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에선


뜻밖의 핑크빛 기류가 올라옵니다.


 헤롱헤롱




 여자 전사


사실 본편의 내용은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바론 캐슬을 동료로 삼기 위해 캐슬 다임을 시스터 케이트로부터 빼앗기 위해 성으로 잠입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자연스레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커다란 싸움 자체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주로 묘사되는 것은 일행이 함정에 빠지는 장면과 중간보스급 캐릭터와의 잠깐의 대결에 그치니까요.


하지만 본 편에 나온 흥미로운 존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여성인 적의 등장이죠.


시스터 케이트를 필두로 그녀의 수하는 과거 헤포이 일행에게 패했던 노덴킹을 제외하면 전원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캐릭터 구성과 작품 전개 측면에서 크게 세 가지 효과를 노리고 만들어진 요소에 해당합니다. 하나는 여성인 시스터 케이트의 여성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며, 다른 하나는 일종의 섹스어필을 위한 눈요깃거리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두 말할 것 없이 작품의 새로움을 불어넣기 위함이죠.


실제로 원피스의 보아 헨콕, 환상서유기의 아마조네스, 사상 최강의 제자 켄이치에 등장하는 프레야 등이 이러한 여성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뢰시맨의 레이 네펠과 그녀의 두 부하 역시 마찬가지고요. (각기 새로운 내용 전개를 위한 디딤돌로 작용합니다. 새로운 설정의 도입, 점점 과격해지는 싸움의 심각성, 외부와의 격리 등)


 후뢰시맨의 레이네펠은 여러모로 여자 악역 간부의 전형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한 캐릭터입니다. 


실제로 유명한 여성 전사나, 그러한 여성이 전사들의 집단을 이끈 경우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해당 집단 전체가 여성만으로 구성된 경우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삼국지 게임에 고대무장으로 수록되며 국내에도 유명해진 여성무장 진양옥, 프랑스 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잔다르크가 대표적이죠. 또한 그리스 신화에는 아테나를 필두로 한 여성 전사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아마조네스와 헤라클레스의 대결은 여러 서적에도 실려 연구될 정도였고요. 북구신화의 발키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근현대사에 이르러서도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저격수 부대를 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그러한 측면에서 창작물에서 이러한 여성전사나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전사 집단을 묘사하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실제 역사에도 존재하여 그 존재의 당위성을 별도로 어필할 필요도 없거니와,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남성이 주된 향유자인 문화의 경우, 그렇잖아도 비교적 쓰임이 제한된 여성 캐릭터의 작용 자체가 더욱 좁아지는 경우를 낳게 됩니다. 아무래도 모험 및 배틀물의 성향이 강한 작품에 있어 보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은 착하고 순수한 남자주인공이나 삐뚤어졌지만 그래도 자기가 정한 원칙은 끝까지 지킨다는 라이벌 캐릭터에 국한되기 때문이집니다.


 세인트 세이야에서 여성 성투사는 아예 얼굴이 가려져서 어필할 기회 자체가 극히 적으며, 나루토의 닌자 3인방 가운데 여자 닌자는 어중간한 캐릭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여성 캐릭터 자체는 그 매력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전개나 캐릭터와의 관계도를 형성하는 것을 통해 자기만의 개성을 뽐내기보다는, 단순한 볼거리가 되어 내용 면에서는 공기가 되어 버리는 일이 잦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하와 같습니다.


먼저 남자와 여자의 싸움을 묘사하기가 아주 힘들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엄연히 개인차에 따라 갈리는 남녀간의 차이지만, 생물학적으로 남자가 여성에 비해 근육량이 많은데다 체구 역시 크기에, 대체적으로 싸움은 남자가 잘하는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남자와 여자가 싸우는 것은 정정당당한 일이 아니라는 통념으로까지 자리잡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싸움을 그리는 것도, 수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는 거죠.


 에반게리온의 미사토는 여자 캐릭터가 보이는 섹스어필에 대해"서비스"라 표하며 이를 고유명사화시킨 캐릭터로 유명합니다. 그녀 역시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에서 서비스 캐릭터로 기능하기도 했고요.


작중 내용상 남녀들의 관계가 대등하게 묘사된다 하더라도 결국 작품을 보는 것은 작품밖의 사람이니 이느 결국 언제나 일정한 한계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설사 그 존재가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이라 하더라도.




 남자 체면에 여자랑 싸울 수는 없지!


지금은 비교적 적게 들리지만, 한 10여년 전만해도 대중문화 매체에서 "남자가 여자와 싸우는 건 꼴사납다"는 류의 대사를 듣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남자가 여자와 싸우는 건 말도 안된다"라는 식의 논리로 무장한 캐릭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엔 참 괜찮아 보이는 발언입니다. 육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남자가 여자와의 싸움 자체를 하지 않겠다 이야기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로까지 비춰집니다.


 원피스의 상디는 기사도를 내세우며 여자와는 죽어도 싸우지 않는다 이야기하다, 결국 당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만큼 각오가 강하다는 의미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도와야 하는 동료를 돕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애초에 기사도는 여자만 중요시하고 돌보자는 관념이 아닙니다.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봐도 이 발언이 굉장히 차별적인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해당 매체 속에서 육체적인 능력의 겨룸은 단순히 누가 강하냐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당면한 문제에 있어 나설 기회의 분배와 캐릭터성의 어필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아예 해당 내용 자체를 묘사하지 않겠다는 건 오늘 날 신장하고 있는 여성의 권한과, 남녀 평등에 대한 지향을 우습게 만드는 역할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여성 캐릭터가 가진 제한된 쓰임새까지 맞아떨어지면 이야기는 보다 더 심각해집니다.


위 발언은 아예 여성에 대한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아예 경쟁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박탈하는 발언으로도 볼수 있는 겁니다. 이는 레이디 퍼스트의 기원과 그 변질된 쓰임새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입니다.


마치 여성을 위하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엔 신사라 불리는 높은 직위의 계급있는 남자들을 대접하기 위한 사회적인 상황이 작용했었으니까요. 이처럼 표면적인 이익이 해당 집단의 권리 전체를 신장하는것과는 무관한 상황과도 같은 겁니다. 경쟁의 대상이 아닌 보살핌이나 보호의 대상으로만 상대를 국한하는 것이 과연 상대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거라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남자고 여자고 마구 패고 다니는 주인공보다야 "나는 여자하고만큼은 못싸운다"라고 말하는 캐릭터가 훨씬 구성하기쉬운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자 캐릭터가 남자 캐릭터 이상으로 활약하는 만화에 이런 제약을 가한다면, 그게 과연 얼마나 납득할 만한 이야기가 될까요?


그럼에도 여자를 대립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으려는 캐릭터들이 지금도 여전히 새로이 생겨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가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답답하다느니,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그딴 소리를 지껄이냐느니 하는 식으로 말이죠.


실제로 최근에는 이러한 대사에 여성을  위치시키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치시키는 경우가 잦습니다. 대표적으로 영유아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죠. 이 또한 지켜야 하는 대상이 제한된 상황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도출되는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마무리


대중 문화에 있어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몇배나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장 RPG전설 헤포이만 해도 주인공과 그 라이벌 캐릭터들이 전원 남자이며, 적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내역의 미야미야나 적 캐릭터의 시스터 케이트 정도가 예외일 뿐이죠.


그러한 측면에서 RPG전설 헤포이는 아주 전형적인방식으로 여성 캐릭터를 이용합니다. 오래된, 또한 남녀간의 관계에 깊이 생각하지 않은 저연령층 작품임을 티낸 것이죠.


하지만 작품이 올바른 상을 제시해야 하는 터임과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는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상징임을생각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꾸준히 비판이 가해진 여러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개편되어 왔고, 거기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20여년도 훌쩍 넘은 작품의 사상에 불만을 가지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요.


 천만관객을 달성한 겨울왕국은 각기 조금씩 다른 자주적 여성상을 그려냅니다. 그것이 그만큼 떨쳐내기힘듬에도 이룩한 성장이었기에 천만관객을 도달할 수 있는힘을 얻었던 건지도 모르죠.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25화에서는


바론캐슬을 구하기 위해 타란츄리아를 향해 갑니다.


 바론이라는 이름처럼 서구식 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전편의 하니와 캐슬 정도를 제하면 대부분 서구식 성의 모습을 모델로 하고 있으니 함정이라면 함정이겠네요.




 변조의 끄트머리


본편에서 새로운 적이 등장합니다. 마왕 드라큐네스의 여동생이자 타란츄리아를 통해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시스터 케이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시스터 케이트와 그녀의 목적, 그리고 그녀가 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동원하는 수단은 이전과는 어느 정도 차별화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중간보스급 캐릭터에 이미 익숙해진 상황입니다. 마법을 쓰다 육체파 계열로 변신했던 쟈쿤, 그 자신의 단단한 몸을 십분활용하면서도 계략을 꾸몄던 간간지, 최초의 두뇌파 악역이었던 노덴킹, 그리고 세력을 통해 헤포이 일행을 압박했던 브리킹3세를 보아왔으니까요.


하지만 시스터케이트는 여러모로 신선한 존재입니다. 일단 여자고, 이전에 헤포이 일행에게 패했던 노덴킹을 수하로 삼고 있으니까요. 더 나아가 최종보스인 드라큐네스의 여동생이기까지 하니까요.


 소녀혁명 우테나의 지향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녀인 캐릭터라는 것으로 상업적인 것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결국 소녀인 캐릭터는 여러모로 눈에 띈다는 것이죠.


그녀가 이야기에 등장한 방식 역시 이전까지의 적과 규모를 달리합니다. 이제까지의 적은 비교적 제한된 장소에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이는 헤포이 일행이 모아야 하는 것과 성장의 필요성 양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요소기도 했죠. 결과적으로 헤포이 일행은 그들이 지배하는 곳에 도착할 필요가 있었고, 양자의 만남 이후에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스터 케이트의 경우는 그녀의 목적 자체가 전세계에 해당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적을 향해 헤포이가 가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헤포이 일행 앞에 그녀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필연적인 만남은 다소 작위적으로 이뤄져 있지만 이야기의 새로운 변조를 부여함과 동시에 스케일을 키우는 것으로도 알맞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사람씩 등장하던 중간간부가 두 명이나 등장했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최종보스의 여동생입니다. 거기다 국지적으로 진행되었던 이전의 이야기와 달리 이제는 전세계를 구름으로 덮어 지배하겠다는 계획을 저지해야 합니다.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상황이 된 것이죠.


 실제로 이야기의 스케일을 확장시키기 위해 세계관 자체를 키우려는 시도의 주된 매개체가 천공의 섬 등이기도 합니다.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 역시 특이합니다. 이전과 달리 성기신군을 깨울 필요도 없고, MD나이트가 하나 둘이 아닌 복수이며, 이들은 헤포이 일행을 시험한다거나 할 생각이 없이 함께 싸우는 동료가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2분기를 지난 시점에서 방영되는 내용이기에 슬슬 1차 절정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겠죠.




 상징


이처럼 본편에는 여러 새로운 요소가 도입되기에 상황의 설명에 주력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타란츄리아를 향해 가는 과정에 에피소드 하나를 통채로 할애하죠. 하지만 내용 전달 수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본 편 속에는 되짚어 보면 굉장히 의미심장한 상징들을 많이 있습니다.


첫째로 어둠으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죠. 어두운 것은 여러문화권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되며, 여러 매체에서 빛=선으로 묘사하는 반면 어둠=악으로 묘사합니다. 당장 RPG전설 헤포이 역시 헤포리스와 다크 헤포리스의 대립이니까요. 본 편은 단순히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을 관념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화된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바로 태양을 차단하는 것이죠. 만물의 기원으로까지 불리는 태양을 가리는 것을 통해 세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급변한다는 묘사 역시 여러 매체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바 입니다. 인간은 태양없이 살 수 없으니까요.


 흥미롭게도 매트릭스는 이를 역으로 뒤집어 인간 스스로 태양을 포기한다는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죠.


또 하나는 천공의 도시를 향해 떠나는 일행의 모험입니다.


흔히 걸리버 여행기에서의 라퓨타가 이러한 묘사의 최초로 알려져 있으나 여러 신화에서 하늘 위의 섬이나 존재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당장 한국에서도 달나라 토끼니, 옥황상제가 있고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도 하죠. 물론 본편은 정형화된 하늘의 섬으로의 여행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마법의 섬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하늘로 오른다는 설정 자체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모험과 도전을 상징화한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하늘로의 여행이니까요. 실제로 천공의 섬 라퓨타, 원피스의 하늘섬, 드래곤퀘스트의 천공의 도시는 하늘에 있는 섬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단 그 이면의 모험과 꿈, 희망을 상징화한 표현에 해당합니다. 헤포이의 경우는 그것이 도전이 되겠고요.


 천공의 성 라퓨타는 여러모로 많은 매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RPG전설 헤포이는 비교적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창작물들이 보여준 보편적인 모습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 클리셰를 무작정 답습했다기보다는, 클리셰가 될 정도로 오랜기간 이어져온 소재가 분명한 상징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 슬슬 마무리를 지어봅시다.


흥미롭게도 본편에 등장하는 스모토리는 그 이름처럼 스모를 하는 새입니다. 일본의 전통문화라 할 수 있는 스모를 하는 캐릭터가 나온 건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죠. 애초에 일본 만화니까요. 하지만 이 캐릭터가 주인공 앞을 막아선 악역이라는 점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만약 한국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씨름을 하는 캐릭터가 악당으로 등장하는 게 가능할까요?


 실제로 80년대 소녀만화의 대표작 근육맨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초인캐릭터로 울프맨이 등장합니다. 첫 등장은 주인공의 라이벌이라기보단 악당에 가까웠죠. 실제로 이후로도 쭈욱 어중간한 비중을 보여줍니다.



사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판타지 역사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낍니다. 있는 그대로 공부하는 역사와, 재미있게 바꾸어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차이를요. 왜곡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떠나 일단 흥미롭게 활용했던 것이 일본의 서브컬쳐가 발전할 수 있었던 토양이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문서서식


브리킹을 물리칩니다.


 처음에 대체 왜 이런 조합인가 했는데, 그제서야 알겠더군요.




 불확정성의 도입


몇번이고 강조하는 거지만, 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청중을 매혹시키지 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라도 이전에 몇번이고 쓰인 소재와 연출이라면 결국 필연적인 한계를 맞이하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작자는 최대한 독자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몰입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이야기 속에 불확정적 요소를 도입하기 마련입니다. 설사 그것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본편은 이전까지 몇번이고 반복된 캐슬간의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새로운 요소들을 대거 도입합니다. 가장 먼저 싸워야 하는 장소를 제한하며, 싸울 수 있는 패턴을 제한하고, 더 나아가 싸워야 하는 이유까지도 재배치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메카닉 액션은 쉽게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반대로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소리가 됩니다.


 다양한 액션을 소화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직도 헤포이는 강해져야 하고, 이뤄야 하는 일들은 많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죠.


본편에서 주인공들이 활약할 수 있는 방식은 극히 제한됩니다. 싸워야 하는 적은 사실 세뇌당한 아군이며, 적은 자기만의 탈출로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후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기까지 합니다. 실상 전통적인 방식의 대결은 이루어질 수가 없죠. 자연히 이야기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게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 세뇌당한 적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이전까지 세뇌당한 적은 단순히 구해내야 하는 대상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결과에 귀결되었죠.  언제나 목표로만 작용하는 적은 정직한 활용법에 해당하긴 하지만, 반복되면 결국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됩니다. 여덟이나 되는 캐슬 모두에 이러한 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패착인 셈이죠.


그에 따라 이번의 이야기는 적이된 아군 캐슬을 목표외의 수단으로까지 확장시킵니다. 적의 세뇌를 그 자리에서 푼 후 아군 캐슬로 합류하게 만들어 적과 싸우게 만드는 것이죠.


 체스에서 폰은 승급이 가능하며, 원하는 말의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일본 장기에서는 잡아먹은 상대의 말을 쓸 수 있죠. 이처럼 오래 내려오는 게임에도 불확정한 요소를 쓰곤 합니다.


이는 확실한 전력이 될 거라 생각된 이를 제쳐두는 데에도 충분한 설득력을 부여하며, 동시에 적이 즉각적으로 아군이 되는데에도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왕도가 왕도인 이유는 그것이 훌륭한 균형성과 대립성을 소화해 내기 때문입니다. 적이 된 아군을 다시금 아군으로 돌린다는 것은 적의 전력이 공백이 된다는 의미며, 이는 곧 정의의 아군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적을 물리친다는 인상보다는 다수의 아군이 적에게 몰매를 때린다는 인상을 줄 여지가 생깁니다. 어디까지나 적재적소에 양념처럼 사용되어야 하는 변조라는 의미죠.




 뒤를 부탁한다.


이야기에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특정한 연출이 있습니다. 특히 다수의 아군이 적을 향해 돌격할 때 자주 나오는 연출이죠. 흔히 "뒤를 부탁한다."며 뒤로 남아 적을 막아내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당장 떠오르는 것만 세어도 나루토, 원피스, 근육맨, 세인트세이야, 타이의 대모험의 다섯 작품이니 자세히 따지고 들자면 셀수도 없겠죠.


사실 전술적으로 봤을 때,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전면전에 있어서는 그리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물론 유인책이나 방어책 등에서는 고대고 현대고 요긴하게 쓰이는 전술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이라 평하기엔 이러한 연출을 사용하는 작품들의 등장인물의 숫자는 굉장히 한정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뒤는 너희에게 맞기마!" 혹은 "너희는 앞으로 가라. 여기는 내가 맡지." 등의 대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출을 사용하는 것에는 크게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야기에 비장함을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고난앞에 지금까지 동고동락해온 동료들이 하나 둘씩 희생하며 주인공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주는 것만큼 위기감을 고조시켜 주는 연출이 있을까요.


이를 통해 각 캐릭터는 자신만이 활약할 수 있는 장을 얻게 됩니다. 각 캐릭터의 기능점을 잡을 수 있다는 게 바로 두번째 이유입니다. 캐릭터의 숫자가 많아지게 되면서 자연히 작가는 메인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일부 캐릭터는 이전만큼 묘사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유로 주인공 일행을 갈라놓게 되면서 각자가 자기의 역할에 몰두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개성을 다시 한 번 수용자에게 강하게 어필합니다. 이는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세번째 이유는 바로 주인공에 대한 몰입도 증가에 해당합니다. 이야기의 끄트머리로 갈 수록 주인공과 주인공의 목표 사이의 거리는 좁아지며, 이들 사이의 가지들도 하나 둘씩 날아가게 됩니다. 자연스레 독자의 이입의 대상은 주인공으로 한정되며, 자연히 주인공이 부각되며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잇게 됩니다.


 타이의 대모험의 흉켈과 근육맨 극장판에서의 워즈맨도 똑같은 행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경향을 스스로도 꺼리고 있습니다.


일단 앞서 말한 전술에 대한 설득력 문제도 있지만, 선택받고 있는 누군가가 모두가 함께 구성하는 이야기를 단 한 명에게 집중한다는 것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지금에 있어 그리 어울리는 것이 아닌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 구조가 역사의 모든 것이 결국은 한 사람의 의견과 의사로 흘러간다는 영웅주의로의 귀결로 이어질 우려가 높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누군가는 성과를 이루며 목표를 달성하는 반면 주인공이 되지 못한 누군가는 희생만 해야 한다는 소리가 되니까요.




 마무리


본편에서 앞으로 쓰일 이야기에 대한 복선이 대놓고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복선이 다시금 회수되는 것은 꽤나 먼 나중의 일이 되는군요. 그 정도로 태양의 기사 피코는 황당하리만치의 과격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본편과는 관계가 없는 여담입니다만 설날이 코앞인지라 다시금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습니다. 한동안 블로그에 소홀했지만, 예약글을 써놓았기에 대략적으로 굴러는 가고 있었습니다만, 이젠 그조차 여의치 않네요.


...음. 정신도 없고...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23화에서는


마구카프와의 승부에서 이깁니다.


 헤포이가 싸워 이기기는 합니다만, 이야기의 중심은 하니완 왕자에 맞춰져 있습니다. 서술과 진행까지 겸하지는 않지만.




 분산된 권위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군인 그랜드 캐슬이 적과 싸우는 것을 거부합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 시청자야 수월하게 볼 수 있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크게 재미를 부여할 포인트를 잡기 힘들기도 하고, 분량을 채우는 것도 훨씬 더 공들여야 하게 되니 뭐 납득은 할 수는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드래곤 캐슬, 배틀 캐슬, 마하라 캐슬 모두 어떠한 사정 때문에 바로 헤포이 일행에게 협력하지 않았었죠.


또 다시 이러한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건 시청자를 질리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유를 달리함으로써 여기에서 탈피하려 합니다. 그랜드캐슬은 용사의 권위나 실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싸워야 하는 상대인 하니와캐슬이 광마신군이 아닌 성기신군이라는 점을 들며 싸움을 거절합니다.


실제로 이번의 에피소드는 캐슬간의 싸움의 전초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당장 캐슬끼리 맞부딪힐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이후 캐슬로 싸워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검만 되찾는다고 해서 권위가 다시금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와 맞서싸울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었을 뿐.


흥미로운 점은 용사이면서도 성기신군을 이끌지 못하는 헤포이의 모습은 브리킹3세의 거짓된 권위에 의해 자신의 권위가 박탈당한 하니완의 모습이 겹쳐진다는 점입니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정의의 검이라는 권위 외에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기에 도출되는 상황입니다.


헤포이가 용사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 자신이 용사에 걸맞는 실력을 가지지 못하는 한 그의 용사로서의 권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니완 왕자 역시 그 자신의 혈통과 정의의 검이라는 표면상의 권위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부족한 의기로 인해 왕자로서의 권위가 박탈당한 상황입니다.


즉, 이들이 자신이 가진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활약과 성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작가는 이들이 성장해야 하는 진정한 지향점을 제시해야 하죠.


 어째서 상대와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에는 대부분 작품의 주제와 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다 건강한 정신으로 잘 자라길 바라는 것이 대부분의 소년만화의 특징이죠. 퍼시잭슨 시리즈는 여기에 더해 가족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겻들였습니다.


본편에서 그것은 바로 정의에 해당합니다. 어디까지나 정의는 하나의 관념에 불과한 상대적인 것임에도 그에 대한 지향성의 중요성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걸 강조했죠. 실제로 권위와 실력을 가진 브리킹3세는 정의를 갖추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 권위를 박탈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류트는 하니완의 선배이자, 헤포이와는 다른 라이벌 캐릭터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며 이러한 지향성에 대한 정도를 내세웁니다.




 설득력있는 성장의 이유


깨놓고 하니완 왕자가 갑자기 성장하여 적과 대등하게 겨루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일입니다. 이전까지 말만 앞세운 채 과보호만 받아왔던 하니완 왕자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을 들인 설득력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실제로 주인공인 헤포이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여기저기 부딪히며 서서히 성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을 주인공도 아닌 스쳐가는 조연이 한 순간에 이뤄내니 이야기의 이질감이 심해지죠.


그에 따라 이러한 고저차를 줄여주는 역할이 필요한데, 그것을 바로 류트가 담당하게 됩니다. 하니완과 같은 처지의 삶을 살았고, 또한 그가 겪었던 고생을 알고 있는 류트만큼 하니완의 성장의 필요성과 그 방식을 절감하고 있는 이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 구정물을 덮어써가며 하니완의 기를 살려주고, 그가 지향해야 하는 진정한 정의와 그를 통해 회복해야 하는 권위의 성질을 설명합니다.


 드래곤볼을 무시하는 이들도 많지만, 하나의 이야기와 설득력 측면에서 드래곤볼만큼 훌륭한 오락매체를 찾는 게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등장인물들에겐 명확히 성장해야 하는 목표가 있으며, 이러한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의 장애가 작용하며, 이것을 잘못 적용하였을 경우의 역풍까지도 묘사하며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어색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류트와의 싸움에서는 류트가 바주었고, 마구카프는 기사도에 따라 적과 싸우는 캐릭터라 부연하더라도 어색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말투며 행동이며 어려도 너무 어려 보이니까요. 하니완 왕자가 이등신 캐릭터가 아니라 최소한 3.5등신 캐릭터만 되었어도 이러한 이질감은 훨씬 줄어들었을까요.


여하튼 등장인물의 성장은 수용자에게 적지않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장치이니만큼 이것이 최대한 설득력있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청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의 성장은 결국 변질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괜히 소년만화의 클리셰 가운데 수련이나 좋은 무기를 모으는 것이 있는 게 아닙니다. 내면의 성장에만 60권을 들인 나루토를 생각해보세요.




 마무리


여담이지만 본편에서 브리킹3세의 능력이 처음으로 제대로 펼쳐집니다. 마치 부두교의 그것이나 하시시메 전설의 저주인형을 이용하여 적을 해치는 방식이죠. 특이하게도 상대와 닮은 인형을 만든 후 저주를 거는 것만으로 효과를 발휘합니다. 보통 이러한 소재의 작품에선 아군의 머리카락 등을 이용하는 걸 생각하면 꽤나 단순하면서도 위협적인 방식이죠.


아마 저연령층 애니메이션임을 고려한 결과 세세한 이야기를 제했기 때문일 듯 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나온 잭은 여러모로 부두인형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저연령층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인지 일본의 전통 토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하니와 캐슬은 적이라는 포지션에도 사실은 아군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합니다. 아무리 서양권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도 결국 일본 내수용 작품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작품이니 일본의 문화를 악으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22화에서는


정의의 검을 찾아냅니다.


 정의의 검을 핵심스토리로 내세웠으면서 정작 이미지는 부메랑을 써먹었군요.




 변조의 부여


지난 에피소드에서는 브리킹이 가진 정의의검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상황을 반전시키는 요소는 결정적인 요소는 되지 못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가 가지지 못한 진짜 정의의 검을 찾는 것이지, 단순히 그가 가진 검이 가짜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는 이미 그가 "정의의 검을 가진 자의 의사를 따른다."라는 대전제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즉, 적극적으로 그의 부정을 주장하기 위해서 명확하고도 가장 확실한 방법인 정의의 검을 찾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 되었죠. 하지만 무언가 물건을 찾아 헤매고 그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지겹게도 반복된 일입니다. 여태까지 헤포이 일행은 캐슬들을 깨우기 위해서 다임을 찾아 헤맸고, 적을 물리치기 위한 물건을 찾기 위한 여러 물건을 찾아다녔으며, 자신을 단련시켜주기 위한 존재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럴때마다 기막히게 기연을 만나 사건을 해결하곤 했습니다만, 이것도 한 두 번이죠.


그에 따라 본편은 크게 세가지 장치를 하여 이야기에 변조를 부여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 뜻대로 따라오지않는 엄격한 아군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죠.


하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역을 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헤포이에서는 악역에 대해 굳이 많은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마왕 드라큐네스부터 시작해서 그의 직속 부하들까지 그 모습을 모두 드러냈었죠. 그들의 능력 자체는 헤포이와 부딪힐 때 비로소 구체화되었습니다만, 그들의 외형만으로 대충 짐작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하들 역시 마찬가지였죠. 이들은 그 목표조차 철저히 헤포이에 대한 방해로 맞춰졌기에 그리 매력적인 악역으로 기능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 모습을 마구카프는 기존의 캐릭터들과 차별화되는 행보를 보여줍니다. 분명 적 소속의 캐릭터이기는 하나 은근히 하니완 왕자가 받는 부당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그가 무언가 이뤄내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상반된 입장과 태도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로 추분하죠.


두번째는 지금까지 개개의 사건으로 연결되던 여러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하는 연속성입니다. 이전까지는 다임을 찾고, 캐슬을 깨우며, 적을 입지를 무너뜨린 후, 수련을 하고, 적과 싸워 물리치는 일련의 과정이 개개로 벌어졌습니다. 이야기 자체야 쉬워졌습니다만, 아무래도 뜬금없다는 인상을 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필요한 부분이 최대한 생략되고 각 사건이 긴밀한 연결성을 가집니다. 하니완 왕자의 목적을 달성토록 하는 것은 적을 물리치는 직접적인 수단이되며, 수련과정 역시 이러한 과정에 포함시킨 후 해당 목적이 이루어지면 바로 캐슬이 부활하는 겁니다.


일련의 사건들을 한꺼번에 연결시켜 이야기의 속도감을 부여하고, 각 캐릭터간의 긴밀한 연결성을 통해 상징성을 부여합니다. 이는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원활할 뿐더러 설득력 역시 높아 보다 완성도 있는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좋은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해당 사건을 다룬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해당 사건이 벌어지게 된 계기, 중간과정, 결과 등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며 전개되어야 비로소 좋은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죠. 있는 현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다큐멘터리도 그런데, 만들어진 이야기의 긴밀한 연결성은 오죽할까요.


세번째는 복선의 부여입니다. 이제까지의 헤포이는 전형적인 용사물에 해당했습니다. 변조로 가해진 주인공의 성질들도 실상 그에게 직접적으로 몰입하게 된 지금에 와선 전혀 새롭게 받아들여 지는 요소가 아니게 되었죠. 애초에 그 자신이 특별한 용사인 것도, 이전의 용사들과 궤를 달리하는 차별적 요소를 가진것도 아니니까요. 자연스레 시청자들은 헤포이 주변의 존재들에게 눈이 돌아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류트는 굉장히 쓸모있는 캐리터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왕자라는 신분에 더해 그 자신이 용사를 지망하고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그는 발전의 여지가 크고, 쓰임새 역시 아주 넓었습니다. 특히 이번에 하니완 왕자와의 더블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로 비슷한 처지의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연과, 그를 상징하는 물건들 간의 상응은 헤포이라는 이야기가 한층 더 깊어질 수 있는 특징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거기에 조만간 등장하는 이야기의 급변적 요소를 완화시켜주는 것으로 작용하니, 1석2조라 할만하죠.




 복선


제가 처음 애니메이션 리뷰에 썼던 글의 주제는 다름아닌 겟타로보 시리즈였습니다. 이후에는 공상과학세계 걸리버보이였죠. 양자 모두 제작자든 이야기의 구성이든 이야기할 '꺼리'가 많았기 때문에 선택된 작품이었습니다. 당연히 RPG전설 헤포이 역시 이러한 작품에 해당하고요.


70, 80년대 수직적으로 상승한 아니메들의 상업성과 작품성은 이윽고 하나의 정형을 완전히 형성하게 되었고 90년대 초반엔 이러한 정형을 비틀어 표현하는 여러 작품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전의 공상과학세계의 걸리버, 그리고 이번의 RPG전설 헤포이가 대표적인 예에 해당하죠.


이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의 고저차를 줄이는데엔 필연적으로 여러 복선이 쓰이기 마련입니다. 복선은 이야기의 깊이와 흥미를 더해줌과 동시에 앞으로 펼쳐지는 내용을 시청자가 어느 정도 감을 잡게 해서 이야기 자체를 거절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쓰이는 것이니까요.


 응답하라 시리즈에서의 누군가의 남편찾기처럼 스릴러와 서스펜스 등의 장르에 복선은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 이야기적 장치입니다.


흥미롭게도 본편에서 사용된 복선은 이야기의 진행자이자 주인공인 헤포이가 아닌 그의 라이벌이자 동료인 류트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것입니다. 류트의 각성에 반응하는 그의 부메랑과 정의의 검은 단순히 그가 가진 왕가의 적통이라는 관계도만이 아닌 보다 숙명적인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브캐릭터의 활약은 이야기의 전체적인 균형을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라면 즐길 수 있는 사항을 풍성하게 만들기에 환영할 만한 일이죠.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문서서식


브리킹3세로부터 정의의 검을 되찾을 것을 결의합니다.


 사실 본편의 핵심 인물인 하니왕 왕자는 헤포이와 그리 나이차이가 나는 인물도 아닙니다. 하니왕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정작 헤포이의 성장은 도외시되죠.




 작품 속 교훈


정의란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흥미로운 철학거리입니다. 이만큼이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생각거리가 또 있을까 싶네요. 법과 도덕, 그리고 관념 등 우리의 그릇된 본능을 억압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고 그러한 관념을 하나로 모아주는 정의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법원의 법관, 경찰서, 자경단원, 더나아가 정치인들이 추구하는 목표도 하나의 정의의 실현에 해당하죠. 물론 이들의 정의가 반드시 합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먼저 주체가 다르고, 정의를 수행하는 수단도 다르니까요. 한 쪽에선 정의에 속하는 내용도 다른 관념에서 살펴보면 악이 되는 것도 결코 드문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에 따라 다양한 창작물은 이러한 정의를 다루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통용되지 않는, 혹은 자기만의 정의라는 식으로 정의의 이면을 다루곤 합니다.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고민거리의 집결인 히어로 물에서 다루는 정의는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KOF시리즈의 김갑환은 정의 바보 캐릭터로 나옵니다. 즉, 자신의 정의에 어긋나는 인물은 어떻게든 계도하려 들죠. 문제는 이것이 지나쳐 실상 개그캐릭터화 되었다는 점입니다.


본편에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시점에서 앞으로 여행을 해야 하는 곳을 "정의의 나라 브레이브랜드(BraveLand)라 소개합니다. 즉, 본편의 핵심키워드는 용기이며,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이야기였죠.


바꾸어 말하자면 본편에선 정당하지 않은 정의를 제시한다는 소리가 됩니다. 본편에선 행동의 옳고그름이 아니라 정의의 검의 소유주에 따라 제멋대로 바뀌는 정의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왕권이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권위에 의지하여 누군가에게 자기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잘못된 사회상을 비판거리로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계몽적 효과를 지니고 있죠.


본편의 왕자 하니왕은 왕자라는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검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하니왕 왕자는 류트와 헤포이의 계도의 대상이 되고요.


 류트는 하니왕 왕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요구합니다. 이는 자주적인 어린이를 키우는데 용이한 교훈이죠.


헤포이는 두말할 것 없는 용사입니다. 그가 휘두르는 검의 이름은 다른 것도 아니고 용사의 검입니다. 그에 비하면 류트는 용사 지망생으로 격하되지만 그 자신이 드래곤랜드의 적통 왕자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예 현 드래곤랜드의 국가 수장이니까요. 양자 모두 하니왕 왕자와 일정한 관계도를 형성합니다.


특히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결국 국가에서 자신의 지위를 복권시킨 류트일 것입니다. 그는 하니왕 왕자와 같은 유소년기를 보냈으며, 누구보다도 그가 나아가야 할 바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보호의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하니왕 왕자를 성장과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죠. 그 자신의 권리를 그 자신이 수행할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이 아닌 헤포이를 본받기를 바라는 모습은 이 캐릭터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시청자에게 각인시킵니다.


조금은 비뚤어졌으면서도 심지 하나는 굳은 약간 나쁜 남자의 매력을요.




 왜색


서구식 판타지에도 동양적 사관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더 나아가 킹덤오브헤븐처럼 서로 상충하는 문화권을 균형감있게 묘사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지구촌이라 불리는 현대의 세계에선 반드시 갖추어야 할 균형감각에 해당합니다.


퓨전판타지도 더 이상 드물지 않은 소재고요. 헤포이는 이미 기존에 메카닉 판타지라는 신흥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여기에 일본적 색체를 가미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실제로 서구권에서 일본의 문화가 가진 특유의 포장과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이는 꽤나 먹히는 선택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거대 건축물 등은 유명 관광지로 각광받을 만큼 유명하니까요. 이러한 건축물을 바탕으로 헤포이에 새로운 캐슬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실제로 RPG전설 헤포이는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지 않은 작품이지만, 이런 요소가 자국에서도 사랑받는 법이니까요. 실제로 일본은 닌자와 사무라이라는 걸출한 수출품목(?)을 갖출 정도로 문화강국이니까요.


 일본 그 자신이 주변국에 끼친 막대한 문화적 피해와 부족한 역사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하튼 자국의 문화를 세계로 훌륭히 수출한 국가 가운데 하나이기는 합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이죠.


문제는 이게 한국에서 방영되기는 아주 어려울 거라는 점입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아마 국내방영 당시에도 왜색과 관련한 사유로 방영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고대 일본의 색체가 짙게 가미된 에피소드니까요. 당장 하니왕 왕자만 해도 일본의 유물로 유명한 하니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니까요.


하지만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히 순화된 거니까요. 일본식 갑옷도 헤포이 식으로 데포르메하면 대략적으로 묘사되는 동양식 갑옷으로 뭉그러뜨릴 수 있으니까요. 바꾸어 말하자면 본편을 제할 경우 전체적인 틀을 이해하는데 지장이 생길 정도로 꽤나 길다는 소리입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이러한 왜색을 들며 작품성 자체를 비난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봐도 상관없겠죠. 일본에서 만든 작품에 일본스러운 분위기를 작품에 넣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왜색이 방송에 드러나면 군국주의를 미화한다며 득달같이 달려들곤 했죠. 뭐, 뜬금없는 그땐 그랬지 입니다.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19화에서는


코스모캐슬의 습격에 대항하기 위해 마하라 캐슬을 깨웁니다.




 문서서식


육체파인 헤포이 일행에 있어 두뇌파인 노덴킹은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모자란 면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오니까요. 이를 통해 이야기의 변조를 주었죠. 하지만 헤포이 일행이 그가 준비한 위협을 타개해 낸 이후는 어떨까요? 두뇌파가 아닌 그이기에 헤포이 일행과의 대결패턴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그 위협역시 급락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노덴킹은 꼭 한 번은 나와야 할 적이지만, 일행의 정신적인 성장과 고난을 극복한 이후에는 너무나 맥없이 쓰러져 버리는 적이 되어 버립니다. 육체적으로 강력한 아군이 육체적으로 빈약한 적을 가지고 노는 건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니까요. 실제로 노덴킹과 같은 포지션의 캐릭터는 여러 소년만화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황금패턴 "네가 쓰러뜨린 내 부하보다 내가 훨씬 강하다!"를 써먹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긴장감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적이 되어 버린다는 거죠.


물론 노인의 몸으로 휙휙 날뛰는 요다같은 캐릭터도 있습니다만,

최소한 노덴킹은 알고보니 고수다 식의 캐릭터는 아닙니다.


특히나 쟈쿤이나 간간지가 쓰러졌던 패턴을 고려해보면, 캐슬과 함께 싸우기 힘든 노덴킹의 포지션은 특히 더 불안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노덴킹의 부하를 최대한 다양한 패턴으로 출연시키는 것이 이 캐릭터의 생명을 최대한 연장하고 이야기를 보다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본 편에선 기존의 다른 캐릭터들과 전혀 다른 도베르만이라는 개조인간식 닌자가 나와 종횡무진 활약합니다. 지금까지 강한 힘을 바탕으로 헤포이 일행을 억누르려 했던 적들과는 달리 화려한 움직임과 재빠른 기술, 심지어는 닌자답게 분신술까지 사용하며 헤포이 일행을 괴롭히죠.


특히 마하라 캐슬을 깨워야 한다는 목적에 당면한 헤포이가 싸움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류트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이 맹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다채로운 액션을 선보이는 도베르만을 통해 류트의 존재감을 다시금 부각시키고, 헤포이의 앞길을 안내하는 미야미야를 통해 헤포이가 나아가야 할 바를 다시 한 번 강조하죠.


실제로 도베르만은 지금까지 나온 졸개형 적들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악역에 해당합니다. 물론 일본 매체 특유의 닌자 및 사무라이의 과장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만 이전과 다른 능력,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독특한 매력을 갖추었죠. 1회용 악역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로.




 개조인간


본편에 등장한 도베르만은 여러 창작물에서 익숙하게 사용되어 오는 다양한 클리셰로 범벅이 된 캐릭터입니다. 사냥개인 도베르만을 모델로 한 캐릭터는 열이면 일곱 여덟은 집요한 추적능력 등을 가진 캐릭터라는 것, 악인에 의해 개조되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 잽싼 몸놀림을 가진 닌자형 캐릭터라는 점, 용사에 의해 무기가 부숴지지만 지지않고 다른 무기로 덤벼든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그가 개조인간형 캐릭터라는 점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졸개들, 아니 쟈쿤이나 간간지와 같은 중간간부조차 아무런 상관없는 물건이나 생물에 다크 헤포리스가 주입되어 악행을 일삼는 존재가 되어 왔습니다. 넓게 보자면, 이 또한 개조인간의 한 갈래라 할 수 있겠죠.


도베르만은 통파에서 일본도, 수리검까지 다양한 무기를 사용합니다.

....뭐, 그냥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대중화된 닌자라 봐도 과언은 아니겠죠.


지금은 조금 물린 탓인지 쉽게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 개조인간이라는 소재 자체는 결코 드문 것이 아닙니다. 초창기 가면라이더 시리즈는 강제로 인체가 개조된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었고, 진마징가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독수리 오형제의 2호 혁, 로보캅도 이러한 개조인간에 듭니다. 아니, 넓게 본다면 프랑켄슈타인 역시 이러한 개조인간의 범위에 포함됩니다. 개조인간 그 자체가 하나의 클리셰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죠.


대개 이러한 개조인간이라는 소재는 생명의 소중함과 그 이상으로 중요한 책임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기 마련입니다. 전자의 예는 프랑켄슈타인, 후자의 예는 로보캅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양자를 혼재시켜 생명을 가지는 이들이 응당가져야 할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만들어진 생명일지라도 누군가를 위하고, 지켜야 할 것을 아는 이라면 그 생명은 거짓된 것이 아니다." 라는 식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바로 그러하죠.


물론 헤포이의 경우는 전자도, 후자도 아닙니다. 되려 드래곤퀘스트 아벨전설의 바라모스에 훨씬 가깝습니다. 아벨전설에서 바라모스는 살아있는 괴물을 부하로 부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석으로 만든 괴물을 부려 아벨일행을 습격하게 합니다. 즉, 아벨 일행이 쓰러뜨린 괴물들은 사실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며, 아벨 일행은 용사로서 정도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적으로서의 개조인간은 주인공이 아무리 쓰러뜨려도 전혀 도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일종의 샌드백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개조인간이지만, 그것이 적이냐, 아군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것이죠.




 새로운 연출


기존 RPG전설 헤포이는 일격을 중시한 액션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헤포이가 사용하는 무기가 자신의 키의 두배는 되는 거대한 검을 사용하기 때문인 영향이 크죠. 물론 서브 캐릭터 격인 류토는 부메랑을 단검처럼 사용해서 속도전을 펼칠 수 있지만, 이를 100% 살릴 만한 적이 등장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애초에 간간지라는 너무 단단해 속도전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고, 쟈쿤 역시 힘이 센 캐릭터에 해당했으니까요. 양자 모두 팽팽하게 몇 번이고 대치할 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던 겁니다.


설사 다소 B급지향적 소재가 영화에 녹아있더라도, 액션이 잘 구성되고

독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맛깔난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 편의 도베르만을 기점으로 하여 보다 다양한 액션씬을 볼 수 있는 기반이 펼쳐집니다. 물론 치밀하고 잘 짜여진 액션씬은 아닙니다만, 액션씬에 속도감만 부여한다면 이야기는 보다 흥미로워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17화에서는


얼어붙은 스케어포스를 구해냅니다.





 홍일점 캐릭터의 활약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성적 차이를 본격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은 유아기 이후, 서로를 이성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2차성징 이후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 차이를 인식하는 만큼 남성과 여성은 그것이 학습의 결과건 생물적인 면의 발현이건 살아온 환경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앙칼진 성격이면서도 다른 사람을 감싸안을 줄 아는 미야미야는 전형적인 말괄량이 캐릭터입니다.


이것은 창작물에도 반영됩니다. 여러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 정형화되어 있거나, 공주님 계열 캐릭터로 한정되어 이야기를 이끌기보다는 이야기의 목표가 되거나 단순한 리액션만 반복되는 경우 모두 행동성이라는 측면에서 캐릭터를 다룬 결과물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남녀 역할이 점차 균등화, 대등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액션만화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역할은 제한적입니다.


이는 RPG전설 헤포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야미야는 류트나 헤포이와는 달리 전투에 전혀 참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행의 홍일점이라는 위치를 살려 일행의 살림을 담당하며,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설명하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언젠가 설명드렸듯, 이러한 성향의 캐릭터는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에 묻혀 버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어쩔 수가 없죠. 이야기 내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방도 자체가 제한되니까요. 결과적으로 이야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캐릭터들과 일종의 관계도를 형성하는 데에서 의의를 찾기 마련입니다.


주인공과의 관계도를 잃으면서 비중역시 급락해버린 나루토의 하루토 사쿠라.

컬러링은 아니나 다를까 여성캐릭터의 정형인 분홍색입니다. 거의 약속이죠.


미야미야는 용사인 헤포이의 길잡이 역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류트와는 사이좋은 말다툼 상대에 해당합니다. 이 두 남자 캐릭터는 결국 시청자의 몰입을 이끄는 캐릭터에 해당하기에 미야미야는 보다 그들에게 일종의 역할을 선사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내용 자체에선 주체화되고, 기존 캐릭터와 다른 방식으로 객체화 된 것이죠. 이는 이 작품을 주로 즐기는 대상이 남성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미야미야는 길잡이라는 그녀 본연의 역할로 인해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늘상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점이 기존 병풍이 되어 버린 여성 캐릭터와는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죠.


그리고 이는 역할과 분량 분배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미야미야는 본 작에서 그녀 자신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면서 동시에 이야기의 발단과 초반부 내용까지 진행하였습니다. 결국 힘쓰는 걸로 나아가는 중후반부엔 다시 그녀의 역할이 줄어들게 되었지만, 꾸준히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도를 형성하고, 그녀만이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을 가지게 된다면, 그녀가 병풍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건담시드의 라크스 클라인은 이러한 여성 캐릭터의 극단적인 성향을 보여주는데, 사건 자체를 

만들고 암약하지만, 정작 전면에 드러나지 않기에 흑막과 비슷한 역할이 되어 버립니다.


특히 이러한 홍일점 관력 캐릭터가 다른 여타의 캐릭터보다도 사소한 행보 하나하나만으로도 눈에 띌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녀의 캐릭터는 여전히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새로운 캐슬


지난 15화에서 성기신군과 광마신군 양측의 모든 캐슬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콘셉트를 가진 매력적인 메카닉이었죠.


하지만 이는 앞으로 새로이 등장할 모든 캐슬을 시청자들이 파악하게 되는 문제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콘셉트가 잘 드러난 디자인이라는 건 바꾸어 말하자면 해당 캐리터가 어떠한 성격이고 어떠한 방식으로 활약하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예상이 가능하다는 의미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이는 조금 더 많은 작품을 본 이들에겐 어떠한 방식으로 내용이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단서로까지 작용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이번 17화는 성기신군과 광마신군 모두에 관련되지 않은 자연 캐슬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바로 용암캐슬과 빙산캐슬이 그 주인공이죠. 각기 성이라는 인공물이면서도 일기를 조정할 정도로 강한 존재들입니다.


특이하게도 둘이나 되는 캐슬이 등장했지만 이들과의 싸움은 펼쳐지지 않습니다. 이들의 액션도 거의 펼쳐지지 않고요. 실질적으로 이들의 등장은 단순히 이야기의 흥미를 더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은 성기신군과 광마신군으로 이분화된 현재의 관계도를 보다 복잡화하여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단서로 작용합니다.


오니를 모델로 한 대표적인 캐릭터는 시끌별 녀석들의 라무일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두 캐슬의 대립과 화해는 일본의 설화 가운데  빨간 도깨비와 파란 도깨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과 친해지고 싶어 친구를 때려야만했던 파란 오니와는 달리, 캐슬과 주인공 일행의 관계는 드라이한 기브 앤 테이크에 가깝다는 생각도 문득 드는군요.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16화에서는


스케어포스를 향하는 일행 앞에 새로운 적 노덴킹이 막아섭니다.





 새로운 적,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이야기


앞서의 자쿤, 그리고 간간지는 여러모로 육체파 적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쿤은 아예 파워업하면서 대놓고 헤포이와 육박전을 벌였고, 간간지는 비록 마법사형식의 전투법을 보여주었지만 그 자신의 단단한 몸을 바탕으로 활약하였기에 헤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검술을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아군 캐릭터로부터 유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비슷한 전형의 두 캐릭터가 이미 소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서서히 시청자가 지겨움을 느낄 타이밍이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죠. 그에 따라 이제부터 등장하는 노덴킹(ノーデンキング)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성을 지닌 캐릭터가 됩니다. 두뇌파 형식의 캐릭터인 거죠. 그 생김새부터가 작고 왜소한 노인이지만, 두꺼운 안경에 거대한 뇌를 가진 캐릭터라는 점이 그를 지지합니다. 전면에 나서 싸웠던 앞서의 두 악역과는 달리 뒤에서 흉계를 꾸미는데 더 어울리는 모습이죠.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 자체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중간간부인 이들의 부하격인 캐릭터가 나타나 헤포이 일행을 괴롭히고, 헤포이 일행은 이들을 물리친 후 서서히 캐슬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이들이 전면에 나서 헤포이 일행과 전면 대결을 벌이죠. 이는 아직까지 모아야 하는 킹 캐슬의 파츠가 많으니만큼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에 해당합니다.


적 캐릭터의 변화만으로는 전체 이야기에 변조를 주는 게 쉽지 않은 것이죠. 다만, 역시나 두뇌파인 캐릭터인만큼 단순히 정면으로 부딪히기만했던 다른 캐릭터와의 차이를 보여줄 기회는 많습니다. 주인공 일행과의 다양한 관계도를 형성하여 독특한 그림을 연출할 수도 있고요. 아군 캐릭터의 약점을 꿰뚫는 다거나, 헤어나올 수 없는 시련을 마련한다거나. 아니면 아예 캐슬과 맞먹을 정도의 머신을 만들어 주인공 일행에게 덤벼드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겠네요.


여하튼 노덴킹은 캐릭터와 소재의 식상함을 떨치기 위해 마련된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서도 요긴한 캐릭터입니다. 육체적인 강함을 어필하는 캐릭터가 아니기에 자연히 헤포이 일행의 육체적 성장이 아닌 정신적 성장을 강조해야 하는 캐릭터로 작용하게 되거든요.


실제로 노덴킹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이난 기존의 두 악역과는 달리 오랜기간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간부라는 위치상 그 역할에는 분명이 제한이 있지만 말이죠.




 현실적인, 그러나 주인공 일행만을 위한 패러디


주인공. 말은 짧지만 이 속에는 많은 의미가 녹아 있습니다. 일단 변화하는 세계관을 이끌어 가는 자라는 의미도 있고,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주인공들은 기막힌 우연에 점철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마왕을 퇴치하러 떠났는데, 배를 탈 돈이 없어서 땅바닥만 긁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르바이트를 몇 달 한 후 떠나게 된다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된다면,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용사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다양한 매체는 용사의 교통비나 무기, 기막힌 매직아이템을 구하는데 얻는 비용 등을 은근슬쩍 우연이나 인연으로 포장하여 혈실성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일일히 현실적인 요소를 개입시킨다면, 솔직히 말해 그에 포인트를 준 패러디 작품 등이 아니라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는 돈의 중요성을 초반부터 이야기해온 RPG전설 헤포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초반부 이야기에서 강을 건너게 해준 거북이에게 수고료를 주었던 헤포이의 모습을? 세계를 구하러 가는 헤포이지만, 그런 헤포이에게도 받을 건 받아야 했던 겁니다. RPG전설 헤포이는 의외로 드라이한 작품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이후 등장한 분자에몽을 생각해보세요. 마스코트 격인 미야미야와 일행의 살림을 담당한다는 데서 포지션이 겹치지만, 그 자신이 수전노처럼 악착같이 돈을 끌어다모았기에 비로소 일행은 금전적인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해당 세계관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나선 용사와 한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인 왕에게서도 돈을 받아야 대우를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이러한 요소가 너무 강하면, 정통적인 모험담에서 상당히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RPG전설 헤포이는 어디까지나 금전적인 요소를 결부시켰을 뿐 완전히 이쪽으로 돌아선 작품은 아니죠.



여러 RPG형식의 게임에서 다른 사람의 집에 서슴없이 들어가 아이템을 챙기고 들어오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작게는 소소한 회복용 아이템에서 크게는 무기까지 장롱과 항아리까지 깨뜨려 돈을 챙기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게 과연 세계를 구할 용사의 모습인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인공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하는 일은 드물죠.


실제로 젤다의 전설에서는 이를 패러디하여 주인공을 도둑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일부 시리즈에서 존재했으며, 아예 게임에 대한 패러디를 목적에 둔 마법진 구루구루에서는 이를 개그 소재로 삼을 뿐 아니라 주인공 니케를 도적 클래스의 인물로 설정해두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결국 다른 사람의 집은 게이머의 입장에선 뒤지고 탐구해야하는 필드의 연장에 불구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입니다. 어디까지나 이들은 세계관을 이끄는 주축이 아닌 세계관을 구성하는 소재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여기까지 현실성을 부여하려 들었다간 게임의 규모 자체가 엄청나게 커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풍선초나 번개초도 결국은 이야기에 방해가 될 정도로 지나치게 세계관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일련의 조치와 같았습니다. 음식은 돈을 내고 사서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다양한 효과를 내는 마법초는 땅에 잡초처럼 심겨져 있습니다. 이걸 주워서 팔아 돈을 마련하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길이 있지만, 그래선 재미가 없죠. 결국 주인공만을 위해 세계관이 굴러가는 것은 RPG전설 헤포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움과 클리셰


거대한 고래의 뱃속에 들어가 탈출하려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된 클리셰에 해당합니다. 같은 생명체로 여기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고래에게서 일종의 경외심과 공포심을 느꼈기 때문일수도 있겠네요.


당장 백경같은 작품만 보아도 그러한 요소가 잘 드러나 있으며, 피노키오에는 아예 고래로부터의 탈출을 주요한 이야기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피노키오의 경우는 원작에서는 상어인데-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고래로 수정된 케이스죠. 그리고 일본의 만화 원피스에서도 고래 라분을 통해 이러한 요소를 한 차례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번에 보게된 쿠지라쿠는 고래보다는 해달이 떠오르는 모양새였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겠네요. ...뭐, 눈치채셨겠지만- 소재에 맞추기 위해 새로움을 표방했지만, 그 속에는 여러 클리셰가 가득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 하기 위해 끌어맞췄습니다.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


 15화에서는


단무지 도사로부터 갑옷구슬을 받은 헤포이는 플랜트 캐슬과 간간지를 쓰러뜨립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흔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전후사정을 제대로 따지지 못하고 과감하게 뛰어들었기에 이것저것 재기만하고 행동하지 못하던 이들이 이루지 못한 일들을 이루어내거나, 뻔한 일이 일어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질 않고 덤벼드는 바람에 큰 코 다친 경우 모두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들이 있죠.


한 방송인이 외국에서 만취한 채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가 총을 보여줬음에도 겁도없이 따귀를 올려붙인 경우나, 순찰을 돌던 경찰이 경고차원에서 한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난장을 피우는 경우가 바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일 이외에 긍정적인 일에 대해서도 위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결국 행동하지 않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기도 하죠.


이러한 바보, 내지는 순진한 사람의 과감함은 여러 표현물에서도 자주 이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헤포이처럼 유아형에 가까운 열혈 주인공은 더 더욱 이러한 묘사를 자주 겪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헤포이는 순진한 어린이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주인공임과 동시에, 올바름을 지향하도록 배운 아이들이 가장 공감하는 캐릭터가 바로 헤포이죠. 때론 헤포이의 어리석음과 둔함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선택하는 것들이 올바르고 또한 좋은 결과들을 낳기에 아이들은 더욱 헤포이에 열광합니다.


헤포이는 아이들이 그의 행동과 의도를 꿰뚫어 볼 수 있을 정도로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입니다. 아주 얕은 잔꾀만으로 훨씬 편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매달립니다. 이는 같은 아군이지만 다른 성격의 류트, 그리고 적 캐릭터들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사안에 해당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또한 본질적인 올바름을 지향하고 있기에 아이들의 모범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이런 헤포이를 노골적으로 바보라고 할 것 까진 없지만, 이러한 헤포이기에 실상 여러 이야기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어온 바보가 가지는 상징성을 상당부분 공유합니다.



흔히 바보 온달의 이야기는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것으로 곡해하기 쉽지만, 이 또한 결국에는 착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보가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처럼 말이죠.


바보는 기본적으로 모자람을 상징하지만, 그것은 약삭빠름과 대치되는 우직함을 나타내는 또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 그리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포레스트 검프 양자의 주인공들은 결국 시대나 자본같은 외부적 요인에 대해 멍청하리만치 둔하고 우직하게 대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죠.


결과적으로 이러한 부류의 이야기들은 "이러한 바보들도 부지런하고 착하게 굴면 성공할 수 있는데, 너처럼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성공하지 않을 수 있겠니?"란 주장과 같은 셈입니다. 부지런함과 성실함, 그리고 착하고 온순한 성품을 미덕으로 삼아왔던 이전 시대의 관념이 녹아있는 것이죠. 헤포이의 맹함은 결국 아이들에게 "헤포이보다는 똑똑한 너희들이니까 너희도 착하게 굴 수 있지?"라는 교육 아닌 교육이 녹아든 결과였던 겁니다.


물론 이것은 시대가 흐르면서 미디어에 의한 세뇌, 계급간의 투쟁, 자본 등의 요소와 결부되며 수용하기만해야 하는 요소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헤포이는 90년대 극초반에 만들어진 전체관람가의 작품이라는 걸. 고평가할 순 없지만, 이러한 요소로 비난하기엔 좀 애매하다는 거죠.




 적과의 동침


솔직히 말해, 지금 이 시점에서 헤포이가 갑옷구슬을 찾으러 단무지 도인에게 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당장 눈 앞에 맞서싸우지 않으면 상황이 어찌될지 모르는 적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적을 쫓는다고요? 말도 안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간간지 역시 굳이 이 시점에 갑옷구슬을 찾으러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헤포이가 없는 이때야 말로 배틀 캐슬을 쓰러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도 플랜트 캐슬의 공격에 방어만 하고 있는 배틀캐슬이건만 어째서 이 시기 뜬금없이 갑옷을 찾아 떠나는 거죠? 아니, 그 이전에 그에게 갑옷구슬이란 게 필요합니까? 간간지의 몸은 돌로 되어 있잖아요???


예. 결국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헤포이를 파워업 시켜주기 위한 이벤트와 이야기의 당위성을 맞바꾼 결과입니다. 실제로 주인공의 파워업 이벤트를 나중에 따로 다루면 아예 통채로 에피소드를 할애해야 하니까요. 분량조절 차원에서 적이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수용자는 어느 정도 납득하고 넘어가야 겠죠.



특이하게도 본편은 정통적인 악역과의 싸움에 가까웠던 자쿤과의 싸움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무엇보다 오랜기간 간간지와 엮이면서 다양한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이죠. 그 대부분은 간간지가 감춘 물건을 헤포이 일행이 찾아내거나 그가 설치한 함정을 그들이 돌파하는 것 정도였기는 합니다만, 여러 차례 간간지와 맞부딪히며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왔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그것은 이번 에피소드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위험에 빠진 간간지를 헤포이가 태연히 돕는 것입니다. 바로 5분후 혈투를 벌이는 두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 쪽은 도움을 요청하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받아들여 돕습니다. 이는 이들의 관계가 말그대로 적과 아군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류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이라 할만합니다만. 굳이 큰 신경을 써야 하는 요소는 결코 아닌 듯 합니다. 기본적으로 적이 순수한 악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모양새기는 하지만 결국은 세뇌당한 상태이니 그 깊이가 떨어지고, 공통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헤포이의 착한 심성을 강조하려는 장치일 뿐이니까요.


다만 헤포이가 왜 적과 싸우는지를 은연중에 설명하는 것이기는 했습니다. 개인과 개인이나 세력과 세력의 다툼이 아닌, 말 그대로 용사와 평화를 해치는 악당과의 싸움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것이죠. 헤포리스와 다크 헤포리스의 대립은 포스와 다크사이드의 그 관계와 완벽히 부합한다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실제로 그 결과 또한 이전의 자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적과 싸워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적과 싸우지만 마음을 돌리는 것으로 바뀌었죠.




 마무리


간간지의 정체는 사실 행인을 지키는 신(道祖神)- 정확하게는 그 석상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에 다크 헤포리스가 깃들게 되며 헤포이들의 앞을 막아서게 된 것이죠. 악의 조직의 중간보스치고는 참 애매한 출신이구나 싶지만, 과거의 자쿤은 밥솥장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쪽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간간지는 그 태생이 태생이니만큼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봉제인형이나 골렘, 슬라임들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하며 돌아다니니 그리 이상한 적은 아니기는 합니다만 그 거대한 몸집이나 단단한 몸을 바탕으로 한 공격은 분명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자쿤이 변신을 하게 되며 전형적인 육체파 악역으로 거듭난 반면, 간간지는 계속해서 샌드백 역할만을 하다 종래에는 별다르지 않은 변신만을 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오래나오기는 했지만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악역이라는 인상은 주진 못했네요.



다만, 간간지는 보통 이러한 콘셉트의 적들이 공유하는 특성을 잘 보여준 악역에 해당합니다. 무엇보다 단단한 몸과 강한 힘,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분해해서 적을 공격하는 공격방식은 이전, 그리고 이후에도 자주 사용되는 것이거든요.


기실 클리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실상 거대한 돌도 박살내는 주인공들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작은 돌멩이에 더 큰 곤란을 겪는 것은 바위에 깔리는 것은 표현할 수 없고 공감도 쉽게 시키지 못하지만, 자갈 정도의 크기에 맞는 것은 표현도 수월코 수용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니까요.


여하튼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온 첫번째 글입니다. 다만 글 자체에는 이전처럼 힘을 주는 일이 없도록, 읽으시는 분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スタジオぎゃろっぷRPG伝説ヘポイ, 1990>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