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도서 대여점이 만화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아니면 악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수익의 분배 측면에서는 일정부분 악영향을 끼쳤다고 보지만, 이익이 되는 부분 역시 분명히 존재했다고 봅니다.


예? 뭣 때문에 그렇게 확신하냐고요?


 

 소화상은 국내 소년잡지에 연재된 몇 되지 않는 대만만화 가운데 하나로 꾸러기 수비대와 12지 전사가 연재되던 무렵 함께 연재되었었습니다. 당시 국내 만화계는 일본은 물론 대만의 만화까지 수입하여 정식으로 연재하면서도 이들과 성공적으로 경쟁해 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만화를 잡지에서 접한 후 대여점에서 빌려본 뒤에 구매하여 봤습니다.


당연하지만 저 개인의 경험때문이죠. 잊으셨나요? '내 인생과 만화 이야기'는 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라는 것을. 실제로 대여점의 실익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나누어 본 바 있으니 그 글에서 제가 대여점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다른 사람의 경우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저 개인에 있어선 만화 대여점은 만화의 구매로는 한참 모자랐던 만화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었던 창구에 해당했습니다.


여러 사유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서대여점은 구매를 위한 서점과 근본적인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최소한 만화를 보는 데 있어 싸게 먹혔다는 소리입니다.




 동네 서점과 도서 대여점의 병존


일단 저 자신이 여러 만화 칼럼에 묘사된 80년대부터 90년대 초 중반의 만화잡지 세대라는 점을 감안하실 필요가 있을 겁니다. 저는 비디오 대여점 등을 통해 드래곤볼을 접했고, 그 드래곤볼 단행본을 구매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드래곤볼이 연재된 잡지를 구매하게 되었고, 드래곤볼 외의 다른 만화에 대해 알게 되고 구매하였었죠. 문제는 저 자신을 포함하여 이러한 구매폭이 확립될 정도의 환경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흥미롭게도 당시는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작은 동네 서점이 동네마다 존재했습니다. 아직 온라인 배송이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자신이 원하는 책을 동네 서점에 주문한다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서점 자체가 일종의 북클럽과 비슷한 모양새였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그때마다 주문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선택받은 단골의 혜택 비슷한 것이었으니까요. 믿기지는 않겠지만 서점주가 사려는 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딴지를 걸며 간섭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그 시기의 꼬꼬마였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죠? 구매의 폭 자체가 좁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입니다.


 

 주현종의 접지전사 역시 국내에 연재되었던 대만만화에 해당합니다. 이 작품은 대여점에서 빌려 본 후 구매하게 된 사례에 해당했죠.

더 큰 문제점은 동네 서점에서 들여놓는 만화책은 그 종류와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드래곤볼과 마이러브, 슬램덩크 등의 책을 동네 서점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훌륭한 만화죠. 하지만 다른 모든 만화를 대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서점이 이 만화책들과 같은 부류의 책들을 들여놓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기가 있어서 잘 팔리니까요. 재고, 진열 등의 문제가 있는 서점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만, 구매자 입장에서는 갑갑할 노릇이었죠.


아니, 다른 걸 떠나서 학교 근처의 동네 서점이 가장 많이 파는 책이 다름 아닌 참고서와 문제집이니까요.


결과적으로 잡지를 통해 다른 만화를 접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다른 책을 구매하지는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던 겁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이 바로 도서 대여점이었죠.


 

 실제로 인기를 끄는 만화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만화의 단행본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같이 시대를 대표하는 만화도 그랬으니까요. 이러한 만화를 볼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창구가 대여점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먹통X를 그 즈음 함께 빌려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화 대여점의 가장 큰 특징은 책을 사지 않는 대신 비교적 싼 값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책 한 권 살 돈이면 10권 정도를 빌려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이득이었겠지만, 책을 구매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저에게 있어서는 솔직히 불만족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좋지만 기본적으로는 구매를 전제로 해 왔던 저에게 있어선 다시 되돌려 줘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만화책 열번 보면 사서 보는 게 이득이잖아요? 보고 싶을 때마다 빌려보는 것도 참 골치아픈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 대여점엔 결코 바래지 않는 매력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만화책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었죠. 이 매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중고서점에 나도는 만화책의 대부분이 대여점발 서적임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아이러니하게도 대여점 정도가 되어야 오래된 만화책들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대하소설인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었던 데엔 도서대여점의 역할이 일정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쿵후보이 친미의 경우 비디오 대여점, 해적판 등을 통해 유명해진 상황이었지만 이것이 만화대여점, 서점으로까지 인기가 확대되었죠.


같은 책을 이익의 매체로 삼은 서점과 대여점이었지만 양자의 목적이 달랐기에 병존할 수 있었습니다. 대여점에서 큰 인기를 끈 책이 서점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기도 하고, 서점과 TV에서 큰 인기를 끈 책이 대여점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죠.


도서 대여점은 저가에 확실한 만화의 광고책이 되어 주었습니다. 동시에 서점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책들의 정보통이 되어 주었죠. 이러한 상황은 만화시장이 심각해지기 전까지 어느 정도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구매와 대여


제 어린 시절 저희 집은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랬었기에 저는 되려 필요할 때마다 볼 수 있는 소장의 가치를 체감하고 있었죠.


하지만 만화에 있어선 그간 만화의 대중적인 인식을 포함하여- 소장과 구매의 가치관계가 분명히 정립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도서대여점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도서대여점은 한동안 만화시장이 발전하는데 있어 악의 축 마냥 묘사되어 버렸죠. 실제로 이러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도서 대여점 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든 지금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서대여점은 희귀한 만화를 볼 수 있는 창구가 되어 주는 반면, 그러한 만화가 재판되는데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스테디셀러로 불리는 지옥선생 누베의 경우 도서대여점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작 재판되지는 못하는 상황이죠.


도서대여점이 그토록 비판받은 데엔, 100만부 이상 판매되는 만화가 등장하는 상황이었기에 도서대여점의 악영향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점이 컸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IMF를 비롯한 연이은 악재가 터져버렸으니...


여하튼 그러한 문제가 닥쳐오기 전까지의 만화계는 경제적 호황기와 맞물려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즈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헐리우드의 쥐라기 공원이 개봉하며 문화산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며 만화 역시 커다란 한 방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러한 의미로 다음 시간엔 쥐라기 공원과 디즈니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후의 첫번째 글인데- 영 싱숭생숭 하네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주인장 알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