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돈. 하지만 돈.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영화배우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결코 지금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유명세를 통한 사회적인 역량이나, 실제 지위와는 무관히 연예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비하적 의미로 통용되던 때니까요. 지금도 광대니, 딴따라니 하는 비하적 표현이 종종 사용되곤 하죠.


이것이 뒤바뀐 것은 영화의 국민적인 흥행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영화가 존재했고, 능력있고 잘생긴 배우들 역시 존재했지만, 홍콩이나 헐리우드의 흥행기록을 깨부술 정도의 범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한국영화는 쉬리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습니다. 쉬리를 기점으로 한국 영화에서 작품성, 상업성 양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작품들이 나오게 되면서 영화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배우들에 대한 대우 역시 사회적으로 비할 바 없이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는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무슨 과장이 그렇게 심하냐고 말씀하시겠지만, TV에 나와서 영화 평론가가 실제로 한 말입니다. 쉬리의 상징성은 그 정도입니다. 실제로 쉬리에 나온 배우들은 현재 한국 톱수준의 배우로 평가되고 있죠.


즉, 영화배우가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직업이 된 것은 여러 사유가 존재하지만, 그들이 어느 정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군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의미가 되는 셈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돈이라는 것은 상반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보편타당하게 체감할 수 있는 가치기준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며, 그들의 사고관을 바꿀 수 있는 인상적인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험난한 근현대사를 보낸 대한민국은 문화산업을 천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고, 사회적으로 문화 산업 자체가 퇴폐적인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였습니다. 오직 현물적인 가치를 남길 수 있는 직업들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된다 생각했던 것이죠. 이전 문화종사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유형적인 가치를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 역시 적잖게 작용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적저산권의 가치가 폭등하게 되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에 대한 가치 역시 재조명되었습니다.


물론 이 때의 가치는 작품성에 기인한 그 자체의 가치라기보다는, 그것이 현물적 가치로 변환된 경우에 해당합니다만 그러한 시선 자체가 대중문화 산업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키는 촉발제임을 생각해보면, 분명 긍정적인 시선임에는 분명했죠.


 2015년 개봉할 예정이라는 쥬라기 공원4는 다시금 스필버그가 참여할 것이라 알려져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당장 올해 3D로 재개봉한 쥬라기공원만해도 압도적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박력을 다시금 체감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현대차 수천대와 영화 한 편이 맞먹는다.


상당히 자극적인 표현입니다만, 실제 공중파 뉴스에서 인용되었던 말로 당시의 대통령이 연설에서 꺼냈던 말입니다. 이 표현은 오래도록 신문 기사에 인용되며, 문화의 파급력과 상업성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993년 개봉했던 쥬라기 공원은 기존에 관념적으로만 떠올리던 공룡이라는 소재를 혁신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충실히 구현하며 전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었습니다. 한국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당시 63빌딩 등에서 쥬라기 공원을 테마로 삼은 여러 이벤트를 하기도 했었다는 것이 기억나네요. 지금도 쥬라기 공원은 상업영화의 하나의 바이블로 통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지 않겠어요. 헐리우드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영화이자,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2013년 기준 극장개봉 수익만으로 1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기록적인 흥행작인데.


하지만 개봉 당시에는 이 영화에 대한 호평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 등은 이 영화에 대해 "스필버그의 최고 걸작도 아니며, 관객 역시 영화를 보러왔다기 보다는 특수효과로 구현된 공룡을 보러 온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즉, 영화 본연의 가치보다는 영화를 이루는 특수효과가 더욱 인상적인 영화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쥬라기 공원의 기록적인 흥행은 영화의 발전사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였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비판은 이후 2009년 아바타에서 동일하게 재현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당시 쥬라기 공원은 그 기록적인 흥행으로 문화산업의 강력함을 알림과 동시에,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처지더라도 충분한 즐길거리만 있다면 영화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특이하게도 라이온킹의 하청업체 가운데엔 북한의 한 단체의 이름도 끼어 있습니다. 이건 저도 몰랐던 사실었는데, 오늘 우연히 알게 되었네요.(http://www.atimes.com/atimes/Korea/IC14Dg03.html)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디즈니에서 제작하고 개봉한 라이온킹의 세계적 흥행이었습니다.


1994년 국내개봉과 함께 전 세계적인 흥행을 하였던 라이온킹은 93년의 쥬라기공원처럼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며 니모를 찾아서가 개봉하기까지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군림했습니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가장 훌륭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몇번이고 꼽혔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수상을 하기도 했었죠.


햄릿을 모티브 삼아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펼쳐진 사자들의 이야기는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도 여전히 매혹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다 강화시켜 준 것은 실제 사자를 보고 디자인한 캐릭터와 누구나 생각해왔던 사파리를 훌륭히 만화적으로 옮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라이온킹의 흥행 소식 저편에 아주 놀라운 이야기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 라이온킹을 제작한 디즈니에 이전부터 한국인들의 인력이 많이 투입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청이라는 작업을 통해서요.


실제로 하청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움직이는 작업을 완성하는 것이었고, 겉으로 보기엔 애니메이션을 완성시키는 작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라이온킹이 전 세계적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곧, 한국도 작정하고 만들면 전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고요.


 애니메이션 란마1/2 속 둘리의 모습. 한 애니메이터가 장난삼아 그려넣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조명된 것이지만, 사실 한국은 오랜 기간 애니메이션 하청 업계 가운데서는 알아주는 국가로 손꼽혔습니다. 인건비는 싸고, 그림의 질은 괜찮게 나오는. 실제로 애니메이션에서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의 이름을 찾는 건 더 이상 어려운 일은 아니라죠.


이 시기 다시 한 번 그 이야기가 인용됩니다. "애니메이션 한 편이 자동차 수천 대와 맞먹는다."는. 그 이후로는 아시죠? 세계적으로 한국의 이름을 드높이고 국위선양하고. 돈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에 대한 정부차원에서의 투자가 이루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쁜 일은 아니죠. 성공한다면 문화계는 문화계대로 발전해서 좋고, 대중문화에 관심없는 이들도 이러한 자체적인 콘텐츠의 자생을 통해 반사적인 경제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상황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중반을 접어들면서 한국에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법한 콘텐츠가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었고, 대중문화에 대한 시선도 관대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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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주인장 알숑규