uv신드롬 당시의 콘셉트면 좀 다르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렇게 되면 또 정형돈 데프콘 콤비와의 차별점도 잡기가 힘들어지니...


이상민은 케이블 정보 프로그램에서 하던 걸 하고 있으니 솔직히 말해 프로그램에 대한 감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나름 신선한 캐릭터, "니들은 잘 몰라도 니들 회사 대표는 잘안다"를 내세웠지만- 막상 특별한 재미 포인트를 잡지도 못했을 뿐더러, 김희철이 비슷한 콘셉트를 일찍히 소화했던 바 있기도 합니다. 제일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정형돈 데프콘이 하차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 그 두 사람도 나이가 나이이니 함께 나이먹을 수 있는 더 젊은 감각의 진행자를 찾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당혹스러웠습니다. 주간아이돌의 주된 시청자를 어느 세대로 잡고 있는지 다소 의문이네요. 그렇다고 이상민이 프로그램명을 유지한 상태에서 시청자층을 넓힐 정도의 캐릭터와 인물이었나요? 이것도 전혀 아닌듯한데.


음악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이돌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김신영. 가장 호평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은. 막내에게 메인 mc 역할을 맡긴 게 독이 아닌가 싶은데요. 김신영식 진행은 행사 mc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나름 정제되고 특유의 콩트 캐릭터를 소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게 부각되는 건 동성의 출연진이 맞붙어 시너지를 불러일으킬 때(예컨데 송은이)라고 생각하고, 이 또한 젊은 세대의 감각과는 다소 괴리된 게 아닌가요. 오죽하면 출연자 이야기를 듣고 세바퀴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3인에 대해서 공통적인 이야기인데- 최근 비슷한 규모의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도 단점이라면 단점일 겁니다. 사랑받고 익숙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쌩뚱맞게 느껴지고, 또 뭘 할지에 대해서도 대략 감이 온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결국 주간아이돌을 진행하는 한 앞선 정형돈과 데프콘이 가장 잘 했던 시절과 끊임없이 비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첫경험이었기에 미숙함과 어설픔도 용인되었지만, 이들은 이미 굳건한 팬덤을 갖춘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출발했기 때문에 더 강한 잣대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즌2 첫번째 에피소드 이후 아무래도 아쉬운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보다 방송의 변화는 적었고, 첫방 특유의 활기도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재미도....


제작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즌2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일종의 힘자랑입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동안 방영하면서 이만큼의 출연자들이 첫번째 방송에도 얼굴을 비출 수 있을 정도다라는. 


의미는 알겠습니다만, 이건 출연진들간에 합이 맞았을 때 비로소 온전한 효과를 거둘 수 있거든요. 벌써부터 왜 저런 게임을 하느냐, 왜 저 출연진은 병풍이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좋은 신호는 아니죠. 그간 주간아이돌이 사랑받아왔던 데엔 다른 예능에선 별다른 매력을 못보이는 멤버가 여기서만큼은 활약한다는 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니까요.


솔직히 말해 저 많은 출연진을 동시에 나오게 한 게 무슨 생각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형돈 데프콘 체제에서도 아이돌의 숫자를 저 정도로 늘렸을 때 고평가 받은 건 일부 특집 정도였지 않았나요. 진행자와 게스트의 뭘 믿고 첫회부터 저런 부담을 주었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아이돌은 아이돌대로 너 나와서 웃겨봐라는 모양새를 만들어버렸고, 진행자한테는 너는 잘 시켜봐라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부분은 자칫하면 진행자와 게스트의 방송이 아니라, 선배와 후배의 방송이 되어 버립니다. 솔직히 불편해진다고요.


차라리 모르니 모른다고 말하는 이들 앞에 특정한 선배 반대로 까마득한 후배가 나와서 요령을 가르치는 형식이 되었으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비교적 흔한 콘셉트말입니다. 이토록 혹평하는 이유는 첫방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시즌2 예능이 성공한 예는 실패한 예에 비해 찾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거기엔 제작진의 안일함 "프로그램 이름만, 포맷만, 출연진만 유지하면 시청자들이 그대로 따라올거다"이 작용한 경우가 많고요.





아이돌 룸에 대해서는 아직 방영하지 않았으니 평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정형돈과 데프콘, 그리고 jtbc와 예능이라는 틀에 맞춰서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순 있을 겁니다.


이전부터 예능에서 좋은 평가를 거두어왔던 jtbc가 작년, 재작년부터 아이돌과 음원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정형돈과 데프콘이라는 인적 자원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겠죠. 이미 아이콘화될 정도로 성과를 거두었던 그들-새 시즌에서 3인 특유의 포즈는 애초에 정형돈이 제안하고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에게 아마 상당한 수준의 재량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형돈은 비록 건강문제로 하차하긴 했지만 jtbc의 대표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를 크게 히트시켰던 메인mc였고요.


jtbc가 예능에서 좋은 평가를 거두었던 것에는 시청자의 피드백이 다른 방송사와 비교하여 이상하다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는 것인데, 그것이 이번에도 반영될 수 있을지에 대해 기대가 큽니다. 처음이 부실해도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치가 크단 거죠. 정형돈 역시 비교적 유동적인 콘셉트에 익숙한 인물이고요. 주간아가 진행되면서 내부의 개편을 반복했음에도 쉽사리 윤보미, 정일훈 체제 이상의 궤도로 올려놓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찌보자면 잠재적인 기대치는 더 크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몇 차례의 선례가 있었다곤 하지만, 동 출연자가 비슷한 콘셉트의 방송을 다른 방송사에서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따라올 수 있을 겁니다. 상도덕 이야기와 함께요. 물론 이것은 동시간대에 방영하는 경우에 주로 불거져왔고, 주간아의 정체성이 정형돈과 데프콘의 대표성과 합치하는 부분이 적잖기 때문이 큰 힘을 얻진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하고, 보다 명백한 차별화와 성공을 거두어야 할 부담이 있습니다.


주간아이돌은 단순히 출연 그만으로 끝이 아니라, 이후 다른 방송으로도 이어지는 콘셉트와 캐릭터를 잡아줍니다. 이 과정에서 비교적 다른 프로그램에선 활약하기 힘든 멤버들의 색다른 매력도 보여주고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블랭핑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 팬덤 내부에만 있는 이미지의 간극을 재미로 잘 소화시켜 보여주었죠. 그래서 주간아이돌이 오랜기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비교적 다루기 힘들고, 역풍도 심심찮게 부는 아이돌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요.


강점은 역시 정형돈과 데프콘입니다. 이들이 아이돌과 쌓았던 프로그램 내외적인 재미와 콘셉트는 자연히 고스란히 아이돌룸으로 이전됩니다. 예컨데 주간아이돌에선 블랙핑크와 세번째 만남이라고 이야기할 순 있겠지만, 예전 정형돈이 했던 "두번 만났는데 이런 취급받는 애들은 니들이 처음이야"라는 이야기를 진행자의 입에서 하게 할 순 없습니다. 반면 정형돈은 어떤 프로그램에서 그들을 만나건 무리없이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X번 만났는데"라는 단서만 붙여서요. 데프콘 역시 본인이 음악을 하고 있는 강점을 그대로 살림과 동시에 주말 프라임 시간대 예능 출연자라는 콘셉트에 더해 연기까지 하고 있는 캐릭터를 십분 살릴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의 대표성을 생각해보면 "이게 진짜 주간아이돌"이라는 기사 내용대로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약점은 "했던 거 또 하게?"라는 비판입니다. 주간아이돌은 비교적 한정된 세트와 게임을 통해 재미를 풀어가며, 그 공백을 두 진행자의 캐릭터로 채웠던 경향이 있습니다. 그 기간에 8년에 달하다보니 아무리 게스트가 바뀌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형이 형성된 상황입니다. 물론 두 진행자의 캐릭터쇼와 아이돌의 캐릭터 잡기, 특유의 우악스러운 진행이 주는 재미는 아직까지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틀 아래, 새로운 포맷아래에서는 얼마만큼의 재미를 줄 수 있는지 이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의 내외적인 여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고요.


또한 케이블과 종편이라는 방영 매체의 차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케이블이었기에 허용되었던 것이 있고, 종편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있는데, 이 미묘한 차이가 프로그램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비록 정형돈이 종편에 익숙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막상 케이블에서 했던 걸 비슷하지만 차이나게 한다는 도전에 얼마나 익숙할지는 알 수가 없네요.


하얀 배경과 그 사이를 채운 천연색 글자. 그리고 아이돌룸의 자음만 딴 ㅇㅇㄷㄹ. 로고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순 없지만, 주간아이돌과 대동소이한 정체성으로 나아갈 듯합니다. 공백을 채우는 건 오직 캐릭터와 아이돌뿐. 그리고 특유의 젊은 감각을 잡기 위한 유행어를 적절히 가미한.


주간아이돌과 아이돌룸은 프로그램의 외주제작이 활성화되고, 출연자가 보다 제작에 주도적인 역할을 갖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출연자까지 겹치는 방식으로 타 방송사에 진출하는 경우는 강호동의 천생연분과 연애편지, 정준하의 식신원정대와 식신로드 정도가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며 콘셉트와 테마 그리고 출연진의 차용의 불분명함으로 인해 흐려지고 있는 추세고요. 결국 방송국 입장에선 다양한 능력을 지닌 다양한 진행자를 육성하고자 하는 생각을 한 편으론 가졌을 지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원조논쟁은 사실 크게 힘을 잃는 게 사실입니다. 이제 온갖 곳에서 별에 별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은 점점 다각화되고 있습니다. 제작측은 이 변화에 유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이를 지켜보는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간아이돌 시즌2와 아이돌 룸의 분화의 가장 긍정적인 결말은 두 프로그램 모두 자기만의 재미를 형성하여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것일 테고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8.03.08 06:19


 이전에


런닝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배를 갈랐다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실제로 지금 시점의 런닝맨을 지켜보면 당시의 제 이러한 평은 실제로 납득가는 편입니다. 새 멤버들을 투입하고, 포맷을 탄탄히 하면서, 구성을 일신했습니다. 그 덕에 런닝맨의 시청률과 평은 반등하여 지금에 와선 재작년의 그 일들을 그래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요.


그렇다면 저는 앞일을 예상해서 런닝맨에 대한 평가를 했던 걸까요? 결코 아닙니다. 런닝맨은 기초적인 포맷이 있는 프로그램이고, 중국 진출을 즈음하여 발생했던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발버둥을 치고 그것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부진한 멤버도 있었지만, 여전히 맹활약하는 멤버도 있었고,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를 가져 언제든 반등할 수 있는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조합과 역할 수행을 통해 변화를 꿰했고, 극의 전개과정과 비중 분배과정을 일신해 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비록 허들은 높아질 지언정, 그 높았던 인기에 누가되는 뗌질식 구성은 지양했던 겁니다.


실제로 평 자체는 서서히 좋아지던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 소위 윗분들이 대형사고를 쳐 버린 겁니다. 그 전 해 반드시 반등해내고야 말겠다 장담했던 유재석을, 그리고 개리를 성대하게 떠나보내던 제작진을, 여전히 런닝맨을 아낀다며 콘서트에 참여했던 김종국 등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면서까지 말이죠. 그랬기에 그만큼이나 아쉬웠던 겁니다. 팬들은 정말 좋아졌고, 또 더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정을 뻔히 지켜 보고 있는데 그걸 완전히 잃게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2016년 런닝맨의 퇴장과정은 그야말로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운이 좋아 런닝맨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투입된 멤버 전소민의 놀라운 활약 덕에 명백히 시청률의 유의미한 반등을 이뤄냈고, 방영 9년차에 접어드는 프로그램이 다시금 1위를 탈환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 상황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후 무한도전의 정체성을 바꾼 패션쇼. 평소에는 허섭한 이들이 저렇게 때깔나게 나서면 멋지다-물론 유재석만 이라는 단서가 있었죠 이땐-는 콘셉트는 이후 달력등에도 이어집니다. 이 슈퍼모델 특집을 계기로 무한도전의 온오프 파워가 격이 달라집니다.


적잖은 이들이 이러한 런닝맨의 케이스를 들어 무한도전에도 다시 한 번 기회가 필요하다 이야기합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는 명백히 무한도전의 시대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자연스레 그들이 남긴 막대한 예능의 업적과 상업적 성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행을 넘어 시대를 선도했던 예능으로 여전히 무한도전이 꼽히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무한도전은 런닝맨의 케이스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조악하게 표현하자면 런닝맨은 지속성에 강점이 있는 콘텐츠이고, 무한도전은 폭발성이 강점인 콘텐츠라는 거죠. 전자에 비해 후자가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무한도전은 첫번째로는 개별 특집과 소재, 주제를을 두어 나름대로 포맷의 세분화하여 신선함을 배가시켰습니다. 두번째로는 힘을 주는 특집과 힘을 빼는 특집을 따로 두어 나름대로 호흡 조절을 했고요. 그리고 세번째로는 특정 시간만 촬영과 제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유동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트렌드를 주도하여 나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러한 타개책도 한 두 해지, 십수년을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전까진 그들만의 이벤트였는데, 듀엣가요제를 기점으로 가요계가 긴장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례로 전성기의 소시의 독주를 막은 게 다른 게 아닌 박명수 제시카 조합의 냉면이었을 정도였죠.


가장 먼저 포맷의 세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여기서 포맷의 세분화는 단순히 기획을 따로 하여 각 에피소드를 특집으로 꾸리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출연진, 기획의도, 구성, 진행과정, 주제, 소재 등등이 갈라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추격전과 토토가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포맷의 세분화와 다양한 소재는 특정 멤버들이 돌아가며 붕뜨는 상황을 반복해서 만들어냈습니다. 다양한 개성의 멤버인만큼 장단을 보일 수밖에 없고, 또 이게 드러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호평받는 특집으로 분류되는 포맷에서 호평받는 멤버가 대체적으로 정해져있고, 혹평받는 특집으로 분류되는 포맷에서 부진한 멤버들 역시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반복되면서 캐릭터 내지 고착화되어 멤버들의 변화상을 억눌렀고, 결과적으로 매너리즘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전의 특집이 이후로도 연계된다는 것 역시 시청자와의 호흡이라는 측면에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정작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적 지속성 측면에선 독이되는 측면도 있었고요.


고를 수 있는 소재가 갈수록 적어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전에 소화했던 소재를 사용하기가 꺼려지는 점도 그렇지만, 멤버들의 나이가 40을 넘어 50을 향해가고 있다는 점은 치명적입니다. 건강상의 문제를 앓아 더 이상 이전에 수행했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멤버들의 숫자가 하나 둘씩 늘어나는 추세도 고려치 않을 수 없었고요. 더군다나 이전 나름의 경쟁자였던 남자의 자격이 실질적으로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콘텐츠 상당수 선점했던 까닭에 이도저도 못했던 점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대변자를 계속하여 수행했던 무한도전이기도 했기에 올라가는 출연진의 세대를 적절히 반영해내지 못한 거죠.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이를 벗어나기 위해선 이전과 차별화될 정도의 수위 내지 능력적 차별화입니다. 문제는 이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무리 그들이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더라도 이미 예능인으로서는 전성기를 넘겨, 이미 캐릭터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위를 달리한다는 것은 기존의 콘셉트를 붕괴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죠. 더군다나 반복을 지양하는 예능인의 본능까지 작용하였습니다. 여기에 프로그램 내외적인 논란까지 작용하니 일부 출연진의 경우는 수위를 높이는 선택이 거세된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둘째로 능력적 차별화를 이야기할 정도로 다양한 특집에서 다양한 능력을 보여줬던 멤버는 뭘 시켜도 기본 이상은 하는 유재석, 겉보기와 달리 운동신경이 괜찮았던 정형돈 정도라는 점도 문제입니다. 전자는 모범생 콘셉트로 쓰임새가 제한되었고, 후자는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결국 무한도전의 매너리즘은 이전의 런닝맨에서의 매너리즘과는 차원이 다른 불치의 그것에 가까운 것입니다.


무도의 전성기를 함께 한 전진. 헤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뒷말이 오갔기에, 지금 무도에서 지워지다시피한 상태입니다.  이것이 무도의 한계가 드러나는 포인트입니다. 캐릭터쇼는 관계도에서 비롯되는데 이걸 그냥 날려버렸으니. 캐릭터관계도는 제작진이 마음만 먹으면 막 짜지는 그런 게 아닌 걸 몰랐던 거죠.


둘째로 호흡조절을 위해 힘을 준 특집과 힘을 뺀 특집을 따로 뒀다는 점입니다.


무도를 오랜 시간 보아온 이들에겐 '이번 주는 재밌어?'라는 다른 시청자의 말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겁니다. 그 정도로 무한도전은 전 편을 고루 재밌게 하기보단 달력이나 레슬링, 가요제 등처럼 킬러 콘텐츠를 내어놓곤 그 외의 부분을 메꾼다는 인상으로 구성했었습니다. 물론 다른 프로그램도 모든 에피소드에 고르게 제작비를 분배하지는 않습니다만, 무한도전은 그 고저차가 다소 극단적인 케이스에 해당했습니다. 물론 무도기에 가용할 수 있는 자본이 컸다는 점, 제작비를 많이 들인 에피소드가 재밌는 에피소드라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 등이 고루 작용합니다만- 소위 쉬어가는 에피소드에선 제작진이 가진 재미에 대한 기대치조차 낮아보인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뭉개고 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무도가 일으키는 사회적인 영향력이 컸기 때문입니다. 김태호 pd가 계속해서 시즌제를 요구했던 것도 이와는 무관치 않을 겁니다.


여하튼 저는 힘을 준 특집과 힘을 뺀 특집을 극단적으로 갈리게 하는 것을 패착이라고 봤습니다. 시청자가 무한도전의 흐름에 맞춰줄 이유는 사실 따지고 보면 하등 없기 때문입니다. 10점 한 번과 4점 다섯번 받는 것보단 그냥 5점 여섯번 받는 게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치와 피로도 측면에선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나는 오늘 웃기는 특집 보고 싶은데 쉬어가는 에피소드면 그 완성도와 상관 없이 과연 시청자가 만족할까요? 이전의 추억형 예능이 떠올라 무도를 켰는데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편이 방영되면 과연 채널이 끝까지 유지될까요? 무도의 애청자라고 자부하는 이들이야 계속해서 보겠지만, 그게 과연 재밌어서 보는 건가요? 이런 일이 몇 번 몇 십번 반복된다면?


전성기 무도의 특집으로 꼽혔던 것이 바로 연속성의 부여였습니다. 차라리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여 봐야 하는 것과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아도 됐다면, 이 정도로 피로감이 누적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정형돈과 길은 여러모로 상징적입니다. 어찌보자면 콘셉트를 위해 능력이 희생된 케이스로도 볼 수 있죠. 무도 투입 이전 길, 무도 밖의 정형돈을 보노라면 무도가 짓누르는 압박감을 대략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정형돈이 이후 회생한 건 무도 제작진이 케어를 잘 해줘서가 아니라는 점도 이후 길을 보면 알 수 있죠.


셋째로 좋은 말로 하면 유연성이고, 나쁜 말로 하면 출연진들을 쥐어 짜낸 겁니다. 물론 고생하는 다른 제작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무한도전은 저래도 됐을 정도로 영향력 있고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한도전이 여타 프로그램 전체와 합쳐도 그 이상의 인기와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에선,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출연진에게 오직 긍정적인 영향만을 끼쳤다면 평은 달라졌겠지만, 그렇진 않았죠. 무한도전은 필연적으로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출연진은 지쳐나가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노력이 프로그램의 재미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도 치명적이었고요. 애초 배우조차 연기 때 몰입을 위해 시간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여 촬영을 하는데, 지금 찍는 게 언제 방영될 지도 모르는 분량이 늘어가는 것은 시청자의 반응과 촬영 때의 반응이 유리되는 일을 낳을 지 모르는 비합리적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유재석은 최절정의 전성기에 서너 프로그램 정도만을 진행했었습니다. 이것은 유재석 본인의 선택이기도 했지만 무한도전이 그만큼이나 많은 투자를 요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무도가 특집을 하면 다른 프로그램이 배려를 해줘야 한다는 건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반대로 그래서 무한도전은 선택의 폭과 스케일을 넓히지 못했고- 이 부분이 런닝맨과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출연진들은 출연진대로 지쳐갔습니다. 무도 출연진이 방송중에 지친기색을 숨기지 않은 지가 대체 몇년 전인지 헷갈릴 지경이네요.


저 정도의 노력을 다른 출연진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부담이 큰 일이고, 이로 인해 무한도전은 내외적인 논란을 계속해서 앓았습니다. 단순히 출연진을 추가하거나 빼는 일만으로도 버거워 헉헉댔던 프로그램인지라 멤버교체나 일신을 통해 프로그램을 개편한다는 것도 쉽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순간시청률 35퍼센트 이상에 육박했던 토토가1. 이후 토토가2, 그리고 이번의 토토가3까지 이어지면 무도의 급격한 하락세를 체감할 수 있게 됩니다. 어디까지라는 말이 이렇게 양면적으로 와닿을 순 없는 거죠.


무도의 종언은 무도식 리얼 버라이어티-특정 멤버들이 특정한 캐릭터를 수행하며 무언가에 도전하며 스스로를 리얼버라이어티라 칭하는-의 종언에 쐐기를 박는 일입니다.


사실 이미 무한도전부터가 리얼버라이어티라는 표현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죠. 많은 이들이 여전히 오독하지만, 리얼버라이어티는 결코 리얼한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리얼하게 보이도록 상황을 연출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무한도전 이래로 계속해서 촉발된 조작논란은 그러한 의미에서 리얼버라이어티 출연진 및 제작자들에게 일정한 굴레로 작용했습니다. 사실 웃기기 위해 과장하는 이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웃기기 위한 것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조작인 것인지 쉽게 체화되지 못합니다. 당장 정형돈과 하하만 해도 이 부분 때문에 상당히 고생했고, 박명수는 아예 꽁트식 개그가 아니면 이 부분은 스스로가 건너뛰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상 무한도전조차 출연진의 캐릭터에 상당히 의존하게 되었는데, 워낙 화제와 논란의 중심이고, 출연진 교체와 게스트 논란이 잦아지고, 무한도전 내의 캐릭터가 다른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주다보니, 그 캐릭터 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무한도전이 지향했던 리얼버라이어티는 지금에 와선 이도저도 아닌 예능에 해당합니다. 런닝맨과 같은 블록버스터형 예능도 아니고, 이전의 책을 읽읍시다처럼 철저한 공익예능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스포츠와 결합된 드림팀 류의 예능도 되지 못하고요. 도전 그 자체에 의의가 있다 이야기했지만, 그러한 측면에선 힐링예능의 공감성을 따라가기가 어렵게 됐고, 적극성으로 따지자면 보다 수위가 높아진 타 매체와 경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밍숭맹숭합니다.


사실 이러한 결말은 예견되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한도전은 한 때 가장 독한 예능의 선두를 달렸던 콘텐츠입니다. 하지만 여러 프로그램의 종합적인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반대로 모든 것의 기준이 되었던 무한도전의 기준점은 점점 낮아졌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을 넘어가며 나 혼자 산다류의 힐링 예능이 화제성 1위에 오를 정도로 예능 메타가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예능보다 호흡이 배 이상으로 빠르며 인터넷 문화까지 도입시킨 마리텔이 등장해 신드롬까지 불러 일으켰습니다. 시청자와 아예 같은 행동을 하고, 시청자의 반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진짜 리얼 앞에서, 사실상 리얼해보일 뿐인 리얼버라이어티의 시대는 사실상 종언을 고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무한도전의 운신의 폭은 갈 수록 좁아졌는데, 여기에는 필연성이 있고 우연에 기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임은 출연자보다는 제작진이 훨씬 큰 게 사실이겠죠. 역대 출연자들도 만만찮게 사고를 쳤는데도.


안타깝게도 무도의 팬들 가운데서도 이젠 정말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다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단순히 유행이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기 힘들 정도로 소진되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 것입니다. 단순히 시즌2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무도 자체가 당시의 흐름을 타고 지금까지 온 예능이기 때문에 정형과 특정을 이야기하기 힘든 모양새기 때문입니다. 그 멤버들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예능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멤버가 하나 둘씩 빠졌던 무한도전이 이전만 못했던 것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김태호가 빠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구나 싶었던 이야기가, 유재석의 하차 이야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여론이 급물쌀을 타기 시작합니다. 무한도전의 정체성이라고까지 이야기되었던 김태호의 색체가 이미 제작 총괄로 물러나면서부터 많이 흐려졌다는 소리기도 하고, 그 정도로 유재석에게 강하게 무게가 지워지고 있었다는 소리기도 할 겁니다.


김재철, 김장겸의 시대를 거치면서 무도가 여러 차원의 압박과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기에 무도는 위의 평가를 반전시킬 시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저것 하나하나가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직결하는 일들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만 동시에 그래서 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내부적으로 완전히 무너질 여지도 없진 않았음에도, 무도는 훌륭하게, 그래도 박수를 받으며 퇴장할 수 있는 상황을 꾸려왔으니까요. mbc하면 무한도전을 떠올릴 정도로, 그리고 그 정도로 많은 성과를 남겼던 프로그램이니까요. 부디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하기를 바라봅니다.





자다깨서 주저리주저리 글 남겼습니다.


그래도 오랜 시간 즐겁게 보아온 무도였기에 가는 길에 한 마디 하고 싶었네요.


두서없이 쓴 글이라 고칠 부분도 많겠지만 그냥 넘어가려 합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9.22 08:34


 미운


놈은 밥먹는 것만 봐도 짜증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실을 평가 함에 있어 인상이 적잖게 작용한다는 소리죠. 화이트리스트가 블랙리스트 사건보다 훨씬 큰 논란으로 번질 사유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곰곰히 따져보면 화이트리스트는 블랙리스트보다 훨~씬 접근하기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지금 논란이 되는 화이트 리스트는 사실 지원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대가성, 즉 특정한 정부정책이나 행사에 참여하면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적절한 대가 그 이상의 무언가가 개입된 정황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연예인 화이트리스트보다 시민단체 화이트리스트가 좀 더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죠. 연예인은 어쨌든 출연료는 받고, 캐스팅은 pd 등의 고유권한이니까. ...다만, 방송국 차원에서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운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정부 등의 공공기관이 방송국의 캐스팅에 관여하도록 한 정황까지 드러난다면 화이트리스트는 블랙리스트 이상의 논란으로 번질겁니다.


여하튼 이미지는 앞으로 역사에서도 회자될 정우성의 "박근혜 나와!" 캡쳐입니다. 그가 블랙리스트에 자기가 실렸다는 말에 대해 한 대답이 사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정의합니다. "기득권의 요구에 불응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는 것에 신경 쓰지 마라"


첫째. 불법이 아닙니다. 물론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는 동시에 존재하는 개념이고, 애초에 공적자금에 대한 지원 자체가 공공에 드러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와 같이 기준과 내역 등등이 공개되지 않은 화이트리스트는 여러 문제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자면 화이트리스트는 순위의 부여이고 지원의 개념입니다. '아주 넓게'보자면 공공연히 행하는 비주류 콘텐츠에 대한 지원도 화이트리스트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물론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행동하는 딸랑이가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을 배제시키고 이득을 얻는 경우는 문제가 되고, 또 화이트리스트에 선정되는 과정에서 공적 시스템 외의 방식이 작용했다면 충분히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글 하나 썼다고 블랙리스트에 올린 정권이, 딱히 엄격하고 중대한 기준에 따라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 왜 있잖아요. tk출신 감독에게 에어포스원같은 영화 만들어달라고 했다는. ...지역이 판단의 기준 중 하나라는 게 참...


연예인의 화이트리스트를 따지는 것에 대한 극단적인 비유로, 리암 니슨한테 "너 이거 kbs에서 부당광고하고 정부에서 밀어줬다는 의혹이 있는데 너 부역한 거 아냐?"라는 겁니다. 기획과 출연 사이에 이해관계가 명확하고, 정책이라기보단 영화의 부품에 가까운 것이 애초 연예인이라는 겁니다. 연예인은 이전의 아나운서출신과 달리 내부자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당사자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본인이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콘텐츠의 부당성과 외도적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주체적으로 작용했다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집니다만.


둘째. 연예인은 공인이 아닙니다. 얼마전 김성주의 케이스와 차이가 있다는 거죠. 연예인은 개인사업자이고, 이들은 사실의 전달이 본연의 임무인 아나운서와 달리 즐거움의 전달이 그 근본적인 성질에 해당합니다. 선후관계를 따지기도 상당히 힘든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화이트리스트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느냐라는 것이 법적인 관점에선 성립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애초에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어야 리스트에 오를 최소한의 자격이 생기고, 그 사람이 화이트리스트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느냐는 무수한 변수가 있는 대중문화에서 쉽사리 따지기 힘든 문제가 됩니다.


예컨데 송중기같은 경우 박 전 대통령이 팬이었다며 개인적으로 더 홍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그렇다고 송중기가 정권입맛에 맞게 행동해서 이득을 거뒀느냐하면 또 그건 아니거든요. 흔히 이야기하는 국수주의적 성향이 강한 출연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선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오르내린 류승완 감독의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하는- 어찌보자면 그저 일반적으로 흔한 배우의 행적을 보였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은 그능력과 수반한 영향력이 철저히 개인의 역량에서 기인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지간히 쉽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죠.


공채 시스템이 작용했던 공채 탤런트나 개그맨의 경우 역시 공채 아나운서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공채시스템을 통해 육성되고 특정 방송사에만 출연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구속력은 아나운서만큼 강하지 않고(20여년 전부터 신동엽, 남희석 이래로 이 제한은 크게 완화되었습니다), 데뷔 루트 역시 공채만으로 제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케이블에서 화제가 되어 공중파에 입성한 노홍철이나, 매니저나 fd활동을 하다 눈에 띄어 추후 특채로 발탁된 정준하 등에게 그만큼의 엄격한 책임을 지운다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사실 가능하지도 않죠. (아주 조악한 예지만 방송사 후배들이 선배님하고 부르면 그 때 책임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더군다나 방송사에서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틀을 벗어난 개인사업자적 성질이 강해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컨데, 개그무대의 경우, 방송국에서 꾸리는 개그맨들의 무대 자체가 이미 박살날 대로 박살난 상황이고, 그 이후의 주류적인 무대인 예능은 외주제작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드라마도 크게 다르지 않죠. 그렇기에 그들은 상황에 대해 깊이 파악하는 것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또 전체의 공공의 이익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자기가 화이트 리스트에 실린지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젠가의 배우와 만화가가 갈려버린 장그래 케이스처럼 '공익광고래'하면 그냥 별 생각없이 출연했다 이후 분란을 일으키는 케이스가 바로 이래서 생기는 겁니다. 깨놓고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하고 거기에 맞게 활동시키려 한 사람들이 연예인들 앞에서 "우리 입맛에 맞게 하면 혜택 줄게요"이랬을까요. 아마 연예인 입지 넓히고 공익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식의 입바른 말과 함께 "그래도 정부가 하는 거"라며 참여시켰겠죠. 연예인들은 정치적인 발언은 자제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수십년간 살아왔으며, 그래도 공익광고는 어지간하면 출연하는 게 맞다는 식으로 행동해왔었으니 어렵지도 않은 일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이들과 동등한 책임을 지울수는 없는 노릇이죠.


물론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이들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실제로 이전부터 몇 번 이야기했었는데, '그 사람'은 함께 한 동료들이 아예 방송국을 퇴사하고(이후 블랙리스트에 수록된 걸로 확인되기도 하고), 함께 출연했던 이가 실제로 유무형의 불이익을 눈앞에서 받는 걸 보는 상황에서, 그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행동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이쪽은 위에서 말한 '몰랐다'라고 보기 힘든 사례에 해당하겠죠. 본인의 대체적인 평가와 능력에 비해 너무 과한 대접을 받았다는 정황도 있고요. 이건 엄연히 배우와 캐릭터가 갈려버린 장그래와 임시완 케이스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또한 '부당한 목적을 가진 화이트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거기에 실리기 위해 외적인 방식-예컨데 인맥, 선물 등등을 제공하는-을 활용했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화이트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것때문입니다. 


블랙리스트와 문화탄압에 가장 저열하게 피해를 입은 문성근은 어쩌면 차라리 나은 케이스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연기력은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었고, 본인의 연기인생의 궤를 달리한 상황이던 차였으니 저딴 블랙리스트가 흠을 낼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정치참여를 적극적으로 하였었기에 반대로 연예인이 아닌 정치인의 스피커가 어느 정도 작용하여 일정부분 보호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민선에서 김규리로 개명한 여배우는 어떨까요? 문성근의 극단적인 반대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아예 생각이 없거나 무지로 낙인찍혔으니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한 발언을 철회하고 그 행동을 교정하느니 그냥 욕먹을만했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걸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힘들겠죠. 괜히 문성근이 여배우 김규리가 가장 피해가 크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셋째.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분리된 정권이라는 겁니다. 물론 블랙리스트가 공개될 때마다 이름이 올라와 있다며 3관왕이라 스스로 농을 치는 영화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인 남태우같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엄연히 박근혜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후퇴를 불러온 보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이라는 공통점을 향유한 일종의 공동운명체라는 사실 외엔 서로가 서로에게 사이좋게 공천학살을 주고받은 전적이 있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추잡한 경선을 치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몇번이나 건넜다고 평가받았던 사이라는 겁니다.


즉, 이명박 정권 때는 화이트리스트였다가 박근혜 정권 때는 블랙리스트가 되거나 반대로 이명박 정권 때는 블랙리스트로 의심받았는데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화이트리스트가 되는 케이스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고보면 정말 골치아프기 그지 없게 됩니다.


일반 국민 입장에선 막장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엄연히 두 세력은 집권 기반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고(지역이나 연령, 종교 등등), 언론을 장악해서 정권의 입맛에 부려먹으려 했지만 그 불이익을 주는 방식에도 다소 차이가 있기까지합니다. 누가 보기엔 패죽여버리고 싶은데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어 어찌하지 못하고, 누가 보기엔 별것도 아닌데도 화이트리스트에 올라 욕을 벅는 걸 볼 수밖에 없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겁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 그가 한 행보의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 그가 한 행보의 응보리스트가 되지는 못한다는 걸 명심해야 겠죠.


예를 들어봅시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한국의 노동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임시완은 그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에 출연했죠. 그런데 그 드라마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국의 노동정책을 홍보하는 공익광고에 출연했습니다. 그럼 임시완은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할까요, 화이트리스트에 올라야 할까요? 지금까지 드러난 기준으로 판단하면 어디에 올라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박미선처럼 지지는 보수정당을 지지한다 알려져 있음에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코멘트를 했다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케이스가 있질 않나, 그냥 정부행사라고 도와줬던 배우가 뜬금없이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질 않나. (정작 본인은 배우활동을 그 시점부터 쉬려고했다던데...) 아예 이승환처럼 어느 리스트에도 오르지 않아 주변인은 물론 본인까지 당혹하는 케이스도 발견되었죠.


자. 어떻습니까. 골치아프죠?


이는 시스템에서 '배제'가 가진 위험성과 '우대'의 보편성 때문에 불거진 문제입니다. 대통령(大統領)이라는 말은 특정 집단과 이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 제한과 지원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권한을 보다 넓고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수단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성질을 근원부터 끊어버리는 배제는 이러한 기본적인 질서를 망가뜨리는 악독한- 예. 탄핵사유에도 해당하는 범죄행위인 겁니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에 달리 접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결국 화이트리스트에 대해서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수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언론사들이 실명을 쉽게 까지 못하는 것도, 화이트리스트에 수록된 연예인들이 그 엄혹한 상황을 거쳤음에도 "그냥 했다", "정권하고는 상관이 없었다(즉,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아니었더라도 그냥 했을 거라는 식의)" 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9.16 11:09


 옙.


생각보다 많은- 이래봤자 포털 사이트에 싸지르는 댓글 정도의 수준입니다만, 김성주가 왜 주진우에게 소위 말하는 저격을 당했는지 모르겠다, 주진우가 완전히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식의 의견이 보여 당황했습니다. 백번 양보 해서 과했다 정도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말이죠. 여하튼 2012년 당시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당시엔 몰랐던 건지, 관심이 없었던 건지, 그 사이 김성주의 이미지가 정말 엄청나게 좋아진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혹자는 누나가 한 잘못을 동생에게 묻는 건 연좌제 아니냐 부당하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애초 지금 김성주가 비판받는 것은 김성주 본인이 한 말과 행보 때문이거든요.


단적으로 세 가지 가정만 해봅시다. 김성주가 예능활동만 했다면? 김성주가 연예인이었다면? 김성주가 MBC 소속의 아나운서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논란은 전혀 불거지지 않았을 겁니다.


파업 중에 예능 출연한다고 욕먹고, 게임한다고 욕먹는 게 아나운서입니다. 연예인 아닙니다. 프리 아나운서의 친정 복귀에 대해 흔히 밥그릇 싸움만으로 이해하려 하는데, 훨씬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단적으로 그럴 거면 뭐하러 공영방송으로 운영하고 공채로 뽑겠습니까. 그냥 외부 고용하고 말지. 그나마 노사 관계가 멀쩡했던 시절이면 또 모를까. 이 막장인 상황에.


또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읍시다.


2012년 김성주는 밥벌이가 힘들 정도였고, MBC로부터 괄시받아 그 때가 아니었다면 출연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김성주는 예능 진출을 위해 프리 선언한 1년 차에 이미 MBC에 예능으로 복귀했었고, 그 가운데엔 방송국 대표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명랑히어로의 진행을, 그리고 날고 기던 무릎팍 도사에서 게스트로 출연했었습니다.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았었기 때문에 보통 아나운서가 퇴사할 경우 자사에 복귀할 때까지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들이는데 그에 비하면 훨씬 일찍 복귀한 겁니다. 캐스터도 다른 곳도 아닌 MBC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MBC 본사의 제작 프로그램에서 진행과 나레이션도 담당했었고, 무엇보다 케이블 채널 등에 진출하여 성과를 거둔 덕에 방송국에서 밀어준다는 이야기를 듣던 이전에 비해 프로그램의 숫자는 적을지언정 밥벌이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방송 외적인 활동까지? 안정적이지 않아서 불안했다면 모를까 이런 틀려먹은 사실관계를 꺼내는 건 부당한 일입니다.


둘째. 떠날 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더니 지금와서 선배후배 들먹인다? 반대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김성주가 부당한 사유로 해직당했습니까? 엄연히 더 좋은 대우를 받겠다며 거대 기획사와 계약하여 고급차량을 줬니 받았느니하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히 돌 정도로 안 좋은 모습으로 처신하다 퇴사한 사람 아닙니까? 무릎팍 도사 쉴드가 이렇게 오래 가나요. 정말 해악인 방송입니다. 여하튼 그런 사람에게 과거에 동료였다는 이유만으로 소위 월급쟁이들이 뭘 해줘야 합니까? 아니 뭘 해줄 수 있기는 하나요? 가장 말도 되지 않는 지적이며, 이걸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감정론에 기댄 채 논리는 전개하지 않겠다는 소리입니다. 애초에 공기업만이 아니라 사기업 가운데 일부도 업무과 관련한 고도의 연관성을 가진 타사로의 전직에 대해 일정 햇수 기준으로 금하는 사칙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김성주가 당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는 건 공영방송, 그리고 아나운서의 선발과 육성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소리입니다. 김성주의 자리와 소속 아나운서의 자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상상해보세요. 스포츠 선수와 친한 아나운서가 방송중에 그 선수에 대한 칭찬을 하며 경기 외적으로 그 입지를 넓혀주는 광경을.


그 이전에 퇴사 전 김성주를 부려먹던 사측이랑, 퇴사 이후 김성주를 대우하는 사측이랑 너무 편의적으로 분리하는 거 아닙니까? 김성주가 있을 때는 악당이었다가 김성주를 받을 땐 갑자기 개심이라도 했답니까? 그리고 나중에 김성주가 복귀해서 그 자리를 계속 앉아 있을 땐 노조는 아무 이야기 안하고 지금 와서 주진우가 들먹이는 거 보고만 있냐고요? 내부에서 계속 부대껴 온 당사자들이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을 겁니다. 애초에 2012 파업 때 노조가 이겼습니까? 깨지고 파업 핵심인사들은 줄 퇴사를 이은 상황이었는데 너는 왜 그 때 이야기를 안했냐고요? 소름돋기까지한 발상입니다. 모두가 퇴사해서 독립된 언론을 꾸릴 영웅이 되지 않았다고 비난받아야 합니까. 지금 블랙리스트가 순차로 계속 공개되고 있는데도 저런 말을 하는 건 그냥 사실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소리입니다.


셋째. 현직 동료들은 김성주를 미워한다? 여기에 대해선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죠. 그 시점을 2012 이전 시점으로 잡더라도 말입니다. 김성주는 방송국 차원에서 밀어주던 아나운서였고, 그 기회는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김성주는 그 기회와 혜택을 받고도 방송국을 떠난다는 선택을 하였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남아있는 자들에게 이런저런 상실감과 분노를 자아냅니다. 김성주 이래로 아나테이너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으니 그 파급은 상당히 컸죠.


혹자는 mbc에서의 혹사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거다라고 말합니다만, 말도 되지 않는 것이 교양도 아닌 예능의 출연 여부 정도는 아나운서가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1, 2년차 아니 3,4년 차 아나운서도라면야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김성주가 그랬나요? 애초에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다른 MC에 비해 대우받지 못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이러한 옹호측의 무수한 의견을 반박해버립니다. 요는 감정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겠다는 거죠. 하지만 이게 잘못인가요? 부당한가요? 그 부분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넷째. 아나운서는 공인입니다. 제가 이전에 연예인은 공인 아니다, 그들에겐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다, 저명성과 공공성을 구분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아나운서는 공인 맞습니다. 왜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혼동을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여기있다고 봅니다. 아나운서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왜 다른 연예인들 예능 프로 나오는데 걔들은 뭐라 안그러고 김성주한테만 그러냐, 김성주는 지금 프리 아니냐 라고 하는데 언젠가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능인 가운데서도 부당하게 억압받은 이가 있고, 그 반대급부로 이득을 얻은 쪽이 있습니다. 이쪽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테고, 프리와 관련한 이야기는 다섯번째 항목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여하튼 아나운서는 언론인으로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일정한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아나운서는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이며, 실제로 우리는 아나운서가 재잘거리는 앵무새가 아니기 위해 언론에 기여하고 투신한 언론인 출신 아나운서, 앵커들을 알고 있습니다. 80년대 후반 이전까지 아나운서는 기자에 미치지 못하는 준언론인으로 취급받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단적으로 예능적인 색체가 훨씬 강한 전현무조차 비슷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했었는지, 기억해보세요. kbs는 mbc에 비해 훨씬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 중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다섯째. 프리랜서, 소위 자유직 계약이라 하더라도 직업적 윤리는 계속해서 지켜져야 합니다. 이는 내부자이자 당사자였던 이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로, 이 의무와 책임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사회 시스템은 견제를 통한 균형을 통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하고 있는데, 보통 법적으로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만 이것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직업 윤리적으로 이를 엄격히 따라야 한다 봅니다. 단적으로 이러한 시스템을 무력화시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 악명높은 전관예우와 관피아, 언피아 등입니다. 즉, 김성주의 문제는 파업중의 대체고용과는 또 다른 궤의 문제라는 겁니다. 상당한 공공성을 가졌던 내부의 당사자가 이후 외부자로 시스템에 작용하는 것을 단순한 개인사업자의 활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겁니다. 애초에 공영방송이 파업중에 고용하는 것도 막장인 문제이긴 합니다만.


여섯째. 방송에는 아나운서의 영역이 별개로 존재합니다.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내부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활동하는 영역은 그들의 상징성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따로 마련되고 있고,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이 가진 독립적 입지를 활용하여 언론인으로서의 중립과 책임을 수행하려 노력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공인으로 취급되고,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아, 일정 금액 이상의 대가나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 공고한 영역에 사익이 개입되면 그 균형성은 붕괴될 우려가 높으니까. 각 방송국에서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언론인들을 괜히 육성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혹자는 김성주가 언론인으로서 이미지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mbc 재직 당시에도 예능으로 더 유명했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만, 이건 김성주가 언론인으로서 전혀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로 사실상 그를 모욕하는 말임과 동시에, 현재 김성주가 논란이 되고 있는 파트가 중계라는 아나운서의 영역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겁니다. 스포츠와 스포츠 중계는 국가를 통해 지원을 받기도 하는 공적인 영역입니다.


주진우의 코멘트에 대해 과했다고 여기는 사람 분명히 있을 겁니다. 실제로 패고 싶다는 말을 저런 장소에서 공공연히 말하는 건 그리 좋아보이지 않죠. 하지만 상당히 정치적인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사측은 예고된 파업 앞에 '또' 시용인원을 고용하기 위해 공시했고, 김민석pd말마따나 수천대 일 경쟁률이 3:1, 4:1이 되는데 오는 사람은 분명히 올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겁니다. 저 코멘트는 그러한 이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고, 동시에 내부의 인원들을 다잡기 위한 사기진작의 표현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장기적이 되면 또 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파업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겠죠.


개인적으로 진짜 하고픈 말은, 이전 정권의 사람들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며, 그들의 말을 받아쓰면서 나는 다르다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대충 정리가 되죠?


누가 돈을 많이 받니 누가 먼저 잘못을 했니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엄연히 김성주는 언론인이었고, 언론인 출신으로 내부 사정에 대해 일반인 이상의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아나운서의 영역이 비어있는 사이 들어오며, 이에 대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라고 답했고, 마치 파업이 mbc의 어려움과 위기인 것처럼 읽힐 수도 있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파업이 끝나면 내려오겠다'는 말까지 지키지 않았죠. 파업의 의의, 그리고 언론의 독립성과 자유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질렀던 겁니다. 지금 그리고 2012년의 공영방송의 파업은 절대로 노사갈등의 성질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개인이 무시되는 기업문화같은 것도 아니고요. 공적인물들의, 공적 이익을 위한, 공적 사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012년 mbc는 긴 파업을 거치며 온갖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파업이 흐지부지 끝나버리던 그 때, mbc는 기존의 구성원들은 밀어둔 채 mbc의 정통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선택을 몇몇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김성주였습니다. mbc의 이미지가 강하면서도 현재의 내부자는 아니고, 또 현직 구성원만큼 투쟁하지도 않으면서 파업측의 힘을 쫙쫙 빼버리는 효과적인 카드. 실제로 2012년 당시 mbc 파업 구성원은 김성주를 엄연히 사측으로 파악했고, 그의 복귀에 대해 잘못된 시점이라며 무수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상기의 '몰랐다', '파업이 끝나면...' 등등의 발언도 이러한 논란 이후 해명과정에서 나온 말이었고요. 애초 김성주에게만 이런 비판이 왜 쏟아질까요. 손범수 등의 kbs 출신 아나운서도 mbc 예능에 출연해왔었는데.


다시 한 번 상단의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김성주가 예능활동만 했습니까? 김성주가 연예인입니까? 김성주는 MBC 소속이 아니었습니까?


같은 방송국에서 나오니까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데, 예능국과 시사언론쪽은 주체부터가 다릅니다. 제작은 물론 섭외과 기획, 진행까지. 그래서 퇴사한 아나운서들이 자사의 예능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선 구성원들이 별 말을 안하는 겁니다. 물론 그조차 고려하여 박지윤의 경우처럼 파업중 방영이지만 그 전에 녹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죠.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있던 이들이 종종 mbc예능에 출연할 수도 있었고, 계속해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던 무한도전은 여러 외압은 가했을지언정 폐지시키지는 못했던 겁니다. 뉴스쪽에 비하면 외부 인사나 자본이 훨씬 많이 개입하니까.


여하튼 오상진과 김성주는 똑같이 방송국에서 푸쉬를 받던 아나운서들이었고, 시간이 흘러 프리 선언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에 대한 인상은 전혀 다르죠. 파업참여 여부인가, 진짜 못견뎌서 나간 사람인가 따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가 더 회사를 올바른 방식으로 사랑했었느냐, 누가 더 언론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했느냐, 퇴직 이후 본인이 인기를 얻었던 영역과 언론인으로서의 영역을 어떻게 존중했느냐 등등의 사유가 고루 작용한 겁니다. 실제로 김국진이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오랜만의 mbc출연에 서럽게 우는 오상진을 두고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런 친구가 MBC에 어울리는데...."


정리하겠습니다.


아나운서는 언론인이며,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공적인 존재입니다. 그들에겐 사회적으로 고도의 공공성과 책임이 요구되는데, 이는 그가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직업'윤리'라고 부르며, 우리 사회는 당사자이자 내부자였던 이들에 대해 보다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당장 청문회에서 논란이 되는 전관예우, 자문활동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에게 부족한 게 전문성일까요,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직업윤리일까요? 외부자가 된 과거의 내부자가 외도적 방식으로 시스템에 작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정상적인 시스템이 아니게 되어 버립니다.


김성주는 자신의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언론의 자유라는 공적인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동료들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다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밥그릇 싸움이나 선후배 취급의 여부로 논할 문제가 아닌 책임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는 당사자이자 내부자였기 때문에 연예인과는 비교되지 않는 수준의 엄격한 태도를 요구받았었지만 사측의 첨병에 서서 나는 몰랐다며 그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애초에 이번 주진우 건으로 새삼 화제가 됐을 뿐 그는 이전부터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그 행보를 계속해서 비판받아왔습니다. (문득 기억 나는 것이 무릎팍 도사 시절 선배의 가는 길에 후배도 아닌 네가 왜 왔냐는 이야기를 들을까 무서웠다는 캡쳐를 두고, "아나운서 선후배 대접을 못받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다"라는 저격글까지 올라왔었죠.)


논란이 충분히 될 법했다는 겁니다. 2012년 흐지부지 끝났던 파업의 불씨가 다시 되살아나면서 재점화된 것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지금의 논란은 그런 의미에서 필연적입니다. 당시엔 증거가 없다고, 음모론이라고, 인기가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저런 일이 벌어졌다며 뭉갰던 사건 하나하나에 슬슬 역풍이 부는 겁니다. mbc, 국정원, 청와대 각각의 블랙리스트는 그 단적인 예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어쩌면 곧 화이트 리스트까지 공개될지도 모르죠.


사족이지만, 김성주 건 정도면 상당히 명백하고, 2012년 당시 여론을 생각해보면 이런 논란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본질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예능 쪽이 훨씬 크게 불타오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상황을 보고나니 그냥 불발탄으로 끝날 거란 생각이 커집니다. 애초에 개그맨은 기본적으로 외부자이기도 하거니와, 대중은 개그맨의 풍자에 그리 반색하지 않다보니 거리를 둔 영향도 있습니다. 또한 이전만 못해진 지금의 입지도 고려해야겠죠. 뭣보다 당사자가 변화하는 추세에 기민하게 잘 반응했고, 나름대로 알리바이라고 할 법한 것들도 많으니.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8.25 22:30


 개그맨 박명수


개인에 대한 호오를 넘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하는데- 저는 박명수가 소위 말하는 의식있는 개그맨이며, 그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왔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언젠가 박명수가 하는 개그가 소위 시사개그냐는 의견에 대해서도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반박했던 바 있기도 하고, 이후 슬럼프에 빠진 박명수에 대해 박하게 평가를 내린 적이 있어서 다소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물론 위 평가를 한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박명수가 박근혜 정권 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겠고, 두번째는 박명수가 꾸준히 소위 말하는 시사 개그를 해왔다는 건데... 거참...


두번째에 대해서는 이미 몇번이나 다룬 적이 있으니 간략하게만 언급하겠습니다. 첫째 박명수가 주체적으로 나서 대본을 구성한 적이 없고, 두번째로 구성상 박명수의 개그는 성대모사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으며, 세번째로 소위 말하는 그러한 연기에 적합한 행보를 보인 적도 없습니다. 박명수가 이제껏 했던 누군가들이 말하는 시사개그는 사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의도를 가진 무한도전이라는 플랫폼이 함께 해 줬기 때문인데 왜 무한도전이 아닌 개인 박명수가 저러한 평가의 온존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했던 말처럼 "그럼 이정희+박근혜+뽀 등등등을 패러디한 김슬기나, 김정은+문재인을 동시에 패러디한 김민교, 안철수+조조+박정희+노무현을 동시에 표현했던 이상훈은 무슨 시사풍자개그의 화신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한 마디. 이승환이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가요계에서 가장 가열차게 정권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고 야권 인사를 지지했던 인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반대로 연극배우 손숙과 함께 박명수는 문재인 당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사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이후 관련하여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오직 이것만이 저러한 평가의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나요? 글쎄요. 정작 해당 리스트의 기준 자체가 제3자가 보기에도 너무 황당하고 제각각인 기준을 내세워서 엄연히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될 겁니다.


물론 제가 하는 말을 보시면 알겠지만 박명수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세간의 평가가 무한도전이라는 렌즈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부풀려져 있으며, 이후 찾아올 역풍에 대해 그만큼이나 취약해지는 상황으로 보여집니다. 저야 이후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그래. 박명수는 2011년 그렇게 행동했었고, 2012년 그랬었지"라면서 기억하고 넘어가지만, 이후 mbc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여러 자료가 흘러나올테고, 이 과정에서 박명수 본인이 원치않게 이용된 정황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예상되는 상황인데 그것이 그대로 비수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요.


박명수 개인은 그저 개인으로서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한 정도밖에 없는데, 그의 행보는 어느 순간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상황이 되었고, 어떠한 측면에서 그는 변질된 시스템에 의해 혜택을 본 측면이 있으며, 그 주변 인물들은 그로 인한 피해를 받았습니다. 그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단언하기 힘든 상황에서 펼쳐지게 된 이러한 대비는 결과적으로 그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 그 이상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는 거죠.


오늘의 글은 참 갈피를 잡기가 힘듭니다.

관습같은 게 있는데 박명수는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예컨데 대상급 인사는 그 해 상을 못받으면 못받았지 최우수상은 어지간한 사유가 없으면 안주는데 박명수는... 그래서 박명수의 대상이 휘발성이라고 놀림받기도 합니다. 대놓고 무도에서 김태호가 "그거 논란됐잖아요."라고 말할 정도였던 2012년의 대상.


자. 먼저 왜 박명수에 대해 이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황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지금이야 마무리나 잘 하라는 평을 듣는 무한도전이지만, 2011년 내지 2012년엔 전혀 달랐습니다. 사실상 몇번이나 절정부를 갱신하며 문자그대로 대한민국 대표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상황이었습니다. 덩치는 둘째치더라도 프로그램의 질에서도 차원을 달리했죠.


그러나 당대 연예대상에서 유재석은 대상을 놓치고 맙니다. 사실상 당시 무한도전을 빼놓고서는 mbc 예능을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당시 대상을 받았던 것은 바로 프로그램 나가수였습니다. 시상식 며칠 전 급박하게 바뀌어 버린 기준으로 인해 유재석은 대상을 놓치고 PD상과 최우수상을 받게 됩니다. 대상 수상 자체가 일종의 투자 개념도 포함되어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나가수가 아무리 잘나가도 당시의 유재석보다 미래가 밝다고 볼 여지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거기다 나가수는 임재범 하차, 이소라 하차, 옥주현 합류 이후 등등의 기점마다 명백히 하락세가 거세졌습니다. 그리고 온갖 논란을 앓으며 그 화제성 역시 눈에 띄게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죠. 애초에 예능이 맞긴 하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명백히 눈에 뻔히 보이도록 대상을 떠넘겨 버리니 논란이 되었던 겁니다.


당시엔 나가수 정도면 상을 주긴 줘야 되는데 마땅히 줄 상이 없어 대상을 안겨 주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나돌았지만, 사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베스트 프로그램상이 후에 신설될 정도로 대상과 프로그램상은 명백히 그 성질이 다를 뿐더러, 애초에 mbc의 상은 권위고 뭐고 없다는 비꼼을 들을 정도로 공동수상을 남발해왔었으니까요.


이 와중 돌았던 이야기가 바로 무한도전이 정권에 찍혀서 박대받는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재석과 함께 했던 예능국 PD들은 정권의 비민주성과 과 MBC 장악에 대해 부당하다 이야기해왔고, 그의 아내는 다름아닌 MBC 소속의 아나운서였으니 타겟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죠. 우연일까요. 그 해 유재석은 kbs에서도 대상을 놓치는데, 당대 유력한 경쟁자였던 강호동이 탈세논란을 앓으며 사실상 단일 후보 정도의 위용을 보여주던 참에 시상식 당일 기준을 뒤바꾸어 1박2일 팀에 대상을 안겨줘 버립니다. kbs는 사소한 논란을 앓아도 대상급에서는 철저히 배제시킨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리고 2012년이 되었습니다. MBC는 기나긴 파업을 거쳤고, 결국 지도부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MBC는 방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한도전이 좋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 해 결국 가장 화제가 된 것도 결국 무한도전의 행보 하나하나였을 정도로요. 그리고 그 해의 대상을 박명수가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2012년이 박명수에게 최악의 해가 되는 기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박명수는 파업기간 내내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첫번째는 MBC의 파업 기간 동안 그 틈을 메꾸기 위해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어댔고, 두번째는 그러면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했으며, 세번째로 지금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동료들이 언론정상화를 외치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종편에 그대로 진출하여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씩 따져보죠. 파업기간중 파업을 함께 하지 않은 동료에 대한 시선.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전에 박명수가 동료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또 따져봐야 합니다. 박명수는 스스로를 MBC의 아들이라고 칭했고, 실제로 MBC를 통해 데뷔했으며, 십수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전속에 가깝게 활동하기도 했지만, 사실 MBC의 직원은 아니니까요. 과연 MBC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하는 이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고, 또 그들의 의사표현 과정을 왜곡하는데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일개 연예인인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볼 수 도 있을 겁니다. 김민석 PD 말마따나 수백대 일 경쟁률에서 2:1, 3:1로 바뀌었는데 거기에 끼어들지 않을 사람이 또 얼마나 되겠냐는 말처럼 말이죠.


하지만 과연 이게 감정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요? 유재석은 반등점을 짚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놀러와가 강제로 종료되고 박명수와도 함께 했던 놀러와 PD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퇴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해 박명수의 대상수상보다 김원희의 불참과 김나영의 눈물, 최우수상을 받은 박미선의 일침이 더욱 무게감 있게 다뤄졌던 것만 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거두절미하겠습니다. 이 시기 박명수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하나라도 제대로 대기가 힘들 겁니다. 특히 대상의 사유로 꼽혔던 나가수에서는 쫓겨났고,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솔직히 노골적으로 말해 얼굴만 비추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무게감 있는 행보랍시고 진출한 종편과 케이블에서조차 뭐 하나 제대로 된 성과를 못냈고요. 박명수의 대상 수상에 대해 가장 많이 비판받았던 것도 자사의 프로그램에서 사실상 쫓겨났던 박명수에게 상을 주는 게 맞긴 맞냐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종편 진출. 2012년의 종편은 지금의 종편과 전혀 이미지가 달랐습니다. 지금이야 공중파에도 지지않은 콘텐츠를 갖고 있지만, 과연 공중파가 이전과 같이 힘을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지금 종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당대 종편은 그 낮은 기대치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결국 그들이 채택하는 것은 공중파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오면서 묵직한 인물들을 출연시키는 것이었는데, 당시 박명수 정도의 덩치를 가졌으면서도 공중파 황금 시간대에 잘 나가는 출연자가 종편에 진출하는 것은 손에 꼽힐 정도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과거 무한도전의 한 특집에서 종편으로 인한 방송 생태계 혼란을 비판하는 것에 출연하던 출연진이었고요. 당시 종편은 케이블만도 못한 등급으로 취급받고 있었는데 엄연히 대한민국 대표 프로그램의 구성원이 바로 종편에 바로 출연해 버렸으니...


최근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더 정의로운 사람에 대해서 더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면한 현실에 대해 자신이 느낀 책임을 부정하는 이들에겐 불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은 또 어느 정도의 선까지 허용되고 금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명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쨌든 소위 말하는 펌프를 받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고, 이후 겉잡을 수 없는 하락세를 그렸습니다. 동시에 그 자신의 이미지도, 무한도전이라는 메가 히트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면서 꾸준히 타개해낼 수 있는 환경속에서도 계속해서 망가져갔고요. 그리고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겐 사실상 루비콘강을 건너는 수준의 상황까지 닥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MBC의 앞일과도 크게 닮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사장진이 있고, 그리고 구 여권 세력이 앉힌 이들이 눈에 뜨이니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제작진이 이선에 물러난 사이 새로이 들어온 이들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현직에 복귀한 이들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허용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또 그 정도를 벗어난 걸까요. 박명수의 지금의 모습은 앞으로의 MBC의 모습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8.24 07:14


 역시


재밌네요. 오랜만에 봤는데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1999년 제작된 이 드라마는 총 2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5.16 쿠데타 이후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당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화제가 되는 '거지'가 메인인 작품이었습니다. 춘삼과 연지 두 사람의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고 이윽고 이어지는 관계는 당대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오늘은 이 드라마를 시청함에 있어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이야기하고,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천해 보려 합니다.


먼저 이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주의해야 하는 사안을 이야기해보죠, 왕초는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장군의 아들 시리즈의 아류(... 라고까지 말하면 다소 박하기는 합니다만), 그 갈래에서 뻗어져 나온 콘텐츠입니다. 실제로 장군의 아들-왕초-야인시대를 보다보면 단순히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정도를 넘어 공통의 정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언급한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소리입니다. 주요 인물 가운데 몇몇은 아예 창작된 캐릭터일뿐더러, 실제 현실의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도 괴리가 너무 심해 당대에도 화제와 논란이 되기도 했었으니까요. 특히 일부 캐릭터에 대한 미화가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예컨데 김춘삼의 경우 작중에선 우직한 거지로 도둑질도 거짓동냥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직한 성격입니다만, 실제 인물에 대해선 이런저런 법적인 도덕적인 문제가 많았다 이야기되고 있죠. 뭐. 이것까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춘삼은 작품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현실과 대비되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에서도 문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행적 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성격과 마지막의 모습까지도 알려진 정치깡패 이정재를 묘하게 의리있고 대중을 무섭게 여기는 식견있는 인물로 그린 점, 친일과 공산주의 정당에 소속되었다 결국 우파 쪽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결국 반란까지 일으키는 박정희를 이상적 성격의 왕초와 동일시하는 대사까지 나오니까요. 지금보면 아찔하죠.


(물론 드라마의 방영시기가 1999년이며, IMF 이후 소위 말하는 박정희 향수가 일어났던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이야 친일행적과 남로당 전력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집권 과정에서의 불법성, 대통령 집권 이후의 공만큼 과가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만, 그땐 그렇지 못했죠. 실제로 박정희 코스프레를 하는 정치인이 나타나는가하면, 아예 그의 딸이 정계에 진출할 정도였...)


또한 등장인물의 가치관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역사상 엄연히 존재했던 구악들과의 동거는 드라마에서도 다루어지는데, 주인공 일행이 이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금 말하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일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컨데 그 시절(일제강점기) 친일파 아니면 거지라는 말은 당사자인 거지가 진짜 친일파에게 하는 말이기에 작중에서는 이론의 여지없는 상당히 무게감 있는 말입니다만, 이것을 시대도 사회적인 위치도 다른 제 3자가 인용한다면 전혀 별개의 의미로 해석되어 버릴 수도 있죠.


유투브에서 왕초 검색하면 고화질로 전편 mbc클래식 채널에 올라와 있습니다. 에피소드가 뚝뚝 끊겨서 조금 귀찮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작품을 한 번쯤 추천해 보려 합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민초를 다뤘습니다. 상단의 친일파 아니면 거지라는 표현이나, 거지는 밥 굶고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거지같으면 거지다라는 말은 본 작품의 성질을 잘 설명해 줍니다. 결국 우리네 뿌리의 삶을 다루었기에, 그렇게도 어려웠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또 거지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로 고난의 과정에서 거지로 사는 장면을 삽입한 드라마는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만,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지가 메인 콘텐츠가 되어 진행되는 작품은 정말로 드물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본 작에서의 배우들의 모습과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차인표의 경우 특유의 껄렁거리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연기를 상당히 잘 해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의 인생캐릭터에 김춘삼을 꼽고 싶을 정도로요. 멸치가 별명일 정도로 비쩍 마른 사람치곤 상당히 몸이 좋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거야 뭐 창작의 허용이라고 보고 넘어갑시다.


홍경인은 과거 직공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동운동가를 연기했었는데, 본작에선 멋모르고 우익단체에 소속되어 빨갱이 때려잡겠다고 설치는 철부지를 역할도 소화했습니다. 물론 일부 에피소드기는 합니다만, 둘 다 무섭게 잘 어울릴 정도로 연기력이 탁월합니다. 이야기의 중심도 아닌 지점에서 단독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데 저 사람이 저렇게 연기를 잘했었지라면서 다시 떠올렸습니다.


송윤아도 훌륭합니다. 어찌보자면 정형이라 할 수 있는 순정파 캐릭터라는 점은 왕초도 마찬가지지만, 춘삼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이라는 비교적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윤아가 연기한 연지는 당대 시대상과 여성 캐릭터라는 한계가 고루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매력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여기엔 전적으로 그녀의 연기력이 작용하였습니다. 박보살의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 쌀쌀맞게 연기하는 장면에서 김자옥의 연기의 질을 따라가는데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까마귀 역을 연기한 이혜영은 사실상 유일한 여자 거지라 예쁜 옷을 입지 못해 속상했다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실제로 출산씬 이후 처음으로 여성 일상복을 입은 이후 드러나는 실루엣을 보면 왜 그렇게 속상해 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요. 하지만 그러한 점을 떠나보면, 그녀가 연기한 까마귀는 너무나도 본작에서 중요하게 기능했고, 또한 급변하는 시대상에 다양하게 맞춰 연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산 이후 사실상 캐릭터가 완성되어 종료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요.


허준호는 개인적으로 본작의 최고 캐릭터인 발가락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기했습니다. 어느 순간 악역인데 실질적인 위협은 더 이상 끼치지 못한다는 애매한 상황에 닥치는 데도 불구하고, 특유의 비주얼과 배우의 호연이 어울리며 매씬에서- 심지어 굴욕적으로 굴복하는 순간에조차 몰입하게 만듭니다.


맨발을 연기한 윤태영은 이 당시 이미지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혼을 실은 바보 연기로 사실상 극의 웃음을 주도했으며, 날파리역의 홍경인, 도끼 역의 윤용현 등이야 개그 캐릭터적 성향이 강하니 콤비가 잘 맞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전혀 의외인 캐릭터들과도 이렇게 저렇게 엮이는 걸 보면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앵무새 역의 김세준, 김두한 역을 맡은 이훈, 이정재 역을 연기한 정준호, 쌍칼 역의 박준규(예. 야인시대 전에 여기서도 쌍칼을 연기했었습니다) 등도 충분히 극을 긴장감있게 몰아가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포인트는 바로 김두한 입니다. 야인시대건 왕초건 결국 이 작품은 90년작 장군의 아들의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작품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두한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작품의 방향을 결정짓는 매우 중대한 요소였습니다. 김두한이 주인공이라면 장군의 아들과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는지가 중점이 될 것이고, 김두한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어떻게 김두한을 다루어야 독립된 주인공의 정체성도 지키면서 동시에 역사에도 기록된 김두한을 충실하게 묘사할 수 있느냐라는 고민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죠.


이 작품은 언터처블한 존재로 다루어진 김두한의 역사상 부정적인 면을 어느 정도 다루어 내는 것을 통해 그를 극복해 내려 했습니다. 예컨데 친일로 의심되는 단체에 몸을 담았다거나, 빨갱이 때려 잡는다면서 직공들을 괴롭힌다거나, 정치에 입문하면서 높으신 분들의 일종의 해결사 노릇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장면을 넣어놓습니다. 한낱 거지인 춘삼도 아닌 것 같다며 빠져나오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급박한 상황에서 춘삼의 조언을 듣기까지 하는 장면이 나오니 김두한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팬들은 이 왕초라는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김두한이 매력이 없다거나 하다는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악역으로 나오거나 그 이하의 비중으로 나오는 캐릭터들과 나란히 비교하기 곤란할 정도의 보정은 주어지죠. 단순하고 욱하는 면은 있어도 어쨌든 근본은 선한 존재로 그려질 뿐더러, 시라소니와의 대결에서 버거워한 면을 제외하면 사실상 1대1 싸움에서 최강자로 그려집니다. 이정재와 1대1로 싸워서 이긴 김춘삼이 나보다 주먹센 사람은 처음봤다며 김두한을 띄우기 까지 합니다. 아니, 애초에 김두한이 본작에서 1대1 싸움을 가장 많이 했을 겁니다. 야인시대처럼 싸움이 메인 콘텐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또한 그가 부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유도 제공해 줍니다.  첫번째는 잘 몰라서, 두 번째는 강요를 이겨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닥쳐서, 셋째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서.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춘삼의 친구로 남습니다. 그도 춘삼도 어쨌든 서로에게 화내고 서운하다고 말해도 함께 움막생활을 했던 시기를 잊지 않고 서로를 단순한 친구 그 이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작중 몇번이고 강조되는 대사에서도 나옵니다.





뭐, 이러한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한 번 추천해 봅니다. 야인시대나 장군의 아들을 재밌게 본 이들에겐 일종의 외전과 같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줄 겁니다. 김세준, 박준규, 최상학 등 왕초에서 등장했던 인물들 중 적잖은 수가 야인시대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걸 찾는 재미도 있겠죠.


본 작의 알파와 오메가는 결국 로맨스일 겁니다. 춘삼과 연지의 로맨스가 바탕이 되어, 이런 저런 로맨스가 추가될 듯 말듯 하는데- 연장방송으로 인한 혼란을 고려해도, 예. 역시 재밌는 작품이네요.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8.19 19:40


 ...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붙였습니다만, 사실 1999년작 mbc드라마 왕초는 사실 고증과는 담 쌓은 작품에 해당합니다. 주요 인물들의 실제 행적이 사실과 다른 거야 그렇다치더라도, 등장인물의 나잇대가 아예 십수년 단위로 맞지 않는 건 꽤나 유명한 이야기죠. 실제로 이 드라마가 시작하기 직전 각색을 했다고 사전에 공지하기도 합니다.


기황후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실존인물과 창작물 사이에 대한 괴리는 지금 군함도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존중은 필요하다는 최소한의 입장에서부터, 오락을 위한 창작자의 주관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개입되면 곤란한 소재가 존재한다는 입장, 그와 반대로 창작의 자유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사실관계는 왜곡해도 무방하다는 입장, 심지어는 아예 창작에 있어 성역은 없으며 어떠한 것을 다루어도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사실은 사실 그 자체로 다루어야 한다 보는 쪽까지 있습니다.


드라마 왕초는 어떠한 입장일까요. '창작의 자유를 위해선 구체적 사실관계를 어느 정도 왜곡해도 된다'는 세 번째 입장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따지고 보면, 네 번째 입장 '작품은 작품, 사실은 사실'이라는 쪽에 해당합니다. 이 드라마는 미화가 배제될 수 없는 구조인 김춘삼의 자서전, 그리고 사실상 구체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먼 영화 거지왕 김춘삼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애초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는 거죠.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김춘삼은 공적인 인물이 아니었으니 그와 그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다룰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이야기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역사적인 비중으로 따지자면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므로, 구체적인 검증과 기록의 대상이 되지 못한 거죠.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또 다른 유명한 작품과 상당 부분 맞닿습니다. 기실 왕초가 방영할 당시 왕초는 그 작품의 서민적, 언더독 버전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요. 예. 장군의 아들 말입니다.


당대에도 왕초의 진실이라는 식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고, 조폭미화물이 아니라더니 거지미화물이 아니더냐는 식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거두절미. 왕초의 주인공은 차인표가 연기한 김춘삼입니다만, 그 시대적 배경상 '김두한'이 등장합니다. 본 작에선 이훈이 연기하죠.


김두한. 비중만 따지자면 조연에 해당하고, 실질적으로 어느 시점이 되면 이야기의 진행에조차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을 결코 가볍게 다룰 수가 없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유명한 주먹패 출신으로 훗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었고, 동시에 대한민국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장군의 아들의 주인공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실존적인 무게감이 이렇게나 크면서도 동시에 창작과 윤색의 덧칠을 이만큼이나 더해져왔었으니 다루기가 쉽지 않겠죠.


실제로 90년대초 장군의 아들 시리즈가 제작되었고, 그 아류작들-그러니까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주먹패들의 이야기-이 몇이나 나왔으면서도 결국 2002년 야인시대로 메가히트를 기록하게 만들었던 게 바로 이 '김두한'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측면을 비틀어서 나온 것이 바로 김춘삼의 이야기입니다. 김두한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많이 다루어졌고, 동시에 다루기 까다로우니, 상대적으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인물의 새로운 측면을 부각하여 다루어내는 것이죠. 김두한이라는 히트카드는 이야기의 흥미를 돋구는 선에서 그치게 하고 이전의 창작물에서는 다루지 않던 김두한의 비교적 어두운 측면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김춘삼에겐 일종의 역보정이 가해졌고, 결과적으로 김춘삼에 대해서 미화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왕초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오래 기억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재작년 어게인 왕초라는 이름으로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시 모여 재연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죠. ...어게인은 정식 프로그램으로 승격되지는 못했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이 드라마, 사실 꽤 재밌습니다. 당대 '은실이'를 상대로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로 이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인기도 괜찮게 끌었고요.


왕초의 강점은 소재입니다. 거지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메인 콘텐츠인 경우가 과연 앞으로 몇번이나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의 희소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또한 결국 역사적 인물이 되어 버린 김두한을 다룬 야인시대 등이 구체적 사실로 인해 나름의 한계선이 정해졌던 점에 비해, 왕초는 사실상 완전히 판타지의 영역에서 다루어졌지만, 동시에 그러한 콘텐츠들이 지향했던 재미도 나름대로 흥미롭게 풀어냈거든요.


연기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일단 조역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발가락의 허준호는 비굴하면서도 교활하고 야심찬 캐릭터를 너무나 훌륭하게 소화했고, 홍경인이 연기한 날파리는 작품의 주제를 충실하게 전달하며 심지어 1인 단독으로 극을 끌고가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앵무새 역의 김세준은 극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맨발의 윤태영의 개그 연기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류덕환이 연기한 쥐똥은 될성부를 떡잎은 애초부터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주고요.


차인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 드라마에서의 김춘삼은 차인표의 인생 캐릭터입니다. 묘하게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해 방황하면서도 묘하게 선한 면모를 보이는 것이 저 허우대 멀쩡한 사람에게 저렇게 어울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잠깐잠깐 뜨끔하는 연기를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조차 작중에 묘사된 어리버리한 김춘삼이라는 캐릭터에 튀지 않는다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무리 현실의 인물이 그러하더라도, 그리고 일부의 요소를 차용해 오더라도 만들어진 캐릭터와 구현된 이야기는 그것과 별개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실 저는 그리 불편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김춘삼이 훨씬 저명성 있고 공공성 있는 인물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결국 근본은 그겁니다. 만드는 사람은 이건 현실에서 몇몇 요소를 차용한 별개의 창작물이라고 명백히 밝혀야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작품은 작품 현실은 현실이라 명백히 구분하고 작품을 보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거겠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흔히


지금의 고전은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재미가 있어 후대에 전해졌다'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여기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최소한 후대에 기억될 정도로 적잖은 이들이 공감하는 당대의 테마를 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괴담은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자극해야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자연히 괴담은 '공감'을 가장 먼저 앞세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런만큼 불특정의 사람들이 두루 체감할 수 있는 소재나 교훈, 금기나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죠.


예컨데 20세기까지만해도 크립티드, 즉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에 대한 괴담이 여기저기 퍼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얼굴이 달린 개라던가, 백두산 천지의 괴물이라던가, 흡혈 박쥐같은 경우는 한국의 유명한 괴생명체에 대한 괴담이죠. 사실 지금은 해외의 유명한 모스맨이나 네시정도가 전해져오고 있지만, 당장 한국에서도 이러한 괴담이 전해져 왔죠.


이들은 각기 당시를 상징하는 정서를 담고 있었습니다. 예컨데 인간의 얼굴이 달린 개는 유기견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던 상황에서 이러한 반려동물 역시 생명의 하나이며, 그들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괴담의 하나로 풀어내어 이야기적인 교훈을 전달하려 한 것입니다. 백두산 천지의 괴물은 서서히 해동되어 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그들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을 상징하고 있었고요. 흡혈박쥐는 드라큘라나 배트맨 등으로 친숙해진 박쥐라는 소재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말라리아와 일본뇌염모기의 성향이 뒤섞여 만들어진 괴담일 테고요.


한국의 괴담 중 상당수가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이 문화강국이고 온갖 괴담이 넘쳐나는 영향도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일본과 한국의 서로 상통하는 시대상과 정서가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물론 흔히 이야기하는 세계화로 인해 어지간히 완성도 있는 괴담은 유래가 어디간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띄게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지금에 와선 흘러간 괴담 정도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겠죠. 첫번째로 이야기의 허구성이 지적되어 이야기의 본질 자체가 분석되어 버린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디지털 합성 시스템의 보편화로 인해 이러한 괴담의 근간이 되어주어야 할 기초자료가 이전에 비해 쏟아지게 되면서 전반적인 신뢰성이 저하된 탓이 컸습니다. 세번째는 유행과 의견교환이 너무나 손쉬워진 시점이 되어서 이러한 괴담 자체의 생존력이 크게 줄어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반려동물의 유기, 북한과의 관계, 모기로 인한 질병 등등이 보다 구체적인 현실로 변화하였고, 그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이 이루어지며 괴담 자체의 존재의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굳이 후대에 전해질 정서를 괴담으로서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괴담들은 계속해서 탄생하고 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변화한 시대상과 정서를 담아 그 형태를 바꾸어 존속하고 있는 것이죠.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풀고 받은 음료수를 마셨더니 장기를 도둑맞았다거나, 모르는 이성과 하룻밤 상대를 했는데 거울에 'Welcome to the AIDS world'라고 적혀 있었다거나, 1등을 못해 자살한 학생의 유령이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첫번째 사례는 사실 과거엔 괴담이라기보단 미담의 구성에 훨씬 부합되는 이야기적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타인에게 베푼 친절이 은혜로 돌아온다는 것을요. (실제로 이러한 구성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 괴담처럼 말이죠.) 하지만 반대로 이것은 모르는 타인을 이제는 함부로 믿을 수 없는 사회상이 되면서, 이야기적인 틀은 동일하지만 정 반대의 결과가 내려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두번째 괴담은 이전엔 귀신, 괴물, 호환, 질병과 같은 요소들이 구체화되어 괴담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면, 이젠 실체를 가진 인간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존재이며, 그러한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 전혀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순간의 쾌락으로 인해 불행이 찾아온다는 이야기적 구조는 지극히 오래된 것입니다만 소재가 현대적으로 바뀐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괴담은 변하지 않는 시대상을 비추어주는 괴담입니다. 교육에 대한 개선과 학생다운 삶을 이야기해왔지만, 정작 바뀐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mbc는 hd급으로 옛 방송들을 공개했습니다만 한국은 제외된 상황입니다. 반대로 sbs는 공개 자체는 전체입니다만 단순 녹화분이어서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링크-


처럼 괴담은 단순히 시대상을 담고 있는 것을 넘어, 당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어떠한 정서를 담고 있고, 어떠한 금기와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대중문화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90년대 말에 만들어진 이 작품이, 방영과 함께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종영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이 프로그램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토요미스테리극장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 줄 겁니다.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