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프로그램2017.09.22 08:34


 미운


놈은 밥먹는 것만 봐도 짜증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실을 평가 함에 있어 인상이 적잖게 작용한다는 소리죠. 화이트리스트가 블랙리스트 사건보다 훨씬 큰 논란으로 번질 사유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곰곰히 따져보면 화이트리스트는 블랙리스트보다 훨~씬 접근하기 까다로운 문제입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지금 논란이 되는 화이트 리스트는 사실 지원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대가성, 즉 특정한 정부정책이나 행사에 참여하면서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적절한 대가 그 이상의 무언가가 개입된 정황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연예인 화이트리스트보다 시민단체 화이트리스트가 좀 더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죠. 연예인은 어쨌든 출연료는 받고, 캐스팅은 pd 등의 고유권한이니까. ...다만, 방송국 차원에서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운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리고 정부 등의 공공기관이 방송국의 캐스팅에 관여하도록 한 정황까지 드러난다면 화이트리스트는 블랙리스트 이상의 논란으로 번질겁니다.


여하튼 이미지는 앞으로 역사에서도 회자될 정우성의 "박근혜 나와!" 캡쳐입니다. 그가 블랙리스트에 자기가 실렸다는 말에 대해 한 대답이 사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정의합니다. "기득권의 요구에 불응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는 것에 신경 쓰지 마라"


첫째. 불법이 아닙니다. 물론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는 동시에 존재하는 개념이고, 애초에 공적자금에 대한 지원 자체가 공공에 드러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와 같이 기준과 내역 등등이 공개되지 않은 화이트리스트는 여러 문제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따지자면 화이트리스트는 순위의 부여이고 지원의 개념입니다. '아주 넓게'보자면 공공연히 행하는 비주류 콘텐츠에 대한 지원도 화이트리스트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물론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행동하는 딸랑이가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을 배제시키고 이득을 얻는 경우는 문제가 되고, 또 화이트리스트에 선정되는 과정에서 공적 시스템 외의 방식이 작용했다면 충분히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글 하나 썼다고 블랙리스트에 올린 정권이, 딱히 엄격하고 중대한 기준에 따라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 왜 있잖아요. tk출신 감독에게 에어포스원같은 영화 만들어달라고 했다는. ...지역이 판단의 기준 중 하나라는 게 참...


연예인의 화이트리스트를 따지는 것에 대한 극단적인 비유로, 리암 니슨한테 "너 이거 kbs에서 부당광고하고 정부에서 밀어줬다는 의혹이 있는데 너 부역한 거 아냐?"라는 겁니다. 기획과 출연 사이에 이해관계가 명확하고, 정책이라기보단 영화의 부품에 가까운 것이 애초 연예인이라는 겁니다. 연예인은 이전의 아나운서출신과 달리 내부자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당사자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본인이 자신이 출연하고 있는 콘텐츠의 부당성과 외도적 방식으로 기능하도록 주체적으로 작용했다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집니다만.


둘째. 연예인은 공인이 아닙니다. 얼마전 김성주의 케이스와 차이가 있다는 거죠. 연예인은 개인사업자이고, 이들은 사실의 전달이 본연의 임무인 아나운서와 달리 즐거움의 전달이 그 근본적인 성질에 해당합니다. 선후관계를 따지기도 상당히 힘든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화이트리스트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느냐라는 것이 법적인 관점에선 성립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애초에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어야 리스트에 오를 최소한의 자격이 생기고, 그 사람이 화이트리스트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느냐는 무수한 변수가 있는 대중문화에서 쉽사리 따지기 힘든 문제가 됩니다.


예컨데 송중기같은 경우 박 전 대통령이 팬이었다며 개인적으로 더 홍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그렇다고 송중기가 정권입맛에 맞게 행동해서 이득을 거뒀느냐하면 또 그건 아니거든요. 흔히 이야기하는 국수주의적 성향이 강한 출연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선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오르내린 류승완 감독의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하는- 어찌보자면 그저 일반적으로 흔한 배우의 행적을 보였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은 그능력과 수반한 영향력이 철저히 개인의 역량에서 기인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지간히 쉽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죠.


공채 시스템이 작용했던 공채 탤런트나 개그맨의 경우 역시 공채 아나운서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공채시스템을 통해 육성되고 특정 방송사에만 출연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구속력은 아나운서만큼 강하지 않고(20여년 전부터 신동엽, 남희석 이래로 이 제한은 크게 완화되었습니다), 데뷔 루트 역시 공채만으로 제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케이블에서 화제가 되어 공중파에 입성한 노홍철이나, 매니저나 fd활동을 하다 눈에 띄어 추후 특채로 발탁된 정준하 등에게 그만큼의 엄격한 책임을 지운다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사실 가능하지도 않죠. (아주 조악한 예지만 방송사 후배들이 선배님하고 부르면 그 때 책임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더군다나 방송사에서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틀을 벗어난 개인사업자적 성질이 강해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컨데, 개그무대의 경우, 방송국에서 꾸리는 개그맨들의 무대 자체가 이미 박살날 대로 박살난 상황이고, 그 이후의 주류적인 무대인 예능은 외주제작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드라마도 크게 다르지 않죠. 그렇기에 그들은 상황에 대해 깊이 파악하는 것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또 전체의 공공의 이익을 가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의 배우와 만화가가 갈려버린 장그래 케이스처럼 '공익광고래'하면 그냥 별 생각없이 출연했다 이후 분란을 일으키는 케이스가 바로 이래서 생기는 겁니다. 깨놓고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하고 거기에 맞게 활동시키려 한 사람들이 연예인들 앞에서 "우리 입맛에 맞게 하면 혜택 줄게요"이랬을까요. 아마 연예인 입지 넓히고 공익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식의 입바른 말과 함께 "그래도 정부가 하는 거"라며 참여시켰겠죠. 연예인들은 정치적인 발언은 자제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수십년간 살아왔으며, 그래도 공익광고는 어지간하면 출연하는 게 맞다는 식으로 행동해왔었으니 어렵지도 않은 일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이들과 동등한 책임을 지울수는 없는 노릇이죠.


물론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이들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실제로 이전부터 몇 번 이야기했었는데, '그 사람'은 함께 한 동료들이 아예 방송국을 퇴사하고(이후 블랙리스트에 수록된 걸로 확인되기도 하고), 함께 출연했던 이가 실제로 유무형의 불이익을 눈앞에서 받는 걸 보는 상황에서, 그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행동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이쪽은 위에서 말한 '몰랐다'라고 보기 힘든 사례에 해당하겠죠. 본인의 대체적인 평가와 능력에 비해 너무 과한 대접을 받았다는 정황도 있고요. 이건 엄연히 배우와 캐릭터가 갈려버린 장그래와 임시완 케이스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또한 '부당한 목적을 가진 화이트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거기에 실리기 위해 외적인 방식-예컨데 인맥, 선물 등등을 제공하는-을 활용했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화이트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것때문입니다. 


블랙리스트와 문화탄압에 가장 저열하게 피해를 입은 문성근은 어쩌면 차라리 나은 케이스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연기력은 일찌감치 인정을 받았었고, 본인의 연기인생의 궤를 달리한 상황이던 차였으니 저딴 블랙리스트가 흠을 낼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정치참여를 적극적으로 하였었기에 반대로 연예인이 아닌 정치인의 스피커가 어느 정도 작용하여 일정부분 보호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민선에서 김규리로 개명한 여배우는 어떨까요? 문성근의 극단적인 반대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아예 생각이 없거나 무지로 낙인찍혔으니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한 발언을 철회하고 그 행동을 교정하느니 그냥 욕먹을만했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걸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힘들겠죠. 괜히 문성근이 여배우 김규리가 가장 피해가 크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셋째.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분리된 정권이라는 겁니다. 물론 블랙리스트가 공개될 때마다 이름이 올라와 있다며 3관왕이라 스스로 농을 치는 영화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인 남태우같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엄연히 박근혜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후퇴를 불러온 보수를 표방하는 극우정당이라는 공통점 외엔 서로가 서로에게 사이좋게 공천학살을 주고받은 전적이 있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추잡한 경선을 치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몇번이나 건넜다고 평가받았던 사이입니다.


즉, 이명박 정권 때는 화이트리스트였다가 박근혜 정권 때는 블랙리스트가 되거나 반대로 이명박 정권 때는 블랙리스트로 의심받았는데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화이트리스트가 되는 케이스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고보면 정말 골치아프기 그지 없게 됩니다.


일반 국민 입장에선 막장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만, 엄연히 두 세력은 집권 기반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고(지역이나 연령, 종교 등등), 언론을 장악해서 정권의 입맛에 부려먹으려 했지만 그 불이익을 주는 방식에도 다소 차이가 있기까지합니다. 누가 보기엔 패죽여버리고 싶은데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어 어찌하지 못하고, 누가 보기엔 별것도 아닌데도 화이트리스트에 올라 욕을 벅는 걸 볼 수밖에 없는 황당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겁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 그가 한 행보의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 그가 한 행보의 응보리스트가 되지는 못한다는 걸 명심해야 겠죠.


예를 들어봅시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한국의 노동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임시완은 그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에 출연했죠. 그런데 그 드라마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국의 노동정책을 홍보하는 공익광고에 출연했습니다. 그럼 임시완은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할까요, 화이트리스트에 올라야 할까요? 지금까지 드러난 기준으로 판단하면 어디에 올라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박미선처럼 지지는 보수정당을 지지한다 알려져 있음에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코멘트를 했다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케이스가 있질 않나, 그냥 정부행사라고 도와줬던 배우가 뜬금없이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질 않나. (정작 본인은 배우활동을 그 시점부터 쉬려고했다던데...) 아예 이승환처럼 어느 리스트에도 오르지 않아 주변인은 물론 본인까지 당혹하는 케이스도 발견되었죠.


자. 어떻습니까. 골치아프죠?


이는 시스템에서 '배제'가 가진 위험성과 '우대'의 보편성 때문에 불거진 문제입니다. 대통령(大統領)이라는 말은 특정 집단과 이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 제한과 지원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권한을 보다 넓고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수단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성질을 근원부터 끊어버리는 배제는 이러한 기본적인 질서를 망가뜨리는 악독한- 예. 탄핵사유에도 해당하는 범죄행위인 겁니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에 달리 접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결국 화이트리스트에 대해서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수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언론사들이 실명을 쉽게 까지 못하는 것도, 화이트리스트에 수록된 연예인들이 그 엄혹한 상황을 거쳤음에도 "그냥 했다", "정권하고는 상관이 없었다(즉,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아니었더라도 그냥 했을 거라는 식의)" 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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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9.16 11:09


 옙.


생각보다 많은- 이래봤자 포털 사이트에 싸지르는 댓글 정도의 수준입니다만, 김성주가 왜 주진우에게 소위 말하는 저격을 당했는지 모르겠다, 주진우가 완전히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식의 의견이 보여 당황했습니다. 백번 양보 해서 과했다 정도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말이죠. 여하튼 2012년 당시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당시엔 몰랐던 건지, 관심이 없었던 건지, 그 사이 김성주의 이미지가 정말 엄청나게 좋아진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혹자는 누나가 한 잘못을 동생에게 묻는 건 연좌제 아니냐 부당하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생각도 없습니다. 애초 지금 김성주가 비판받는 것은 김성주 본인이 한 말과 행보 때문이거든요.


단적으로 세 가지 가정만 해봅시다. 김성주가 예능활동만 했다면? 김성주가 연예인이었다면? 김성주가 MBC 소속의 아나운서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논란은 전혀 불거지지 않았을 겁니다.


파업 중에 예능 출연한다고 욕먹고, 게임한다고 욕먹는 게 아나운서입니다. 연예인 아닙니다. 프리 아나운서의 친정 복귀에 대해 흔히 밥그릇 싸움만으로 이해하려 하는데, 훨씬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단적으로 그럴 거면 뭐하러 공영방송으로 운영하고 공채로 뽑겠습니까. 그냥 외부 고용하고 말지. 그나마 노사 관계가 멀쩡했던 시절이면 또 모를까. 이 막장인 상황에.


또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읍시다.


2012년 김성주는 밥벌이가 힘들 정도였고, MBC로부터 괄시받아 그 때가 아니었다면 출연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김성주는 예능 진출을 위해 프리 선언한 1년 차에 이미 MBC에 예능으로 복귀했었고, 그 가운데엔 방송국 대표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명랑히어로의 진행을, 그리고 날고 기던 무릎팍 도사에서 게스트로 출연했었습니다.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았었기 때문에 보통 아나운서가 퇴사할 경우 자사에 복귀할 때까지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들이는데 그에 비하면 훨씬 일찍 복귀한 겁니다. 캐스터도 다른 곳도 아닌 MBC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MBC 본사의 제작 프로그램에서 진행과 나레이션도 담당했었고, 무엇보다 케이블 채널 등에 진출하여 성과를 거둔 덕에 방송국에서 밀어준다는 이야기를 듣던 이전에 비해 프로그램의 숫자는 적을지언정 밥벌이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방송 외적인 활동까지? 안정적이지 않아서 불안했다면 모를까 이런 틀려먹은 사실관계를 꺼내는 건 부당한 일입니다.


둘째. 떠날 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더니 지금와서 선배후배 들먹인다? 반대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김성주가 부당한 사유로 해직당했습니까? 엄연히 더 좋은 대우를 받겠다며 거대 기획사와 계약하여 고급차량을 줬니 받았느니하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히 돌 정도로 안 좋은 모습으로 처신하다 퇴사한 사람 아닙니까? 무릎팍 도사 쉴드가 이렇게 오래 가나요. 정말 해악인 방송입니다. 여하튼 그런 사람에게 과거에 동료였다는 이유만으로 소위 월급쟁이들이 뭘 해줘야 합니까? 아니 뭘 해줄 수 있기는 하나요? 가장 말도 되지 않는 지적이며, 이걸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감정론에 기댄 채 논리는 전개하지 않겠다는 소리입니다. 애초에 공기업만이 아니라 사기업 가운데 일부도 업무과 관련한 고도의 연관성을 가진 타사로의 전직에 대해 일정 햇수 기준으로 금하는 사칙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김성주가 당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하는 건 공영방송, 그리고 아나운서의 선발과 육성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소리입니다. 김성주의 자리와 소속 아나운서의 자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상상해보세요. 스포츠 선수와 친한 아나운서가 방송중에 그 선수에 대한 칭찬을 하며 경기 외적으로 그 입지를 넓혀주는 광경을.


그 이전에 퇴사 전 김성주를 부려먹던 사측이랑, 퇴사 이후 김성주를 대우하는 사측이랑 너무 편의적으로 분리하는 거 아닙니까? 김성주가 있을 때는 악당이었다가 김성주를 받을 땐 갑자기 개심이라도 했답니까? 그리고 나중에 김성주가 복귀해서 그 자리를 계속 앉아 있을 땐 노조는 아무 이야기 안하고 지금 와서 주진우가 들먹이는 거 보고만 있냐고요? 내부에서 계속 부대껴 온 당사자들이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을 겁니다. 애초에 2012 파업 때 노조가 이겼습니까? 깨지고 파업 핵심인사들은 줄 퇴사를 이은 상황이었는데 너는 왜 그 때 이야기를 안했냐고요? 소름돋기까지한 발상입니다. 모두가 퇴사해서 독립된 언론을 꾸릴 영웅이 되지 않았다고 비난받아야 합니까. 지금 블랙리스트가 순차로 계속 공개되고 있는데도 저런 말을 하는 건 그냥 사실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소리입니다.


셋째. 현직 동료들은 김성주를 미워한다? 여기에 대해선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죠. 그 시점을 2012 이전 시점으로 잡더라도 말입니다. 김성주는 방송국 차원에서 밀어주던 아나운서였고, 그 기회는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김성주는 그 기회와 혜택을 받고도 방송국을 떠난다는 선택을 하였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남아있는 자들에게 이런저런 상실감과 분노를 자아냅니다. 김성주 이래로 아나테이너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으니 그 파급은 상당히 컸죠.


혹자는 mbc에서의 혹사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거다라고 말합니다만, 말도 되지 않는 것이 교양도 아닌 예능의 출연 여부 정도는 아나운서가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1, 2년차 아나운서도 아니고. 애초에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다른 MC에 비해 대우받지 못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이러한 옹호측의 무수한 의견을 반박해버립니다. 요는 감정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겠다는 거죠. 하지만 이게 잘못인가요? 부당한가요? 그 부분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넷째. 아나운서는 공인입니다. 제가 이전에 연예인은 공인 아니다, 그들에겐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다, 저명성과 공공성을 구분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아나운서는 공인 맞습니다. 왜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혼동을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여기있다고 봅니다. 아나운서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왜 다른 연예인들 예능 프로 나오는데 걔들은 뭐라 안그러고 김성주한테만 그러냐, 김성주는 지금 프리 아니냐 라고 하는데 언젠가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예능인 가운데서도 부당하게 억압받은 이가 있고, 그 반대급부로 이득을 얻은 쪽이 있습니다. 이쪽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테고, 프리와 관련한 이야기는 다섯번째 항목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여하튼 아나운서는 언론인으로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할 일정한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아나운서는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이며, 실제로 우리는 아나운서가 재잘거리는 앵무새가 아니기 위해 언론에 기여하고 투신한 언론인 출신 아나운서, 앵커들을 알고 있습니다. 80년대 후반 이전까지 아나운서는 기자에 미치지 못하는 준언론인으로 취급받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단적으로 예능적인 색체가 훨씬 강한 전현무조차 비슷한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했었는지, 기억해보세요. kbs는 mbc에 비해 훨씬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 중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다섯째. 프리랜서, 소위 자유직 계약이라 하더라도 직업적 윤리는 계속해서 지켜져야 합니다. 이는 내부자이자 당사자였던 이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로, 이 의무와 책임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사회 시스템은 견제를 통한 균형을 통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하고 있는데, 보통 법적으로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만 이것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직업 윤리적으로 이를 엄격히 따라야 한다 봅니다. 단적으로 이러한 시스템을 무력화시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 악명높은 전관예우와 관피아, 언피아 등입니다. 즉, 김성주의 문제는 파업중의 대체고용과는 또 다른 궤의 문제라는 겁니다. 상당한 공공성을 가졌던 내부의 당사자가 이후 외부자로 시스템에 작용하는 것을 단순한 개인사업자의 활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겁니다. 애초에 공영방송이 파업중에 고용하는 것도 막장인 문제이긴 합니다만.


여섯째. 방송에는 아나운서의 영역이 별개로 존재합니다.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이 내부적으로 제작되고 기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활동하는 영역은 그들의 상징성과 전문성을 고려하여 따로 마련되고 있고,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이 가진 독립적 입지를 활용하여 언론인으로서의 중립과 책임을 수행하려 노력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공인으로 취급되고,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아, 일정 금액 이상의 대가나 선물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 공고한 영역에 사익이 개입되면 그 균형성은 붕괴될 우려가 높으니까. 각 방송국에서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언론인들을 괜히 육성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혹자는 김성주가 언론인으로서 이미지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mbc 재직 당시에도 예능으로 더 유명했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만, 이건 김성주가 언론인으로서 전혀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로 사실상 그를 모욕하는 말임과 동시에, 현재 김성주가 논란이 되고 있는 파트가 중계라는 아나운서의 영역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겁니다. 스포츠와 스포츠 중계는 국가를 통해 지원을 받기도 하는 공적인 영역입니다.


주진우의 코멘트에 대해 과했다고 여기는 사람 분명히 있을 겁니다. 실제로 패고 싶다는 말을 저런 장소에서 공공연히 말하는 건 그리 좋아보이지 않죠. 하지만 상당히 정치적인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사측은 예고된 파업 앞에 '또' 시용인원을 고용하기 위해 공시했고, 김민석pd말마따나 수천대 일 경쟁률이 3:1, 4:1이 되는데 오는 사람은 분명히 올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겁니다. 저 코멘트는 그러한 이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고, 동시에 내부의 인원들을 다잡기 위한 사기진작의 표현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장기적이 되면 또 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파업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겠죠.


개인적으로 진짜 하고픈 말은, 이전 정권의 사람들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며, 그들의 말을 받아쓰면서 나는 다르다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대충 정리가 되죠?


누가 돈을 많이 받니 누가 먼저 잘못을 했니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엄연히 김성주는 언론인이었고, 언론인 출신으로 내부 사정에 대해 일반인 이상의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아나운서의 영역이 비어있는 사이 들어오며, 이에 대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다'라고 답했고, 마치 파업이 mbc의 어려움과 위기인 것처럼 읽힐 수도 있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파업이 끝나면 내려오겠다'는 말까지 지키지 않았죠. 파업의 의의, 그리고 언론의 독립성과 자유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질렀던 겁니다. 지금 그리고 2012년의 공영방송의 파업은 절대로 노사갈등의 성질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개인이 무시되는 기업문화같은 것도 아니고요. 공적인물들의, 공적 이익을 위한, 공적 사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012년 mbc는 긴 파업을 거치며 온갖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파업이 흐지부지 끝나버리던 그 때, mbc는 기존의 구성원들은 밀어둔 채 mbc의 정통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선택을 몇몇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김성주였습니다. mbc의 이미지가 강하면서도 현재의 내부자는 아니고, 또 현직 구성원만큼 투쟁하지도 않으면서 파업측의 힘을 쫙쫙 빼버리는 효과적인 카드. 실제로 2012년 당시 mbc 파업 구성원은 김성주를 엄연히 사측으로 파악했고, 그의 복귀에 대해 잘못된 시점이라며 무수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상기의 '몰랐다', '파업이 끝나면...' 등등의 발언도 이러한 논란 이후 해명과정에서 나온 말이었고요. 애초 김성주에게만 이런 비판이 왜 쏟아질까요. 손범수 등의 kbs 출신 아나운서도 mbc 예능에 출연해왔었는데.


다시 한 번 상단의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김성주가 예능활동만 했습니까? 김성주가 연예인입니까? 김성주는 MBC 소속이 아니었습니까?


같은 방송국에서 나오니까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데, 예능국과 시사언론쪽은 주체부터가 다릅니다. 제작은 물론 섭외과 기획, 진행까지. 그래서 퇴사한 아나운서들이 자사의 예능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선 구성원들이 별 말을 안하는 겁니다. 물론 그조차 고려하여 박지윤의 경우처럼 파업중 방영이지만 그 전에 녹화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죠.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있던 이들이 종종 mbc예능에 출연할 수도 있었고, 계속해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던 무한도전은 여러 외압은 가했을지언정 폐지시키지는 못했던 겁니다. 뉴스쪽에 비하면 외부 인사나 자본이 훨씬 많이 개입하니까.


여하튼 오상진과 김성주는 똑같이 방송국에서 푸쉬를 받던 아나운서들이었고, 시간이 흘러 프리 선언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에 대한 인상은 전혀 다르죠. 파업참여 여부인가, 진짜 못견뎌서 나간 사람인가 따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가 더 회사를 올바른 방식으로 사랑했었느냐, 누가 더 언론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했느냐, 퇴직 이후 본인이 인기를 얻었던 영역과 언론인으로서의 영역을 어떻게 존중했느냐 등등의 사유가 고루 작용한 겁니다. 실제로 김국진이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오랜만의 mbc출연에 서럽게 우는 오상진을 두고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저런 친구가 MBC에 어울리는데...."


정리하겠습니다.


아나운서는 언론인이며,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공적인 존재입니다. 그들에겐 사회적으로 고도의 공공성과 책임이 요구되는데, 이는 그가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직업'윤리'라고 부르며, 우리 사회는 당사자이자 내부자였던 이들에 대해 보다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당장 청문회에서 논란이 되는 전관예우, 자문활동을 생각해보세요. 그들에게 부족한 게 전문성일까요,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직업윤리일까요? 외부자가 된 과거의 내부자가 외도적 방식으로 시스템에 작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정상적인 시스템이 아니게 되어 버립니다.


김성주는 자신의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언론의 자유라는 공적인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동료들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다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밥그릇 싸움이나 선후배 취급의 여부로 논할 문제가 아닌 책임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는 당사자이자 내부자였기 때문에 연예인과는 비교되지 않는 수준의 엄격한 태도를 요구받았었지만 사측의 첨병에 서서 나는 몰랐다며 그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애초에 이번 주진우 건으로 새삼 화제가 됐을 뿐 그는 이전부터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그 행보를 계속해서 비판받아왔습니다. (문득 기억 나는 것이 무릎팍 도사 시절 선배의 가는 길에 후배도 아닌 네가 왜 왔냐는 이야기를 들을까 무서웠다는 캡쳐를 두고, "아나운서 선후배 대접을 못받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다"라는 저격글까지 올라왔었죠.)


논란이 충분히 될 법했다는 겁니다. 2012년 흐지부지 끝났던 파업의 불씨가 다시 되살아나면서 재점화된 것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지금의 논란은 그런 의미에서 필연적입니다. 당시엔 증거가 없다고, 음모론이라고, 인기가 없어서, 재미가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저런 일이 벌어졌다며 뭉갰던 사건 하나하나에 슬슬 역풍이 부는 겁니다. mbc, 국정원, 청와대 각각의 블랙리스트는 그 단적인 예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어쩌면 곧 화이트 리스트까지 공개될지도 모르죠.


사족이지만, 김성주 건 정도면 상당히 명백하고, 2012년 당시 여론을 생각해보면 이런 논란이 벌어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본질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예능 쪽이 훨씬 크게 불타오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상황을 보고나니 그냥 불발탄으로 끝날 거란 생각이 커집니다. 애초에 개그맨은 기본적으로 외부자이기도 하거니와, 대중은 개그맨의 풍자에 그리 반색하지 않다보니 거리를 둔 영향도 있습니다. 또한 이전만 못해진 지금의 입지도 고려해야겠죠. 뭣보다 당사자가 변화하는 추세에 기민하게 잘 반응했고, 나름대로 알리바이라고 할 법한 것들도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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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8.25 22:30


 개그맨 박명수


개인에 대한 호오를 넘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하는데- 저는 박명수가 소위 말하는 의식있는 개그맨이며, 그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왔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대체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언젠가 박명수가 하는 개그가 소위 시사개그냐는 의견에 대해서도 말도 안되는 것이라며 반박했던 바 있기도 하고, 이후 슬럼프에 빠진 박명수에 대해 박하게 평가를 내린 적이 있어서 다소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물론 위 평가를 한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박명수가 박근혜 정권 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겠고, 두번째는 박명수가 꾸준히 소위 말하는 시사 개그를 해왔다는 건데... 거참...


두번째에 대해서는 이미 몇번이나 다룬 적이 있으니 간략하게만 언급하겠습니다. 첫째 박명수가 주체적으로 나서 대본을 구성한 적이 없고, 두번째로 구성상 박명수의 개그는 성대모사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으며, 세번째로 소위 말하는 그러한 연기에 적합한 행보를 보인 적도 없습니다. 박명수가 이제껏 했던 누군가들이 말하는 시사개그는 사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의도를 가진 무한도전이라는 플랫폼이 함께 해 줬기 때문인데 왜 무한도전이 아닌 개인 박명수가 저러한 평가의 온존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전의 포스트에서 했던 말처럼 "그럼 이정희+박근혜+뽀 등등등을 패러디한 김슬기나, 김정은+문재인을 동시에 패러디한 김민교, 안철수+조조+박정희+노무현을 동시에 표현했던 이상훈은 무슨 시사풍자개그의 화신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한 마디. 이승환이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가요계에서 가장 가열차게 정권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고 야권 인사를 지지했던 인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반대로 연극배우 손숙과 함께 박명수는 문재인 당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사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이후 관련하여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오직 이것만이 저러한 평가의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이 되나요? 글쎄요. 정작 해당 리스트의 기준 자체가 제3자가 보기에도 너무 황당하고 제각각인 기준을 내세워서 엄연히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될 겁니다.


물론 제가 하는 말을 보시면 알겠지만 박명수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세간의 평가가 무한도전이라는 렌즈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부풀려져 있으며, 이후 찾아올 역풍에 대해 그만큼이나 취약해지는 상황으로 보여집니다. 저야 이후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그래. 박명수는 2011년 그렇게 행동했었고, 2012년 그랬었지"라면서 기억하고 넘어가지만, 이후 mbc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여러 자료가 흘러나올테고, 이 과정에서 박명수 본인이 원치않게 이용된 정황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예상되는 상황인데 그것이 그대로 비수가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요.


박명수 개인은 그저 개인으로서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한 정도밖에 없는데, 그의 행보는 어느 순간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상황이 되었고, 어떠한 측면에서 그는 변질된 시스템에 의해 혜택을 본 측면이 있으며, 그 주변 인물들은 그로 인한 피해를 받았습니다. 그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단언하기 힘든 상황에서 펼쳐지게 된 이러한 대비는 결과적으로 그 개인에 대한 책임 추궁 그 이상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는 거죠.


오늘의 글은 참 갈피를 잡기가 힘듭니다.

관습같은 게 있는데 박명수는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예컨데 대상급 인사는 그 해 상을 못받으면 못받았지 최우수상은 어지간한 사유가 없으면 안주는데 박명수는... 그래서 박명수의 대상이 휘발성이라고 놀림받기도 합니다. 대놓고 무도에서 김태호가 "그거 논란됐잖아요."라고 말할 정도였던 2012년의 대상.


자. 먼저 왜 박명수에 대해 이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황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지금이야 마무리나 잘 하라는 평을 듣는 무한도전이지만, 2011년 내지 2012년엔 전혀 달랐습니다. 사실상 몇번이나 절정부를 갱신하며 문자그대로 대한민국 대표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상황이었습니다. 덩치는 둘째치더라도 프로그램의 질에서도 차원을 달리했죠.


그러나 당대 연예대상에서 유재석은 대상을 놓치고 맙니다. 사실상 당시 무한도전을 빼놓고서는 mbc 예능을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당시 대상을 받았던 것은 바로 프로그램 나가수였습니다. 시상식 며칠 전 급박하게 바뀌어 버린 기준으로 인해 유재석은 대상을 놓치고 PD상과 최우수상을 받게 됩니다. 대상 수상 자체가 일종의 투자 개념도 포함되어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나가수가 아무리 잘나가도 당시의 유재석보다 미래가 밝다고 볼 여지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거기다 나가수는 임재범 하차, 이소라 하차, 옥주현 합류 이후 등등의 기점마다 명백히 하락세가 거세졌습니다. 그리고 온갖 논란을 앓으며 그 화제성 역시 눈에 띄게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죠. 애초에 예능이 맞긴 하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명백히 눈에 뻔히 보이도록 대상을 떠넘겨 버리니 논란이 되었던 겁니다.


당시엔 나가수 정도면 상을 주긴 줘야 되는데 마땅히 줄 상이 없어 대상을 안겨 주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나돌았지만, 사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베스트 프로그램상이 후에 신설될 정도로 대상과 프로그램상은 명백히 그 성질이 다를 뿐더러, 애초에 mbc의 상은 권위고 뭐고 없다는 비꼼을 들을 정도로 공동수상을 남발해왔었으니까요.


이 와중 돌았던 이야기가 바로 무한도전이 정권에 찍혀서 박대받는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유재석과 함께 했던 예능국 PD들은 정권의 비민주성과 과 MBC 장악에 대해 부당하다 이야기해왔고, 그의 아내는 다름아닌 MBC 소속의 아나운서였으니 타겟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죠. 우연일까요. 그 해 유재석은 kbs에서도 대상을 놓치는데, 당대 유력한 경쟁자였던 강호동이 탈세논란을 앓으며 사실상 단일 후보 정도의 위용을 보여주던 참에 시상식 당일 기준을 뒤바꾸어 1박2일 팀에 대상을 안겨줘 버립니다. kbs는 사소한 논란을 앓아도 대상급에서는 철저히 배제시킨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리고 2012년이 되었습니다. MBC는 기나긴 파업을 거쳤고, 결국 지도부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MBC는 방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한도전이 좋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 해 결국 가장 화제가 된 것도 결국 무한도전의 행보 하나하나였을 정도로요. 그리고 그 해의 대상을 박명수가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2012년이 박명수에게 최악의 해가 되는 기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박명수는 파업기간 내내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첫번째는 MBC의 파업 기간 동안 그 틈을 메꾸기 위해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어댔고, 두번째는 그러면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했으며, 세번째로 지금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동료들이 언론정상화를 외치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종편에 그대로 진출하여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씩 따져보죠. 파업기간중 파업을 함께 하지 않은 동료에 대한 시선.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전에 박명수가 동료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또 따져봐야 합니다. 박명수는 스스로를 MBC의 아들이라고 칭했고, 실제로 MBC를 통해 데뷔했으며, 십수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전속에 가깝게 활동하기도 했지만, 사실 MBC의 직원은 아니니까요. 과연 MBC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하는 이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고, 또 그들의 의사표현 과정을 왜곡하는데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일개 연예인인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볼 수 도 있을 겁니다. 김민석 PD 말마따나 수백대 일 경쟁률에서 2:1, 3:1로 바뀌었는데 거기에 끼어들지 않을 사람이 또 얼마나 되겠냐는 말처럼 말이죠.


하지만 과연 이게 감정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요? 유재석은 반등점을 짚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놀러와가 강제로 종료되고 박명수와도 함께 했던 놀러와 PD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퇴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해 박명수의 대상수상보다 김원희의 불참과 김나영의 눈물, 최우수상을 받은 박미선의 일침이 더욱 무게감 있게 다뤄졌던 것만 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거두절미하겠습니다. 이 시기 박명수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하나라도 제대로 대기가 힘들 겁니다. 특히 대상의 사유로 꼽혔던 나가수에서는 쫓겨났고,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솔직히 노골적으로 말해 얼굴만 비추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무게감 있는 행보랍시고 진출한 종편과 케이블에서조차 뭐 하나 제대로 된 성과를 못냈고요. 박명수의 대상 수상에 대해 가장 많이 비판받았던 것도 자사의 프로그램에서 사실상 쫓겨났던 박명수에게 상을 주는 게 맞긴 맞냐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종편 진출. 2012년의 종편은 지금의 종편과 전혀 이미지가 달랐습니다. 지금이야 공중파에도 지지않은 콘텐츠를 갖고 있지만, 과연 공중파가 이전과 같이 힘을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지금 종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당대 종편은 그 낮은 기대치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결국 그들이 채택하는 것은 공중파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오면서 묵직한 인물들을 출연시키는 것이었는데, 당시 박명수 정도의 덩치를 가졌으면서도 공중파 황금 시간대에 잘 나가는 출연자가 종편에 진출하는 것은 손에 꼽힐 정도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과거 무한도전의 한 특집에서 종편으로 인한 방송 생태계 혼란을 비판하는 것에 출연하던 출연진이었고요. 당시 종편은 케이블만도 못한 등급으로 취급받고 있었는데 엄연히 대한민국 대표 프로그램의 구성원이 바로 종편에 바로 출연해 버렸으니...


최근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더 정의로운 사람에 대해서 더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면한 현실에 대해 자신이 느낀 책임을 부정하는 이들에겐 불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은 또 어느 정도의 선까지 허용되고 금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명수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쨌든 소위 말하는 펌프를 받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고, 이후 겉잡을 수 없는 하락세를 그렸습니다. 동시에 그 자신의 이미지도, 무한도전이라는 메가 히트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면서 꾸준히 타개해낼 수 있는 환경속에서도 계속해서 망가져갔고요. 그리고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겐 사실상 루비콘강을 건너는 수준의 상황까지 닥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MBC의 앞일과도 크게 닮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사장진이 있고, 그리고 구 여권 세력이 앉힌 이들이 눈에 뜨이니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제작진이 이선에 물러난 사이 새로이 들어온 이들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현직에 복귀한 이들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허용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또 그 정도를 벗어난 걸까요. 박명수의 지금의 모습은 앞으로의 MBC의 모습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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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8.24 07:14


 역시


재밌네요. 오랜만에 봤는데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1999년 제작된 이 드라마는 총 2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5.16 쿠데타 이후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당대에도, 그리고 지금도 화제가 되는 '거지'가 메인인 작품이었습니다. 춘삼과 연지 두 사람의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고 이윽고 이어지는 관계는 당대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오늘은 이 드라마를 시청함에 있어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이야기하고, 이 작품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천해 보려 합니다.


먼저 이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주의해야 하는 사안을 이야기해보죠, 왕초는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장군의 아들 시리즈의 아류(... 라고까지 말하면 다소 박하기는 합니다만), 그 갈래에서 뻗어져 나온 콘텐츠입니다. 실제로 장군의 아들-왕초-야인시대를 보다보면 단순히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정도를 넘어 공통의 정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언급한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소리입니다. 주요 인물 가운데 몇몇은 아예 창작된 캐릭터일뿐더러, 실제 현실의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도 괴리가 너무 심해 당대에도 화제와 논란이 되기도 했었으니까요. 특히 일부 캐릭터에 대한 미화가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예컨데 김춘삼의 경우 작중에선 우직한 거지로 도둑질도 거짓동냥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직한 성격입니다만, 실제 인물에 대해선 이런저런 법적인 도덕적인 문제가 많았다 이야기되고 있죠. 뭐. 이것까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춘삼은 작품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현실과 대비되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에서도 문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행적 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성격과 마지막의 모습까지도 알려진 정치깡패 이정재를 묘하게 의리있고 대중을 무섭게 여기는 식견있는 인물로 그린 점, 친일과 공산주의 정당에 소속되었다 결국 우파 쪽으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결국 반란까지 일으키는 박정희를 이상적 성격의 왕초와 동일시하는 대사까지 나오니까요. 지금보면 아찔하죠.


(물론 드라마의 방영시기가 1999년이며, IMF 이후 소위 말하는 박정희 향수가 일어났던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이야 친일행적과 남로당 전력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집권 과정에서의 불법성, 대통령 집권 이후의 공만큼 과가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만, 그땐 그렇지 못했죠. 실제로 박정희 코스프레를 하는 정치인이 나타나는가하면, 아예 그의 딸이 정계에 진출할 정도였...)


또한 등장인물의 가치관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역사상 엄연히 존재했던 구악들과의 동거는 드라마에서도 다루어지는데, 주인공 일행이 이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금 말하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일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컨데 그 시절(일제강점기) 친일파 아니면 거지라는 말은 당사자인 거지가 진짜 친일파에게 하는 말이기에 작중에서는 이론의 여지없는 상당히 무게감 있는 말입니다만, 이것을 시대도 사회적인 위치도 다른 제 3자가 인용한다면 전혀 별개의 의미로 해석되어 버릴 수도 있죠.


유투브에서 왕초 검색하면 고화질로 전편 mbc클래식 채널에 올라와 있습니다. 에피소드가 뚝뚝 끊겨서 조금 귀찮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작품을 한 번쯤 추천해 보려 합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민초를 다뤘습니다. 상단의 친일파 아니면 거지라는 표현이나, 거지는 밥 굶고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거지같으면 거지다라는 말은 본 작품의 성질을 잘 설명해 줍니다. 결국 우리네 뿌리의 삶을 다루었기에, 그렇게도 어려웠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또 거지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로 고난의 과정에서 거지로 사는 장면을 삽입한 드라마는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만,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지가 메인 콘텐츠가 되어 진행되는 작품은 정말로 드물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본 작에서의 배우들의 모습과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차인표의 경우 특유의 껄렁거리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연기를 상당히 잘 해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의 인생캐릭터에 김춘삼을 꼽고 싶을 정도로요. 멸치가 별명일 정도로 비쩍 마른 사람치곤 상당히 몸이 좋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그거야 뭐 창작의 허용이라고 보고 넘어갑시다.


홍경인은 과거 직공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동운동가를 연기했었는데, 본작에선 멋모르고 우익단체에 소속되어 빨갱이 때려잡겠다고 설치는 철부지를 역할도 소화했습니다. 물론 일부 에피소드기는 합니다만, 둘 다 무섭게 잘 어울릴 정도로 연기력이 탁월합니다. 이야기의 중심도 아닌 지점에서 단독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데 저 사람이 저렇게 연기를 잘했었지라면서 다시 떠올렸습니다.


송윤아도 훌륭합니다. 어찌보자면 정형이라 할 수 있는 순정파 캐릭터라는 점은 왕초도 마찬가지지만, 춘삼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이라는 비교적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윤아가 연기한 연지는 당대 시대상과 여성 캐릭터라는 한계가 고루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매력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여기엔 전적으로 그녀의 연기력이 작용하였습니다. 박보살의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 쌀쌀맞게 연기하는 장면에서 김자옥의 연기의 질을 따라가는데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까마귀 역을 연기한 이혜영은 사실상 유일한 여자 거지라 예쁜 옷을 입지 못해 속상했다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실제로 출산씬 이후 처음으로 여성 일상복을 입은 이후 드러나는 실루엣을 보면 왜 그렇게 속상해 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요. 하지만 그러한 점을 떠나보면, 그녀가 연기한 까마귀는 너무나도 본작에서 중요하게 기능했고, 또한 급변하는 시대상에 다양하게 맞춰 연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산 이후 사실상 캐릭터가 완성되어 종료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요.


허준호는 개인적으로 본작의 최고 캐릭터인 발가락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기했습니다. 어느 순간 악역인데 실질적인 위협은 더 이상 끼치지 못한다는 애매한 상황에 닥치는 데도 불구하고, 특유의 비주얼과 배우의 호연이 어울리며 매씬에서- 심지어 굴욕적으로 굴복하는 순간에조차 몰입하게 만듭니다.


맨발을 연기한 윤태영은 이 당시 이미지때문에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혼을 실은 바보 연기로 사실상 극의 웃음을 주도했으며, 날파리역의 홍경인, 도끼 역의 윤용현 등이야 개그 캐릭터적 성향이 강하니 콤비가 잘 맞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전혀 의외인 캐릭터들과도 이렇게 저렇게 엮이는 걸 보면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이외에도 앵무새 역의 김세준, 김두한 역을 맡은 이훈, 이정재 역을 연기한 정준호, 쌍칼 역의 박준규(예. 야인시대 전에 여기서도 쌍칼을 연기했었습니다) 등도 충분히 극을 긴장감있게 몰아가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포인트는 바로 김두한 입니다. 야인시대건 왕초건 결국 이 작품은 90년작 장군의 아들의 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작품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두한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작품의 방향을 결정짓는 매우 중대한 요소였습니다. 김두한이 주인공이라면 장군의 아들과 어떻게 차별화해야 하는지가 중점이 될 것이고, 김두한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어떻게 김두한을 다루어야 독립된 주인공의 정체성도 지키면서 동시에 역사에도 기록된 김두한을 충실하게 묘사할 수 있느냐라는 고민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죠.


이 작품은 언터처블한 존재로 다루어진 김두한의 역사상 부정적인 면을 어느 정도 다루어 내는 것을 통해 그를 극복해 내려 했습니다. 예컨데 친일로 의심되는 단체에 몸을 담았다거나, 빨갱이 때려 잡는다면서 직공들을 괴롭힌다거나, 정치에 입문하면서 높으신 분들의 일종의 해결사 노릇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장면을 넣어놓습니다. 한낱 거지인 춘삼도 아닌 것 같다며 빠져나오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급박한 상황에서 춘삼의 조언을 듣기까지 하는 장면이 나오니 김두한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팬들은 이 왕초라는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김두한이 매력이 없다거나 하다는 소리는 결코 아닙니다. 악역으로 나오거나 그 이하의 비중으로 나오는 캐릭터들과 나란히 비교하기 곤란할 정도의 보정은 주어지죠. 단순하고 욱하는 면은 있어도 어쨌든 근본은 선한 존재로 그려질 뿐더러, 시라소니와의 대결에서 버거워한 면을 제외하면 사실상 1대1 싸움에서 최강자로 그려집니다. 이정재와 1대1로 싸워서 이긴 김춘삼이 나보다 주먹센 사람은 처음봤다며 김두한을 띄우기 까지 합니다. 아니, 애초에 김두한이 본작에서 1대1 싸움을 가장 많이 했을 겁니다. 야인시대처럼 싸움이 메인 콘텐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또한 그가 부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유도 제공해 줍니다.  첫번째는 잘 몰라서, 두 번째는 강요를 이겨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닥쳐서, 셋째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서.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춘삼의 친구로 남습니다. 그도 춘삼도 어쨌든 서로에게 화내고 서운하다고 말해도 함께 움막생활을 했던 시기를 잊지 않고 서로를 단순한 친구 그 이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작중 몇번이고 강조되는 대사에서도 나옵니다.





뭐, 이러한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한 번 추천해 봅니다. 야인시대나 장군의 아들을 재밌게 본 이들에겐 일종의 외전과 같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줄 겁니다. 김세준, 박준규, 최상학 등 왕초에서 등장했던 인물들 중 적잖은 수가 야인시대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걸 찾는 재미도 있겠죠.


본 작의 알파와 오메가는 결국 로맨스일 겁니다. 춘삼과 연지의 로맨스가 바탕이 되어, 이런 저런 로맨스가 추가될 듯 말듯 하는데- 연장방송으로 인한 혼란을 고려해도, 예. 역시 재밌는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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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8.19 19:40


 ...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붙였습니다만, 사실 1999년작 mbc드라마 왕초는 사실 고증과는 담 쌓은 작품에 해당합니다. 주요 인물들의 실제 행적이 사실과 다른 거야 그렇다치더라도, 등장인물의 나잇대가 아예 십수년 단위로 맞지 않는 건 꽤나 유명한 이야기죠. 실제로 이 드라마가 시작하기 직전 각색을 했다고 사전에 공지하기도 합니다.


기황후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터져나온, 실존인물과 창작물 사이에 대한 괴리는 지금 군함도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구체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존중은 필요하다는 최소한의 입장에서부터, 오락을 위한 창작자의 주관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개입되면 곤란한 소재가 존재한다는 입장, 그와 반대로 창작의 자유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사실관계는 왜곡해도 무방하다는 입장, 심지어는 아예 창작에 있어 성역은 없으며 어떠한 것을 다루어도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사실은 사실 그 자체로 다루어야 한다 보는 쪽까지 있습니다.


드라마 왕초는 어떠한 입장일까요. '창작의 자유를 위해선 구체적 사실관계를 어느 정도 왜곡해도 된다'는 세 번째 입장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따지고 보면, 네 번째 입장 '작품은 작품, 사실은 사실'이라는 쪽에 해당합니다. 이 드라마는 미화가 배제될 수 없는 구조인 김춘삼의 자서전, 그리고 사실상 구체적인 사실과는 거리가 먼 영화 거지왕 김춘삼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애초 객관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는 거죠.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김춘삼은 공적인 인물이 아니었으니 그와 그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다룰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이야기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역사적인 비중으로 따지자면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므로, 구체적인 검증과 기록의 대상이 되지 못한 거죠.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또 다른 유명한 작품과 상당 부분 맞닿습니다. 기실 왕초가 방영할 당시 왕초는 그 작품의 서민적, 언더독 버전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요. 예. 장군의 아들 말입니다.


당대에도 왕초의 진실이라는 식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고, 조폭미화물이 아니라더니 거지미화물이 아니더냐는 식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거두절미. 왕초의 주인공은 차인표가 연기한 김춘삼입니다만, 그 시대적 배경상 '김두한'이 등장합니다. 본 작에선 이훈이 연기하죠.


김두한. 비중만 따지자면 조연에 해당하고, 실질적으로 어느 시점이 되면 이야기의 진행에조차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을 결코 가볍게 다룰 수가 없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유명한 주먹패 출신으로 훗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었고, 동시에 대한민국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장군의 아들의 주인공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실존적인 무게감이 이렇게나 크면서도 동시에 창작과 윤색의 덧칠을 이만큼이나 더해져왔었으니 다루기가 쉽지 않겠죠.


실제로 90년대초 장군의 아들 시리즈가 제작되었고, 그 아류작들-그러니까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주먹패들의 이야기-이 몇이나 나왔으면서도 결국 2002년 야인시대로 메가히트를 기록하게 만들었던 게 바로 이 '김두한'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측면을 비틀어서 나온 것이 바로 김춘삼의 이야기입니다. 김두한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많이 다루어졌고, 동시에 다루기 까다로우니, 상대적으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인물의 새로운 측면을 부각하여 다루어내는 것이죠. 김두한이라는 히트카드는 이야기의 흥미를 돋구는 선에서 그치게 하고 이전의 창작물에서는 다루지 않던 김두한의 비교적 어두운 측면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김춘삼에겐 일종의 역보정이 가해졌고, 결과적으로 김춘삼에 대해서 미화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왕초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오래 기억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재작년 어게인 왕초라는 이름으로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이 다시 모여 재연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죠. ...어게인은 정식 프로그램으로 승격되지는 못했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이 드라마, 사실 꽤 재밌습니다. 당대 '은실이'를 상대로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로 이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인기도 괜찮게 끌었고요.


왕초의 강점은 소재입니다. 거지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메인 콘텐츠인 경우가 과연 앞으로 몇번이나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의 희소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또한 결국 역사적 인물이 되어 버린 김두한을 다룬 야인시대 등이 구체적 사실로 인해 나름의 한계선이 정해졌던 점에 비해, 왕초는 사실상 완전히 판타지의 영역에서 다루어졌지만, 동시에 그러한 콘텐츠들이 지향했던 재미도 나름대로 흥미롭게 풀어냈거든요.


연기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일단 조역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발가락의 허준호는 비굴하면서도 교활하고 야심찬 캐릭터를 너무나 훌륭하게 소화했고, 홍경인이 연기한 날파리는 작품의 주제를 충실하게 전달하며 심지어 1인 단독으로 극을 끌고가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앵무새 역의 김세준은 극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맨발의 윤태영의 개그 연기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류덕환이 연기한 쥐똥은 될성부를 떡잎은 애초부터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주고요.


차인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 드라마에서의 김춘삼은 차인표의 인생 캐릭터입니다. 묘하게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해 방황하면서도 묘하게 선한 면모를 보이는 것이 저 허우대 멀쩡한 사람에게 저렇게 어울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잠깐잠깐 뜨끔하는 연기를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조차 작중에 묘사된 어리버리한 김춘삼이라는 캐릭터에 튀지 않는다는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아무리 현실의 인물이 그러하더라도, 그리고 일부의 요소를 차용해 오더라도 만들어진 캐릭터와 구현된 이야기는 그것과 별개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사실 저는 그리 불편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김춘삼이 훨씬 저명성 있고 공공성 있는 인물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결국 근본은 그겁니다. 만드는 사람은 이건 현실에서 몇몇 요소를 차용한 별개의 창작물이라고 명백히 밝혀야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작품은 작품 현실은 현실이라 명백히 구분하고 작품을 보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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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흔히


지금의 고전은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건 '재미가 있어 후대에 전해졌다'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여기에 동의할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최소한 후대에 기억될 정도로 적잖은 이들이 공감하는 당대의 테마를 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괴담은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자극해야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자연히 괴담은 '공감'을 가장 먼저 앞세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런만큼 불특정의 사람들이 두루 체감할 수 있는 소재나 교훈, 금기나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죠.


예컨데 20세기까지만해도 크립티드, 즉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에 대한 괴담이 여기저기 퍼져 있었습니다. 인간의 얼굴이 달린 개라던가, 백두산 천지의 괴물이라던가, 흡혈 박쥐같은 경우는 한국의 유명한 괴생명체에 대한 괴담이죠. 사실 지금은 해외의 유명한 모스맨이나 네시정도가 전해져오고 있지만, 당장 한국에서도 이러한 괴담이 전해져 왔죠.


이들은 각기 당시를 상징하는 정서를 담고 있었습니다. 예컨데 인간의 얼굴이 달린 개는 유기견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던 상황에서 이러한 반려동물 역시 생명의 하나이며, 그들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괴담의 하나로 풀어내어 이야기적인 교훈을 전달하려 한 것입니다. 백두산 천지의 괴물은 서서히 해동되어 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그들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을 상징하고 있었고요. 흡혈박쥐는 드라큘라나 배트맨 등으로 친숙해진 박쥐라는 소재에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말라리아와 일본뇌염모기의 성향이 뒤섞여 만들어진 괴담일 테고요.


한국의 괴담 중 상당수가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이 문화강국이고 온갖 괴담이 넘쳐나는 영향도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일본과 한국의 서로 상통하는 시대상과 정서가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이겠죠. ...물론 흔히 이야기하는 세계화로 인해 어지간히 완성도 있는 괴담은 유래가 어디간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띄게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지금에 와선 흘러간 괴담 정도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겠죠. 첫번째로 이야기의 허구성이 지적되어 이야기의 본질 자체가 분석되어 버린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디지털 합성 시스템의 보편화로 인해 이러한 괴담의 근간이 되어주어야 할 기초자료가 이전에 비해 쏟아지게 되면서 전반적인 신뢰성이 저하된 탓이 컸습니다. 세번째는 유행과 의견교환이 너무나 손쉬워진 시점이 되어서 이러한 괴담 자체의 생존력이 크게 줄어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반려동물의 유기, 북한과의 관계, 모기로 인한 질병 등등이 보다 구체적인 현실로 변화하였고, 그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이 이루어지며 괴담 자체의 존재의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굳이 후대에 전해질 정서를 괴담으로서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괴담들은 계속해서 탄생하고 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변화한 시대상과 정서를 담아 그 형태를 바꾸어 존속하고 있는 것이죠.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풀고 받은 음료수를 마셨더니 장기를 도둑맞았다거나, 모르는 이성과 하룻밤 상대를 했는데 거울에 'Welcome to the AIDS world'라고 적혀 있었다거나, 1등을 못해 자살한 학생의 유령이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첫번째 사례는 사실 과거엔 괴담이라기보단 미담의 구성에 훨씬 부합되는 이야기적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타인에게 베푼 친절이 은혜로 돌아온다는 것을요. (실제로 이러한 구성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 괴담처럼 말이죠.) 하지만 반대로 이것은 모르는 타인을 이제는 함부로 믿을 수 없는 사회상이 되면서, 이야기적인 틀은 동일하지만 정 반대의 결과가 내려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두번째 괴담은 이전엔 귀신, 괴물, 호환, 질병과 같은 요소들이 구체화되어 괴담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면, 이젠 실체를 가진 인간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존재이며, 그러한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 전혀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순간의 쾌락으로 인해 불행이 찾아온다는 이야기적 구조는 지극히 오래된 것입니다만 소재가 현대적으로 바뀐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괴담은 변하지 않는 시대상을 비추어주는 괴담입니다. 교육에 대한 개선과 학생다운 삶을 이야기해왔지만, 정작 바뀐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mbc는 hd급으로 옛 방송들을 공개했습니다만 한국은 제외된 상황입니다. 반대로 sbs는 공개 자체는 전체입니다만 단순 녹화분이어서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링크-


처럼 괴담은 단순히 시대상을 담고 있는 것을 넘어, 당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어떠한 정서를 담고 있고, 어떠한 금기와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흔히 대중문화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90년대 말에 만들어진 이 작품이, 방영과 함께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종영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이 프로그램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토요미스테리극장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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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단순히


날씨만 따지자면)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그 말인즉 공포 콘텐츠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것이죠.


그간 제가 하겠다하겠다 말을 하면서 해오지 못한 몇몇 기획들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3~4년 전처럼 블로그에 열광적으로 매달릴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 가장 큽니다. 현실적인 시간이라던가, 물리적인 거리라던가하는 문제들 말이죠. 내 인생과 만화 이야기만 끝마치고 슬슬 블로그를 접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진지하게 했을 정도로- 사실 블로그가 정체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몇몇 글만큼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켠에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 시작할 토요미스테리 극장에 대한 리뷰이죠. 실제로 언젠가 이와 관련한 글을 쓰기도 했을 겁니다. (....아닌가, 생각만 하고 말았나???)


 워낙 화제가 되었던 프로다보니 후에 여러 차례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기도 했고, 지금은 vod로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링크 지금 접하는 세대가 나와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이 시점에 와서 근 20년된 방송을 리뷰하는 것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실 분이 적지 않을 거라 봅니다. 실제로 저도 우연히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접하지 않았다면 굳이 찾아봐가며 다시 리뷰하겠다는 생각을 할 생각을 갖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장 작품에 대한 리뷰를 결심한 데에는 현 시점에서의 토요미스테리극장에 대한 리뷰가, 우리가 왜 괴담에 열광하고 기억하는지에 대한 것과 맞닿아있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걸 크게 세 가지로 꼽으려고 합니다.


첫번째로 다룰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소재입니다.


20년. 아이가 태어나서 성년이 되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한 세대라고 할 수 있겠죠. 정서와 환경이 급변하는 21세기의 변화는 체감상 지난 세기의 변화 그 이상의 파급을 일으켰습니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일도 그 땐 그렇지 못했고, 당시엔 너무 흔한 것들도 지금은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시절의 이야기와 학생운동, 집장촌이 배경이 된 에피소드들이 본편에서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2017년 직전 시점에선 미디어에서 비교적 보기 힘든 소재들이었죠. 물론 이것이 토요미스테리극장이 그만큼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다거나 많은 소재를 끌어모았다거나, 반대로 지금의 창작자들이 나태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다루기 힘들어진 소재인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위 세 소재는 80년대 중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여러 매체에서 인기를 끌었었기 때문입니다. 토요미스테리극장의 에피소드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재연극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그런만큼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을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영화 등은 그러한 시대상을 기민하게 반영하는 콘텐츠다보니 토요미스테리극장에서 다루었던 소재나 배경은 지양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여러 사회적인 변화로 인해 해당 소재들은 다시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학생운동, 일제강점기의 인사들을 다룬 콘텐츠들이 다시금 문화콘텐츠의 일선에 서는 상황이 되었죠. 이제 우리는 당시의 토요미스테리극장이 공감을 앞세워 안방을 찾아왔던 것을 재정의할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시청자가 신선함과 흥미를 쫓아 인터넷의 토요미스테리극장의 vod를 찾는 거죠.


재연의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이지만 진행자 전무송의 비중이 3할은 된다고 봅니다. 그 정도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잘 잡았습니다만, 정작 스튜디오의 진행분의 역량은 재연극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선 재방할 때 몽땅 잘려나가곤 합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시절의 괴담은 사실 지금 시점에선 사실상 사멸에 가까운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옛날 옛적에'라는 코드에선 조선시대에 밀려버리고, '잔혹함'이라는 코드에선 현대의 엽기범죄에 밀려버렸으며, '근현대'라는 소재 자체는 이상하리만치 현 시점에서 다루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여러 이념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에 크게 제한되어 버립니다. 애초에 식민지 시절이기 때문에 기록 자체가 이전 이후 세대에 비해 적을 수 밖에 없는데 이런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쳐져버립니다. 결국 소재로 삼을 수 있는 범주 자체가 작아진 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는 말처럼 일제강점기에도 사람들은 살아왔고, 그 사이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체감하지 못하는 것들이 일종의 괴담으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당대의 시대상을 담고서 말이죠. 좋았던 기억도, 좋지못한 기억도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것처럼 당시를 좋고 나쁜 시대상 역시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이어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소재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는 일입니다. 지금처럼 금기에 가깝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도 그렇게까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이러한 소재들은 변화한 시대상을 인식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보다 복합적이고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괴담에 열광하는 첫번째 이유일 겁니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변화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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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4.10 19:41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입니다. 웃음과 포멧이 적절하게 절 어우러진, 가장 균형미 있는 예능일 겁니다. 그와 함께 기대했던 시간탐험대가 외적인 논란에 더불어 내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세번째 시즌이 전개되는 크라임씬의 행보는 성공적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겁니다.


세번째 시즌의 출연진은 시즌1부터 개근하는 박지윤, 시즌2 고정출연진이었던 장진, 시즌2 게스트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김지훈의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고, 연기와 예능실력이 입증된 정은지, 그리고 최근 여기저기 자주 얼굴을 비추는 양세형이 새로 멤버로 추가되었습니다.


이제는 명실공히 jtbc의 대표예능이 된 크라임씬이기에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고, 실제로 저도 그러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 블로그에서 크라임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었고, 각 에피소드별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도 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중심 소재에 차이가 있다보니 그것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네요. 언젠가 날을 잡아서 크라임씬 개별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욕심도 있습니다만.


여하튼 크라임씬은 시즌이 진행되면서 때론 발전하는 면모를 보였고, 때론 퇴보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시즌1이 구성적으로는 더 완성도가 높다고 보지만, 연출이나 출연진간의 호흡은 시즌2가 나았기 때문에 시즌3는 이러한 양자의 장점을 고루 이어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시점에선 사실상 제작준비가 끝이났고, 촬영만하면 되는 상황이니 다소 늦은 기대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1년에 한 시즌씩 나와도 충족감을 주는 예능입니다. 2016년은 건너뛰었지만.


크라임씬 시즌3가 보여주어야하는 미덕은 무엇일까요.


첫번째. 지니어스 시리즈의 색을 벗어나는 것. 크라임씬은 최초 방영할 당시 두뇌예능의 포멧을 어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선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tvn의 지니어스 시리즈의 출연진을 땡겨와 일정 이미지를 차용했죠. 실제로 이를 통해 출연한 홍진호가 시즌1에서 사실상 플레이의 정석을 보여주며 성공하였기 때문에 마냥 실패한 시도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니어스 시리즈와 크라임씬은 구성도, 재미를 전달하는 포인트도 전혀 다른 별개의 예능이었습니다. 시즌1에서 홍진호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은, 그가 지니어스 시리즈의 우승자로서의 면모를 크라임씬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크라임씬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컨데 홍진호와 마찬가지로 지니어스 시리즈 이후 크라임씬에 출연한 장동민의 경우, 전자에서는 키맨의 역할을 하며 톡톡히 활약했지만, 정작 크라임씬에서는 희극배우라는 입체적인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협소한 방면으로만 활약하여 여러 차례 한계를 드러내보였습니다. 이는 그가 프로그램을 지니어스 식의 마피아 게임으로 접근했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프로그램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소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크라임씬은 지니어스 땡겨오기로 성공에서 어느 정도의 덕을 보기는 하였으나, 이젠 이러한 차용은 프로그램 자체의 한계를 조성할 뿐더러,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지니어스 시리즈가 더 이상 방영되지 않고 있기도 하고, 그와 관련한 출연진들이 메인 출연진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홍진호의 출연불발은 안타까운 요소입니다만, 시즌2에서 일취월장하여 없어선 안될 존재로 거듭난 박지윤이 중심을 잘 잡아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두번째. '추리 수사물'로서의 영역을 보다 확실히 할 것. 예컨데 시즌2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전문가' 표창원이 범인 지목에 실패한 것은 여러모로 많은 점을 상징합니다. 시즌1에서 전문가로 나온 경찰이 명확한 증거를 통해 범인을 확실히 지목했던 것과 달리, 시즌2는 증거 그 자체보다는 이야기의 구성에 더욱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상이한 증거능력을 가져 한쪽이 다른 한쪽의 증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범인일 가능성을 약간의 차이만 둔 채 병렬하여 늘어놓습니다. 사실상 결말부에 다른 누가 범인이라 해도 시청자들은 "아... 쟤가 범인이구나..." 해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장진이 유달리 강한 면모를 보인 것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직업인 사람'에게 증거 하나하나의 입증능력보다는 '보다 흥미롭게 보이는 이야기'가 더욱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을 '추리예능'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실제로 시즌1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된 덕에 보다 몰입감있고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때론 어처구니없이 너무 뻔한 증거가 제시되어 맥없이 끝나기도 하고, 때론 너무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습니다만 '모두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증거'가 확실하게 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즌2는 이러한 결정적인 증거찾기보다는 보다 더 합리적으로 말이되는 이야기를 찾는데 집중되었습니다. 예능적인 재미나 제작적인 측면에서의 편의를 생각해본다면 이것을 그리 나쁘게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만, '추리예능'으로서의 면모가 떨어져 버리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셋째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출연진에게 그 역할을 제대로 인지시키는 것. 사실 시즌1의 강용석은 수사라는 측면에선 좋았을진 몰라도 예능이라는 측면에선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쟤가 범인이야"라고 아무것도 하지않아 버리면, 촬영을 하는 입장에서도 참 당혹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시즌2의 장동민은 자신이 범인이 되었을 때 판을 주도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반복해서 내비쳤습니다. 장진이나 박지윤 등 이러한 반응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 반응만으로 사실상 범인이라 확실할 정도였죠. 범인 역할이 안되는 사람한테는 범인 역을 최대한 주지 않도록, 그리고 본인이 가진 기본적인 캐릭터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역할을 무작위로 나누어 가지는 것을 생략하게 되고, 리얼함을 살린다는 재미도 줄어들겠지만- 메인을 두텁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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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3.30 19:25


 우리는


50년 정도되는 시간이 흐르면, 이전의 일들에 대해 "야... 정말 그땐 그랬었지. 어떻게 그렇게 하면서 살았나 몰라"라고 떠올릴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90년대 중후반, 2000년대 초까지만해도 과거의 일이라 믿었던 것들이 2010년대에도 생생하게 작용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박근혜 게이트 정국에 이르러선 우리는 정말로 유신시대에 살고 있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예.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다. 언론, 문화에 대한 탄압에 대한 이야기죠.


시그널은 많았습니다. 언론에 대한 탄압과 실제 결과물이 처참해지는 상황에서도 "언론을 장악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식의 말돌리기나 반복하고 있었고, 참 언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기나긴 투쟁의 끝에 결국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어용노조로 채워진 경력직으로 메꾸어졌고, 그 가운데엔 온갖 구설수가 들끓는 사람들도 존재했습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그리고 그들이 내놓는 결과물이 처참해지는 것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언론과 권력은 함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국가에서 권력에 대한 견제는 필연적이며, 언론은 견제에 특화된 또 다른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양자가 함께 한다면, 사실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는 것이죠. 이전에도 권력창출, 진영논리, 자사의 이익 등으로 언론에 대한 문제점이 꼽혔습니다. 하지만 근 10여년에 이르러선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공중파 방송사는 정권과 사실상의 운명공동체가 되다시피하여,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암흑기를 보내고 있는 형편입니다. 바로 이것이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하여 언론이 큰 일을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언론의 성질은 기본적으로 반골에서 기인합니다. 비록 뉴스가 타락하고 뭉개지더라도, 예능은 그러한 길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대표주자가 MBC의 무한도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예능으로 손꼽히던 무한도전은 그 압도적인 영향력과 독립성을 통해 뉴스도 선보이지 못하던 시사정국을 표현해냈습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첫째로, 이러한 소재를 자연스럽게 융화시키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확연히 나뉘어 결과적으로 실패한 케이스를 낳곤 했습니다. 자막과 화면이 아예 따로 노는 경우가 있어 이게 일기장이냐는 비판을 들어야 했죠. 둘째로 외적인 방식의 견제와 심의의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언젠가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이경규가 20년도 전부터 하던 카메라를 끊으라는 수신호가 2010년대 정재형이 해서 방통위에서 경고를 받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는 부분입니다. 셋째는 일부 시청자들이 불편해했다는 점입니다. 세상풍파 잊고 유쾌하고 웃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세상의 어두운면을 비추어내고 교훈을 주려는 무한도전은 예능이라기보단 차라리 다큐에 가까웠으니 그리 반가울 수 없는 노릇이었죠.


결과적으로 무한도전은 이러한 시사적인 연출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됩니다. 프로그램 내외적인 문제점과 진부함이 얽히며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도 서서히 낮아졌죠. 여기엔 무한도전만이 선택하던 시사 요소를 타 예능이 품으면서 변별력이 낮아지게 되었다는 점도 작용하였습니다. 예컨데 박근혜 게이트 1~2년도 전부터 3사 예능 전반에서 과거 무한도전식의 일침 자막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되었고, 이미 대중은 SNL코리아라는 경험을 통해 시사풍자를 TV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학습한 상태였습니다. 어중간한 무한도전은 '시사풍자'에 있어선 이전과 같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게 되었죠.


아이러니한 상황이 닥친 겁니다. 무한도전은 선행주자로서 지독할만큼의 견제와 압박을 견디며 진부해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타사 예능은 이러한 무한도전의 성질을 차용하여 수위며 수준이며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무한도전은 자기만의 변별력을 드러낼 수 있는 포인트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졌죠.


그런 무한도전에서, 신년특집 국민의원이라는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역사상 찾기 힘든 5당제, 거기다 여당이 없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각 당의 소속 의원들을 불러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여러 법안을 제시하는 특집을 마련한 것이죠.


물론 이 특집에 대한 호오는 갈릴 수 있습니다. 예능에 어울리느냐부터 시작해서 정치인 개인에 대한 이미지가 이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죠. 당장 저부터도 너무 노골적인 인상을 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냥 국회의원 코스프레한 무도멤버들이 자기들이 생각한 공약을 관객들 앞에서 설명하고 저들 가운데 한 두명에게 평가를 받는 선에서 그쳐도 나쁘지 않은 특집으로 기획될 텐데 아예 당마다 한 사람씩 불러왔으니까요.


그런데 이 특집이 방영되기 이틀 전인 30일, 자유한국당이 당 차원에서 법원에 방송금지처분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유한국당 소속원으로 방송에 출연하지만 사실상 바른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현아 의원으로 인해 방송이 공정하고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논조로 말입니다. 예. 저는 이 부분에서 정말 헛웃음과 함께 일종의 분노같은 것이 불거졌습니다. MB 때 강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정말이지 이 사람들은 바뀌지를 않는구나라면서 말이죠.


예. 중립말입니다. 


곰곰히 한번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계적인 중립이 지금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왔나요? (...뭐 애초에 그 시기 그들이 말했던 중립이 사전적인 중립이 맞긴했냐고 따지신다면 저도 할 말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주관이 잔뜩 가미된 중립이었으니...)


좌에서 우 순으로 정의당 이정미, 바른정당 오신환, 국민의당 이용주, 자유한국당 김현아,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입니다.


'중립과 공정'의 관점에서 이하의 텍스트를 한 번 따져봅시다.


출연자의 면면을 따져봅시다. 이용주 의원은 검사출신이며, 박주민 의원은 변호사 출신입니다. 똑같이 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법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기둥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죠. 이정미 의원은 노동과 교육쪽을, 김현아 의원은 도시계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둘 다 오늘 날 대한민국의 '땅값'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고요. 모두 국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들이죠. 자, 그리고 오신환 의원은....


모르겠습니다. 연예인 출신이라서 끼워넣은 건가?


자, 중립의 관점에서 저 글은 그렇게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른정당의 오신환 의원 역시 '연예인'이라는 전문성에 기한 문화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섭외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단순히 농담으로 '연예인 출신이라 끼워넣었다'라고 표현했으니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그렇게 공정한 표현이라고도 볼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하나의 틀을 씌워봅시다. 기초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웃음과 재미를 전달해야 하는 예능의 포멧이라면 어떨까요? 텍스트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지언정 본인의 설명이나 이후 진행자의 부연을 통해 재미도 살리고 그 목적과 공정성도 살릴 수 있습니다. 뉴스나 다큐와 달리 엄격한 방식의 잣대가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웃음이라는 대전제 아래 펼쳐지는 것이니까요. 예능 특유의 웃음을 주기 위한 포인트- 즉 특유의 공격에 대한 문제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연예계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숙지가 되어 있는 게스트'니까요. 진행과 제작의 수월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겁니다.


기계적인 평가와 중립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있고, 그것만이 오직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왜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을까요. 예능, 풍자, 예술, 문화는 저러한 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은요? 그들은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깨달은 것이 없는 걸까요?


애석하게도 이들은 이러한 행보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당장 지난 대선 때 여의도 텔레토비를 물고 늘어졌던 걸 떠올려 보세요. 당시가 대선이라 비록 일시적이나마 높은 표현의 수위가 높아질 수 있었던 특수기였음에도 그들은 "왜 박근혜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욕을 입에 달고 있냐"는 식으로 이의를 제기하며 방송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것도 국감에서요. 안쳤어는 그 유명한 간잡이 캐릭터가, 문재니는 뜬금없는 폭력캐릭터로 그러졌던 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오버도 그런 오버가 없었습니다. 앰비나 구라돌이를 떠올려보면? 더 할 말이 없을 지경입니다.


결국 이들의 이러한 행보와, 잔혹할만큼의 언론환경으로 인해 여의도 텔레토비는 방영을 중단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그들의 승리였나요? 지금의 상황을 보고도 그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저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지금 자유한국당에서 이름 좀 떨치면서 일반 대중에게 거부감 없는 의원이 있기는 한가요...? 비박계로 유명했던 나경원도 박근혜 게이트 이전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상회담에 나왔을 때 적잖게 욕먹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는 다당제가 대한민국에 정착하길 바라고, 지금 사태에 책임있는 국회의원들을 당장 내일 국회에서 내쫓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들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 많은 이들이,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최대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을 떠올리며 자기의 업무에 이념관계과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협력하기를 바라는 보통의 국민입니다.


그렇기에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억누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과 억압을 이어가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통탄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권력이 팔팔할 때도 고작 8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요? 과연 이들이 다른 것들, 문화, 예능, 웃음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존재하는가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저들이 가장 주력해야 하는 것이 과연 MBC-그것도 과거 방송국의 PD와 기자협회로부터 권력주구라는 평을 들은-라는 방송국의 한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이의제기 정도인가요?


이들이 하는 행보는 정말이지 바뀌지 않아서 더욱 경악스럽습니다. 위에서 말한 제 바람이 결국 언제나처럼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는 결과로밖에 이어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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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 TV프로그램2017.02.07 23:08


 지난 2015년


가수 김창렬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빌려준 기업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뭐...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빌려준 것은 재산권으로서의 초상권이었는데, 제품관리를 엉망으로 해서 인격권으로서의 자신의 초상권과 성명권에 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것이죠.


저는 당시(2015/05/20 - [● TV프로그램] - 김창렬과 "창렬스럽다". 결국 법정행으로)에도 심정은 이해는 가지만, 연예인의 유명세에 따라붙는 비교적 흔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며, 무엇보다 김창렬 본인에게 유형의 손실이 가해졌다고 보기엔 여러모로 어려운 측면이 많아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라 표혔었습니다.


예... 꽤 쓰디 쓴 평가입니다. 구성이 부실하다는 것에 대한 속어로 이름이 쓰인 것은 명확해 보이지만, 정의를 부여하는데 제품의 특성이 기여했다면, 그 사용의 범위와 의미는 다름아닌 네 평소 행실 때문 아니었냐는... 반문을 법원이 인용해 버린 거죠.


예. 그리고 얼마 전 해당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네요. 예상했던대로 김창렬이 패소하였습니다. 전문을 찾아보진 않았지만 전체적인 논리는 그러합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을 먼저 전제해 주세요. ....사실 이건에선 인정된다 하더라도 판결이 뒤집힐 거라고 보지는 않지만....) 법문에서는 제품 자체가 경쟁제품들에 비해 부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기할만큼 엉터리인 것만은 아니며, 김창렬과 해당 제조사가 취한 계약이 특별히 부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부실한 제품을 만든 제조사가 연예인을 기용하여 판매하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은데 유독 '창렬'이라는 유행어가 창궐한 것은, 결국 연예인 김창렬 본인이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연관되어 있음이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답해 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판결문에는 제 예상을 뛰어넘는 사실들까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피고측이 관련된 내용을 적극적으로 어필했겠죠) 이러한 사실의 노골적인 명시는- 예. 솔직하게 말하면 정말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과거의 폭력 전과나 지금은 고인이 된 신해철과 관련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열거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네요.


원칙적으로 법원 선인의 악행과 악인의 악행을 별개로 두지 않습니다. 단지 판결 이후 형에 대한 가감에 고려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 직업의 근간을 차지하는 유명인이 당사자였기에, 저러한 대외적 이미지까지 합리적으로 고려한 모양입니다.


한때의 해프닝으로 넘길 수도 있었던 일입니다만, 이게 종편, 케이블, 심지어 공중파까지 타는 신조어가 되어 버려서... 웃고 넘길 수 있으면 웃고 넘겨야 했지만 역시 견디기 힘든 일이었겠죠. 지금 시점에서 보면 긁어 부스럼이 되어 버렸나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법원의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예컨데 과대포장된 제품들에 대한 조롱과 이러한 제품들을 홍보한 연예인들에 대한 놀림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일입니다. 연예인들은 연예인들대로 그것을 유명세로 치부하고, 해당 제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땐 "난 얼굴과 이름만 빌려주었을 뿐" 이라며 넘어갔고, 이에 대해 사실 도의적인 책임을 묻기도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김창렬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합니다. 첫번째는 법원에서처럼 과거의 행동으로 인한 대외적인 이미지가 실제로 작용했을 거라 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좀 더 심각합니다. 김씨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김씨의 이름을 욕설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말장난이 존재했습니다. ...예. 이름의 어감이 그래서 이런 유행어가 나왔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 사실들을 어떻게 당사자에게 말합니까. 이름은 자기의 선택이 아니고, 과거가 거칠었을지언정 어쨌든 지금은 마음 고쳐먹고 살려는 사람에게 말하기엔 참 가혹한 일이죠.


김창렬의 입장에선 자신의 방어를 위해 행한 행동이 되려 자신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전까진 그냥 그런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 정도였다면, 이젠 법원이 판결문에 너는 그런 인간이었다라고 정의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법문 전체를 살펴보기 전에 말을 아껴야 겠습니다만, 만약 선을 넘었다면 법원은 일종의 2차가해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마저 있습니다. 물론 법원이 그렇게까지 경솔하리라 보지는 않습니다만 이를 오독할 이들이 많을 거란 생각도 드네요.


그렇다고 법원이 식품업체의 의견만 모두 받아들인 건 아닙니다. 김창렬측이 계약위반을 했다는 사실등에 대해서도 기각했죠.


그러한 의미에서 제가 만약 김창렬의 입장이라면 '앞으로 소송에서 절대 이기지 못할 걸 알지만' 최소한 판결문에 명시된 해당 문장들을 빼기 위해서라도 상급심에 항소할 겁니다. 그냥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과 공문서에 저런 기록이 남는다는 건 아무래도 차이가 크니까요... 견디기 참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더 이상 회자되지 않도록 묵혀두는 것도 나쁜 선택만은 아닙니다. 아니, 이게 맞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인터넷상에서 사용되는 유행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그라들기 마련이고, 연예인이라는 특성상 1심 판결문이 공공에 공개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대법원까지가서 법문이 공개되는 상황과 그리 다를 것도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지금 상황에서 피고인 식품제조사와 더 심한 감정싸움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애초에 제기했던 자기의 권리찾기와도 거리가 멀어지고요. 물론 이조차 식품제조사가 만족하지 못하면 본인의 의사와 무관히 소송이 진행될 테고요.


여하튼 참... 난감한 삶의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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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