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봅시다.


한국적인 게 무엇입니까? 여러 답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대답은 대개 추상적이며, 애매하며, 오묘할 겁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만, 뭔가 아닌 것은 찝어 낼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는 답하기에는 참 애매한 개념이 바로 한국적인 것입니다.


한복만 입으면 뭘 하건 한국적인가? 그렇다면 활을 든 선비가 용 모양의 기를 쏘며 "물어라"라고 소리치면 그건 한국적인가? ...어때요, 어렵죠?


저는 이 한국적인 것을 명쾌하게 정의내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세 가지 방향으로 답해보려 합니다. 첫번째는 금일 다룰 역사적인 문제에서, 두번째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세번째는 생활에서의 측면에서 한국적인 것을 쉽게 답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음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각 개념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사실 조금씩 관점만 달리할 뿐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적을


알고 싶으면 결국 역사를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다른 국가와 한국을 차별화하는 가장 명확한 요소이며, 한국인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주는 요소니까요. 실제로 역사를 다룬 콘텐츠들은 한국적인 콘텐츠로 자주 평가되며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역사는 민감하며, 또한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역사는 한국인에게 존재하는 역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군 성노예 사건, 동북공정, 독도 등등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인식과 결부되며 한순간 비등점까지 강렬하게 끓어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와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 정도로, 역사에 대해 입체적인 시각과 이에 대한 다양한 토의가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영향은 이후로도 잔존합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느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느니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도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낮은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단순히 남침을 남한이 침략당한 거 아니냐는 식의 말장난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김구, 신채호 등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아니라고 하죠.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의 교육이 과거의 실패를 통해 미래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실제로 역사가 중요하다면서 연예인의 말투에 꼬투리를 잡지만, 실제 역사 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공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곡되었다고 알려진 드라마에는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지만, 정작 그를 다룬 역사서적은 금세 절판되어 버립니다. 대한민국의 정당의 흐름은 커녕, 몇 명 되지도 않는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을 나열하지도 못하는 대학생의 숫자도 부지기수입니다. 결국 역사에 대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한국인들은 이러한 역사를 제대로 관조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이러한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국사 및 근현대사의 선택과목화입니다. 역사 교육이 고등학교 1학년때 끝이 나 버리고, 문과를 선택하여 근현대사를 공부하더라도 수능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박정희 시대 즈음해서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성인이나 노년측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때론 그들의 경험이 역사의 객관적인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로 작용하기도 했죠. 역사를 다각도로 살필 수 없던 시기 형성된 관점이, 이후 폭발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상과 괴리를 일으키며 고착화되어 버린 겁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배경과 사유


이렇게 된 이유는 이하와 같습니다.



몇십년, 아니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한 다리 건너면 역사적인 비극적 사건의 당사자들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일을 입에 담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죠.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러한 비극적 현대사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바쁜 현대를 사는 것이 우선이지 먼 옛날의 일을 파헤치는 것을 권장하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글을 쓰는 2016년 시점에서는 이것이 극에 다다르다 못해 이래서는 안된다는 비판이 자정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도올 김용옥 등이, 이후로는 설민석 등이 새로이 역사붐의 상징처럼 나타났죠. 그럼에도 아직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적인 소재로는 여전히 쓰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결국 역사는 손쉽고 가볍게 다룰 수 있는 대화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역사는 압도적인 기록을 남긴 조선과, 일제강점기, 80년대 후반 이전까지에 커다란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조선은 결국 일제에 패망했고, 일제강점기는 상상도 하기 싫은 한민족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8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저항의 역사 그 자체였고요. 이러한 시기의 일들을 입에 쉽게 올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근현대사의 여러 비극을 직접 겪거나, 그런 이들의 자식과 손자가 사회구성원의 주축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렇게 된다는 거죠.


A: 이승만 때까지도 조선과 일본의 문화의 묘한 뒤섞임이 있었다더라.

B: 우리 할머니가 그 때 제주도에 살았어.... 그 때 할아버지가....

A: 아... 그랬군요...


'흥미본위로 다루기엔 오늘 날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역사가 너무나 슬프고 무거워 대화의 소재와 파고듦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 이것이 첫번째 이유입니다.


이념의 논쟁은 사실 합의를 통해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되는 경향을 보여야 합니다만 의도적으로 이념, 지역, 세대, 성별간에 분쟁을 야기하려는 이들이 계속해서 있어왔기에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영화 변호인을 둘러싼 이런저런 일


두 번째는 이념의 논쟁으로 인한 터부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두고 국가를 이끄는 양날개라고 비유하곤 합니다만, 그거야 정말 교과서 내에서의 이야기입니다. 2016년 대통령의 탄핵 이전을 대상으로 이야기해도 이는 그리 크게 변치 않습니다.


한쪽은 다른 한 쪽을 끊임없이 빨갱이로 몰았고, 다른 한 쪽은 그 한 쪽을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유산으로 여겼습니다. 일례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40년 전부터 주장했던 것을 두고 아직까지도 색깔론을 들먹이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며, 민주당 계열의 인사가 대통령이 되면 안보가 크게 위험해진다는- 아니 그걸 넘어서 북한에게 나라가 넘어간다는 선동을, 두 명의 민주당 계열의 대통령이 나온 이후에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이념과 인식에 대한 괴리가 벌어진 상태이니 인물에 대한 평가가 온전히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공과 과를 동시에 따질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차라리 입을 다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념적인 대립은 역사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재세력과 그 독재세력에 맞서는 야당이라는 두 정당의 대립이야말로 대한민국사 그 자체니까요. 문제는 양자의 대결이 단순한 보전과 개혁을 정의내려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첫째로 안보라는 외적인 요인이 존재했으며, 둘째로 독재라는 내적인 요인이 존재했으며, 셋째로 특유의 공동체 의식-예컨데 지역, 성씨, 학연 등-이 얽혀 있었습니다. 논의가 더욱 복잡해진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요. 부부끼리도 정치관이 다르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데, 사회생활에서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토의한다고요?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A: 강진석은 김일성 외삼촌 아냐? 그런 사람한테 건국훈장 줘도 돼?

B: 아니, 어쨌건 강진석은 독립운동가고, 그 사람 죽고 나서 김일성이 북한에서 전쟁을 일으켰잖아? 북한에 기여를 한 것도 아닌데...

A: 그럼 김일성 삼촌한테 훈장을 주자는 거야? 이 빨갱이! 그러고보니 넌 노동당 당원이었지! 노조나 만드는 놈!

B: ....


실제로 야당의 의원이 국가보훈처장에게 자신들이 당하던 색깔론을 제기하는 모습이 2016년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죠. 이미 죽은, 거기에 현직에 영향을 끼칠만한 후손도 없는, 또한 출신지역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는 선정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저러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일상생활에서 역사적 이야기를 나누기가 얼마나 힘들지 대략적으로 체감이 가능할 겁니다. 


역사는 결국 당대의 사실에 후대의 해석이나 인식이 덧대여진 형식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이미지 밖의 사실에 놀라기도 합니다. 비단 이하의 역사적 사건들로 인한 단절들만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인식의 차이에서도 단절은 발생하여 당대엔 당연했던 사실이 이후 놀라운 것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영화 순수의 시대의 남자 캐릭터들은 귀걸이를 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 당대 역사를 기반으로 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역사적 단절로 인한 이해의 어려움입니다. 상단에서도 언급했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래로 촉발된 이념전쟁, 그리고 독재는 역사적인 단절을 낳았습니다. 개발과정에서 소실되어 버린 민간전통문화,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버려 유실된 문화재, 일제강점기로 인한 정체성의 손상은 시간의 흐름과 얽히며 심각한 역사적 단절을 낳았습니다. 스스로는 자신을 고조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반만년의 역사의 일인이라 여기지만, 정작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한국적인 것은 별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고 있습니다.


이 거리감은 한국적인 것에 대해 지나치게 큰 무게와 기대감을 부여하였고, 어지간한 것들은 모두 도외시하여 결과적으로 더 큰 단절을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에 대한 이해도는 결여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소속된 무언가에 대해 알아본다는 것과, 단순히 책에 서술되어 암기해야 하는 자신과 무관한 어떤 사건들의 나열은 그 몰입과 흥미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세번째는 자신을 역사의 당사자라 여기지 못하는 단절입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과도 상통합니다. 지역이건 이념이건 오랜 시간 활동해온 대표자 혹은 집단에게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되니까요.




 역사의식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의미했습니다.


그토록 한국적인 것을 찾아 헤매면서 정작 그 기준이 되어주어야 할 역사라는 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왜곡된 거리감을 갖게 된 것이죠.






...지금 반쯤 정신 나가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보통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슷한 시기의 작품들로 예를 들곤 합니다만 그럴 처지가 되지 못하여 생각나는대로 2000년대초중반을 넘어 2010년대의 작품들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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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과연 오늘 쓰는 글이 과거에 썼던 글과 소재가 겹치지 않나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이렇게 타자를 두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시기가 다소 왔다갔다 하고, 또한 이런저런 사실관계가 틀리기도 했겠지만, 저라는 블로거가 어떠한 방식으로 만화라는 문화를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따르는 길이라 감안하시기를 바라며, 이렇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언젠가 애장판과 신장판이 발매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을 넘어서게 되면서 출판만화시장은 급격한 위기를 겪게 되고, 만화를 즐겼던 세대들은 나이를 먹어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추게 되면서 이들이 즐겼던 만화를 보다 고급화된 사양으로 재출간하여 판매한다는 일종의 윈윈전략이라고 소개했었죠. 물론 여기서 재출간이라는 이름으로 말하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기본적인 질을 갖추기 못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애장판이라는 이름을 붙인 채 발매되었음에도 완결까지 발매되지 않는 황당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었습니다.


복간(復刊) 절판등이 되어 더 이상 발매되지 않는 책을 다시 발매하는 것을 말하고, 복각(復刻)은 다시 책을 출간할 때 원본을 재발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실 혹은 손상 등의 사유로 원본을 모방하여 다시 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데 일곱개의 숟가락 등은 기존의 판본을 다시 펴낸 것으로 복간이라 할 수 있고, 광고컷 혹은 검열 등으로 칸이 비워진 부분을 독자적으로 채워 발매한 일지매 등은 복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복간작'들 역시 넓게 보자면 이러한 범주에 포함됩니다. 다만 변화한 만화의 위상, 그리고 '한국적인 것'에 대한 추구가 함께 결부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복간인가?


애장판 신장판 열풍을 넘어 복간작이 출간되는 이유는 상기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시간의 흐름이라는 필터링을 넘어 남겨진 보석같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찌보자면 '낡은 외형'에 '진부한 소재'들을 가진 이 작품들이 당시 만화를 보며 자라온 세대 외에 다른 이들에게도 반향을 일으켰던 것을 설명하기엔 모자라다는 것이죠.


저는 이 과정을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다른 나라도 그러합니다만, 한국의 경우 근현대사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이라 부를 수 있는 적잖은 요소들이 많이 손실되었고, 외세에서의 영향이 잔존하여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일히 분류하고 되살리고 기록하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 되었고, 이 불편함과 피로함으로 인해 긍부정적인 것 모두를 살피는 대신 오직 긍정적인 과거만을 기록하고 미래만을 추구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이 유력 정치인에게서 나오기까지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혼란은 당연히 민족적인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단일민족 혹은 그러한 단일민족에 준하는 방식으로 역사 교육을 받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이러한 부재는 견디기 힘든 일이니까요. 더욱이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이름의 민족주의적 성향까지 2000년대 시점에서조차 먹혔던 게 사실이니까요.


자연스레 이러한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을 문화계에도 요구하기에 이릅니다. 예컨데 록음악에 국악을 결부시키기도 하고, 뮤지컬에 한국역사를 배경토록 하고, 힙합에 판소리를 가미시키기도 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있고, 나쁜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애초에 이 한국적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느냐라는 것조차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죠. 


만화의 경우도 이러한 한국적인 것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만화는- 예,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방학기작 바람의 파이터는 남고 도서관의 최고의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인기작은 시대를 불문한다는 거죠.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여기에 세 가지 사유를 꼽고 싶습니다.


첫 번째. 한국적인 것에 대한 불분명한 기준. 일본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만화 강국이 한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고, 여러 역사적인 얽히고 설키는 것을 통해 문화적인 영향도 적잖게 받았습니다. 90년대 한국 만화에서의 일본식 그림체를 비판하는 신문기사를 찾는 일도, 김수정 작가에게 원로 만화가가 "넌 어느 일본 만화를 베꼈느냐?"라고 물었던 일은 더 이상 유명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장르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해 쉽사리 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되지 않습니다.


두번째. 역사적인 분단과 단절.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조선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역사에 대해 배우지만, 정작 한국 사람들은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에 가지 못합니다. 재평가되는 정도전에 대한 콘텐츠가 사랑받음에도 선죽교에 가지 못합니다. 또한 여러 전쟁과 침탈, 독재로 인해 주요한 역사적인 기록, 문화재, 증인들이 존재치 않게 되어 제대로 된 역사적 구심점으로 작용치 못하게 된 현실적 한계의 영향도 존재합니다.


세번째. 엄숙주의. 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트렌디 사극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였습니다. 만화 역시 이러한 시도와 성공작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상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지 못해 일정 수준 이상의 고증이 이루어 지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함께 결부되며 그 높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예컨데 그리스로마 신화로는 인기 좋은 작품을 그려도 한국 신화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거죠. 이처럼 특유의 엄숙주의는 역사를 포함하여 '한국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창작의 자유를 최소한도 보장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묘사함에도 후손들의 종친회가 방영금지 처분을 요청하는 일은 결코 낯설지 않죠. 더군다나 당시 만화는 저급한 문화로 치부되어 엄숙주의적 잣대는 더욱 강해지고, 지지자들의 세는 약해져 결과적으로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는 것에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우영의 삼국지처럼 단순히 배경이 서양이나, 중국이냐는 한국적인 것과 직결하는 요소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말로 단순히 배경이 동양이냐 한국이냐는 한국적인 것과 직결하는 요소가 아니었다는 거죠. 당시 작품들에 대해 가지는 독자들의 한국적인 것에 대한 요구의 딜레만 여기서 기인하는 겁니다.


독자들은 성숙하여 한국적인 것을 요구하는데, 정작 현 세대의 창작자들은 독자들과 별다르지 않은 관념을 가지고 있고, 더욱이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제대로 된 콘텐츠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몇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거기다 기껏 내놓은 작품에 대해서도 아주 높은 잣대를 적용시켜 시도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죠.


결과적으로 독자의 이러한 수요는 과거의 작품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필터링을 거친 정수이자, 어째서 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를, 동시에 현세대의 독자와 다른 잣대와 관념을 가지고 만들어진 과거의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야사에서 역사로, 만화에서 문화로


당연하지만, 야사는 정사에 비해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가치로서의 능력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야사가 정사에 비해 역사적인 가치가 적다고는 결코 말하지 못합니다. 야사는 야사 나름대로 당시의 정황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고, 당시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줍니다. 누구 말마따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고려청자도 유물은 유물이라는 겁니다.


만화 역시 그러했습니다. 당시로는 그저 흥밋거리에 불과하던 작품들이 시간이란 이름의 덧칠을 통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님들이 즐기던 작품을 함께 즐긴다는 것은 묘한 연대를 선사하였고, 이 무형의 선이야 말로 한국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공감대가 만화라는 하나의 매체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올라서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먹대장과 007 우주에서 온 소년 이 두 작품- 아니 비단 이 작품들만이 아니라 적잖은 복간작들은 대전의 만화 박물관에서 비치된 것 정도만을 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2000년대 출간되어 서재에 꽂아 넣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쬬. 물론 금세 절판되는 일이 생기기는 했습니다만....


동시에 이 작품들은 당대의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왜 당대엔 이런 내용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수정되어야 했는지, 왜 등장인물이 저러한 이야기를 하고 저러한 행동을 하는지 당대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 이 작품들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역시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상기의 역사적인 가치, 두번째는 원본을 비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비교적 저렴한 값에 복간판을 비치할 수 있다는 것, 세번째는 작품 그 자체로서의 가치 때문에 말입니다.


이러한 복간만화는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만화의 지위를 상승시켰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그동안 상승한 만화의 지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별다른 이견을 듣지 않았으며, 실제로 만화가 문화라 불리는 현상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면이 적잖았습니다.


예컨데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는 고우영의 삼국지 복간판은 꾸준히 사랑받았습니다만,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우영 화백 정도의 입지를 가진 작가조차 이러할 진데, 다른 이들은 어땠을까요.


어렵게 구판본을 구하고 복간작업까지 거친, 의욕적으로 내놓은 작품들이었지만, 판매기간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출간 그 자체에도 의의가 있지만, 긴 시간만에 다시 볼 수 있게 된 작품을 이렇게 빠르게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 이 작품들을 즐겼던 세대들이야 별다른 정보 없이도 이들을 구매하는데 나설 수 있었지만, 쏟아지는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이 작품들을 선택할만한 젊은- 혹은 어린 독자들에겐 어필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던 거죠.


실제로 복간작업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원본이 소실된 경우가 적잖을 뿐더러(이 부분은 2000년대 기준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만화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도 이런 일이 2000년대에 발생했을 정도죠. 60~70년대 그것도 당대 한국이 기준이라면 절대다수라고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의 의사에 반하는 형태로 이미지에 변형이 가해지는 것이 비일비재한 검열의 시대였기 때문에 원본이 의도한 이미지를 복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심지어  작가가 복간작업에 협조해 준다 하더라도 이전에 비해 달라진 그림체등이 이질감을 남길 뿐더러, 기초가 되는 출간본을 구하기도 어려운- 즉, 보관하는 이들 자체가 적다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사전작업을 했음에도, 아니 그랬었기에 일찌감치 절판시켜 버렸다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책장을 다채롭게 하고픈 마니아의 입장에서 한 말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마니아의 발언은 일반 구매자의 그것으로 일반화할 수 없고, 객관적인 지표가 되기도 힘듭니다. 실제로 당장 이렇게 말한 저부터가 화려하고 다채로운 요사이의 작품들 사이에 이러한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으니까요.


2000년대 들어 여러 만화 기관에서도 복간 만화를 펴냈습니다. 라이파이 등이 그러하죠. ...문제는 판매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하기가 힘들었다는 거죠.(진짜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고?) 실제로 영리를 목적으로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도 힘들고...


하지만 이 작품들도 한국적인 것에 대한 완벽한 답이 되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고, 동시에 이러한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적인 소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이것이 곧 한국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는 될 수 없었습니다. 관념은 변화하기 마련이고, 과거의 정답이 미래의 정답이 될 거라곤 누구도 생각치 않았습니다. 그저 참고의 대상일 뿐.


과거와 현재를 뒤져가며 찾으려 했던 '한국적인 것'에 대해 이제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터져나오게 되었습니다. 추상적인 표현은 제쳐두고, 이젠 정말 찾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마저 갖게 되었을 정도입니다. 논의의 기간이 짧다고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좋은 자질을 가진 작가들을 두고도,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간동안 독자들이 납득할만큼의 최소한의 답도 내놓지 못했다니요.


이젠 정말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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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80년대


본격적으로 촉발되어 가능성을 확인하고, 90년대 의욕적인 시도들이 펼쳐진 극장판 한국 애니메이션. 하지만 90년대 시도들 태반은 그리 긍정적인 결과들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2000년대 초를 넘어서게 되면서, 최소한 의의를 남긴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이 작품들 또한 대중적인 성과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죠.


하지만 비교적 기획과 제작, 방영 기간이 짧은 TV애니메이션은 달랐습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빠른 시간 내에 잡아낼 수 있었고, 시청자층을 보다 분명하게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정적인 송출 수단 역시 갖추고 있었죠.


오늘 언급할 세 편의 2000년대 초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목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듯 하네요. 탑블레이드. 큐빅스. 그리고 올림포스 가디언말입니다. 이 작품들의 상업적인 성과와 가능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것도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더군요. 아직도 제겐 이 작품들이 남긴 성과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말이죠.




 탑블레이드


탑블레이드는 원작이 일본작품이고 작중 일부 왜색이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작품으로만 기억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작의 첫 과정에서부터 한국의 매드하우스 등이 깊게 개입하였었던 '진짜 합작'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제작에 중심이 되는 영역은 몽땅 일본에 맡기고 하청업무만 담당하였던 이전의 작품과 달랐습니다. 스토리, 설정, 연출, 동화 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당대 한국 애니메이션 특유의 색체를 공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광고 효과를 '다시 한 번' 입증한 작품.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주)손오공의 공격적인 마케팅이었을 겁니다. 이미 대세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는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이 아닌 PC방으로 넘어갔다 이야기되던 그 때, 손오공측은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팽이놀이'를 차용한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관련된 상품의 국내 제작 및 배급에 대한 권리를 따냅니다.


이전에도 미니카나, 로봇 등의 판매 상품을 통해 수익을 거두기도 했었습니다만, 이것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전히 쾌속 스피너나 스피드왕 번개 등 미니카에서 벗어난 요요나 롤러블레이드 등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인기를 끌기도 했었습니다만, 이것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가 명백했습니다. 한일양국 모두 로봇 애니메이션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졌고, 반복해서 돌아왔던 미니카 붐의 간극은 점점 멀어졌거든요. (한국의 경우) 가장 큰 이유가 PC게임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실제로 손오공은 스타크래프트 등의 게임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PC게임 시장에도 진출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신통치는 못했었죠. 블리자드가 발매되지도 않은, 아니 개발도 시작되지 않은 게임(스타2)으로 네고를 쳤고, 손오공은 거기에 낚였다라는 내용이 이후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 위기 상황을, 팽이놀이를 기반한 콘텐츠와 관련 상품의 판매를 통해 타개해낸 것입니다. 물론 탑블레이드의 경우 PC게임으로 제작되어 발매되기도 했었습니다.


어찌보자면 시대에 역행한다고까지 여겨졌던 탑블레이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둡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더 중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더해, 콜렉션 욕구, 오프라인 대회 개최 및 유지 등이 어우러진 결과였죠.




 큐빅스


많은 이들이 고민했습니다. 왜 한국 애니메이션은 외국에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만큼 재미있지 못한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소재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인가, 그조차 아니라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뭘 내놓아도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서 발전을 위해선 하나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애초에 외국에서 방영할 것을 상정한 작품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이후 국내에 방영된 특이한 케이스의 작품이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큐빅스죠. 씨네픽스가 제작한 이 작품은 미국의 워너브라더스의 키즈채널에서 방영하며 당시 전성기이던 포켓몬스터를 시청률에서 앞지르기도 하는 등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1기는 SBS에서, 2기는 KBS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는 둥글둥글한 로봇에서 기인합니다. 2000년대초는 이미 고전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다각도적 분석이 이뤄진 시점이었습니다. 건담이나 에반게리온 등의 고전 로봇에 대한 재해석 애니메이션의 붐도 이미 끝난 시점이었고요. 출발은 어린이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로봇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이 시점에 이르러선 소재건 디자인이건 '아이들'을 위한다라고 말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진 시점이었습니다. 당장 트랜스포머나, 용자물을 떠올려 보세요. 소재도, 연출도, 디자인도 소년이 아닌 비교적 어린 아이들에겐 적합치 않은 면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큐빅스는 파고든 겁니다. 선하며, 사람을 도우면서, 귀엽지만, 로봇이 가진 근본적인 매력- 창의적으로 조립하고 합체하며 변신하는 등의 것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다치지 않게 둥글둥글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 차원에서 총놀이나 칼싸움을 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창작물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던 때였는데(기가 막힌 우연인지, 당시 MBC의 해외 드라마 아이들이 줄었어요에서 햄버거의 부록으로 온 장난감총을 아이에게서 뺏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큐빅스는 기존의 작품과는 그러한 폭력성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거든요. 동시에 과거의 볼트론을 떠올릴 정도의 거대한 크기면서도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적합한 튼튼함과 조작성까지 갖고 있었으니.


로봇 특유의 강건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이 어우러 서로 돕고사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야기했던 스토리 역시 좋은 평을 받았었죠.


단순히 자극성을 통해 아이들을 열광케 하는 것을 넘어, 부모세대에게도 교육적으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작품과 캐릭터였던 겁니다. 실제로 큐빅스 역시 게임으로도 제작된 바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벤트 차원에서 뮤지컬로도 제작되기도 했었습니다.




 올림포스 가디언


한국, 정확하게 아시안의 교육열은 서양에서 참으로 유명한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클리셰로 자리잡았을 정도로요.


그러한 측면에서 따져보면, 만화의 불황기에서도 꾸준히 사랑받았던 학습만화가 애니메이션화되지 않은 것은 생각보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초롱이의 옛날 여행,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 류의 작품들이 절대로 잃지 않는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주 시청자층인 아이들에게 일종의 지루함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순 없겠죠. 아무리 재밌어도 한 두 번이지, 책으로 본 내용을 재방에 삼방까지 반복하니.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일종의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어린 연령층에겐 상대적으로 생소한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소재는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세대에겐 학습만화가 가진 '교육적 성향'이 담보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을 겁니다. 점점 널리 활용되는 신화의 교양적 성향까지 어우러지니까요. 거기다 아이들을 위한 순화에, 책을 읽기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한 직관적인 연출까지 어우러졌으니.


이렇게 올림포스 가디언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god가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신화, 그리고 매력적인 신들은 이 작품이 일정한 완성도 이상을 담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거기다 작품 특유의 위트까지 녹아든 덕에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들도 재미있게 보았었죠.


그리고 화려한 작화와 색감, 안정감있는 성우들의 연기는 아이들을 매혹시키는 것을 넘어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간과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실패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이 시점이


되면, "한국 만화는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몇 년 사이에 좋은 작품 한 두개가, 이젠 1년에 좋은 작품 몇 개로 바뀌어 버린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위 작품들이 가진 공통점 '비교적 어린 연령대의 아이들이 즐기고 부모들이 지지하는 상황'을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과연 이것을 온전한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동 애니메이션만 성공했다, 결국 이것은 일부의 성공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실제로 위 작품들의 흥행성공은 보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 제작자들이 집중하는 경향을 낳게 되었거든요. (실제로는 큐빅스를 제한 다른 두 작품은 초등학교 고학년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긴 했었습니다.)


아동연령대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쁘냐, 나쁘지 않느냐에 대해선 쉽게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일정한 연령대만 대상으로 작품이 제작되는 상황이 건강한 현상이라곤 말할 수 없습니다만, 90년대 청소년층을 넘어 성인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하나를 빼곤 모조리 흥행참패한 현상을 생각해보면 무작정 주장하기도 꺼려집니다. 실제로 다소 애매하긴 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준 작품들조차 모조리 흥행에 실패한 건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TV애니메이션 쪽은 방영시간과 연령대가 시청률과 직결하는 요소잖아요.


무엇보다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나쁘냐, 그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이러한 현상에 국한되는 현실에 만족해선 안된다는 주장 자체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이후로도 꾸준히 노력하며 더 나은 상황을 만들려 하였죠. 아동 애니메이션 집중 현상은 비록 이전과 같이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 보기 힘들어짐을 의미했지만, 최소한의 화제성과 시청률 측면에선 일정 수준 이상을 담보해주었습니다.


 사실상 뽀로로가 가진 저력이 드러났던 건 해외에 얼마에 수출되었다더라 하는 것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뽀로로를 보며 자라온 아이들이 가진 공감이 더 어린 친구들과 이어졌기 때문이었죠.


바로 그 뽀로로가 2003년 등장하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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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샘 레이미. 그리고 스파이더맨입니다.


 당시의 충격이 지금까지 잔존한다면 믿으실까요. 그 정도로 스파이더맨이 전해준 충격은 컸습니다. 전 아직도 이 포스터를 보면 두근두근하던 영화관에서의 기억이 샘솟습니다.


마크 웹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무가치한 작품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이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리부트를 두 번이나 '당해야'하는 작품이냐는 물음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은 분명 없을 겁니다. 스파이더맨은 그 대중적인 성공을 떠나 스파이더맨 2가 개봉할 때까지 가장 잘 만들어진 슈퍼 히어로물로 평가되었으며, 스파이더맨2는 당대가 아닌 지금까지도 가장 훌륭한 만듦새를 자랑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입니다.


히어로 최대 걸물작 가운데 하나인 스파이더맨 듀올로지(예... 3는 빼자고요 일단)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편입되는 것이 확실해진 마블 시네마틱의 틴에이지 스파이더맨 사이에 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존재감이 한없이 가벼워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 그 정도입니다. 이 작품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히어로 무비가 어디까지 거대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깊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 요구되는 영상미와 그래픽 기술이 얼마나 그 수준이 높은지를 입증한 작품이었습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이나 배트맨 리턴즈와 분명히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지평을 연 것이었습니다.


제 주관이긴 합니다만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듀올로지는, 아이언맨을 위시로 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와, DC유니버스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레이드를 기다리는 건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웨슬리 스나입스가 다시 해도 괜찮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극찬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런 표현들이지만, 저 스스론 그리 어색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스파이더맨은 단순히 지금까지 펼쳐질 슈퍼 히어로 콘텐츠의 자리를 넓힌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애초에 에니메이션 시리즈의 슈퍼 히어로물 역시 국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당연히 1, 2년 전에 개봉한 X맨이나 블레이드도 썩 잘 만들어진 작품들이었거든요.


하지만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처음이 반'이라는 표현이 가진 무게를 가장 훌륭하게 소화해낸 작품이었습니다. X맨은 소수자를 의미했습니다. 소수자와 히어로는 상준하지만 등치하진 않죠. 블레이드는 말할 것도 없이 안티 히어로고요. 아이콘인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은 낡았고, 배트맨은 너무 어둡다는 이야기가 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대중적인 히어로가 그만의 완성도를 담보한 채 등장하게 된 겁니다.


샘 레이미는 기존 만화 매체가 갖고있던 히어로물의 신화적 성향을 훌륭히 영화로 소화해 냈습니다. 우리와는 별 반 다르지 않고, 그들이 겪는 삶의 고통과 극복을 통해 교훈을 주는.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관객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죠.


스파이더맨이 아직까지도 가장 잘 만들어진 슈퍼히어로 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피터 파커가 영웅으로 '각성'하는 과정이 모두가 몰입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설득력있고 흥미진진하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적잖은 슈퍼 히어로 콘텐츠를 영화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시점에서 "가장 스파이더맨다운 영화로 스파이더맨을 손꼽는 것도", "가장 성공적으로 영웅의 각성을 다룬 것도", "벤 삼촌을 두번이나 죽이고, 결국 더 다루길 포기한 것도" 모두 이 때문인 겁니다.


 이 이미지는 스파이더맨2와 플스3긴 하지만. 플스2와 스파이더맨으로 재미좀 봤었기에 나온 패키지겠죠.


물론 영화 외적인 면에서도 살펴볼 '꺼리'가 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은 스파이더맨 광고가 플스2 광고와도 엮여서 방영되었던 걸 떠올리실 겁니다. DVD가 각광받는 매체가 되면서 화려한 영상미를 살린 작품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는데, 아직 DVD플레이어의 가격이 비싸던 때였기에, 비교적 저렴한 플스2로 감상을 할 수 있다 광고했던 것이죠. 게임은 안할지언정 플스2로 영화를 봤던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 때 국가코드가 참 골치 아픈 문제기는 했습니다만. 실제로 이승환이 유희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어떤 영상물'보려고 국가코드 푸느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죠.)


이처럼 히어로 콘텐츠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첨단을 달리는 소재였습니다. 스파이더맨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영상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이것을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마련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당대 "슈퍼히어로물은 국내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배트맨 이래로 아직 남아있었던 때였는데, 스파이더맨은 그러한 인식을 부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KBS에서 방영하였던 애니메이션 덕에 상대적으로 스파이더맨에 친숙한 관객들이 많기 때문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실제로 스파이더맨의 기록적인 흥행에 고무된 이들은 보다 활발하게 슈퍼 히어로 콘텐츠를 영화화하는 것을 기획하기에 이릅니다. 엑스맨은 보다 거대해졌고 더 깊어졌습니다. 블레이드는 더 진해졌고 더 기괴해졌죠. 엘렉트라나 캣우먼, 데어데블, 젠틀맨 리그 등, 판타스틱4, 콘스탄틴 등이 원작과 무관히 이전의 스틸이나 바브와이어의 뒤를 잇는 B급 스멜 강한 작품들도 제작되기 시작했고요.


하지만 스파이더맨 개봉 2년 후 등장한 스파이더맨2를 빼놓을 순 없을 겁니다. 다크나이트에 대한 붐이 어느 정도 식은 지금 "그래도 슈퍼 히어로 무비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건 스파이더맨2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면 그 대략적인 완성도를 가늠할 수 있겠죠? 이 작품은 본편을 뛰어넘는 속편(물론 본편도 훌륭합니다), 히어로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이야기를 남긴 스파이더맨2는 평과 흥행을 다잡으며 슈퍼히어로 콘텐츠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넓힙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슈퍼맨과 배트맨 속편과 시퀄에 대한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사족이긴 하지만, 이 시기를 즈음해서 무리해서까지 "만화 원작으로 알려진 영화"는 몽땅 관람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들이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고무된 "쓸만한 캐릭터의 영화화 판권-스파이더맨부터 판타스틱4까지"은 몽땅 소니 등에게 팔아버렸다던 마블은 2003년 이안의 헐크를 넘어 "아이언맨"을 탄생시키기 위해 주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 더 말할 것도 없죠? 히어로 천하가 열리게 됩니다.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패러디와 오마주의 대상이 되고 있는 바로 그 장면.


스파이더맨은 단순한 히어로물이 아니었습니다. 삶이 담겨 있었고,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해의 영화였고, 매체를 넘어 가장 큰 파급력을 남긴 작품이었습니다. 남, 녀, 노, 소가 말 그대로 이 영화에 열광했다면 믿으실까요?


재작년이었나요. 버락 오바마가 가장 좋아하는 슈퍼 히어로가 스파이더맨이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 2000년대 초중반과 2010년대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 변화의 폭은 이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스파이더맨의 메가히트를 계기로 국내에 본격적으로 그래픽 노블이 출간되기 시작했으며, 영화화되었다는 단서가 붙기도 했고, 오로지 영화화된 만화들 때문만도 아니었지만- 만화의 팬들이 오랜 시간 가져온 특유의 피해의식이 서서히 떨쳐졌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우리가 얼간이라고? 글쎄. 지금 세상은 만화에 열광하고 있는걸."





본래 지난 주 아예 이 콘텐츠를 끝냈어야 했는데- 바빴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막나가자 싶네요. 


  • 마지막 글의 주제는 "현실이 되는 만화. 그리고 미래로"이고, 2015년이라는 기한을 정했던 것도 다름아닌 백투더 퓨처 속 배경, 그리고 그 기술이 현실화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광학미채, 로봇 등 만화에서 태동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요. 공각기동대의 새로운 극장판도 개봉하니. 딱 적절한 타이밍이 있었습니다만- 놓쳤네요. 어쩌겠어요.


다음에는 당시의 히어로 무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블레이드와 엑스맨을 저렇게 간략히 다루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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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만화의


미디어 믹스는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80년대 외인구단이나, 90년대 미스터큐나 아스팔트 사나이 등의 영화와 드라마가 거두었던 성공을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이 시기 만화의 영상화가 거둔 성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영상화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사실이 바로 각색이나 연출이, 현재의 그것들보단 무게의 추가 원작의 팬들보단 일반 대중에 훨씬 쏠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아니 당연한 일입니다. 만화와 영상은 기반으로 하는 매체에 차이가 있고, 상대해야 하는 대상도 차이가 있다보니 각색은 필연이죠. 실제로 만화의 팬층은 상대적으로 가벼울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였고요.


하지만 팀 버튼의 배트맨이 국내에서 흥행실패를 하여 영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그 사유를 분석하던 때와 달리, 이 시기부터는 '원작의 팬'이 중요한 흥행의 열쇠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영미권의 만화를 접하는 게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고, 관련한 애니메이션을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겠죠. 이 시기가 되면서 원작이 아직 연재중인 경우, 혹은 완결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개봉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이 바로 일드, 즉 일본 드라마였습니다.


 고쿠센은 최소한 한국내에선 드라마가 만화보다 훨씬 인기를 끌었던 케이스입니다. 만화 팬을 자청하는 사람도 드라마를 봐야한다 이야기했고, 드라마팬은 굳이 만화를 볼 필요없다고 이야기했던 게 아직까지 기억나네요.


일본이 콘텐츠들은 2000년대 초 오로지 엽기로만 유명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80년대 대중적인 황금기를 보낸 일본산 콘텐츠들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다양한 장르를 구축하였고, 자연스레 만화를 기초로 한 여러 영상물을 제작하기에 이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엽기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일본의 여러 콘텐츠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애니메이션이었음을 부정할 순 없지만, 만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엔 물론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도 적지 않았죠.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일본의 영상매체의 화법은 기존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영상물에 비해, 특유의 과장되어 보이는 연기와 연출 등의 화법이 훨씬 만화에 가깝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설정도 이전의 것들에 비하면 허무맹랑하다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요.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젠 이러한 차이점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배포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작지만 큰 변화였죠. '유치해서', '허무맹랑'해서, '난해해서', '왜색이 짙어서' 검열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작품들이 폭넓게 사랑받게 되면서, 만화의 영상화와 그에 대한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들이었거든요.


 마츠모토 준은 이후 만화 원작 드라마에 많이 출연해서 눈도장을 찍기도 했죠. 빼놓을 수 없는 건 단연 꽃보다 남자일 겁니다.


이 시기 흥미로운 사실은, 일드의 관심이 원작인 만화로 옮겨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겁니다. 사실 이것은 순서가 뒤집힌 상황이었죠.


원작인 만화가 유명세를 얻고, 그 유명세를 기반으로 관련 콘텐츠가 제작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입니다. 원작인 콘텐츠가 발매되기도 전에 파생작이 태어나는 것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 해당되는 일이죠. 그럼에도 한국에서 일드가 원작보다 먼저 유명해지는 일이 생긴 것은 결국 인터넷의 발달 덕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의 불법 스캔본 문제는 국내에 정발한 만화를 위주로 불거져 있었고, 영상물에 대한 단속은 시행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자연스레 관심은 방영 다음날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신작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당시의 일드 열풍은 이 작품을 정식으로 수입하는 선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미 볼 사람 다 봤는데 성공할 수 있나?"라는 의문을 시원하게 물리치며, 인터넷 생태계와 케이블TV의 생태계는 또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만의 생태계를 보다 확장하여 구축하였습니다.


출판사들 역시 이것을 홍보요소로 활용하였습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제작 확정 소식도 무게있게 다뤘습니다. '국내 정식 방영', '제작 확정' 등의 문구가 띠지에 새겨져 홍보되었고, 비교적 관심이 식은 구작들이 다시 한 번 조명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원작 만화의 연계가 제한되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젠 최소한 드라마 방영중 "원작은 어떨까?" 하고 살펴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당시를 거창하게 이야기하고픈 생각은 없지만. 한류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라는 말은 빼놓을 수가 없네요.문화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발언이 성립할 수 있는지, 그리고 라디오에서 계속 일본어로 된 노래를 금지해야 하나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되던 때였습니다. 참고로 사진은 2003년 후카다 쿄코와 원빈이 주연을 맡았던 한일합작 드라마 프렌즈.


이러한 움직임을 보다 활발하게 한 것은 헐리우드발 히어로 무비였습니다.





사족. 고쿠센은 국내 방영시 허무맹랑한 설정과 조직폭력배(그러니까 야쿠자)의 자식이 주인공이라는데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당대는 한국식 조폭무비의 전성기였죠.


너는 펫은 사람을 애완동물에 비유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 너무 자극적이다라는 식으로 논란이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동명의 개그 코너가 생겨나고, '나는펫'이라는 소재를 차용한 별개의 프로그램이 5년이 넘게 방영될 정도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작품은 보지도 않고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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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2000년대초


만화가들의 절규라는 글을 보면 인터넷 만화에 대한 관계자들의 회의적인 시선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서도, 이젠 빌려서도 보지 않는 만화를 과연 사람들이 '공짜'라는 인식이 박힌 인터넷에서 구매해서 보는 게 정착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거죠. 실제로 이 의문은 어느 정도 맞았습니다.


인터넷 만화방이 본격적으로 자리잡는 것은 그로부터 10년의 시간이 흐른 정도였고, 그 사이 인터넷을 통해 1화 정도를 미리보기로 제공했던 출판 만화계는 대여점과 만화방도 고꾸라질 정도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유는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했기 간략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적절한 기준을 통해 책정되지 못한 중구난방인 가격과 품질, 정품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 정품보다 훨씬 간편한 불법사이트, 기존 출판물에 비해 특별히 내세울만한 이점을 가지지 못한 콘텐츠 등등등.


그렇기에 기존 기성작가들은 인터넷 만화 연재에 쉽사리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더 적절하겠네요. 하지만 인터넷은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매체로 자리잡은 상황이었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요구하는 이용자의 숫자도 끊임없이 늘어났습니다. 여기에 작용한 것이 바로 의욕은 있고 출판만화계엔 아직 뛰어들지 않거나 못한 아마추어들이었습니다.


 도제식 교육이 보편화된 그 때, 인터넷을 통해 등장한 작가들은 기존 만화들과는 다른 색다름이 있었습니다. 젊은 세대만의 감각을 친숙함으로 포장해낸 그들이 바로, 웹툰의 정립과 활동에 영향을 끼쳤고요. 지금은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풍 역시 그러한 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이전의 짤방에 비해 크게 발전한 행태라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특정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립한 해당 콘텐츠들의 대다수의 장르가 '똥', '폭력', '엽기'로 대변되는 자극적 소재를 다루는 것들에 한정되기도 했죠. 접근 자체가 가볍고, 해당 작가들의 마인드나 실력 자체도 출판물 작가에 비해 특유의 서사적 연속성이나 스토리텔링을 갖출 정도가 아니기도 했고요. 실제로 이로부터 적지않은 시간동안 웹툰 작가들의 실력이 출판물 작가들의 실력에 비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적잖게 나돌았습니다. 그림 실력에서부터 이야기 전개에까지 말이죠. 아마추어리즘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있네요.


하지만 의외의 방식으로 이러한 인터넷 만화들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그림, 그리고 인터넷의 간편함과 맞아떨어진 장르적 가벼움은 '일상물'이라는 고유의 장르가 자리잡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였고, 일부는 정식 연재물로서 신문지상이나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공짜로요.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단순한 자극을 넘은 감동을, 서사를, 주제를 담는 작품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십년이 훨씬 넘는 기간이 지났음에도 한국만화저작권보호협의회에 마린 블루스가 등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작품이 가진 상징성도 작용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만화 섹션에서 마린 블루스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된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는데, 이젠 좀 배너를 다양화 했으면 하는 생각도...


그리고 별개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이 진행되면서, 이제 인터넷에 게재되는 만화와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 필요로 해졌습니다. 이전까지 인터넷에 연재된 기존 출판만화나, 스포츠 신문의 만화 등과 엮여 있던 이 장르에 '웹툰'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죠.


이 웹툰의 개념이 정착엔 기존 만화작가들보단 포털 서비스 이용 업체의 노력이 컸습니다. 어찌보자면 디지털 음원 시장의 정착에 기존 뮤지션들보단 통신업체들이 더 많은 투자를 했던 것과 닮아 있죠. 여하튼 각 포털 사이트마다 웹툰이 게재되고, 이 과정에서 그들을 대표할 만한 콘텐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까지도 지금의 웹툰의 고유 연출법이 자리잡진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인기와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이 시기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강도하와 강풀이죠.(썰전에서 허지웅이 같은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강풀은 기존의 엽기만화로 자신이 기억되는 것이 싫어 그에 대치되는 순정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스크롤 방식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연출법을 활용하기에 이릅니다. 특유의 떨어지는 작화에 대비되는 뛰어난 이야기 구성도 화제가 되었고요. (그가 국문과 나와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강도하는 위대한 캣츠비로 웹툰에서도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섬세한 연출을 통해 인물 그 자체에 널리 공감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의인화한 데포르메가 주는 특유의 반전으로 인해 당시를 대표하는 작가로 거듭났습니다.(강도하도 세로 스크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습니다만, 강풀과 차이가 있다면 강풀은 영화적 연출을 염두에 두었다는 인상이라면, 강도하는 여백을 통한 전달에 더 주력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이전의 편견이 무색하게 20대 이상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며, 새로운 매체에 적응하는데에도 성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웹툰의 아버지-까지는 아니어도 큰형님이라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아니 조금만 과장해도 웹툰의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강풀은 오늘 날 자신이 있기까지 일종의 선점효과가 작용한 것이라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만, 그가 웹툰에 끼친 내외적인 영향을 생각해보면 마냥 이상한 일은 결코 아니죠.


하지만 문제는 있었습니다.


바로 새로운 매체에 대한 적응과 거부감이 그것이었죠.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저부터가 웹툰을 웹툰으로 즐기기 시작한게 2~3년 전의 일입니다. 그 이전엔 출판된 웹툰을 보았고요. 제가 이러한 선택을 했던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작용했습니다.


첫째. 새로운 매체에 적응해야 할 필요성. 어찌보자면 기존 콘텐츠를 이용하는 자들의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실제로 지금도 저의 중심 매체는 종이책입니다. e북을 살 바엔 차라리 중고 책을 사겠다 여기고 있는- 예, 어찌보면 참 낡은 사람입니다만, 이러한 사람에게 웹툰은 검증된 콘텐츠가 되지 않는 한 그리 인상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가 없죠.


둘째. 떨어지는 실력. 다소 자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당대만 해도 웹툰 작가는 출판 작가에 비해 한 두수 이상 뒤진다 보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지만 이말년의 만화를 보고 허영만이 이럴 수도 있냐는 짤방도 있죠.) 일단 웹툰의 대표작가 강풀조차 당시 그림체로 인해 출판만화계에서 소위 말하는 '쫑코'를 먹은 상황이었고, 스토리로 좀 먹어준다는 작가들도 과거와 현재의 명작들과 비교당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웹툰은 비교적 자유로운 매체다보니 기존의 콘텐츠들을 차용하는 정도가 출판만화에 비해 심했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이어져 각 작품간의 구분성이 투미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웹툰만의 화법이 자리잡을 때까지 반복되었죠.


셋째. 공짜 인식. 웹툰의 수익구조가 개선된 것은 이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입니다. 오로지 연재 고료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선택된 소수의 작품들은 출판과 저작권 판매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창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후 광고등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수익의 창구가 늘어나게되며 완화된 문제가 되었지만, 웹툰 자체를 즐기는 데 대가는 필요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에 대해서까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2010년대에 이르러 강풀은 이런 웹툰의 이미지에 대해 자신이 일조한 바 있다며, 그를 십자가로 비유하고 개선해나갈 것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독자들에게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며, 웹툰이 얼마만큼의 잔향과 파급력을 남길 수 있는지 알려주었던 위대한 캣츠비. 웹툰은 그 자리에서 읽고 마는 작품이라는 인식을 산산히 부수며 특유의 반전과 캐릭터 분석을 통해 오랜 시간 생명력을 지속시켰습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을 넘어가게 되며, 기존 출판만화 관련인들은 이 웹툰이라는 매체가 만화의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지지부진했던 신작만화의 영화화, 드라마화, 애니메이션화의 소식이 연달아 들렸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심지어 작화문제로 몸살을 계속 앓았던 강풀은 2004년 올해의 우리만화상까지 받게 되며 '만화란 무엇인가'라는 담론을 던지기도 했죠. 물론 웹툰은 만화의 완벽한 대체제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왔습니다. 그래서 출판만화작가 가운데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둔 이들이 웹툰에 진출하는 것이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화제가 되는 거고요.


앉은 자리에서 여러 만화를 볼 수 있게 되고,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만화가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그들이 프로 작가로 데뷔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만화는 우리네 일상과 아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다 심화시킨 건 바로 미디어화된 만화들의 역습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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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학습만화가


만화의 이미지를 "도움이 되는 만화도 있다" 내지 "아이들이 봐도 괜찮은 만화" 정도로 바꾸었다면, 오늘 소개할 2000년대 초반 널리 교양서로 알려진 만화들은 "그래도 이 정도 책은 봐 줘야지" 라는 수준의, 더 이상 만화에 국한되지 않는 정도로 개선을 이뤄낸 작품들이었습니다.


식객, 미스터 초밥왕, 신의 물방울 등의 전문직 만화들이 그 대상이었죠. 시기상으로 신의 물방울은 조금 이후의 이야기기는 하지만, '교양서로 자리잡은 만화'를 논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니, 이 기회에 당겨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이 만화들이 교양서에 자리잡게 된 데엔 몇 가지 요소들이 결부되었었습니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역시 재미죠. 단순히 전문 정보만을 늘어놓는 수준이었다면 이 작품들이 그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겁니다. 만화 자체의 재미나 실질적인 정보를 떠나, 극적인 경쟁과 승부를 통해 그만의 드라마를 형성해냈습니다. 일찍이 90년대 서극의 금옥만당이나 요리왕 비룡 류의 승부만화를 보다 담백한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보다 넓은 연령층에 인기를 끌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특유의 진심은 이 만화들이 교양서로 자리잡기 이전부터 90년대, 2000년대 초반부터 만화 마니아들 사이에선 그만의 인기를 끌게 만든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역시 쉽게 전달되는 정보였습니다. 경제위기를 넘어서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가 교류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많이' 이상으로 '질 좋은'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의 웰빙 열풍이나 먹거리 탐방도 이나 2000년대를 넘어가면서 촉발된 움직임이었지요. 자연스레 일본의 장인문화와 건강식으로 유명했던 초밥,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한국의 음식들을 조명하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위 작품들은 그러한 갈증을 입문서의 역할을 하며 해소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은 취재의 힘이겠죠. 이것이 널리 알려지는 데엔 만화 작가 허영만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80년대까지 이현세에 비해 대중적인 파워가 약한 작가로 꼽히긴 했지만, 허영만은 비교적 어린 연령인 80, 90년대생까지 이르는 저명성을 가진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소년만화에서 실패를 거듭한 허영만의 침체기는 발로 직접 뛰어 모은 정보를 통해 만든 여러 작품을 통해 벗어나던 상황이었고, 어느 새 '화백'이라 불러도 거부감이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업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고, 그가 만든 작품들 속 녹아 있는 생생함은 '만화가 만화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허영만 그 자신도 만화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역사만화, 사전조사, 현장에서의 취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좌) 학습서적으로 분류되는 좋은 만화들을 제하고, 교양서적 이상의 입지를 쌓은 만화를 꼽으라면 단연 식객이 꼽힐 겁니다.

(중) 비슷한 시기 성공시대의 한 호텔 조리장이 미스터 초밥왕을 애독하며 이에 나온 요리를 만들어보기도 했다는 내용이 방영된 바 있었습니다.

(우) 시기는 좀 차이가 있지만, 신의 물방울은 교양서적을 넘어 대중적으로도 큰 반향을 이끌어 냈습니다. 출간 중 와이드 판형이 발매되어 병존 판매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죠.


실제로 동네 서점의 베스트 셀러란에 만화가 걸리는 광경은, 그리고 서점 입구에 여타의 베스트 셀러와 함께 해리 포터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과 함께 포스터가 걸린 광경은 쉽게 잊지 못할 겁니다. (참고로 해리 포터야 매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리던 인기작인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베르나르베르베르는 지금과 그 때의 위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제 인생, 그렇게 길진 않았지만 학습 만화 외에 그런 식으로 크게 걸린 것은 처음 봤습니다. 한 구석 작게 열혈강호 등이 걸린 걸 보긴 했었지만 말이죠.


여하튼 만화 자체의 입지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물론 한계는 있었습니다. 저 만화들은 '교양서'로서의 입지를 어필했지, '만화'로서의 입지를 어필한 건 아니었거든요. 일부 만화는 여전히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었고, 여전히 어린 아이들 위주로 굴러가는 매체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모든 만화가 아이들에게 악영향만 끼치는 매체다' 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이어져온 만화가들의 투쟁, 그리고 만화 자체의 사회적인 입지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죠.


물론 이 시기, 출판 만화계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전날의 고급화 과정, 이번의 탈만화화 이미지 구축도 결국 출판만화 시장의 생존을 위한 방책을 마련한 결과였거든요. 실제로 2000년대 초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대여점 책임론 등이 강하게 힘을 얻고 있던 때였고, 이 때를 기점으로 출판 만화 잡지들이 하나 둘 고꾸라지는 현상이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의외의 매체에서 만화의 활로가 보이게 됩니다. 의외일 수밖에 없는 게, 당대 만화가들이나 만화 구매자들도 성공보단 실패 가능성이 높다 점쳤던 매체였거든요.

 

예. 바로 웹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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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언젠가


제가 더 이상 일반 단행본을 사지 않겠다 선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일반판의 경우 심심찮게 원작자의 의도가 배제된 수정이 가해진데다, 외국 작품의 경우 질낮은 번역까지 더해져 작품 그 자체로의 가치가 훼손된 상태로 발매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이기도 했죠. 90년대 중후반까지 만화는 청소년의 일탈의 책임을 부당하게 지는 위치에 서 있었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몸을 사려야 했습니다.


당장 아이큐점프의 드래곤볼에서 무라사키 상사의 상투가 지워져 있었던 일이나 오 나의 여신님 초반본에서 베르단디가 입었던 기모노가 한복으로 수정되었던 일을 떠올려 보세요. 골때리는 연극부에서 야하지도 않은 키스씬을 그대로 잘라낸 사례는 또 어떤가요. 아예 뜻을 반대로, 그리고 수시로 오역해버린 헌터X헌터는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었던 스포츠 만화들의 좌우반전은요? 그리고, 베르세르크처럼 성인용으로 발매되는 작품에서조차 이미지를 흐리게하거나 삭제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는 건요?


지금이야 오역과 이미지 수정을 제하면 어느 정도 해소된 문제들입니다만, 위 사례들이 작품을 즐기는데 문제가 되는 일들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장 먼저 보이는 고급형 판본의 만화는 바로 드래곤볼입니다.


잠시 소장의 개념으로 이야기를 돌려봅시다.


우리는 왜 먹고 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것들을 모으는 걸까요? 과연 소장의 궁극적인 가치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답하긴 어렵지만 "슈퍼맨의 첫번째 이슈의 초판본이 수 십 년이 지나 보석보다 비싸졌다"는 식의 투자의 개념과 다르다는 걸 단언할 수 있을 겁니다. '소장'한다는 것은 소유권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는 의미로, 대상이 되는 매체를 언제나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소유권의 개념은 이것을 전자적으로 변용했을 때 그 공유와 전송에 제한이 가해지긴 했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법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연하지만 자신이 소장한 것이 보다 좋은 것임을, 그리고 온전한 것임을 바라게 됩니다. 이것은 본능이죠. 똑같은 돈을 주고 샀는데 자신의 물건이 다른 사람의 것보다 떨어지는 것임을 용납하기는 힘들 겁니다. 하물며 물건 자체에 하자가 있다면 어떨까요? 일반판으로서의 발행은 결국 이러한 행태와 아주 유사합니다. 당장 원펀맨의 정발과 관련한 논란을 살펴보세요. 이미지를 수정하고, 이미지가 잘려 나가자 구매자들이 들고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만화의 구매자들에게 있어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일반판을 가장 손쉽게 대체할 원서는 구매할 경로가 극히 제한되었었고 무엇보다 언어의 제한이 있었습니다. 다른 판형이 발매된 사례는 전무하다 말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고요. 사거나, 사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겁니다.


 무수정을 표방했지만 수정된 부분이 눈에 띄어 문제가 된 드래곤볼. "물로 보지 마"라는 유행어 아닌 유행어를 남기기도 했죠. 20권쯤 나왔을 때 완전판이 발매되는 바람에 뿔이난 이들도 많았죠.


하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구매루트가 다양화되면서 만화를 구매할 수 있는 기회와 기간은 상대적으로 길어질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좋은 만화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가 널리 알려질 수 있게 되었고, 구매 자체도 이전의 통신판매와 비할 수 없이 수월해지게 된 덕이었죠.


결과적으로 현재의 화제작 외에, 과거의 명작들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마니아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는 재구매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일본에서도 애장판 발매 붐이 일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한국 내에서도 이미 절판이 오래된 작품들의 소장을 목적으로 한 고급형의 애장판 혹은 완전판들이 별도 판형으로 발매되기 시작했고, 만화 역시 중요한 소장의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그간 발매되어도 판매될 것이라 확신할 수 없었던 상징성 있는 작품들 역시 발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당시 구매하지 못한 게 아쉬운 마징가Z. 지금 권당 가격이... 같은 의미로 게타 로보를 구매하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시카와 켄이 사망하는 바람에.


물론 불만도 많았습니다. 여타의 책들과 달리 여전히 선택의 폭이 적다는 점이 그것이었습니다. 일반판과 고급형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죠. 고급형 판본으로 출간되는 만화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그나마 발매되는 책들도 일반판은 이미 절판된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그나마 일반판과 애장판 등이 함께 판매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극히 일부였습니다. 일반판을 절판 시킨 후 고급형 판형을 판매하는 경우가 보통이었죠.


또한 고급형과 무삭제를 자청하면서도 정작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자격미달의 판본들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신장판' 혹은 '청소년판'이라며 교묘하게 비껴가며 기존의 판본을 일체의 수정없이 새로 찍어낸 경우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고(유유백서, 골때리는 연극부 등), 무삭제판이라며 이전 판본에서 수정했던 요소들을 제거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발매한 경우도 있었습니다.(드래곤볼) 이건 사실상 사기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죠.


이외에 원작과 무방한 판본을 발매하는 경우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신장판과 고급형판본이 잠시간의 시차를 두고 발매되어 혼란을 빚은 경우도 있었고(드래곤볼, 로토의 문장), 원작자와 상의도 하지 않고 발매하였다 후에 문제가 되어 출간이 중단되어 버리는 판형(굿모닝 티처)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애장판을 발매했는데 정작 이후 일본에서 훨씬 우월한 판본을 발매하여 뒷목을 잡는 구매자들도 많았습니다.(시티헌터, 닥터스쿠르 등) 애초에 완결이 나지 않은 작품도 완전판으로 발매하는 일도 벌어졌죠.(프리스트, 라그나로크, 소마신화전기 등) 심지어 발매하다 판매량이 저조하자 출간을 중단한 사례도 있었습니다(마이러브).


이외 품질에서도 몇몇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표지의 질, 종의 질의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장 큰 문제는 제책 방식이었습니다. 좋은 종이질로 책을 출간해 본 경험이 적어서인지 책을 어느 정도 펼쳐서보다 보면 일반 판본보다도 금세 낙장되는 일이 벌어졌던 겁니다.(미스터 초밥왕)


구매를 목적으로 한 판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구매자들이 뿔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죠.


루팡3세Y같은 경우 루팡3세를 현대화시킨 리메이크 판본이지만, 이러한 복고 바람을 타고 와이드판형으로 국내에 정식 발매되었었습니다. 문제는 15권 완결 중 12권까지만 발매된 점.


여하튼 이것은 2000년대 초중반 서서히 일게 된 복고 지향성이 작용한 결과기도 했습니다. 90년대 중후반까지 경제 발전과 함께 최신의 것만을 쫓던 문화계가, 경제위기와 타개 그리고 정체기를 거치면서 옛 것에 대한 가치를 주목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이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고요. (...물론 당시의 제 나이를 고려할 필요도 있겠죠.)


실제로 당시 출간된 작품들의 목록을 보다보면, 마징가Z, 게타 로보, 마크로스, 에어리어88, 먹통X, 아기공룡 둘리 등 입이 떡 하니 벌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재미를 떠나 상당한 상징성을 지닌 작품들이 대거 출간되었고, 당시 어느 정도 연령이 있던 마니아들은 환호를 질렀습니다. 애석하게도 당시 덕이 깊어가던 인터넷 키드들은 해당 작품의 가치를 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 형편 없는 질의 책조차 권당 1만원은 가뿐하게 넘어서서 거래되고 있고요. 일례로 상기한 마징가Z나 게타 로보의 경우 그로부터 얼마 뒤 국내에 본격적으로 슈퍼로봇대전 붐이 일었기 때문에 구매 기회를 놓친 이들이 많았습니다. (한국 명작 만화의 복간은 또 이로부터 5~10년 정도 지난 후 본격적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위의 불만들은 결국 불만에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만화계는 한 번 구매할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소장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 기회가 비록 만인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품질은 아닐 지언정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상황이었거든요.


당연하지만 이러한 고급화 판본은 만화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좋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만화의 파급력, 재미를 이용한 입문서 내지 교양서로서의 가치가 강조되기 시작했죠. 이 시기를 거치며 베스트 셀러에 오르내리는 만화들의 숫자가 적지 않아졌고 굳이 만화의 팬이 아니더라도 "좋은 만화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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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공영방송인


KBS까지 사실상 버린 시간대인 4시 대에 만화를 배치하게 되면서, 애니메이션은 최소한의 안정된 방영조차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관련 자료에선 MBC가 4시 대에 애니메이션을 편성하면서 애니메이션의 평균시청률이 2%로 급락했다는 내용도 있죠. 당연히 한국산 애니메이션만이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전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포켓몬스터가 최소한의 시청률조차 담보하지 못해 방영이 종료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수입해서 방영하는 외국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한국산 애니메이션은 더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있기에 이러한 방영시간대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최소한 국내방영+해외수출을 통해 수익을 얻은 외국산 애니메이션과 달리, 한국산 애니메이션은 국내방영에서 최소한의 성공은 해주어야 최소한 투자한 만큼의 이윤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결국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만화계, 애니메이션계, 한국콘텐츠진흥업계 등이 들고 일어나게 됩니다.


한국, 일본, 이탈리아에서 협력하여 만든 몬타나 존스. 수작이고 시대를 불문한 재미도 있기에 새벽시간대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이 적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 방영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죠.


그 주장은 크게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과 이것을 최소한 담보할 수 있는 방영권의 보장에 있었죠. 그리고 주된 논의는 다른 게 아닌 애니메이션 쿼터제였습니다.




 당시


새벽 시간 투니버스를 보다보면 한 번 쯤 그런 생각을 해 보셨을 겁니다. "대체 왜 이 작품이 이 시간에 방영하는 거지?" 라고요. 실제로 당시 새벽시간 대 방영했던 프로그램을 하나씩 읊어 보기로 하죠. 요랑아 요랑아, 영혼기병 라젠카, 몬타나 존스, 날아라 슈퍼보드, 두치와 뿌꾸 등 입니다. 비교적 낮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한국산 작품들이 방영되고 있었죠.


이건 동시간대 방영되었던 다른 영화 채널들과 비교해보면 아주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실입니다. Série rose나 옥보단같은 고전(?)에 가깝게 위치하여 성의 아름다움을 뽐낸 작품들이나 여러 좀비 호러물 등 낮시간대엔 방영되기 힘든 수위의 작품들, 내지는 다소 마니악한 영역의 작품들이 방영되었던 것과 달리 한 땐 국민만화로까지 칭해지던 작품들이 새벽 시간대에 방영되었던 겁니다.


실제로 방송법상 특정 관람가의 매체는 일정한 시간 이후 방영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심야시간대 성인물에 대한 수요가 있는 영화채널과는 다른 행보였죠. 아, 물론 누들누드 등의 작품을 방영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성인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심야 시간대를 채우고 있는 것은 보통 위와 같은 애니메이션들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대의 투니버스가 엄연히 "만화는 아이들만이 즐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기치 아래 맹활약하던 때였다는 점입니다. 고르고13, 루팡3세, 공각기동대, 카우보이 비밥, 은장기공 오디안, 시티 헌터 등의 작품이 심야시간대에 방영되며 비교적 높은 연령대의 마니아들도 만족시켰던 투니버스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단순히 높은 연령대의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그러한 결정의 기저에는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도 인기 애니메이션들은 시청률을 20% 돌파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완전히 고꾸라지더니 2%를 기록하는 참담한 상황이 되어 버렸죠. 실제로 포켓몬스터는 99년 그 압도적인 붐과 달리 2000년대 후반쯤 되어 버리면 도중 방영이 종료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아직 게임이나 여러 매체의 영향력이 유의미하다 평가받고 있었음에도!


스크린 쿼터제와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쿼터제란 통합방송법의 시행과 함께 운영된 정책으로 애니메이션 방영에 있어 특정한 비율로 한국산 애니메이션을 방영토록 만든 제도로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닙니다. 방송사가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의 30~50%를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토록 한 것이었죠.


노렸던 효과는 그걸 겁니다. 그랑죠, 포켓몬스터, 디지몬, 미니카 붐을 통해 정립된 애니메이션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방송사들이 적극적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 투자하길 바라는. 문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것이 만화, 애니메이션 업계에 족쇄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들은 "그 놈의 만화 한 편과 자동차 드립좀 그만 쳐라"며 분개합니다. 만화 및 애니메이션의 산업성과 가능성은 분명히 이미 몇 번이고 입증된 사실이지만, 그만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꾸준한 투자와 기획의 숙달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데, 무슨 자판기마냥 얼마 들이면 바로 뽑아낼 수 있단 접근만 하니 문화적 성숙이 쉽지 않다는 말이었죠. 실제로 이는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바로 입증했는데 방송사는 애니메이션의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선택을 하기보단 전체 애니메이션의 방영 시간을 줄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당연히 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도 줄면 줄었지 늘진 않았죠.


펫숍오브호러즈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듯한 흑장미 부인의 문방구. 오후 4시30분에 방영된 이 작품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엄청난 혹평을 받았었습니다. 실제로 그 비판가운데 일부는 팬심을 발휘해도 도저히 커버가 칠 수 없는 수준이었고요. 뱅크씬도 많은데 화면 연출은 너무 단순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성장중인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투자는 분명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본대중문화 개봉 이후 한국산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보단 일본산 애니메이션들을 수입하여 방영한 것도 기본적으로 그것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었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산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를 비율로 강제하다보니 전체 애니메이션의 방영시간을 감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투자가 아닌, 이미 방영한 작품을 재방영하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이건 일반 대중의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저하, 방송사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투자를 막는 일로도 이어졌죠.


당장 위의 투니버스도 그러한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중파 채널은 전체 애니메이션의 방영분을 줄이면 국산 애니메이션의 투자를 아예 안해도 됐는데,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투니버스는 그게 불가능하니 과거 본인들이 투자하거나 한국과 다른 국가가 합작한 애니메이션, 혹은 순수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을 비교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심야시간대에 배치하여 이러한 방송법을 일종의 편법스러운 방식으로 지켰던 겁니다.




 또 다시 악순환


예. 또 다시 악순환입니다.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시행되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방송사는 전체 애니메이션의 방영시간과 함께 기존 작품을 재방영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일요일 12시에서 1시 KBS1TV에서 달려라 하니, 열네살 영심이, 2020원더키디, 날아라 슈퍼보드, 떠돌이 까치 등의 작품을 질리도록 방영했던 것도 이러한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단, 적확히 애니메이션 쿼터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이건 90년대도 그랬었고, 워낙 상징적인 작품들인데다가, 무엇보다 재방영 할 때마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당연히 시청률은 떨어지게 되었고, 방송사는 보다 낮은 단가의 시간대로 프로그램을 편성했습니다. 새로 제작되는 신규 작품은 홍보도 어렵고, 기존에 제작되어 방영비용이 압도적으로 낮은 작품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불안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고, 투자 또한 어려워져 작품의 질-작화든 더빙이든 연출이든-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종국적으로 보다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 것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죠.


아기공룡 둘리가 좋은 작품임에 이견은 없지만, 이 작품이 하나의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전 세대가 공유하는 하나의 심볼이 된 데엔 오랜 시간 이어진 반복된 방영의 덕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물론 꾸준히 만들어지는 신작이 거기에 힘을 더해주었고요. 둘리 입장에선 잘 된건데- 신작 둘리가 아직도 80년판 둘리의 이미지에 갇힌 결과를 낳기도 했으니...


애초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면, 많은 이들이 국산 애니메이션을 찾았다면, 혹은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겁니다. 하지만 완성도 있는 작품을 보다 싼 값에 들여놓을 수 있고, 굳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도 별개의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있는 데다, 굳이 국산 애니메이션을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제시되어 있다면 기업은 당연히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투자 강요가 아닌 다른 수단을 선택하게 되죠.


당장 최근의 투니버스가 애니메이션 투자와 별개로 어린이 드라마 제작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인기 애니메이션을 재방, 삼방을 넘어서도 방영하며 경쟁 채널과 동시간에 같은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모습을 보세요. 기회는 균등하게 부여되지 않고, 작품을 제작하는 건 더 어려워졌고, 홍보하거나 특정한 시간대에 방영되는 건 그 이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만화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은 전체 애니메이션 가운데 일정한 비율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아니라, 전체 방영분에서 일정한 비율로 국산 애니메이션을 방영토록 만드는 애니메이션 총량제와 신규 제작 애니메이션에 일정한 인센티브를 주는 보완책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반영된 건 최초 쿼터제 시행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시점이며, 케이블까지 확대된 건 2010년대의 일입니다.




 마무리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만화는 어떻게든 우리 주변에서 그만의 영향력과 인기를 발휘했습니다.


 문화충격 그 자체였던 올림포스 가디언.


바로 학습만화라는 형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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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인식은


맞서 싸워 고치면 됩니다. 작품의 질은 높이면 됩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를 볼 수 없는 환경을 수용자나 제작자가 타개해내는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제한상영은 위헌이다"라는 결정을 내린 것도 현실적으로 극히 한정된 일부 극장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사실상 대중에게 매체를 접근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기회를 박탈한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애석하게도 TV애니메이션에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도저히 물리적으로 볼 수 없는 시간대에 편성되어 방영되는 바람에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죠. 지금이야 VOD서비스를 각 방송사가 제공하고 있고, 케이블 등지에서는 재방송을 하거나, 그조차 안된다면 DVD 등을 구하면 됩니다만 당시엔 재방송도, DVD도, VOD도 없었습니다. 방영시간을 놓치면 평생 못봤었습니다. (단, 방송사가 제작지원한 일부 작품들은 VOD를 제공하기도 했고, 1~2년 후에 잠깐 DVD붐이 불어 마찬가지로 일부 작품의 DVD가 발매되긴 했습니다)


 아청법 때도 이야기한 거지만, 법은 절대로 대중문화를 판가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접근성에 차이를 둘 뿐. 방영시간대나 권장시청연령도 결국 하나의 기준일 뿐 절대적인 법칙따윈 아니라는 거죠. 이를 근거로 현실적인 제한을 건다는 건 아주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고요.


90년대 후반, 아니 2000년대 극초반까지만해도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시간대는 대략 5시에서 7시 사이였습니다. 대략 5시 시간대엔 비교적 저연령대의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6시 시간대엔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연령의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방영했죠. SBS가 당대 만화왕국으로 떠오른데엔 6시 시간대에 그랑죠, 대운동회, 엘하자드, 나데시코, 다간, 포켓몬스터 등의 작품들을 연달아 히트시킨데서 기인합니다. (5시 시간대에 방영했던 작품은 재밌는 고양이 펠릭스, 핑크팬더, 형사 가제트 류의 작품들이었던 걸로 기억되네요.)


그런데 2000년대 극초반을 살짝 넘어가면서부터 애니메이션 편성 시간대가 1, 2시간씩 당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TV에서 애니메이션을 접하던 이들- 특히 어린이를 넘어 청소년으로 접어드는 이들에겐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오후 3시에 학교를 마치게 되고, 중학생이 되면 오후 5시에 학교를 마치게 됩니다. 그들이 집으로 바로 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학원을 가고, 독서실에 가죠. 이전에도 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발걸음을 서두르면 어느 정도는 볼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이르면 4시에서- 늦어도 5시면 방영이 되어버리는 작품들은 절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나 성인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바뀌어 버린 현실


실제로 방영시간으로 인해 몸살을 앓았던 프로그램이 한 둘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 이야기했던 바스토프레몬은 TV애니메이션의 대목이라 할 수 있는 방학시즌에 결방되는 치명적인 일을 겪어야 했는데, 이는 작품의 묘사와 방향을 놓고 방송사와 다퉈 제작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생긴 문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바스토프 레몬은 초반부의 호평과 별개로 결방 이후 사실상 이전의 설정과 상충하는 요소들을 늘어놓다 어정쩡하게 마무리되었고, 방영 시간조차 일관되지 못한 문제점을 안게 되었습니다. 포켓몬스터와 동시간대 경쟁했던 작품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안타깝지 않을 수 없는 점이었죠.



 온라인 상점같은데 뒤적거리다보면 바스토프레몬 비매품 DVD를 발견할 수 있는데, 다른 게 아니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뉴타입 부록으로 준 적이 있었습니다.


가이스터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당시 전문가 평이나 당시 시청자들의 평을 보면 상당히 괜찮은 작품인 듯 하지만, 실제로 이 작품을 실시간으로 시청한 사람은 제가 살면서 절 포함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당시 제 연령을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만, 당시 시청환경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 시간대를 기다리며 관람하고 감상하는 시청자가 사실상 전멸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는 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15세 이상 연령대를 생각하고 10시대에 방영될 것이라 여겨진 작품이 7세 관람가로 탈바꿈되어 오후 5시에 방영되었으니 볼 사람도, 볼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것이죠. 사실상 예고된 결말이었던 겁니다. 결국 이 작품은 시청률 부진으로 절반만 방영된 채 조기종영되어 버렸으며 이후 일본에서 제작지원받아 남은 분량을 방영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던 바다의 전설 장보고라는 작품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당시 인터넷의 만화 카페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결코 그 제목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팬카페에서 결집된 사람들과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 "순수한국제작 애니메이션인 바다의 전설 장보고가 5시 시간대에 배정되어 알지 못하는 사이 사라지는 건 곤란하다"며, 편성시간대를 변경코자 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의 대상이 되었거든요. 단순히 수천명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를 낸 데서 그친 게 아니라 각종 전문가들과 관련 종사자들도 "이 작품만은 그래선 안된다"라는 의견을 개진하였고, 실제로 5시, 5시 30분, 6시로 방영시간대가 서서히 늦춰지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6시 30분에 방영되어야 했던 작품이었고, 제작사는 가이스터즈와 마찬가지로 좀 더 늦은 시간대에 방영되길 바랐었으니까요. 물론 공영방송인 KBS의 방영작이었던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겠죠.


 바다의 전설 장보고 같은 경우는 지금도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만한 자료들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걸 얼마나 큰 위기로 바라봤는지,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죠.


거기다 점차 바뀌어가는 현실상의 문제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유아원, 유치원의 운영시간이 오후 5시까지입니다. 등하원 시간을 생각하면 유치원생도 5시 정각에 시작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기가 힘들죠. 초등학생이 학교 수업을 마칠 때가 오후 3시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는 연령대기 때문에 학원 한 두군데만 다녀와도 오후 6시가 훌쩍 넘어갑니다. 중학생요? 마치는 시간이 오후 5시고 마찬가지로 학원 한 두군데만 다녀와도 오후 8시에 가까워 집니다. 고등학생은 야자만 마쳐도 오후 11시~12시인데 더 말할 것도 없죠. 성인도 마찬가지.


유치원생도 보기 힘든 오후 4~5시 시간대에 편성되면서, 이 시간대에 애니메이션을 방영한다는 건 사실상 그에 흥미를 가질만한 이가 보든 말든 방송사는 관심이 없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악순환


먼저 앞서 언급된 작품들 상당수가 15세 이상 시청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데 주목해 봅시다.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게 아니라는 기치 아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기획과 제작기간을 고려해보면 사실상 90년대 당시 그것의 연장선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여전히 방송사 등은 "애니메이션들은 아이들이 보는 것이다"라는 관점 아래 이 작품들의 제작에 관여했고, 결국 많은 작품들의 주요한 설정들이 많게는 12세, 심하게는 전체연령관람가의 기준에 맞춰 수정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설정이나 기획과 다른 형태의 작품이 되어 버렸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더 큰 문제는 심하게 당겨진 방영시간대가 이러한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겁니다. 볼 수 있는 사람들 자체가 적은데다 완성도가 떨어지니 시청률이 더 떨어지고, 방송사는 시청률이 낮으니 더 단가가 싼 시간대로 옮겨야 한다며 방영시간대를 더 당겨 버립니다. 6시30분에서 4시30분이라는 시간대까지 옮겨지면서 방송은 최소한의 안정적인 방영을 담보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시청률은 더 더욱 떨어집니다.


악순환이죠.


 주 시청자층이 볼 수 없는 시간대 편성→시청률이 떨어진다→더 이른 시간대로 변경→시청률이 더 떨어진다→결방 내지 폐지라는 악순환을 타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시청률이라는 건 일정한 안정성을 담보로 할 때 얻을 수 있는 성과입니다. 언제 종방될 지도 모를, 방영 시간이라는 게 언제 바뀔지 모를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죠. 그 대단한 정도전도 방영 시간대가 잠깐 바뀌자 시청률이 쫙 빠져 관계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했었으니까요.


앞선 바스토프 레몬, 바다의 전설 장보고, 그리고 이후의 스피어즈 모두 오락가락하는 편성시간으로 손해를 보았고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부당한 평가를 받았던 바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문화 산업의 총아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2등 내지 3등 문화 취급하며 최소한의 안정성도 담보해주지 않으니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죠. 그네들에게 있어 애니메이션은 언제 편성을 빼고 지워도 큰 무리가 없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겁니다. 오죽하면 스포츠 재방송에 애니메이션 편성이 밀리는 일이 있었을까요.


애초에 4시~5시 시간대는 여러 특집프로그램이 시험적 방영이나 비인기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간대였습니다. 24시간 방영을 개시하고 나름의 시간대마다 그만의 시청자층이 있다 보는 지금과 는 엄연히 달랐죠. 엄연히 한국산 제작 애니메이션이 40%의 시청률을, 6시 시간대에 20%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방송사는 변화하는 흐름도 잡아내지 못했고, 최소한의 보장도 해주지 못했던 겁니다.


디즈니 만화동산을 떠올려 보세요. 평일의 기상시간보다는 늦지만 결코 늦잠을 잤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간대에 배정된 덕에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너무 이른시간에 편성되었다면, 혹은 너무 늦은시간대에 편성되었다면 과연 이만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적절한 시간대에 배치되어 삶의 리듬에 긍정적으로 호응하며 영향을 주었던 이 프로그램만큼 편성시간대의 중요성을 알린 프로그램도 없을 겁니다.




 마무리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해 문화 산업의 종사자들과 그 향유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며 그만의 의견을 밝힐 수 있었던 데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과 만화 이야기 초반부 만화를 만들거나 보는 것이 죄악이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개벽할 만한 변화죠.


하지만 이러한 발전상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잔혹한 현실이 문화또 하나의 잔혹한 현실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따라주지 않는 정책이 그러했죠.


 애니메이션 쿼터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일이 삼국 합작 애니메이션인 몬타나 존스.


애니메이션 쿼터제와 총량제의 첨예한 대립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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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